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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 Back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14 GG Vol. 23. 10. 10. 한때 대한민국을 휘어잡던, ‘한국인의 민속놀이’라는 별칭이 너무도 잘 어울렸던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다른 의미로서의 민속놀이가 되었다. 모든 한국인이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에 붙었던 민속놀이라는 이름은 이제 ‘틀딱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로 변해가는 중이다. 새롭게 태어나 온라인게임에 진입하는 청소년들은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지 않고, 혹시라도 중년들이 ‘라떼는 말이야~’로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또 한켠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출시된 지 20여 년이 지난 게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PC방 점유율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적지 않은 유튜버들의 콘텐츠 기반이 된다. 심지어는 공식리그 종료 후 다양한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자체적인 리그가 자생할 정도니 그 생명력은 명실상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임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흘러간 옛 게임이 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로부터는 계속 플레이되는, ‘스타크래프트’의 오늘이 보여주는 독특한 모습은 과거 ‘스타크래프트’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90-00년대 기준 2-30대가 중년이 되면서 겪게 된 변화로부터 기인할 것이다. 지상파 TV 프로그램에서 ‘스타크래프트’ 성대모사를 해도 전국민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모든 젊은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엮여 있었던 어떤 시기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한국 게임 역사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이었을 영광의 순간을 만들었던,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게임과학연구원 게임과사람 센터는 2023년 중년 게이머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2020년대 기준으로 중년이 된 약 30여명의 게이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듣게 된, 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나게 된 이유를 정리해 본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오래된 게임이라서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 이상으로 우리를 둘러싼 게이밍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라이트게이머는 로컬 플레이를 즐겼고, 그 로컬이 붕괴되어 떠났다 우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들을 간단히 짚고 지나가보자. 당연히도 당시 10대, 20대였던 플레이어들은 신체적 노화와 여가시간의 변화를 맞이하며 ‘스타크래프트’로부터 떠났다. 사실상 ‘스타크래프트’의 왕좌를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왕년의 게이머들이 넘어가지 못한 이유도 대체로 여기에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끝난 것 같고, 다른 게임은 뭐가 있나 보는데 새롭게 등장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보다 복잡해 보이고, 멀티플레이 대전에서 딱히 이기기도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중년들은 아예 온라인 대전 게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신체 노화(이는 실제로 생물학적 노화보다는 ‘나는 늙었다’라는 자기인지가 더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속에서도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은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명 ‘컴까기’로의 전향이다. "스타의 최대 장점은 1대 7 pc 게임이 된다는 거예요. 혼자서 게임을 하기 좋죠. 치트키 써가면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막 그런 것들이 되잖아요. 진짜 스트레스 해소인데, 규칙이랑 하는 법은 다 아니까요. (중략) 스타는 단축키가 몇 개 없어서 그나마 쉬워요." (C01) 인터뷰대상자 C01은 가볍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게이머였다. 중년이 된 이후에도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지만, 과거만큼의 연습시간도 동체시력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배틀넷 대전을 포기했다. 그는 집 PC에 설치된 ‘스타크래프트’로 1:7 AI대전(일명 컴까기)을 즐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멀티에서 승패를 가리는 대전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적당히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방식으로서의 ‘컴까기’는 그에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배우는 수고로움까지도 회피할 수 있는 적절한 여가로 남는다. C01의 인터뷰가 중요한 것은 그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로 분류되는 게이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 붐을 형성한 인구의 대다수는 라이트 게이머였다. 커뮤니티에 모여 전략을 연구하고 e스포츠 중계를 챙겨보며 빌드를 연구하고 수련하는 하드코어 이용자보다 대중적 붐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라이트게이머들의 머릿수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니아들은 여전히 유튜브와 배틀넷에 남지만, 이들은 한 번의 열풍이 지나가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이유는 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콘텐츠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다같이 몰려다니는 재미였죠. 혼자 있으면 굳이 pc방에 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C08) "스타를 하더라도 과거만큼 당연히 열심히 하지는 않는 것 같고 가끔씩 물어보면 그래서 같이 만나서 게임을 하기가 쉽지는 사실은 않은 것 같아요 ." (C06) 라이트게이머의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그 자체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교류의 수단으로서가 더 강했다. 배틀넷에서 익명의 상대와 1:1로 실력을 겨루기보다 이들의 플레이는 주로 다같이 모여 PC방에 가서 2:2, 3:3의 대전을 벌이는 형태였다. 간혹 모인 친구들의 숫자가 홀수가 나오면 함께 팀을 짜서 배틀넷에 들어가거나, 이른바 ‘깍두기’를 껴주는 방식으로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고 부르는 방식과는 구분된다 . ‘로컬 플레이’라고 이름붙여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기능을 사용하지만, 라이트게이머들의 플레이는 가급적 오프라인에서 이미 관계가 형성된 이들과 함께 즐기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이들은 익명의 상대와 승부를 벌이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부담스러움을 느꼈고, 승패와 무관하게 함께 게임하고 노는 일을 중시했다. 올해 초에 국내에 번역된 C. T. 응우옌의 <행위성의 예술>에는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응우옌은 플레이를 그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성취형 플레이와 분투형 플레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성취형 플레이란 게임이 텍스트 안에서 제시하는 규칙으로서의 목표가 플레이어의 목적과 일치하는 경우이고, 분투형 플레이는 그 목표와 목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배틀넷 기반의 온라인 익명 매치 멀티플레이가 성취형 플레이라면, PC방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지인들끼리 모여 벌이는 ‘스타크래프트’ 대결은 분투형 플레이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 붐의 중심을 이뤘던 라이트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난 이유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배틀넷 상에 존재하지만, 애초에 배틀넷 익명 대전이 아닌 로컬 플레이를 즐겼던 이들에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게임하던 로컬 커뮤니티 – 학교, 동네, 회사 등 – 가 해체되면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라이트게이머들은 결국 나이가 들면서 생활하는 커뮤니티가 변화하며 ‘스타크래프트’를 왕년의 놀이로 추억하게 된 것이다. PC는 점점 더 보편 디바이스가 아닌 환경으로 가고 있다 2000년대의 라이트게이머들이 떠난 자리는 새롭게 자라난 세대가 채우면 될 일이다 .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로컬 플레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차지했으니 ‘스타크래프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다소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PC라는 ‘스타크래프트’ 구동 플랫폼의 위상이 맞은 변화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리그 오브 레전드’도 곧 맞이하게 될 변화일 것이다. “집에 PC가 있으면 집에서도 (스타를)하죠. 밤에 집에서 혼자 배틀넷 들어가서도 멀티 했어요.” (C03) “이것도 사실은 좀 불법 영역이긴 한데... 군대 내의 공식 PC방 말고도 업무용 PC에 스타를 깔아서 다른 사무실하고 연결해서 플레이하기도 했었어요.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C06) ‘스타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 PC에서 구동되는 게임이다. PC기반의 RTS게임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스타크래프트’의 조작은 실제로 마우스 없이는 플레이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초심자가 새로운 게임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는 의외로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 처음 3차원 공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은 전후좌우로의 이동감각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스틱을 사용해 복잡한 커맨드를 넣는 대전격투 게임은 그 숙련도 자체가 문제가 되어 뉴비 유입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기능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키보드 + 마우스 컨트롤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 시대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가 보편화된 시대라는 전제 안에서 성립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1990년대에 이른바 ‘PC 교육 의무화 정책’을 거치면서 어린 시절부터 PC를 다루는 법을 익혔고, 각 가정에는 일종의 필수 가전제품처럼 PC가 한 대씩 놓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가정이 구비하는 PC의 비율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2009, 2003)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한국 가정의 PC 보유율은 80.9%였으나, 2022년에는 56.2%로 10여년 사이 30%p 이상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PC 외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디바이스 전반을 포괄하는 ‘컴퓨터 보유율’이 2022년 기준 81.0%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바일 디바이스의 대중화 이후 가정에서의 데스크탑 PC 보유율이 크게 저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집에 들어오면 발가락으로 PC 전원버튼부터 누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PC생활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중이다. PC의 키보드와 마우스로 처리하던 많은 일들은 이제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다. 가정 및 개인용 디지털 디바이스로서의 PC가 태블릿, 스마트폰에 자리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키보드 + 마우스라는 기본 인터페이스의 보편성은 점차 소실되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금 pc는 사용을 할 수가 없죠. 그런 고사양 노트북도 지금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왜냐하면 지금 주로 문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러고 이제 애들이 있으니까 컴퓨터나 이런 걸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은 주로 하는 거는 피시방에 가거나 아니면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주로 하니까. 가능하면 이제 모바일 기기에 다가 넣고 하려고 하고 있어요." (A03) 인터뷰에 응한 많은 중년 라이트게이머들에게 PC기반 게임은 이제 상대적으로 하드코어한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각종 컴퓨터 쇼핑몰에 가보면 볼 수 있는, 게이밍 PC라고 이름붙은 PC의 가격이 사무용보다 훨씬 비싸게 나오는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게임용 PC는 어느 정도 게임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치르면서 구매하는 무엇이 되었고,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적당히 즐기고는 싶은 수준의 라이트 게이머들은 PC보다는 다른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작동하는 게임으로 중심을 옮기게 된 것이다. PC로 로컬플레이 하던 이들이 모바일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하나의 문화현상이 등장하는 것보다 퇴보하는 것의 원인을 찾는 일은 훨씬 어렵고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떨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은 문제부터 경제생활에 종사하며 여가시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가장 일반적이라면, 이 연구과정에서 나는 그만큼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라이트게이머들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을 더 많은 이유들을 마주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이트게이머들이 지적한 두 가지 이유, 로컬플레이의 소멸과 PC환경의 퇴조라는 두 지점은 단지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게임과 게이머의 변화까지를 아우르는 무엇이라는 점이었다.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사람의 변화도 그러할진대, PC라는,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당연했던 어떤 기기가 다음 세대 혹은 PC게임에 딱히 열정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이제 매우 어색한 기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를 포함한다면 우리는 게이머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 한번 더 짚어내는 데 그치고 만다. Tags: 스타크래프트, 중년, 중년게이머, PC, 로컬플레이, 응우옌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 Back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3 GG Vol. 25. 4. 10. 21세기 사반세기의 대전격투게임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컴퓨터나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로 싸우는 류의 게임을 말한다. 체스나 장기처럼 추상화되지 않고, 캐릭터끼리 직접 몸을 맞대 치고박는 원초적인 싸움 형태를 취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보통 1976년 세가에서 아케이드용으로 출시했던 <헤비급 챔프(Heavyweight Champ)>를 대전격투게임의 기원으로 꼽는다. 1:1 대결이라고는 해도 복싱시합에 국한돼 있었던 데다 스틱과 버튼도 사용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의미의 대전격투게임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흑백으로 그려진 두 명의 복서를 글러브 모양의 컨트롤러로 움직이며 펀치를 날리는 방식을 취하는 등 대전격투게임의 기본적 형태를 지녔다고는 할 수 있다. 이후 다양한 대전격투게임이 등장했지만, 대전격투게임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대표적인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2(Street Fighter 2, 1991)>였다. 마치 영화나 만화의 세계를 그대로 게임으로 만든 듯한 연출과, 특수한 커맨드 입력을 통한 기술 시전이라는 신선한 조작방식에 더해,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승부내기를 권장하는 게임 디자인은 많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강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스트리트 파이터 2>의 그야말로 엄청난 히트 이후 1990년대 초중반까지 대전격투게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랑전설(Fatal Fury, 1991)>,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 1993)>, <킹 오브 파이터(The King of Fighters, 1994)>, <철권(Tekken, 1994)>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수의 대전격투게임이 발매됐다. 1990년대 게임문화 전반의 흐름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장르였고, 아케이드뿐 아니라 콘솔과 같은 플랫폼으로도 수많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조금씩 대전격투게임 붐이 사그러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마니아들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스테디셀러 장르가 되어 AAA급 게임부터 인디게임에 이르기까지 매년 대전격투게임이 꾸준히 발매되고 있고, 특히 북미와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변화의 배경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 변화를 추동한 요인들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 그리고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첫째,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이다. 2000년대 초반 가정용 콘솔과 PC의 기술적 발전은 대전격투게임 환경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2(PlayStation 2)와 Xbox의 등장은 아케이드에서 콘솔 중심으로의 본격적인 이동을 촉진했으며, PC방 문화의 안착은 대전격투게임 플레이 무대 중심을 바꿔놓았다. 고해상도의 그래픽, 향상된 프레임 속도 등 기술적인 발전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케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몰입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아케이드 산업의 쇠퇴와도 관련 맺는다. 이와는 별개로 ‘바다이야기 사태’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이 시기 한국에서 아케이드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측면도 있다. 이는 대전격투게임 플레이어의 감소를 야기하는 한편, 가정 내에서의 게임 환경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둘째,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확대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대전격투게임의 플레이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온라인 대전 기능은 지리적 한계를 없애고 글로벌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Xbox 라이브(Xbox Live)와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layStation Network) 같은 플랫폼은 온라인 대전 환경을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격투게임에서 중요한 심리전과 반응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백 넷코드(rollback netcode)와 같은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보다 원활한 대전 환경을 제공하고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랭킹 시스템의 확립으로 경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플레이어들 간의 실력 격차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면서 숙련된 소수의 ‘고인물’ 문화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변화의 양상들 기술 변화와 온라인화를 중심으로 대전격투게임은 사반세기 동안 여러 측면으로 변모해왔다. 첫째, 2D에서 3D 그래픽 중심으로 이동한 듯 보였던 대전격투게임 트렌드 속에서, 다시 2D 스타일이 부활하는 움직임이 발견된다. 2000년대 초 대전격투게임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본격적인 3D 그래픽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철권>, <버추어 파이터>,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 시리즈로, 이들은 다면체 기반의 입체적 전장과 움직임을 제공하면서 시각적 현실감을 극대화하였다. 동시에 2D 기반 대전격투게임들은 조금씩 비인기 타이틀로 밀려났다. <스트리트 파이터 3: 3rd 스트라이크(Street Fighter III: 3rd Strike, 1999)와 같은 2D 고전 명작들도 복잡한 메커니즘과 고난이도 탓에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스트리트 파이터 4>가 출시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이 게임은 3D 모델링 기술을 사용하되 2D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는 ‘2.5D’ 방식으로,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포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과거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새로운 플레이어층도 유입시키는 전략이었다. 이후 <길티 기어 Xrd(Guilty Gear Xrd, 2013)>는 셀셰이디드 렌더링(cel shaded rendering) 기법을 통해 3D 모델로 2D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주얼을 구현하여 비평적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었으며, <드래곤 볼 파이터 Z(Dragon Ball Fighter Z, 2018)>는 애니메이션 IP를 기반으로 동일 기술을 적용해 폭넓은 플레이어 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미학적 변화에 대한 고려는 3D에서 2D로의 단순 복고가 아니라, 시각 스타일과 게임 플레이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격투게임 캐릭터의 재현은 스테레오 타입의 단순 반복에 가까웠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 제작사들은 캐릭터들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철권 7(2017)>은 샤힌(사우디), 조시(필리핀), 라르스(스웨덴), 리로이(흑인 무술가) 등의 캐릭터를 도입하였고, 현지 언어(아랍어, 타갈로그어 등)를 사용하는 음성 연출도 탑재했다. 이는 외양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문화적 리얼리즘 구현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의미한다. 또한 캐릭터 성별과 체형의 다양성, 성격과 배경의 서사성도 중요해졌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마농(프랑스 여성 유도 선수),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Guilty Gear Strive, 2021)>의 브리짓(트랜스젠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The King of Fighters XV, 2022)>의 돌로레스(흑인 여성 샤먼) 등은 기존 남성 중심, 체격 중심의 캐릭터 구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시장 다변화 전략과 맞물리며,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게임산업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대전격투게임은 다문화적 접점으로 기능하는 장르로 변모하고 있다. 셋째,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이다. 대전격투게임의 본질은 PvP 대결이지만, 플레이어층 확대를 위해 PvE 콘텐츠와 싱글플레이 요소가 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모탈 컴뱃(Mortal Kombat)> 시리즈의 시네마틱 스토리 모드다. 단순한 컷씬 삽입을 넘어, 할리우드식 내러티브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대전격투게임에 새로움을 더했다. 2023년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월드 투어 모드는 더 나아가 오픈월드 탐색, NPC 대전, 캐릭터 육성 시스템 등을 통합한 RPG형 콘텐츠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대전격투게임은 대전 외적인 플레이 구조에서도 기술 습득의 서사화, 성장의 게임 플레이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장비 아이템, 스탯 강화 등 RPG 요소는 기존 대전격투게임의 단순반복성을 완화하며, 플레이어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 및 몰입 강화 기능을 수행한다. 대전격투게임이 경쟁 중심 장르에서 경쟁과 모험이 함께하는 장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온라인화는 게임 플레이 방식뿐 아니라 커뮤니티 성격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아케이드게임장 중심의 직접적인 대면 교류는 온라인 포럼,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과 같은 비대면 커뮤니티로 대체되었다. 이 변화는 커뮤니티의 글로벌화와 함께 플레이어 간 정보·전략 공유를 급격히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은, 숙련된 플레이어 중심의 폐쇄적인 문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특정 기술과 전략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와 공유가 이루어지는 반면,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소 배타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전체 플레이어층의 확장보다는 특정 그룹의 전문화가 더욱 강조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다섯째,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이다. 2000년대 들어 대전격투게임이 겪은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e스포츠화의 급격한 발전이다. EVO(Evolution Championship Series)와 같은 글로벌 대회가 본격화되면서, 대전격투게임은 전문성을 요구로 하는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스폰서십과 프로리그가 활성화되었고, 이는 게임의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을 극도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e스포츠의 발전은 격투게임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플레이어를 유입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경쟁 환경으로 인해 일반 플레이어와 전문 선수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문제점도 함께 발생시켰다. 여섯째,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팀(Steam)’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유통 플랫폼의 확산과 유니티(Unity),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등과 같은 개발 툴의 민주화로 인해 인디게임 씬의 대전격투 장르로의 진입이 활발해졌다. 랩 제로 게임즈(Lab Zero Games)의 <스컬걸즈(Skullgirls, 2012)는 여성 중심 캐릭터, 복고풍 애니메이션 스타일, 커뮤니티 중심 업데이트 구조로 대전격투 장르의 실험성과 다양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디 팀 마네6(Mane6)에서 개발한 <뎀스 파이팅 허드(Them’s Fightin’ Herds, 2020)>는 원래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 팬 게임으로 시작해 독자 IP로 전환된 사례로, 비주류 미학과 대중성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인디 대전격투게임들은 기술적 실험, 표현 양식의 다양화, 커뮤니티 참여 모델의 구현 등을 가능케 했으며, 기존 주류 대전격투게임의 방향에도 일정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인디 개발자들은 커스터마이징, 모드 지원, 공개 개발 등의 방식을 통해 개방형 게임문화를 격투게임에 도입한 주체로도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의 사반세기 지난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의 변화는 기술 혁신과 온라인화의 토대 하에, 2D 스타일의 부활,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 등 다양한 축에서 이뤄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대전격투게임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동시에 만들어내면서 복잡한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대전격투게임은 기술 발전과 플레이어 문화의 상호작용 속에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제를 계속 안고 나아갈 것이다. 대전격투게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 유입을 촉진하고,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를 위한 깊이 있는 경험을 유지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청된다. 물론 둘 간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게임 디자인 차원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복잡한 입력 없이도 주요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끔 조작체계를 단순화한다거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IP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성을 강화한다거나, e스포츠 이벤트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장르 인지도를 높이거나, 기존의 플랫폼 제한을 넘어 여러 플랫폼(PC-콘솔-모바일 등)에서 크로스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들이 요구하는 깊이와 전략성까지 유지하려는 균형 잡힌 디자인을 추구함은 물론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숙련된 플레이어와 신규 플레이어 간의 실력 간극이 완전히 좁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이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똑같이 즐기는 장르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만하다. Tags: 대전격투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 Back 게임과 데이팅 세계 16 GG Vol. 24. 2. 10. 욕망의 수치화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하다보면, 첫 만남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소개팅 이후 가볍게 혹은 종종 계속해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상대와 만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고, 이 때문에 첫 만남에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그리고 애프터 이후 몇 번의 만남 뒤에 공식적으로(officially) 연인관계로 돌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할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 ‘굳이 정의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큼 서서히 스며드는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소개팅의 법칙(!)도 마찬가지고, 의외로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아가 아주 관습적이라 일컫는 결혼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 혹은 감정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반대, 즉 연애를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성애)연애의 완결은 마치 결혼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형태의 (굳이 게임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선택지’의) 사랑이 존재한다. 1) 가족 간의 사랑 2) 친구 간의 사랑 3) 연애 파트너, 즉 섹슈얼한 대상으로서의 사랑 4)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짝사랑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 생각보다 사랑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상대적 기준을 통해 수치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것이 과연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욕망의 수치화가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디어 환경 내부에서 인간의 일상적 ‘플레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게임을 통해 인지했거나,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 고도로 진화된 상황에서 현실의 사랑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사적/감정적인 대상이 모두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수치화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메신저에 응답하는가. 사귀는 사이에서 하루에 전화는 몇 통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팔로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적인 플레이 역사 : 사랑을 게임으로 배웠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 본인은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애자에 가깝다. 그러나 십대 때 본인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임 주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고정되어있고, 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공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접했던 게임이 바로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연애시뮬레이션 안에서의 ‘연애’의 전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첫인상에 상대방의 특성 1) 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특히 이러한 연애시뮬레이션은 ‘첫만남’-‘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높이고’,-‘공략대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능력치를 개발한 뒤’-‘퀘스트(이벤트)를 충족시켜’‘엔딩을 맞이하는’ 루트를 탔다. 물론 나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남성애자에 가까운데, 이 당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둔 연애시뮬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광했던 '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연애시뮬레이션은 게임의 특성상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플레이는 관습적인 것에 가까웠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는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 주체 중심의 육성-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을 ‘관조’에 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연애시뮬레이션이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연애관계에 이입하기보다 사랑에 대해 ‘관조적’일뿐만 아니라 ‘제 3자’의 위치에서 ‘관음’할 수 있는 주체에 더욱 가까웠단 뜻이다. 그러다 오토메 게임 2) 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육성-연애시뮬레이션에 열광하는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3) 욕망하고 원했던 게임 텍스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토메 게임은 외적 4) 으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을 게임 주체로 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이 중에 한명은 너의 타입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성이) 남성들을 공략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이성애 기반의 성별반전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매우 전형화된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후 유통되는 많은 오토메 게임, BL(Boy’s Love) 게임, 혹은 텍스트 기반의 라이트 노벨성이 짙은 게임의 남성 공략 캐릭터를 정형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후술할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201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 선택지를 내어놓는다. 1) 연상의 로맨티스트(다정캐) 2) 모태솔로에 순수 연하(햇살캐) 3) 츤데레(광공캐) 4) 히든 캐릭터(사연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토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쯔에서 제작하고 1998년 발매되었던 '판타스틱 포츈'이다. 이 게임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정발되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양산해냈다. 이 게임은 초반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이 3명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플레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게임은 남성 캐릭터를 연애적으로 공략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메인 캐릭터를 육성해야하는 이중고(苦)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주인공 중 한명은 성별이 육성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중성인 존재 5) 가 섞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이처럼 연애+사랑의 루트를 타는 게임은 1) 캐릭터와 서사 2) 그리고 이 캐릭터와 서사에 접근하는 플레이 방식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판타스틱 포츈'처럼 미형의 남성을 공략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이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맞추어 ‘육성’해야 하는 플레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은 이 게임들이 타겟팅으로 삼았던 여성 주체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플레이 주체로서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관조’적 성향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성 게이머들은 이 세명의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고, 자신과 동일시한 캐릭터를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들을 유사남친의 대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다시 말해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으로 이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기만’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 6) 한다.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은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고, 그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마치 케어링을 하는 제 3자적 인물로서 플레이어들이 그려지는 것은, 게이머가 그 서사 안이 아닌 밖으로 자신을 위치 지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의 게임에서도 단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판타스틱 포츈'은 자식 같은 세 명의 메인 캐릭터, 그리고 그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나, 동시에 그들을 짝을 지어주기 위한 제 3자(즉 관계성에 몰입하는)로서의 나 사이에서 연애와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데이터화된다. : 디지털 로미오적 행태 여성향 게임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여성게이머들이 대중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시기가 바로 개인화된 미디어의 확산, 즉 휴대폰 플랫폼으로 게임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하나가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다. 이 게임은 텍스트 노벨처럼 만들어진 전형적인 여성향 게임인데, 게임 타이틀에도 반영되어있듯 메신저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상황이나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메시지 주고받기와 전화통화를 게임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진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이전까지 제 3자의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강력한 자기 동일시 기제를 게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식 자체는 나에게 데이팅 기술(Technology)에서 상대방이란 ‘기계’ 혹은 ‘게임 그 자체’일수 있겠구나를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앨피 본(Alfie Bown)이 자신의 저서인 <게임, 사랑, 정치>(2022/2023)에서 서술했듯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대상과 상상적 대상의 은유적 대체가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구현(182)” 된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등장인물(상대방)들에게 무작위로(물론 시스템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작위는 아니지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받지 못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과의 채팅이 끝나고 나면 풀 보이스로 랜덤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모든 시간대마다 전화 내용이 다르다. 심지어 새벽에도 온다. 마치 구 남친의 ‘자니’와 같은 순간처럼). 이러한 일상적 대화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혹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가상의 게임엔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기술이 감정을 확장하는(물론 이것이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지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 아닌 기계였다. 만질 수 없어도, 바라보지 않아도, 무척이나 ‘생생한 ’기계. 실제로 이러한 감각은 현재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과의 메신저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위버스나 버블 7)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게임의 상관관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이 데이트 상대와의 눈맞춤인지, 아니면 친구와의 심도 깊고 즉흥적인 대화인지, 아니면 게임의 보상처럼 메시지 알림 소리를 울리는 버블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인지 우리는 이제 알기 어렵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있다(Alfie Bown, 2022/2023, 225)”. 사랑은 수치화되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 편재되었을 때, 게임은 빠르게 흡수해 텍스트로 옮겨냈고, 동시에 현실의 사랑은 이미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게임으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정도 관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빠져있는 사랑. 8) 나는 이미 그렇게 습득한 사랑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나의 가상의 최애(feat. '플레이브' 남예준)를 위해, '풍화설월' 9) 의 주인공(feat. 금사슴반 클로드)들에게 이미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현실세계의 연애와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문헌 Alfie Bown(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 Pluto Press; London.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서울. 1)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한데, 대부분 연애시뮬레이션에서 비주얼(즉, 캐릭터 디자인)은 그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여 제작되고 이 때문에 외모는 공략법과도 깊이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연애시뮬레이션의 완결성은 비주얼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성향 게임에서의 비주얼은 대체적으로 남성향 게임과는 달리 특정 신체를 부각하기보다,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되어있다. 2) 乙女ゲーム 소녀의 게임. 3) 여기서 어느 정도, 라고 어중간하게 서술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 오토메 게임이 여성의 성적 욕망, 혹은 연애적 욕망에 대한 구체적 반영보다는 단순 성별반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단일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외적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오토메 게임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긴 하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의 성별은 실제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여성향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콘텐츠를 실제로 이용하는 주체는 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쓰인 여성향/남성향과 같은 용어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로 본문에서 사용될 뿐, 실제 이용 주체를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5) 3명 중 한명인 실피스는 선택지 플레이에 따라 여성/남성으로 나뉘게 되므로, 초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중성)로 나온다. 이 때문에 오토메 게임이지만 BL 게임으로 서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6) 이것은 여성 게이머 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초반 여성들이 게임 텍스트를 접할 때 일어나는 남성 중심적 서사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관습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바라보는 여성 주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되는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내재화된 카메라와 그 카메라 시선의 대상(여성) 사이에서 동일시할 주체를 찾지 못하고 관조적이거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향 게임에서 ‘텍스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의 연애방식(연애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그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은 현대의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프라이빗 메신저 ‘구독’ 서비스. 물론 인터페이스 자체는 자신이 하는 텍스트 메시지와 연예인의 메시지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대화를 나누는 것은 1:수많은 팬서비스 구독자다. 8) 사랑에 빠져든 나와 나를 배제한 사랑 모두를 뜻한다. 9) 닌텐도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하나. 3개의 나라 3개의 반 중에 하나를 골라 육성하는 SRPG 게임이다. 메인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류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앨런이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앨런 웨이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레메디 엔터테인먼트(Remedy Entertainment, 이하 ‘레메디’) 및 이 개발사가 핀란드 게임업계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Henry Korkeila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 Back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107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예전 한국 게임들에게 〈로스트 아크〉가 서구권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최초의 한국 게임인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이래 여러 편의 한국산 MMO게임이 상대적으로 소수의 헌신적인 플레이어들과 공명해왔다. 〈라그나로크 온라인(그라비티 인터랙티브, 2003)〉, 〈메이플스토리(위젯, 2003)〉, 〈리니지(NC소프트, 1998, 2003)〉시리즈를 비롯해서 비교적 최근작인 〈블레이드 앤 소울(NC소프트, 2012), 〈검은 사막 온라인(펄어비스, 2014)〉 등이 헌신적인 플레이어를 확보했던 한국산 MMO게임들이었다. 이들 게임 중 상당수는 좋든 싫든 서구 MMO 시장의 영원한 리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그늘에 놓여있었다. 전(前) WoW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로스트 아크〉의 출시는 2009년에 출시됐던 한국산 MMO 〈아이온(NC소프트)〉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WoW는 종종 콘텐츠 고갈을 겪었는데, 패치 또는 확장팩이 나오기 전까지 플레이어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피로를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종종 새로운 MMO 게임에 끌리곤 했다. 'WoW 킬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새로운 게임들은 피로감에 찌든 MMO 플레이어들을 위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시스템, 향상된 그래픽, 새로운 지역들,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몬스터 등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출시되곤 했다. 출시와 함께 플레이어들은 이 새로운 게임이야말로 자신이 새롭게 수년을 쏟아부을 만한 바로 그 게임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플레이했다. 〈아이온〉이 바로 그러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자주 보아왔듯 이 게임의 전성기는 짧게 지나갔고, WoW가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으면서 플레이어들은 실패한 'WoW킬러'를 뒤로 한 채 익숙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로스트 아크〉의 상황 또한 비슷할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출시 때 스팀차트에서 기록했던 백삼십만 플레이어의 50% 이상이 빠져나간 한편, 타 MMO게임이었다면 말살되었을 WoW의 최신 확장팩 패치에도 불구하고 〈로스트 아크〉는 살아남았다. 현 시점에서 〈로스트 아크〉는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의 운영에 따라 가라앉을 수도, 살아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로스트 아크〉가 고유의 장점을 통한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가운데, 현 시점에 이 게임은 기존의 한국산 MMO게임이 성취했던 바를 넘어서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의 위치에 와 있다. 〈로스트 아크〉 외에 서구권에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있어 이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국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PUBG, 2017)가 유일하다. 출시 후 삼백만 유저를 기록한 뒤 현 시점 스팀차트 상 사십만명이 넘는 유저를 유지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는 성공한 한국 게임으로서 지난 몇년 동안 게임 분야 내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만들어냈다. 〈H1Z1(Daybreak Company, 2015)〉과 함께 배틀로얄 시대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UBG의 한국산 게임으로서의 입지는, 배틀로얄 장르의 선도자로서 거둔 경제적 성공과 업계에 끼친 영향력에 비하면 무색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서 〈이미지의 수사학(The Rhetoric of the Image)〉에서 '이탈리아성(Italianicity)'이라는 용어를 통해 특정한 기호 - 이탈리아 국기의 색깔, 특정한 이탈리아식 단어와 이름, 재료의 조합(토마토, 버섯, 피망 등) - 을 조합해서 이탈리아의 문화라는 인식/개념을 표현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1)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 그것이 실제로 이탈리아의 것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 이탈리아를 표현하는 어떤 것들로서 쉽게 읽힌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 만약 한국 게임에 '한국성'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주로 초기 한국 MMO 게임들을 통해 주로 구축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랬다 할지라도 그 게임들이 서구 게임문화권 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PUBG는 성공했지만, 그 게임에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한국 게임이라는 특정한 흔적이나 한국 게임 개발사 고유의 독특한 특징 같은 것이 없다. 또한 한국산임을 마케팅하여 게임의 인기가 확산됐던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게임으로서 전례 없는 놀라운 성공과 영향력을 달성했음에도 〈배틀그라운드〉가 서구 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으로서 인식되지 못한 이유는, 열성 플레이어들 외에 이 게임이 한국의 게임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PUBG와는 달리, 서구의 많은 게이머들은 〈로스트 아크〉를 한국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9년에 한국에서 〈로스트 아크〉가 출시된 후 전 세계 게이머들은 각 권역에 게임이 출시되기 전부터 VPN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북미와 유럽 출시가 예상되면서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이 타 권역의 〈로스트 아크〉를 메타적으로 분석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유튜버 캐논(Kanon)은 북미/유럽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티어 리스트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영상을 제작했다.2) 수많은 북미나 유럽권 게이머들이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이 게임이 한국의 게임임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이다. 게임이 출시된 뒤에는 출시 때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포함되어있던 오리지널 한국어 음성팩에 대해 상당한 수요가 있었다. 이는 적지 않은 수의 북미/유럽 게이머들이 한국의 게임으로서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게임의 기원을 미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게임이 한국산임을 알려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북미와 유럽에서 출시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이 시점에 〈로스트 아크〉 공식 포럼이나 커뮤니티 게시판, 인-게임 채팅 등에선 북미/유럽 버전에서의 콘텐츠 롤아웃 전략을 한국의 서버에서의 상황과 비교하는 대화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여하튼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으로서 명확히 자리잡은 모양새다.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의 '한국성' 분명한 한국의 게임으로서 서구의 수용자들에게 다가간 〈로스트 아크〉의 궤적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한국 게임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모두 〈로스트 아크〉를 꽤 많이 플레이했는데, 우리 중 한 명은 북미 서버 내 엔드 게임까지 완료했을 정도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보스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투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를 표방하는 〈로스트 아크〉지만, 타 MMO게임과 비교할 때 낯설고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측면 또한 존재한다. 예컨대 드워프가 거주하는 욘 대륙에서는 검의 주조 장면을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로 연출한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로스트 아크〉는 이와 같은 남다른 느낌의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게임 내에서 맥락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 또한 게임 세계 내 여러 크리처들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었던 귀여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플레이어로서 볼 때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들 중 어떤 것이 한국 게임 전반을 대표적인 속성인지, 혹은 스마일게이트나 트라이포드 스튜디오가 만들어온 게임의 고유한 속성인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사실 한국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게임 요소들을 스마일게이트나 트라이포드 스튜디오의 것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한국적인 상황이나 경향으로 해석하곤 한다. 〈로스트 아크〉의 이와 같은 속성들은 - 실제 여부와 무관하게 - 전체적으로 한국식 게임디자인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나아가 서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한국성'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로스트 아크〉가 '한국성'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는 있지만, 초창기 MMO게임들로부터 확산되어간 기존의 '한국성' 개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서구 담론장에서 한국 게임은 과도한 노가다(grindy)에 대한 평이 많은데, 이는 사소한 보상이나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 매일 같이 똑같은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지나친 반복성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 〈로스트 아크〉로서는 불행하게도 - '연마(honing)'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연마는 일련의 재료를 모아 무기와 갑옷을 업그레이드 하는 시스템으로, 초기에는 업그레이드 성공이 확실하고 재료를 모으는 작업도 꽤 단순하지만, 게임이 진행이 될수록 필요한 재료의 수가 증가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낮아진다.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이는 〈로스트 아크〉가 'Pay to Win(P2W)' 게임임을 의미하는데, 서구의 게이머들은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개별적으로 투자한 시간을 무용하게 하고 플레이어 스킬을 약화시키는 불공정한 어드밴티지를 허용함으로써 게임의 진정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스트 아크〉의 이와 같은 P2W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동영상이나 포럼, 혹은 게임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의 많은 옹호자들이나 비평가들은 이 p2w을 활용하거나 덮으면서 팬들에게 게임을 권하거나 혹은 멀리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 플레이어들은 〈로스트 아크〉에서의 페이 투 윈에 대해 게임 속 채팅창에서 논의하곤 한다. 〈로스트 아크〉의 P2W 측면은 가장 최근의 분기점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3월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엔드게임 보스가 등장했는데, 많은 플레이어들이 엔드 게임의 진행을 위해 현금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그 격차가 도저히 대처 불가하다고 느낀 일부 플레이어들은 게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선택의 문제는 한국 게임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인상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게임의 형식과 콘텐츠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로스트 아크〉에 있어 이는 복잡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 모두 게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의 플레이어들에게 각기 상이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트 아크〉의 출시를 앞두고 이루어진 책임자 골드 리버(Gold River, 금강선 디렉터)의 공식 인터뷰는 게이머 커뮤니티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3) 반대로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는 게임의 단점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유럽 서버의 과도한 대기시간이 문제가 됐다.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한 결정의 주체가 누군지 라는 보다 큰 질문을 상기할 때, 지금까지 게임과 관련된 비판에 있어 스마일게이트는 상당부분 비켜간 반면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는 불만족한 플레이어들의 펀치백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응하는데 있어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운영하는 측 사이에서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가 끊임없이 소통을 해왔음은 중요한 부분이다. 한 레딧 유저는 골드 리버가 〈로스트 아크〉의 '요시P(Yoshi P)'라고 언급했는데, 요시P란 게임 커뮤니티의 관심사를 자주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진 〈파이널 판타지 XIV〉 디렉터 나오키 요시다를 뜻한다. 그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셀럽 같은 인물인데, 서구권에서 요시P와 비슷한 인물로는 〈오버워치〉의 디렉터였던 제프 캐플란(Jeff Kaplan)을 들 수 있다. 그 또한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에서 셀럽의 지위에 올랐는데, 포럼 같은 곳이나 유튜브상에 개발자 업데이트 영상을 통해 플레이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제작자/감독의 역량은 문화 상품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인식될 지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 게임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때, 골드 리버는 플레이어들이 단지 〈로스트 아크〉 뿐이 아니라 한국 게임 전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입장벽 높은 장르의 실용주의 플레이어들 "한국성"이나 과도한 노가다, 또는 p2w적인 요소 외에, 〈로스트 아크〉가 진입장벽 높은 장르의 게임에 새롭게 진입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상대적으로 수월한 입장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MMO게임의 출시는 - 그것이 서구의 것이든 비서구권의 것이든 - 서구에서 언제나 다른 MMO게임으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를 발생시킨다. 저자 중 한 명이 〈로스트 아크〉에 매혹되었던 이유 중 하나도 MMO 게임을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로스트 아크〉는 게임(그리고 아마도 장르 그 자체)를 처음 접한 플레이어에게 아케시아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광범위한 튜토리얼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트 아크〉가 단순화된 MMO 경험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새롭게 출시되는 MMO에 참여하는 것을 WoW 처럼 십년이 넘어가는 콘텐츠와 스토리, 변화상, 헌신적인 플레이어 기반을 지닌 오래된 MMO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이 장르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로스트 아크〉라는 게임이 매력적일 수 있다. 즉, 〈로스트 아크〉는 MMO게임 플레이에 흥미를 가진 완전한 초보 플레이어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여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명백히 한국의 것인 MMO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역사적 디자인 지식과 경험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로스트 아크〉의 운영 주체인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 앞에 놓인 과제는 자신들이 게임 운영에 대한 우려를 듣고 있다는 믿음을 플레이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유명 작품으로서 〈로스트 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부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각인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로스트 아크〉가 지닌 모든 매력과 게임플레이에 있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만약 반복적인 노가다와 p2w요소로 인해 서구 플레이어들의 장기적인 참여 확보에 실패한다면, 이는 서구 게이머들이 지닌 선입견의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여전히 게임 내 주요 부분으로서 제공되면서 이용자 수가 유지된다 할지라도, 〈로스트 아크〉가 지닌 그 밖의 보다 독특한 측면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산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바꾸는데 충분하지 않다. 지금까지 보았듯, 서구에 진출한 한국산 게임은 매우 소수이며, 따라서 한국 게임 및 '한국성'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매우 제한된 접촉 경험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로스트 아크〉가 한국 게임에 대한 서구의 흥미를 제고하는데 좋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서구 플레이어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개선할 수 있는 정도는 딱 그 정도에 그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서구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명작 한국 게임 - 그것이 과거의 한국산 MMO게임 스타일이든, PUBG 타입이든, 〈로스트 아크〉 같든, 또는 새로운 어떤 것이든 간에 - 이다. 서구의 게이머들은 그 플레이가 어떤 것일지 기존의 경험을 통해 개념화 되어있을지라도, 예상 밖의 "새로움"을 기꺼이 시도할 의향이 있어 보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서구식 게임 플레이나 게임 디자인의 전형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그러한 서구의 게임들이 실제로 한국의 시장에 침투할 때 그 "서구성"의 개념이 어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 교환에 있어 비대칭적 상황을 볼 수 있다. 서구의 게이머들은 한국의 게임과 게임문화 그리고 게이머들에 대해 정형화된 시각을 지니고 있는데, 그러한 시각이 항상 한국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오버워치〉의 디바를 보라).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경험은 한정적이며 따라서 그들이 서구와 한국의 시장을 비교하거나 관련된 보다 큰 담론장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견고하게 구축된 규범과 담론장을 지닌 일본 게임 시장의 그 거대한 규모와 비교해보면 한국 시장은 왜소해 보인다. 그에 따라 저자들은 지금까지 게이머들 사이에서 구축되어온 한국산 게임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더 많은 한국의 게임들이 서구 시장에 출시되어 파고 들기를 희망해본다. 1)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2) Youtube Video “LOST ARK EXPOSED - PVE Interview with KR’s BEST (Jiudau) (accessed March 28th,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_8_kHtaXy8o&t=2919s 3) Reddit Thread, “The Man the Myth, the Legend GOLD RIVER (Accessed March 22nd, 2022) https://www.reddit.com/r/lostarkgame/comments/sn80q4/the_man_the_myth_the_legend _gold_river/ _gold_river/ 참고문헌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코트니 블레이미, Courtney Blamey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 재학중인 게임디자이너. 시리어스 게임에서의 의미발생 과정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며, 게임디자인에서 플레이어와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버워치에서의 커뮤니티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블리자드의 접근방식을 개발자 및 게임커뮤니티에 관한 조사를 통해 풀어낸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게임과 게임 플레이어, TAG(Technoculture Arts and Games)를 연구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데 전념하는 공간인 mLab의 회원이다.
-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 Back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해외에서 투고한 원고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 병기하였습니다.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코모도어64(Commodore 64)로, 1980년대의 인기가 1990년대에도 이어지면서 그 이름이 사실상 핀란드의 게임세대와 동의어가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코모도어 64는 다른 유형의 디지털 플레이와 프로그래밍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관문과 같은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1997년 한국을 크게 덮쳤던 것처럼, 핀란드도 1990년에서 1993년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불황을 겪었다. 이후 컴퓨터와 고급 (가정용)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투자가 이어지는데, 노키아 휴대폰이 부상하는 게 바로 이 시기다. 가정용 컴퓨터 또한 널리 보급되었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집에서 자신의 PC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지극히 낮은 인구 밀도 때문일 것이다(핀란드 인구는 5백만명이지만 지리적 크기는 한반도의 3배 이상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통해 알 수 있는 핀란드 레트로게임문화의 지역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핀란드의 오랜 게임 개발의 역사 그리고 PC 중심적 플레이의 역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지역 취미가들이 게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게임과 컴퓨터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지리적 특성상 공간적 구조가 상대적으로 넓은데, 이는 사람들이 과거의 테크놀로지를 수집, 저장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이와 같은 게임플레이의 기억에 대한 아카이빙과 수집, 그리고 (물리적, 가상적) 공유는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핵심적인 측면 중 하나다. 둘째, 핀란드의 컴퓨터게임 개발 및 플레이의 역사에 주된 영향을 끼친 플랫폼은 PC지만,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이 PC로 넘어가기 전(핀란드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PC 인터페이스는 결코 핀란드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PC를 사용하려면 먼저 영어에 능숙해져야 한다) 보다 어렸을 적에 콘솔을 소유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 거의 모든 콘솔들이 핀란드에 출시되었고, 오늘날 많은 성인들은 자신이 성장기에 플레이했던 콘솔을 가지고 레트로 게임을 즐기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재현하기를 즐긴다. 셋째,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이 2000년대 초반 노키아의 모바일 테크놀로지 붐과 함께 갈수록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핀란드의 아케이드 게임 문화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게임 아케이드는 핀란드의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락 문화였지만 사람들이 가정 내 게임 인프라에 보다 많이 투자하고 옮겨가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향한 관심이 떨어졌고 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하락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아케이드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레트로 게임공간으로서 게임 아케이드를 방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볼 때, 핀란드의 레트로 게임문화가 여러 시대를 횡단하며 등장했던 특정 콘솔들과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 등 넓은 범주를 아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레트로게임 집단과 기업가들, 심지어는 박물관마저도 레트로 게임과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다. 레트로 게이머를 다루는 특집기사들, 레트로 게임을 수용하면서 즐기는 집단이나 그것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소셜미디어에서 마주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다음은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집단의 답변을 통해 그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먼저 템페레에 위치한 핀란드 게임박물관에서 일하는 니클라스 닐룬드(Niklas Nylund) 박사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이 박물관은 템페레시와 루프리키 매체 박물관(Media Museum Rupriikki), 사설 게임 박물관 펠리코네주니트(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그리고 템페레 대학이 핀란드 게임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2017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10만 유로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부한 핀란드 게임열정가들에 힘 입어 게임 역사를 위한 공공의 아카이브 시설로 구축되었다. 이 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으로 지역주민과 방문객들 모두 게임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닐룬드 박사에 따르면 핀란드 레트로게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개방성과 협업, 그리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소규모 국가인 핀란드 특유의 대화하는 문화를 통해 상위 문화 유산 기관들이 처음부터 레트로 게이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했다는 것이다(레트로 게이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닐룬드는 게임 보존에 관심이 있는 단체들이 핀란드 게임박물관 설립과 같은 프로젝트와 “게임 보존을 위한 토론회”를 함께 한 경험이 긍정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응답은 투르쿠 대학 ANC(Academic Nintendo Club)의 회장인 이에로 피칼라(Eero Pihkala)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ANC는 1980년대의 콘솔부터 e스포츠에 이르는 다양한 레트로 게임 여가활동을 제공하는 단체다. 이러한 유형의 클럽은 - 학술적이든 비학술적이든 -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특정한 콘솔이나 컴퓨터에서부터 특정 장르에 이르기까지 그 전문성과 형태에 있어 다양하다. ANC를 대표하는 피칼라는 “핀란드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서로 상이한 여러 세대들이 - 최신 AAA 게임 시장을 추종하는 대신 - 동등하게 게임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게임문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그 역사 내의 다양성의 유산을 찬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레트로 게임이 “유동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핀란드인들에게 있어서는 MS-DOS와 PC 기반의 게임 활동이 핵심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대개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의 수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헬싱키 소재의 아케이드 홀 스고이(Sugoi)의 소유주인 마르쿠스 아우티오(Markus Autio)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나 청소년기에 접했던 게임을 다시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게임이 반드시 직접 플레이했던 것일 필요도 없다. 그저 쇼핑센터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보았던 게임에 대해 남은 인상일 뿐이어도 상관 없다. 또는 당시 비디오게임 잡지에서 읽었던 게임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레트로 게임문화에 있어 핵심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게임에 친근감을 느낌으로써 노스탤지어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다. 동일한 연장선에서 노스탤지어적 아케이드들이 현재 핀란드의 도시 풍경에 되돌아오면서 취미가들을 위한 (종종 사교를 위한) 레트로 게임용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핀란드 레트로 게임문화의 세 가지 특성에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독특한 특성을 추가할 수 있겠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핀란드에서는 PC용 DIY 게임(대개 MS-DOS용 게임) 만들기 붐이 일었는데, 이러한 게임들은 대개 블랙코메디 등 풍자적이고 패러디 같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게임들은 대체로 비영리적이었고 그 개발자들도 대개 익명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셰어웨어식 유통은 디스크 교환이나 게시판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활동들은 핀란드 게임 역사의 작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데, 레트로 게이머들이 그러한 게임들의 플레이를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내거나 온라인 비디오를 만들어 소환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 가운데 다수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이거나 공격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그와 같은 레트로 게임 활동을 알리는 것이 그 발생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들이 후기의 문화적 발전에 끼친 영향 또한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Retrogaming in Finland Finland has a long and established history of computer game development, starting from the late 1970s and commercializing in the 1980s. The first esports tournament – which was not called “esport” at the time but “Finnish Computer Game Championships” – was held already in 1983, and gaming quickly evolved into one of the key leisure activities of adolescents by the early 1990s. The Commodore 64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is development, as its popularity in the 1980s and still in the 1990s became synonymous with the Finnish gaming generation as a gateway to other types of digital play and programming. Just as the Asian financial crisis hit Korea in 1997, Finland suffered a deep financial depression between 1990 and 1993, which was soon followed by further interest and investing in computers and high-class (home) technology, especially with the rise of Nokia mobile phones. Unlike in many other countries, home computers became standard household products across the population and people still play mostly at home with their own PCs – perhaps due to the scarce density of the population (Finland has only 5M people but is geographically more than three times larger than Korea). This cultural context has marked the Finnish retrogaming scene with local characteristics, which can be divided into three distinct domains. First, due to the long history of Finnish game making and PC driven play, a relatively large number of the local hobbyists are curious about game history and many people have personal game and computer collections. The geographic nature of Finland supports relatively spacious architecture, thus allowing people to store legacy technologies. This archiving, collecting, and sharing (physical and digital) gaming memories is one of the key aspects of Finnish retrogaming. Second, despite the PC having had a major impact on the history of Finnish computer game development and play, many adolescents of the 1990s and early 2000s had game consoles in their childhood years before moving to use PCs (PC interfaces were never translated to Finnish due to the small population so using one required fluent in English). Almost all international consoles have been released in Finland since the late 1980s and today many adults like to revisit their childhood by retrogaming with the consoles that formed a part of their childhood. Third, due to the increasing boom of home computers (and consoles) in the early 2000s with the Nokia mobile technology boom, the Finnish arcade gaming culture vanished almost entirely. Until the late 1990s, gaming arcades were still a common particle of Finnish cities and entertainment culture, but as people moved to invest (even) more on their home gaming infrastructures, the interest toward arcade games dropped and the business became unprofitable. Today, many people visit arcades as retro game spaces to relive former arcade experiences. Reflecting upon this historical background, retrogaming in Finland ranges from specific consoles to various personal computers across different decades. There are different active retrogaming groups, entrepreneurs and even museums set around retrogaming and hardware. It is not uncommon to stumble upon a news feature about retro gamers or various social media groups embracing or seeking to profit from retro games. Below, we elaborate on this history via three parties from whom we asked one simple question: What is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Our first response comes from PhD Niklas Nylund who works for the Finnish Game Museum in the city of Tampere. The Finnish Game Museum is a collaboration between the city of Tampere, Media Museum Rupriikki, 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and the University of Tampere set to represent Finnish gaming culture and how it has developed over the years. The Museum was opened in 2017 and was crowdfunded by Finnish gaming enthusiasts who donated 100,000€ to establish a public archive of game history. It is a meeting place for the past and the present, offering low-threshold participation in gaming culture for both locals and visitors. According to Nylund,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its openness, collaboration, and respect for other people in democratic decision making. Finland is a small country, and its conversation culture is open to an extent that high cultural heritage institutions were from the start interested in having a dialogue with retro gamers and learning from them (and vice versa). Nylund adds that experiences have been positive with parties interested in preserving games through projects such as the Finnish game museum and having a shared “round table of game preserving.” Our second response is credited to Eero Pihkala, the president of Academic Nintendo Club (ANC) in Turku University. ANC is a hobby group offering free-time retrogaming activities around old and new games ranging from the 1980s consoles to retro esports. These kinds of clubs, academic and non-academic, are common in Finland and differ in format as well as specialization from specific consoles and computers to genre-based groups. According to Pihkala, representing ANC,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appreciating games equally from all different generations. That’s how we can preserve the history of gaming culture(s) and celebrate the legacy of diversity in it as opposed to chasing the latest trends in the AAA-market.” They also add that retrogaming is a “fluid concept,” but for the Finns the MS-DOS and PC-based gaming activities form its core. Finally, we talked to Markus Autio who is the owner of Sugoi, an arcade hall in Helsinki known for its collection of (primarily Japanese) arcade games from the 1990s to this day. In Autio’s view, “Finnish retrogaming is about nostalgia. People love to revisit games that they knew as kids or teens. And it doesn't even have to be a game they remember playing, but maybe something they just saw in some darkened corner of a mall, having left a lasting impression. Or maybe they read about it in a videogame magazine at the time. The key of this retrogaming is to be familiar with the game in one way or another, which sparks nostalgic interest.” Along these lines, nostalgic arcades are currently making a small comeback to the Finnish cityscapes and provide a space for (often social) retro game sessions for more and less active hobbyists. In addition to the above three domains of retrogaming, one more unique feature can be noted as an endnote. From the 1980s to late 1990s, a wave of DIY-games for the PCs (usually MS-DOS) emerged in Finland, often representing satiric and parodic themes with dark humor. These games were primarily nonprofit, and the designers were standardly left anonymous. Their shareware distribution occurred via traded disks and early bulletin board systems, ultimately forming a small piece of Finnish gaming history that retro gamers summon by playing them in live-streams and creating online videos of them. Many of these games include content that is intentionally provocative or hostile; however, instead of refusing to acknowledge their existence, informed retrogaming activities can help understanding their historical context of emergence and to shed further light on their influences on later cultural developments. Ville Malinen is a PhD Candidate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His research is focused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F1 racing and motor esports. He has written several journalistic articles about gaming in Finnish magazines and newspapers, and is interested in the philosophical issues arising from simulation games. Veli-Matti Karhulahti is Senior Researcher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and holds Adjunct Professorship in University of Turku. His research tackles gaming, play, and technology use in many ways, and he is the author of the book Esport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 (Bloomsbury,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유베스퀼라대학, 연구자) 벨리 마띠 카훌라티 유베스퀼라 대학교의 시니어 연구자이자 투르투 대학(University of Turku)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게임과 플레이,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Esports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Bloomsbury, 2020〉 를 저술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플레이어들은 왜 ‘한글패치’를 하고 있을까?
이른바 ‘한글패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였다. 해당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코멘트, 심지어 인터뷰 참여자에게 꾸준하게 보고 들었던 이야기의 대명제는 “게임은 항상 균등하게, 지역에 관계없이 생산/소비되진 않는다”였다. 우리는 일방향적 콘텐츠 전사, 서구 중심 문화적 동질화 등 미디어 제국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아닌, 능동적 미디어 수용자에 의한 재해석과 전유의 시대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니, 적어도 미디어는 각 지역의 수용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夢としてのクソゲ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 Back 夢としてのクソゲ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한글 번역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ulturemagazinegg.wixsite.com b3ca971a-22ba-428a-8fde-4af1a167b94f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超能力開発ゲーム『マインドシーカー』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筆者も、このゲームを昔、実際にやってみたことがある。しかしながら、そもそもゲームが要求する課題に応えることができない。「では、まず透視をしてみましょう」とか、「予知をしてみましょう」というような課題が次々に出てくる。残念ながら、かすかな超能力も秘めていなかった(?)筆者にとっては、初期の課題からしてすでに達成困難だった。そのため、超能力は得るには至らなか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は、まともにクリアすることができず、まともに楽しむことも難しく、(おそらく)超能力を開発することもできない。それゆえ、この作品は、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るとは言えない作品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 そう、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ないのだ。 しかし、それでも、この作品には、特筆すべきものがあると言いたい。 それは、作り手と、遊び手の、ゲームへの「夢」が詰め込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そのあまりに直接的な夢のあり方の痕跡を確認できるという意味において、この作品ほどわかりやすい作品は珍しい。本稿では、この「夢」をどのように評価するべきかということを少しだけ書いてみたいと思う。 夢の装置として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 『マインドシーカー』の発売された当時、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文化が、かつて担っていた面白さの一部は、このようなものだった。すなわち、人々の無制限な夢を実現してくれる機械であるということだった。 コンピュータの中のキャラクターと対戦ができる。登場人物と話ができる。モニターに向かって銃を撃ったら反応を返してくれる。声を入力することができる……今では当然とも思えるこれらのことは、1980年代に多くの人の目の前に急速に日常に現れた新しいテクノロジーのあり方だった。「コンピュータが進化すれば、ゲームでなんでもできるようになる」という、無責任な夢を多くの子供が信じたし、ゲームの作り手は、その夢をどんどん具現化していった。それが1980年代の、ファミコンがヒットし、ゲームというメディア自体が多くの人の、果てしない夢を、ある意味で無責任に担ってしまうことが可能だった時代の風景だった。 もっとも、テクノロジーが人々の「夢」を無責任に背負うという構図それ自体は、コンピュータば・ゲームに限ったことではない。佐藤俊樹は、情報社会の未来を語る情報社会論の言説が何度も何度も同じ夢を繰り返しみてきたということを1996年に指摘している(『ノイマンの夢・近代の欲望』1996,講談社選書メチエ)。1970年代にも夢は語られ、1980年代にも夢は語られ、繰り返し、繰り返し「情報技術が社会を変える」という「神話」が語られてきたという。佐藤は、図書館のなかに溜まっている情報社会論を議論する構図がほとんど変化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をある日、発見し、そのことに驚いたという。 「コンピュータがどう社会を変えていくか」という言説が、オトナが社会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る装置であるとするならば、1980年代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は、子供が遊び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ていく装置であったと言ってもいい。1980年代の世界は、その夢の「素朴さ」という点において、2022年現在とは隔絶したものがある。もちろん、2022年現在においても、人々はAIに過剰な夢を託し、もっと本格的なVRゲームの実現を心待ちにしている。しかし、1980年代に見られた夢とは、どうも、その性質が異なっている。 誰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担い手だったのか? 何が異なっているのかといえば、無茶な夢の担い手が、一体誰だったのかということだ。 1980年代の伝説的なクソゲーを作ったのは、ポッと出の新人 や、他業界の素人 には限らなかった。「クソゲー」の担い手は、しばしばゲーム業界の中心人物だ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の開発プロデューサーは、あの『パックマン』の生みの親である岩谷徹が勤めている。そして、開発の中心にいた鈴木浩司は、その後1997年にRPGのあり方に大きな波紋を投げかけた『moon』の開発に関わり、今で言うインディーゲーム文化の先駆けとなる作品に大きな貢献を果たした人物でもある。 ゲーム業界の重要人物が、「クソゲー」に関わるという構図は、実は珍しくない。アメリカの家庭用ゲーム機のマーケットの崩壊(いわゆる「アタリショック」)を導く要因の一部となった「伝説のクソゲー」として参照される『E.T.』(Atari 2600,1982)の開発担当者Howard Scott Warshawも、当時のアタリ社におけるスター開発者だった。『Yar’s Revenge』(Atari 2600,1981)というAtari 2600において最も売れたとされるタイトルの開発者である 。Howard Scott Warshawは、無茶な話を勢いよく引き受けて、『E.T.』を作った。 ちなみに、日本の1980年代の代表的なクソゲーである『たけしの挑戦状』は、今で言うところの「オープン・ワールド」の実装を夢見て、華々しく失敗した作品ということができるが、これはゲーム業界の内部ではなく、タレントのビートたけしによる素朴な発案だった 。 彼らは、コンピュータ・ゲームに人々が見ていた「夢」を引き受け、そして失敗したのである。 今思えば、それは、あまりにも馬鹿馬鹿しく、未熟で、粗末なものだった。そう、言うことはできる。そして、時代の寵児たちが、馬鹿馬鹿しい失敗をできたということは、ゲーム業界全体が若い時代特有の特権だったといってもいい。馬鹿げた夢をひきうけ、それに無謀に挑戦することが許されたのだ。それは、出来上がった作品を見てみれば、不幸なプロジェクトだったようにも見え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2022年の現在から見てみれば、業界のトップスターが、ひどく馬鹿げた企画に、馬鹿げた予算をかけ、馬鹿げた情熱を注ぐということは、ほとんど見ない風景になってしまった。もちろん、突拍子もない企画でヒットを狙おうとすることや、失敗するプロジェクト自体は今でも存在する。しかし、そこにトップクリエイターが最初から張り付き、巨額の予算がかけられるということ自体は、ゲーム開発に関わるリスクの意識が発達した現代の大規模開発では、なかなか見られないものになった。 繰り返す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もつ「愚かさ」は、開発者たちの無能さゆえではない。むしろ、未熟で有能な人々が、夢を煮詰めたプロジェクトに全力で取り組んだものの痕跡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なのである。 新しいものをつくる装置としてのクソゲー これほどまでに、素朴な欲望の発露によって、大作を作ろうとする志しは、今となっては、むしろ眩しくすらある。 「超能力を開発できるゲーム」など、馬鹿らしいにもほどがあるし、1980年代に大規模なオープン・ワールドのゲームをつくろうなどという野望もあまりに無理があった。 この後、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世界のなかに漂う「夢」を引き受ける一つのピークとして生まれた作品は、1999年の『シェンムー』(DC,1999)だっただろう。『シェンムー』もまた、夢が詰め込まれた作品だった。『シェンムー』はもう一つの現実世界をゲームの中に実装しようという多くの人が夢見ることの一つを、愚直に実現しようとした作品の一つだ。この作品が残したのは赤字だけではなく、失敗とも成功ともなんとも言い難い強烈な印象だった。今の「オープン・ワールド」と言われる作品の多くは、直接にせよ間接にせよ『シェンムー』の試行錯誤の結果を反映させてつくられている。 コンピュータに人々が見る「夢」は多くの場合、無責任なものだ。 それはしばしば愚かだったり、詐欺まがい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その愚かさはしばしば滑稽なものになり、出来上がったものは笑いを誘う。人々が何かを笑うときというのは、ある認識の枠組みを外側からメタ視点に立てるようになっている瞬間でもある。夢は、その内側にまどろんでいるときには尊く、その外側に出れば、ときには笑いを誘う。「夢」を見るとういうことは、その意味で滑稽であることが宿命付けられたものだと言っていい。 ゲーム業界が成熟するほどに、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ることは大手のトップクリエイターの仕事としては難しくなった。その結果、1990年代も後半になってくると、より小さなゲームの開発元が果敢なクソゲーも、単に開発力不足によるクソゲーも、その両方を担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現代では広大に広がるインディーマーケットがその主力を担っている。 我々は、笑えるほどに愚か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によって、新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ができるとも言える。我々が新しいものを見たいと思い、前に進みたいと思う欲望と、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ってしまうことは表裏一体の現象である。 私は『マインドシーカー』を起動して、久々に遊んでみると、そこにはもちろん、笑ってしまうような馬鹿馬鹿しさがある。たしかに、ゲーム自体は馬鹿らしいのだ。しかし、このゲームは、同時に輝いているようにも感じてしまう。それは、その馬鹿らしさを可能にしているものの存在を背後に感じ取ってしまうからだ。夢をみて見たいと思う人々の子供のようなワクワクとした気持ちが、この作品の裏側には横たわっている。それは無茶なものだったとしてもいい。 それこそが世界の多様さと豊かさのありようだ、と私は考える。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noue Akito ゲーム研究者。現在、立命館大学講師。国際大学GLOCOM助教、関西大学特任准教授などを経て現在に至る。「ゲームとは何か」という問いを中心に据えつつ、ゲームのアーカイブや、ゲームを応用した社会的課題の解決に関わるプロジェクトなどにも取り組んでいる。 Game researcher. Currently a Senior Lecturer at Ritsumeikan University. After completing a master's degree at Keio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Media and Governance, he worked as an assistant professor at International University of Japan GLOCOM and a specially appointed associate professor at Kansai University before assuming his current position. He is also involved in projects related to game archives and databases. He is the author of "Gamification" (NHK Publishing, 2012).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