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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Back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30 GG Vol. 26. 6. 10. 이 글은 논문 [(이경혁, 2026),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문화적 의미>, 농촌사회, vol. 36(1), 349-407] 을 기반으로 다듬어진 글입니다. 논문 원문은 KCI링크( 바로가기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C 앞 도시 게이머들에게 농업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2020년에는 게임 분야에서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는데, 게임 한 편이 두 나라의 농촌진흥청 웹사이트를 마비시킨 일이었다. 동아시아의 주요 식량작물인 벼농사를 꽤나 디테일하게 녹여낸 플랫포머 액션 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사실상 캐릭터의 성장을 책임지는 벼농사의 디테일을 알기 위해 온갖 농사 관련 정보를 찾아다녔고, 가상의 논을 향한 이 열망은 각 서버들을 뻗게 만들며 뉴스 면을 장식했다.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을 다루는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재현한다는 것은 비농업인구가 훨씬 많은 현대 사회에서 농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살피고자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다룬 농업과 농촌의 이야기가 무엇을 함의하는지를 살피는 연구가 존재하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 농사가 다뤄지는 방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는 연구는 없던 상황이다. 이 글은 그 의문에서 출발한 논문,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적 의미>(농촌사회학회, 36호 1권)에서 다뤄진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논문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속에서 나타난 농업 재현을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유형들이 오늘날의 농업과 농촌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게임 속에 재현되는 농업, 농촌에 관한 다섯 가지 유형은 각각 목가적 생활양식, 산업적 경영체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 성장 보조 시스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 나타나며, 각각의 유형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이라는 관념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목가적 농업, 산업적 농업, 생존의 농업 첫 번째 유형인 목가적 생활양식으로서의 농업은 <스타듀 밸리>로 대표되는, 이른바 ‘힐링’의 요소가 강하게 결합된 농업과 농촌을 재현하는 유형이다. 도시에서의 틀에 박힌 삶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재건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스타듀 밸리>에서 농업은 그저 작물을 생산하는 것으로만 그려지기보다는 농촌이라는 생활공간과 그 안에서 엮이는 인적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총체적 관계로서 나타난다. 농업이라는 말에 담긴 이른바 ‘농촌성’이 <스타듀 밸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재현되는 농업과 농촌의 특성이다. <목장이야기> 등에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농촌성 재현을 중심에 둔 게임들은 농업을 목가적 생활양식의 일환으로 보고자 한다. 경쟁과 위험, 시장과 생산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안정과 회복, 그리고 정착의 감각이다.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의 공간으로 그리는 것은 ‘이상적 농촌성Rural idyll’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리틀 포레스트>나 <전원일기> 등이 농촌을 도시와 대비되는 ‘인간미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목가적 생활양식으로 농업을 다루는 이러한 게임들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농업 게임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꼽히는데,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이미 다른 매체들에서도 지적된 바 있는 패턴이다. 농촌사회학자 리-앤 서덜랜드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통해서만 농업을 접하는 도시 생활자들이 갖게 되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미지를 ‘책상 앞 농촌desk-chair countryside’라고 개념화한 바 있는데, 이는 직접 농촌에서 농업을 영유하며 살거나 영화나 소설처럼 누군가 만든 농촌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제 3의 방식으로 농촌과 농업을 이해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로 대표되는 이 유형은 앞선 유형과는 달리 농업에서 낭만성과 인간관계를 제거한 채 오로지 작물의 생산과 유통, 판매라는 시장 체제 안에서의 농업만을 다루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게임들은 작물을 먹거리로 보기보다는 공장에서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파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상품commodities의 일환으로 보며, 그 생산과정 또한 자연과의 교감이 아니라 현대화된 장비와 시스템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장면을 재현하고자 한다. 농업에 대한 이미지를 둘로 나눈다면, 앞선 유형이 ‘농촌에서의 농업’에 가깝고 이 유형이 ‘영농법인의 농업’에 가까울 것이다. 후술할 다른 유형들과도 가장 구분되는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 게임들이 갖는 특징은 오로지 상품 관계로만 농업과 그 산물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는 농업의 생산물을 플레이어가 직접 먹거나 요리하지 않으며, 밀과 옥수수는 오직 판매를 통해 현금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치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규모 가족농이나 마을 단위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한국의 농업보다는 대규모 농지에서 기계화된 농업을 돌리는 북미와 같은 공간에서의 농업에 대한 재현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아마도 여러 게임 속에 가장 보편적으로 녹아들어 있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로서의 농업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규칙을 전제한 뒤, 생존을 위한 식량 확보의 일환으로 농업은 서바이벌 규칙을 가진 게임 안에 편입된다. 이름부터가 이 개념을 상징하는 게임인 <굶지마!>가 대표적인데, 처음 게임 시작 부분에서는 채집과 사냥으로 이뤄지던 식량 조달은 이후 농업을 본격화하고 대량생산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구성원의 생존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최종 단계에서는 결국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 이 유형의 농업 게임들이지만, 앞선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을 다룬 게임들과는 달리 이 대량생산은 대부분 ‘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대부분의 생존 및 운영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식량은 부가적으로는 거래 요소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먹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게임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살기 위한 먹거리 창출이라는 농업의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목표가 이러한 유형의 게임 속에서 재현된다. 성장 보조, 혹은 시간장치로서의 농업 네 번째 유형은 성장 보조 시스템으로서의 농업이 다뤄지는 게임들이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와 같은 게임은 먹지 않는다고 굶어 죽는 규칙을 넣지는 않지만,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하고 먹어야 한다. 이는 하드코어한 생존 룰이 적용되지 않는 여러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들에서 식량이 일종의 버프로 기능하는 점과 맞물린다. 네 번째 유형은 농업과 먹거리가 갖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의 개념 하에 이루어진다. 먹음으로써 몸과 정신이 강해진다는 이 개념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개념을 밑바탕에 깐 뒤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레이어에 가깝다. 먹음으로써 강해지고, 그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네 번째 유형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초창기에 버프용 약초를 구하기 위해 리젠되는 지역을 돌던 행위를 ‘무 농사’라고 불렀던 것이 이 맥락과 상통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은 사실 농업 재현인지 의문일 수 있을 유형으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서의 농업이다. 2010년대 서구권을 휩쓸었던 <팜빌>과, 그와 유사한 여러 소셜 네트워크 게임들에서 나타났던 농업을 돌이켜보면 알기 쉽다. 이런 게임들에 등장하는 농업은 작물의 생산과 수확이라는 농업의 뼈대를 갖추고 있지만, 그 구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플랫폼이 설계한 재방문 주기, 다시말해 리텐션 구조에 농업의 외피를 씌운 것에 가깝다. 비슷한 소셜 게임들이 모두 특정한 무언가를 만들거나 건설하는 명령을 내린 뒤 몇 시간, 며칠 뒤에 완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중 하나로 농업의 파종 – 수확 순환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재현되는 농업은 게이머들로부터 농업이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수확이 가능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받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씨를 뿌린 뒤 기다렸다 거둔다는 순환의 구조는 게이머들이 플랫폼으로부터 제공받고자 하는 보상을 자연스럽게 기다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설득력의 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농촌과 농업의 이미지는 이 유형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이 유형이 유독 모바일, 온라인 기반으로 이용자의 재방문 주기를 설계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한 증거다. 게임으로 농업을 이해한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곱씹으며 게임이 농업을 다룬다는 말은 이처럼 결코 하나의 방식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다섯 가지 유형은 모두 농업을 재현하고 있지만, 살펴본 것처럼 이 농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르게 이해되며, 어떤 관계망 속에서 농업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게임 속에서 재현되는 농업은 그 의미부터 구조까지 모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형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현실의 농업이 가지고 있는 고단함 자체는 배제되거나 순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일전의 GG 글에서도 지적된 바 있듯이, 놀이로 기획된 디지털게임의 재현에서 농업의 고단함은 굳이 그려지지 않는다. 현실 농사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부채, 가격 폭락에 따른 대손실, 고된 노동과 자연재해 등은 복구 가능한 수준으로 그려지곤 한다. 농업의 어려움에 대해 목가적 유형은 공동체의 온기로 덮어내고, 생존형은 전략적으로 관리 가능한 위기로 그려내며, 시간장치형은 예측 가능한 타이머로 풀어낸다. 당연하게도 매체로서의 게임이 농업의 모든 면을 담아내야만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애초에 규칙과 반복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디지털게임에서 그려내는 농업과 농촌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갈수록 현실의 농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도시거주자 중심의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때로는 낭만화되고 때로는 산업화된 농업의 시스템만을 재현된 매체 안에서 보는 것이 가질 수 있는 매체론적인 문제에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들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농업과 농촌이라는 개념에 대해 단지 매체의 재현된 결과만으로 과도하게 손쉬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게임 속 농업을 두고 따져야 할 것은 '얼마나 정확하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이 거듭 선택되고 무엇이 거듭 빠지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패턴이 우리가 농업을 상상하는 방식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가는가에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농업 게임의 재미나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게임 속 농사가 누군가 정성껏 고르고 배열한 한 편의 재현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는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현실의 농사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함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 서버를 마비시켰던 그 엉뚱한 호기심이야말로 농업이 뭔지 모르는 도시민들에게 ‘농업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상기하게 해 준 좋은 기회가 아니었던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Back 30 GG Vol. 26. 6. 10. This essay is adapted from the paper [Lee Kyung-hyuk (2026), "How Is Agriculture Imagined in Games: Types of Agricultural Representation in Digital Games and Their Social and Cultural Meaning," Rural Society, vol. 36(1), 349–407]. The original can be read via the KCI link (here). How Does Farming Reach the City Gamer at the PC? In 2020 a rather striking thing happened in the world of games, in Korea and Japan at nearly the same moment: a single game brought down the websites of both countries' rural development agencies. Sakuna: Of Rice and Ruin , a platform-action game that folded the rice farming central to East Asia's food supply into surprisingly fine detail, sent its players hunting down every scrap of agricultural information they could find—because in this game, the minutiae of growing rice are effectively what governs the character's growth. This longing for a virtual paddy field flattened the servers and made the news. That digital games take up agriculture is hardly rare. A fair number of games set out in earnest to represent the processes of farming and to make their fun out of that representation, and even where it is not the representation of farming as such, many studios have carried on the attempt to fold some process familiar to us, under the heading of "agriculture," into the rules of a game. And yet if we put on a slightly more serious face and ask back what this "agriculture," this "farming," actually is, we find that people think about, examine, and give meaning to the very same word and concept from quite different angles. That the digital game—a medium that handles process—represents agriculture is something we cannot afford to miss when we want to examine how the concept of agriculture is understood in a modern society where the non-farming population is overwhelmingly the larger. But whereas there exists research asking what the story of farming and the countryside in the film Little Forest implies, there has been no study asking what it means for us when farming is handled in games. This essay collects the contents of the paper that set out from precisely that question: "How Is Agriculture Imagined in Games: Types of Agricultural Representation in Digital Games and Their Social Meaning" ( Rural Society , vol. 36, no. 1). The paper sorts the representations of agriculture appearing in digital games since the 2000s into five broad types, and tries to analyze how each type represents today's agriculture and countryside. The five types of agriculture and rurality represented in games appear as the pastoral way of life, the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the reproductive apparatus for survival, the growth-support system, and the time-mechanism of cyclical recurrence—and each reveals, from a different vantage, how we perceive the idea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Pastoral Farming, Industrial Farming, Survival Farming The first type, agriculture as a pastoral way of life, is the type—represented by Stardew Valley —that renders farming and the countryside with a strong dose of the so-called "healing" element. In Stardew Valley , where the protagonist, sick of a regimented city life, moves to the country to rebuild and live on a farm, agriculture is drawn less as the mere production of crops than as a total set of relations encompassing the countryside as a lived space and the human networks woven within it. The so-called "rurality" carried in the word agriculture is the trait of farming and the countryside most prominently represented in Stardew Valley . Games that, carried down from titles like Harvest Moon , place this representation of rurality at their center want to see agriculture as one part of a pastoral way of life. What matters more than competition, risk, market, and production is the sense of stability, recovery, and settling in. To draw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as a space of such emotionally settled relations is a pattern that has already appeared in other media under the concept of the "rural idyll"—the way the aforementioned Little Forest , or Country Diaries , portray the countryside as a "space brimming with human warmth" set against the city being the representative cases. Such games, treating agriculture as a pastoral way of life, are counted as the type that effectively represents the farming game even if their numbers are not large—and the danger of drawing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as so romantic a space is a pattern already pointed out in other media. The rural sociologist Lee-Ann Sutherland conceptualized the image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held by city dwellers who encounter farming only through games at their computers as the "desk-chair countryside," pointing out that this is a third way of understanding the countryside and farming, distinct both from living and farming in the countryside oneself and from looking at an image of the countryside someone else has made, as in a film or a novel. The second type is agriculture as an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This type, represented by Farming Simulator , unlike the preceding one, strips farming of romance and human relations and handles only agriculture within a market system of crop production, distribution, and sale. Games of this type see crops not so much as food but, like factory-made goods sold on the market, as one kind of commodity, and they seek to represent a production process carried out not through communion with nature but through modernized equipment and systems, in mass quantities. If we split the image of agriculture in two, the earlier type would be closer to "farming in the countryside" and this one closer to "the farming of an agribusiness corporation." What most distinguishes the industrial-management type of farming game from the other types discussed below is that it looks at agriculture and its produce solely as a commodity relation. In Farming Simulator the player neither eats nor cooks the produce of farming; wheat and corn are portrayed as valuable only once they have been turned into cash through sale. It is a type best read as a representation of farming in spaces like North America—running mechanized agriculture on large tracts of land—rather than the small family farms and village-scale cooperation of Korean agriculture. The third type is agriculture as a reproductive apparatus for survival, perhaps the one most universally dissolved into all sorts of games. On the premise of a rule that says you die if you do not eat, agriculture is folded into games with survival rules as a part of securing food to stay alive. Don't Starve —a game whose very name stands for this concept—is the representative case: at the outset, food is procured by gathering and hunting, but later it shifts toward stabilizing the survival of the group's members by getting farming properly underway and folding it into a system of mass production. In the end the farming games of this type, too, come to possess a mass-production system at their final stage; but unlike the games handling agriculture as an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here this mass production functions mostly as a device for "the survival of the members." In most survival and management-simulation games, where production must gradually be increased as the population grows, food is incidentally an element of trade but is fundamentally put to the use of "eating." The primal and fundamental aim of agriculture—creating food to live by, producing the edible in a game where not eating means death—is what this type of game represents. Farming as Growth Support, or as a Time-Mechanism The fourth type is games in which agriculture is handled as a growth-support system. A game like Sakuna: Of Rice and Ruin does not insert a rule that you starve to death if you do not eat, yet to raise the character's stats you must produce food and eat it. This is a type that also appears universally across many role-playing games to which no hardcore survival rule applies, dovetailing with the way food functions as a kind of buff in games like World of Warcraft . The fourth type proceeds under the notion that agriculture and food share in "food and medicine having one source" (食藥同原)—the idea that by eating, one grows stronger in body and mind. It is closer to a second layer laid down after the "you die if you do not eat" concept has been set as the groundwork: you grow stronger by eating, and to pursue that strength you must make something to eat. That players in the early days of World of Warcraft called the act of circling respawn zones to gather buff herbs "radish farming" speaks to the same context. The last, fifth type is one whose status as a representation of agriculture may itself be in doubt: agriculture as a time-mechanism of cyclical recurrence. It is easiest to grasp by looking back at the agriculture that appeared in FarmVille , which swept the West in the 2010s, and in many similar social network games. The agriculture in such games has the skeleton of farming—the production and harvest of crops—but examined closely, its structure is closer to the platform-designed cycle of revisits, the retention structure, dressed in the outer skin of agriculture. Such social games all share a structure of issuing a command to make or build some particular thing, which is then completed hours or days later; and the sowing-harvest cycle of agriculture entered as one of these. Agriculture represented this way becomes possible by being received from gamers as an industry in which harvest is possible only after waiting a fixed span of time. The cyclical structure of sowing seeds, then waiting and reaping, works as an element of persuasion that lets gamers naturally wait for the reward they want from the platform. The various images of countryside and agriculture discussed above matter little in this type. The key piece of evidence is that this type appears, in the first place, only when the user's revisit cycle is being designed on a mobile or online basis. Chewing Over the Deeper Meaning of Saying We Understand Agriculture Through Games To say that games handle agriculture, then, can by no means be generalized into a single way. All five types are representing agriculture, but as we have seen, the concept of agriculture itself is understood differently by each person, and depending on the web of relations through which one views farming, the agriculture represented in a game takes on a form wholly different in meaning and in structure alike. Even so, if there is a commonality cutting across these types, it is perhaps that the harshness of real farming is itself excluded or softened. As was pointed out in an earlier GG piece as well, in the representations of digital games conceived as play, the toil of farming is not something one bothers to draw. The debt that inevitably trails real farming, the catastrophic losses from a price collapse, the grueling labor and the natural disasters—these tend to be drawn at a level that is recoverable. The pastoral type covers over the difficulty of agriculture with the warmth of community; the survival type draws it as a strategically manageable crisis; the time-mechanism type resolves it into a predictable timer. This is, of course, not a claim that the game as a medium must capture every facet of agriculture. The agriculture and countryside drawn by a digital game—which produces meaning through rules and repetition—are bound to have limits to begin with, and that in itself cannot be held against it. The problem, rather, lies in the media-theoretical question of what it can mean to see, within a represented medium, only a system of agriculture that is sometimes romanticized and sometimes industrialized, inside a modern popular culture centered on city dwellers who are ever further removed from real farming. As the various objections to Little Forest pointed out, are we not passing excessively easy judgments on the very concept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which we have not actually experienced—on the strength of nothing but a medium's represented results? What ought to be weighed about agriculture in games may not be "how accurate it is." More important is what is chosen again and again and what is left out again and again, and which way the pattern of those choices drags our manner of imagining agriculture. To say this is not to deny the fun or the value of the farming game. On the contrary: a player who knows that the farming in a game is a single representation, carefully chosen and arranged by someone, can enjoy the pleasure of that experience while at the same time gauging where it meets real farming and where it parts from it. That odd curiosity that crashed the rural development agency's servers—was it not, after all, a fine occasion to remind city dwellers who do not know what farming is, once more, of just what "agriculture" might b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 Back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30 GG Vol. 26. 6. 10. 맛시모 몬타나리는 「Food is Culture」에서 요리를 언어적 체계로 비유한다. 각 재료는 어휘소로 기능하고, 조리법은 문법이 되어 최종적으로 의미체계(요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직접 요리를 해보면 이 서술의 그럴싸함을 느낄 수 있다. 진간장인지 양조간장인지, 물로 어느 정도 비율로 희석하는지에 따라 간장의 용도가 달라지는 그 감각은 확실히 동의 어휘의 용례와 배치에 따른 의미 변화와 닮아있다. 맛의 체계라는 것은 그만큼의 복잡함을 담지한다. 최근 전세계 요리들의 관계를 고작 2mb에 담았다며 화제를 모은 KAIKAKU.AI 에서 발표한 「Epicure: Navigating the Emergent Geometry of Food Ingredient Embeddings」에서도 각 재료를 어휘(vocabulary)와 토큰(token)으로 규정해 관계의 의미론적 해석을 진행했다는 것을 보면, 몬타나리의 사유는 상당히 앞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맛’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게임 메커닉적으로 재현하는 문제가 말이다. 몬타나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게임 내부에 늘어선 어휘소들이 그 조립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런데 차라리 언어인 쪽이 더 편할 지도 모른다. 언어는 발화 그 자체로 그 맥락을 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종 출력의 형식이 상대적으로 투명하다. 하지만 미각은 그 본질적인 전달 불능성 덕분에 더 곤란한 상태다. 어휘소의 맥락적 차이가 다른 ‘맛’으로 발현되는 것을 어떻게 수치화된 세계에 투영할 것인가. 사실 이는 영 가망이 없는 일이다. 요리 메커닉을 가진 여러 게임들이 적용하고 있는 ‘능력치 버프’ 같은 건 솔직히 궁여지책일 뿐이다. 냉면에 만두를 곁들인다고 지능이 상승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고향만두 게임」처럼 고정된 레시피가 아니면 다 틀렸다고 길길이 날뛰는 사장님이 등장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문법적이라고 전제할 때 이에 수반하는 부침은 그 연계의 복잡성에 있다.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를 같이 먹으면 김치전의 맛이 난다(실제로 난다!)는 사실은,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를 분리해 먹을 때와는 다른 의미화, 그러니까 다른 ‘풍미’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 야채 크래커를 같이 씹으면 야채전의 느낌이 날까? 해물향이 강한 과자와 함께 먹는다면? 개별화된 재료가 가지는 의미소가 ‘더하거나 빠짐으로써’ 그 최종적 의미를 좌우한다는 감각은 무엇보다 ‘적당히 예상치 못한 의미 창출의 인과관계’라는 점에서 재현이 쉽지 않다. 재차 재현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인과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의미 자체는 개별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변용성이 있지만, 하나의 법칙(=레시피)으로 결정되면 그 결과는 재현가능한 영역에 오른다. 지금껏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오히려 이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게임은 다름아닌 단어를 직접 타이핑해 게임 오브젝트를 생성, 퍼즐을 푸는 5th cell의 「스크리블너츠」 시리즈다. 결국 몬타나리가 이겼다. 요리는 언어가 맞는 것 같다. * 「스크리블너츠 언리미티드」 이제 「오믈렛에 넣을까요?」(이하 「오믈렛」)의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물론 이 게임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요리’를 다룬다고 하긴 어렵다. 오믈렛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저 토핑을 올릴 뿐이다. 하지만 앞서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의 사례는 이 「오믈렛」의 게임플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종의 재료가 배치되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본래 이 게임은 2024 GMTK 게임잼에서 4일만에 기본이 완성된 게임으로, 초기에는 배치라는 역학이 들어간 유사 「발라트로」같은 느낌의 게임이었다. 현장에서 호평을 받아 곧 얼리액세스로 출시 했으며, 이후 여러 의견들을 받아 재료의 종류, 태그에 의한 분류, 인접과 비인접에 따른 판정 차이, 끈적임/매움(불탐)/상함/포장됨 등의 재료 상태 같은 것들이 끼어들며 더 복잡한 연결 방식을 다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발매된 게임은 무엇을 배치하느냐에 국한된 플레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제는 어떤 태그의 재료를 어떤 재료에 인접시키거나 떨어뜨려 놓느냐, 특정 재료가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 오믈렛 위에 특정 태그의 재료가 몇개나 있느냐… 같은 복잡한 조합들을 고려해야한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오믈렛」은 현존하는 게임 중 가장 다이내믹하게 식재료의 조합과 조합 효과를 가진 게임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그래서, 「오믈렛」이 만들어낸 이 콤비네이션이 실제로 풍미를 작동시킬 수 있을까? 지금껏 요리의 가능성, 식재료의 조합에 의한 의미화의 가능성 따위를 말했지만 이런 가능성의 추적은 그저 비디오게임을 다시금 ‘시뮬레이션’으로 만들려는 욕망일 뿐이다. 애초에 맛을 출력할 수 없는 이 매체가 맛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든 어차피 수치화된 세계에 가상적으로 부여된 출력물에 불과하다. 재료의 조합에 다양성은 줄 수 있더라도 그 결과물을 ‘그럴싸하게’ 세계에 입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리고 「오믈렛」은 이 불가능성을 너무 잘 아는 게임이다. * 랍스터 꼬리가 아무 채소나 붙여 먹는다고 뛰어난 풍미를 낼 수 있을까? 이 게임이 재료의 조합과 맛의 창출을 진지하게 다뤘다면 지금만큼 즐거운 게임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오믈렛」의 테마, 그러니까 동물 교직원에게 지급하는 급식이라는 설정과 ‘하나만 삐끗해도’ 해고되어버린다는 우스꽝스러운 설정은 이미 요리라는 행위를 그다지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재료의 교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역시도 그다지 진지한 시스템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테마를 뛰어넘는다. 이 게임의 요리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식재료라고 하는 것은 정갈하게 내려오지 않는다. 자른 당근이나 프렌치 프라이가 포장도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눈 앞에 떨어진다. 이 정도는 약과다. 통조림이 깡통 그대로 레일 위로 올라온다. 매운 음식은 너무 매운 나머지 불타고 있으며 가만히 놔두면 새카맣게 타버린다. 심지어는 다른 재료가 붙어있다면 그 재료에 불이 옮겨붙기까지 한다. 물론 이 설정들은 게임에 유쾌한 퍼즐의 요소를 부여한다. 불붙은 재료는 빠르게 흔들어서 불을 끌 수 있다(물론 불이 붙은 동안 음식을 내면 +3이라는 꽤 높은 점수를 준다!). 종이나 비닐 포장 정도는 매운 음식의 불을 붙여서 태우면 벗겨낼 수 있다. 아니면 식재료(!)로 제공되는 가위를 이용해 잘라내도 된다. 통조림 역시 식재료로 제공되는 렌치를 이용해 뚜껑을 떼고 흔들면 내부의 물건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에 대한 상찬은 시뮬레이션으로의 회귀나 다름없다. 「오믈렛」은 오히려 이러한 ‘요리 시뮬레이션’으로의 가능성으로부터 이탈하려고 애쓴다. 「발라트로」의 ‘조커’처럼 상시적으로 효과를 주는 ‘도우미’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와 효과를 뒤집는다. 곰팡이 핀 식재료에 오히려 보너스를 주는 ‘향상된 곰팡이’가 대표적이다. 이 도우미를 선택하면 오믈렛 위에 곰팡이 가득한 식재료를 가득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된다. 영양학이나 안전, 아니 하다못해 맛의 문제는 여기서 완전히 배제된다. 어차피 만족도는 점수로 체크되고 점수가 높다면 만사형통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곰팡이 투성이라도 점수만 높다면 상관없다. 그렇다면 「오믈렛」이라는 게임은 바로 맛(또는 요리)과 비디오게임의 충돌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맛의 재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했지만, 결국 비디오게임이 맛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맛이라는 것의 효용을 어떻게 수치화와 결부시킬 수 있을까? 맛있음의 정도를 수치화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시장이 반찬’이라는 통속적인 잠언처럼 맛이 기능하는 바는 식재료 자체가 아니라 상황과 인식, 감정 등에 따라서 복잡하게 요동친다. 또한 설령 동일한 조건을 부여하더라도 맛 그 자체의 수치적 치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만복도’처럼 배부름의 정도야 표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오믈렛」이라는 게임이 가진 유쾌함은 이 충돌에서 발생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수치를 부여해야하는 게 숙명이라면 오히려 현실로부터 이탈해버리자. 「오믈렛」은 상대적으로 정교한 시뮬레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도 그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이탈하려고 애쓴다. 애초에 ‘가장 정교한 시뮬레이터’ 따위가 환상이며 오독이지 않겠는가. 다양한 가능성과 시뮬레이션의 정도는 어차피 다른 문제다. 완전한 현실이 될 수 없다면 비현실의 힘을 가능한 한 유쾌하게 증가시켜버리자. 따라서 「오믈렛」은 비디오게임의 양가적 논제, 약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탄탄한 기반인 부분을 드러낸다. 그것은 현실 시뮬레이션의 근본적 불가능성이다. 「오믈렛」은 정말 과감한 메타적인 농담이나 다름없다. 그래, 비디오게임은 리얼리티의 시뮬레이션을 목적하지도 않고 실현하더라도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맛을 어떻게 현실에 가깝게 재현할 것인가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몰입해봐야 그다지 효용이 없다는 의미다.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곰팡이 덩어리 오믈렛을 누군가의 입에 처넣을 게 아니고서야, ‘어차피 이정도의 효과입니다’라며 적당히 타협시키면 그만이다. 실제로 랍스터 꼬리에 채소를 얹으면 맛있으니까 배치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규칙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먹여선 안된다는 것을 구태여 먹도록 만들고 그 맛을 음미하는 모습(=점수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며 일탈의 쾌감을 느끼는 게 더 의미있는 일 아닐까. 그래, 비디오게임은 종종 일탈의 쾌락을 시도할 수 있도록 놔둔다는 점, 아니 때로는 그것을 매우 긍정해준다는 지점에서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바보같은 긍정을 받을 때에는, 비디오게임과 시뮬레이션을 동음이의어의 위치로 슬쩍 바꿔치기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나의 바보같은 일에 대한 긍정이 현실화되는 기분이 드니까. *오직 성과는 점수로만 이해된다. 따라서 점수만 만족한다면, 언젠가 인간에게 금지된 걸 먹여보고 싶었다는 바보같은 욕망조차 긍정받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 Back A Review of Consume Me: The Rise of the Personal Game and the Shifting Meaning of Eating 30 GG Vol. 26. 6. 10. Consume Me is a game with many peculiar facets, in more ways than one. Developed by the Chinese American developer Jenny Jiao Hsia and her collaborator AP Thompson, it won the Seumas McNally Grand Prize—the grand prize—at the 2025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Despite winning at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festival in the global game scene, there is not a single instance of this game being reviewed in domestic game media. Setting aside, of course, Korea's game webzines with their interest only in industry discourse, even among the more than 1,000 Steam reviews, Korean-language reviews number a mere three. Why has this happened? According to Metacritic, seventeen outlets reviewed Consume Me , including major game media such as Edge and Eurogamer , as well as general-interest papers like the Guardian . Yet in Korea uniquely, almost no criticism of Consume Me arose at all. This is, above all, perhaps because Consume Me was a personal game—one that transformed Jenny's own story, to a certain degree, into a fictionalized game situation. Of course, given that domestic game journalism has developed within an industry-centered grammar, this response may, in a way, be only natural. Korean game discourse has long developed around industrial elements—market size, platform competition, business models, updates, e-sports—and as a result, a critical language for reading games at the level of personal expression or performative experience was relatively hard to accumulate. Yet individuals who had been developing small games survived within the market from the late 2000s on, switching their weapons little by little to Flash, Unity, HTML5, and so on, and this became the occasion for a democratization of indie game development. Anna Anthropy, who in 2012 wrote a book titled 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 , regards games in it as a tool of artistic and personal expression and emphasizes the message that anyone can become a creator.[1] As the accessibility of game-making tools increased, she argued, one could make games expressing personal experiences and emotions even without programming skills. She explained this current by way of the "zine" movement, the self-publishing culture of the past. The book's subtitle is "How Freaks, Normals, Amateurs, Artists, Dreamers, Drop-outs, Queers, Housewives, and People Like You Are Taking Back an Art Form." Jenny, who developed Consume Me , was no more than a sensitive teenager—keenly attuned to dieting and good at drawing—but on entering the NYU Game Center and meeting a partner who could shore up the programming, she became able to turn her own autobiographical story into a game. Consume Me takes as its material the obsession with dieting that Jenny experienced during her high school years. The player takes Jenny's position and, through puzzle-form minigames, must hit calorie targets when eating, and when these are exceeded, must meet the calorie target through exercise, household chores, and the like. But as the chapters progress, the tasks and events imposed on Jenny pile up. In Chapter 2, she has to save money for a date with her boyfriend, which has to be covered by helping with chores and getting an allowance from her mother. In Chapter 3, a rival appears at school and she must win the contest against them, while at the same time the calorie-management figures rise. And in Chapter 4, she has to keep up a long-distance relationship with her boyfriend, where sending messages or making video calls all mortgages what little free time remains in the day. Before long, exercise gets pushed back, and laundry, cleaning, walking the dog, studying, and the rest are easily neglected. * A mealtime scene from Consume Me The progression of Consume Me unfolds, on the whole, through this form of dieting and time management. Up to this point, the method differs little from existing game mechanics. But the developer's mechanical framing of the act of eating, and the attitude with which the game brings itself to a close, show a difference from games faithful to genre grammar. Generally, the act of eating in games has been keyed to the grammar of reward systems—the recovery of energy, growth through buffs, and so on. But in Consume Me , the act of eating leads to guilt and to self-censorship through calorie calculation, and this expands into the psychological anxiety of Jenny, the protagonist within the game. Another interesting point is the hand-drawing-based visual style of Consume Me . Jenny's expressions and gestures within the game, the shapes of the food, the interface design—all maintain a doodle-like exaggeration and cuteness, which keeps the player from viewing the in-game situations only through an excessively tragic or pathological lens. Jenny is engulfed in anxiety as she endlessly calculates calories and fails at self-management, but the game does not reproduce this only in a heavy, depressive way. Rather, Consume Me maintains a somewhat comical, self-deprecating distance while making us observe self-loathing and obsession. This mode of expression seems closer to having the player follow, for a moment, the wavering performative structure of a human being than to pushing them into cheap pity or self-pity. The mealtime scenes of Consume Me proceed as simple minigame-style puzzle-fitting. The foods appear in forms like Tetris blocks, and through these you must fill Jenny's stomach to the brim. But there are always a block or two's worth of cells you can't fill, and this lowers Jenny's satiety figure. To make up for it, you can get by—buying a one-cell block, a cheese topping, for $3 at the shop and then fitting the puzzle. Only, this cheese topping is very high in calories relative to its block size and also high in price, so it can't be used often. The player therefore always has to keep low-calorie but high-priced vegetable dishes and the like stocked, expensively, at the shop, and for this must perfectly help with the mother's chores to top up the allowance. But if you stay faithful only to chores and the act of eating, time runs short for studying, exercising, and dating the boyfriend, so rigorous planning and time management according to schedule and events become necessary. Yet Consume Me shakes up this time-management system by inserting, midway through the schedule, random events the player can hardly control. The ideal body, diet, and self-management the player pursues are, at a glance, set up as in-game goals, but the game continually inserts points at which this ideal body and self-management are bound to fail. Even without recalling the rhetoric of failure[2] from Ian Bogost's famous game-theory book Persuasive Games , this game has made us retrace that process of failed self-management we have experienced countless times in daily life. The failure one comes to experience in Consume Me can be seen as closer to a device that makes you experience how unsustainable modern society's self-management ideology is, rather than simply meaning a failure of self-management. Strictly speaking, however, Consume Me does not use the extreme rhetoric of failure of works Bogost cited as examples in Persuasive Games , such as September 12th or McDonald's Videogame . The game's ending, in several events, makes you traverse back and forth between a procedurality and causality so rigidly close to our lives and a humanity whose outcome cannot be known. Moving into Chapter 3, Jenny's boyfriend Oliver goes into a brief long-distance relationship, and here the game decreas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by –3 each day. Chatting by message recovers +2 in the relationship, and a video call recovers +5, but message chat consumes one hour and a video call two hours. Since the free time given in a day is only two hours, the player always has to invest at least about an hour in chores, studying, exercise, and so on, and spends the remaining hour on message chat with Oliver. Yet despite this investment, repeating only message chat will inevitably drive the two's relationship toward catastrophe. After many twists and turns, on moving into Chapter 4, Jenny faces a situation where, after a consultation with the college guidance counselor, she has to settle on a target university and write an admissions essay. Since this demands still more time, Jenny tearfully confides the situation to Oliver. At this Oliver kindly replies, "Our relationship isn't a video game. Do I look that petty to you? Even if you don't contact me for a week or so, I think our relationship is fine. So focus on writing your college admissions essay." * A video-call scene from Consume Me In this way, Consume Me shakes up the trap of the mechanical pattern inherent in the game's procedural rhetoric (or rhetoric of failure) itself, foregrounding the strengths of the personal game. In the end, at some point in this game, the player comes to realize that it is hard to sustain this mechanical self-management mechanic perfectly. In that process, Jenny, the protagonist within the game, comes to realize for herself that she cannot perfectly accomplish dieting, romance, exercise, college admissions, and friendships all at once. And then she arrives at the conclusion that, because life goes on anyway, she has to live on somehow. This shows, in a way, the process of "self-compromise" by which our lives are always sustained—something with a face very different from the procedurality of the digital game. To show how the mechanical face of a game's procedurality can be supplanted by the I-novel-like individuality of the modern novel, Consume Me pushes the player into a structure of agency. The philosopher C. Thi Nguyen has explained games as an art form of "temporary agency," in which the player temporarily borrows another structure of agency.[3] Just as the I-novel put the interiority of the modern subject into language, the personal game makes the system that constitutes the contemporary personal subject playable and makes us think within it. And after internalizing the player into thoroughly following the system of procedurality, it arrives at an ambiguous ending that defends humanity by deftly twisting, through the flaws within that structure, the point that our lives are not composed of procedurality alone. In fact, the first time I played Consume Me was at BIC in 2019. At the BIC held the year just before COVID broke out, I was serving as chair of the jury, and the Consume Me I played then was a game dealing only with the current Chapter 1—that is, the eating disorder Jenny had experienced. That incomplete build was somewhat closer to a social impact game than the present one, and the individuality did not protrude much. But after five years of development, the Consume Me released on Steam returned, with added volume, as a more composite personal game combining romance, college admissions, friendships, and more. To be sure, the clear problem-framing of the eating disorder was somewhat diluted, and the density of closed obsession that the early demo had possessed was also reduced. Yet over those five years of development, Consume Me changed, beyond a simple social impact game, into a personal game encompassing the structure of life as a whole—romance, college admissions, friendships, labor. The commercialized Consume Me became a far richer and more playable game, but precisely because of that richness, the suffocating sense of self-management that the early demo had shown was somewhat eased. If the early Consume Me was a game that pushed the player into a single obsessive performative structure, the finished Consume Me came closer to a game that shows the fact that, even within that structure, the human being can never, in the end, be fully proceduralized. * The various weekly goals and self-management system of Consume Me So why, then, have such personal games rarely emerged in contemporary game development culture? The explanation that large-scale game development, being collective creation, made personal expression impossible, and that only with indie games could solo developers or small teams finally speak such stories aloud—this, I think, is only half right. The game is a medium required to have a structure of agency that makes you play it in a particular direction, and a system transparency in which a clear purpose of play must be set. In other words, that the medium of the game has long been designed in a way unsuited to expressing "personal experience" corresponds, I would suggest, to the other half of the explanation. Compared with the media of literature and film, which relatively quickly accepted an individual's depression, desire, obsession, and trivial emotions as objects of expression, the game long developed its systems only around victory, mastery, conquest, efficiency, and clear goals. In other words, the game needed a simplified rationality for clear goals, calculable values, optimizable choices, and the like—and the personal game, using various rhetorical devices, is expressing, little by little, the eating disorders, depression, self-loathing, anxiety, and obsession that had been hard to express in games. For this reason, the personal game does not stop at being merely a game that handles a personal story. Consume Me , by twisting the structure of agency granted to the player, depicts the ordinary individual—the wavering human being—who experiences emotional depletion while enduring repetitive obsession, self-surveillance, and the failures that follow from imperfect choices. If the modern I-novel discovered the interiority of the modern person, the contemporary personal game makes playable the very performative structure of the contemporary human who lives within the logic of self-management and optimization. And Consume Me , by ceaselessly inserting contingency, failure, and emotional wavering into that structure, shows the fact that the human being can never be fully proceduralized. [1] Anna Anthropy, 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 (Seven Stories Press, 2012). [2] Ian Bogost has noted a rhetoric of failure whereby a game developer, through the design of mechanics, deliberately inserts a process of failure into the game, making the player experience failure and thereby arrive at an intended realization. This rhetoric of failure is recognized as a game-specific rhetoric difficult to realize in other media.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The MIT Press, 2010). [3] C. Thi Nguyen, Games: Agency as Art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 Back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30 GG Vol. 26. 6. 10.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무엇보다 <컨슘 미>를 개발한 제니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가공의 게임적 상황으로 변모시킨 개인적 게임(Personal Games)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 게임 저널리즘이 산업 중심의 문법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한국의 게임 담론은 오랫동안 시장 규모, 플랫폼 경쟁, BM, 업데이트, e스포츠와 같은 산업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그 결과 게임을 개인적 표현이나 수행적 경험의 차원에서 읽어내는 비평 언어는 상대적으로 축적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작은 게임을 개발해 온 개인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플래시나 유니티, HTML5 등으로 무기들을 바꿔가며 시장 내에서 생존했고 이는 인디게임 개발의 민주화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비디오 게임 진스터의 부상(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이라는 책을 쓴 안나 앤스로피(Anna Anthropy)는 이 책에서 게임을 예술적·개인적 표현의 도구로 바라보며,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1] . 게임 제작 도구의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프로그래밍 기술이 없어도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러한 흐름을 과거의 자비출판 문화인 ‘진(zine)’ 운동에 비추어 설명했다. 이 책의 부제는 “괴짜, 평범한 사람들, 아마추어, 예술가, 몽상가, 낙오자, 퀴어, 주부, 그리고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술 형식을 되찾고 있는가”이다. <컨슘 미>를 개발한 제니는 다이어트에 민감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불과했지만, 뉴욕대(NYU) 게임센터에 진학하여 프로그래밍을 보강해줄 파트너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게임으로 바꿔낼 수 있게 되었다. <컨슘 미>는 제니 자신이 고교 생활 중 경험했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소재로 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제니의 입장이 되어 퍼즐 형태의 미니 게임을 통해 음식을 먹을 때 칼로리 목표를 맞추어야 하고, 이를 오버했을 때에는 운동이나 가사 등을 통해 칼로리 목표치를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챕터가 진행될수록 제니에게 부과되는 일과 이벤트는 늘어나게 된다. 챕터 2에 들어가면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데 이는 가사 일을 도우면서 엄마로부터 용돈을 타쓰는 것으로 충당해야 한다. 챕터 3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라이벌이 생기고 그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며, 동시에 칼로리 관리 수치도 높아진다. 또한 챕터 4에 들어가면 남친과는 원거리 연애를 지속해야 하는데, 메시지를 보내거나 영상 통화를 하는 것이 모두 하루에 얼마 남지 않은 자유 시간을 저당잡히게 된다. 그러다보면 운동도 밀리고, 빨래, 청소, 강아지 산책, 공부 등이 소홀해지기 쉽다. * <컨슘 미>의 식사 장면 <컨슘 미>의 게임 진행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다이어트와 시간 관리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게임 메커닉과 큰 차이가 없는 방식이다. 다만 먹는 행위에 관한 개발자의 메커닉 설정과 게임을 결말 짓는 태도는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게임들과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먹는 행위는 에너지의 회복과 버프를 통한 성장 등 보상 체계의 문법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컨슘 미>에서 먹는 행위는 죄책감과 칼로리 계산을 통한 자기 검열로 이어지며, 이는 게임 내 주인공 제니의 심리적 불안으로 확대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컨슘 미>의 핸드드로잉 기반 비주얼 스타일이다. 게임 속 제니의 표정과 몸짓, 음식의 형태,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낙서 같은 과장과 귀여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상황을 지나치게 비극적이거나 병리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만든다. 제니는 끊임없이 칼로리를 계산하고 자기 관리를 실패하면서 불안에 휩싸이지만, 게임은 이를 무겁고 우울한 방식으로만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컨슘 미>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자조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자기혐오와 강박을 관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플레이어를 값싼 동정이나 자기연민으로 밀어넣기보다, 흔들리는 인간의 수행 구조를 잠시 따라가 보도록 만드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컨슘 미>의 식사 장면은 간단한 미니 게임류의 퍼즐 맞추기로 진행된다. 음식들은 테트리스의 블록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제니의 위장 속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나 늘 한두 칸 정도 채우지 못하는 블록이 남게 마련이고, 이는 제니의 포만감 수치를 떨어뜨린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매점에서 $3를 주고 1칸짜리 블록인 치즈 토핑을 구매해 놓은 뒤 퍼즐을 맞추거나 하는 식으로 넘길 수 있다. 다만 이 치즈 토핑은 블록 크기 대비 매우 고칼로리이고 또 가격도 높기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칼로리가 낮지만 가격이 높은 채소 요리 등을 늘 가게에서 비싸게 상비해 놓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엄마의 가사 일을 완벽하게 도와 용돈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가사 일과 먹는 행위에만 충실하면, 공부와 운동, 남친과의 데이트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일정과 이벤트에 따른 엄정한 계획과 시간 관리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컨슘 미>는 일정표에서 도중에 플레이어가 통제하기 어려운 랜덤한 이벤트를 삽입함으로써 이러한 시간 관리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플레이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몸과 식단, 자기관리는 얼핏 보기에 게임 내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만 게임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몸과 자기관리를 실패할 부분을 삽입시키고 있다.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유명한 게임 이론서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의 실패의 수사학(Rhetoric of failure) [2] 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게임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던 그 자기관리의 실패 과정을 답습하게 만들어 놓았다. <컨슘 미>에서 경험하게 되는 실패는 단순히 자기관리의 실패를 의미한다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자기 관리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가를 체험시키는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컨슘 미>는 보고스트가 『설득적 게임』에서 예시로 든 <9월 12일(September 12th)>나 <맥도날드 비디오게임(McDonald’s Videogame)>과 같은 극단적 실패의 수사학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게임의 결말은 몇몇 이벤트에서 우리 삶에 굉장히 가까울 정도로 딱딱한 형태의 절차성과 인과관계와 결말을 알 수 없는 인간성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횡단하게 만든다. 챕터 3으로 넘어가면 제니의 남자친구 올리버는 잠시 원거리 연애를 하게 되는데, 이 때 게임은 매일 둘의 관계를 –3씩 감소시킨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채팅을 하면 관계는 +2가 회복되고 영상 통화를 하면 +5가 회복되는데, 메시지 채팅에는 1시간, 영상 통화는 2시간이 소모된다. 하루에 주어진 자유 시간은 2시간뿐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늘 가사일이나 공부, 운동 등에 최소 1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하고, 나머지 1시간을 올리버와 메시지 채팅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채팅만을 반복한다면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챕터 4로 넘어가면 제니는 진학지도 선생님과의 상담 후에 목표 대학을 정하고 입학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제니는 울면서 올리버에게 이러한 상황을 털어놓는다. 이 때 올리버는 “우리 관계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쫌생이로 보여? 한 1주일 정도 네가 나한테 연락하지 않더라도 나는 우리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봐. 그러니 대학 입학 에세이 작성에 집중해.”라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 <컨슘 미>의 영상 통화 장면 <컨슘 미>는 이처럼 게임이 가진 절차적 수사학(혹은 실패의 수사학) 자체가 지니는 기계적인 패턴의 함정을 흔들어 놓으면서 개인적 게임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결국 이 게임에서 어느 시점에선가 플레이어는 이러한 기계적인 자기 관리의 메커닉을 완벽하게 지속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게임 내 주인공 제니 스스로도 다이어트, 연애, 운동, 입시, 교우 관계 등을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그래도 삶은 지속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어찌보면 우리 삶이 늘 지탱해오는 ‘자기 타협’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디지털 게임의 절차성과 매우 다른 면모를 지닌다. 게임이 가지는 절차성의 기계적 면모를 어떻게 근대 소설이 가진 사소설(私小說)적 개인성으로 대치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컨슘 미>는 플레이어를 수행(agency)의 구조로 밀어넣는다. 철학자 C. Thi Nguyen은 게임을 플레이어가 일시적으로 다른 수행 구조를 차용하는 ‘임시적 수행(temporary agency)’의 예술 형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3] . 마치 사소설이 근대적 주체의 내면을 언어화했던 것처럼, 개인적 게임은 동시대의 개인적 주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플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그 안에서 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플레이어를 절차성의 시스템을 철저히 따르도록 내면화 시킨 후, 그 안의 결점을 통해 우리 삶이 절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교묘하게 비틀어 인간성을 옹호하는 모호한 결말을 내린다. 사실 <컨슘 미>를 처음으로 플레이 했던 것은 2019년 BIC에서였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직전 해에 열렸던 BIC에서 필자는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그 때 플레이 했던 <컨슘 미>는 지금의 챕터 1, 그러니까 제니가 겪었던 섭식 장애만을 다룬 게임이었다. 그 불완전했던 빌드는 지금보다는 좀 더 소셜 임팩트 게임에 가까웠고 개인성은 크게 돌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5년의 개발 후 스팀에 공개된 <컨슘 미>는 볼륨이 더해지면서 연애, 입시, 교우 관계 등이 결합된 더 복합적인 개인적 게임으로 돌아왔다. 물론 섭식 장애에 대한 명확한 문제 설정은 다소 희석되었고, 초기 데모가 지녔던 폐쇄적 강박의 밀도 역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5년의 개발 과정 속에서 <컨슘 미>는 단순한 소셜 임팩트 게임을 넘어 연애, 입시, 교우 관계, 노동과 같은 삶 전체의 구조를 포괄하는 개인적 게임으로 변화했다. 상용화된 <컨슘 미>는 훨씬 더 풍부하고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되었지만, 바로 그 풍부함 때문에 초기 데모가 보여주었던 숨막히는 자기관리의 감각은 다소 완화되었다. 초기의 <컨슘 미>가 플레이어를 하나의 강박적 수행 구조 안에 밀어넣는 게임이었다면, 완성된 <컨슘 미>는 그 구조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완전히 절차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임에 가까워졌다. * <컨슘 미>의 다양한 주차별 목표와 자기 관리 시스템 그러면 현대 게임 개발 문화에서 이러한 개인적 게임이 잘 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 게임 개발은 집단적 창작이기 때문에 개인적 표현이 불가능했고 인디 게임에 와서야 1인 개발 혹은 소규모 팀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겨우 입밖으로 낼 수 있었다는 이유는 절반만 맞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은 구조적으로 게임을 특정한 방향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수행(agency) 구조, 뚜렷한 플레이의 목적이 설정되어야 하는 시스템 투명성을 요구받는 매체이다. 다시 말해 게임이라는 매체가 오랫동안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왔다는 것이 나머지 절반의 설명에 해당하지 않을까. 문학과 영화라는 매체가 비교적 빠르게 개인의 우울과 욕망, 강박, 사소한 감정을 표현 대상으로 받아들인 것에 비해 게임은 오랫동안 승리, 숙련, 정복, 효율, 명확한 목표를 중심으로만 체계를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에는 명확한 목표, 계산 가능한 가치, 최적화 가능한 선택 등을 위한 단순화된 합리성이 필요했던 것인데, 개인적 게임은 여러 수사학 장치들을 이용해 그간 게임에서 표현이 어려웠던 섭식장애, 우울, 자기혐오, 불안, 강박 등을 조금씩 표현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적 게임은 단순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컨슘 미>는 플레이어에게 부여되는 수행 구조를 비틀면서 반복적인 강박과 자기 감시, 불완전한 선택에 따른 실패를 감내하면서 감정적 소모를 경험하는 평범한 개인, 그리고 흔들리는 인간을 그린다. 근대의 사소설이 근대인의 내면을 발견했다면, 현대의 개인적 게임은 자기관리와 최적화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인간의 수행 구조 자체를 플레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컨슘 미>는 그 구조 속에 끊임없이 우발성과 실패, 감정적 흔들림을 삽입함으로써 인간은 결코 완전히 절차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Anna Anthropy, 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 Seven Stories Press, 2012 [2] 이안 보고스트는 게임 개발자가 메커닉 설계를 통해 게임 속에 실패의 과정을 의도해서 삽입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를 경험하게 하여 의도적인 깨달음을 얻게끔 만드는 실패의 수사학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실패의 수사학은 다른 매체에서 구현이 어려운 게임 고유의 수사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The MIT Press, 2010. [3] C. Thi Nguyen, Games: Agency as Art,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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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메인테마 Intro 게임 속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이경혁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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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30 맛과 냄새가 없는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Read More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Read More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Read More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Read More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Read More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Read More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Read More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ad More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Read More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Read More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Read More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Read More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Read More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Read More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Read More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Read More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Read More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Read More
-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Back Was That Mandu Really So Tasteless? Recollections of 2000s Cooking Flash Games 30 GG Vol. 26. 6. 10. "Ptooey, ptooey! The mandu you made tastes terrible." The Gohyang Mandu man spat out the dumpling along with his withering verdict. Mandu folded so carefully by a child's little hands gets rejected, over and over. Does the filling take sesame oil? Can you pan-fry a coiled one? This is the player, mouse in hand, turning the problem this way and that. Most children who played flash games in the 2000s will remember this one. It has been well over twenty years since the flash game Gohyang Mandu came out. And yet people still talk about it. Even now, when someone posts a "Gohyang Mandu challenge" run on YouTube, others gather to watch, nod along, and dredge up their own childhood. Some say they only managed as adults to clear what they never could back then. Countless games drifted through our childhoods—so why does the Gohyang Mandu game, of all of them, stay etched so vividly in memory? Child, Win Over the Fussy Proprietor The "ajeossi" of Gohyang Mandu , "Shu" of the ramyeon shop, "Jumma" of the meat-grilling game, "Chef Tinghowa" of the jjajangmyeon game. Among flash games, plenty took cooking as their subject, and they shared a common figure: a character who kept watch over the cyber-kitchen and passed judgment on the food. ( Ajeossi and jumma / ajumma are familiar Korean terms for a middle-aged man and woman—the gruff, everyday grown-ups of the neighborhood.) But the child playing was no expert cook. Still learning the world, they had neither the knowledge to choose ingredients nor a sure hand on the mouse. Inevitably, the cooking heads for failure. And you can read that failure at a glance from the character's plight. Shu, decked out in pink, is sentenced to dishwashing when the player scorches the ramyeon pot. Jumma, who misses the moment to flip the meat, gets an ending where she goes hungry before a slab of blackened beef. The Gohyang Mandu man recites, point by point, exactly why the mandu is bad. Chef Tinghowa—the most theatrical of the lot—hurls the bowl and shouts that it tastes awful. Watching all this, a child laughs at how ridiculous the character is even as the urge to try again takes hold. So the 2000s cooking flash games share a curious family resemblance: the goal of earning a passing grade from a virtual grown-up, and the child players sweating it out with clumsy skills. Try hard enough and you might reach a praise ending, but more often you were treated harshly, served up alongside your bad cooking. Even so, by the nature of flash games, retrying was easy—you could replay as many times as you liked. In 〈Chef Tinghowa: Jjajangmyeon〉, the child earns praise by making a tasty bowl of jjajangmyeon. Wasn't Chef Tinghowa, after all, the child's partner in a game of make-believe house? "Playing House" Moves onto the Digital Screen Children play by imitating grown-ups, and we call it playing house ( sokkomnori ). Among its forms, the most everyday is the mimicry of keeping a home—gripping stones and sand and laying them out as rice and side dishes. Playing house is one face of how a child learns the world. And if the child even asks how the stone-food tastes, that is surely imitation of the nearest adults, the parents they have been watching. In the sense of a game about making food, the cooking flash game is a digital version of playing house. A child frustrated by bad cooking retries; but a child's house-play curiosity—"what would the character do if I left out one ingredient?"—also keeps the game replaying. What digitization changed is that, in place of stones and sand, an image of food on the screen takes on a convincing shape. You cannot touch it, but cooking comes together by sight and sound with each click, and so the play pulls you in more deeply. Virtual characters like Shu or the Gohyang Mandu man fill the empty seat of the make-believe playmate. A child alone with a mouse might have been bored, but the characters minding the kitchen, playing along, add the pleasure of role-play. And they did more than hold down a spot in the skit—they responded to the player's every success and failure, taking on the emotional give-and-take of real interaction. In this way cooking-house became the cooking flash game, and acquired the structure of role-play in sharper, more vivid images. Come to think of it, the flash game was where a child performed their very first stint of kitchen work. With hands that had never once held a knife, they folded mandu, boiled ramyeon, and sold it—and the experience happened on screen before it ever happened for real. In early childhood the brain is still rapidly growing, and a first-time memory gets carved deep, easily summoned even in adulthood. It is the same logic by which a jingle heard as a child is still hummed years later. That is part of why the memory of the cooking flash game stays imprinted so long. In 〈Jumma's Meat Grilling〉, the grilling is staged appetizingly through images and sound, yet there is no heat off the grill, no danger of spattering oil. A safe cooking experience, in other words. Kitchen Work, Sliced Frame by Frame In a flash game, cooking is designed as a game through the challenge of, and the grading of, what order to proceed in, when to move, and which ingredients to pick. In Shu's Ramyeon Shop , the scallions and egg must go in only after the bubbles show that the ramyeon water has come to a boil; in Chef Tinghowa , you have to fry the chunjang first, then mix in the pork. You cannot change the order at will. Timing matters too. Because the ramyeon water boils after about four seconds, a fixed sequence of tasks must be completed on schedule; in Jumma's Meat Grilling , each side of the meat has its set cooking time, and Chef Tinghowa likewise demands that the wok work be timed to a "well-cooked" mark. Nor can just any ingredient go in. In Gohyang Mandu , the puzzle of picking only seven of fourteen options for the filling looks far from easy, even to a seasoned cook. The visual change—mandu taking shape, ramyeon settling into the bowl, meat browning—is the immediate feedback a child's eye responds to best, and it can be run again, freely, any number of times. Burn something in real cooking and the ingredients are gone; ruin it in a game and you lose nothing. To wipe away the sting of failure at once and start over was a generous arrangement for a young player. Mercifully, none of the kitchen dangers a child might face exist in the game. No cutting your hand on a knife, no burns from working the wok. In the end, weren't the cooking flash games well-made play-house kits you could reuse over and over? Food is a thing made of procedure to begin with, which makes it easy to port into a game. And so someone noticed exactly this—and turned the gamifying of cooking into a form of advertising. 〈Shu's Ramyeon Shop〉 is a high-difficulty game, hard even in adult hands. Which is exactly why time spent on the website Haitai Confectionery ran stretched longer. Who Set Up This Kitchen? When Game and Advertisement Merge An advergame is a portmanteau of advertisement and game. Roughly from the late 1990s into the 2000s, food companies' websites began offering children "playable ads"—content you could fairly call games—tied to their products. In the United States, food companies including Kellogg's, McDonald's, and Coca-Cola produced and ran advergames of their own. The Gohyang Mandu and Shu games that Koreans now in their thirties remember are advergames. Gohyang Mandu is a Haitai Confectionery dumpling product, and the game was one of those distributed through iBravo, a flash-game website that Haitai operated. The Shu games lived on iBravo too. Flash games had become a kind of digital playing house for children, and iBravo—an advertising agenda laid quietly underneath—turned into the playground. Children sat in that playground folding mandu and boiling ramyeon. That said, Gohyang Mandu and Shu took different advertising approaches. Gohyang Mandu is so simple as to be downright blunt: you have to land the correct recipe. What you folded in the game was the very dumpling Haitai sold, and hitting the right recipe amounted to memorizing the product. Tucked into the ingredient puzzle were Haitai's own snacks, like Ace and Ongseu-jjang. The Shu game, by contrast, aimed not at an immediate product pitch but at dragging out the minutes, keeping you there. Neither the ramyeon Shu cooks, nor the dress-up clothes, nor the makeup you apply was anything Haitai sold. What the Shu game was after was time—getting children to drop by Haitai's website one more time, and to grow fond of the pink character. The Playground May Vanish, but the Play Does Not The cooking flash games were games for everyone. No download, no sign-up, no parental permission required. One click and the kitchen opened—in the school computer lab, at a friend's house, during recess. They needed no heavy hardware, and a single round did not run long. Those were their hallmarks. Look closely and Gohyang Mandu and Shu were ads selling products, while Jumma's Meat Grilling and Chef Tinghowa were built to raise visitor numbers. One made games to sell snacks, another to hold visitors on a site—the aims differed a little, but the results looked alike. Playing house was processed into a digital game, and children, in front of the screen, began playing house all over again. And so the genre of the cooking flash game was made. Flash, the platform underneath it all, ended service around 2020. Yet that fact seems hardly to matter to us. Just as we still gather at the park to play the childhood "cops and robbers" long after the schoolyard is gone, we are people long accustomed to replaying vanished games on new platforms. So—was that mandu really so tasteless? There is no telling. The digital screen, in the end, cannot deliver taste. Whether the mandu we folded was any good, whether the ajeossi 's scorn was fair, there is no way to confirm. And still, someone today will open that old kitchen again. The little hands have grown now, but the Gohyang Mandu man on the screen will still spit out the dumpling if even a single ingredient is wrong. Ptooey, ptooey—the mandu you made tastes terribl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메인테마
이번호 메인테마 Main Theme 게임 속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이경혁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강신규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홍현영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이명규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이은우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이정엽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박이선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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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지난호보기 지난 호 보기 호별로 선택하여 지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호 선택 카테고리로 필터링 카테고리명 선택 GG Vol. 30 음식과 요리 맛과 냄새가 없는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30 Vol. 26. 6. 10. Articles 이현재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Read More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30 Vol. 26. 6. 10. Main Theme 이정엽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Read More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30 Vol. 26. 6. 10. Main Theme 이은우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Read More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30 Vol. 26. 6. 10. Articles 이선인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Read More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30 Vol. 26. 6. 10. Main Theme 이명규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Read More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30 Vol. 26. 6. 10. Trends 이경혁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ad More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30 Vol. 26. 6. 10. Texts 성훈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Read More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30 Vol. 26. 6. 10. Articles 박다흰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Read More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30 Vol. 26. 6. 10. Texts 오영욱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Read More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30 Vol. 26. 6. 10. Articles 서도원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Read More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30 Vol. 26. 6. 10. Intro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Read More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30 Vol. 26. 6. 10. Main Theme 박이선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Read More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30 Vol. 26. 6. 10. Main Theme 이경혁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Read More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30 Vol. 26. 6. 10. Articles 박동수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Read More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30 Vol. 26. 6. 10. Articles 박이선 Jisu Kim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Read More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30 Vol. 26. 6. 10. Texts 김지수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Read More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30 Vol. 26. 6. 10. Main Theme 강신규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Read More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30 Vol. 26. 6. 10. Intro 이경혁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Read More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30 Vol. 26. 6. 10. Main Theme 홍현영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Read More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29 Vol. 26. 4. 10. Main Theme 홍성갑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Read More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29 Vol. 26. 4. 10. Articles 영이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Read More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9 Vol. 26. 4. 10. Texts Gwendolyn Yap 이경혁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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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30 맛과 냄새가 없는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editor's View] On How a Medium That Cannot Eat Approaches the Instinct to Eat Eating is essential to an animal's survival. Humans are animals too, so we die if we do not eat; every human being is, at bottom, bound up with the act of eating. Yet the fact that we call what humans eat not "feed" but "food," "provisions," reveals that human eating is not composed of physiological need and the survival instinct alone. To gather ingredients and cook them into a dish—or to accumulate those same ingredients and process them into the resource we call provisions—is a process that is at times social, at times political and economic, and in many cases one we read back through a cultural frame. Announcement: The 5th GameGeneration Game Criticism Contest GameGeneration holds an annual Game Criticism Contest to invigorate the criticism of digital games in Korea and to discover new writers, and we are pleased to announce the 2026 contest as follows. We look forward to the participation of all who are interested. How Digital Games Have Handled Food, and What We Are Really Looking At on Those Screens Anyone who ever wrestled with Teenage Mutant Ninja Turtles at the arcade will remember that what got our battered turtle hero back on his feet was a single slice of pizza. Every hit chipped away at his health, and the moment he stepped on a pizza that had rolled out from somewhere, it filled right back up. At a glance this recovery mechanic looks perfectly natural, but think about it a little longer and it turns strange: the idea that merely stepping on a slice of pizza heals the damage of a beating doesn't quite add up. Watched Cooking, Played Survival: The Empty Seat Between Cooking-Survival Entertainment and Games There are many cooking games—the kind where you take a customer's order, combine ingredients, and finish a plate within a time limit. Yet the "cooking survival" format that television has spent so long refining has rarely managed to establish itself as a genre within digital games. This asymmetry is the starting point of this essay. Why has cooking become a game that works so well on broadcast, while in games it has never stood at the center of a competition contesting the quality of the cooking itself? Welcome to the Nomi Cup: The Greatest Wa-gall Cooking Contest Under Heaven The cake is a lie. Anyone who has played Portal cannot help but know this line. The game's AI, GLaDOS, promised the player a cake as a reward for clearing every test chamber—but the offer was false. More precisely, the cake exists; it merely sits in a room the player can never enter. After this mischievous scene, some players began, in earnest, to bake the cake beyond the screen—the Black Forest cake. Piecing together the fragments of a recipe that had flickered past on the monitor, they baked it and posted the photos. GLaDOS's cake was a lie, but it did not stay a lie forever. But Nothing Tastes of Anything in Game Cooking A great many of a game's play elements and mechanics are realized by imitating those of reality. Simulating any number of acts or phenomena—natural law, administrative procedure, the common sense of the humanities—is the basic stuff of games. One of the pleasures you feel while playing is hunting for how these copied phenomena and acts of reality come out similar and how they come out different. How Like a Dragon Remembers Korea's Flavors: From Yakiniku to Kimchi, Scenes of Korean Food in Games The Like a Dragon series tells stories of yakuza and criminal organizations, but at its center there always lies human desire. The desires to make money, gain power, win love, and dream of a better life are the principal engines running through both the main story and the substories. The player is led to grow characters, expand businesses, romance, indulge in entertainment, and desire something without end.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is desire is often translated, within the game's systems, into a matter of "hunger" and "fullness." A Review of Consume Me: The Rise of the Personal Game and the Shifting Meaning of Eating Consume Me is a game with many peculiar facets, in more ways than one. Developed by the Chinese American developer Jenny Jiao Hsia and her collaborator AP Thompson, it won the Seumas McNally Grand Prize—the grand prize—at the 2025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Despite winning at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festival in the global game scene, there is not a single instance of this game being reviewed in domestic game media. Setting aside, of course, Korea's game webzines with their interest only in industry discourse, even among the more than 1,000 Steam reviews, Korean-language reviews number a mere three. Why has this happened? According to Metacritic, seventeen outlets reviewed Consume Me, including major game media such as Edge and Eurogamer, as well as general-interest papers like the Guardian. Yet in Korea uniquely, almost no criticism of Consume Me arose at all.
-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Back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30 GG Vol. 26. 6. 10. "퉤퉤! 네가 만든 만두 맛없어."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플래시 게임 〈고향만두〉가 나온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게임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누군가가 유튜브에 고향만두 게임 도전기를 올리면, 사람들이 모여서 시청하고 공감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안 되던 걸 어른이 되어서야 깼다는 사람도 있다. 유년기에 스쳐간 게임은 숱하게 많은데, 고향만두 게임은 왜 하필 이토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을까? 어린이여, 까다로운 주인장을 만족시켜라 고향만두의 '아저씨', 라면가게의 '슈', 고기굽기의 '줌마', 짜장면 만들기의 '띵호와 주방장'. 플래시 게임 중에서는 요리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았다. 요리 플래시 게임에는 공통적으로, 사이버 부엌을 지키는 인물이 있었다. 음식을 평가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어린이 플레이어는 요리에 능하지 않은 존재다. 아직 세상을 배워나가는 중이라서, 재료를 선택할 지식도 없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스킬도 능숙하지 못하다. 어쩔 수 없이 요리는 실패로 향한다. 실패의 여부는 캐릭터의 상황을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다. 분홍색으로 치장한 슈는, 플레이어가 라면 냄비를 태워먹자 설거지 형벌에 처해진다. 고기 뒤집는 타이밍을 놓친 줌마는, 까맣게 탄 고기 앞에서 쫄쫄 굶는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고향만두 아저씨는, 만두가 맛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읊는다. 가장 강한 액션의 띵호와 주방장은, 그릇을 집어던지며 맛없다고 소리친다. 이런 광경을 보며 어린이는 캐릭터의 우스꽝스러움에 웃다가도 재도전 욕구에 휩싸인다. 이렇듯 2000년대 플래시 요리 게임들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가상의 어른에게 합격점을 받아내는 목표와, 서툰 실력으로 진땀을 빼는 어린이 유저들이다. 열심히 하면 칭찬 엔딩을 볼 수 있었지만 보통은 맛없는 요리와 함께 모질게 대해지는 편이었다. 그래도 플래시 게임의 특성상 다시 도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몇 번이고 리플레이 할 수 있었다. * <띵호와 주방장: 짜장면 편>에서 어린이는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 칭찬을 받는다. 띵호와 주방장은 어린이의 소꿉놀이 상대가 아니었을까? 디지털 화면으로 들어온 ‘소꿉놀이’ 어린이는 어른을 흉내내며 놀고, 이는 소꿉놀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돌멩이와 모래를 쥐고 밥이며 반찬이라 차리는 살림 흉내는 매우 일상적이다. 소꿉놀이는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의 한 모습이다. 돌멩이로 만든 음식이 맛이 어떠냐고 묻기까지 한다면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를 관찰해 따라하는 일일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보는 놀이의 측면에서, 요리 플래시 게임은 소꿉놀이의 디지털 버전인 셈이다. 맛없는 요리에 좌절해서 재도전을 하기도 하지만, “재료를 하나 덜 넣어보면 캐릭터 반응이 어떻게 될까?”하는 어린이의 소꿉놀이적 호기심에서 계속해서 게임이 리플레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화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돌멩이와 모래 대신 화면 속 음식 이미지가 그럴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질 수는 없어도 시각과 청각으로 클릭과 함께 요리가 만들어지다보니 놀이의 몰입력은 올라가게 된다. 슈나 고향만두 아저씨 같은 가상의 캐릭터는 소꿉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어린이 혼자 마우스를 쥐고 심심할 수 있었지만, 부엌을 지키며 같이 놀아주던 캐릭터들 덕분에 역할의 재미가 더해진다. 캐릭터는 역할극의 자리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의 성공과 실패에 일일이 반응했기에, 상호작용을 나누는 감정적 교류까지 도맡는다. 이렇게 요리 소꿉놀이는 요리 플래시 게임이 되었고, 한층 또렷한 이미지로서 역할극의 구조 또한 갖추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플래시 게임을 통해 어린이는 인생 최초의 주방 서비스를 실천한 셈이다. 칼질 한 번 안해본 손으로 만두를 빚고 라면을 끓여 판 경험이 현실보다 화면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다. 어린 시절 무렵 뇌가 한창 자라는 중인 데다 처음 겪는 기억이라면 두뇌 깊숙한 곳에 새겨져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호출된다. 어릴 적 들은 광고 음악을 어른이 되어서도 흥얼거리는 것은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요리 플래시 게임의 기억이 더 오래 각인되는 측면이 있다. * <줌마의 고기굽기>에서 고기를 굽는 일은 이미지와 효과음로 먹음직스럽게 연출되지만, 불판의 뜨거움이나 기름이 튈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한 요리 경험인 셈이다. 부엌일이 프레임 단위로 잘게 쪼개지다 플래시 게임에서 요리는,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어떤 타이밍에 움직일지, 어떤 재료를 고를지 도전하고 평가받는 것을 통해 게임으로서 디자인된다. <슈의 라면가게>에서 라면 물이 끊는 기포가 보인 다음 파와 계란을 넣어야 한다거나, <띵호와 주방장>에서 먼저 춘장을 볶은 다음 돼지고기와 섞어야하는 식이다. 마음대로 순서를 바꾸면 안된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라면 물은 약 4초 후 끓기 때문에 일련의 정해진 태스크를 시간에 맞게 완수해야하고, <줌마의 고기굽기>는 고기가 앞 뒤로 익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띵호와 주방장도 웍질에서 ‘잘 익힘’ 수준으로 타이밍 맞추기를 요한다. 음식의 재료 또한 아무거나 넣으면 안된다. <고향만두>에서 만두소에 들어갈 재료를 14개의 보기 중에서 7개만 골라내는 퍼즐은 요리 고수에게도 쉽지 않아 보인다. 만두가 빚어지고, 라면이 그릇에 담기고, 고기가 익어가는 시각적 변화는 어린이의 눈이 가장 잘 반응하는 즉각적인 피드백이고, 몇 번이고 부담없이 다시 실행할 수 있다. 실제 요리는 한 번 태우면 재료가 날아가지만 게임에서는 망쳐도 잃을 게 없다. 실패의 찝찝함을 곧바로 지우고 새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플레이어에게 너그러운 조건이었다. 다행이게도 어린이가 마주할 수 있는 주방에서의 위험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다. 칼을 쓰다 손을 벨 일도 없고, 웍질을 하다 화상을 입을 일도 없다. 결국 플래시 요리 게임은 잘 만들어진,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는 소꿉놀이 키트였지 않을까? 음식은 애초에 절차로 이루어진 일이라 게임으로 옮기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점을 정확히 알아채서, 요리의 게임화를 광고의 하나로 활용하기에 이른다. * <슈의 라면가게>는 어른의 손으로 플레이해도 어려운 고난도 게임이다. 덕분에 해태제과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체류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누가 이 부엌을 차렸나? 게임과 광고의 합체 애드버게임(advergame)이란 광고와 게임의 합성어다. 주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즈음, 식품기업의 웹사이트에는 상품과 관련된 ‘플레이 가능한 광고’ 또는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어린이를 겨냥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식품회사들 중에서 켈로그,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이 애드버게임을 만들어 서비스한 적이 있다. 한국의 30대들이 추억하는 고향만두와 슈 게임들은 애드버게임에 해당된다. 고향만두는 해태제과의 만두 제품으로서, 해태제과가 운영하는 ‘아이부라보’라는 플래시 게임 전문 웹사이트를 통해 유통하던 게임 중 하나였다. 슈 게임도 아이부라보에 있었다. 플래시 게임이 아이들에게 디지털 소꿉놀이처럼 되었고, 아이부라보는 광고의 목적을 밑에 깔면서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 놀이터에 앉아 만두를 빚고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다만 고향만두와 슈는 광고의 접근법이 다르다. 고향만두는 정답 레시피를 맞혀야하는 단순하다 못해 직접적인 화법이다. 게임 속에서 빚는 것이 곧 해태제과가 파는 그 만두였고, 정답 레시피를 맞히는 일은 사실상 제품을 외우는 일이었다. 재료 퍼즐에는 에이스와 옹스짱 같은 자사 과자 제품이 슬쩍 섞여 있었다. 슈 게임은 이와 다르게, 당장의 제품 소개가 아닌 오래 머물도록 시간을 끄는 것을 목표로 했다. 슈가 끓이는 라면도, 옷 입히기의 옷이나 바르는 화장품도 해태가 파는 물건은 아니었다. 슈 게임이 노린 것은 시간으로, 아이들이 해태의 웹사이트에 한 번이라도 더 들르게 하고, 분홍색 캐릭터에 정을 붙이게 만들도록 유도했다. 놀이터는 사라져도 놀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요리 플래시 게임들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었다. 다운로드도, 회원가입도, 부모님의 허락도 필요 없었다. 또한 클릭 한 번이면 학교 컴퓨터실에서도, 친구 집에서도, 쉬는 시간에도 부엌이 열렸다. 무거운 사양도 필요 없고 한 판이 길지도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향만두와 슈는 제품을 파는 광고였고, 줌마의 고기굽기와 띵호와 주방장은 웹사이트 방문자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누구는 과자를 팔려고, 누구는 웹사이트에 붙잡아두려고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과물은 닮아 있었다. 소꿉놀이는 디지털 게임으로 가공되었고, 아이들은 화면 앞에서 소꿉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요리 플래시 게임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비록 근간에 있던 플래시라는 플랫폼이 2020년을 기점으로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그 사실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운동장이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공원에 모여 어릴 적 '경찰과 도둑'을 여전히 플레이하듯,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라진 놀이를 새로운 플랫폼에서 리플레이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알 수 없다. 디지털 화면은 끝내 맛을 전하지 못한다. 우리가 빚은 만두가 맛있었는지, 아저씨의 혹평이 옳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오늘도 그 시절의 부엌을 다시 열 것이다. 고사리 손은 이제 커졌지만 화면 속 고향만두 아저씨는 여전히 재료가 한 개라도 틀린다면 만두를 뱉어낼 것이다. 퉤퉤, 네가 만든 만두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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