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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 Back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18 GG Vol. 24. 6. 10. * 데이비드 소로의 원작 <월든>은 2017년 디지털게임으로 발매된 바 있다. 스팀 등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다. 월든에 대한 단상 <월든(Walden)>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라는 인물이 되어 그의 삶을 체험한다. 소로는 1845년에 도시를 떠나 숲 속 외딴 오두막에서 몇 년간 거주했고, 그때 깨달은 점들을 책 <월든>으로 썼다. 책과 동명의 게임 <월든>에서 플레이어는 1845년의 소로가 되어 당시의 삶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소로처럼 사계절 내내 매일 나무에 망치를 두드려 집을 수리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옷을 기우며, 열매를 따서 병에 저장하고, 나룻배에 올라 노를 저어 호수를 이동한다. 실제 소로가 하던 일을 그대로 따라해보면서 여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소로가 남긴 책 한 권, 월든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월든>에서 소로가 도시와의 오랜 분리 생활 끝에 알게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과 게임에서 모두 언급되듯, 모든 사물에게는 각자 고유한 삶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사과나무는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와 계절에 맞게 성숙할 필요가 없었고, 어디선가 북소리 장단이 들려온다면 발걸음을 맞추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적, 시간, 가치판단 때문에 굳이 자신의 것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는 <월든>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단지 소로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미덕으로 여기는 ‘효율’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선택과 속도로 게임을 즐기기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속성뿐 아니라, 많은 게임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그에 맞춰 게임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아간다. 게임 문화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플레이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게임은 단순히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전개 방식을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폭넓은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부 제작자들은 비효율을 강요하기도 한다. 효율 떨어지더라도 감수할만한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게임 <월든>의 철학을 게임 플레이에도 적용하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비효율의 사례와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효율성보다 더 우선되는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 또는 인간 플레이어의 다양성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의도된 ‘비효율’ 게임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도 같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아이템을 선택하고 C라는 행동을 하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해답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는 수많은 조합이나 계산을 해보거나 공략을 찾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퍼즐의 답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들은 퍼즐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게임이 보장하는 정도(正道)를 무시하고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의적으로 행한다. 자신의 실력을 확인거나 과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데, 예를 들면 초보자의 무기를 가지고 보스 몬스터까지 격파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 <다크소울> 시리즈에서는 “SL1 Run”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캐릭터의 레벨을 전혀 올리지 않고 소울 레벨 1로 게임의 끝까지 완주하는 챌린지를 뜻한다. 쉽게 말해 ‘노렙업 플레이’이다. 스트리밍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플레이는 극단적인 모습에 무모하다는 감상을 전달하다가도 동시에 경외감을 선사하는 모습이다. 공격력이 매우 약한 초심자의 무기로 강력한 보스를 격파하는 이러한 도전은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의도된 비효율적 플레이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장 쉽게 증명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시간의 플레이 타임이나 스피드런 기록의 수치가 의미하는 플레이어의 실력이 있듯, 알몸 상태의 막대기로 보스를 이기는 비효율적인 실황은 자신이 얼마나 실력자인지 알리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생긴 ‘비효율’ 승리나 성공이 아닌 다른 것에 게임 플레이의 목적이 있는 경우에도 비효율의 상황은 발생한다. 단순히 멋지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무기, 장비, 스킬이 바로 그것이다. 어떠한 플레이어들은 능력적인 효과와는 상관 없이, 방어력이 비교적 낮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을 선택하거나, 노출된 몸이 더 아름답기 때문에 옷을 입히지 않기도 한다. 또는 냉기 마법보다 화염 마법이 덜 효과적인 상황임에도 불길이 이글거리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더 강렬해보인다는 이유로 화염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에 캐릭터와의 관계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배가되기도 한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는 포켓몬의 능력치를 따져 강력한 팀을 구성해 배틀을 진행해야 하지만, 자신과 게임 속에서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왔거나 더 귀엽다고 생각되는 포켓몬을 배정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선택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하다. 수납력이 떨어지는 불편한 지갑이라도 누군가와의 추억이 담긴 선물이라면 기꺼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 효율성을 과감히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인간의 삶 자체를 시뮬레이션화한 게임 <심즈4>는 현실처럼 다양한 직업군을 제공한다. 플레이어가 만든 캐릭터 ‘심’이 성장해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 하루종일 글만 쓰는 작가부터 명망있는 사업가, 인스타 인플루언서까지 50개에 달하는 직업이 플레이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듯 각각 직업군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모두 다르고 근무시간, 출근 요일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심즈4>에서 효율적인 플레이 방식은 캐릭터가 오랫동안 고소득 직장에서 능력을 쌓아 승진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심에게 극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린다. 다른 직업과 비교했을 때 시급이 적은 바텐더나 화가를 시켜 힘겨운 삶에 살게 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기 위해 승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낮은 보수의 직업을 이어나간다.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 ‘탈것’이란 보통 게임에서 말, 자동차, 비행기처럼 캐릭터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도보로 먼 거리를 이용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탈것은 게임에서 플레이의 효율을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아껴주는 편의성 콘텐츠로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어떤 게임들은 일부러 탈것을 존재시키지 않는다. 개발자의 의도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개발자들은 게임의 현실감을 증가시키고 싶은 의도에서 플레이어가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이동하도록 한다. 또는 탈것이 게임 내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이동속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탈것에게 기대하는 높은 속도의 이동이 아닌 실제로 그 수단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시간의 그대로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현실성의 강조는 탈것뿐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의 생활 방식 자체에 적용될 수 있다. <레드 데드 리뎀션2>는 현실적인 연출을 묘사한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캐릭터가 직접 사냥하고, 가죽을 하나하나 벗기고, 요리를 하는 시간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이러한 게임의 표현 방식은 일각에서는 현실성이 높아 몰입을 가져다준다는 평가 받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플레이어의 시간을 잡아먹고 답답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플레이타임 대비 얻은 게임 속 자원의 형편 없음을 지적했다.( 게임제너레이션 11호 글 참조) 혹자는 이런 상황을 보고 개발자들이 ‘낭만’을 추구한 결과라고 표현한다. ‘낭만’은 상대적인 가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답답함 뿐인 부정적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소위 ‘개발자의 낭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게임의 평판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가져오게 된다면 개발자는 뒤늦게 조치를 취하기도 하는데, 탈것을 유료 재화나 DLC로 추가 업데이트 하거나 불필요한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버튼 등의 시스템을 추가한다. 물론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적 플레이는 개발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에 의해 추구될 수도 있다. 탈 것이 있음에도 타지 않는 플레이어들에 해당되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 <용과 같이 8>에서 캐릭터를 빠르게 먼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는 택시라는 수단이 있었음에도 잘 이용하지 않았다. 평소 일본 요코하마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선뜻 실현할 수 없었는데, 게임 속 배경인 요코하마의 거리 풍경이 너무 잘 표현되어있었기 때문에 굳이 도보를 통해 걸어가면서 여행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덕분에 플레이타임은 게임 공략에서 제시하는 수준보다 훨씬 초과하였지만, 주변 경관을 즐기기 위해 느릿느릿 도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오히려 더 가치있는 플레이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만들어진 (상대적인) ‘비효율’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비효율의 사례는 플레이어의 삶 전반에 깔린 태도이자 시간에 대한 문제다. 게임을 즐기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략을 보면서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부류와 공략 따윈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헤매고 깨닫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부류다. 두 타입의 플레이어 모두 각자의 만족감을 추구한다. 공략을 보지 않는 플레이어는 고행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데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반면 공략을 보는 타입의 플레이어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게임을 최적의 루트로 클리어 한다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플레이어의 태도는 각자의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나눠진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이라는 게임을 할 때의 일이었다. 게임에는 양초라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있다. 이 양초는 스킬이나 캐릭터 커스텀 등을 구입할 때 사용되는 주요 재화로, 게임의 맵 전체에 걸쳐 분포 되어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맵을 탐험하면서 양초를 수집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게임은 맵을 탐험하는 것이 주 콘텐츠였기 때문에 양초란 사실 수집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재화이기도 했다. 나는 한 플레이어와의 대화 중 어떤 이야기를 들었고, 그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읽은 양초 획득 공략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가 말하길, 전체 맵에는 총 00개의 양초가 분포되어 있고, 양초 위치를 외워서 최단 거리로 이동하면 이 게임은 하루 XX분만 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양초 위치가 표시된 맵 지도는 커뮤니티에 다 나와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 뒤에 이어진 내 대답은 크게 부응하진 못했다. “아, 그렇구나. 고마워. 근데 왜 그래야 하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는 플레이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 그 플레이어는 “하루 중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 XX분밖에 안된다”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소위 ‘효율충’이 되어버린 데에는 배경이 있음을 설명했다. 하루에 30분밖에 게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만을 추구해서 하루종일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동등한 성취를 얻도록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효율/비효율은 플레이어의 다양성의 문제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 게임을 어떻게 접근하고 경험하는지를 드러낸다. 효율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들은 빠른 진행과 최적의 결과를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선택을 계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탐험과 발견, 그리고 감정적인 만족감을 중요시한다. 이는 마치 소로가 숲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았듯이,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찾는 과정과도 같다. Tags: 제노바첸, 효율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적은 인구와 제한된 국토가 우리의 현실이다. 즉 우리의 하드웨어는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것도 기발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절묘한 연결성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건 미술관과 큐레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게임에도 그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중요한 적임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 Back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01 GG Vol. 21. 6. 10. 인간은 왜 창조적일까?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동만 하면 인간 외의 다른 동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종(種)으로서 가장 중요한 이 두 행동 외의 일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창조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뇌에서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으며 이 연결성이 바로 창조성을 만들어 내는 핵심이다. 그리고 이 연결성은 다양한 게임들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각기 다른 규칙성들과 그에 따른 피드백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게임에 익숙해지면 이제 곧 다른 게임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끊임 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이해하는 개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같은 기술과 자원으로도 차원이 전혀 다른 많은 것들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게임은 문화이자 교양이며 다시금 통합되어 그 사회의 역량이 되었다. 적은 인구와 제한된 국토가 우리의 현실이다. 즉 우리의 하드웨어는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것도 기발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절묘한 연결성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건 미술관과 큐레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게임에도 그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중요한 적임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Generation 발행인.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김경일
- [4회공모전수상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소외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인간 집단에서 배제되어 외로움을 느낀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소외라고 말하면 대체로 이를 의미한다. 반면 다른 하나는 철학 특히 마르크스가 주로 사용한 의미로, 한 인간이 특정 대상에 대한 주권을 상실하여 더 이상 주체로 있지 못 하고 오히려 그 대상의 객체로 전락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이 외부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상태를 뜻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oJun Ryu A gamer. Values games as entertainment, games as art, and games as experiment—all alike.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 Back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중국의 게임연구자 Jian Deng이 투고해온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이 너무 길어 번역은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축약하였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신 경우 별도로 게재한 아티클을 참고해 주십시오.- 원문링크: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패미클론과 학습용 컴퓨터 1980년에 행정부의 지도 하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중국이 처음으로 게임 콘솔을 개발한 것은 1981년 말의 일이었다. 베이징의 제1경공업연구소(北京第一轻工业研究所)에서 개발한 YQ-1은 〈퐁〉의 여러 버전이 내장된 콘솔로서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s)의 AY-3-8500칩을 사용했다. 이 콘솔이 1982년 소량 출시되기 시작한 이래, 항저우나 우시, 상하이, 내몽골, 광저우 등 타 지방의 공장들에서도 유사한 콘솔장치들이 조립/생산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YQ-1 콘솔의 모습(왼쪽), AY-3-8500칩(오른쪽) 1984년에는 2세대 콘솔이 중국 시장에 진입한다. 1985년까지 게임 콘솔은 외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주는 귀하고 비싼 선물이었는데(1986년 기준으로 1000위안 수준), 이러한 상황은 1987년 패미콤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가격이 비싼데다 중국의 PAL-D 텔레비전과 연결도 쉽지 않았던 패미콤이었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 “패미(콤)클론(이하 패미클론)”의 생산 기반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텔레비전에서도 패미콤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조된 패미클론들이 홍콩으로부터 수입되었지만, 이내 홍콩과 대만의 제조사들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콘솔을 복제/개조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국가적 개혁 및 개방을 통해 중국 남부에 거대한 규모의 저렴한 노동력이 이용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개 수십명 정도 규모의 이 공장들은 연간 수십만에서 백만대 규모의 콘솔을 생산하면서 중국 전역에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중국 본토의 기업들이 게임산업에 진입하게 되는 계기도 제공했다: 1987년 초반 선전과 주하이, 닝보 등 중국의 남부 해안가 도시들이 일본산 게임 콘솔 조립 산업을 주도하면서 난천(兰天), 왕중왕(王中王), 천마(天马), 소패왕(小霸王) 등의 패미클론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당시 중국에는 7백개가 넘는 인기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 (Pan A2)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시기에 중국 남부 해안 지역의 콘솔 생산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1989년 6-700 위안이었던 게임 콘솔의 가격은 1992년에 100위안 정도로 떨어졌다(Sun 79). 가격이 낮아지면서 평균적인 임금 수준의 노동자 가정에서도 게임용 콘솔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993년에는 텐진의 뉴스타 일렉트로닉스(Tianjin Newstar Electronics Co., Ltd.)가 SUN 워크스테이션 시스템과 통합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그리고 SM-T 생산라인까지)를 갖추고 중국 최초의 16비트 게임 콘솔 “소교수(小敎授)”의 개발에 성공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취로서, 중국은 당시 독립적으로 16비트 게임 콘솔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가 된다. 중국 게임 콘솔 역사의 또 다른 흐름으로는 ‘학습기(学习机)’라 불리는 학습용 컴퓨터가 있다. 전지구적으로 게임의 산업적 발전이 활발하던 1980년대에 중국이 주목했던 것은 학습용 컴퓨터였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 놀이를 훈련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콘솔 같은 명백한 오락장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라는 위장으로 부모들의 염려를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재개된 대학입시 제도 또한 관련성이 있는데, 대학 입시를 통해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중국 사회에서 지식에 대한 존중과 자신감이 상승했고, 이것이 학습용 컴퓨터의 필요성에 중국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학습용 컴퓨터가 현대적 지식 매체로서 상상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존재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대중화 아래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현대화가 은폐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학습용 컴퓨터를 통해 적당한 가격의 컴퓨터를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주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수준을 맞추고자 했다. 학습용 컴퓨터의 역사적 흐름은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재집권한 뒤 교육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현대화를 주요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덩샤오핑은 1984년부터 컴퓨터의 대중화를 직접적으로 챙기기 시작한다. “아동을 위해 컴퓨터의 대중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따라 중국 사회가 컴퓨터 교육을 중시하게 되고 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이 재빠르게 컴퓨터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컴퓨터의 대중화와 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과학 기술 위원회, 국가 교육위원회, 전자산업부가 “중화학습기(中华学习机)” 개발에 합의하는 등 사회적/국가적으로 의지가 충만한데다 관련 부처의 지원이 뒤따르면서 학습용 컴퓨터는 이내 중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어 간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열성적으로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보급에 나섰음에도, 시장 경제적인 문제가 그 발목을 잡는다. 학습용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닌 한계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적 의지와 시장 원칙 간 내재하던 모순이었다. 그 목적이 본래 (특히 젊은이들이) 국가의 근대화에 조력할 수 있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의 게임 기능은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여러 가정들이 컴퓨터를 구매하도록 이끈 그 시장 경제적 동기는 바로 게임 기능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점진적으로 상대적으로 (기능이) 통일되어있던 학습용 컴퓨터로부터 보다 다기능적인 시스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동은 기술적 발전이나 국가 소유로부터 사적 생산 및 판매로의 이동이라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1990년대 중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경제적 개혁의 심화에 따른 시장 중심적 권력 관계의 변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점차 시장의 압력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민간 영역에서 운영되던 학습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불확실한 시장의 수요 및 다양성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학습용 컴퓨터를 다기능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전환시키고, 게임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에 제품의 디자인 및 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지향적 조치를 통해 학습용 컴퓨터들은 지배적인 정치적/사회적 권력이 부여했던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국가적 서사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난 학습용 컴퓨터들은 사실상 시장의 권위와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들을 긍정하는 게임장치로 변모해갔다. * CEC-1 학습용 컴퓨터, Subor SB-486D PC 학습용 컴퓨터 “문화 침략”: 게임 콘솔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소프트웨어까지 이처럼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게임산업이지만, 그 상업적 성공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전세계를 주름 잡던 세가, 닌텐도, PC엔진 등의 일본산 게임 하드웨어의 복제품들이었다. 한편 복제품이 글로벌 게임 소프트웨어 어셈블리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생산 표준을 따라해야 했다. 즉 중국이 세계 콘솔 시장 경쟁에 참여하려면 일본의 게임 아키텍처와 로지스틱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1993년 전력산업 정보센터(电力工业信息中心)와 무장 경찰 과학기술 정보센터(武警科技信息中心站)는 QZM이라는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였는데, 이 시스템은 PC와 패미콤 간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286 또는 386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서 닌텐도용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컴파일할 수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즉각적으로 패미콤에 전송되어 실행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소스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변환 및 디버그 되었고 성공적으로 작업이 수행될 수 있었다(Pan A2). 이 상황은 개발 패러독스로 이어졌다. 개혁 개방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함께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던 중국이 발전의 딜레마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축되어있는 세계 시장 질서를 받아들이고 일본 게임산업의 중국 지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주성을 더 중시할 것인가? 이 패러독스는 또한 중국의 게임산업에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이 일본신 게임장치의 복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 자주성을 지니게 된다 할지라도, 8비트 콘솔 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CPU는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20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게임산업은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PC용 게임 소프트의 개발로 이동해간다. 사실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하드웨어 제조산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시점에 시작되었다. 1982년 ISCAS(중국과학원 반도체연구소)가 로켓런처 게임칩을 생산했던 바로 그 해에 북경 과학위원회(北京科委)는 10개 대학과 연구기관을 모아 콘솔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의 지도 하에서 중국은 1983년 초 중국적 특성을 가진 게임 프로그램 〈손오공(孙悟空)〉과 〈칠교판(七巧板)〉등을 개발하여 국제적인 게임기업들에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변동하는 외부 환경과 맞물려 사라져간다. 대신 1980년대 후반 들어 불분명한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기업들 - 얀샨소프트웨어(烟山软件), 파이오니어 카툰(先锋卡通) 등 - 이 8비트 게임의 해킹과 불법복제 사업에 뛰어든다. 이들의 성공은 경제적 생존이 최우선 되는 입장에서 게임 하드웨어 시장이 추구하던 모방 전략을 따른 결과였고, 이는 다시 말해 중국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의 번성이 일본의 8비트 게임 불법복제로 뒷받침된 것임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게임의 내러티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중국의 게임개발사들은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카게의 전설(The Legend of Kage)〉는 공주를 구하는 닌자의 이야기인데, 그 속에 일본의 닌자 문화를 표현하는 다양한 시청각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족주의적인 중국에 있어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게임은 중국 시장에 넘쳐나고 있던 수많은 일본 게임들 중 하나일 뿐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1990년대의 중국 게이머들이 게임의 문화적 식민화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에 새로운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고유의 특성을 지닌 게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각성은 중국 IT 산업의 빠른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IT 인력들의 다수는 게임 산업에 열광적이었는데, 그들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에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운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Wei 75). 비록 그들이 문화 지식인으로 성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들은 엔지니어였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아래서 중국의 문학과 예술작품에 실린 “대도(载道/도를 떠받든다)의 전통”을 과감하게 차용한다. 그들이 시도한 것은 정치적 도덕 교육에 기반한 보수적인 게임문화의 구축이었고, 이는 1990년대 중국 게임에 팽배했던 독특한 애국주의 기반의 정서를 형성했다. 1994년 10월 골든디스크 일렉트로닉(金盘公司)은 중국의 첫 PC게임 〈신응돌격대(The Magic Eagle)〉을 출시한다. 1998년에 이르면 15개 개발사들이 55편의 PC용 게임을 출시하는데, 이 게임들은 중국의 PC게임 첫세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푸저우 웨이싱 컴퓨터 사이언스 & 테크놀로지(外星科技)는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 게임산업계에서 이 회사는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이 회사가 생산하고 출시한 270편 이상의 8비트 게임들은 중국 8비트 게임에 있어 핵심이었다. 이 회사를 필두로 1990년대 중국 본토에서는 열군데가 넘는 업체들이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업체들은 무허가로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를 번역하고, 이식하고, 백포트하고, 해킹해서 유통시켰는데, 중국 8비트 게임 시장의 번성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표] 업체별 게임 소프트웨어 출시 현황 이 부분이 바로 8비트 게임 개발 과정의 중국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PC엔진의 출시 이래 세계는 16비트 게임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차세대 콘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중국에는 여전히 구식 8비트 게임을 겨냥한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 중국의 게임업체들 또한 세계 시장을 열심히 따라잡고자 노력하던 무렵, 뤄양시에서 “2.29” 살인 및 시체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허난성 뤄양시에 거주하던 3명의 6학년생들이 게임방 주인에게 살해된 후 벌판에서 불태워졌던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국가적 분노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엄격한 게임 통제로 이어진다. 2000년 6월 12일 각 부처가 합동으로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게임 장치와 그 구성요소들의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정지하는 전자오락실 특별 관리 계획을 공포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 게임 하드웨어의 개발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그 영향으로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은 대거 PC용 게임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다(이 시기는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영향으로 주로 온라인게임이 개발됨).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콘솔용 게임 소프트웨어에 천착하던 게임 업체들은 시장 내에 존속하는 8비트 게임 콘솔용 소프트웨어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은 차세대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시장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게임 콘솔 금지 정책은 중국 콘솔 게임의 발전을 억제했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 중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존속되었던 것이다. 관점에 따른 중국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분류 중국의 8비트 게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여기서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정리해보았다: 1. 일본 게임을 해킹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중국인들이 8비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역사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얀샨 소프트웨어가 남코의 〈배틀시티(Battle City)〉와 코나미의 〈콘트라(Contra)〉를 해킹해서 만든 〈얀샨탱크(얀샨 Tank)〉와 〈슈퍼콘트라 II(Super Contra II)〉가 있다. 얀샨 소프트웨어는 이전에 푸저우의 제16중학교 운영하던 기업이었는데, 그래서 “푸저우 제16중학교(福州16中)”이라는 단어와 "얀샨"(烟山)이라는 단어가 게임 중에 나타난다(이미지 참조). 중국 게임산업상 최초의 인-게임 광고라 할 수 있다. * 〈얀샨 탱크〉 내 인-게임 광고 2. 일본 게임의 번역판: 여기에는 주로 1990년대에 웨이싱(Waixing)에서 출시했던 무단 번역게임들이 해당한다. 이 회사가 무단으로 번역한 일본 게임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시리즈,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등이 있다. 지식재산권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무단 번역 게임들은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국 게임의 역사 내 그들의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해적판 8비트 게임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비용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게임 플레이 가이드 같은 것들은 대개 번역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드래곤 퀘스트〉 같은 복잡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JRPG 게임들이 중국에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웨이싱을 비롯한 중국의 8비트 게임회사들의 번역 시도는 중국의 젊은 플레이어들이 동아시아 하위문화의 젊고 생생한 상상을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류 정치적 서사에 묶여있던 젊은이들의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3. 이식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보다 고성능 플랫폼의 게임들을 패미클론 플랫폼으로 각색하여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여러 인기 걸작들을 패미클론 콘솔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포켓몬은 가장 중요한 이식 대상이었는데, 웨이싱의 포켓몬 시리즈, 난징 테크놀로지(南晶科技)의 젬 시리즈(Gem series), 쉔젠 진코타 테크놀로지(晶科泰, 이하 진코타)와 헹거 테크놀로지(恒格电子, 이하 헹거)의 포켓몬 시리즈, 마스 프로덕션(火星科技, 이하 마스)의 포켓 엘프 시리즈 등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이 중국 고전 PC게임 또한 이식해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신월검흔(新月剑痕)〉 와 진코타의 〈헌원검(轩辕剑)〉 등은 대만 게임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다. *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4. 그림을 바꾼 게임(换皮游戏): 대개 JRPG 게임을 중국적으로 보이도록 시청각적인 요소들, 예컨대 스토리, 장면, 오프닝 등의 게임 내 시네마틱, 캐릭터 디자인, 장비 액세서리 등에 중국적 요소를 덧입히는 것이다. 즉 원본이 되는 일본 게임(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게임플레이와 구조에 기반하되, 원본의 스토리를 중국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시리즈는 명시적으로 대만의 소프트스타 엔터네인먼트(大宇公司)의 고전 CRPG 〈헌원검〉를 이식한 것이었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시스템(인터페이스, 레이아웃, 시스템 아키텍처 등)을 도입하여 중국의 스토리를 담았다. 5. 오리지널 게임: 중국에도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이 있다. 비록 이 게임들이 중국의 8비트 게임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게임플레이를 활용해서 중국적인 테마를 지닌 게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드래곤 퀘스트〉의 구조에 기반해서 중국적 스토리와 시청각적 요소들을 입힌 4번의 경우와 달리, 이 오리지널 게임들은 다양한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8비트 게임의 개발을 추구했다. 중국의 게임산업의 발전이 아직 미진하던 1990년대의 그와 같은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게임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세계가 “일본-미국 중심주의”의 게임 역사에 빠져 있었고, 그에 따라 각 국의 게임 역사가 그 자신과 괴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는 8비트 게임의 개발은 “게임 제국”의 변방에 놓인 중국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일본의 고전게임들이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활용해온 가운데 종종 무의식적인 변형과 왜곡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의 “도시’ 개념을 일본 전국시대의 “일본식 성”의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는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명백히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리지널 8비트 게임은 중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인 고유의 관점을 통해 조망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고도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을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역사적 테마를 가진 게임: 주로 1990년대에 등장해서 대개 중국 근대의 역사를 다룬다. 대표작으로 〈임칙서의 금연(Lin Zexu's Smoking Ban, 林则徐禁烟)〉, 〈지도전(Tunnel Warfare, 地道战)〉 등이 있다. 대부분 롤플레잉 게임플레이를 채택하고 스토리상 근대 중국이 직면했던 “노예화와 멸종”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시키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한다. 이러한 게임들의 내러티브 콘텐츠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중국의 게임산업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2. 전기(biography) 게임: 중국의 역사나 소설의 인물을 주요 캐릭터로 삼아 그 캐릭터의 영웅적인 행실을 다룬다. 대개 전통적인 중국 문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았으며 권선징악, 의협심,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주류적 가치를 표현한다. * 웨이싱의 〈포청천(Bao Qingtian, 包青天)〉, 난징 테크놀로지의 〈곽원갑(Huo Yuanjia, 霍元甲)〉과 〈황비홍(Huang Feihong, 黄飞鸿)〉, 마스의 〈악비전(Yue Fei Biography, 岳飞传)〉 (왼쪽 위부터) 3. 각색된 게임: 중국의 8비트 게임에 있어 메인이 되는 유형으로, 고전 걸작, 무협 소설, 유명 영화와 TV 드라마, 고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외국의 동화 등을 각색한 게임들이 있다. 4.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 서유기, 수호지, 삼국연의, 홍루몽, 수당연의, 삼협오의, 경화연 등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들 * 웨이싱의 〈서천취경 2(The Journey to the West 2, 西天取经2)〉, 〈수호전(Water Margin, 水浒传)〉, 〈삼협오의: 어묘전기(Three Heroes and Five Righteousness: Legend of the Imperial Cat, 三侠五义:御猫传奇)〉, 난징 테크놀로지의 〈홍루몽(Dream of Red Mansions, 红楼梦)〉, 〈수당연의(Sui and Tang Dynasties, 隋唐演义)〉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1)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 김용이나 구용 같은 작가의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들이다.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8비트 무협 게임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드래곤 퀘스트〉 같은 해외 게임들에 기반한 상상이 넘쳐나는 가운데, 무협 게임만이 유일하게 중국의 전통적 문학 및 예술적 사고가 “보장된 영토”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부상하는 가운데서, 이 게임들은 전통적 문학작품과 예술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나마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자 수많은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수천년 간 내려온 고유의 대중 문학 및 예술적 사고에 노출시켜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협 게임들은 중국 게임의 문학적/예술적 특별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의협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중국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자원들이 게임 영역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 웨이싱의 〈초류향(Chu Liuxiang Legend, 香帅传奇之血海飘零)〉과 〈의천도룡기(Massacre Dragon Knife, 屠龙刀)〉, 난징 테크놀로지의 〈천룡팔부(The Demi-Gods and Semi-Devils, 天龙八部)〉와 〈절대쌍교(Handsome Siblings, 绝代双骄)〉, 진코타의 〈초류향신전(New Biography of Chu Liuxiang, 楚留香新传)〉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2) 영화와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 당대의 유명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들. 그러나 이 게임들은 원본 작품의 이름이나 컨셉만을 차용했을 뿐, 게임의 플롯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았다. * 웨이싱의 〈대화서유(A Chinese Odyssey, 大话西游), 난징 테크놀로지의 〈무림외전(My Own Swordsman, 武林外传)〉, 마스의 〈타이타닉(Titanic)〉 (위에서부터 차례로) 3) 고전 신화와 설화를 각색한 게임: 일본이나 유럽 또는 미국의 마법 문화와는 완전히 상이한 고대 중국의 신이나 귀신에 대한 전설과 초자연적인 상상을 활용함으로써 중국 8비트 게임의 문화적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 웨이싱의 〈봉신방격투(Fighting!The Legend of Deification, 封神榜格斗)〉와 〈천왕항마전(King Defeat Devil, 天王降魔传)〉, 난징 테크놀로지의 〈나타전기(The Legend of Nezha, 哪吒传奇)〉과 〈마도겁(Devil way, 魔道劫)〉 (위에서부터 차례로) 4) 외국 동화를 각색한 게임: 외국의 고전 동화를 활용한 게임들로, 이를 통해 해외의 동화들이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알려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게임들이 원본에 완전히 충실했다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플레이가 원본인 고전 작품에 대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그저 신나게 플레이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상 살펴본 중국의 8비트 게임의 역사는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적재산권을 지닌 내수용 8비트 게임의 생산과 판매는 1990년대 초반 웨이싱을 매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수용 8비트 게임은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적 차언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매진하던 가운데 게임을 사랑하는 수많은 컴퓨터 인력들이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업계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PC게임이 발전했다. 중국의 주류 게임사가 콘솔 게임의 역사로부터 컴퓨터 게임(온라인 게임도 포함)의 역사로 빠르게 바뀌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계가 우세했었지만 PC게임 부문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8비트 게임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보이지 않게 발전”할 수 있었을 뿐으로, 그에 따라 중국 게임의 역사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2000년도에 있었던 콘솔 금지 정책은 8비트 게임에 있어 유리한 면이 있었는데, 중국 정부가 16비트 게임 콘솔을 비롯한 차세대 고성능 게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 - 그리고 그에 따라 차세대 콘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 - 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8비트 게임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글로벌한 경향과는 달리 8비트 게임 중심성이 지속되었다. 비록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8비트 게임을 개발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세계 게임 산업 및 중국의 8비트 게임 산업을 혁신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게임플레이의 혁신이 게임 혁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면,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 - 앞서 언급했던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 포함 - 은 그저 일본의 8비트 게임의 디자인을 모방했을 뿐이며, 중국적인 특성을 지닌 오리지널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리티의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8비트 게임은 실패라 할 수 있다. 일본 게임의 질 낮은 복제에 가까운 이 게임들은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학이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수익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하급품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들은 중국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언제나 비판과 조롱을 받곤 한다. 그러한 8비트 게임일지라도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나름의 장점과 의미가 없지 않다.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적 담론들로 가득한 게임 영역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자주 왜곡되곤 했는데, 예를 들어 에는 외국 게임 개발자들의 중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저해하고 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상대적으로 “리얼”한 중국을 중국의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치명적인 흠결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플레이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데다 심지어는 버그로 가득해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온전하게 경험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8비트 게임의 시장 매출은 실질적으로 형편없었으며, 그 게임들이 중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주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기저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 8비트 게임의 텍스트와 그 생산 과정 및 사회적 텍스트 간의 상호작용을 논의하면서, 중국의 8비트 게임 역사를 오늘날 중국에 대한 하나의 증상이나 은유로서 취하여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8비트 게임은 1990년대 중국 십대들의 사고방식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49년 중국 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회주의적 관점이 주도해온 환경 아래서 만화나 예술 영화 등 중국의 아이들을 위한 문화상품들은 혁명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십대들이 좋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청소년 문화의 영역 내 엄격한 사회주의 교육 및 이데올로기 체계의 연장일 뿐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일본의 8비트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하위문화 상품들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기존의 엄격한 문화적 상황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일본 문화 상품의 분방한 문화적 상상력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당국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주류 문화와 첨예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점진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된다. 이른바 중국 십대 청소년들의 “마음의 해방”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생산은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이야기들을 8비트 게임 기술과 결합시키고자 했고, 8비트 게임이 중국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있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의 문화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강화되는 것도 원했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기술력으로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고, 플레이어를 유인할 수 있는 혁신에도 실패하면서 8비트 게임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즉 이 8비트 게임들은 콘텐츠 내에 중국적인 것을 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다가 게임플레이의 재미 그 자체를 경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8비트 게임의 상징적 가치가 언제나 그 사용 가치를 넘어섰던 것이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매출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향후 8비트 게임의 발전을 도모하고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중국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담겨있는 8비트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하되 혁신적인 8비트 게임 플레이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중국 내 버려진 시장 부문인 8비트 게임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国音数协游戏工委(GPC),中国游戏产业研究院.2020年中国游戏产业报告[R/OL].(2020-12-18)[2021-09-03]. https://pan.baidu.com/s/1RbLCh5fKLCyTfFcZeFPHvA?_at_=1618218156065 . 中国文化部等,关于开展电子游戏经营场所专项治理的意见[R/OL].(2000-06-12)[2021-09-03] http://www.gov.cn/gongbao/content/2000/content_60240.htm Pan, Song 潘松. “Zhongguo dianshi youxiye fazhan gaikuang” 中国电视游戏业发展概况 [Report on Development of Chinese Video Game Industry]. Diannao bao 电脑报27 August 1993: A02. Print. Wu, Zhensheng, et al乌振声等. “Zhonghua xuexiji yuanli he yingyong(1)” 中华学习机原理和应用(1) [China Learning computer’s Principles and Applications]. Wuxiandian 无线电1(1988):5.Print. Zhu, Zhangying朱章英. “Mantan dianshi youxiji” 漫谈电视游戏机 [The Talk About the Video Games]. Jiayong dianqi家用电器4(1986):24.Prin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우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 Back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25 GG Vol. 25. 8. 10. 파이널 판타지 XV의 개발 총괄 하지메 타바타와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이하 33원정대)>의 감독 기욤 브로체의 대담에서, 타바타는 <33원정대>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프랑스 식사"로 비유한다. 기욤 브로체 역시 <33원정대>가 JRPG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에 고유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음을 여러 번 밝힌다. JRPG가 일본 롤플레잉 게임(Japanese Role-playing Game)의 약어임을 떠올리면, 프랑스 JRPG란 표현은 형용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1] 하지만 JRPG는 공간적이고 지리적인 분화를 암시하면서도 한 세대의 유년기 게임 경험을 함축하는 장르로서 종종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에서 생산될 필요는 없다고 자주 주장된다. J.D 맬린딘의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게임 커뮤니티의 담화를 분석하며, "JRPG라는 이름의 “일본” 요소는 단순한 지리적 표시가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적 환경 속에서 정체성과 기억이 어떻게 협상되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로 기능"함을 보인다 [2 ]고 지적했다. 게임 유저들이 콘솔 기기로부터 PC로 게임 기기가 옮겨가는 기술적 전환을 경험하며, 사후적으로 콘솔 중심의 RPG 게임, 주로 일본 발의 시리즈가 주류를 이뤘던 시대의 게임을 JRPG로 프레이밍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이밍과 협상, 항목화의 절차를 추동하는 정서적 축은 노스탤지어다. "이전에 나왔던 게임과 같은 느낌을 선사해야 한다"거나, "JRPG를 플레이하게 되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JRPG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발화에 J.D 맬린딘은 주목한다. JRPG가 기술적으로 지체되고, 과거를 반복하고, 특정 세대의 향수에 호소하는 죽은 장르란 비판 역시 그것이 노스탤지어에 기대어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에서 출발하지 않던가? 동시에 저자는 플레이어들이 오로지 새롭고 참신한 감정을 얻기 위해서만 게임을 한다는 전제를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으로 의심하며 어쩌면 "같은 느낌"을 반복하는 것, 과거의 게임에서 느꼈다고 생각한 감정을 다시 얻기 위해 JRPG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JRPG라는 장르명을 사용하는 게임 커뮤니티 언중의 담화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이 반복되는 "같은 느낌"을 구성하는 반복의 구조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는 '왕도'라 일컬어지는 일직선적인 내러티브, 홀로 나아가기 보다 동료 및 파티와의 우정을 쌓아가며 강해지는 주인공, 각자 역할이 분할된 3-4인 파티 단위의 턴제 전투, 시네마틱 컷신의 삽입을 흔히 그 "느낌"의 근거로 떠올릴 수 있다. 위의 대담에서 <폴아웃> 같은 영미권의 고전 RPG와 비교하며, 기욤 브로체는 일상성을 함축한 대화, 진지함과의 적절한 거리, 마치 연속적인 컷신처럼 구성되는 턴제 전투를 JRPG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반복되어야 할 "같은 느낌"이란 일관성을 배제하고 이야기될 수 없을 터, 이 일관성을 영이의 『게임 코러스』는 ‘일관된 목소리,’ ‘믿을 수 있는 목소리’임을 약속하며 디오니소스적 근원과의 합일로 초대하는 UI의 역할과 연결한다. [3] 특징적인 UI의 반복적 배치는 일관성의 경험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순간과 우연적으로 결부되어 버리며 어떠한 시간적인 반복의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어떤 장르가 되었든 그 애호가들에게는 향수로 가득한 반복과 재확인의 열망이 있을 터다. JRPG는 그 일관성의 약속이 더 강력한 구속력을, 자주 퇴행적이고 관습적이란 오명을 쓰는 그러한 구속력을 띄고 나타나는 듯 보인다. 2.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나는 <33원정대>를 비롯한 최근의 JRPG, 혹은 JRPG의 영향을 받은 게임들이 JRPG 특유의 "느낌"을 반복하려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있음에 주목하려 한다. 마치 플레이어블 캐릭터(PC) 혹은 주인공이 JRPG 플레이어가 지닌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거나 이해하는 양, 그들의 이야기는 게임적 환상의 반복 혹은 연장을 향한 소망으로 얼룩져 있곤 한다. JRPG를 재생산하고 반복하려는 소망을 품은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한 게임이 여전히 JRPG가 되어야 할 필연성이 부연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용과 같이 7의 스팀 소개 이미지 가령 가장 노골적인 예시로,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을 살펴보자. 본래 실시간 격투 게임의 동사들을 더 많이 빌려 오던 <용과 같이> 시리즈는 <용과 같이 7>에서 JRPG의 특징으로 꼽히곤 하는 턴제 전투로 전환하며 매너리즘을 쇄신하려 시도한다.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은 타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러 십 수년의 청춘을 감방에서 보내며 세속 사회와 오랜 세월 단절된 인물이다. 장래 희망이 용사였다고 천진난만하게 밝히는 그는 어릴 적 플레이했던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관에 여전히 몰두해 있다. 아니, 몰두하기를 넘어서 이치반의 세계는 곧 전 야쿠자와 한구레와 양아치들이 몬스터 대신 들끓는 요코하마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드래곤 퀘스트와 다름이 없다. 실시간 격투 위주의 샌드박스 게임이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가 턴제 RPG로 전환하는 개연성은 주인공 이치반의 시대 착오적인 환상을 경유하여 설명된다. 커뮤니티 기능과 소위 '레벨업 노가다'를 가능케 하는 던전, 캐릭터의 '직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새로이 시리즈에 출현한다. 이치반과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도적, 마법사, 검사 대신 노숙자, 프리터, 캬바걸, 호스트가 있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처럼 지칠 줄 모르는 이치반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낙관과 의협심을 유지하며, 밑바닥 출신 동료들로 이뤄진 파티와 우정을 뽐내는 필살기를 써가며 용사의 역경을 돌파해 간다. 폭도법으로 몰락하고 변이한 야쿠자 세계와 동시대 일본의 도시 생태는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게임적인 구조, JRPG의 장르적인 느낌으로써 여과되고, 재해석된다. 한편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주인공은 애초부터 모험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출발한 존재다. 왕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핍박 받는 소수종족으로서 무력하게 숨어 지내야 했던 왕자는 어떠한 종족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그린 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그러한 세계를 정말로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힘을 합치는 모험, 그 모험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강인함에 대한 소망이 투사되어 만들어진 왕자의 분신이 곧 <메타포>의 주인공이다. 왕자의 분신이면서 꿈 속의 존재인 그는 익명의 인물로 출발하지만, 유토피아를 현실로 번안하려는 용사의 여정을 따라가 온갖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연대 속에서 되고 싶었던 존재가 되고 만다. 최종 보스는 특이하게도 우리가 익히 아는 현대 일본이 진짜 현실 세계이며 그들의 판타지 세계는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주인공이 최종 보스의 설득에 넘어가 버리면 평소의 ‘FANTASY IS DEAD’란 게임 오버 메시지의 변주로 ‘FANTASY IS ONLY FICTION’이란 문구가 뜬다. 게임 오버 메시지를 통해 <메타포>는 환상을 "단지 픽션"에 머물지 않게 하는 어떤 힘을 믿어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장르는 기능적 UI로 설명되고 규명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론적 틀을 제시한다. 최근의 성공적인 JRPG 풍 타이틀이 내세우는 주인공들은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와 대립각을 세우고, 현실주의를 타파하는 연대로 향해 가는 과정에서 JRPG의 서사 구조를 긍정적인 자기 설명의 형태로 사용한다. 삶과 예술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정동적 기대의 공간으로 규정되는 로렌 벌렌트의 '장르' 개념을 빌리자면, 허구적 인물에게 있어 JRPG의 세계관이 현실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르로 출현하는 것이다. 3. <33원정대> 1막의 파티원들 <33원정대>의 접근법은 위의 게임들과 엇나가게 포개어진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3원정대> 역시 애착을 투여한 환상을 반복하려는 소망이 캐릭터의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위의 두 게임과 달리, <33원정대>에선 그 소망이 명명백백히 식별되는 원톱 주인공에게 덧씌워진 소망이 아니다. <33원정대>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게 되는 '아바타'와 주인공의 일치와 불일치, 교체와 혼선이 이뤄지는 기제를 먼저 짚고자 한다. 메인 플레이 내에서, 플레이어는 아무 파티원이나 골라잡아 파티의 대표자로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야영지와 같이 휴식과 일상적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에선 하나의 캐릭터, 1막, 2막, 3막의 주인공으로 대두되는 캐릭터만을 활용하여 대화해야 한다. JRPG의 문법에서 주인공은 플레이어에 의해 조작되고 움직일 수 있는 아바타로의 속성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인연의 중심 축으로서 성격을 띈다. 더불어, 성별화된 각본을 따르는 장르에 익숙한 기대에 따라서, 우리는 '히로인들'과의 관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구스타브가 주인공이라고 쉬이 짐작한다. 주인공으로서 구스타브는 사랑하는 옛 연인을 고마주로 잃고 인생의 마지막 해인 33살을 맞아 33원정대에 합류한다. 수평선 너머에 웅크린 마녀 페인트리스는 매년 인류의 수명을 줄여서 쓰고, 그 수명을 넘긴 인간은 소멸하게 만든다. 이 소멸이 곧 '고마주'고, 고마주를 앞둔 사람들을 모아 원정대를 매해 꾸려왔으나 페인트리스의 토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인도 중년도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 역전된 고령화 도시 뤼미에르에서 인류는 느릿느릿 다가오는 멸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수긍에 저항하려 한 33원정대는 페인트리스의 영역에 상륙하자마자 수수께끼의 노인과 괴물들에 의해 거진 몰살당한다. 그렇지만 그와 누이처럼 자란 마엘과 남아 있는 생존자 루네, 시엘이 구스타브와 다시 여정을 함께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페인트리스에게 차근차근 다가선다. 구스타브는 그 자신의 유약함을 떨쳐 내고 세계를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다시금 원정대의 길을 막아선 노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마엘 역시 죽게 되기 전에 낯선 남자가 막아선다. 어떤 논리로 그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과 경험치까지 계승한다. 고마주가 시작되고 최초에 보내진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신원을 밝힌 베르소는 그를 포함한 옛 원정대원 중 일부가 마녀로부터 불멸을 얻었음을 밝힌다. 불멸을 고집하는 이들은 원정대로서 본분을 잊고 페인트리스를 지키려 한다. 그 자신은 이기적인 불멸에 회의를 느껴서 마녀를 토벌하려는 원정대원들에게 여러 번 협력해왔다. 적어도 베르소의 주장은 그러하다. 말그대로 플레이어 앞에 튀어나온 이방인인 베르소가 죽은 구스타브를 대신해 2막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다만 시네마틱 컷신 상에서 중심에 놓이는 종류의 주인공은 2막의 베르소도 살해당한 1막의 구스타브도 아니다. 시네마틱 컷신은 플레이어의 조작을 배제한 채로, 급변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일방적인 내러티브의 강제력이 작동해야 하는 순간에 곧잘 끼어드는 게임적 장치다. 컷신이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는 원정대의 막내 마엘의 것이다. 고향인 뤼미에르에서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없어 어린 나이에 원정대에 합류한 마엘은 마녀와 괴물들의 땅에 와서 어떤 친숙함을 감지한다. 그 친숙함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한편으로 겁에 질리게 한다. 마엘과 분신처럼 닮아 있으나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소녀가 원한에 찬 유령처럼 그녀 주변을 떠돈다. 가족과 같던 구스타브 마저 잃은 상황에서, 마엘은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저주와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는 불길한 암시를 읽는다. 한편 베르소는 수수께끼와 불안으로 가득 찬 컷신 중심에 놓인 마엘을 곁눈질하며 침묵하는 얼굴로 나타난다. 베르소를 조작해야 하는 플레이어조차 그가 마엘에 대한 모종의 계획을 품고 진실을 감추며 술수를 부리는 모략가임을 짐작할 뿐, 어떤 꿍꿍이를 품었는지 실마리를 짚어낼 수 없다. 진실에 근접해 있으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를 택하는 인물을 조작하는 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 사이의 동일시를 원하는 쪽에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중추는 마엘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읽히니 혼란은 배가된다. 뻐꾸기 새끼처럼 원정대에 비집고 들어온 베르소는 여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들과 관계를 쌓는 과정이 JRPG 상에서 '인연', '커뮤니티', '코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시스템을 통해서 시작되고, 플레이어는 장르의 문법에 따라 관계망의 중심에 자리한 베르소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어색하게, 또 간신히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인연 레벨을 올리는 과정에서,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마엘에게 그 대신 오빠 노릇을 해주려 들고, 시엘과 르네같은 성인 여성들과는 친구가 되어가는 단계인지 연인 이전 단계인지 모호한 대화를 나눈다. 시네마틱 컷신과 메인 플레이, 인연 레벨 세 가지 차원 상의 플레이는 밀도가 다르기 때문인지 헛도는 태엽 바퀴처럼 영 맞아떨어지지 않는 인상을 준다. 티격태격하거나 추궁하거나 농담하는 식의 평범한 대화의 일상성 마저도 한편으로 가장된 것으로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게 다가온다. 원정대는 여러 모로 믿기 어렵지만 적어도 페인트리스 공략법은 정통한 듯한 베르소의 안내를 따라간다.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마엘의 신비한 힘 덕분에 길을 막아서는 노인의 불사 역시 해제하고 죽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구스타브의 복수를 해내고 마침내 마녀 페인트리스까지 무찌르는데 성공한다. 루네와 시엘, 마엘은 그들이 이제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손에 쥐었음을 감격하며,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기뻐한다. 대륙에 돌아간 그들을 사람들은 영웅으로 떠받들며 환대한다. 이 축제의 장에서 플레이어들은 비로소 그들의 주인공이 숨기고 있던 바를 비로소 알게 된다. 베르소는 페인트리스가 멸망을 부르는 게 아니라 멸망을 지연하고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숨겼고, 마녀가 진정 멸망을 부르는 존재를 봉인 중이었단 걸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인류는 축제 속에서 멸망한다. 알리시아란 부제가 붙은 에필로그를 통해서 페인트리스와 마엘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 비밀은 규모 면에서는 하잘 것 없게 느껴진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자신을 부르며 신경질적으로 재촉하는 목소리에 깨어난다. 그녀가 깨어난 저택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주 친숙한 장소다. 던전 도처에 '어디로든 문'을 연상시키는 입구가 있어 원정대원들이 드나드는 셸터로 기능해 온 수수께끼의 저택과 동일한 외양이다. 플레이어는 이제 알리시아로 불리는 마엘만을 조작하는데, 알리시아는 화상으로 얼굴 반쪽이 얽어지고 성대 역시 불타 말 한 마디 제대로 내뱉을 수 없다. 화마에 휩싸였던 저택 곳곳은 보수공사 중이다. 장남 베르소는 알리시아를 구하고서 화재 속에서 죽었다. 어머니 알린은 실의에 빠졌고 세상 일을 등졌다. 알린은 유년 시절 아들이 그렸던 동화 풍의 캔버스에 들어가서, 현실과 달리 영원한 생을 누리는 가짜 도플갱어 가족을 그려내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돌보며 페인트리스로서 머문다. 캔버스에의 접속이 페인터의 육체를 소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을까 두려워하는 르누아르는 알린의 뒤를 따라가 캔버스 속 세계를 강제로 지워버리고자 한다. 두 페인터의 힘겨루기가 절멸을 향해 엄습해 오던 고마주의 정체다. 부부의 일은 가상 세계를 디자인하고 개발하거나 삭제하는 게임 디자인에 가까워 보이기에, 페인터의 비유는 한편으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게 들린다. 한편, 부부 싸움의 교착 상태에서 첫째 딸 클레아는 부모가 팽개치고 간 가문의 일과 화재를 일으킨 정적과의 싸움을 처리하고 있다. 클레아는 의기소침한 여동생을 돌보는 일을 내놓고 마뜩치 않아 하고, 어머니를 되찾아오려는 아버지의 일이나 도우라고 알리시아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페인터로서의 재능 혹은 힘이 부족했던 알리시아는 그대로 그려진 세계에 휩쓸려 어머니의 피조물 중 하나로 마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모두가 고마주로 소멸한 뒤, 마엘은 알리시아로서의 기억을 되찾는다. 베르소의 정체도 밝혀진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페인트리스가 그려낸 불멸의 도플갱어였다. 그는 비록 그려진 존재지만, 본래 베르소가 지닌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를 현실로 돌려보내고 자신 또한 안식을 얻고자 원정대원들을 속이고 배신해왔다. 백 년 가까이 지속된 부부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한 르누아르는 아내가 다시 유혹에 빠지지 못하도록 그려진 세계와 그려진 베르소를 지워 없애려 하지만, 알리시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마엘은 페인터의 능력을 각성하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그 능력으로 루네와 시엘을 되살리고, 아버지에 맞서 어머니 페인트리스의 자리를 계승하려는 게 3막의 줄거리다. 마엘은 본래 절도 있는 펜싱 스타일의 전투 애니메이션을 갖고 있었는데, 알리시아의 기억을 되찾고 나선 마녀 페인트리스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비현실적인 움직임이 특징적인 스킬을 주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마엘의 필살기 중 하나는 아예 이름이 “고마주”다. 캐릭터를 육성한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이 국면부터 플레이어들은 마엘 외의 캐릭터는 주력 공격보다는 보조로 활용하게 된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인 전투 상에서 마엘은 이제 완벽한 주인공이다. 극적이고 시각적인 변신을 거친 마엘은 강력하고 힘겨웠던 적에게 천문학적인 데미지를 입히며 전투를 비교도 안 될 만큼 수월하게 바꿔놓는다. 강력한 미소녀 마법 검사를 조작하는 만족감은 한편으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엘의 캐릭터와 선택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엘은 플레이어가 그러한 것처럼, 바로 이것을, 이 순간을, 승리와 진전을 반복하고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맡고 싶을 것이다. 마엘은 아버지를 설득할 때 마음을 정리하고 모두와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은 어머니와 다르며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깊은 내심으로는 캔버스 안에서 죽을 때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실상 막간의 기능에 가까웠던 에필로그에서, 소위 '현실' 세계의 알리시아에게 허락된 상호작용은 화마의 상흔이 곳곳에 새겨진 저택 내를 빙글빙글 오르내리면서 자신 때문에 가족의 평온이 불가역적으로 파괴되었음을 되새기는 독백을 묵언으로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인물인 언니 클레아는 알리시아와 마주하는 게 성가시고 짜증스러운 티를 숨기지 않으며 자신은 동생을 위해 죽는 불가해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비아냥거린다. 마엘이 돌아가야 하는 삶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목격한 다음, 플레이어는 제작진이 공들인 게 분명한 마엘의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전투를 채우며 기이한 쾌감과 간극을 느낀다. 이 간극이 결국 마엘로 하여금 호소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밖에서 그녀는 그저 간신히, 존재만 하고 있다고. 인연 레벨 올리기로 대표되는 JRPG 동료 시스템의 함의는 캐릭터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유대감에 대한 수량적 표현이며, 이러한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게임적으로 장려하기 위하여 게임 플레이를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한다. 실제로 <33원정대> 역시 인연 레벨을 올림에 따라 동료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필살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인연 맺기의 중심에 위치한 베르소는 '만렙'으로 수치화된 유대감과 상호 이해의 맥락 자체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는 듯이,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금 마엘, 시엘, 루네, 모두를 배신한다. 누구와 연인이 되거나 어떠한 선택지를 고르거나 인연을 어느 수치까지 달성하거나 따위의 조건 달성도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동료들과 가장 내밀한 유대의 순간을 겪는다 한들, 그는 자신의 현실이 지속 불가능하고 애초에 존재해선 안 되는 현실임을, 고작 한 가족의 비극을 종식하기 위하여 모두가 희생되어야 함을 고집한다. 베르소는 이미 구스타브를 살릴 수 있었으나 죽도록 내버려둔 바 있는데, 구스타브의 주인공으로서 자리, 마엘 곁에서 모두의 신뢰를 얻고 페인트리스로 향하는 틀린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연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 인연 시스템은 게임 플레이 내에서 언제나 자원으로 기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단지” 자원이었단 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JRPG의 인터페이스가 오랜 역사성과 완고함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그 기반이 시험 당하는 순간은 더욱 낯설고 이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33원정대>는 어머니의 외연도 한계도 모르는 애도 하에서,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자식들이 엇비슷한 운명을 공유하는 서로를 결국에 참지 못하는 이야기다. 마엘과 베르소의 마지막 대결은 가짜가 진짜를 변호하고, 진짜가 가짜를 변호하는 역설이기 보다 상호 양립할 수 없는 두 정서적 현실의 충돌이다. 전자는 마치 여생을 보낼 완벽한 요양원을 찾은 것처럼, 장르가 허락한 역할놀이를 반복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존재할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후자는 연명치료의 중단을 외치는 대신 껍데기만 남은 역할 놀이의 반복이 종결되기를 원한다. 두 사람은 모두 최종장에서 비등하게 중심 서사를 이끄는 인물이지만, 각자 상이한 플레이 차원을 차지한 주인공으로서 비대칭적이다. 마엘의 플레이가 반복과 변주의 쾌,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무력하게 만드는 향락적 차원에 해당한다면, 베르소의 플레이는 관계의 관리와 비밀의 통제, 이야기 자체의 종결을 지향하는 통제적 차원에 해당한다. 이런 대조 속에서 <33원정대>는 JRPG를 반복하고자 하는 정서적 기대와 인물 내부의 이야기 및 전체적인 세계관 사이에 긴장을 유발한다. 플레이어는 최후의 순간에 베르소와 마엘 둘 중의 한 사람의 편을 들기를 택해야 한다. 베르소는 그가 가짜임을 실감케 하는 원본의 기억에 의해서, 마엘은 죄책감과 고독으로 인해서 자신이 연원한 곳에 편안히 소속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종용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현실은 조용히 인생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닮아 있지만 결코 상대가 소망하는 바를 용납치 못한다. <33원정대>는 결국 이전의 두 게임과 달리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이야기이기 보다는, 두 개의 현실주의 사이에 팽팽한 적대를 그리는 이야기다.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엔딩 직전으로 돌아가지만, 엔딩의 촉매인 최종 보스가 사라져 있는 결말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들이 남은 콘텐츠를 마저 즐기라고 남겨둔 여지에 지나지 않는다. 다회차도 썩 내키지 않는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여정, 마녀의 손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사명과 함께 늙어가리라는 희망 모두 최초의 순간부터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 그 모든 시간을 다시 쏟을 수 있을까? 결국 <33원정대>는 한 번 엔딩을 보고 나선 게임 내에서 “같은 느낌”에의 재방문은 불가능하다. “같은 느낌”에 근접한 무언가를 느끼기도 어렵다. 본 게임 자체가 그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으로 게임 플레이를 전환해내고 있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1] https://news.denfaminicogamer.jp/interview/250415a/2 [2] Mallindine, J. D., 2016. Ghost in the Cartridge: Nostalgia and the Construction of the JRPG Genre. gamevironments 5, 80-103. Available at http://www.gamevironments.uni-bremen.de . [3] 영이, 게임 코러스, 워크룸프레스, 2025, 24-26. Tags: 프랑스게임, JRPG, 턴제, 애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Editor's View] 기술의 후예로서, 혹은 기술의 관찰자로서
디지털게임은 기술매체입니다. 아마도 현재까지, 그리고 근미래까지도 당분간은 가장 첨단의 기술을 활용해 인간이 삶과 사고를 그려내는 매체로는 게임이 유력할 것입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첨단의 기술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만드는 앞으로의 모든 미래 매체들을 우리는 게임, 혹은 게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매체로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Back [Editor's View] 기술의 후예로서, 혹은 기술의 관찰자로서 24 GG Vol. 25. 6. 10. 디지털게임은 기술매체입니다. 아마도 현재까지, 그리고 근미래까지도 당분간은 가장 첨단의 기술을 활용해 인간이 삶과 사고를 그려내는 매체로는 게임이 유력할 것입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첨단의 기술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만드는 앞으로의 모든 미래 매체들을 우리는 게임, 혹은 게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매체로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술과 게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들어오기 이전의 핀볼과 같은 기계부터 VR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방식은 언제나 기술적으로 가능한 무언가와 연동되어 왔습니다. 1980년대 이후 연산장치의 급격한 발달 과정은 디지털게임의 발전과 같은 궤적에 놓였으며, 여러 올드게이머들이 경험하신 것처럼 때로는 최신 게임의 원활한 구동을 위해 다음 세대의 하드웨어와 기술을 작동시킬 수 있는 더 강력한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는 역전도 자주 발생한 바 있습니다. 그런 기술과 게임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GG가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발전하는 기술은 우리의 게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가이고, 또 다른 각도에서의 질문은 그런 디지털게임은 게임 안에서 기술을 어떻게 재현하고 다뤄 왔는가입니다. 전자가 기술의 후속이라면, 후자는 기술에 대한 해석이자 예언일 것입니다. 게임 속에 비춰지는 기술의 변화와 기술을 통해 변화하는 게임의 외양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게임과 기술이 갖는 불가분의 관계를 곱씹어 봅니다. 21세기가 열린 이후 기술의 발전은 더욱 가파른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발전은 동시에 고도화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눈길을 끌며 오늘날 기술 발전을 이윤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시각을 중심에 두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GG는 비평웹진이고, 그러한 자본의 시선 바깥에서 게임과 기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이번 호에서 꿈꿔 봅니다. GG는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평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GG와 함께 해 주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며 공모전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Back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17 GG Vol. 24. 4. 10. 초창기 놀이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운과 확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어 온 바 있었다 . 아곤 agon 과 알레아 alea 의 경합이라는 카이와의 놀이에 대한 이해는 디지털게임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이 놀이매체의 중심을 관통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으로 어떤 모양이 떨어지게 될 지를 예측하지 못하던 순간은 ‘ 리그 오브 레전드 ’ 에서도 평타가 치명타로 들어갈 확률을 생각하는 순간까지 이어지며 이 디지털 놀이를 주사위값에 의해 무작위로 변화하는 상황과 그에 맞춘 플레이어의 대응으로 만들어낸다 .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 ‘ 다키스트 던전 ’ 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 ‘ 슬레이 더 스파이어 ’ 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많은 로그라이크 장르들이 사랑받는 이유의 중심에는 이러한 확률의 폭넓은 상황 재현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러나 모든 확률이 이처럼 풍부한 상황 재현의 원동력만으로 오늘날의 게임에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오히려 확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디지털게임의 어떤 순간에서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 하는 의문감을 떠안곤 한다 . 서사 압축으로 기능하는 확률이 만드는 '스킵' 한때 해괴한 광고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바일게임 ‘ 왕이 되는 자 ’ 의 전투를 생각해보자 . ( 나는 연구 차원에서 억지로 플레이한 적이 있다 .) 이 게임에서 전투는 자신의 군사력과 적의 군사력을 각각 수치로 보여준 뒤 ‘ 공격하시겠습니까 ?’ 라는 문구를 보여주고 , 공격을 선택할 경우 각각의 군사력에 일정 확률을 더해 전투결과를 뽑아내는 형태로 구성된다 . 일종의 자동 전투와 같은 방식이다 . 자동전투는 본래 수동전투 ( 수동전투라는 표현 자체가 좀 어색하긴 하다 ) 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대체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술 화면에서 실제 병력들을 지휘해 벌이는 전투가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애당초 적과 아군의 병력 차이가 확연해 전투를 통해 플레이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수가 무의미하게 적을 경우 플레이어는 자동전투 버튼을 눌러 이 전투의 승패 결과값만을 받아들 수 있다 . 선택지로서의 자동전투는 나름 유의미하다 . 사례로 든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략 영역에서의 플레이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국지적인 전투에 일일이 공을 들이는 것 자체가 전략적 플레이에 비해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 되며 , 이럴 때 자동전투 버튼은 플레이의 초점을 전술에서 대전략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 초반부에는 유의미했지만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플레이의 특정 지점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 스킵 ’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동전투는 확률이라는 장치를 통해 ‘ 스킵 ’ 을 제공함으로써 전략적 플레이의 연속성을 부각시킨다 . 흥미로운 점은 이 방식이 바로 ‘ 스킵 ’ 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 컴퓨터의 연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황과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사고하여 만들어내는 행동이 일정한 플로우 밖으로 벗어날 때 , 게임은 플레이의 두 주체 – 난이도와 숙련도 간의 긴장관계를 기본적으로 주어진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한 확률값으로 뽑아내며 과정을 스킵한다 . 이 때 확률은 원본이 되는 일련의 수동 전투를 대체하는 장치가 된다 . 사람의 머리와 손으로 그려냈어야 할 어떤 상호작용의 과정을 스킵한 뒤 , 그 결과만을 예상되는 값으로 출력하면서 확률은 마치 오늘날 인공지능들이 그러하듯 시작점과 종착점 사이의 모든 과정들을 스킵하는 도구가 된다 . 디지털게임 안의 세계를 지탱하는 뼈대는 수치화된 데이터다 . ‘ 테트리스 ’ 안의 세계는 2 차원 좌표계 안에 블록의 유무를 구현함으로써 만들어지고 , ‘ 발더스 게이트 3’ 의 캐릭터 간 감정은 각각의 이벤트를 거치며 합산된 값을 통해 만들어진다 . 이런 데이터들은 세계를 구현하는 일종의 형태소이지만 , 데이터는 단지 의미에 정렬된다고 해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적어도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 첫번째로는 각각의 데이터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세계로 거듭나야 하며 , 두번째로는 그 작동하는 세계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주어진 환경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 아주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 전자가 NPC 로 가득찬 , 마치 영화 ‘ 주먹왕 랄프 ’ 와 같은 세계라면 , 그 세계에 플레이어의 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지는 시점부터를 우리는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단계를 전제로 놓고 다시 ‘ 스킵 ’ 의 문제를 살펴보면 , 우리는 이 ‘ 스킵 ’ 이 무엇을 건너뛰고 대체하는지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 완성된 , 작동하는 세계로서의 NPC 월드는 본래 사람에 의해 변화되도록 디자인되었으나 , 플레이어 대신 데이터 월드는 확률이라는 랜덤성에 기초해 외부로부터 자극받는다 . 자동전투 속에서 확률의 개입에 의해 스킵되는 대상은 외부자극 , 곧 플레이어인 것이다 . 놀고싶은 본능과 귀찮음의 본능 사이에서 디지털게임에서 확률이 쓰이는 방식은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그 자체로서보다는 어떤 목적에 의해 쓰이느냐에따라 게임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 로그라이크에서의 확률은 조합을 통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상황의 가짓수를 넓혀 더욱 다양한 플레이어 개입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 자동전투에서의 확률은 플레이어의 개입 자체를 대체하여 NPC 월드를 NPC 들만의 월드로 만들어내는 데 쓰인다 . 다시 카이와의 아곤 – 알레아 개념으로 돌아가본다면 , 로그라이크적 확률이 다양성을 늘려 아곤의 비중을 두텁게 하는 것과 반대로 자동전투로서의 확률은 알레아의 비중을 두텁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확률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대체하는 경우의 양 극단인 아곤 – 알레아에서 100% 알레아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상상한다면 아마도 뽑기 , 도박 , 복권 내지는 포춘 쿠키와 같은 형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곤과 알레아 , 플레이어의 개입과 운적 요소 ,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한다면 과정과 결과라는 두 축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 그러나 확률이 대체하고자 했던 요소 , 인간의 개입이라는 요소가 갖는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 애초에 일정 수준에 이른 플레이어가 손쉬운 전투를 의미없다고 생각해 스킵하거나 , 특정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무의미한 사냥을 필드에서 반복하는 행위를 이른바 ‘ 노가다 ’ 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개입하는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속성 중 하나인 귀찮음을 발견한다 . 플레이어의 개입은 디지털게임이라는 요소의 특성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고 사실상 이 매체의 즐거움은 그 개입을 통해 이뤄지지만 , 동시에 개입의 속성은 양가적이다 .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이리저리 손과 머리를 굴리는 과정은 너무나 흥미롭지만 , 동시에 다른 매체활동에 비해 무척이나 귀찮고 복잡한 일이다 . 당장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책과 드라마 ,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그 자세로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그 귀찮음의 속성이 확률이 플레이를 계속 대체하고자 시도되는 이유다 . 초창기에는 없었으나 , 롤플레잉 게임에 이르면 점차 전투가 ‘ 노가다 ’ 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게임적 의미로 주목하는 부분은 이 전투의 결과가 이미 예측되는 순간에 ‘ 노가다 ’ 라는 호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난이도와 숙련도의 상호작용이 더 이상 두근두근한 기대값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 , 상호작용의 의미는 즐거움보다 귀찮음으로 크게 기울어버린다 . 복잡다난한 입력을 생략하고 , 양 측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몇 가지 확률공식만 돌려 경험치와 아이템만 뽑아내는 것은 플레이에 내재한 속성인 귀찮음을 극복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과 , 그에 호응하는 이용자들의 합의로부터 이루어진다 . 그리고 이런 귀찮음의 문제는 단지 디지털게임에만 , 그리고 게임 플레이의 시작과 끝이라는 짧은 시간선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 일정 부분 유비해보자면 우리는 점점 미디어가 주는 귀찮음을 자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미디어 전반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 영상은 정속이 아니라 1.5 배속 , 2 배속으로 보는 것이 속편하고 , 그보다도 ‘10 분안에 몰아보기 ’ 가 훨씬 더 명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늘날이다 . 한때 묘사의 섬세함으로도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문자문학은 이제 ‘ 지리한 ’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르게 본론을 전개하는 것이 보다 널리 받아들여진다 . 숏폼이라는 15 초의 시간이 의미하는 인간의 미디어적 인내력은 시간선상의 매체에서는 배속과 숏폼으로 , 상호작용 매체에서는 개입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 아마도 추측하건대 이러한 변화는 개별 미디어나 수용자의 변화가 아니라 미디어 및 정보환경 전체의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소설의 결말을 굳이 지인으로부터 스포당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과거와는 달리 ,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는 검색 한 번에 어지간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이다 . 검색어 입력 – 결과값 출력의 속도가 즉문즉답이 된 시대에서 고전적인 미디어들의 방식은 이제 정상속도가 아닌 ‘ 굳이 느려터진 ’ 상대 속도로 이용자들에게 체감된다 .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을 굳이 붙잡을 이유가 없는 시청자가 배속을 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 디지털게임의 플레이 또한 보다 빠른 형태의 외주형 플레이인 확률에 넘기기로 이용자들의 선택은 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한편으로는 고전적 플레이에 익숙하고 또한 이를 애정하는 입장이지만 , 더불어 유년기와 달리 쉽게 피로해지는 신체에 얹혀 사는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가 가진 귀찮음의 속성은 갈수록 그 무게감을 더한다 . 시대의 매체 속도가 빨라지고 , 신체의 생체 속도는 느려지는 더블 부스터의 시대를 맞은 과거 유년기의 게임 키드들이 중년이 되어 보다 확률의 개입이 두터워진 게임을 붙잡고 소파에 눕는 이유는 한때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으로부터 감명받고 매료되었던 이유와 함께이기에 더욱 서글퍼진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Back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03 GG Vol. 21. 12. 10. 오늘날의 게임 생태는 많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e스포츠는 ‘보는 게임’으로의 전환이 가장 대표적으로 일어나는 영역이다. e스포츠의 시청자층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직접 게임을 하지 않지만 중계를 챙겨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실제로 2012년에 1억 3000만이었던 세계 e스포츠 시청 규모는 2023년에 6억 4,600만 명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있어 우려도 존재한다. 급변하는 게임 환경 속에서 e스포츠 시장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을지에 관한 우려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처럼 게임 생태는 급변할 수 있음에도, 다음 세대를 바라보고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얼핏 보면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게임과 교육을 접목시키려 한다. 심지어 게임 교육기관이 미국 대안학교로 인증을 받고, 유수의 대학들과도 연계했다. 이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어떤 상(想)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GGA, 이하 GGA)의 백현민(Joseph Baek) 디렉터를 편집장이 만나고 왔다. 편집장: 기본적으로 아카데미가 가지고 있는 비전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백현민 디렉터: 저희의 비전은 저희 학생들이 e스포츠 내에서 성공적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각기 다른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편집장: 그러면 그 비전 속에서 학생들의 일과나, 한 학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등 아카데미의 실제 운영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먼저 젠지 엘리트 e스포츠 아카데미(GEEA)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GEEA는 국제학교로서 학업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학교에서 하루 4시간 고등 교육에 해당하는 수업을 받고 그다음에 저희 건물로 넘어와서 e스포츠 관련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때, 수업들은 블록 스케줄 식으로 운영이 돼 월, 수 / 화, 목을 나누어 각기 다른 수업을 하고, 금요일은 선택 과목을 듣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e스포츠에 관련해 제공하는 교육은 게임 이론 즉, 영상을 보면서 게임에 대해 배우는 부분도 있고, 스크림을 통해서 팀플레이를 배우는 부분도 있고, 금요일 선택 과목 같은 경우에는 e스포츠의 역사나 e스포츠 업계에 관하여 배우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교육적 관점에서 저희 GEEA의 특별한 지점은 단순히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개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가르친다는 부분입니다. 많은 학부모님이 저희한테, “자녀가 예전에는 잠도 안 자고, 밥도 제때 안 먹었고 게임을 했는데, GEEA 수업을 듣고 나서는 새벽 1시에도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는 말씀들을 해주십니다. 이처럼 학업이나 일상적인 부분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데, 저희는 이런 학업적인 성장이 그들의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학생들의 평균 티어가 다이아 3이었을 때, 평균 티어가 다이아 1인 다른 학원과의 스크림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희 학생들이 피지컬 쪽에서 떨어지더라도 팀플레이로 부족한 부분들을 메꾸었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결국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그냥 ‘논다’는 의미로만 묶이지 않는 것 같아요. 학업도, 게임도 일종의 사회 활동이고 이런 활동을 통해 게임 플레이에서도 기존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계시는 거지요? 백현민 디렉터: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을 기반으로 저희의 두 번째 주요 프로그램인 GGA 온라인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GA는 온라인 학원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GGA 온라인은 개개인의 역량에 맞춘 굉장히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로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경우에 ‘이번 플레이가 좋았다’, ‘안 좋았다’는 식의 단순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희 코치님들 같은 경우에는 ‘이 순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팀원의 플레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지’ 등 세부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학생의 게임 실력뿐 아니라 소통하는 방법 등 인간적인 영역에서의 성장을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저희 학생들끼리도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었지?’ ‘그 전략이 왜 성공했지?’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소통을 합니다. 이러한 초점은 많은 학생들이 더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편집장: 요즘에는 사설이나 과외 형태로 개인 강습을 받는 학원이나 프로그램이 많은데, GGA 같은 경우에는 그냥 게임을 잘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네. 저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선수가 단순히 게임 실력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통해서 인간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학생들은 더 높은 티어의 선수들과 스크림을 해서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점수나 티어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었을 때 학원을 운영했었는데 다른 학원들을 보면 굉장히 대표적인 한국 스타일, 그러니까 시험 점수를 올리는 것을 강조하고, 시험을 볼 때 필요한 전략이나 노하우, 팁들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시험 점수는 올라가겠지만, 시험 점수 이외에는 얻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학생들에게는 내용을 이해하고 이 내용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곤 합니다. 그리고 GGA에서도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성장을 함으로써 티어가 함께 올라가고 있습니다. 편집장: e스포츠 선수들 같은 경우에 한동안 인성 문제로 굉장히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e스포츠 플레이에 대한 교육을 받는 데 인성에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고 있나요? 백현민 디렉터: 네. 저희도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좀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미국에서는 굉장히 강조되는 부분이 ‘소프트 스킬’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이라기보다 팀워크나 리더십, 소통, 적응력 등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부분들을 소프트 스킬이라고 하는데, 하버드 조사에 따르면 직업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의 85%가 소프트 스킬이라고 합니다. 저도 많은 프로 선수들이 과거 인성 문제로 논란이 되어 있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아직도 e스포츠의 평판이 안 좋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음 세대의 선수들의 인격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부분은 다음 세대 선수들이 좋은 쪽으로 업계를 대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세대에 투자함으로써 e스포츠 업계가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미래를 가질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 게시된 GEEA의 수업 사진 편집장: 아카데미의 첫 번째 사업이 일종의 대안 교육의 형태이면서 한국에서는 생소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생소함이 같이 있는데 첫 번째는 게임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는 생소함. 두 번째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와 교육을 병행한다는 생소함입니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는 교육과의 병행을 목표로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교육이 정말 성과가 있을지 실제로도 학부모들로부터 질문을 많이 받으실 텐데 주로 어떻게 답변을 하시나요? 백현민 디렉터: 네. 학부모님들이 그런 걱정을 많이 하세요. 특히 한국에서는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한다는 일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전통적인 스포츠보다 e스포츠가 학업과 병행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스포츠는 신체적인 부분에 많이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e스포츠는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인간적인 성장 혹은 학업적인 성장을 많이 유도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학생 중에서는 학교에서 성적이 굉장히 안 좋거나 학교를 자퇴한 학생들이 있었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학교를 간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e스포츠의 특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한 학생 같은 경우에는 저희한테 처음 왔을 때 실력이 그렇게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거치고 현재 오버워치 팀 서울 다이너스티의 선수로 등록이 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이런 성공 사례들을 기반으로 전에는 학교에서 성적을 잘 못 내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성적을 잘 내는 학생들도 저희 프로그램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미래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 많이 오고 있습니다. 편집장: 대안학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젠지 아카데미는 대안학교로의 기능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백현민 디렉터: 먼저 GEEA는 공식적으로도 대안학교로 인정을 받고 있고요. GGA 온라인의 경우, 대안학교는 아니지만 결국은 GEEA와 같은 결과물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GGA 역시 e스포츠 교육을 중점으로 하고 있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외국으로 유학 가거나 한국 내에서 대학교를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편집장: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게임의 특성상 경쟁을 하다 보니까 지거나 도태된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지점들에 대한 관리가 별도로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물론 학생들이 경쟁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코치들이야말로 그런 부분을 케어해 주시기에 가장 적합한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코치들은 전부 프로 경험이 있거나 업계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일해온 분들이기에 게임 내에서의 승패와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코치진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을 잘 케어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라는 게 남들과 다른 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한다고 해서 좋은 직업이나 좋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스포츠라는 색다른 길을 감으로써 더 성장을 하고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집장: 많은 학생들이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아카데미에 문을 두드립니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도달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당연히 많은 청소년이 좌절감을 느낄 것인데,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좌절감을 걷어내고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주셔야 하잖아요. 이에 어떤 길들을 주로 제시하시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진출해서 본인도 만족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례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둘 다 한꺼번에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학생들이 저희 GGA를 찾아오는 이유는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부분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GGA가 자동으로 프로 게이머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점입니다. 다만, 조금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꿈을 좇게끔 도와주는 것인데, 프로 선수가 된다는 꿈 하나만 너무 좁은 초점으로 바라본다면 프로 선수가 되기를 실패했을 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너무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학생들이 좀 넓은 시야를 갖고 다양한 가능성을 바라보게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학에 진학한 친구를 사례로 말씀드리자면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프로 선수가 꿈이었지만 나이나 기타 상황의 문제로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새로운 꿈으로 삼았지만 그것도 잘 안 됐습니다. 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국의 캔터키 대학에 40% 장학금을 받고 진학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캔터키 대학에서 e스포츠 관련 부분에 대해 리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학생 같은 경우에는 저희 젠지 재단에서 후원을 받고 젠지와 인턴십 경험까지 하면서 꿈을 확장시킨 사례입니다. 프로 선수라는 원래 꿈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저희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대안이나 다른 커리어를 제공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한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일 것 같은데요. 홈페이지에 지금 나와 있는 소개를 보면 미국 대학으로의 진출 케이스들이 많은데 현실적으로 한국 학부모들은 아카데미 출신이 한국 대학에 특례 입학 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백현민 디렉터: 네. 저희도 한국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아직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게임을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보거나 애들이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혹은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많습니다. 이에 저희는 e스포츠를 보는 시선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와 게임 업계는 전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미래에 성장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e스포츠라는 업계가 책임감 있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려면 이런 시선을 바꿔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국의 대학들이 시선을 바꿀 수 있게끔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졸업생 한 명이 이번에 한성대학교에서 20%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게 된 케이스가 있습니다. 한성대학교는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신설 학과를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졸업생은 아니지만 GGA 학원을 경험한 학생도 비슷한 목표를 달성한 학생이 있습니다. 편집장: e스포츠는 굉장히 큰 산업이죠.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우려, 즉 하나의 게임, 하나의 장르가 영원할 수 없다는 리스크도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한 장르가 쇠퇴했을 때, 그 길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막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실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네. 말씀하시는 부분도 분명히 우려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같은 사례가 있다시피 게임 종목이 갑자기 퇴보할 수도 있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일단 다양한 종목을 가르치고 있고, 무엇보다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라기보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적으로 학생들이 성장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새로운 게임, 새로운 종목들이 나오면 그것을 통해서 또 미래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편집장: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그리고 e스포츠가 어떤 식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라는 꿈이 있으실까요? 백현민 디렉터: 중요한 것은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뀔지에 관한 것일 것 같습니다. e스포츠를 사랑하고 e스포츠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업계가 더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선수들이나 코치, 매니저 등 e스포츠라는 환경 자체는 만들어져 있었지만,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거나 체계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Back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21 GG Vol. 24. 12. 10.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을 차지해 온 지라, 중국의 디지털게임을 향한 도전에서 중국 고전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바 있었다. GG의 지난 칼럼(참조)에서처럼, 중국의 디지털게임 제작은 초창기부터 <봉신연의>, <료재지이> 같은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디지털게임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유기>는 매우 자주 디지털게임으로의 시도가 이어져 온 작품이다. 8비트 게임 시절부터 중국에서는 <대화서유>, <서유기>, <서전취경>과 같은 여러 회사에 의한 다양한 게임 장르로의 시도가 서유기를 딛고 이루어졌다. (관련내용은 GG 2호,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 참조)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서유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판타지성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 현대적 대중문화 콘텐츠로의 잦은 시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손손>과 같은 아케이드 디지털게임화, <서유기>를 초기 모티프로 삼아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아예 서구권 전반에서 ‘손오공’이 아닌 ‘손 고쿠’를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성공한 <드래곤볼>과 같은 사례와 함께 한국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반으로 한 ‘사오정 시리즈’의 성공이나, <마법천자문>과 같은 사례들이 서유기라는 고전 판타지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동아시아 고전 판타지라는 강한 배경을 가진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의 제작 발표가 있은 뒤부터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한편의 기대와 한편의 걱정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티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상당한 완성도가 오래도록 다시 익혀 내어 온 고전의 새로운 게임적 재해석에 빛나는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또 서유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안이하게 천착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시장 규모에 비해 오랫동안 이렇다 할 ‘문화적 업적’으로서의 대표작을 보여주지 못한 중국 게임제작 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 배경이었다. 높은 장르적 완성도는 세계관과 결부되며 빛을 발한다 <오공>의 성과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도 상당하다. 곤술과 창술이라는 우슈에 기반한 무기 액션은 특유의 부드러운 초식 연격을 통해 매끄러운 전투 흐름을 완성했고, 사실상 전투 액션의 핵심이 되는 강공격은 천지를 울리는 과장법을 무리없이 연출해내내는 데 성공했다. 전투 액션에서의 성공은 게임 시작부터 이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의 완성도 이상으로 다채로운 기믹을 자랑하는 수많은 보스 몹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른바 ‘복붙’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 대신 풍성한 파훼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다양한 전투 도전이 게임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냈다. 난이도 설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은 일부 게이머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고전적인 방식인 ‘시간을 들이면 해결된다’는 기믹을 살려둠으로써 완화점을 두었다. 초반부는 소울라이크를 방불케 할 만큼 확실히 도전적인 난이도를 보여주지만, 특정 구간들을 지나면서 열리는 도술과 특성이 누적되면서 난이도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들이면 못 넘어설 것은 아니라는 일련의 안도감을 부여한다. 소울라이크 느낌을 내면서도 게임 오버에도 경험치를 흘리지 않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난이도 설정이 없다는 점을 보완하는 디자인이었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쉽다고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초심자를 완전히 내팽개친다고만은 볼 수 없는 타협점을 보여주었다. 디지털게임의 성취를 바라볼 때 메카닉만을 뚝 떼어 보는 것은 게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단순히 막대기를 돌리고 휘두르는 공격 액션이 훌륭하다고 하면 굳이 ‘서유기’라는 배경과 이야기라는 스킨을 덧씌운 게임에서 우리가 받는 감상을 정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취 또한 상당히 공들인 전투 액션이 어떤 세계관 하에서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와 결부될 때 비로소 본격적인 의미를 드러내는데, 기본적으로는 ‘서유기’의 세계관을 활용하되, 손오공의 서역 여정길 당시가 아닌 그 다음의 이야기라는 배경 설정을 통해 게임은 이 세계관을 21세기에 디지털게임으로 재현할 때 필요한 많은 자유로움을 끌어낸다. 신분제 시절의 판타지가 못다 한 이야기의 현대적 재구성 중국의 또다른 판타지 소설인 ‘봉신연의’와 마찬가지로 ‘서유기’ 또한 요괴라는 이름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오공>은 ‘서유기’에 등장한 수많은 요괴들 중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도드라지는 기믹이 될 수 있는 요괴들을 서유기 원작의 순서와 관계없이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고전 판타지 소설이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재구성될 때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서 <오공>은 주인공인 손오공의 서역 행보를 되새기는 것이 아닌,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를 자임하는 주인공 ‘천명자’의 행보를 그려낸다. <오공>이 그려낸, 삼장법사 일행의 고행이 끝난 뒤의 세계는 원작이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어떤 세계의 후속담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공>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서역에서 가져온 대승의 불경이 중국에 도착했다면 이 세계는 부처의 대자대비심으로 이전보다 나은 세계가 되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오공>은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났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아예 원작에서 투전승불의 지위에 올라 해탈에 이른 것으로 결론지어진 손오공은 게임 시작부터 죽었다고 나온다. 관세음보살이 현장법사에게 일러 주었던, 중생을 구제할 대승의 새 불경은 딱히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오공>이라는 게임의 출발점이다. 더욱 의뭉스러운 것은 세계의 남은 자들이 그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불경을 다시 가져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버린 손오공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천명자는 부처의 지위를 버리고 다시 원숭이 왕으로 살고자 했다 죽게 된 손오공이 세상에 남긴 육근을 모아 손오공의 부활을 시도한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방법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이 아니라 손오공의 부활이라는 점은 언제나 다음에 이어질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을 암묵적 전제로 삼는 디지털게임의 구조 안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원전 ‘서유기’가 그려낸 세계는 신격 존재들과 인간들, 그리고 요괴들이라는 구분이 엄격한 세계였다. 일종의 신분제라고도 볼 수 있을 이 구분은 한편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아예 고정불변인 것은 아닌데, 이를테면 원래 요괴 출신이었던 손오공이 천계의 부름을 받아 옥황상제와 겸상하거나 투전승불이 될 수도 있고, 천계의 군인이었던 천봉원수와 권렴대장이 잘못을 저질러 요괴로 환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분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그 오름과 내림이 명확한 격차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신분제는 태생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상벌적 개념에 가깝다. <오공>의 시작부분에서 손오공은 천계로 부름받은 투전승불이라는 지위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대해 천계는 군대를 보내 손오공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으로 화답한다. 이는 고전 소설 ‘서유기’가 시대적 한계로 그려내지 못한 지점을 21세기의 디지털게임이 다시 가져올 때 살려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고전 판타지의 게임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은 이미 크게 시도된 바 있는데, <오공>의 제작진들이 직접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바 있는 <갓 오브 워> 리부트 시리즈다. 원작이 되는 북유럽 신화가 오딘과 토르라는 주신들의 관점에서 진행된 바 있다면, 게임으로 등장한 <갓 오브 워>의 북유럽 신화는 실제 신화 속에서 반영웅의 위치에 있었던 로키의 시각에서 신화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시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는데, 오딘의 지혜는 게임 안에서 교활함으로 재해석된다. 신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려 들고, 그 신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의 저항은 주신들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멸망, 라그나뢰크인 것이다. 라그나뢰크가 예언한 세계의 종말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해석은 고전적 신분제 사회를 벗어난 현대에 들어 신화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그리고 <오공>은 같은 맥락으로 ‘서유기’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 나선다. 신분제가 명확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러웠을 신계가 인간계를 관리하고(혹은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 들어서는 그 자체로 이미 억압적인 무언가가 된다. 로키라는 악신의 존재를 활용한 <갓 오브 워>의 방식 대신, <오공>은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요괴 출신이지만 천계의 명령에 순순히 복무했던 이가 받은 의심과 실망을 부각시킴으로써 고전적 신분제 하에서의 평화와 행복이 가진 모순을 정면으로 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각론은 다르지만, 두 게임 모두 고전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화와 판타지가 현대 관점에서는 여전히 모순일 어느 지점을 향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냈다는 점에서 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평을 받을 만 하다.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 이 게임의 의미에 다가가는 어려움에 대해 고전 소설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제작진들이 고전 소설로서의 ‘서유기’를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서유기’는 원전 자체가 보편적 교양 소설로 취급받으며, 한국에 비해 폭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오공> 안에 등장하는 원작 출신의 많은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보여줬던 성격과 캐릭터를 게임 특성에 맞게 변형한 상태로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성이 게임 메커닉과 강하게 결부되며 게임을 말그대로 살아움직이는 ‘서유기’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만들어진 2차창작 콘텐츠로서의 <오공>은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서유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 바깥의 게이머들에게는 미처 다 전달되지 않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다음 회에서 풀어보자는 말의 의미는 중국 문화권이 아니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충분히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오공>에 대한 아쉬움은 역으로 이 게임이 원전에 너무나 충실했다는 점에서 원전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들에겐 미처 그 정교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온다. 원전에 대한 세심한 재해석에 경탄하면서도 내내 이걸 서구권 게이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를 떠올린 것은, 게임의 기저에 흐르는 ‘서유기’라는 원전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여러 서브 컨텐츠들이 충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사천왕과의 전투라는 것도 아마 서양권 이용자들에겐 '멋진 거대 몬스터와의 박력있는 전투'까지만 전달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 Back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03 GG Vol. 21. 12. 10. 잘못된 전제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게임은 원래 ‘손맛’이 아니라 ‘보는 맛’이라 우기는 광고 카피. 적잖은 게이머들은 “게임은 플레이할려고 하는 거 아닌가? 본질을 없애버리네!”같은 댓글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진행되는 게임을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가? 키보드나 마우스로 입력을 하고 그래서 점수든 승리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 즉 게이머와 게임 텍스트의 상호작용이 게임의 매체적 본질 아니던가?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고 연예인들이 박장대소하며 히히덕대는 장면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카우치 포테이토족의 모습과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역동적인 게이머 모습은 당연히 구분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수동적 텔레비전 시청자와 능동적 게임 플레이어의 구분은 꽤 오랜 기간 양 미디어의 본질적 차이인 것처럼 여겨졌다. 직관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가 있다. “본다”는 것은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수동적인 행위라는 전제가 있고, ‘상호작용성’이야말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차별되는)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가 있다. 크게 의심받지 않던 이 전제들. 최근,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자기가 게임을 하는 대신 남들이 게임하는 모습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내가 조작을 하는 대신 기계가 알아서 내 캐릭터를 육성시켜주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키보드에서 손 떼라는 게임도 나왔고, 성공했다. 우리가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보는 행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은 그리 게으르고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흘긋) 보다(see)”와 “바라보다(look)”는 구별되어야 한다. 일상적 삶에서 우리 시선이 어떤 대상들에 우연히 머물거나 스쳐가는 상황이 아니라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진 자발적인 행동으로서의 ‘바라봄’은 바라보는 ‘실천 행위’이다. 길가에서, 술집에서, 운전을 하다가, “뭘 봐, 인마!”라는 마술같은 네 글자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해변에서, 클럽에서, 응시하는 자와 시선을 피하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CCTV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감시하는 편의점 사장이나 몰래카메라로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변태 범죄자에게 ‘바라봄’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힘 있는 행위이다. 시선만으로도 권력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감옥의 간수와 죄수는 이 명제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다. 푸코(Michel Faucault)가 19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eremy Bentham)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원형 감옥의 작동 원리를 설파할 때, 그 핵심은 시선의 권력이 내면화된다는 점이었다. 중앙 첨탑에서 죄수의 방을 비춘다면 죄수는 첨탑의 간수를 볼 수 없다. 나는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는 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일차적인 권력의 자원이 된다면, 그가 지금 나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정한 규율과 표준을 내면화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이 권력 작동의 최종 결과가 된다. 간수는 시각의 주체이다. 죄수는 대상이다. 시각중심주의는 주체와 대상을 공간적으로 분리하고, 주체에게 바라보고 분석할 힘을 준다. 이론(theory)의 어원은 본다(theoria)이다. 눈은 권력을 가졌지만 대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라보는 주체는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이기도 하다. 코미디를 보면서도 울 수 있다면 이를 어찌 수동적 수용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텍스트 중심주의의 미디어 문화이론이 수용자에 대한 관심으로 선회했던 이유도 바로 해석 주체의 능동성 때문이었다. 홀(Stuart Hall)이 부호화와 해독에 대한 도발적 논의를 시작한 때가 40여 년 전이고, 이를 이어받아 피스크(John Fiske)가 저항적 즐거움과 기호론적 민주주의를 제기한 지도 30년 이상이 흘렀다. 오히려 수용자의 능동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성이 나왔을 정도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신문기사나 만화를 보는 것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보다 수동적이라 믿어버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전제가 아닐 수 없다. 게임은 과연 상호작용적 미디어인가? 하지만, 여전히, 게이머의 개입적 행동을 영화 관객의 해석적 행동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는 없다. 게임의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믿음도 여기서 출발한다. 주체와 대상이 공간적으로 분리된 전통적 시각매체와 달리, 게임에선 수용자가 대상 텍스트의 내용과 구조에 작용을 가하고(입력) 그 결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점은 분명한 차별 지점이기 때문이다. 게임문화연구의 초기, 게임과 게임플레이를 유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루돌로지)과 서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내러톨로지)이 대립했을 때도 상호작용성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전자는 게임의 본질을 게이머의 입력행위에서 찾았고 후자는 게임 텍스트가 상호작용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놀이 주체(플레이어)의 작용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된다. 이것을 상호작용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무엇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는 공과의 상호작용인가, 상대 팀과의 상호작용인가, 아니면 심판이나 관중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를 하나의 서사로 간주하는 비유이다. 이 서사는 선수들이 플레이함으로써 완성된다. 자유도는 높지만, 서사 구성의 정해진 규칙은 있다. 게임을 게이머의 참여로 완성되는 서사의 일종으로 이해했던 머리(Janet Murray)의 정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축구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관중이다. 영화의 서사를 즐기듯, 축구 서사를 만끽한다. 놀이의 주체가 선수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게임에 대한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 즉 ‘보는’ 행위가 수동적이라는 전제와 ‘상호작용성’이야말로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는 처음부터 불안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다. 게임을 설명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다. 게임의 주체도 게이머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이스포츠(eSporsts)나 게임 스트리밍 시청의 경우이다. 이스포츠의 경우, 프로 게이머가 게임 서사를 완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관중은 게임 서사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즐기는 주체가 된다. 방치형 게임 플레이어는 적극적인 입력을 하는 대신 서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게임을 즐기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 게임의 본질을 거스르는 기형적 상황은 아니다. 시각성의 재림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라 치더라도, 왜 하필 지금 ‘보는 게임’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 의문은 남는다.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모두 사용하던 게임 플레이가 당연하던 시기를 지나 거의 전적으로 시각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플레이(관람)가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쇄술의 발달 이후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어 왔다. 매체 철학자인 맥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인쇄술이 인간의 감각들을 서로 떼어 놓고, 다양한 감각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술 중심의 부족문화에서 문자 중심의 필사문화로, 그리고 인쇄술 발전으로 인해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등장했다는 그의 매체사적 통찰 속에서, 시각은 필사문화 시기부터 중심적 감각으로 등장하여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시기에는 다른 감각들을 억압하는 지배적 감각이 된 것이다. 총체적 인간 감각이 분화되고, 시각이 나머지 감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시각 권력은 근대성의 등장에 맞춰 지배적 지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각 권력과 원형감옥의 간수가 갖는 시각 권력이 같은 의미는 아니다. 맥클루언이 강조한 근대적 시각성의 지배는 인쇄술과 선형적 문자중심성과 더불어 등장, 강화되었고, 따라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신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을 강조하면서 원근법에 충실한 과학적 그림이 등장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를 감시하거나 훔쳐보고 나아가 통제하는 생체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이다. 다시 맥클루언을 인용하자면, 시각 중심으로 형성된 인쇄-미디어 문화가 주술적이며 마법적인 청각 세계를 붕괴시켰던 것처럼, 구텐베르크 은하계 역시 전기 미디어의 발명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신과 라디오, 텔레비전은 메시지를 찰나적으로 만들어 합리성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가장 탈근대적인 매체이다. 게임 내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잠시 접어두고 단순화하자면, 게임은 시각중심성에 저항하는 감각 분산적 매체이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태도는 인쇄매체에 담긴 선형적 언어를 따라가는 (맥클루언이 말하는) 시각중심적 자세도 아니고 경건한 자세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벤야민이 말하는) 정신집중의 태도도 아니다. 7,80년대의 오락실에서 시작해 90년대말 PC방에 의해 대중화되고 21세기 이후의 모바일 미디어로 인해 폭발한 디지털 게임은 근대성에 대한 회의와 도전과 때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이스포츠와 방치형 게임에서 발견되는 시각성의 재림은 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시각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단서로 이해해야 할까? 탈근대적 시각성의 게으름 여기서 근대적 시각성과 구별되는 탈근대적 시각성을 발견한다. 전자가 시지각에만 의존해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설명한다면, 후자는 시각 주체로서 대상을 바라보되 게으르고 산만하고 찰나적인 바라봄을 지칭한다. 물론 다른 감각기관이 주변화된다는 면에서는 유사하고, 시각중심적 문화라는 지칭도 온당하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을 보는 지금의 태도는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탈근대적 시각성은 디지털 영상매체의 발전과 같은 속도로 전파되었다. 일방적으로 뿌려지는 (근대 성격의) 텔레비전 방송이 아닌,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시공간 제약도 극복할 수 있는 미디어들이 보편화되면서, 몰입하지만 자유로운, 유익하지만 심심풀이인 바라봄도 따라서 보편화되었다. 비유하자면, 노동과 생산을 위한 시각성이 아니라 여가와 휴식을 위한 시각성이다. 공을 차는 대신 축구 중계를 시청하고 먹는 대신 먹방을 즐겨보는 행위는 게으르고 산만하다. 방치형(idle) 게임의 idle은 게으름, 나태함, 빈둥거림을 뜻한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상태. 생산성 없는, 노동의 반대편에 있는 휴식의 상태이다. 노동의 반대편에는 휴식 대신 여가가 자리잡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주말, 사람들은 열심히 여가활동을 즐긴다. 영화를 보거나 근교 관광지를 가거나, 아마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여가활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가활동’은 준(準)노동이기도 하다. 함께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하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기도 한다.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 하여 노동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피곤한다. 이를 적극적/소극적 여가로 구분하기도 하고, ‘준노동적 여가’와 ‘보상적(compensatory) 여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혹은 (학술적 개념은 아니겠으나) ‘진지한’ 여가와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로 구분하는 편이 더 직관적일 수도 있겠다. 맑스의 사위이기도 한 라파르그(Paul Lafargue)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운동을 제창한 바 있는데,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야말로 이 운동에 딱 맞는 활동 아닐까. 방치형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진지한 플레이를 거부하는 것이고, 게으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시각 주체 노릇은 하지만 개입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보지만 해독하지 않는 게이머. 탈근대적 시각성은 게으르고 산만하다. 게임 본질주의의 쇠락 방치형(idle) 게임이라 퉁치기는 했지만, 게이머의 게으름에 기댄 게임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요즘은 흔해진 자동전투 기능도 방치의 일종이고, 방치를 필수 요건으로 만들어 놓은 파밍 게임들도 있다. 방치형 게임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박이선은 게임의 방치 구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5분 이내로 방치하면서 간헐적으로 게임에 진입하는 게임 (〈AFK아레나〉)도 있고, 몇 시간까지 게임을 켜두고 꾸준히 방치해야 하기 때문에 일과를 보내다가 잠시 게임이 생각나면 화면을 확인하고 개입하는 방식 (〈리니지2 레볼루션〉)도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게임이 항상 진행되는 항시적 방치 게임(〈중년기사 김봉식〉)도 있다. 다양한 종류와 위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맞는 적절한 게임을 선택해서 즐긴다. 혹은 바라본다. 이스포츠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남들이 게임하는 것을 관람하는 방식도 여러 종류이다. 특정 게임의 공략방법을 배우기 위한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고, 셀러브리티의 미숙한 게임 플레이를 팬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플레이하는 대신 남들을 보며 즐기는 행동을 ‘상호수동성’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관찰주체는 감정을 다른 대상에게 위임함으로써 안도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각에만 의존하여 즐거움을 얻는 이런 관람행위들은 근대적 의미의 진지한 바라봄과는 구별되는, 산만한 바라봄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의 적극적 개입 없이 시각에만 주로 의존하는 게임(관람) 방식이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방치형 게임이 게임산업의 미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스포츠가 게임보다 더 중요한 문화적 영역이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판이나 마우스,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지향점이 되는 시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며 밤을 새는 것이 전형적인 게이머의 이미지가 되는 시기가 지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글이나 사석에서도, 나는 소위 ‘진짜’ 게이머가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캐주얼 게이머, 노년 게이머, 방치형 게이머를 무시하며 “너희가 게임을 알아?”라며 언제든지 코웃음칠 자세가 되어 있던 이들이 점점 주변화됨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체적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전제를 폐기한다면, 그리고 방치형 게이머의 산만한 바라봄을 근대적 시각 권력과 차별화하여 이해할 수 있다면, 게임 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변화는 소소한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적 변동의 일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학교 과제를 하면서 자동 사냥을 흘긋 쳐다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형의) 게이머를 보며, 혹은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이스포츠 중계에 열광하는 (과거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게이머를 보면서, 사실은 탈근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코끼리의 종아리 어딘가를 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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