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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5 GG Vol. 25. 9. 22.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당선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 류호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 강현 당선작은 오는 10월 10일 오픈할 게임제너레이션 26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의 심사평도 26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수상자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Back Beyond the K-Game 09 GG Vol. 22. 12. 10. K-게임은 어찌하여 호K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접두사 ‘K-’가 붙는 단어들이 있다. K-웹툰, K-드라마, K-POP, K-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닮은 점이 있다. 컨텐츠라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안으로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해외로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K로 시작하는 컨텐츠임에도 저기에 끼지 못한 서자가 있다. 이름하여 K-게임이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항변할 것이다. K-게임은 컨텐츠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일꾼이란 주장이다. 업계종사자 중에서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은 다른 K-게임과 다르다는 이유다. 맞다. 인정한다. 컨텐츠 수출액의 70%를 점하는 효자이고, 국내와 해외에서 사랑받는 K-게임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출역군의 일등공신도 BM(비즈니스 모델)이고, 대중에게 배척받는 이유도 BM이다. 예상하듯이, 그 BM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여러 자리에서 주장해 왔기에 ‘확무새’라고 지겹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주 독자층이 주로 ‘게임高관여층’일 것이기에 또 한번 쓸 수 밖에 없다. 태풍의 눈에 있으면 태풍의 세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랜덤박스와 P2W의 결합: 게임사엔 최고의 궁합, 이용자는 최악의 조합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매직 더 개더링 카드팩을 살 수 있었다. 그 날은 매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카드팩을 뜯을 때 나던 그 특유의 카드 냄새, 드물게 나오는 레어카드의 기쁨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 'Mirri, Cat Warrior'. '매직 더 개더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템페스트 블록’중 엑소더스에 등장한 레어 카드. 당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녹색 생물이다. 이 카드를 뽑고선 15년 인생 중 가장 큰 짜릿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Pay to Win’(이하 P2W) 과 만났을 때다. P2W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조건, 즉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및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이용자는 P2W을 통해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울러 P2W 이 게임 밸런스를 과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살짝만 곁들여지면 게임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대면 응급실행이다. 마찬가지로 P2W이 과하면 게임을 해치는 독이 된다. 대다수의 P2W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통해서만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더 좋은 P2W 아이템일수록 더 낮은 획득 확률이고, 자연스럽게 사행심도 함께 부추겨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어렵사리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할 수 없다. P2W 아이템을 계속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어렵게 획득한 P2W 아이템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확’풀어 버린다. 그리고선 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P2W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내놓는다. 즉, 인위적으로 아이템 성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주로 대규모 패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주기가 짧을수록 잦은 과금을 해야 한다. 지상 낙원을 꿈꿨던 랩처, 그러나 그 끝은 파국만이 있었다 “회사의 제1원칙은 수익 창출이다. 따라서 민간의 영리활동에 정부나 국회가 과하게 개입해선 안된다.” 업계의 논리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유와 방종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시리즈가 있다. 심오한 세계관과 뛰어난 연출로 평론가, 이용자 모두에게 극찬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바이오쇼크 1'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바이오쇼크1'은 수중도시 랩처가 배경 무대다. 이 곳은 앤드류 라이언이라는 자유지상주의자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랩처엔 특징이 있다. 그 어떤 규제도, 간섭도, 책임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도 100%의 자유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언뜻 들으면 낙원 같기도 하다. * 초기 랩처의 유토피아 모습. 그러나 랩처의 끝은 파멸이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과 도덕마저 부재했다.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환경은 즐비했지만, 제동장치는 없었다. 결국 랩처의 주민들은 광기에 빠져 공멸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 방종으로 파멸한 랩처. 우리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BM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개선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업계에 자율규제를 맡겼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했다. 전 세계 초유의 게임이용자 집단 연쇄시위 사태, 이를 통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회 문체위 모든 의원실에 입장문을 전달하는 협회의 모습에서 랩처의 그림자가 겹쳐보였다. 마치 랩처처럼,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규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조치마저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타 의원실을 통해 청부 입법하기도 했다.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런가하면 민간 자율기구에서 사실을 왜곡하여 의원실을 폄훼하기도 했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바이오쇼크 1' 이야기다. 스플라이서라는 존재들이 있다. 본래 평범했으나, 마약성 유전자 변형제인 '아담'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괴물화된 랩처의 주민이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슈에 대해 여론이 돌아섰다. 질병코드 문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2019년 당시와 지금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3년 전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업계편에 서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전에서도 등재 찬성측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보고 게이머들의 마음이 식어버렸다. 한번 차가워진 여론은 되돌리기 어렵다.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에게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게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고 나서는 게임 이용자들도 여럿 보이는가 하면,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실제로 최근 질병코드 등재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업보’라며 조소어린 관망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게임업계의 대응은 스플라이서와 쌍둥이 꼴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원코인 남은 심정으로.. 지난 2년 동안 K-게임환경은 지각변동이 있었다. 연쇄 트럭시위, 마차 시위, 집단 소송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에 민원 제기까지,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게임업계는 이용자의 집단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도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식으면 K-게임의 엔딩은 ‘배드 루트’뿐일 것이다.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반지하게임즈 스토리 작가) 강신혜 게임에 관심이 많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동시에 반지하게임즈의 게임 스토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 Back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18 GG Vol. 24. 6. 10.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그리고 물류는 많은 경우 효율을 목표한다. 역시나 인식하진 않았겠지만, 이미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 물류 효율을 높이고자 노력한 경험이 있다. 예컨대 늦잠으로 지각 위기에 처한 어느 날 지하철, 버스, 택시, 전동킥보드, 도보 등 각종 이동수단을 조합하여 회사까지 이동하는 최단경로, 최단시간을 구해본 기억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물류가 추구하는 ‘최적화’다. 혼자만 이동하는 것은 그나마 쉬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직장인들의 주거지부터 회사까지 특정 시간의 출근 이동을 ‘최단 시간’을 목표로 최적화하고자 한다면 어떨까. 여기에 5000원 이하의 금액을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있다면 어떨까. 갑작스러운 폭우와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겹쳐버렸다면 어떨까. 최단 시간을 산출하기 위해 고려할 변수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인의 경험으로 최적화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다. 흔히 우리는 화물을 나르는 택배기사, 창고 노동자의 집품과 포장 업무와 같이 눈에 보이는 단순 반복 노동만을 ‘물류’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각 기업 물류 관리자들이 하는 일은 노동집약적인 물적 이동(물론 이들도 급하면 단순 반복 노동 현장에 투입된다.)이 아니다. 각자의 제약조건 속에서 비용 절감이나 일정 % 이상의 당일 출고율과 같은 서비스 지표 달성을 목표로 모든 물류를 최적화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물류’는 가상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나 모든 이동의 맥락에 ‘물류’가 녹아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상 세계인 게임 속에서도 물류는 존재한다. 그리고 게임 속 물류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효율을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마비노기>에서 이동수단인 ‘말’을 구매하여 탑승한다면, 말이 없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필드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와 동승자의 시간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그 자체로 과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말은 멋있으니까. 다른 예로 <디아블로>의 인벤토리와 창고는 그 자체로 최적화의 도구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려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니 말이다. 공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치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을 남기는 선택의 연속을 강요받는데, 현실 세계의 물류에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속 물류가 추구하는 효율화의 방향은 현실 속 물류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꽤나 다르다. 그 이유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현실과 연동되지 않은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물류는 실체의 이동을 다루지만, 게임의 물류는 가상의 데이터 패킷의 이동을 다룬다. 따라서 게임 속에서 보관하거나 이동시킨 재화는 게임 안에 남아있을 뿐 현실의 가치로 연결되지 못한다. (메타버스 시대(?)가 왔다지만, 아직 가상의 물류를 완연하게 현실의 움직임으로 구현한 사례는 많지 않다. 산업용 디지털 트윈이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할 뿐.)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게임 속 물류는 현실 속 물류가 추구하는 ‘비용 절감’이라던가 ‘생산성 향상’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어렵다. 대신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인 ‘재미’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 속 물류 또한 플레이어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은 예외를 허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본다. 데스 스트랜딩과 유로트럭 : 재미가 ‘목적’인 경우 코지마 히데오의 <데스 스트랜딩>은 세간에 ‘택배 게임’이라 알려졌으며, 이는 어느 정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재난으로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묵시록 세계관의 미래에서 ‘전설의 배달부’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이 겪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 내용은 특정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다양한 물성의 화물을 가능한 빠르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운송하는 것이다. 물류학 교과서에 나오는 현실 물류의 목적인 3S(Speedy, Safety, Surely)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이 정말로 현실 세계 택배기사의 하루하루를 다룬 게임이었다면 재밌었을까. 여러 주거단지를 돌면서 하루에만 300여개에 달하는 박스를 묘기처럼 배송하는 현실 택배 업무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게임을 한다면 처음에는 재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매일매일 똑같은 곳에서, 거의 동일한 업무로, 오랜 시간 반복되면 어떨까. 더군다나 현실 속 물류는 물량을 나른 만큼 ‘돈’이라도 주는데, 게임 속 물류는 실체적인 보상은 아무 것도 없다. 당연히 플레이어는 금방 싫증을 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진짜 화물운송 하는 시뮬레이션인데 ‘힐링 게임’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로트럭 시뮬레이터>를 꺼내면서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 진짜 현실 세계 화물운송 트럭커의 일상을 다룬 게임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트럭 시뮬레이터>에서도 재미를 위한 많은 예외조건들이 설정돼있다. 먼저 유로트럭 플레이어들은 현실 세계 트럭커처럼 ‘삶’의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일거리를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유럽 도시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유랑을 떠나는 선택을 해도 괜찮다. 처음에는 트럭커로 시작할지언정, 성장 과정을 거치며 거대한 운송회사를 경영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또 사고에 대한 위협에서도 자유롭다. 장시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운전을 계속 하면, 화면이 블랙아웃 되는 졸음운전까지 구현된 <유로트럭 시뮬레이터>지만, 졸음운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km로 달리다가 5중 추돌 사고가 나더라도 <유로트럭 시뮬레이터> 세계관에서는 그대로 업무 재개가 가능하다. 벌금과 수리비만 좀 차감될 뿐이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운행 과정에서 차감된 예산으로 인해 파산을 걱정하는 단계가 올 수 있지만, 알게 뭐람. 다시 시작을 누르면 그만이다. <데스 스트랜딩>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건 ‘택배도’ 하는 게임이지, 택배만 하는 게임이 아니다. 처음에는 인편으로 배송 업무를 하다가 점차 바이크 등 운송수단을 활용할 수 있고 드론, 로봇 등 대신 물류를 시킬 수단들도 추가된다. 심지어 택배기사의 역할을 뛰어넘어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나 집라인 인프라를 설치하는 등 건설 시뮬레이션과 같은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게임 내 ‘물류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 되는데, 점점 택배왕이 돼가는 캐릭터를 보면서 MMORPG에서 레벨업을 하고 강해지는 내 캐릭터를 보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이후 택배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플레이어의 의지다. 광활하게 펼쳐진 <데스 스트랜딩>의 오픈월드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재미를 준다. 묵시록 세계관의 북미 대륙을 유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그 와중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체험할 수 있다. 택배화물을 노리는 사이버펑크 도적단(뮬)과 초반에는 공격할 수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BT)들이 필드를 돌아다님은 물론이고, 피부에 직접 닿으면 급격하게 노화돼 죽음에까지 이르는 비(타임폴)가 내리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현실 물류에서는 당장 내일 물류 업무를 그만둬야 하는 대재앙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재미 요소다. 게임 시작 시점에는 대항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았던 적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쉽게 소탕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며, 더 나아가선 택배랑 상관없이 액션 게임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도 플레이어의 자유가 된다. <올팜>과 <치킨 키우기> : 재미가 ‘수단’인 경우 앞서 설명했던 게임 속 물류가 그 자체로 게임을 하는 이유가 되는 ‘재미’를 만드는 장치 중 하나로 기능했다면, 게임 속 물류를 재미와는 별개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 또한 존재한다. 앞서 완연한 메타버스 따위는 없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게임 속 물류가 현실 가치와 일부나마 결합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어느 순간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앱테크 게임(앱을 통해 재테크가 가능한 게임)’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표적인 예다. 올웨이즈의 <올팜>을 시작으로, 컬리의 <마이컬리팜>, 오늘의집의 <오늘의 가든>, 두잇의 <치킨 키우기>, 11번가의 <11키티즈>, 이마트의 <이마트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앱테크 게임은 하나 같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치킨이든 무언가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들을 목표한 수준까지 성장시킨다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현실 세계의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팜>의 경우 나무를 다 키우면 고구마 등 현실 세계의 작물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치킨 키우기>에서 병아리를 다 키우면 교촌치킨 허니콤보 한 세트를 배달 주문할 수 있다. 게임에서의 노력이 진짜 현실 세계 물류와 연결돼 플레이어에게 ‘실물 상품’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앱테크 게임은 일반적인 게임과는 운영 목표가 다르다. 사실 게임이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재미’라는 가치가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게임이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이 게임을 구매하여 실질적인 판매 매출이 늘어난다. 게임을 무료 배포하더라도 게임 내 성장재화 및 꾸미기 아이템 매출과 연결시킬 수 있다. 즉 재미는 트래픽을 만들고, 트래픽은 게임사의 매출과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앞서 예시로 언급한 앱테크 게임들은 모두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성장재화 또한 유료로 판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을 통해서 개발사가 얻는 수익은 0에 수렴한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한 플레이어에 대한 보상 지급으로 비용을 게임 운영사가 감당하기 때문에, ‘적자’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위기 요인이 된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이 공짜 게임들을 운영하는 이유를 일반적인 게임의 문법에서 찾으면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행처럼 앱테크 게임이 번지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앱테크 게임의 보상비용은 이커머스 기업들이 고객 획득을 위해 통상 투하하던 ‘마케팅 비용’을 대체한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 등지에 광고하는 데 사용했던 비용을 자체 앱 서비스에 투하함으로 오히려 더 높은 고객의 가입 전환, 구매 전환 효과를 노리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앱테크 게임 플레이어는 성장 재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업이 유도하는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단순한 게임내 액션만으로 빠른 성장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친구를 커머스 앱에 초대하거나, 특정 상품 페이지를 몇 초 이상 보거나, 아니면 실제 상품을 구매하는 등의 미션을 게임 내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는 게임이 그 자체로 고객의 정량화된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퍼포먼스 마케팅’ 도구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 이커머스 기업은 이를 통해 쇼핑앱 방문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실제 상품 판매량을 늘리거나, 여기 광고 등 판매자 대상 B2B 수익모델을 결합시켜서 게임 운영과 보상에 사용한 비용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앱테크 게임에서 실물 보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물류’는 더 큰 목표인 매출 창출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 자체로 재미를 주기 위한 목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보상을 지급받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여기 물류가 따라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항해시대>와 홍해 해적 :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면 정리하자면 게임 속 물류는 현실 속 물류와 마찬가지로 ‘효율’을 추구하나, 그 목적은 전혀 다르다. 먼저 게임 속 물류는 매출 증대를 위해 ‘재미’를 추구하지만, 현실 속 물류는 오히려 ‘안정성’을 추구한다. 그것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물류 수익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속 물류는 재미를 위해서 최대한 매일매일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면 좋다. 예컨대 <대항해시대>에서 플레이어의 미션을 가로막는 해적은 성장 재화를 모아 동료를 모으고, 선단을 강화하여 언젠가 무찌를 수 있는 대상이다. 심지어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무역은 내팽개치고,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적이 돼서 전혀 다른 형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해적은 어떠한가. 바로 지금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핵심 항로인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들에 예멘 반군의 미사일 공격이 날아오고 있다. 기업은 이러한 위기를 감수하고 기존 홍해 항로를 통과하거나, 위기를 회피하는 대신 훨씬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택하는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대항해시대>처럼 민간 물류회사가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반군을 토벌하거나, 역으로 해적왕이 되는 선택지로 가는 건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다음으로 재미를 충성고객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앱테크 게임에 있어서도 현실 세계의 물류 효율과는 다른 맥락은 관측된다. 앱테크 게임에서 물류는 고객 행동을 유도하는 보상 장치다. 재미를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데 겸사 실물 상품도 보상으로 주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용자들이 앱테크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물류는 ‘삶’의 문제이고, 같은 관점에서 앱테크 게임의 보상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올팜>에서 고구마 한 박스를 선물 받으려면 몇 달 넘게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데, 이게 우리의 본업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용납이 되나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현실 세계의 물류는 자유롭게 언제든 안하면 그만인 게임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 나가야 하는 ‘일자리’인 것이다. 요컨대 게임 속 물류가 우리에게 재미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것이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재미는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자. 리세마라를 돌리면서 ID를 팔아먹는 유통업자들은 좋은 캐릭터를 얻기 위해 무의미하게 게임을 반복하면서 과연 즐거웠을까. 어쩌면 게임 속 물류의 즐거움은 그것이 물류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에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Tags: 유통,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커넥터스 대표) 엄지용 버티컬 콘텐츠로 아름답게 돈 벌기에 관심 많은 야생의 콘텐츠 잡부. 여러 버티컬 미디어에서 콘텐츠 창작자 및 커뮤니티 기획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9월부터 유통물류 콘텐츠 기반 비즈니스 멤버십이자 커뮤니티 ‘커넥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야,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연애’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 Back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16 GG Vol. 24. 2. 10. 게임에 연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미연시인건 아니며 , 혹여 장르 불문 연애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사이드 콘텐츠 취급을 받곤 한다 .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 야 ,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 ‘ 연애 ’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 * 뭐 이것도 로맨스라면 로맨스일까? 그리고 언젠가부터 RPG 들 , 특히 좀더 TRPG 원류의 감성을 추구하는 CRPG 들에서는 로맨스 옵션이 거의 필수적으로 여겨지게 됐다 . 특정 연애 루트를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다투는 정실 (?) 논쟁은 커뮤니티에서는 일상이다 . 어쩌다 이랬을까 . 세계를 구하고 악을 무찌르라고 있는 게임에서 사람들이 언제부터 연애만 하게 된걸까 .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이런 게임에 로맨스 옵션이 들어간건 ‘ 모험 ’ 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 과거 RPG 명가 바이오웨어의 게임들이 CRPG 시류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 비록 그들이 이 형태를 취한 최초는 아니라도 ), ‘ 발더스 게이트 2’ 이래로 로맨스 옵션에서도 하나의 메인스트림이 형성된다 . 그건 바로 기용 가능한 동료들과 지속적인 대화와 동료 퀘스트 같은 사이드 콘텐츠를 통해서 연대를 형성하고 , 그렇게 깊어진 연대에서 사랑이 피어난다 . 이처럼 CRPG 의 연애 , 로맨스 옵션이 기존의 미연시와 다소 다른 결을 띄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동료 시스템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 대체로 CRPG 의 로맨스란 어디까지나 핵심은 동료 퀘스트라는 매우 명확하고 달성 여부가 확실하게 가름나는 콘텐츠이며 , 여기에 양쪽이 연애가 가능한 지향일 경우 연애를 선택할 수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 미연시의 연애는 오직 연애를 위해서 일종의 루트 공략 , 엔딩 공략 게임의 느낌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비중과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렇게 된 이유는 CRPG 의 토대가 TRPG 라는 점을 생각해볼 만 하다 . 기존에 현실에서 펼쳐지던 TRPG 는 동료가 진짜 사람이며 , 대체로 이미 친분이 있는 지인이었다 .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은 현실의 관계처럼 끈끈했고 , 상호 간에 영향을 미쳤다 . 하지만 최근 멀티플레이어가 활성화되기 이전의 CRPG 는 모두 오프라인 게임이었고 , 플레이어 캐릭터 외에 함께하는 동료들은 인공지능 AI 이제 스크립트 더미였고 , TRPG 수준의 상호작용의 활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 때문에 이렇게 게임을 함께하게 되는 동료 캐릭터를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사실적으로 느끼고 , 플레이어와 더 연대를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동료 퀘스트를 위시한 컴패니언 시스템 일체라고 할 수 있다 . 즉 , 혼자서 게임을 하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그래서 그러한 ‘ 인간적인 상호작용 ’ 을 플레이어 캐릭터와 동료 캐릭터 사이에 넣는다면 , 그 흐름이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최종판인 연애로 흘러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초기의 CRPG 들은 이런 부분의 배려가 부족한 편이었지만 , 서양 시장에서의 시류는 바이오웨어를 필두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바이오웨어는 CRPG 메이커 중에서 이러한 동료와의 유대 , 그리고 연애 등 상호작용을 본격적으로 이끈 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단순히 함께 싸우는 전투원 1 에서 벗어나 동료에게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 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다보면 자연스레 친밀해지고 , 그러다 이제 서로 성적 지향도 맞는다면 연애도 하는 … 그런 흐름이었다 . ‘ 매스 이펙트 ’ 시리즈는 이러한 동료 시스템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 그리고 가장 대중화시킨 주인공이었다 . 그러나 여기서 재미있는 문제가 생긴다 . 바로 동료로서 원하는 캐릭터와 연애 대상으로서 원하는 캐릭터가 다를 경우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 동료 시스템과 연애 시스템이 결합하고 이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 문제였는데 , 바로 각 캐릭터의 성적 지향과 전투 캐릭터로서의 성능 , 두가지 요소에 기인했다 . CRPG 의 연애 시스템은 세이브로드 신공과 함께라면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 . 하지만 단 한가지 , 성적 지향에 따라 가능 / 불가능으로 나뉘는 케이스는 절대적인 벽이었다 . 현대적인 로맨스 옵션이 들어간 첫 CRPG 라고 할 수 있는 ‘ 발더스 게이트 2’ 는 주인공이 스토리상 고정된 인물이었고 , 성별 또한 남성으로 고정이었으니 이러한 문제가 없었다 .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료 시스템과 연애 시스템을 널리 퍼트린 ‘ 매스 이펙트 ’ 시리즈와 동시기의 ‘ 드래곤 에이지 ’ 로 가면서 , 동성 연애 지향을 가진 동료들이 추가되며 이러한 경향이 생겨났다 . 이렇게 로맨스 옵션에 성적 지향이 추가된 건 게임이 보다 더 많은 취향과 환경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게임 내에서 표현하기 위한 흐름에 따른 일이었다 .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가 되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건 RPG 에선 상당히 중요한 키워드고 , 그러려면 먼저 플레이어 캐릭터가 성별을 비롯해 각 플레이어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야 했다 . 이에 따라 동료들 , 연애 대상들이 각 지향과 취향에 맞게 분배되는건 당연한 일 . 재미있는 일은 플레이어 자신의 성적 지향과 좋아하는 캐릭터의 성적 지향이 맞지 않을 때 벌어지는데 , 자신이 게임 초기에 선택한 성별과 커스터마이징 때문에 특정 대상과 연애를 할 수 없게되고 , 이는 게임적인 관점에서는 이미 캐릭터 생성부터 특정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다는걸 의미했다 . 아무튼 이러한 현상 덕분에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원하는 로맨스 대상이 아무래도 훨씬 머릿수가 많은 이성애자들을 위한 연애 대상이 아닐 경우 많은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 대표적인 예시는 ‘ 사이버펑크 2077’ 의 주디 알바레즈다 . 주디 알바레즈는 주인공 V 의 핵심 조력자이자 이 게임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대외적으로 게임을 어필하는데 동원되어 온 일종의 얼굴마담이자 상징이었다 .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 캐릭터와 연애를 하려고 달려들 건 분명했다 . 그런데 여기서 개발진은 한 번 비튼다 . 주디 알바레즈는 동성애자 캐릭터이고 , 남성 V 를 위한 이성애자 파트너는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 때문에 이를 모르고 습관처럼 남성 V 로 게임을 시작한 , 남성 이성애자 플레이어들은 주디 알바레즈가 동성애자이며 , 한참 게임을 진행한 자신의 캐릭터로는 주디와 프렌드존을 넘지 못한다는걸 깨닫게 된다 . 여기서 그런 플레이어들이 취한 행동은 크게 두가지 . 커뮤니티에 원성을 쏟아내거나 여성 V 로 새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 사실 이렇게 성적 지향으로 연애 대상을 나누는건 바이오웨어가 먼저였다 . 동료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하는 로열티 퀘스트 , 그리고 동료와의 연애 선택지라는 요소를 가장 대중적으로 히트시킨 게임이기도 했던 ‘ 매스 이펙트 ’ 시리즈는 1 편에서는 모든 연애 대상이 이성애자였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했다 . 그건 아사리라는 종족적인 특성을 빌려 , 리아라 트소니를 양성애자로 설정한 것 . 이성애자 여성 애슐리 , 이성애자 남성 케이든에 양성애자 리아라가 존재하는 로맨스 옵션이었다 . 이는 아무래도 ‘ 선택 ’ 을 집어넣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 셰퍼드의 성별을 어떻게 고르더라도 결국 연애할 수 있는 대상이 한명이라면 , 호불호를 떠나서 내가 연애할 대상을 선택한다는 느낌을 줄 수 없었고 , 대상을 선택하는건 로맨스 옵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시리즈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고 , 또 가장 대표적인 혁신작이었던 ‘ 매스 이펙트 2’ 는 동료 시스템을 훨씬 크게 키움과 동시에 로맨스 옵션도 방대하게 늘어났다 . 그런데 여기서는 오직 이성애자만이 등장한다 . 한 성별 당 3 명의 연애 대상을 부여받았는데 , 2007 년 게임인 전작에서 양성애자를 등장시켰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후퇴 (?) 였다 . 그리고 3 편은 이 부분을 의식했는지 , 좀더 다양해졌다 . 각 성별마다 한명씩 동성애자 연애 대상이 추가됐고 , 1 편의 연애 대상인 3 명이 다시 들어왔다 .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조건이 좀 있기는 하나 한 성별당 4 명의 이성애자 , 1 명의 동성애자 , 1 명의 양성애자 연애 대상을 가지게 되었다 .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성토를 받았던 게임은 바이오웨어의 ‘ 드래곤 에이지 : 인퀴지션 ’ 이었다 . 다른 게임에 비하면 동료의 수가 무척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를 성적 지향 , 종족별로 배분하다보니 플레이어 캐릭터의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연애 대상이 너무나 적었던 것 . 심지어 전투원이 아닌 동행 캐릭터들도 연애 대상으로 넣었음에도 이랬는데 , 그런 캐릭터들은 또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탓에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이 상황을 보자면 , 플레이어들이 CRPG 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플레이어 캐릭터에 이입하고 동시에 다른 등장인물에 얼마나 몰입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 한편으로는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각 캐릭터의 성적 지향을 설정하는데에 있어서 굉장한 고민을 떠안게 됐다 . 어떤 연애 대상을 설계할 것인가 ? 어떤 성적 지향에 어떤 캐릭터를 배치할 것인가 ? 이는 단순히 고민을 떠나서 특정 성적 지향을 스테레오타입화 시키는 , 어쩌면 차별 또는 편견으로 비칠 수도 있는 위험을 내포했다 . 세상에 , 그냥 게임 캐릭터와 연애를 하고 싶은 것 뿐인데 이런 문제까지 신경써야 한다니 ! 그러나 , 여기서 ‘ 발더스 게이트 3’ 는 재미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 모든 동료를 연애 대상으로 , 동시에 모든 연애 대상 동료를 양성 모두 연애 가능으로 만든 것 . 너무나 간단한 , 어쩌면 무성의한 해법처럼 보이기까지 해서 맥이 풀리지만 오히려 한편으로는 아 ! 왜 다들 그 생각을 못했지 ? 하고 감탄할 법한 해법이었다 .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지 않았는데도 , 오직 캐릭터 생성 단계만 지나도 접근 할 수 없는 콘텐츠가 생기는 셈이었던 이전의 이성애자 - 동성애자 중심의 로맨스 옵션이 , 그냥 그런 것 상관없이 모두를 양성애자 , 혹은 연애 대상으로 만든다는 기가막힌 해법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 물론 , 이전에 이 방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 이성애자들에게 양성애자 동료가 과연 진정한 로맨스 옵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 이게 가장 큰 의문거리였다 . 실제로 기존의 바이오웨어 게임들처럼 이성애자 / 동성애자 / 양성애자가 모두 존재하는 RPG 에서는 양성애자 캐릭터들은 보통 인기가 가장 없는 편이었다 . 하지만 흥미롭게도 , ‘ 발더스 게이트 3’ 에서는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적 지향에 대한 반감이 강하기 마련인 인터넷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이들 캐릭터가 양성애자라는 건 전혀 지적받지 않고 있다 . 오히려 게일 같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양성애자로서의 면모 , 그리고 쉬운 로맨스는 일종의 밈화되어 혐오의 대상보다는 유머의 대상으로 더 가깝게 여겨지고 있다 . ‘ 발더스 게이트 3’ 의 로맨스 옵션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이유를 생각하다보면 , 기존 게임들의 로맨스 옵션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이핑으로 만들어진 대상이었고 , 성적 지향이 진정한 정체성 표현보다는 ‘ 제한 ’ 으로서 받아들여진 면이 더 컸다는걸 깨닫게 된다 . 기본적으로 각각의 캐릭터가 성적 지향에 맞추어 지나치게 스테레오타이핑 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 성적 지향에 따른 제한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플레이어들은 캐릭터들을 만날 때 감정 선을 정리하고 진짜 캐릭터 대 캐릭터로서 교감하기 보다는 게임 콘텐츠로서의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 점에서 , 오히려 모든 캐릭터가 성별과 상관없이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은 일종의 게임적 허용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 고리타분한 성적 지향에 따른 분배와 이런저런 고려는 치우고 , 그냥 넌 이 동료가 가장 마음에 들어 ? 그럼 얘랑 끝까지 가봐 . 라는 간단하고 쉬운 게임적 허용으로 게임 내 로맨스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 것 . 즉 , 바이오웨어식 로맨스의 한계는 오히려 로맨스 옵션에 맞추어 각 캐릭터를 너무 세분화하고 , 카테고리로서 분화시켜 배치한 점에서 왔다 . 그 순간부터 오히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인가를 생각한다 . 어쩌면 현실의 연애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 같기도 하다 . 그냥 내가 좋다고 되는건 아니지 않는가 . 하지만 ‘ 발더스 게이트 3’ 의 동료들은 모두가 연애가 가능하고 , 특정 성별 지향을 대외적으로 강조하지도 않는다 . 사실 이들을 양성애자라고 하는 것도 연애 가능성이라는 콘텐츠 기능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이지 ,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양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되지도 않는다 ( 그래서 앞서 ‘ 양성애자 ’ 라는 표현이 아니라 ‘ 연애 가능 ’ 이라고 했다 ). 그러니 좀 더 정확하게는 로맨스 옵션에 성별의 제한이 없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 현실이라면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 이건 ‘ 게임 ’ 이니까 . 즉 , 오히려 게임의 애정과 연애를 적당히 게임이라는 선 안에 두고 그 안에서 게임적 편의성을 취한 결과 , 플레이어들이 가장 만족하는 로맨스 옵션이 만들어지게 된다 .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 바이오웨어는 오히려 로맨스 옵션을 발전시켜나가면서 지나치게 현실의 연애를 고려했던건 아닐까 ? 어디까지나 우리가 게임 상에서 이루고 싶었던 건 지고한 순애가 아니라 , 일종의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인정받는 증표였던건 아닐까 ? 즉 , 여러 과정을 거쳐서 변화해오기는 했지만 CRPG 에서의 로맨스란 말그대로 게임을 하면서 외롭지 않기 위해 탄생했고 , 이것이 플레이어가 어떠한 ‘ 인정 ’ 을 받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 비록 스크립트 덩어리와의 연애가 현실에서 동료와의 상호작용 만큼 깊고 무한하지는 않더라도 , ‘ 함께 모험한 동료 ’ 와 또 하나의 사적인 그랜드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건 마찬가지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게임 시장에서 비디오 게임 콘솔과 범용 PC의 40년 경쟁이 낳은 변화들
범용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PC 게이밍’이 성립되기 전 게임은 그 자신만을 구동하는 독자적인 콘솔의 영역에서 오롯이 유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용 기기가 아니라 범용 기기에서 실행되는 PC 게임의 세계는 콘솔의 옆에서 어떻게 자라났고 이 둘의 접촉은 어떤 변화를 낳았을까?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불명 Anonymou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DEI, 트럼프,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 Back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10 GG Vol. 23. 2. 10. 엉덩이 모핑이 주가 되는 게임은 아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그래서 출시 이후 게임에 대한 리뷰에 접근하는 유튜브 채널들 등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알 수 있다. 출시된 게임은 제작사인 시프트업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던것처럼 수려하지만 섹슈얼리티를 한껏 강조한 여성형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 캐릭터를 수집하여 플레이어인 지휘관이 일종의 미소녀 하렘을 만드는 형태를 보여준다. 거기에 가슴과 엉덩이 모핑이 강조된 게임이라니, 이러한 요소들을 좋아하는 유저들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정도의 의미에 그치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흥미로운 요소들은 사실 부각해 광고한 것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바로 세계관의 설정과 스토리텔링이다. 우선 〈니케〉는 아주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계관의 설정과 그 안에서 주가 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인 ‘니케’의 설정,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스토리 모두 잘 짜인 상태이다. 특히 튜토리얼 성격의 첫번째 챕터 이후에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홍보에 그치는 기타 게임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세계관 전체를 잘 조망하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지휘관’에 나를 이입시키는 장치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왜, 엉덩이 모핑을 전면에 내세워서 게임을 홍보하는 전략을 취한 걸까? 게다가 인게임 상황에서는 더더욱 의아함이 커진다. 광고 등에서 한껏 강조했던 게임 상황에서의 캐릭터들의 뒷모습에서 보여주는 모핑은 눈길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무리 에임(aim)을 자동으로 설정해 놓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중간중간 상황에 개입해 줘야 하고 미션의 진행사항을 확인해 봐야하는 경우 캐릭터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다. 결국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의 캐릭터 디자인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캐릭터 정보창에 가서 따로 확인을 해야 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초반 광고로 부각되었던 엉덩이의 모핑과 같은 요소는 게임에 대한 특정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만 작용하고, 게임을 수행하게 하는 요소로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1) 그렇지만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스토리텔링인데, 한국에서 생각보다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SF적인 장르 세계관을 충실하게 구현해서 스토리 자체의 몰입감을 유의미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몰입도를 판단하는데 스토리텔링만 개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니케〉의 경우 게임을 진행하게 하는 요소에 스토리텔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 자체가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SF 세계관의 게임 중에서도 꽤 완성도 높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의 장점 〈니케〉는 SF에서 자주 사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상황에서의 디스토피아(Distopia)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왜 아포칼립스 상황이 닥쳤는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의 양상과 구체성이 달라지게 되는데, 〈니케〉의 경우 아포칼립스를 추동한 요소가 기계 생명체인 ‘랩쳐’의 공격을 받고 지상에서 지하로 피신해 방주라는 거대 시설에서 생존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디스토피아 물이 그렇듯, 인류는 기계 생명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라는 사이보그를 발명했고, 그들을 통해 랩쳐들의 침공을 저지하고 랩쳐들에게 빼앗긴 지상의 탈환을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19867063836200&id=100232432466330&_rdr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은 ‘니케’를 사이보그로 설정하고, 그들이 기존에는 보통의 인간이었으나 개조되면서 뇌를 NIMPH(Neuro-Implanted Machine for Protecting Human)라는 나노머신에 의해 컨트롤 당하는 개체들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으로 인해서 캐릭터들이 가지게 되는 다양한 요소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들을 소거당하고 인간에 의해서 조종되는 인형과 같은 존재들이 되었지만 유기체 뇌를 여전히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계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토리의 설정이 가능하다. 이는 캐릭터들을 수집해야 하는 게임에서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인간을 변형시켜 사이보그로 만들었다는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은 비인간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니케〉는 캐릭터를 단순히 수집하고 단순히 전투의 지휘관으로 통제권을 가진 사용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이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내가 수집한 캐릭터들은 단순히 게임에서 활용하는 도구에서 그치지 않고, 수집된 스토리를 기반으로 관계가 발전되는 형태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생긴다. 2) 또한 이 지점에서 SF 스토리텔링의 성공적인 형태들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흔히 비인간 캐릭터들을 설정하면 인간보다 월등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는 것에 그치는데 비해 〈니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비인간 캐릭터들은 뛰어난 능력과 함께,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같은 것들이 함께 부가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발생하는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비인간 캐릭터들의 가능성들을 오히려 제한하는데, 〈니케〉에서는 사이보그(Cyborg)라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명확하게 활용하여 이러한 지점들을 극복하고 스토리의 풍부함을 확보하고 있다. 3) 그러기 때문에 게임 스토리 내에서 ‘니케’들은 자신이 인간으로부터 개조된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도구라는 사실에 자조하거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굳이 인간을 닮거나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에서 인간과 니케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사회적인 부조리나 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가치의 충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의 충돌에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부딪히는 주인공(유저)의 시각은 SF 스토리텔링이 보여주는 지금의 현상 너머의 진보적인 가능성을 그리는 특징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게다가 거대 사기업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기술력으로 회사를 구성하고, 수집해야 하는 ‘니케’들 역시 그 회사의 특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정들은 수집의 또 다른 구체성과 흥미를 유발한다. 일리시온(ELYSION)과 미실리스(MISSILIS), 테트라(TETRA)라는 거대 기업들이 소위 플레이어의 수집대상인 엘리트 니케들을 제작하는 회사들인데, 각각의 회사들 마다의 특징이 명확하게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서 등장하는 ‘니케’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프랭크 하버트(Frank Herbert)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듄(DUNE)〉에서의 세력들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설정과 세계관 구조의 치밀함은 단순한 수집을 넘어, 캐릭터들을 확보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이야기가 풍부해진다는 장점을 가져온다. 섹슈얼리티한 캐릭터 디자인과 모핑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와 같이 〈니케〉는 SF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선보였던 게임뿐 아니라 웬만한 미디어 콘텐츠를 통틀어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SF 스토리텔링의 경우 장르가 가지고 있는 관습(convention)이나 코드(code) 들의 외향적인 요소들만 차용하여 서사 내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2010년대 이후 소설 등에서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게임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에서는 유독 그러한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이러한 아쉬움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SF 스토리텔링을 적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캐릭터들을 모아서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양하게 마주하는 문제와 해결 방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부터, 해결을 위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인식의 전환 양상 역시 SF에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F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사고실험을 구현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나 〈호라이즌〉 시리즈와 같은 작품과의 결은 다르지만, 오히려 그들 작품에서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적이고 무겁게 다루려 했던 지점들을 재치있게 풀어냄으로써 모바일 게임이라는 형식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의미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들에 반복되고 있는 섹슈얼리티한 디자인의 강조나 모핑 요소와 같은 것들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아쉬움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등의 문제로 단순히 게임을 판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했을 때도 이러한 요소는 장르의 특성에서 효용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가상적 실재감을 확대시키는 현전감(Sense of Presence)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을 때, 게임 플레이 시에 느껴지는 구체적인 정보가 시각작용, 그리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는 조작감과 인터페이스의 요소들이 중요하다. 4) 하지만 〈니케〉에서는 게임 플레이시에 아주 복잡하고 거대하게 발생하는 적(랩쳐)을 처리하는 FPS라는 게임의 특징 상 짧은 시간내 복잡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상대에 내가 지정한 에임이 정확하게 가 있는가를 확인하고 혹여 빗나가 소모되는 탄이 없는지를 확인 해야지 캐릭터들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 모핑 등의 요소들을 넣음으로써 오히려 게임 중 인지되는 정보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히는 듯한 경향도 있어 일종의 사이버 멀미(cybersickness) 5) 를 유발하기도 한다. 아무리 방치형 게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해도 비효율적인 정보들이 게임내 난립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니케〉가 스스로 그려 놓은 세계관 내에서도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들이 충돌하는 경우를 만들어낸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인 지휘관은 아무런 편견 없이 사이보그인 ‘니케’들을 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 세계의 균열을 만들고, 다른 부조리들을 없애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데 익숙한 비인간 ‘니케’들을 오히려 능동적으로 타자화와 대상화하지 않고 동일한 객체로 인식하고 대하는 모습이 세계관 전체에서 드러난다. 수많은 세계관 내 부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역시 그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들은 편견과 대상화에 맞서는 능동적인 주체를 수행함에도 유독 성적으로 대상화된 부분들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상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스토리를 쌓아 올라가면서 다양한 전사를 가진 캐릭터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과 한계를 공유하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더 크게 와닿는 부분들이다. 나는 이들을 편견 없이 동일한 개체들도 대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부분은 인간들이 도구적으로 성적 대상화한 지점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각종 편견을 걷어내는 플레이어의 스토리 전개가 쌓아질수록, 반대로 내적으로 쌓이는 묘한 도덕적 부채감 역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캐릭터 디자인을 단순히 유저들의 성향과 호응의 문제로 보기에는 진지하게 쌓아 놓은 세계관 위에서 잃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지점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전 테스트에서 유저들의 반응을 조사했을 때 78%가 ‘캐릭터의 외형 및 설정이 매력적’이었다고 답한 것이 레퍼런스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특정 요소를 부각한 외형적인 것들로 판단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하게 된다. 오히려 78%가 답변했을 때 외형과 더불어 함께 배치된 단어인 ‘설정’과 37%를 각각 치지했던 ‘스토리와 세계관의 몰입감’과 ‘독특하다’라고 답변했던 지점들을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6) 왜냐하면 〈니케〉는 한국에서 SF 스토리텔링이 미디어 콘텐츠에 구현되었을 때,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과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예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의 치밀한 구성과 완성도를 가진 게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검과 마법의 세계에 비해 SF적인 미래와 경이감(Sense of wonder)을 형성하는 세계관의 구성이 여전히 미흡한 현 상황에서 〈니케〉는 이정표로 삼을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후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구성할 때 SF적인 요소들이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에 이러한 요소들이 좀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 해당 부분은 개발사에서도 실제 게임을 출시하면서 언급한 부분이다. “독특한 캐릭터 표현으로 주목받았으나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즐길 거리가 많아 감상할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의 홍보는 정말 의도적으로 특정 유저층에게 어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게임시장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SF 세계관을 비롯해 FPS와 수집형을 동시에 배치한 게임의 성격을 우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출처: http://m.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34 ) 2) 물론 이러한 스토리의 발전에 따라서 관계성이 변화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이나 외향, 반응 등을 이끌어 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그동안 충실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고, <니케>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열심히 게임 안에서 구현하고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가 시작된 <우마무스메>, <무기마도>, <블루 아카이브>, <에버소울>과 같은 게임에도 이러한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 캐릭터 스토리에 공을 들이는 수집형 게임들은 꾸준히 관심을 받고 성공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탄탄하게 구성된 SF 세계관 내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캐릭터 스토리들을 만들어 냈다는데서 이후의 다른 SF 세계관을 구성하는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3) 사이보그(Cyborg)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를 일컫는다. 미디어에서 사이보그에 대한 대중성을 확보해준 대표 콘텐츠인 <로보캅>(1987)의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사이보그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SF 서사 내에서는 다른 비인간 캐릭터들인 로봇(robot)이나 안드로이드(Android)들이 그 시작부터 인간중심주의 적인 위계를 가지고 인간에 대한 저항과 동경을 가지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에 비해, 인간의 의미에 대한 확장인 포스트휴먼(posthuman) 담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개체로 볼 수 있다. 4) 이승제, 조현주, 「FPS 게임에 나타난 현전감의 구성 용인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16(4),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10, pp.426-427 참조. 5) Rebenitsch, L., and Owen, C. “Review on cybersickness in applications and visual displays.”, Virtual Reality, 20(2), 2016, pp.101-125. 6) http://www.game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85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평론가) 이지용 SF로 박사학위를 받고 SF평론을 비롯한 문화예술평론과 해당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빌미로 게임기를 구입하고, 만화를 사 모으며 온갖 OTT를 구독중이다.
-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 Back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 GG Vol. 24. 10. 10. “난 신의 마음속에 있어. 하지만 여기가 거기란 걸 어떻게 알지?” - 듀나, 「두 번째 유모 [1] 」 들어가며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범박하게 2D 플랫포머와 3D 어드벤처라 둘 수 있을 만한 형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끼리는 엮을만한 공통점이 은근히 많았다. 이를 대표적으로는 양쪽에서 플레이어들이 주되게 맞닥뜨리고 불평하는 곤란들로 가장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겠다. 간략한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곧장 광막한 세계에 내던져 놓고 알아서들 돌아다니라는 불친절함. 초반에 명시되지 않아 잔뜩 헤매게 하고 시행착오 이후에서야 간신히 손에 잡히는 최종목표. 콧물 방울처럼 미끄러지는 슬러그캣과 술에 취한 듯 갈팡질팡하는 화로인 우주선 같이 초심자의 손에 영 익지 않는 조작감. 호전적인 포식자부터 불안정한 땅바닥까지 무참하게 들이닥치는 장애물. 그렇게 종종 부당하게 정도로 엄습하는 죽음 및 자연이라는 형태로 가차 없이 밀어붙여지는 시간제한. 읽기에 친숙하지 않다면 알아먹기 힘들거나 때론 철학적 뜬구름 잡는 듯 느껴지는 ‘고대인’ 관련 로어. 그리고 기타 등등. 달리 말하자면, 이 둘은 여러 겹에서 플레이어에게 불능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게임들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면에서 두 작품에 무언가 플레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모의·제어·정보라는 세 주제어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어떻게 불능감을 활용하는지를 짚어보며, 무심한 세계의 작동법을 익히고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양 게임만의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2] 모의 가끔가다 보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통상적인 비디오 ‘게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태계와 자그마한 태양계를 작동시키는 ‘시뮬레이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두 게임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일대일로 복사한다기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상상된 허구적인 세계를 꽤나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법칙들로 모의하는 편이다. 이들 세계는 공교롭거나 당연하게도 SF적인 아이디어를 중추 삼아 만들어졌는데, 〈레인 월드〉는 ‘반복자’라고 불리는 거대한 슈퍼컴퓨터 구조물들이 한때 고대인들이 거주했던 지상으로 냉각 용수를 십몇 분마다 한 번씩 폭우처럼 쏟아붓는 세계에서 발생한 생태계를, 〈아우터 와일즈〉는 모종의 이유로 22분 만에 폭발하는 항성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행성이 공전하는 직경 20km짜리의 태양계를 모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세계가 크고 작은 단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중이며, 그 운동과 변화 모두가 엄밀히 지정된 경로를 따르지 않는 대신 특정 절차에 맞춰 세세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내 지역의 구조나 행성의 궤도라던가 중요한 NPC나 아이템의 위치 등은 전반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 도마뱀이나 지네 같은 생명체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다거나 특정 행성에서 바다 어디에 떠 있는 섬들이 언제 토네이도에 휘말리는지 등은 분명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두 게임이 유난하게 ‘현실적’이거나 ‘진짜 같게’ 느껴진다면, 이 허구적인 세계가 현실을 (임의적인 오류의 가능성까지) 모의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일 테다. 이때 두 게임이 각 세계에서 주되게 모의하는 것이란 다름 아니라 현실과 제법 가깝게 작동하는 일련의 법칙들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 이는 주로 물리법칙으로, 화로인(의 우주선)은 작중의 무자비한 중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라 비행 중에 조금만 조종이 엇나가더라도 가까운 중력장에 휩쓸려 치명적인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가 일쑤다. 한편 〈레인 월드〉의 경우에는 (역시 무자비한 중력이 있다만) 수많은 생명체가 슬러그캣뿐만 아니라 서로끼리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유기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포식-피식 관계의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두 게임은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Microsoft Flight Simulator, 1982~)〉가 추구해 온 것만큼) 현실상의 법칙을 최대한 정밀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작중 세계에서 그럴싸하게 말이 될 정도까지만 이를 구현한다. 엄밀하지는 않아도 ‘핍진’할 모의를 통해, 플레이어는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만 숙달하면 그 구조와 법칙 또한 얼마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비디오 게임이 “실재하거나 상상된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을 모의하는 복잡한 규칙” [3] 에 부합한다는 보고스트의 논의를 염두에 두면) 두 게임에서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와 같은 “현실의 부분을 게임이 재현할 때, 의미 있는 특정 부분을 단지 포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구조를 ‘모의’해서 해당 체계의 작동 방식, 즉 그것의 원리를 게임이 보여주는” [4] 셈이다. 여기서, 나는 두 게임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법칙을 참조해 전반적으로는 정교하게 작동하는 세계를 보이는 와중에도 언제나 임의적인 돌발상황이 발생할 여지를 열어두기로 선택했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다. 그 덕에 플레이어는 두 게임의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된 세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이곳들이 굳이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제작자들 또한 이를 어느 정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 〈레인 월드〉의 사망 화면은 종종 슬러크캣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린 이후에도 곧장 메인 메뉴로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평소처럼 행동하는 생명체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며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태양계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행성들이 항성을 맴돌다가 초신성 폭발에 덮쳐지는 모습을 (화로인 또한 거기에 휘말려 죽기 전까지는)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가 있다. 종종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만 반응하는 여러 비디오 게임 세계와 달리, 이러한 세계는 그런 플레이어를 상관하지 않거나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무심한 채 모의된 법칙으로 운동하고 변화하는 셈이다. 이때, 플레이어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인 무관심함은 종종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서 (우주선이 모래 기둥에 휩쓸린다거나 생물들의 난투극 한복판에 진입한다거나 등) 우연히 발생하는 사고와 허망한 죽음으로 이어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키워주기도 한다. 즉 이들 세계는 플레이어가 굳이 방문해 상호작용하지 않더라도 늘 자기들만의 모의된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며, 낙오된 슬러그캣이든 출항하는 화로인이든 간에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서만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플레이어 없이도 복잡한 자동장치처럼 알아서들 모의되는, 어찌 보자면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 우리-없는-세계” [5] 에 가깝게 작동하는 두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를 행위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관측자의 위치로 빼둔다. 그렇기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세계를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이 종종 크나큰 불능감을 느끼는 이유는 (흔히 코스믹 호러의 이해·사유 불가함을 설명할 때 강조되는) 세계의 광대한 규모보다도, 특유의 모의 방식에서 자연스레 감지할 수 있을 세계의 무관심함 때문일 테다. 이곳들은 잘해봤자 미니어처 크기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모의된 법칙과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무심한 세계에서 종종 공포와 경이를, 혹은 양쪽 감정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압도되는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불능감을 가치 있는 플레이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제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앞서 언급했듯 게임 초반부터 플레이어를 아무 목적 없이 야생에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화로인의 행성에서 비행 연습이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만, 〈레인 월드〉에서는 슬러그캣의 기초적인 조작법마저도 아주 간략히 알려줄 뿐이다). 초반에 분명한 최종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게임은 세계 한복판에 던져진 플레이어에게 제어에 대한 불능감 또한 강력하게 만들어 낸다. 이때 제어의 불능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플레이어가 위험천만한 세계를 뚫고 가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직격으로 작용할 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재미는 플레이어가 슬러그캣 혹은 화로인으로서 자신의 조작법을 익힐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작동법 또한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조작법에 숙달해 가는 플레이어의 능력 및 심리가 불능(감)에서 차차 전능(감)으로 이동하며, 무심하게 모의된 이 세계에서 차차 숙련된 제어력을 얻어가는 분투의 경험이 두 게임을 진행하는 핵심적인 동기가 되는 셈이다. 전능한 제어의 재미란 우선 플레이어가 슬러크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더욱 능숙하게 다루며 살아남는 데에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특성은 당연하게도 다른 게임에서 얼마든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플레이어가 조작과 생존에 숙련되어 가는 과정을 레벨 업이나 스킬 해금과 같이 전면적으로 수량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띤다. 슬러그캣이 공중제비를 날렵하게 돌고 화로인이 우주선을 안전하고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생물에게 한 방에 잡아먹히고 큰 충격을 받으면 한 방에 골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게임적인 의미에서 ‘업그레이드’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레인 월드〉에서 식량을 든든히 채우고 피난처에서 휴식하면 다른 지역으로 입장하는 통행권으로 사용되는 ‘카르마’가 하나씩 올라가는 정도일까). 도리어, 주된 업그레이드는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어의 조작 기술과 쉽사리 수량화되지 않을 자기효능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자격증 취득 등이 요구되지 않는) 다양한 잔기술을 익혀나갈 때 종종 그리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적인 성질은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것을 바탕삼아 제어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세계에서의 특정한 조작법 및 생존법을 모의하면서도 배가된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자연스레 이 세계 자체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이어져, 처음에는 위협적이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여러 생물과 행성은 최소한 친숙하고 때로는 감탄해 볼 만한 무언가가 되어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차차 긍정적인 전능감으로 바꿔나간다. 모의된 세계 및 제어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이 어떻게 조절되는지의 문제는 물론 게임의 행위성과 분투에 대한 응우옌의 논의를 주요하게 참조했다. 이를테면 현실상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를 그럴싸하게 말이 되도록 조형하면서도 임의적인 돌발상황 또한 종종 발생하도록 모의된 세계란 “능력과 장애물의 조합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기 행위성의 특정 부분에 (…) 집중하도록 압력을 가한” [6] 설계이며, 무심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무능력함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자, 실천적 무능력으로 된 공포물” [7] 로서의 이들 게임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제어의 숙달을 통해 차차 ‘합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곧 플레이어가 불능(감)에서 전능(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우리가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서 슬러그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조종하며 겪는 경험이란, 모의된 세계의 외관을 띤 채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제한하는 규칙들로 이뤄진 정교한 세계에서 최대한의 제어력을 얻어나가려는 분투다. 그 무엇에도 익숙하지 않던 초반에는 그저 죽지만 않고 하나의 루프를 살아남거나 이동에라도 능숙해지는 게 최우선의 임시 목표였지만, 플레이어가 제어에 숙달하고 자율성이나 행위성을 얻어가며 전능해지는 과정에서 목표는 이 놀라운 세계 자체에 대한 탐구로 비약한다. 불능(감)에서 출발해 전능(감)에 도착하는 두 게임의 분투적인 특성은 이러한 기계장치의 우주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지를 증명해 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된다. 이야기를 조금 미루고 있었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크고 작은 시험을 거쳐 제어와 더불어 세계를 익혀나가기 시작한 플레이어에게 보상하는 특별한 방식이 빛나는 것도 이 덕일 테다. 정보 그러니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 ‘서사’가 있다면 이는 어떠한 이야기일까? 여담을 먼저 말하자면, 두 게임의 여러 기묘한 점 중 하나는 결말을 보는 최적화된 방법이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초의 상태에서도 얼마든 실행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고 조작법을 최소한으로 익히고 공략을 참조한다면) 당신은 두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특정 경로를 따라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십몇 분 만에 또 〈레인 월드〉에서는 몇십 분 만에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고 불능할 뿐인 초반의 플레이어는 최적화된 경로는커녕 그를 따라 닿는 최종목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 대신에, 두 게임에서는 앞서 설명했듯 불능했던 플레이어가 차차 전능한 행위성을 획득하는 분투의 여정 그 자체가 나름의 이야기가 된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얻어가는 제어력에 이 세계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보상하는 게임의 메커니즘은 세계의 조작법 및 작동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깔린 ‘서사’까지도 서서히 밝혀나가며 이 세계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세계에 대한 정보는 사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친절한 〈아우터 와일즈〉에는 어느 정도 주어진 채 시작한다. 플레이어에게는 조종하는 화로인은 아주 오래전에 이 태양계에 거주했다가 멸종한 고대 종족인 노마이의 언어를 옮기는 새 번역기를 가지고 각종 행성의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일단의 목표로 제시되며, 여기에 태양이 왜 22분 만에 폭발하며 자신이 어쩌다가 이 타임 루프에 빠졌는지를 밝혀야 하는지도 우선의 목표로 추가된다. 〈아우터 와일즈〉의 행성 곳곳에 유기적으로 깔린 퍼즐들은 해결될 때마다 플레이어에게 노마이 언어로 쓰인 자그마한 정보 덩어리들을 보상한다. 진입할 수 없던 곳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이 자그마한 태양계의 숨겨진 여러 비밀까지 다양하게 밝혀지는 정보들은 훌륭하게 도식화된 항해 일지에서 긴밀한 연결망을 만들어 나가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임시·단기 목표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도 종래에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처럼 합쳐지며 최종목표에 대한 청사진이 된다. 이러한 정보들의 체계야말로 〈아우터 와일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요소로, 분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이 태양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과도 중첩된다. 달리 말하자면, 〈아우터 와일즈〉에는 선형적인 내러티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몇 개의 ‘서사’들의 중첩되어 있다. 낯선 세계를 이해해 나가려는 플레이어의 분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인 만큼, 그저 배경이나 환경인 줄로만 알았던 세계가 얼기설기 얽힌 정보의 총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곧 〈아우터 와일즈〉에서 플레이어가 겪는 업그레이드란 특정한 수치들이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는 형태로 이뤄지는 셈이다. 세계에 대한 제어권을 얻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해당 정보를 짜맞춰 다음 목표를 설정하며 최종장에 다가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우터 와일즈〉를 진행하는 핵심적인 설계라면, 〈레인 월드〉에서 이는 훨씬 간접적이고 느슨하게 제시되는 편이다. 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진주알에는 반복자와 고대인의 기록과 역사가 적혀 있으며, 반복자들이 이 정보에 대해 표하는 반응까지 더하면 작중의 생태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기 전까지 이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상이 이뤄진다. 무엇보다도 〈레인 월드〉를 정석적으로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실제로 두 반복자에 방문해 그들의 말을 듣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도 말이다. 이러한 정보는 〈아우터 와일즈〉에 비해 게임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 아주 필수적이지는 않은 편이지만, 어느새 작중의 온갖 생명체에 빠삭해지고 전능하게 생존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로어’의 형태로 다가온다. 낙오된 슬러그캣이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며 세계의 과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거대한 구조물인 줄로만 알았던 반복자들 또한 이 생태계와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그들의 ‘서사’ 또한 플레이어에게 넌지시 전달된다. 이렇게 〈레인 월드〉의 세계를 차차 알아가는 과정에는 단순한 조작 및 생존 방법과 생태계의 여러 특성을 익히는 것 이외에도 파편 난 과거의 서사를 수집하는 과정이 추가되며, 이는 〈아우터 와일즈〉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 수량화된 업그레이드와는 조금 다르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전능감을 부여한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오래된 폐허를 돌아다니며 잊힌 역사를 수집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두 게임은 이 세계의 뒷이야기를 수집할 만한 서사 조각으로 제시해 플레이어 스스로 짜맞추게 하기에, 정보의 측면에서도 불능(감)을 전능(감)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이 또한 이른바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적극 활용하는 게임들에서 (때로는 〈시스템 쇼크 (System Shock, 94)〉같은 이머시브 심 장르와 엮어) 오랫동안 보아왔던 방식일 테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두 게임 모두 특유의 모의법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무심하게 작동할 뿐인 세계를 제시하며, 제어와 정보에 불능하며 불능감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다양한 층위로 익혀나가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내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테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두 게임의 ‘서사’란 로어 조각의 형태로 곳곳에 산개한 과거사보다도, 차라리 이를 포함해 플레이어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어진 세계의 수많은 정보를 알아가는 플레이 과정 전체가 될 것이다. 한 차례의 플레이 주기 동안 그저 정신없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 휘말려 우스운 슬랩스틱이나 끔찍한 호러를 연출하던, 어쩌면 새로이 얻은 정보들에 경이와 경외 또 경악을 느끼던 말이다. 적어도 이 세계의 아주 자그마한 구석이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면, 그 또한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와 전능하게 익히기가 까다로운 제어, 그리고 서사를 조각내 만든 정보를 제각각의 불능(감)으로 묶어,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헤쳐가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이야기를 생산하는 ‘기계장치의 우주’일 테다. 나가며 작년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 그리고 두 게임의 DLC를 나란히 플레이하며 글감을 착상하고 올해 상반기에 〈튜닉 (Tunic, 2022)〉과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을 플레이하며 이를 머릿속에서 굴리는 동안, 이들 게임(특히나 홍보상에서 꽤나 이목을 모았던 〈애니멀 웰〉)을 중심으로 단어 하나가 영어권 웹을 떠도는 광경을 보았다.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nia)’라는 이 신종 장르명은 메트로배니아에 ‘브레인’을 추가한 말장난으로, 플레이어가 다양한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맵을 탐사하면서 처음에는 진입 불가했던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및 기술을 얻는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설계에서 특히나 ‘두뇌’를 요구하는 요소가 강조되는 유형의 게임을 지칭한다. 이 ‘두뇌’란 물론 게임 내에 숨겨진 비밀과 작동법과 같은 정보에 대한 비유로, 기존 메트로배니아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임무를 달성해야만 추가적인 이동 능력 및 기술을 획득하는 것에 비해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는 게임과 세계에 대한 특정 정보 자체가 바로 그러한 능력 및 기술이 되는 셈이다. 언급된 네 게임은 종종 그러한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대표할 만하고 어쩌면 새로운 장르로 묶일 수 있을 만한 게임으로 불리는 듯한데, 과연 이들 게임이 그렇게까지 지식 정보의 획득과 두뇌 훈련의 필요성만을 강조할까? 〈튜닉〉과 〈애니멀 웰〉 또한 (〈아우터 와일즈〉나 〈레인 월드〉와 비슷하게도) 각각 3D 어드벤처와 2D 플랫포머의 기본적인 틀을 바탕으로 그저 특정 정보의 획득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조작과 탐험 (〈튜닉〉의 경우에는 전투) 또한 동등한 분투의 수단으로 취급하며 이들을 정교하게 엮는데 말이다. 이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머릿속을 떠돌기만 하던 정보 조각들이 문득 하나로 짜맞춰질 때의 쾌감, 모든 것이 전부 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것만 같고 이 세계의 가려진 뒷면을 잠시 엿보고 온 듯한 짜릿함, 무엇보다도 이를 전부 알아먹은 스스로가 영리하게 느껴지는 전능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미처 다루진 못했지만 〈튜닉〉과 〈애니멀 웰〉도) 오로지 두뇌와 지식만을 플레이의 중추로 삼지는 않았을 테다. 도리어 내가 여기서 즐긴 전능감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 게임들이 모의와 제어와 정보와 같은 수많은 장치가 맞물리고 불능감을 연료로 사용해 플레이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능감을 제공하는 기계와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알아가는 즐거움을 도무지 제어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만 느껴질 뿐인 현실이 아니라 알맞은 규모와 규칙으로 작동하는 허구에 실어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런 게임은 세계를 익혀나가는 법을 익혀나가도록 하는 연습 경기장이 된다. [1] 『두 번째 유모』, 알마, 2019, 301쪽. [2] 두 게임의 특성을 흥미롭게 확장한 DLC인 〈다운푸어 (Downpour, 2023)〉과 〈에코스 오브 디 아이 (Echoes of the Eye, 2021)〉는 아쉽게도 번외로 두고, 이 글은 본편에만 집중하겠다. [3]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oegames, MIT Press, 2007, p.35. [4] 옥선영, 「게임 속의 세계는 세기말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통권 98호, 한국게임학회, 2021, 12쪽. 원문에서 simulate는 ‘모사’로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모의’로 통일했다. [5]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6]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206쪽. [7] 응우옌, 같은 책, 17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 Back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07 GG Vol. 22. 8. 10. 가장 빈곤한 게임 장르로서의 리듬 게임 본고에서 우리는 〈비트매니아beatmania〉, 〈이지투디제이EZ2DJ〉를 필두로 해서 〈디모Deemo〉, 〈사이터스Cytus〉까지 이르는 리듬 게임을 게임 일반의 극한이 되는 형태로서, 정확히는 가장 빈곤한 게임의 형태로서 다루고자 한다. 다만 우리는 숱한 리듬 게임들을 하나하나 비평할 의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리듬 게임 전반에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다소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다른 장르라면 지나친 단순화로 보일 이와 같은 장르 일반에 대한 비평은 리듬 게임 장르 특유의 빈곤함에 의거해서 가능해진다. 리듬 게임이 우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빈곤한 장르라면 어떤 의미에서인가? ‘악보’에 맞추어 대응하는 ‘키’를 입력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이 단순한 장르에서는 자유가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타이밍’이 이 장르의 본질을 규정하며, 그 외의 모든 요소들, 예컨대 서사라든지 경험치라든지 하는 요소들은 이 장르에 대해 부수적이거나 장식적이다. 그런 요소들은 물론 몰입감을 더해주지만, 리듬 게임이 선사하는 쾌감에 불가결하진 않다. 리듬 게임이 이처럼 빈곤하리만치 단순한 장르라면 과연 거기에 새삼 비평할 만한 가치나 분석할 만한 구석이 있을까? 세계universe 자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고 있는 광활한 메타버스metaverse의 시대에 하필이면 리듬 게임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퇴행적이고 고루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것이 즉시 제기될 법한 의문이다. 리듬 게임에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ゼルダの伝説 ブレスオブザワイルド〉처럼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시리즈처럼 다른 세계의 안으로 들어가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며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처럼 내러티브narrative를 비틀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철학적으로 각성하도록 유도하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리듬 게임이 현실에서는 드문 어떤 체험을 환상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조차 아니다. 리듬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플레이’라는 용어가 리듬 게임만큼 꼭 들어맞는 장르도 또 없을 것이다. 그 용어가 ‘연주’를 뜻하는 한에서 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그런 연유로 리듬 게임은 쉽게 냉소의 대상이 되곤 한다. 종종 이 냉소는 리듬 게임을 하고 놀 거라면 차라리 피아노, 드럼, 기타 등을 직접 연주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물음의 형태를 취한다. 실제로 리듬 게임인 〈락스미스Rock Smith〉로 기타를 익혀서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악보는 전혀 읽지 못하고 스케일scale 같은 개념도 알지 못하는 기타리스트 세대가 등장해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기타를 배운 세대를 당황케 만든 바 있다. 그러므로 저 냉소적 물음에 진리치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곧이곧대로 보면 저 냉소는 리듬 게임이야말로 게임 플레이의 원초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음을 함축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현생現生을 살지 않고 게임을 하는가? 이런 의문은 현실보다 더 풍부하고 강렬한 체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리듬 게임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왜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고 굳이 그 열화판처럼 보이는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일까? 현실이 게임보다 더 풍요로울 때조차도, 게임이 현실보다 더 빈곤할 때조차도 우리가 여전히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게임의 빈곤함을 단순히 현실에 비한 게임의 부족함이나 미진함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빈곤함이야말로 게임을 더욱 게임답게 만드는 속성이라고 간주하여야 한다. 리듬 게임에 고유한 유한성의 쾌감 악기 연주와 리듬 게임 플레이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빈곤함과 결부된 소진 가능성이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실제 음악의 ‘악보’는 우리에게 거의 무한한 해석의 자유를 허락한다. 무음無音의 음악인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33초〉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의 곡을 두고도 그토록 다양한 연주와 변주가 등장하고 그토록 다양한 커버cover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음악의 경우 악보는 소진 불가능한 객체다. 하지만 리듬 게임의 ‘악보’는 그렇지 않다. 리듬 게임의 최종적인 목표는 다름 아니라 악보를 완전히 소진시키는 데 있으며, 거기에는 별다른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리듬 게임 장르를 두고 통용되는 유명한 경구 “빛이 나는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가는 곳에서 빛이 난다”는 악보가 플레이어에 의해 완전히 학습되었음을, 따라서 완전히 소진되었음을 뜻한다. 관건은 이런 소진을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하는 데 있다. 우리는 앞서 리듬 게임은 빈곤하다고 말했다. 즉 리듬 게임의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의 자유나 운신의 폭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화면을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누를지 세 번째 손가락으로 누를지, 아니면 발판을 오른발로 밟을지 왼발로 밟을지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징검다리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게 리듬 게임의 제일 목표이자 유일한 목표다. 이는 리듬 게임을 깨기 위한 왕도가 게임이라는 ‘타자’에게 ‘자기’를 완전히 내맡기는 데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타자의 ‘리듬’에 자기의 ‘리듬’을 동기화시키는 데에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때 리듬 게임이라는 타자는 무한한 해석과는 거리가 먼, 전적으로 유한한 타자다. 즉 이론적으로 리듬 게임의 플레이어는 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퍼펙트’한 판정으로 관통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쾌락이다.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및 다른 물건들과, 즉 타자들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협상하면서 그 리듬에 나를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적 타자들의 리듬이란 무척 변덕스러운 것이고, 실제의 악보 사례가 보여주듯 심지어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 변덕스러움, 자유로움, 무한함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타자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맞추고 동기화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사둔 요거트가 상하기 전에 챙겨 먹어야 하고 방금 받은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식기를 기다려야 하며 지하철역에 가득 들어찬 인파와 발걸음을 맞춰야 하고 오늘도 이어지는 상사의 일장연설에 적절한 ‘리듬’으로 맞장구를 쳐야 한다. 요컨대 이 현실 세계의 리듬은 나의 리듬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줄곧 나보다 느리거나 빠르다. 이와 달리 리듬 게임은 이런 리듬의 괴리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타자와의 무결한 동기화가 가능하다는 일체감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이런 일체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에 가까울 수 있지만, 결코 타자에 대해 폭력적인 전능감은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왜냐하면 이 동기화는 타자의 리듬을 나의 리듬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는커녕 정반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리듬 게임에서는 오히려 내 쪽이 타자의 리듬에 굴복해야 한다. 곡曲을 소진시키고 ‘클리어’하기 위해서 나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타자를 완전히 소화했고 완전히 이해했다는 쾌감, 타자와 완전히 동기화됐다는 쾌감은 오로지 게임에서만 적법하게 허락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생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무척 희귀하고 심지어는 금지되어 있기까지 하다. 예컨대 영화, 소설, 회화, 음악 등의 경우, 내가 그 작품을 완벽히 이해했고 그것과 완벽히 동기화되었다고, 그리고 그런 내가 보기에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단언한다면, 그런 식으로 그것을 소진시킨다면 아주 난폭하고 비윤리적인 짓일 것이다. 내가 어떤 대상의 진리와 전모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단언은 해당 대상을 두고 무한히 전개될 수 있을 풍요로운 대화의 가능성 전체를 미리 차단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리듬 게임의 경우에는 바로 그런 유한한 차폐가, 즉 ‘풀 콤보 퍼펙트 플레이’가 합법적인 목표로 제시된다. 해석의 자유나 변주의 가능성 같은 데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한’하고 ‘폐쇄’적인 타자의 악보에 나의 리듬을 녹여 넣음으로써 완전한 동기화를 달성해야 한다. 리듬 게임의 독특한 자유로움 물론 개방성 자체를 모사하는 것을 재미의 근거로 삼는 게임들이 있어서, 유한한 폐쇄성에 의해 가능해지는 완전한 동기화로부터 쾌감을 추출해 내는 리듬 게임과 대척을 이룬다. 아닌 게 아니라 근래의 게임 중 상당수는, 특히 장대한 서사와 드넓은 ‘오픈 월드open world’를 주요한 무기로 삼고 있는 게임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다채로운 체험들을 가능케 만드는 데서 존재 가치를 확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플레이어에게 마치 무한히 자유로운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가상假想을 선사하는 것이다. 위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스탠리 패러블〉은 다름 아니라 무한한 자유라는 가상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월드 게임들에 대한 ‘이념적’ 풍자로서 성립한다. 내레이터narrator가 플레이어의 행동을 미리 앞질러 말함으로써 결국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내레이터의 지시대로 게임을 진행해서도 곤란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곤란하다는 이율배반을 체험하게 된다.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내레이터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하며, 심지어는 버그처럼 생각되는 요소가 눈에 띄어 이용하면 그것조차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내레이터가 응수하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결과적으로 자유라는 관념 자체를 의문시하게 된다. 〈스탠리 패러블〉은 이렇게 순조로운 내러티브라는 관념을 고장내고 게임 내부의 세계(“월드”)에 ‘자유롭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제 리듬 게임은 자유를 모사하기 위해 제작된 게임들에 대한 ‘물리적’ 논박으로서 〈스탠리 패러블〉을 보충한다. 오픈 월드 게임들에 대한 리뷰가 게임 내부의 세계 안에서 어디까지 용인되고 어디부터 금지되는지 실험해보는 과정을 필히 거친다는 사실은 그것들의 핵심적 재미가 무엇에 의해 산출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게임이라는 대상을 향유하는 태세가 기본적으로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을 샅샅이 탐사하고 소진시켜 보는 데 있음 역시 보여준다. 리듬 게임의 경우에 소진되어야 할 것이 악보라면 오픈 월드 게임의 경우에는 세계 자체일 뿐이다. 동일 선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많은 수의 게임이 리듬 게임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처럼, 혹은 적어도 리듬 게임이 게임의 어떤 본질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예컨대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는 〈슈퍼마리오Super Mario〉 시리즈의 타임 어택(-최단 시간에 게임을 클리어해서 엔딩을 보는 플레이) 영상들에서 고수들은 〈슈퍼마리오〉를 마치 리듬 게임처럼 플레이하는데, 이때 횡스크롤로 진행되는 〈슈퍼마리오〉의 스테이지는 〈비트매니아〉의 악보와 아주 유사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스테이지의 설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슈퍼마리오〉 고수는 악보를 외운 〈비트매니아〉 고수와 다를 바 없다. 둘은 모두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을 완전히 소진시킨 이들이다. 리듬 게임의 경구를 비틀어 인용하자면, ‘거북이가 오기 때문에 마리오가 점프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오가 점프한 자리에 거북이가 오는 것’이다. 비단 〈슈퍼마리오〉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단순한 부류부터 복잡한 부류까지 모든 게임에는 타자와의 동기화를 통한 소진이 전부인 국면, 즉 리듬 게임을 닮는 국면이 존재하며, 이는 게임의 재미 일반을 설명하는 건 아닐지라도 오로지 게임에서만 합법적으로 수용되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게임 특유의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타자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완벽히 동기화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하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실제의 타자와는 장단을 맞출 수 없다. 타자에게 나를 한 끗의 오차도 없이 딱 맞췄다는 감각,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었다는 감각은 곧 나를 가장 굳건하게 속박하고 있는 ‘자기’가 소산消散되는 감각으로, 게임 외의 영역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리듬 게임은 빈곤하고 유한하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독특한 자유로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이 자유로움을 맛보게 만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파리8대학교 LLCP 박사과정) 김민호 데카르트의 『정념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데리다 사유의 전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매체나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평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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