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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 Back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27 GG Vol. 25. 12. 10.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지도는 내 삶의 터전이 있는 지역을 가운데에 놓고 그리게 된다. 지도의 끄트머리는 세계의 끄트머리고, 그 바깥은 다른 세계다. 그 경계를 넘어가면 다른 천하가 펼쳐진다. 천하통일은 그 경계 안에서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 경계 지역은 변방이다. 변방의 개념은 중심 지역이 성립해야 생겨난다. 생존과 공동체 존립에 중요한 자원, 물과 식량과 재료가 많은 곳에 인구가 몰려 중심이 되고, 변방은 그런 중요도가 떨어지는 먼 곳이기에 인구 밀도도 낮다. 권력도 중앙 권력과 결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두 세계가 맞닿는 지역이기에 보통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변방의 인상은 혹독한 환경 혹은 강인한 거주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변경백 작위, 중국의 만리장성은 그런 방어의 맥락이 낳은 결과물이다. 경계의 땅. 영어로 직역하면 보더랜드 정도가 될 것이고, 이는 루트 슈터라는 하위 장르를 정립시킨 슈팅 게임의 명작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무대인 행성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의 지도에서 변방에 속한다. 자원이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고, 환경은 딱 거주만 가능할 정도로 혹독하다. 멸망한 옛 문명이 남김 유적인 ‘볼트’가 있긴 하지만 이 행성에만 있는 유적도 아니니 중요한 행성이 아니다. 그래서 권력화한 기업들이 채굴과 전쟁을 위해 온 적은 있다. 그들이 데려온 인력은 노예 노동을 맡은 죄수 혹은 용병들이었고, 이들은 기업이 떠난 후에도 남았다. 자원과 유적을 놓고 만인이 만인을 적대하는 세계가 되었다. 공동체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마을 혹은 용병단 정도의 규모다. 방어의 맥락은 없지만 폭력으로 다져진 사람들이 사는 ‘변방’이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오프닝은 이런 변방 공간의 덧없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처음 카메라가 잡는 대상은 10초 안에 허무하게 죽는다. 그 인물을 죽인 인물들도 몇 초 후에 죽는다. 생명의 존엄 같은 개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세계라는 것을 빠르게 보여준다. 이 정도면 변방을 넘어 세계 바깥이다. 보더랜드를 비롯한 황무지 서사의 특징은 서사의 무대가 되는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 구조, 더 정확히는 제도화된 권력 구조가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종족이고, 공동체의 작동을 위해 권력 구조를 만들고, 권력의 작동을 통해 생존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인구가 늘어나 공동체가 확장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문명이 등장한다. 반대로 말하면 권력 기구 따위 없는 세계는 문명의 세계가 아니다. 야생의 법칙 중 하나인 폭력의 법칙이 제1규칙의 자리에 있게 된다. 자원도 많지 않은데 이를 제도적으로 가공 생산품으로 바꿔낼 문명도 존재가 희박하다 보니, 대부분의 자원과 도구 – 무기는 서로를 죽이고 뺏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자연 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권 개념을 끌어냈다. 완벽한 자연 상태의 자유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생존이 위험하기에 인간은 자유를 일부 포기하면서 공동체 권력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잘 죽이고 잘 뺏으려면 협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 단위나 도적단 단위 정도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만 그 이상의 권력은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등장하면 행성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유적, 볼트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볼트를 열고 싶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충돌한다. 그렇게 갈등이 끊이지 않고, 플레이어는 그 갈등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상대를 총으로 쏴 그의 자원과 무기를 탈취한다. 쏘고 줍는, 루트 슈터 장르가 보더랜드 시리즈에서 정립되었다. * 상자를 열고 적을 죽여서 전리품을 얻는 것은 전투를 컨텐츠로 삼는 거의 모든 장르에 있는 자원 수급 방법이지만, 보더랜드 시리즈와 같은 루트 슈터 장르에서는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루트 슈터 장르를 지탱하는 두 행동, 쏘는 행위 슈팅과 줍는 행위 루팅은 이 장르에서 가치 있는 재화와 장비를 획득하는 주된 방법이다. 구매와 보상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그리고 가치가 가장 높은 방법은 적에게서의 루팅이다. 보통의 MMORPG에서도 루팅은 주요한 획득 방법이지만, 제작이나 퀘스트 보상이라는 다른 주요 획득처가 존재한다. 같은 전리품 맥락의 획득이지만 루트 슈터에서는 다른 획득처가 중요하지 않거나 없다. 그리하여 루트 슈터에서의 루팅은 약탈 혹은 채집에 가깝고, 시뮬레이션으로의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수렵 채집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마침 변방, 세계 바깥이라는 작중 세계의 황량함은 수렵 채집 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부족 규모의 공동체, 황무지에서 벌이는 적대적인 개체들과의 전투, 약탈, 문명 이전의 서사다. 보더랜드 시리즈를 수렵 채집 시대에 SF 스킨을 씌워 문명 바깥을 구현한 작품으로 본다면, 최근작인 4편의 서사적 맥락이 독특해진다. 이전작들의 무대인 판도라 행성은 변방 내지는 세계 바깥이라고 요약하기 딱 좋은 시공간이었다. 4편의 카이로스 행성은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기에는 타임키퍼의 교단이라는 지배 권력이 존재한다. 타임키퍼의 지배 수단은 볼트(Bolt)라는 장치다. 이를 사람의 신체에 심어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우주적 사명이라는 것을 교리화하여 세뇌하다시피 한 신도들을 조직화해 교단을 꾸렸다. 이 세력이 카이로스를 지배하면서 외부에서의 관찰에 잡히지 않도록 행성 전체를 가려놓기도 했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지도에 없는 행성이었고, 운 나쁘게 불시착한 용병이나 해적들이 토착민과 함께 경쟁하며 살고 있다. 즉 카이로스는 중심 성계에서 변방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단지 강력한 독재 권력이 지도에서 지워놨기에 변방이 된 것이다. 게임 플레이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플레이어는 볼트(Vault)를 열기 위한 경쟁을 하는 볼트 헌터고, 카이로스의 볼트를 독점하려는 타임키퍼와 그의 교단을 상대로 전투와 약탈을 한다. 이전작에서의 회사, 용병단 등의 적과 형태는 다르지 않다. 반면 설정된 반동 세력의 규모와 성격은 정반대다. 카이로스에는 교조적 독재 문명이라는 제도 권력이 존재한다. 전제를 다시 정리해보자. 변방은 각 세계의 끝이기에 문명이 없거나 옅다. 방어 전담 지역이기 때문에 혹은 중요하지 않아 무관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변방/바깥은 만인 투쟁 상태의 무법 지대로 그려진 것이며, 그래서 보더랜드 시리즈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을 펼쳐놓기 좋은 무대다. 반면 카이로스는 명백히 문명화된 설정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 문명 바깥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지역 중에선 아웃랜드, 크아레쉬처럼 이미 문명이 멸망한 지역이 등장한다. 이런 지역은 열리기 이전, 정보가 거의 없을 때는 황무지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진입하여 스토리를 접하게 되면 각 세부 지역에 존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체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퀘스트를 받거나 그들과 적대해 싸우면서 아직 문명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접하게 된다. 이는 카이로스에서의 서사와 유사하다. 이건 수렵 채집이 아니라 전쟁의 서사다. 그렇다면 카이로스를 무대로 한 보더랜드4의 이면에 독재는 문명이 아니라는 함의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전쟁과 대립이 다시 시대의 테마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지구 정세와 연결해 사유할 지점이 생긴다. 변방의 황무지 행성이라는 무대를 홉스의 자연 상태에 가깝게 포장하는 데에는 보더랜드의 설정에 존재하는 기업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총기와 장비는 제조사마다 독특한 특수 효과를 지닌다. 이 제조사들은 여러 행성을 실질 지배하는 지배 권력이기도 한데, 작중의 은하계는 이미 정치 권력이 기업 권력에 무력으로 패배한 상태로 기업 간의 경쟁이 곧 전쟁을 포함하는 세계다. * 국가가 사라지고 기업이 정치 권력을 대체하는 세계는 SF에서 보통 디스토피아로 묘사된다. 보더랜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들은 적으로 등장하는 서넛을 제외하고는 묵직한 배경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이들이 벌이는 경쟁 내지는 기업 전쟁은 플레이어의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 서사는 변방이 아닌 저기 중심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기업 중에서 플레이어의 스토리 수행에 의해 사세가 기우는 경우는 있어도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정에서 다른 해석을 뽑아낼 수 있다. 홉스가 상상했던 자연 상태에 가까운 상태는 문명 바깥의 상태다. 독재 치하에서 폭력이 제1수단인 카이로스 또한 문명 외의 상태라면, 기업 전쟁이 횡행하는 은하계 또한 문명 외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약간의 비약은 섞여있지만 말이다. 지도 밖으로의 행진은 개척의 서사다. 우리가 겪은 마지막 개척 경험은 미국 서부 개척을 마지막으로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보더랜드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은 개척이 아닌 생존 서사에 가깝다. 문명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는 바, 생존 서사는 곧 문명의 농도가 옅거나 없는 상태의 서사다. 더군다나 수렵 채집 행위를 매개로 하니 이는 전쟁의 생존 서사와 또 다른, 문명 유무의 맥락에서 읽히는 서사가 된다. 이런 사유의 끝에서, 폭력이 만성화되고 생존이 우선인 상태는 문명 외의 상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기업 전쟁이 만연한 보더랜드의 은하계처럼 겉보기에는 문명 사회로 보이는 상태도 문명이 옅어진 것일 수 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자 인생이 마지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수렵 채집의 세계에서 문명 국가의 세계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07 GG Vol. 22. 8. 10.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 Back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9 GG Vol. 26. 4. 10.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miHoYo 관련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운드트랙 콘서트, 싱가포르 버블티 체인 LiHoTEA·디스커버리 채널 동남아시아 지사·도미노 피자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잇따랐으며(Yan, 2023; Genshin.Global , 2022; Lojo, 2024), 2023년에는 연간 플래그십 이벤트 '호요 페스트(HoYoFest)'를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동시 개최해 《원신》을 포함한 자사 게임 라인업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miHoYo의 이 같은 확장세는 《원신》의 글로벌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2021년 3월, 출시 6개월도 채 안 되어 누적 플레이어 지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 플레이와 앱 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최단 기간 해당 기록을 세웠다(Chapple, 2021). 같은 해,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더 게임 어워즈(TGA)에서 최우수 모바일 게임상을 수상하며 중국 게임 최초라는 기록도 남겼다(Bankhurst, 2021). miHoYo는 급격히 팽창한 해외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2022년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회사 코그노스피어(Cognosphere)를 설립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신》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게임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 원천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Song, 2023; Li and Li, 2023). 소프트 파워란 한 나라의 문화, 정치적 가치관, 외교 정책을 통해 축적되어 타국의 인식과 관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리킨다(Nye, 2004). 소프트 파워는 국가 기관이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miHoYo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 형성에 기여한 비국가 행위자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 내에서 《원신》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중국 국내에서 《원신》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판 옌천(Fan Yanchen, 2024)은 이 게임의 해외 진출 성과를 분석한 글에서, "중국 게임이 '수출'에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원신》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중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라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중국의 이야기를 잘 전하라(讲好中国故事)'는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Liu, 2018). 송 탕(Song Tang, 2023)의 글에서는 중국 네티즌들이 해외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중국어로 번역해 국내에 퍼뜨리는 현상도 확인된다. 그들에게 이는 게임의 글로벌 흥행이 곧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게임의 높은 완성도는 중국이 '낙후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고, 오히려 '고도로 근대화된' 나라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라는 집단적 비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문화적 이미지 제고에 《원신》이 기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miHoYo는 2021년과 2022년 국가 문화수출 중점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Ministry of Commerce, 2021), 이후 miHoYo가 개발한 신작들도 베이징의 지지를 받았다(Cao, 2023).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담론은 서구권과 중국 내 관객의 반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Song, 2023)은 중국 팬들이 만든 영상을 분석하면서, 어느 크리에이터가 《원신》 덕분에 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서구의 시선을 특별히 의식하는 이 경향은 《원신》의 '중국성(Chineseness)'을 둘러싼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리와 리(Li and Li, 2023)는 《원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엇갈린 의견과 무관하게, 서구 소비자의 반응에 유독 무게를 두는 태도가 "외국인, 특히 선진국의 서구 소비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해외 반응을 향한 중국 네티즌의 시선은 정작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는 잘 향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반응이 주목받지 못하고 서구 반응에만 관심이 쏠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교육, 음식,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경우 대중문화 등 다른 중국 콘텐츠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경쟁으로 인해 서구권, 특히 코로나19 이후 반중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2년 기준 세계 3위 매출국인 미국에서(Chapple, 2022) 게임이 열광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은, 변화하는 서구의 대중(對中) 감정을 보여주는 징표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 특히 동남아시아의 반응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24 동남아시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50.5%로 미국(49.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전년도 조사에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Seah et al., 2024). 중국의 인기가 예상치 못하게 급상승하고 있는 만큼, 《원신》과 같은 중국 문화 콘텐츠가 동남아시아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플레이어 264명을 대상으로 게임에 대한 인상과 중국 문화 인식에 미친 영향을 설문 조사했다. 《원신》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 이 게임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2위였다(Bashir, 2022). 플레이어 수가 많은 이들 5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교 커뮤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핵심 비교 국가로 선정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화교 인구가 상당한 만큼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화교 비중이 낮아 인구 구성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동남아시아의 《원신》 수용 태도 2024년 2월 1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두 가지 이유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이 지역 플레이어들은 이미 주변의 화교 이웃 및 친구들을 통해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어, 게임이 추가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제한된다. 둘째, 플레이어들은 《원신》을 순수하게 '중국적인' 게임이 아닌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며, 이는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을 희석시킨다. 응답자 구성은 인도네시아 37%, 말레이시아 33%, 싱가포르 30%였다. 긍정적이되 제한적인 효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제한적이다(그림 1 참조). * 그림 1: 다음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대다수 응답자는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게임 플레이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자(35.5%)가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18.2%)보다 많았다. 이는 《원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인 소프트 파워 효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게임이 현지 관객에게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서술했다. 이 항목에서 중립 응답을 선택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집단은 게임을 문화 전달의 중요한 매개체로 보지 않는 플레이어들로, 문화적 가치를 위해 게임을 찾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 두 번째 집단은 이미 일상에서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화교 인구로,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상당 부분 무뎌진 경우다. 첫 번째 집단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게임이 담고 있는 문화적 함의는 부차적인 문제로, 중국에 대한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두 번째 집단은 화교 참가자이거나 중국인 친구를 둔 비화교 참가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이미 중국 문화에 익숙한 만큼, 《원신》이 자신의 인식에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중국 문화가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를 제한하는 가운데서도, 이 게임이 지역 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동의" 및 "강하게 동의" 응답자 중에서는 화교보다 비화교 응답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원신》이 비화교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그림 2.1, 2.2, 2.3 참조). * 그림 2.1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 문화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 그림 2.2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신》의 배경이 된 중국 실제 장소를 방문하고 싶다" * 그림 2.3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국이 만든 글로벌 게임 《원신》이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설문은 응답자들이 이 게임을 얼마나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는지도 살펴보았다(그림 3 참조). * 그림 3: 《원신》은 글로벌 게임이다 결과에 따르면 51.9%가 "강하게 동의", 38.6%가 "동의"했다. "비동의"와 "강하게 비동의"는 각각 0.16%에 그쳤으며, 8%는 "중립"을 선택했다. 압도적 공감대의 배경으로는 ①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 ②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된다는 점, ③세계 각지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꼽혔다. 이어서 응답자들에게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하는지 물었다(그림 4 참조). * 그림 4: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합니까? 응답자의 85%가 "그렇다"고 답했고, 15%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중 다수는 개발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게임의 중국적 기원을 분명히 인정했다. 일부는 게임 내에서 '중국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아니다"라고 답한 소수는 일본 애니메이션 화풍의 도입을 핵심 이유로 지목했는데, 이는 《원신》의 중국성을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논쟁을 반영한다. 두 질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을 중국적(로컬)인 동시에 글로벌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Goh, 2015)가 제시한 '세계화된 다문화주의(worlding multiculturalism)'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업(miHoYo 같은)이 낯설고 새로운 것(전통 중국 문화와 미감)에 로컬(동남아시아)하고 친숙한(일본 애니메이션 화풍) 요소를 접목해,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빚어내는 방식이다(Otmazgin and Ben-Ari, 2015). 개발진은 중국 문화의 미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로컬과 글로벌 양쪽에 두루 소구하는 게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도치 않게 '세계화된 다문화주의'의 역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한 셈이다. 이 지역 플레이어들이 《원신》을 중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론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원신》은 세계적 인기를 지닌 문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의 역량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이(Nye)가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에 걸맞은 정치적 파급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응답자들이 《원신》을 중국 게임인 동시에 글로벌 게임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동남아시아에서 궁극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게임의 글로벌한 성격이 그 안에 담긴 '중국성'을 압도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은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SOJOURN: Journal of Social Issues in Southeast Asia Vol.39, No. 3 (2024년 11월)에 게재된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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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 Back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18 GG Vol. 24. 6. 10. 들어가며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이제는 그 어떤 전투(또는 전쟁)든 원격으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금 내 눈앞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이제 전투는 우리 눈에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지고, 또 효율적이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이에 관한 것을 이론화한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다. 오늘 보게 될 데이비드 웨딩턴(David I. Waddington)의 논문은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및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을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이하 RTS 게임)을 살핀다. 교육철학 연구자인 웨딩턴은 비릴리오의 이론을 RTS 게임과 아울러 보고, 해당 게임이 가진 교육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 비릴리오(Virilio, 2004)는 <속도와 정치>에서 정치 및 전쟁을 ‘속도’에 연관 지어 바라보았다. 그는 해당 저작을 통해 속도는 곧 시간과 같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비릴리오의 사유는 고대부터 19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비릴리오 연구자인 존 아미티지(John Armitage)는 그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디 도시는 요새화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공간이자 토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요새화된 도시는 점차 사라졌고, 비릴리오는 이 같은 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비릴리오가 주요하게 보고자 한 것은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아미티지(Armitage, 2003)는 비릴리오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건 운반 시간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했다는 건 이전보다 더욱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정치와 전쟁을 속도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래서 비릴리오가 볼 때 전쟁은 속도의 문제이며, 속도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즉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속도에 관한 요소들이 나타나면서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비릴리오의 주장이다. 이런 비릴리오의 의견은 맑스와는 대조적이다. “맑스가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 개념”(Armitage, 2003, 10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의 연구자인 웨딩턴도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에게서 따온 ‘총동원’이라는 용어다. 총동원은 전시 상황/비전시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들을 함축한 말이다. 이것은 경찰의 군사화,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감시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병참’이다. 병참은 비전시 상황에도 사회의 에너지를 군대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참은 총동원이 보이는 형태들과 연결되며, 세 번째 요소인 ‘공간의 붕괴’로도 통한다. 과거에는 좋은 지형(공간)을 선점하고, 그 지형을 감시와 위협에 활용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 성격이 바뀌었다. 컴퓨터와 드론, 미사일, 핵무기가 공간의 의미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전쟁을 벌이던 공간은 붕괴하였으며, 유리함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사라짐’이다. 그동안 전쟁의 이미지는 탱크,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에서 탱크와 전투기는 이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탱크와 전투기의 사라짐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련의 단계가 존재한다. 지금은 위장하기 용이한 색과 무늬를 띠고 있으나, 이전의 군복은 눈에 띄는 밝은 색상이었다. 이런 군복은 점점 사라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럼,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위장된 군복을 입은 군인은 탱크와 전투기 속으로 사라졌다. 맨몸으로 치고받으며 행해지던 전투는 차체와 기체를 이용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이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된’ 전쟁은 최종적으로 사회 구조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일상 어디서든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비릴리오의 이론을 정리한 웨딩턴은 그러한 관점을 토대로 RTS 게임을 바라본다. 그는 총동원, 병참, 공간의 붕괴를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소 중 하나로 게임, 그중에서도 RTS 게임을 지목한다. 속도: 게임의 이름 이 연구는 RTS 게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웨딩턴은 FPS 게임과 MMORPG 게임 또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웨딩턴이 RTS 게임만을 본 건, 해당 게임이 총동원과 병참, 공간의 붕괴, 시간이 중요해진 전쟁을 제대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턴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예로 들어 RTS 게임의 작업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원 채집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자원이라면 광물과 가스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시간 전투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자원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유닛의 쓰임새를 구분할 줄 알고, 자원 채집 장소를 탐색하는 등 여러 관리가 필요하다. 이 자원채집은 ‘총동원’에 해당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동원이 떠오르는 작업이 있다면 ‘병참’에 걸맞은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건물 건설과 군사 유닛 생성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을 생성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건물을 건설해야만 한다. 건물은 곧 강력한 유닛 생성과 연관되며, 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승리를 위한 밑 작업인 건물 건설과 유닛 생성은 총동원 격인 자원채집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병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붕괴’로 대표되는 건 본거지를 방어하면서 적군을 제거하고, 적의 기지까지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나 강력한 군사 유닛은 혼자서도 밝혀지지 않은 맵을 탐험하고 적 기지를 감시하며, 원거리 급습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게 한다. 테란의 유닛인 고스트로 적 기지를 조사하고 핵탄두를 떨어트리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그 의미처럼 RTS 게임은 속도가 중요한 환경에서 펼쳐진다. 일꾼 유닛과 군사 유닛을 신속하게 배치하고 생산과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수록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속도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웨딩턴은 RTS 게임이 시간을 활용한 전쟁 게임이라고 본다. 학습과 RTS 게임: 긍정적인 관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웨딩턴은 교육학 연구자이다. 그래서인지 웨딩턴은 이번 장에서 비릴리오의 개념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연구를 인용하며 RTS 게임이 가지는 학습 효과를 살핀다. 먼저 웨딩턴이 인용한 지(Gee, 2003)의 글은 RTS 게임을 하면서 느낀 압박감을 서술하고 있다. 지는 RTS 게임에 미숙하여, 게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이런 지는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Rise of Nations)>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낸다. 이를테면 지는 게임 내 일시 정지 버튼에 관심을 보였다. 일시 정지 버튼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잠시 멈추게 하여, 플레이어가 화면 내 기능들을 살피고 전략을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해당 게임에는 조작 숙달을 돕는 각종 테스트가 존재했다. 지는 그를 통해 일종의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일시 정지와 테스트로 나타나는 시스템의 배려는 게이머가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대비시켜 준다. 웨딩턴이 지의 이야기를 끌어온 건 느린 속도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그러면 웨딩턴이 이 주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후에 인용된 블레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어(Blair, 2013)는 <스타크래프트 2(StarCraft 2)>를 비롯한 RTS 게임의 플레이어 주도적인 통제 환경이 실생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전문성을 곧장 다른 영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Thorndike & Woodsworth, 1901) 의견을 이 반박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웨딩턴은 그를 인지하면서도, 블레어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더 주목하였다.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RTS 게임의 가능성을 보려고 한 것이다. 학습 속도: RTS 게임과 경험의 아치 지와 블레어 두 사람은 RTS 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학습 효과를 서술하였다. 지의 경우에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그 안으로 이끌 수 있을지 말하고, 블레어는 게임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이에 웨딩턴은 그들의 주장에서 도출해 낸 생각을 밝힌다. 하나는 게임을 속도와 효율성을 단련하는 훈련으로 본 자신과 저들의 이야기가 일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서 학습되는 요소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안의 문제성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웨딩턴은 특히 후자를 유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 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활용 가능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Heidegger, 1977: Ellul, 1964: Dreyfus, 2002: Borgmann, 1984, 1992 재인용)을 의미한다. 이런 부분에서 웨딩턴이 전유하는 속도 개념은 RTS 게임을 비롯하여 여타 게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게임 경험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이 무미건조해지지는 않겠는가? 교육학자인 듀이(Dewey, 1938)는 “모든 경험은 이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오는 경험의 질을 수정”(12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든 경험은 아치’와 같다는 시를 인용하여, 경험에 차별을 둘 근거는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번 장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듀이의 글은 RTS 게임 경험과 학습에 대한 웨딩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주요 이의 제기 경험을 아치에 빗댄 듀이의 글은 사실 게임 내 폭력적인 경험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딩턴은 게임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가 단순 놀이로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카트(Sicart, 2009)의 주장은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주류 의견에 반대된다. 시카트는 플레이어가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을 따르므로 그러한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때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은 몬스터를 죽이고 골드를 얻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한다. 이런 시카트는 플레이어 개인의 가치와 판단 능력이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시카트의 주장은 <맨헌트(Manhunt)> 분석을 통해 심화한다. <맨헌트>는 사람을 쇠지레로 때려죽이거나 비닐봉지로 목 졸라 죽이는 등 실제 살인이 연상되는 잔인함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맨헌트>는 내용상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데, 시카트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이 오히려 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한다. 웨딩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런 반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시카트의 지적 자체는 옳다고 말한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벌이는 행동과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딩턴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RTS 게임에서 속도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가상의 폭력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상의 속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예를 들면 <맨헌트>에서 가상의 살인을 저질러도 현실의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도중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이는 이후에도 판단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 마디로 게임을 하면서 나타난 속도는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RTS 게이머는 플레이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도와 효율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Kow and Young, 2013: Yan, Huang, & Cheung, 2015 재인용)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만큼 속도는 RTS 게임 한 판 한 판을 책임지는 필수 요소다. 웨딩턴의 서술 흐름이 시카트에서 속도 개념으로 흐르게 된 것은 게임과 속도에 관련된 담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게 크다. 웨딩턴이 보는 RTS 게임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효율성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전쟁이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전쟁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속도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웨딩턴은 게임이 실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속도에 관한 것도 주시해 보기를 제언한다. 나가며 웨딩턴이 속도 개념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역설하고자 한 건 게임을 통해 효율적인 학습, 내지는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웨딩턴의 주장은 자칫 효율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웨딩턴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비릴리오의 속도 이론은 웨딩턴이 전개한 것과는 달리, 비판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물론 비릴리오가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에 기술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웨딩턴의 주장은 교육학 연구자라는 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지만, 비릴리오의 속도가 왜곡되게 이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이 남는다. 그래도 웨딩턴의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면, 효율성이 게임의 인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게임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이점이다. 즉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폭력성이나 중독에 관한 담론을 탈피할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도 함께 남는다. 게임은 오직 효율성을 입증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게임에서 효율성과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게임을 이용한 교육이 조명받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이는 앞으로의 게임과 우리의 인식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Armitage, J. (2003). 폴 비릴리오의 정치 이론-<속도와 정치>를 중심으로 (서문), <속도와 정치> (7-42쪽). 이재원 (역)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Blair, M. (2013). Real-time strategy video games; a new ‘drosophila’ for the cognitive sciences. [Online video]. Retrieved from https://www.sfu.ca/cognitive-science/defining-cognitive-scienceseries/dcs-archive/2013/spring/blair-rts-games-expertise.html (현재 이용 불가) Borgmann, A. (1984).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Free Press. Gee, J. P. (2003a). What video games have to teach us about learning and literacy. London: Palgrave-MacMillan. Gee, J. P. (2003b). Learning about learning from a video game: Rise of nations.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Sicart, M. (2009).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Massachusetts: MIT Press. Thorndike, E. L., & Woodsworth, R. S. (1901). 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 Psychological Review, 8(6), 247-261. Virilio, P. (1977). Vitesse et Politique. 이재원 (역) (2004). <속도와 정치>.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Yan, E. Q., Huang, J., & Cheung, G. K. (2015). Masters of control: Behavioral patterns of simultaneous unit group manipulation in StarCraft 2. Paper presented at the Proceedings of the ACM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Seoul. Tags: 비릴리오, 가속, 속도의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Back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30 GG Vol. 26. 6. 10. 올해 4월, 와 라는 두 게임이 게이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제목만 보아도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 게임들은 출시 전부터 리뷰어들과 게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게임을 해본 기자들은 개신교, 불교, 가톨릭 등 자신의 종교적 배경을 밝히며 이 게임의 의의와 한계를 이야기했다. 사실 종교적 소재가 게임에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종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IP이기에, 종교의 세계관과 인물, 서사는 게임으로 다루기 좋은 소재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도 기독교의 천사와 악마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차용했고, <신들의 전쟁(Fight of Gods)>처럼 본격적으로 신을 등장시킨 게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두 게임이 이슈가 된 것은 게임이 예수의 실제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이점 때문이다. 두 게임은 예수를 모티브 삼거나 하나의 IP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1] 에 나오는 그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을 게임 안에서 플레이로 재현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니, 그 전에 근본적으로 게임은 행위성(agency)을 중시하고, 성서는 전개와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 가능한가? 스스로를 종교연구자이자 게임연구자로 정체화하는 나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종교의 게임성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낙뎀을 받기 위해 높은 지형에서 점프하고 있는 예수 이 질문은 종교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중요하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온전한 신성을 가진 신으로 규정되었지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양성론(兩性論), 즉 온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라고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고증하고자 했다면, 예수는 낙뎀을 받아야 했다. 데미지를 수치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이 게임이 추구하는 자유도의 한계가 체감되었다는 점이다. 신성한 예수의 생애를 따라가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낙하 데미지는 불필요한 기능일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증명하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눌렀지만 예수는 그 흔한 펀치조차 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성서는 너무 유명한 IP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문자(성서)로도, 음성(설교/강론)으로도, 영화와 드라마로도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면 제작자는 성서를 굳이 게임으로 만들었을 때 뭔가 다른 경험을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게임성’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려면 너무 많은 학술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져야 하겠지만,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 지점에서 콘텐츠와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행위성을 기대했다. 한 점 한 획도 건드릴 수 없는 완전무오한 성서의 텍스트이지만, 게임으로 재현한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게임 모두 [2] 그러한 자유도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으로의 특수성을 발견한 부분은 자유도가 아닌 다른 영역이었다. 캐릭터의 자유도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의아하게도 는 오픈월드 필드를 구현하고 있었다. 다음 퀘스트를 하러 가는 것 외에는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이 구현되어 있지 않음에도 광활한 유대 광야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록 퀘스트 지역을 벗어나면 패널티가 주어진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게이머라면 이를 참을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나 역시 광야의 한계를 향해 달려나갔다. * 우측 상단에 보이는 믿음 수치 그렇게 계속 퀘스트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면, 성령이 만류하면서 ‘믿음’ 수치가 떨어진다. 맵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며 믿음이 다 떨어져도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자유도는 역시 없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믿음이라는 수치 자체이다. 이 게임에서 ‘믿음’은 변형(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의 기적), 치유, 퇴마, 부활, 신의 시선 [3] 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마나’와 같다. 그리고 이 마나통은 신자 수에 비례해서 올라간다. 물론, 실제로 게임 내에서 마나의 부족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기적 스킬은 퀘스트를 통해 해금되고, 퀘스트를 하면 신도 수가 자동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방황하여 길 잃은 양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클릭으로 기도를 하면 믿음 수치가 차오르기 때문에 예수가 믿음이 부족하여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믿음과 신자 수라는 이 성장 요소는 게임으로서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 생활을 깊게 해본 사람이라면, ‘신앙이 수치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경을 읽고 108배를 올려서 내가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특히, 신앙이 일종의 상징권력으로 작동하는 종교 환경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 개혁 이후 자신의 신앙을 자신이 확신하고 또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목사든 초신자든 누구나 불안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앙이 지금 온전하다고 확언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새벽 기도 참석은 10 경험치, 성서 통독은 1500 경험치를 얻고, 레벨 10을 달성하면 방언의 은사를, 20을 달성하면 방언 통역의 은사를, 100을 달성하면 신유의 은사를 획득하는 시스템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누구든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신앙의 성장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앙인이라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 아니더라도 어릴 적 한 번쯤 참석해 본 달란트 잔치는 이러한 인간적 욕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달란트 잔치가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 교회에 시스템적으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나 교회를 나오고 얼마나 열심히 참석했는가에 대해 즉각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달란트 잔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주일학교 교육에서 종교 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되어 왔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달란트를 물질적 보상과 연결짓는 것은 비유의 본래 의미를 역전시키는 셈일뿐더러,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앙을 성장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은 일반적이지만,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가시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로, Sola Gratia)’ [4] 와 충돌한다. 신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행실과 의에 따라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원칙에 부합하는 형태이다. 조지 리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측 가능성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맥도날드화의 논리가 교육, 의료, 종교, 여가 등 사회 전 영역으로 침투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5]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종교라는 추상적 활동 내에서 인간은 성장을 추구하고, 또 이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예수의 삶이 게임화되었을 때, 나에게 주는 새로운 경험은 이처럼 원래 존재하던 종교의 게임성을 확인시켜주는 점이었다. 더 좋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퀘스트를 깨고 사냥을 하듯이, 종교 안에는 원래부터 성장에 대한 게임적 욕망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는 것. 물론, 이 게임들이 이러한 점을 잘 캐치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게임의 종교성 애석하게도 이 게임들은 예수의 삶에 성장 시스템을 잘 녹여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보자. 흉악한 조작감과 AI로 만든 것 같은 퀄리티로 인해 는 평가가 좋지 않지만, 는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자유도나 성장 시스템 등 다방면으로 게임적 재미를 주지 못하고, 기적을 행할 때 반복되는 미니게임은 지루함을 넘어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지만, 스팀 후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영적인 체험이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남겨놓았다. 설령 게임성은 다소 부족할지언정, 1인칭 시점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기적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성서를 읽거나 교회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게임에서 어떠한 종교적 체험을 한 것일까? * WASD를 누르는 단순한 미니게임이 게임 내내 반복된다 분명 새로운 점은 있었다. 조기 교육으로 인해 성서의 내용이 매우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말로만 듣던 성서의 지명을 지도로 보고 발로 뛰어다니는 경험이나,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성서의 시대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경험이 존재했다. 가령,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성전 정화 사건은, 유월절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성전 뜰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들의 상을 뒤엎으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분노한 사건이다. 이를 성서로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는데, 실제로 게임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가보니 단순히 상 몇 개 엎었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이 와서 따질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거대한 성전의 내외부로 장사꾼들이 많았고 심지어 시장통답게 시끄러운 상황에서 적당한 소란으로는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게임의 퀘스트는 나에게 여러 개의 동물 우리와 새 우리를 부수게 시켰고, 무엇보다 동물 우리를 부쉈을 때 안에 있던 양과 염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퀘스트 달성에만 초점을 두고 이후 처리는 리소스를 줄이는 선택을 하는 반면, 이 게임은 확실한 시대적, 공간적 상황을 그려내려 했다. 그런데 이것이 게임이 줄 수 있는 종교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종교적 경험이라기보다 재현의 경험에 가깝다. 성서의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구현되면서 상상력의 공백이 채워지는 경험, 즉 읽고 듣던 것을 직접 보고 걷고 수행하는 경험이다. 초월이나 성스러움을 동반하는 종교적 경험과는 층위가 다르다. 아쉬운 점은 게임의 종교성이 가지는 포텐셜이 단순히 재현의 경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종교학계에서는 종교와 종교적인 것을 구분하여 사유한다. 종교(Religion)가 교리, 경전, 공동체 등 제도화된 신앙 체계를 가리킨다면,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은 특정 제도 종교에 귀속되지 않더라도 인간이 경험하는 초월, 성스러움,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지향 전반을 가리킨다. 콘서트장에서의 집단적 황홀감이나 스포츠 응원, 정치 팬덤, 명상 앱 등 특정 교단이나 신앙 고백과 무관하게 다양한 종교적인 경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이러한 ‘종교적인 것’이 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다.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에서 며칠 밤을 새 함께 레이드를 성공했을 때 함께 희열을 느낀다거나, <림월드>에서 삶과 죽음,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우연성, 집합 감정, 의미 추구 등 다양한 감각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품고 있다. 게다가 게임은 제도 종교 내에서도 다른 방식의 종교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경험을 제도나 교리가 아닌 개인의 내면적 경험으로 정의했다. 그는 진정한 종교적 경험은 성경 지식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깨달음을 동반하며, 순간적이고, 비의지적으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을 만든다면, 신학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해괴한 퇴마 시스템이 아니라, 로마 병사의 입장에서 예수에게 못을 박는다거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예수를 부인하게 만드는 선택지를 제공하여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렬한 종교적 경험과 마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배고픈 예수’를 기다리며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을 다시 살펴보자. 게임은 예수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종이나 성서의 사건들, 심지어 길에 심어져 있는 나무까지 고증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라는 CCM에도 나오는 성서의 감람나무는 번역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올리브 나무를 잘못 번역한 것인데, 게임 곳곳에서 올리브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자연환경을 구현하고자 고민한 것이다. 그러나 재현 자체가 목적이 되면 좋게 보아야 '교육용 게임'이 될 뿐이다. 아니, 교육용 게임이라는 것도 사실 핑계에 가깝다. 비기독교인 지인에게 이 게임의 타깃 대상이 누구일지 물었더니 "기독교인들이 할 게임"이라고 했고, 기독교인 지인은 "비기독교인을 위한 교육용 게임"이라고 했다. 결국 누구를 위한 재현인지 불분명한 셈이다. 재현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현에 머무는 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역사 교육 도구로 주목받은 것도 단순히 역사를 재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플레이어의 행위성과 선택이 개입하면서 텍스트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의미가 생산되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아쉬웠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게임과 종교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종교의 게임성, 게임의 종교성 모두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이다. 특히, 게임은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수행하는 자로 만든다. 그리고 종교는 언제나 수행을 요구해왔다. 기도하고, 절하고, 금식하고, 순례하는 것. 종교적 실천의 핵심은 언제나 몸으로 행하는 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과 종교는 처음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논의는 게임을 단순히 더 재밌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 속 예수에게는 허기짐 게이지도, 음식을 먹는 시스템도 없다. 그래서 사탄이 돌을 빵으로 바꾸라던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데미지를 받지 않기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도 시험이 아니다. 예수의 광야 시험이 가진 핵심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취약성이다. 그 고뇌가 시스템 안에 구현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는 결코 그것을 수행으로 경험할 수 없다. 가다머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가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현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다. 배고픈 예수, 낙하 데미지를 받는 예수, 유혹 앞에서 고뇌하는 예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게임 안에 구현될 때, 비로소 게임은 재현을 넘어 종교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1] 일각에서는 '성경'이 ‘성서’보다 더 권위 있는 표현이며 역사적으로도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성경'의 사용을 주장하지만, 이 글에서는 1968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참여한 '성서 공동번역위원회'의 전통을 따라 '성서'로 표기하고자 한다. [2] 상기한 내용은 에 관한 내용이지만, 수태고지부터 시작되는 는 더욱 자유도가 없었다. [3] 이 역시 신학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개념이지만, 넘어가자. [4] 물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나온 개신교 5대 강령 중 가장 핵심적 종교 원칙은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Sola Fide)’이다. 그럼에도 그 믿음이 주어지고 성장하게 되는 원동력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5] 조지 리처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두고 ‘합리성의 비합리성’이라고 비판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Back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18 GG Vol. 24. 6. 10. 원문: 《奥威尔》:“监视资本主义”时代的政治焦虑.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6494534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2020년 9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The Social Dilemma)>가 온라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방면으로 확산됐다. 주로 자본주의의 이윤 지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윤리적 감시와 도덕적 성찰이 부족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드러낸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일했던 여러 내부자들은 여러 유명 사이트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특정 주제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사람들이 플랫폼용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자본 지향에 대한 성찰은 사회적 반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이해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면서, 정보의 정확성과 이견의 포용성 등에 대한 관심은 ‘감시자본주의’에 휘말려 정치적 불안감을 형성한다. 이에 따라 사이버 세계에서의 권위적 경향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이 됐으며, 근래에는 반복적으로 논란거리로 부각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게임 개발사 오스모틱 스튜디오(Osmotic Studios)에 의해 <오웰: 당신의 눈을 떠라>라는 디스토피아 게임이 출시됐다. 2018년 2월, 속편 <오웰: 무지가 힘이다>가 발행됐다. ‘오웰’이라는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함으로써 디지털 생활에 잠재된 엄청난 위험을 보여주려는 두 게임의 시도는 게임 제작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특성화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관점을 제공한다. 특성화된 사회 통제 : 자유국가의 감시계획 이 게임의 내러티브는 ‘더 네이션(The Nation)’이라는 가상 국가에서 일어난다. 불안한 이웃나라 정세와 국내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오웰'이라는 극비 감시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정보당국은 해외 지원자들을 조사요원으로 모집해 정보부서 직원의 지도 아래 정부 내 인사들이 열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자국민 파일을 감시하고, 사람들의 전자기기를 해킹해 반사회적 인물이나 테러리스트의 혐의가 있는지 검사하도록 한다. 플레이어는 조사관으로서 오웰 시스템을 직접 조작해 각종 혹은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정보 채널을 빌려 이른바 ‘위험 인물'의 사생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유광장 폭발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당국은 폐쇄회로 영상을 보면서 경찰 습격으로 형사사건에 휘말린 젊은 여성이 폭발장치 설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한다. 수사관들은 곧 그녀의 가족 정보, 소셜미디어 계정을 수집하여 그녀가 폭발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들은 용의자를 특정할 근거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논쟁, 인터넷 친구나 커뮤니티의 정치적 경향이 기록되며, 이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및 언론 등의 의심스러운 증거를 통해 조사관은 특정 개인의 다양한 네트워크 흔적과 사적인 채팅 및 전화통화 녹음 내용까지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에피소드2가 시작되면 회색 영역을 넘나드는 수사 임무 뒤에 있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추진력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같은 시간대에 반정부 블로그 ‘피플스 보이스(People's Voice)’의 라반 바르트(Raban Vhart ) 편집장은 주류 언론을 비판해 두터운 팬을 얻고 있다. 그가 유력지 ‘내셔널 비홀더(The National Beholder)’를 거듭 비난하자 오웰의 수뇌부는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기로 하고 바르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 한다. 정부 관료는 앞 에피소드에서처럼 조사원의 유죄추정만 시사하는 게 아니라, 조사원에게 직접 위법 증거를 찾아내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한다. * 게임 속 ‘더네이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 사이트 ‘내셔널 비홀더’ 흔히 디스토피아 게임의 배경 묘사에서는 권력당국의 사회적 통제 수단을 경계가 모호하고 제지하기 어려운 정치폭력으로 묘사한다. 같은 장르의 게임, 예를 들어 2016년 발매된 <비홀더(Beholder)>의 경우에도 주인공은 도시 세입자를 감시하는 건물 관리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권력을 아래를 향해 무한정 뻗어나가는 공포정치의 풍경으로 연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과 비교했을 때 <오웰>은 국가권력의 구현에 대해 훨씬 더 복잡하며, 당대 미디어 권력의 작동 논리에 가깝다. 게임 속에서 수사관들은 ‘내셔널 비홀더’ 뉴스 업데이트를 통해 주류 언론의 홍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유력 언론은 국경 충돌과 테러 사건을 대량으로 보도하고,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더네이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게임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왜 ‘오웰’ 시스템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대중의 항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 교묘하게 해석한다. 1978년 출간된 <위기 관리: 노상강도, 국가, 법과 질서(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책에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비롯한 버밍엄학파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적 통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작은 강도 사건이 대규모의 도덕적·법적 공황 상태로 이어지면서 사회가 갑자기 질서를 잃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운동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우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법의 엄격한 집행과 사회거버넌스 정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홀의 입장에서 볼 때 범죄가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도, 사회질서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하는 것은 미디어[로 인한] 사태라는 점이다. 그것은 영국 정부 당국이 뉴스 보도에 대해 의도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가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복지국가가 쇠퇴하면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약해지면서 정치운동이 빈발했고, 자본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부족해져 뉴스 주도권에서 상업매체의 방해를 받았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긴박한 정세하 다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회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미디어 사태로 인한 사회적 공황은 일석이조의 훌륭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경찰과 법원 시스템, 주류 언론의 범죄 문제 집중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회가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의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폭력이 예상되는 소외계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정부의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묵인하게 됐고, 영국 정부 역시 공포에 떠밀려 모인 여론을 바탕으로 언론 통제권을 더 확장했다. 1991년 필립 슐레진저(Philip Schlesinger)가 집필한 에서도 저자는 테러로 분류되는 대형 사건들이 언론 통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건들에서 영국 정부 당국은 언론 보도의 정치적 경향과 내용을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당국이 테러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하고 이성적이고 의도적인 납치사건을 비논리적인 테러로 해석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 게임 속 ‘더네이션’의 사회 상황을 살펴본 결과, 게임 제작자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통제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웰>에서 ‘더네이션’이 위치한 지역은 불안정하다. 이웃나라 ‘파게스(Parges)’에서 오랜 내란이 이어지고 있어 ‘더네이션’은 군대를 파병해 지역 안보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더네이션’이 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갈등이 첨예하다. ‘파게스’로부터 대량의 난민이 유입되고, 퇴역 군인들이 취업난을 겪으며, 자국의 지식인들은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의 시스템은 주류 언론의 여론에 부응해 사회 통제라는 비장의 수단이 된다. 게임은 시스템 조사관의 관점에서 정보 부서, 반론 단체 및 일반 네티즌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들에 대한 관점과 감정을 반영하며, 이러한 정보는 또한 현대 사회의 위기에 대한 게임 제작자의 개인적 이해를 반영한다. 인터넷 생태계 묘사하기 : 복잡한 개인, 모호한 국가 1. 이견집단의 내재적 긴장감 <오웰>은 디스토피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지나치게 편평하게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특히 반체제 인사들의 경우에도 인물군상을 차별적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제작자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의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네이션’의 사회 위기와 권력 통제는 신분 간 격차가 큰 시민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성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회적 위기에 대처한다. 에피소드1에서 정부 정보당국은 ‘생각(The Thought)’이라는 엉성한 인터넷 동호회에 초점을 맞춰 폭발사건의 진범을 찾으려 한다. 수사관들이 이들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좌편향의 이 집단이 사회 환경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행동 이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골드펠스(Abraham Goldfels)는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청년들을 조직해 미디어 윤리에 대해 토론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정부가 오웰 시스템의 윤리계획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개방적 자세로 이에 참여했지만, 조사원으로서 도저히 임무를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퇴했다. ‘생각’의 동인이었던 해리슨 오도넬(Harrison O'Donnell)은 ‘생각’의 블로그에 여러 차례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주류 언론 ‘내셔널 비홀더’의 칼럼니스트로 변신했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펑크 신분을 감추려 애쓴다. 취업난과 정신질환, 폭력적 저항이 많은 편집증적 사고를 지닌 퇴역 군인 니나 마테르노바(Nina Maternova)는 끝까지 반발을 제기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민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유광장에서 폭탄을 터뜨린다. 에피소드2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모습은 더 어두워진다.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파게스’ 난민으로서 ‘파게스’의 국가적 재난과 개인적 불행은 ‘더네이션’에 의해 의도된 설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그의 음모론에 대한 집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게임 속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국가기관에 맞선 전쟁을 시작한다”는 글을 게시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서 있고,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반체제 인사들은 단순히 사회적 사명감에 의해 소환되는 단순한 저항자가 아니다. 정치이념의 성숙도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골드펠스는 오랫동안 사회비판적 활동을 해온 지식인으로서 당국의 정책에 대해 보다 인내하며 체제 내 개혁의 가능성을 믿었던 반면, 다른 반체제 인사들은 안정적인 정치적 입장가 부재했다. 해리슨 오도넬의 정치적 태도는 급진적인 듯하면서도, 좌절할 때는 현실에 쉽게 고개를 숙인다. 니나와 바르트의 과격 행동은 ‘더네이션’에 대한 위화감과 관련이 깊지만, 그 배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얕다. 이처럼 내부적 긴장감이 넘치는 인물군상을 부각해 보면, 정부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 논리를 게임 안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보 교류가 빈번한 인터넷 시대에 사회 상황에 대한 여러 집단들의 능동적 반응은 편리한 미디어 조건으로 인해 더 쉽게 발견되고, 관심받고 인식되며, 더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급진적인 반대 의견과 행동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외에도, 권력자들은 더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고려해야 할 ‘강제’를 받을 수 있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리스크 때문에 오웰식의 시스템이 게임에 등장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의 복잡성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적 압박의 저항자로만 보는 것은 정부와 민중 간 미묘한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국가기구에 대한 게임의 주장을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할 수 있다. 2. 전능한 정부의 이미지 안타깝게도 <오웰>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묘사만큼 국가기관에 대한 묘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게임 내 당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 통제 수단 간 관계는 효과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에피소드2에서 ‘피플스보이스’의 조직자 라반 바르트는 ‘더네이션’이 ‘파게스’ 정국에 개입해 현지 내란을 일으켰으리라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다. 나아가 그는 ‘더네이션’ 정부가 ‘피플스보이스’에 대한 보복으로 자유광장 폭발 사건을 일으켰고, 자기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 오랜 정신적 편집증 때문에 그는 ‘더네이션’ 정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처음에 수사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라반 바르트의 정부 고발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는 파게스에 있는 학교에서 우발적인 폭탄테러를 당했고, 그의 아내는 감시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폭발 사건에 연루된다. 하지만 수사가 진척될수록 게임 제작자들은 역설적으로 바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따라가도록 구현한다. 그것은 즉, 정부가 조직적으로 바르트를 도발하여 그가 편집장이란 직위를 통해 파게스 선거에 간접 개입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바르트가 받는 항간의 소문들은 모두 오웰 시스템이 주관하는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속 ‘더네이션’ 정부의 모습은 너무 전능한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게임은 정보의 홍수가 쏟아지는 인터넷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디스토피아 게임의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은 급변하는 여론 동향과 민중의 반응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에 대한 권력구조의 상실과 관련한 제작자들의 우려를 투영한 측면이 크다. 인터넷의 힘은 실재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겉보기에는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손실과 사회적 통제 강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고 있다. 기술과 권력의 불균형에 직면하여 제작자들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믿음이 없기에 <오웰> 역시 권력의 자리에 대해 인식하거나 이입하지 않는다. 또, 끊임없이 확장되는 권력의 미디어 권력,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주저하지 않는 미디어 거버넌스의 논리가 부분적으로는 온라인 여론의 복잡성과 실제 영향력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해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에피소드2는 국가기관의 형성에 대해 전체주의화되기 시작한다. 오웰 시스템은 더 이상 수사관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 당국의 리더가 직접 수사에 개입해 바르트의 ‘흑색선전’을 찾아내 ‘피플스보이스’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바르트 가족의 메신저 계정을 해킹해 이들을 체포할 수 있는 불법 증거를 찾도록 독려한다. * 에피소드2의 ‘인플루언서’ 메커니즘엔 댓글러 활용 여론공세로 비판여론 공격하기 기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력이 결코 목적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필립 슐레진저는 정치폭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Max Weber)와 기든스(Anthony Giddens)를 인용해 자유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적 성향은 당국이 정치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하고 민중들이 이를 묵인할 때 어떤 국민국가도 도덕적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점은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통해 사회 정세의 긴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당국에 의해 장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 수사관 모델: 윤리적 계획은 가능한가? <오웰> 플레이의 핵심인 수사관 모델은 이런 현실적 우려에 대한 활로를 모색해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즉 사회적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제 범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력의 침투를 피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방법이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 지도자는 ‘더네이션’ 시민들의 사생활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특정 사건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지만, 수사 대상자의 위협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결정적인 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비전이 개인에 대한 정치 폭력의 침해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을 행간에서 암시하기도 한다. <오웰>의 두 에피소드 모두 수사관들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취향,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정보당국에 제공하는데, 게임 내러티브의 전개는 복수의 엔딩으로 이어지도록 설정됐다. 반체제 인사들이 오웰의 감시 계획을 폭로했는지, 아니면 오웰 시스템이 사회적 위기를 통제했는지 여부는 수사관의 도덕적 선택에 크게 의존한다. 동시에 권력구조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가 수사관에게 내리는 대부분의 명령은 수사관이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하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할 의향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1에서 플레이어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지만 폭발사건에 연루된 ‘생각’의 멤버 카산드라와 니나는 체포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게임의 엔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생각’의 멤버들이 오웰 시스템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해 당국이 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시스템의 계획은 여전히 암암리에 진행된다. ‘더네이션’의 승인으로 수사관이 된 시민은 위험 인사로 기록 및 저장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헤게모니를 다투는 과정에서 갖는 관성 때문에 공식 통제를 받는 오웰 시스템이 중립적 성격의 매개체 기술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 <오웰>의 정치적 불안 결국 오웰의 서사는 스스로가 설정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게임은 ‘더네이션’ 당국의 상징에 대해 제작자들이 온라인 매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권력과 과학기술의 우위를 쥐고 있는 권력자를 상대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사회통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웰>에는 권위 있는 언론과 일반 대중, 반체제 인사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당국은 유력 매체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항상 사람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적시에 반체제 인사들을 격분시켜 그들이 예정된 계획에 복무하도록 한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이 정치적 힘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비관적 미래상에 더 공감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터넷 세계 권력구조 현상에서 취약계층의 저항은 항상 존재할 수 있지만, 강자가 항상 국민의 동의와 묵인을 얻는다면 권력은 계속 확장될 것이다. <오웰>의 게임 상징은 이런 관점의 ‘자기실현’이다. 한편으로 게임 속 네티즌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감정적 집단으로 축소되고, 반체제 인사들은 대중들로부터 공감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묘사된다. 다른 한편, 인터넷 디스토피아에 대한 제작자의 과도한 관심은 인터넷 밖 현실의 표현 공간을 밀어낸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을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는 ‘오합지졸’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냉정한 관점이 어쩌면 진짜 이견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온건한 견해가 일상에서는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주류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오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매우 긴밀하더라도, 우리는 인터넷 세계가 오늘날 정치 지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각종 뉴스와 인기검색어, 상업광고가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세계는 결국 사람들의 실생활, 실제의 사회적 감정이나 견고한 관점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오웰>에서 표현된 상징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터넷 세계에 ‘이용자’로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경우에는 정치적 다툼의 공간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헤드라인 뉴스와 감정적인 관점에 의해 빈번하게 끌올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념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견고한 관점을 형성해 주류와 경쟁할 가능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차 인터넷에 의존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인식을 구축하거나 소통하고, 심지어 생계를 유지한다. 인터넷 세계의 이질적인 권력구조는 긴장감 넘치는 국가-개인 관계를 대체하는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오웰>의 엔딩은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권력에 맞선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현실’과 조심스레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관적인 인터넷 풍경의 배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의 사회를 봐야 할 것이다. 통제 불능의 폭력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꿈꾸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논리를 보다 정교하게 이해해야 한다. Tags: 빅브라더, 파놉티콘, 전체주의, 감시, 혁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량청린 梁成林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 Back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09 GG Vol. 22. 12. 10. 독점? 그땐 그랬지…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록맨〉(1987)은 닌텐도 패미컴(ファミコン)의 독점 게임이었다. 클래식 록맨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 기준, 록맨은 패미컴으로 6편, 슈퍼 패미컴으로 1편(록맨 7, 1995),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1편이 출시됐다. 2년 터울을 두고 출시한 〈록맨 2〉(1988)와 〈록맨 3〉(1990)은 나란히 1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넘기며 '캡콤 플래티넘 타이틀'에 올랐다 .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록맨은 패미컴의 킬러 타이틀 중 하나였다. 클래식 록맨 시리즈가 PS에 이식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 게임을 해볼 방법은 패미컴을 구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가디언 히어로즈〉(1996)나 〈그란디아〉(1997)를 하려면 세가 새턴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게임들이 시간에 흘러 타 플랫폼에도 이식되거나 리메이크되면서 (특정 기기를 소유하지 않은) 소비자는 아쉬움을 덜고, 공급자는 (이미 재미를 본) 타이틀의 재발매를 통한 경제적 효과를 보는 일이 예사였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늘 그렇듯이' 답을 찾으려는 몇몇 긱(Geek)들은 에뮬(Emulator)이라는 괴물을 창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콘솔 없이 고전게임을 구동했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일본 주요 게임사들은 기간 한정 독점 발매 전략을 잘 쓰고 있다. 앞서 록맨 시리즈의 예를 든 캡콤이 대표적이다. 〈몬스터 헌터: 월드〉(2018)는 PS4, XBO 독점작으로 1월 발매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캡콤은 콘솔 독점 발매 7개월 만에 스팀(PC)에서 게임 판매를 시작했고, 그 해 스팀에서 1,0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스팀에서는 동시접속자가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출시 첫날 〈몬스터 헌터: 월드〉에 접속한 사람들은 24만 명을 넘겼다. 10년에서 7개월로 짧아진 독점 기간은 오늘날 게임 생태계의 시계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를, 그리고 좋은 게임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판매해야 할 물건이 소프트웨어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들은 계산법이 다르다. 오늘날에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2017)이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을 플레이하려면 필수적으로 닌텐도 스위치(NS)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닌텐도는 서드파티의 게임이 자사 생태계에 입점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킬러 타이틀이 다른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부분에는 극도로 보수적이다. 〈포켓몬스터 소드·실드〉(2019),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2019)처럼 닌텐도가 유통하는 게임들도 좀처럼 스위치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 오늘날 NS 바깥의 닌텐도 게임은 모바일게임 〈슈퍼 마리오 런〉(2016)이나 〈피크민 블룸〉(2021)처럼 소수 사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NS는 5년 만에 1억 대가 팔렸다. 오늘의 주인공 소니는 어떨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PS에도 강력한 독점작 파이프라인이 작동한다. 최근 PS 독점으로 나온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가 대표적이다. 전작 〈갓 오브 워〉(2018)의 PS4 독점이 풀린 것은 최초 발매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22년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2017)이 PC로 간 시점은 3년이 지난 2020년 8월이다. 리메이크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2022)에서도, 지난 10월 PC 버전으로 발매된 ‘언차티드’ 합본판에서도 소니가 여타 게임사보다는 긴 호흡의 기간 한정 독점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소니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베데스다가 포함된 제니맥스를 인수한 데 이어 액티비전블리자드(AB)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는 MS의 인수가 성사되면 〈스타필드〉(2023)는 물론 북미 지역 현세대 최고 인기 게임 ‘콜 오브 듀티’를 PS에서 서비스하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MS Xbox의 필 스펜서는 "콘솔 독점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MS는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소니의 권리를 계속 보장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독점 게임과 시장 독과점 사이 MS가 벌이고 있는 공격적인 인수전에 대해서는 이미 좋은 자료가 많이 나와 있다. 이 글에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자. 요약하자면, MS는 우리 돈으로 90조 원이 넘는 금액을 100%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AB를 사려 한다. 그러나 MS는 이미 게임 시장에 지배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규제 기관들은 이 딜을 검토해야만 한다. 현재 약 30여 개의 국가 규제당국이 MS의 AB 승인 건을 검토 중이다. 22년 9월, 영국 경쟁시장청(CMA)측은 시장 경쟁 하락의 이유로 인수를 일차 기각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11월 초 집중 조사를 개시했다. 미화 687억 달러가 오가는 역대급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선봉에는 소니가 있다. 지난 8월 브라질 경제보호행정위원회(CADE)에 "MS의 인수는 독점 행위", "'콜 오브 듀티'는 유저 커뮤니티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비슷한 예산으로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도 경쟁이 불가하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다. 또 지난 11월, 영국 CMA는 소니와 MS가 제출한 서한 일부를 공개했다. 이때 소니는 "인수가 완료되면 Xbox는 콜 오브 듀티, 헤일로, 기어즈 오브 워, 둠, 오버워치 등 베스트셀러 FPS를 모두 살 수 있는 상점이 되면서 경쟁의 압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우려를 표했다. MS는 "PS의 월 사용자는 Xbox의 두 배에 달한다. 약 6천만 명 정도 더 많다", "소니는 MS보다 많은 독점 게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콘솔 게이머가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하지 않는다"라며 CMA에 방어 논리를 전개했다. 명실상부 ‘콜 오브 듀티’는 서양, 특히 북미 시장에서 파괴적인 프랜차이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2022)는 지난 10월 28일 출시 이후 전 세계 매출 8억 달러(약 1조 1천 368억 원)를 벌었다. 액티비전은 보도자료를 내고 “영화 〈탑건: 매버릭〉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박스오피스 오프닝 성적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라고 자찬했다. 영화를 ‘콜 오브 듀티’ 흥행 비교 대상으로 사용하기는 액티비전이 자주 쓰는 방식인데, 지난 2019년에도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전체 매출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 전체보다 많고 영화 '스타워즈'의 2배나 된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MS의 독점작이었던 ‘헤일로’, ‘기어즈’, ‘포르자 호라이즌’은 상업적으로 소니에게 절실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이 거느리는 강력한 개발사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 보증 수표 ‘콜 오브 듀티’는 이야기가 다른 듯하다. 소니는 이 프랜차이즈를 계속해서 PS 생태계에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번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에서도 재차 확인되듯, '콜 오브 듀티'의 싱글플레이 분량은 점점 줄고 있다. 일각에서는 "멀티를 위한 튜토리얼로 전락했다"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게임의 멀티플레이 모드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콜 오브 듀티' 멀티플레이의 핵심 BM은 스킨인데, 앞으로 ‘콜 오브 듀티’가 PS에서 빠지면 소니는 인 게임 결제 수수료 30%를 잃게 된다. 더구나 MS는 토드 하워드의 신작 〈스타필드〉 출시 플랫폼에 PS를 제외했다.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MS의 AB 인수에 소니는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소니의 게임 분야 실적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지난 2분기 소니의 게임 분야 영업이익은 421억 엔(약 4,05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1% 감소했다. 소니의 실적을 이끈 쪽은 카메라, 영상 장비, 반도체 분야와 음악사업이었다. 그래서 소니는 목이 많이 마르다. 오랜 기간 독점 게임을 서비스하며 성과를 냈던 소니가 이제는 MS 독점 게임에 대응해야 하는 반대 입장에 서게 됐다.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MS는 소니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10년 계약 연장을 제안했다. 소니와 액티비전 사이에 맺어진 이전 계약은 2024년에 만료된다. MS에 급한 사안은 세계 규제기관의 승인이므로, 자신들이 시장 독과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낼 필요가 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가 서로에게 소장을 날리며 인앱결제 수수료를 놓고 법률 다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MS와 소니는 규제기관에 보내는 ‘입장문’과 투자로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니의 투자를 보면 독점 게임 철학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는 한때 MS 산하에 있던 ‘데스티니’ 시리즈의 번지를 인수했고, 지난 31일에는 〈엘든 링〉(2022)의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의 지분 14.09%를 확보했다. MS는 아직 배가 많이 고프다. 이미 윈도우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OS를 보유하고 있고, Xbox 기기를 판매 중이며, 월 구독 모델인 Xbox 게임패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 중이다. 게이머에게 확실히 그 존재를 각인시킨 게임패스는 독점 게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스타필드〉나 〈엘더 스크롤 6〉가 게임패스에 입점한다면, 자사 콘솔과 PC를 아우르는 독점 게임 모델이 출현하게 된다. MS는 게임패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일부 콘솔, DL 매출을 포기하고 게임패스에 게임을 포함할 수 있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월드〉 사례처럼 짧은 독점 기간을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는 더이상 독점 게임을 해보기 위해 콘솔을 구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국제적인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되거나, Xbox 하드웨어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면, MS는 게임패스에 힘을 더 실어줄 것이다. 콘솔 사용이 주는 고유한 재미가 변함이 없다면, MS의 ‘하드웨어 + 게임패스’ 투 트랙 전략으로 일어날 자기잠식효과도 치명적인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필 스펜서는 ‘클라우드 게임 등으로 콘솔 시장이 위축되지 않겠느냐’라는 물음에 "모바일과 태블릿 등 일부 주요 기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가정용 콘솔이 게임을 경험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최근 필 스펜서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꺼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콘솔 독점 게임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유저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사용 기기에 상관없이 친구들을 만나 플레이하도록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스타필드〉의 PS 출시가 배제되었기에 일각에서는 기업의 언행 불일치를 지적했다. 필자는 싱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기간 한정) 독점으로 가져가고, 멀티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여러 플랫폼에 열어놓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MS의 AB 인수가 성사되면, MS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게임 애널리스트 다니엘 아흐메드는 "게임패스가 이제 Xbox 생태계의 중심에 서면서 MS가 서비스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유저 유입으로 이어지는 독점 콘텐츠와 IP에 투자하는 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지지 않으려 소니는 열정적으로 파트너를 찾고 있다. 바로 3주 전 흥미로운 보도가 나왔다. 바로 소니가 한국의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고 〈호라이즌 제로 던〉 기반 MMORPG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 엔씨소프트는 "현재 개발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확인이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엔씨소프트는 컨퍼런스콜에서 "아주 훌륭한 글로벌 파트너와 저희가 협력하는 내용이 많이 진행됐다. 회사 이름 공개를 할 순 없으나 곧 사업 쪽에서 발표드릴 것"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아주 훌륭한 파트너'는 소니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콘솔 삼국지’에서 닌텐도는 독야청청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닌텐도의 독점 게임 정책은 전통적이면서 일관된 면이 있다. 게이머에게 닌텐도의 기조는 이미 ‘당연한 조건’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닌텐도의 독점 정책을 힐난하는 소비자는 드문 듯하다. 그렇게 〈포켓몬 스칼렛·바이올렛〉(2022)은 출시 3일 만에 천만 장을 팔았고, 〈스플래툰 3〉(2022)도 출시 사흘 만에 일본에서만 345만 장 판매됐다. 그러나 하드웨어 판매 실적이 부진한 탓에 닌텐도의 연 매출은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닌텐도의 소프트파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하다. 독점 게임에 새 지형도가 펼쳐져도 닌텐도 월드는 굳건할 것만 같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Back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22 GG Vol. 25. 2. 10. * <엘든 링>의 대표적 룬 노가다 장소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 . 즉,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라면 제도적 폭력이나 전쟁이 발생시키는 죽음은 결과적으로 생명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여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죽음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따라서 생명보다도 죽음 그 자체의 극대화가 목표라는 것이 시신정치의 전망이다 [2] . 시신경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명이 가치를 띠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곧 재화가 되는 체계에 주목한다. 즉, 살아있는 인간의 목숨보다 죽은 뒤 그 신체의 교환 가치가 더욱 높게 매겨지는 현실인 것이다. 게임 속에서 시신경제는 이미 가장 보편적인 체계 중 하나로 기용되고 있다. 적과의 전투를 주 플레이 내용으로 삼는 액션 게임에서 적의 죽음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화폐의 축적에도 계산된다. 우리는 흔히 ‘노가다 (farming)’라는 어휘로 불리는, 획득 화폐의 극대화를 위한 적 살해의 최적 효율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보통 적 살해 자체가 금전의 획득을 보장하지는 않고 시체의 인벤토리를 뒤져 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금품을 노획하거나 장비를 장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통해 부차적으로 경제 활동을 일삼긴 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프롬소프트웨어 (FromSoftware)의 게임들과 같은 경우엔 추가적 노획 행위 없이도 죽음 그 자체가 화폐의 획득을 보장한다. <소울> 시리즈에서는 ‘소울’의 형태로, <엘든 링>에서는 ‘룬’의 형태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는 현상금의 형태로 보상이 들어온다. 특히 소울 (soul)은 말 그대로 영혼 그 자체로, <소울> 시리즈에선 플레이어가 죽인 자의 영혼을 재화로 획득하며 사용한다. <엘든 링>의 룬은 <소울> 시리즈의 보상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조금 덜 직관적으로 되지만, 세계관 내 우주적 존재의 ‘축복’이라는 점에 따라 존재와 생명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살해 행위에서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아머드 코어>에선 보상 금액의 형태보다 그것이 사용되는 방향이 시신경제에 접촉해 있는데, 현상금은 전부 주인공 파일럿 신체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기체 AC (Armored Core)의 부품들을 구매하고 강화하는 데에 투자된다. 특히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에서 주인공은 몸을 오로지 AC 탑승 및 조종에만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조 받은 ‘강화인간’으로, 대신 그 외의 모든 신체 기능을 희생하는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가 익어버려’ 기체 바깥에선 제대로 된 생활이나 거동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 주인공이 살해하는 적들은 현재 사실상 그의 진정한 신체라고 말할 수 있는 AC의 활동 역량을 확장하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종국에는 재수술을 받아 AC 바깥에서도 그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연유에서 이름도 없는 주인공 강화인간 ‘C4-621’이 그런 극단적인 수술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결국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내에서 플레이어가 임하는 모든 전투와 파괴, 살해의 용도는 저당 잡힌 주인공의 신체를 되찾기 위해 채무 를 상환 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신체를 저당 잡는 튜토리얼 채무는 시신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죄와 벌’이라는 인간 법과 도덕 세계의 발생지이다. 니체는 독일어로 ‘죄 (Schuld)’가 ‘채무 (Schulden)’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은 언제나 등가물 을 가정하고 죄인을 고통 스럽게 해서라도 실제로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극히 경제적인 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기억술 의 원형으로 고문을 꼽는다 [3] .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 만이 기억에 남는다. (중략) 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피나 고문, 희생 없이 끝난 적은 없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 가장 혐오스러운 신체 훼손, 모든 종교 의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의식 형태 – 이 모든 것의 기원은 고통 속에 가장 강력한 기억의 보조 수단이 있음을 알아차린 저 본능에 있다. (중략)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말로 찢어발기거나 밟아 죽게 만드는 형벌, 범인을 기름이나 포도주로 삶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 벗기는 형벌, 가슴에서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보라.” [4] 그러므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규칙이라는 법을 전부 제대로 각인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튜토리얼에서 가장 효율적인 예시로 시신경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2007년도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선 주인공이 튜토리얼 이후 계급을 강등당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빼앗기는데, 어째선지 전투 및 이동 기술 등 각종 다양한 신체 능력마저 덩달아 잃어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2016년작 <용과 같이: 극>의 튜토리얼에선 가장 강한 ‘도지마의 용’ 전투 스타일을 모두 갖고 시작하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뒤엔 주인공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터라 해당 신체 기술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들에서 계급과 인연 등을 차차 되갚아가며 다시 찾아야만 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주인공은 분명 이 모든 신체 역량들의 원래 소유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 어느새 몸의 기능들을 저당 잡힌 채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캐릭터의 신체는 외적인 시각에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기능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튜토리얼에서 해당 게임 중 플레이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고 얼마만큼의 액션과 재미가 가능한지 미리 알려주려는 연출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인공의 신체를 ‘죽여’ 앞으로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는 채무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게임 내 규칙에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죽은 신체의 교환 가치 *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잘라 온 머리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깎는 다트리 소령 (Major Dhatri) 채무자는 자신이 되갚을 것이라는 약속에 신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이 한 약속의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보증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상환을 의무나 책임으로 자신의 양심에 새기기 위해서, 계약의 효력은 그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에게 그가 그 외에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그 밖에 그의 권한에 있는 것을, 예를 들면 자신의 육체나 혹은 자신의 자유, 또는 자신의 생명 역시 저당 잡히는 것이다. 더구나 특히 채권자는 채무자의 육체에 온갖 종류의 능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채 액수에 적합해 보이는 크기만큼 그의 육체에서 살로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곳곳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지 하나하나와 신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부분적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세세하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산정해왔다.” [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힐 때 자기 자신 외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즉, 니체의 채무법에서 채무자의 신체는 채무자 그 자신이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다. 따라서 저당 잡힌 몸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시체로서 죽은 물건이 된다. 시신경제에서 시체를 “돈벌이가 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건 죽음 그 자체이다 [6] . 즉, 단적으로 말해 시신경제는 장기매매라는 명백한 형태의 신체 부위 교환 형태를 굳이 띠지 않더라도 죽음 그 자체로 재화를 교환한다. 1755년 4월 24일 매사추세츠 영국령 식민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가죽 하나당 70파운드의 현상금을 달았다 [7] . <폴아웃 3> (2008)에선 바로 매사추세츠에서 대략 68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수도 황무지에서 손가락 하나당 5에서 10병뚜껑으로, 귀 하나당 10에서 15병뚜껑으로 보상받는다. <폴아웃: 뉴 베가스> (2010)에선 매사추세츠에서 4348킬로미터 떨어진 모하비 황무지에서 머리 하나당 250병뚜껑을 보상받는다. 특히 <폴아웃: 뉴 베가스>의 머리는 해당 부위가 파손되었을 시 가격이 50병뚜껑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죽음과 부위의 차원에 가격을 매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보존도마저 산정하는 것이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에서 채무의 상환량은 단순히 채무자가 입는 고통만이 아니라 채권자가 느끼는 쾌감까지 계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8] 게임 속 시신경제는 게임 내에서 금전적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을 때조차 신체의 죽음을 교환한다. 정확히는 오히려 게임 속 인물들의 신체에 아무런 부차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을 때만 작동하는 시신경제가 있다. 바로 죽음과 웃음의 교환이다. 가장 잔인한 고어 액션 게임에서마저 적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구가하는 살해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 쾌감 이상의 보상을 항상 제공한다. 최소한 얼마만큼 잔인하게 더 많은 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죽였는지를 추산하여 점수나 등급으로라도 보여주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일반적으로 게임이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체를 훼손시키도록 만드는 게임들이 바로 고어 코미디 게임들이다. 2008년 플래시 게임 <해피 휠스 (Happy Wheels)>부터 2019년 <피플 플레이그라운드 (People Playground)>, 2024년 <헬다이버즈 2>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래그돌 (Ragdoll) [9] 고어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적의 구분 없이 그 어떤 죽음에도 고집스러우리만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경직된 래그돌 신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원리처럼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 이라는 희극의 기본 명제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당 캐릭터들의 신체에서 죽음이 응당 가져야만 할 의미마저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10] . 심지어 적의 죽음에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다 할 페널티마저 크게 부여되지 않아,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는 행위마저 권장된다. 따라서 모든 신체는 지킬 이유도 없고 언제든지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양陽의 가치도 음陰의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날아다니는 사지들, 육편들, 내장들은 피아의 구분도 없고 재화로서도, 그리고 당연히 인격으로서도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생명으로서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이라는 성질이 래그돌 고어 게임들 속 죽음에서 발견되고 결국 죽음은 웃음이라는 쾌락과 교환되며 역시나 또 다시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행위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시신경제: 과잉과 음의 미학 * <크루얼티 스쿼드>의 플레이 화면 지금까지 다룬 시신경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신체를 기용하는 방식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등장했지만, 대주제이자 장르로서 이 개념에 투신하는 게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세계관 전반을 시신경제가 감싸고 있고, <사이버펑크 2077> (2022)의 세계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편재한다. 우선 장기매매가 주 생계 수단인 ‘스캐빈저 (Scavengers)’라는 집단이 등장하고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나이트 시티 (Night City)’ 사람들은 주인공과 NPC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그러했듯이 ‘일을 하기 위한 몸을 사기 위해 일을 한다.’ 나이트 시티에선 강화인간의 수준을 넘어 모두의 일상적 신체 자체가 유기체보다는 무기물의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거진 인형人形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잔인함, 잔인함을 보장하는 인격은 신체의 죽음에 유지된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조차 주제이자 내용으로서만 시신경제를 다룰 뿐 매체적 차원에서는 시신경제를 딱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의 정반대편에서 ‘최악’, ‘최흉’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말해도 어폐가 없을 <크루얼티 스쿼드> (2021)의 경우에는 게임의 모든 면이 전적으로 시신경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와서 망막에다가 직접 형광펜을 칠하고 썩은 찰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듯한 고채도 고대비 저-폴리곤 (Low-Polygon)의 끔찍한 비주얼과 누군가가 사용 중인 화장실을 그대로 공사하는 중 장비가 망가진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극악스러운 음향은 처음 마주했을 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진짜로 시청각적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넘어 두통마저 느껴진다. 메뉴 버튼의 기괴한 아이콘들은 정확히 뭐가 뭐를 가리키는지 눌러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나아가 듣도 보도 못한 HUD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말로 1인칭 화면의 테두리를 상시 뒤틀린 이미지가 덮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레임의 상부 가운데에는 게임의 제목인 ‘CRUELTY SQUAD’가 계속 떠 있다. HP는 바의 형태도 아니고 게이지의 형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방울-뭉치-덩어리의 형태로 정말 불필요하게 크게 화면에 부유한 채 꿈틀거리며 그 위엔 마찬가지로 생명 (LIFE)이란 글자가 굳이 쓰여 있다. 총알과 탄창 개수를 가리키는 숫자 사이에는 어째선지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무기를 바꾸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이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전한다. 즉, 이 게임은 그래픽, 음향, UI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해 실용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총을 장전할 때 R키와 같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위아래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기가 찰 지경이다. 문제는 이 흉물스럽고 황당한 디자인이 게임 속 극대화된 기업 자본주의 바이오펑크 디스토피아 사회의 끔찍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면면과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디스토피아는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당장 아무 인터넷 플랫폼이나 들어가 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주식 및 자기 계발 신봉자들처럼 NPC들이 ‘CEO 마음가짐 (CEO Mindset)’을 중언부언 읊어대고 펀코팝 (Funko Pop)의 패러디 천코팝 (Chunkopop)이 등장하는 등 작금의 현실이 지배받고 있는 체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으므로 게임 속 세계가 어느 지점까지 ‘있는 그대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세계에 살며 해리되고 분열된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 이러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또한 현실에서도 개인들의 세계 인식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이미 고루한 실존적 질문이다. 구태여 인식과 세계의 현실을 분리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애초에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주인공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 철저히 뒤틀려 있다. 그의 두개골에는 총이 달려 있고 등에서는 가속을 위한 액체가 분비되며 내장은 밧줄처럼 사용된다. 그의 몸에는 살 위에 더 많은 살이, 내장 위에 더 많은 내장이 부착되어 있으며, 임계점을 넘은 생명 공학 그 자체가 구토하고 있다. 주인공은 회사 청산을 주 업무로 맡는 보안 업체 ‘크루얼티 스쿼드’의 청부업자로 <아머드 코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연장선에서 번 돈으로 또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개조한 신체로 더 많은 돈을 번다. 죽음이 삶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죽음을 위해 매진된다. 게임을 켜면 짧게 지나가는 도입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삶에의 권위... (The Authority on life...)” 그리고 주인공의 수입원은 암살 의뢰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암살 대상 외에 아무런 처벌도 손해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죽일 수 있는 민간인들의 장기를 수확해 실시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게임 내 실시간 시장에선 주식과 장기가 나란히 거래되며 노골적으로 시신이 경제의 부富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말 그대로 시신경제에서 죽음이 최종적이며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용주를 죽이고 신마저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생의 요람 (Crade of Life)’에 도달해 그 자신이 신이 되는 결말에선 조르주 바타유 (George Bataille)의 『저주받은 몫』을 직접 인용하며 도대체 그래서 시신경제는 왜 죽음을 추구하며 작동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서 에너지의 작용들이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원칙상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 (부)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잉의 에너지는 어떤 체계 (예를 들어 어떤 유기체)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면, 또는 에너지의 과잉이 그 성장에 전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든 아니면 파국적인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그러한 과잉은 이득 없이 상실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11] 즉, <크루얼티 스쿼드>는 생의 과잉과 포화가 곧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음의 가치를 경제의 방향타로 잡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시신 경제에서 부富와 부腐는 하나이다. 모든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장을 테제로 삼고 있는 현실과 상승 지향의 영적 전파가 시신경제를 이 땅에 소환하는 의식의 제단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게임으로서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감으로써, 효율, 실용, 세련, 편안에 반대되는 음의 가치를 매체의 모든 자원을 다해 표현함으로써 시신경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1] Achille Mbembe. “Necropolitics.” Public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vol. 15, no. 1, pp. 11–12. [2] Ibid., pp. 39-40. [3]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서울: 책세상), 402~406쪽. [4] 위의 책, 400~401쪽. [5] 위의 책, 404쪽. [6] 장-피에르 보. 『도둑맞은 손』 (서울: 이음, 2019), 50쪽. [7] Massachusetts. Acts and Resolves, Public and Private, of the Province of the Massachusetts Bay (Boston: Wright & Potter, 1869-1920), vol. 15, p. 308. [8]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407쪽. [9] 래그돌은 본래 헝겊 인형이라는 뜻으로 게임 속 물리 엔진 상에서 관절에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채 허우적허우적 휘둘리는 신체 모델들을 일컫는다. [10] 앙리 베르그송. 『웃음』 (파주: 도슨트, 2022) 37쪽. [11] 조르주 바타유. 『저주받은 몫』 (파주: 문학동네, 2022), 29~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Back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08 GG Vol. 22. 10. 10.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실러캔스를 통해서 연구자들은 어류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양서류가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추론할 수 있었다. 나는 보드게임을 보고 있으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몇 천년 전 인류 중 하나가 땅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가지고 재밌게 노는 장면을 말이다. 놀이의 역사 속 보드게임 게임의 역사는 곧 보드게임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 흔히 말하는 비디오 게임은 전기가 발견되고도 한참 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 게임을 즐겨왔던 인류는 보드게임을 게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라는 책에서 문명은 놀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좀 더 급진적으로 그는 문명의 모든 것이 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이 있다. 하지만 ‘놀이 문화’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통일 신라 시대 유물로 알려진 안압지 14면체 주사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게임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종이가 발명되고 나서 나타난 카드의 존재는 게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덕분에 사람들은 정보를 이전보다 쉽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는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이점도 가졌다. 당나라에서는 종이 화폐, 즉 지폐에 해당하는 ‘지전(紙錢)’이 생겨났다. 이 때 지전을 활용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따라한 종이돈을 만들어서 게임에 썼다고 한다. 이게 흔히 아는 트럼프 카드의 시초이다. 이런 카드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에 전해지고, 이슬람에 전해진 제지 기술과 카드는 유럽까지 전해진다. 각 지역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던 카드 정보와 그림은 인쇄기술을 만나면서 점차 통일되어 간다. 인쇄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게임 관련 서적 발행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카드게임 룰이 정리되고,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지금 한국의 보드게임은 어떠할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산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게임백서’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다. 2021년에 발간된 게임백서에서는 보드게임 동향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 수집으로의 보드게임 취미 확대 2. 소그룹 플레이 양상 3. 디지털 플랫폼에서 플레이 4. 코로나 19 방역조치로 인한 보드게임 카페의 저성장 5. 물류비 및 제조 원가 상승 6. 온라인 유통 채널의 급상승 7.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광고, 홍보 플랫폼 강화 2020년 당시엔 코로나 여파로 인해 대면활동이 매우 힘들었다. 이런 상황은 게임 산업 전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보드게임 산업계에도 다르지 않았다. 보드게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플레이를 하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업계 대부분은 매출이 줄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2021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보드게임 시장 1위인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경우 전년 대비 32.7 %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의 매출도 전년대비 상승했다. 게임백서를 바탕으로 현재 보드게임 상황에 대해서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다. 1. IP 컬러배러이션 등으로 비(非)보드게이머의 유입을 통한 매출 증대 2020년에는 위쳐, 워크래프트 등 보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IP를 기반으로 한 보드게임이 출시되었다. 컨텐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굿즈 느낌으로 보드게임을 소유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이를 기반으로 보드게임에 관심 없던 ‘비보드게이머’가 보드게이머가 되기 시작했다. 2. 매니아 취미로만 인식되던 보드게임, 코로나 19로 인한 가족 중심 소비 증가 코로나 19로 인해 어린이집 또는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졌고 아이의 보육과 교육을 온전히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캐주얼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루미큐브(Rummikub)’ 등의 보드게임 판매가 늘었다. 이를 통해 보드게임에 대해 거의 모르던 사람들이 보드게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3. 코어 게이머의 증가와 함께 코어 게임 매출 증가 코로나 19 유행 이전부터 보드게임을 즐겼지만 난이도 있는 유로 게임까지는 즐기지 않은 게이머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유행 이후로 다양한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한 게임 홍보와 함께 보드게임 매니아(‘게임백서’에서는 이를 ‘코어 게이머’라 칭한다)를 위한 보드게임이 많이 출시되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많이 바이럴 되었다. 심지어 ‘글룸헤이븐(Gloomhaven)’은 두 번째 인쇄판이 나오기 전까지 리셀러들에 의해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추론을 종합해보면 보드게임 시장이 코로나 19가 유행한 상황에서도 매출이 커진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일단 IP 컬러배레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보드게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드게임을 접한 사람들 중 보드게임에 관심이 커지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한 여러 홍보채널을 통해 이전보다 더 다양하게 발매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커뮤니티를 통해 ‘꼭 플레이 해봐야 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는 품절되는 일이 잦은 매니아용 보드게임은 거의 대부분 구매까지 이어진다. 보드게이머들 중에는 보드게임을 모으는 것 자체가 게임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드게임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그 종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제조 원가와 물류비용 증가로 인해 보드게임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데도 구매를 주저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갑을 더 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데뷔하는 실험장 게임. 그리고 보드게임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실험장이 되곤 했다. 컴퓨터와 관계된 기술은 게임을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아님에도, 이를 가장 먼저 활용하는 곳은 높은 확률로 게임이고는 했다. NPC의 다양한 행동을 위해서 내부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고 메타버스라는 개념 역시도 게이머들에겐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다. 증강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여러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지만 대중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게임인 ‘포켓몬 GO’였다. 이처럼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가장 빨리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보드게임은 어떨까? 보드게임은 만질 수 있고,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양한 기술의 접목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한밤의 늑대인간’ 이라는 마피아 류 보드게임에서는 진행자 없이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락(Unlock)’ 이라는 게임 시리즈는 카드에 담겨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인데, 문제의 답과 판정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확인 할 수 있다. ‘광기의 저택’이라는 게임은 더 특이하다. 게임을 구매하면 이를 진행할 수 있는 피규어와 모듈 형 게임 판을 제공할 뿐이다. 스팀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스토리를 확인하고 실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 코로나 19 이후에 게임 홍보 역시도 온라인 채널을 활발히 활용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보드게임 콘 등 보통 신작 보드게임을 홍보하던 오프라인 채널을 운영하기 힘들어지면서 많은 유통사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소통 채널은 비단 유통사만 활용한 것은 아니다. 많은 보드게이머들이 보드라이프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기존에 보드게임에 친숙하지 않던 이들이 정보를 찾기 쉬워졌으며, 여러 공략방법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점차 증가하는 코어 유저 수와 그들이 바라보는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수고스러워진다. 많은 부분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비디오 게임과 달리 보드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결해야하는 부분이 많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하면 먼저 룰을 익혀 공부를 해야 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공간 자체도 필요하다. 혼자서 가능한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 보드게임 하나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보드게이머는 스스로 게임을 행사해야만 한다.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모두는 룰북에 있는 룰을 숙지하고,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 룰에 대한 판정은 플레이어 스스로가 감시하는 특징 역시 가진다. 이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다. 다른 놀이와 비교해도 그렇다. 비디오 게임과도 그렇기에 다르다. 비디오 게임에서는 정해진 룰을 벗어나게 되면 게임 자체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플레이어를 막아 세운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룰북이 모든 걸 다 정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는 참여한 플레이어들간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중 대부분은 그 게임을 펼칠 공간과 같이 플레이할 사람이 필요하다. 모바일을 통해서 언제든지 실행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현재의 비디오 게임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래서 보드게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코어 유저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이렇게 변화한 보드게이머는 점차 더 다양한 게임적 경험에 대해 욕망하게 된다. 특히 함께 게임을 할 플레이어가 필요한 보드게임 특성상 커뮤니티나 모임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러캔스는 과연 실러캔스인가? 지금 발견되는 실러캔스는 과연 예전에 절멸했다고 말하는 실러캔스인걸까? 아무리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말을 하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러캔스는 그때의 실러캔스가 아니다. 보드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의 역사와 보드게임 역사는 거의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드게임은 게임이 가지는 본래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장르이다. 한편으로는 가장 실험적인 게임일 수 있다. 킥스타터 등의 펀딩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소량제작이 원활해지고, 국내에도 더욱 다양한 작가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보드게임 시장의 크기가 커짐과는 별개로 다양한 재미를 가진 게임이 발표되고 많이 플레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롭고 재밌어질 보드게임을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참고문헌 & 자료 1. 호모루덴즈 (요한 하위징아 지음) 2. 게임의 역사와 이해 (김정태 지음, 도서출판 홍릉) 3. 카드 게임의 기원: 플레잉 카드(aka 트럼프 카드)의 역사 1편 - 카드 게임은 어디서 왔을까? (데굴데굴 studio 코리아보드게임즈 유튜브채널) 4.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5. 실러캔스 항목 (위키백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보드게임기획자)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 Back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14 GG Vol. 23. 10. 10.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So, how do players communicate in games? Not only how, but what do players communicate while playing? Games have encouraged socialisation through various communication channels,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game world, as a way to organise, chat and, more often than not - to troll. The breadth of research into communicating in games parallels understanding and unpacking the age-old phrase of “toxicity”. Both authors of this article have studied different gaming communities ( Overwatch, DOTA2, World of Warcraft, Lost Ark, and MtG Arena ), to look at how and what they communicate. Text Chat and Talking Back The best place to start is text chat, the longest-standing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channel for conversation and information in MMORPGs like World of Warcraft , where players can recruit, sell, chat, and more. Historically, it was the only way to communicate in games, until the introduction of voice chat, and since that point, it is regarded as a more restrictive way to chat in games. 1) Text chat evolved in response to this. Players generated and built their own game-specific lexicon and abbreviations to make using text chat efficient once more for instantaneous conversations. A simple example of this can be found in League of Legends (Riot Games, 2009). When players load into their team screens, they typically head to the text chat to claim a “lane”, typing “mid”, “bot”, or “top” for top, middle, and bottom lane. A quick way to allocate yourself to a particular lane. A similar example of text chat being used to convey a message efficiently is in MMORPGs like Lost Ark when a world boss appears (a large enemy that appears on a particular schedule and needs multiple players to take down). In this case, a player might type that the world boss is “up” and what channel to join to fight it. Text chat can scale, from the micro to the macro, from one-to-one up to the entire server’s worth of players. This reach comes with consequences. Hate speech can be easily spread via text chat. Whether it is racist, sexist, or homophobic slurs, aimed at no one or everyone, they are regularly spotted in text chat. This problem has become so pervasive that many game companies have automated filters to block out hateful terms. The issue arises further when players get creative in how they write these words. Devin Connors, a community manager at Psyonix, discussed Rocket League’s language ban and chat filter system at GDC 2018 (Image 1). 2) The team initially had a list of 20 bannable words, which has since grown exponentially to include misspelling variants and swears or slurs found in other languages. * Image 1 - Devin Connors presenting the Rocket League Language Ban system at GDC 2018 (author screenshot) Blizzard manages poor sportsmanship displayed in text chat in a more tongue-in-cheek approach. When players type “GG EZ” at the end of a match in Overwatch , insinuating that the game was no challenge to beat the oppositional team, the acronym is swiftly corrected into one of many silly phrases (e.g. “ It's past my bedtime. Please don't tell my mommy.” Or “Gee whiz! That was fun. Good playing!”) . This is done as a way to de-escalate a micro-moment of toxicity without having to bring in the threat of a ban for behaving in poor taste. However, even seeing GG EZ replaced with messages like these, players will be aware of what was initially written, regardless of the appropriate veneer that was placed over it. Obviously, this type of behaviour is low on the threshold of toxicity compared to what the Rocket League team has to filter out, but is equally present in Overwatch matches. This all solely focuses on the use of just text in text chat, ignoring the considerable use of emoticons, emojis, and stickers that we use to communicate in our day-to-day texting, let alone during gameplay. Emotes and emoticons have been a staple of more complex communication systems in games, but they have become common as the sole method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in popular online card games like Legends of Runeterra (Riot Games, 2020), Magic: The Gathering Arena (Wizards of the Coast, 2018), and Marvel Snap (Nuverse, 2022). While Magic has text-based emotes, players are more likely to use any of the numerous animated stickers available in each of these games (Image 2). * Image 2 - A Collection of Emotes from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While it might first appear that limiting communication to a reasonably small set of phrases and animated images would limit player toxicity, this is not the case. Players are actually able to do quite a lot with very little - often going beyond what the intended function of these emotes might be. In Magic for example, one way to greet an opposing player at the start of a match is with an emote that depicts one of the game’s characters, Gisa, waving at you using the hand of a zombie (Image 3). While this purpose is a quirkier, possibly more fun alternative to the standard ‘hello’ emote, this emote can have other, more sinister uses. * Image 3 - Gisa Waves in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Imagine a common scenario in a game of Magic : two players have been filling the board with creatures over several minutes, incrementally trying to beat the other. The game is a close one, with each player seeking to get just enough of an advantage with each new card played on the field. But then one of the players drops what is known as a ‘board wipe’ - a card that removes a massive number of cards from the battlefield that a player has spent an entire game establishing. And then the player who destroyed the board uses the Gisa emote, not to say hello, but to say “Goodbye to all your cards, and goodbye to all your fun.” This is but one way that players use these emotes. The important thing to take away from this example is that players develop their own use cases and interpretations of these emotes over time, and not all of them are positive and friendly, even if designers intend them to be. Some players will find a way to use them to troll players and these uses can pick up steam throughout a game community. It isn’t just the players acting alone here, however. One final point on these emotes is that they are often riffs on popular memes. For example, one Magic emote depicts the character Saheeli eating from a bowl of popcorn, inspired by the gif of Michael Jackson eating popcorn in a movie theater and other related images of popcorn ingestion (Image 4). * Image 4 - Saheeli the Emote and Michael Jackson Enjoying Popcorn. 3) The memes these emotes are inspired from often have the purpose of poking fun at something - particular rules and use cases that are often meant to turn a situation into a joke. The popcorn-eating Michael Jackson is often used when reading a lot of gossip in a forum thread, or when observing a social disaster or drama, for example. Emotes based on these meme formats come preloaded with meaning, not often positive, with only a player’s opponent as the possible audience for the message that the emote sends when it is used. While basing emotes off of memes creates a shared language between players that makes them more easily readable as artifa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ey also skew towards antagonism because of the way memes make a joke out of most situations. As often as the silliness of these emotes might defuse hostile or negative feelings during play, they are just as likely to produce them because of how they are used and their established associations. This is not an argument for or against emotes one way or another, but is instead meant to highlight that the culture of communication that games are nested within affects even the most limited forms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used in online games. Pinging to Point and Pout Sometimes, words and images just don’t cut it for conveying messages quickly during gameplay. Typically found in MOBAs like League of Legends or DOTA 2, “pinging” is where a player clicks on a map area, item, or character, and it lights up to notify other players. These pings can be signified with an exclamation point or question mark to draw the eye to the area. 4) These quick signifiers can be used for strategising, planning a route as a team, pointing out important items for teammates to collect, or as a warning system to avoid certain areas. 5) . An anecdotal example of the layers involved in pinging comes from one author’s experience playing DOTA 2 for the first time not with the AI but real fellow players. While playing one of their first matches, they noticed that another player was pinging the area around them. Only because someone familiar with the game was supervising was it made evident that this other player was trying to get their attention, flagging that they were making an incorrect choice, or they were in the wrong spot for that moment in play. More can be said about the lack of a tutorial preparing a new player for all the nuanced ways that players might communicate with you during a match, but that is down to community-constructed modes of communication, which is hard to cover within a game’s onboarding tutorial. Aggressive pinging, where a player will spam click the ping button, is often a signifier of frustration 6) for whatever another player is doing. It can also be a way to distract a player if a fellow teammate has opted to throw away the game and bother their teammates instead. A New Player in Voice Chat Moderation Voice chat is still a staple feature in many online games from first-person shooters, to multiplayer survival games, to large-scale group play in numerous MMORPGs. Voice communication affords players more opportunities for complex sequences of expression, which are often necessary for fast-paced online play. The catch is that the use of voice often produces in-game environments where players are able to say whatever they want to teammates and random players, which includes a substantial amount of toxicity 7) . Voice chat brought a more real-time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technological revolution in how players could coordinate and socialise. However, in doing so, voice chat removed a level of anonymity to players, exposing their identity (race, gender, sexuality) through what Kishonna Gray calls “linguistic profiling” 8) . Players are very quickly reminded of these intersections of their identities through hateful terms and treatment from other players in response to using their voice in voice chat. Compared to moderating text chat voice has been a difficult facet of online play to manage 9) , no doubt due to the amount of voice chat happening in games and the speed at which it occurs. It is no secret that players have requested some kind of integrated voice chat moderation, with some doing so since 2017 10) . Even though the moderating voice is a lofty task, one company, Modulate, is at the forefront of this endeavor. Modulate are the creators of ToxMod, a voice moderation technology designed to help game companies identify, triage, and proactively manage instances of toxicity that happen in the voice communications of their games. This past August, Modulate partnered with Activision to implement ToxMod in the upcoming Call of Duty: Modern Warfare III (Activision, 2023). In a conversation with Modulate COO Terry Chen, he expressed the importance of keeping in-game communication healthy: “Our overall intent is not only to protect people that are suffering from this marginalization, but also to make gaming and its spaces more fun. I think fun is at the forefront of what we do. [...] Voice chat, which has become more critically important in esports, especially for games like Valorant, where you need [voice chat] for a tactical advantage against the enemy opponents, there’s just this level of toxicity that makes it impossible to enjoy the game that you’re trying to love, and also improve.” To accomplish these goals, ToxMod uses machine learning technology to detect and rate toxicity, but ToxMod does not ban and punish users on its own. Instead, Terry views ToxMod as “a collaborator, kind of an additional player in the game that can listen and help out if necessary.” This is because the toxicity that ToxMod detects is flagged for moderators who have the job of making the final decision on what actions need to be taken against players, so ToxMod operates in partnership with developers and moderators to address the issue of toxic communication. To close this article, I asked Terry, as someone who is on the front lines of addressing toxicity, what more could be done by companies and players alike to work towards a solution? We’ve seen how toxicity is common across each of the in-game communication mechanisms we’ve explored, so what are we to do that isn’t being done? Terry offered two important solutions: 1) Listening to players from across a game’s player base rather than focusing on the needs of the most skilled or highest profile players as there is valuable feedback from more than the pros. In fact, most players are not playing at the highest skill levels and can provide a lot of valuable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throughout the most densely populated segment or rank of a game. 2) To think about detecting and rewarding positivity. According to Terry, “The truest action would be implementing tools, whether it’s Modulate ToxMod, whether it’s something developed internally to detect bad behavior, but also reward positive behavior.” As players, developers, and researchers we find ourselves so confronted with the negative aspe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at we take our eyes off the players who are setting good examples - and more work should go into refining and implementing systems that encourage more positive interaction - not just mechanically, but in the ways w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n-game. On the other side of the avatar, we are real people after all. As we can see, there are two important facets to consider when discussing communication and social systems in games. The first is how to moderate them. It is a trepidatious task that requires people power, tech power, and clear guidelines to enact any form of governance in a social space. When introducing a competitive angle to gameplay (whether as an aspiring pro player or as a player who simply enjoys competing in the game space) - the stakes go up, and so there is more on the line for players to care about. In the same space, we have players who are just there for the vibes. To play with their friends, regardless of the outcome (though they would like to win). The second facet is “trolling” and toxicity via all these different modes of communication. Players will find ways to get creative with any system, to subvert it to their own wishes and enact toxicity however they see fit. Ultimately though, it goes back to the very start of this article; that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t is not the sole aim of most players to go online and be toxic, but rather to join into the collective and have a good time with others who enjoy the same play space. Turning to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games, voice chat has more recently become somewhat fragmented with the success of Discord. Many players have shifted their voice communication from the dedicated game servers to their own personal, curated community Discord servers, where they hang out as a collective with friends instead of strangers in a game lobby. Though some game-specific Discord servers exist, they are less for communicating during play and more for marketing and building a community around the game. Virtual reality could yet revolutionise how players embody communication during play, though right now they are awkward half-bodied avatars with nausea-inducing equipment for some. There is potential on the horizon, and yet one thing is for certain -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to subvert social spaces. *For more on modulate you can visit their website, https://www.modulate.ai/ . 1) 2) Wadley, G., Carter, M., & Gibbs, M. (2015). Voice in Virtual Worlds: The Design, Use, and Influence of Voice Chat in Online Play. Human–Computer Interaction, 30(3–4), 336–365. https://doi.org/10.1080/07370024.2014.987346 3) Saheeli image from draftsim.com. https://draftsim.com/mtg-arena-emotes/ (accessed September 24th, 2023). Michael Jackson image from knowyourmeme.com. https://knowyourmeme.com/memes/popcorn-gifs . 4) Leavitt, Alex, Brian C. Keegan, and Joshua Clark. ‘Ping to Win? Non-Verbal Communication and Team Performance in Competitive Online Multiplayer Games’. In Proceedings of the 2016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4337–50. CHI ’16.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6. https://doi.org/10.1145/2858036.2858132 5) Wuertz, Jason, Scott Bateman, and Anthony Tang. ‘Why Players Use Pings and Annotations in Dota 2’. In Proceedings of the 2017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1978–2018. CHI ’17.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7. https://doi.org/10.1145/3025453.3025967 . 6) ibid. 7) Reid, Elizabeth, Regan L. Mandryk, Nicole A. Beres, Madison Klarkowski, and Julian Frommel. “‘Bad Vibrations’: Sensing Toxicity From In-Game Audio Features.” IEEE Transactions on Games 14, no 4 (2022): 558-568. 8) Gray, K. L. (2014). Chapter 3 - Deviant Acts: Racism and Sexism in Virtual Gaming Communities. In K. L. Gray (Ed.), Race, Gender, and Deviance in Xbox Live (pp. 35–46). Anderson Publishing, Ltd. https://doi.org/10.1016/B978-0-323-29649-6.00003-0 9) Märtens, Marcus, Siqi Shen, Alexandru Iosup and Fernando Kuipers. “Toxicity Detection in Multiplayer Online Games.” Proceedings of the 2015 International Workshop on Network and System Support for Games (NetGames). 03-04 December, 2015, Zagreb, Croatia, 1-6. 10) Blamey, Courtney. ‘One Tricks, Hero Picks, and Player Politics: Highlighting the Casual-Competitive Divide in the Overwatch Forums’. In Modes of Esports Engagement in Overwatch, edited by Maria Ruotsalainen, Maria Törhönen, and Veli-Matti Karhulahti, 31–47.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22. https://doi.org/10.1007/978-3-030-82767-0_3 . Tags: ping, voicechat, MTG, emote, toxicit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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