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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24 GG Vol. 25. 6. 10.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2023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100% [1] 이며, 중동 인구의 약 52.9%가 콘텐츠 적극 소비 계층인 30세 이하 [2] 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자본을 투자해 게임 및 이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Riyadh Season,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스포츠 페스티벌 등 전 지구적 게임 행사도 활발하다. 이 먹음직스러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다양한 언론 및 기관이 아랍 게임 시장에 관한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그 너머를 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 분석 보고서는 많고 많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랍의 단편이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장벽 허물기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문화와 산업의 등장(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을 다룬다. 이는 2023년에 출간된 『Handbook of Media and Culture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Vít Šisler, Lars de Wildt, Samer Abbas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UAE, 카타르 등의 아랍 지역 현장 조사, 40명 이상의 아랍 게임 개발자 인터뷰, 게임 분석 및 기존 연구의 메타분석을 진행했다. 저자들은 서구권의 주류 게임이 아랍인 또는 무슬림 표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논문은 게임 환경과 비판적 트랜스문화주의 개념을 채택해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소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한다. 논문은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구멍 난 아랍 게임 문화 형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문은 아랍의 게임 현장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혼종성, 시각적 표현의 진정성 강조, 종교 및 문화적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봤다. 저자들은 논문을 통해 정치·경제·종교·문화적 흐름이 지역의 게이머·개발자·기관의 게임 매체 활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문화 생산 및 초국적 소비자 문화라는 맥락과 연결했다. 아랍 게임 시장의 현재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현재의 아랍 게임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 중 하나다. 그것은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활동적인 게이머 인구, 높은 스마트폰 및 인터넷 보급률, 지역 및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의 현지화된 콘텐츠 공급(The National 2020)에 힘입은 결과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서는 사우디, UAE, 이집트가 상위 게임 시장으로 꼽히며, 사우디는 약 8억37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게임 시장으로 꼽혔다(Tashkandi 2021). 올해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 [4] 에 따르면 중동 게이머는 국제 평균 이상으로 모바일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며, 배틀로얄, 슈팅, 스포츠 등 단기 집중형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나타난 사우디와 UAE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44.2%가 모바일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 또한 모바일게임이 3.73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2022년 12월 기준 아랍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안드로이드 무료 게임은 피파 모바일, 틱택토, 싸커 슈퍼 스타, 루도 클럽 등의 스포츠, 퍼즐, 보드게임 장르 게임이었다. iOS 기준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서브웨이 서퍼가 인기를 끌었다. 유료 게임으로는 마인크래프트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있었다. MENA [5] 지역에서 유명한 이스포츠 게임으로는 ‘DOTA2’, ‘포트나이트’, ‘FIFA’ 등이 있다 [6] . 아랍 세계의 게임 연구 동향 비디오 게임 분야의 아랍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서구권 개발자의 아랍 재현 방식 연구와 아랍에서의 게임 제작(및 그 자체 재현)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재현에 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기 비디오 게임에서 악당이 일반적으로 중동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방식과 아랍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타 환원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을 조사한다(Marashi 2001; Reichmuth and Werning 2006; Keogh 2021). 두 번째 연구 흐름은 아랍에서 제작된 비디오 게임과 그 속의 아랍인과 무슬림 자기재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Galloway 2004; Machin and Suleiman 2006; Tawil-Souri 2007). 이 논문의 저자들이 위치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의 중동 지역 게이머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 연구(AI-Rawi and Consalvo 2019)는 아랍 게이머의 공동의 정체성이 아랍어와 아랍 게임의 공유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랍 세계 비디오 게임의 역사 시작: 해외 게임 소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미국·유럽·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게임이 전파됐다. 초창기 아랍에서는 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해외 게임을 소비했다. 국산 게임 제작보다 선행된 해외 수입품의 유입은 아랍 지역의 국내 비디오 게임 산업과 그 결과물을 형성하는 ‘벤처와 관객의 기대치’를 설정했다(Wolf 2015,6). 불법 복제 게임, 소위 ‘해적판’ 게임은 아랍 세계에 비디오 게임이 확산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지역의 불법 복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랍 도시에서 해외 게임의 사본을 2~3달러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출시 직후의 게임 구매도 가능했다(Šisler 2013). 광범위한 불법 복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와 수입업자들은 값싼 해적판 제품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Wolf 2015,7). 반면 불법 복제는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전술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민주화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역의 높은 불법 복제 수준은 게임 산업 관행에 영향을 미쳐 회사들이 월정액 구독과 회사 서버 액세스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Wolf 2015, 7).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접근은 사이버카페(PC방)를 통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특히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린 국가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 게임 프로덕션의 등장 1981년, 아랍어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디오 게임기에 관한 수요로 알-알라미예가 사크르라는 아랍어 가정용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MSX를 기반으로 제작돼 아랍 전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얻었다(Kasmiya 2015, 30). 알-알라미예는 일부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화했고, 퀴즈 게임 로드 투 마카(Road to Makkah)와 같은 간단한 아랍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Abbas 2019). 이는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시리아 의대생 무하마드 함자가 제작한 ‘돌 던지기(The Stone Throwers)’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제작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은 알 아크사 인티파다 [7] 를 다룬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Šisler 2018). 이 게임의 뒤를 이어 아랍의 문화를 더 밀접하게 반영한 다른 게임들이 개발됐다(Šisler 2008). 이 게임들은 서구권 비디오 게임에서 아랍인을 테러리스트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묘사하는 헤게모니적 왜곡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담론’(Lefebvre 1991)으로 간주할 수 있다(Šisler 2018). 이러한 게임은 성격에 따라 크게 저항, 교육, 문화적 대화로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게임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실제 분쟁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헤즈볼라 운동(대표작: Special Force 1,2), 시리아 회사인 다르 알 피크르와 아프 카르 미디어(대표작: Under Ash, Under Siege), 요르단 스튜디오 투라스(대표작: Jenin: The Road of Heroes)가 있다. 이 게임들은 아랍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제공하고 아랍인의 관점에서 분쟁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Šisler 2018). 초기의 교육용 게임은 이슬람의 기본 교리나 문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가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와의 문화적 대화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초기 게임에는 2005년 시리아 회사 아프 카르 미디어가 만든 전략 게임 ‘쿠라이쉬(quraish)’가 있다. 이 게임은 이슬람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며 이교도 베두인, 무슬림 아랍인,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아랍어와 영어로 제공됐다(Šisler 2018). 쿠라이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라드완 카스미야는 후에 빈센트 고섭과 함께 팔라펠 게임즈를 설립했다. 중동과 중국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첫 번째 게임 ‘나이츠 오브 글로리(Knights of Glory)’(2011)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문화나 정치를 주제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잘 엔터테인먼트는 아랍 스타일 농장 게임 ‘알마디나(Elmadinah)’(2013)로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전작 ‘크라우즈 보트(Crowds Vote)’(2012)는 2012년 이집트 혁명을 소재로 했다(Kasmiya 2015). 문화적 진정성과 현지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역사·종교에 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의 기본 구조가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아랍 세계의 초기 게임 제작에 나타난 것은 혼종성과 문화 간 교류였다(Šisler 2018). 해외 게임사에게 현지화는 수익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됐다. 독일의 브라우저 기반 전략 게임 ‘트래비안(Travian)’은 통신사 결제와 선불카드 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아랍어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었다. 2009년 전성기 시절, 아랍어 버전 트래비안은 트래비안 전 세계 유저 1/5를 차지하며 매달 15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Abbas 2019). 트래비안의 성공은 아랍 세계가 다른 유럽 브라우저 게임에 눈을 돌리게 했고, 아랍 지역 게임 회사에 투자가 유치되는 계기가 됐다. 다운로드가 필요 없고 저사양 PC를 지원하는 브라우저 게임은 쉽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화된 무료 게임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그 결과 서구의 여러 회사가 아랍에 지사를 설립하고 아랍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Campbell 2013). 현지화는 번역 이상으로 현지의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아랍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는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 종교 비판, 음주 등을 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트래비안은 양조장 건물을 찻집으로 대체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사우디와 UAE에서 성적인 표현과 아랍 문화에 대한 오해를 가진 몇몇 게임이 금지되면서 국가 미디어 정책에 규제 조치가 생기기 시작했다(Šisler 2018). 아랍 게임의 최신 트렌드 최근 아랍의 게임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슈가 벌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부의 투자 지원과 새로운 규제, 세계화를 통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교류, 아랍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여전한 대표성 및 정치적 문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유행, 아랍적인 게임을 위한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성 및 정치 문제와 같은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지원 및 규제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현지 및 수입 게임에 대해 지역 최초의 공식 연령 등급 콘텐츠를 도입했다. 금지 콘텐츠에는 누드, 노골적인 성행위, 동성애, 종교 비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등이 포함된다. 2018년에는 UAE도 국가미디어위원회(NMC)를 통해 유사한 등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화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 라미 이스마일의 isthatarabic 홈페이지 내용 아랍계 개발자들은 글로벌 게임 제작에서 아랍 및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존의 도식화 및 왜곡된 표현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오사마 도리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무슬림 표현을 위한 방법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디자이너 라미 이스마일은 게임 회사들이 아랍 문자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 웹사이트 https://isthatarabic.com 을 개설했다. 아랍계 게이머의 소셜 네트워크는 영어와 함께 아랍어를 사용하고, 지리적 근접성, 역사 및 종교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아랍 개발자 네트워크는 점점 더 공식화되고 국제화돼 지역 전체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Šisler 2018). 대표적인 예로 아랍에서 가장 큰 연례 게임 개발 행사 ‘게임 잔가(Game Zanga)’는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관한 게임을 제작한다. 이집트 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주제는 ‘자유’였다. 대표성 및 정치 * 게임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 첫 화면. 글로벌 산업이 대부분 북미에서 주도된 결과 현대의 국제 분쟁은 거의 기본적으로 미국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령 2023년 출시된 게임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는 2004년 이라크 전쟁 제2차 팔루자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대 분대의 시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반면 아랍의 관점이 우세한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2016년 팔레스타인 디자이너 라시드 아부 에이데가 제작한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Liyla and the Shadows of War)’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민간인 희생을 탐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애플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거부당하다가 이후 전 세계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대규모 항의(Batchelor 2017)가 있은 후에야 판매 허가를 받았다. 캐주얼 게임 사실 아랍 게임사에게 대표성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내 생존하는 것이다. 아랍 게임사들은 이를 위해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을 택했다. 현재는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아랍 세계에서 제작됐거나 아랍 친화적인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 게임 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의 전통은 아랍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아랍어 번역본이 3년간의 작업 끝에 아랍 팬 번역가에 의해 출시됐다(Johnson 2013). 마치며: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가능성 게임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티 같은 게임 디자인 툴의 대중화, 스팀 같은 유통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은 개발 및 퍼블리싱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개발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랍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튜디오는 여전히 드물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 부족, 분열된 게임 커뮤니티, 노하우 부족, 게임 개발 교육 부족 등 여러 가지 정치 및 경제적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아랍 세계에서 게임 산업은 30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개발자 라미 이스마일에 따르면, 아랍 게임 개발 커뮤니티는 그가 제안한 지역 게임 개발 커뮤니티 6단계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식 공유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지식이 교환되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Ismail 2015).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봤듯, 성장의 여지는 존재한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아랍 게임 문화가 성장하고, 혼종화되고, 문화 간 교류에 접어들고 있다는 특징 이상으로 아랍에 고유한 플레이어 문화를 가진 신흥 소비자층이 나타났단 점에 주목한다. 게임 문화와 산업은 이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해외 문화 소비로 시작해 점차 자체 게임 시장을 형성하게 된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과정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의심되지는 않는다. 이제 한국인 게이머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랍 게임의 경제적 측면 그 이상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초국가적 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려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게임 문화와 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 World Bank, 2024.12.16.,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 EBS, 2021, ‘닫혀 있던’ 사우디에 무슨 일이?...아라비아의 변화 어디까지 [3] Mastercard Newsroom, 2023, Transforming Saudi Arabia’s esports and gaming landscape [4] 전종섭(한국콘텐츠진흥원), 2025.01.07., 신규 게임시장의 기회: 중동의 한국게임 소비행태 분석 [5]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약자. 아랍, 중동, MENA 지역의 개념적 정의와 범주는 모두 다르지만 여러 자료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혼용해 사용했다. 엄밀히 말해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연맹 22개국을 의미하며, 중동은 아랍 국가들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랍어 사용국 외에 이란,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가급적 원 자료 표기를 따르되 필자의 표현은 아랍으로 통일했다. [6] 해당 단락은 한국콘텐츠진흥원 UAE 비즈니스센터, 2023.06.30., ‘중동 콘텐츠 산업 동향’을 참고했다. [7]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 봉기를 뜻한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까지 이어졌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는 제2차 인티파다의 다른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3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rim Lee Researches and writes about memory, story, and image. Interested in moving-image work where public and private memory intersect. Drawn to things that rest on the boundary—beings that cannot settle and drift instead. These days, comes to think that approaching haltingly, and walking while looking back, may be the method of both writing and living.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 Back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07 GG Vol. 22. 8. 10.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이 ‘이야기 구조’와 ‘플레이 구조’의 대립 관계는 초기 게임학 연구의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의 구분에서 유래하지만, ‘루돌로지스트에 속한 쪽’의 주역이었던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14)이 회상한 바에 의하면 당시 ‘내러톨로지스트’들이 게임에 서사학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루돌로지스트’라는 자리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덧붙여 그는 이 루돌로지스트들은 현재 모두 게임에 대해 서사학 이론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밝히며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대조의 오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게임 연구 방법론의 이원화는 다소 인위적인 구분에 기인하지만, 주류 비디오 게임(특히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소위 ‘AAA 게임’)의 방향성이 발전된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을 위시하여 기존 영화적·문학적 서사를 게임 환경에서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도 2년 전 논쟁적이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러한 단절을 의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써오면서, ‘영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사이에서 전통적 서사 구조에 대해 여전히 양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인성, 2020). 여기선 이런 배경에서 대두된 몰입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원론적인 관점에서 기존 논의를 되짚어가며 디지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로 환원하기 단지 산만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아니라 표현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구성요소를 온전히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바깥의 행위자, 즉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이를 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의미 구조하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변수이고, 이야기의 청자가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용할 때와 달리 이들은 이야기의 과정과 내용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어의 존재가 게임이 기존의 수용적인 예술 매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게 한다. 게임은 그 안에 영상이든 음악이든 텍스트든 다른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데이터로써 포함할 뿐이다. 예스퍼 율(Jesper Juul, 2001)의 지적처럼 내러티브의 시간과 이야기되는 시간 간에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는 반면, 상호작용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술과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이야기로서 서술되기 위해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분리되고 그 영향력 바깥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입력이 허용되지 않는 컷신 속에서나, 시간적·공간적으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게임 플레이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 〈오브라 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특수한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이동하지만 단지 관찰하고 정황을 추측하는 해석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다. 한편 비디오 게임이 스포츠나 보드게임 등과 달리 내러티브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게 가능한 것은 디지털 매체로서 가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의 저서 〈Rules of Play〉에선 디지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제시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이해한 룰에 따라 말을 손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 결과를 직접 계산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게임상에선 구현된 AI,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 그래픽 엔진 등의 모든 자동화된 절차로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디지털 게임에서 손수 수행하기엔 너무 복잡한 수준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지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 이상으로 디지털 게임은 가상의 공간과 캐릭터를 구체화하여 동적인 허구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이렇게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축소된다기보다는 각 게임의 설정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뀔 뿐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방치형 게임’이라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소비하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조합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식의 운영을 요구하며 다른 조건과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1)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구성요소 사이에서 입력을 요구받고 자동적인 절차를 거쳐 출력을 되돌려 받는다. 이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다시 대응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게임 플레이를 이렇게 단순화했을 때 이 ‘모델’로부터 플레이어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반복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 구조 안에서 (상정된 것이든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든) ‘이상적인 시퀀스’를 그려낼 때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건은 게임에서 항상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이를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고 재조합할 때만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고정된 이야기를 조합하여 연속된 하나로 이은 것이 그 게임의 스토리라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고, 반대로 게임 플레이 전체를 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 혹은 ‘플레이어 스토리’나 ‘창발적 내러티브’라고 이르는 것 2) 도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비유일 뿐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인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 제시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3) 시스템으로 환원하기 한편으로 게임연구 초기엔 게임에 대한 텍스트적 해석에 반대하고 (‘학문적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게임 매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게임 내 기존 이론으로 해석하기 쉬운 요소들(텍스트, 이미지, 내러티브 등)이 도외시되기도 했다. 올셋(2004)은 한 에세이에서 체스 말이 어떤 모양을 가지든 체스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라 크로프트의 외모는 몸이 다르게 보인다고 다른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런 논지는 현재까지 몇몇 비평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지속되어, 이들은 ‘진정한 게임’을 찾기 위해 ‘가장 게임다운 것’ 혹은 모호하기 그지없는 ‘게임성’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항상 룰과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해진 스토리와 이미지, 음악은 부차적이고 메커니즘을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상부 구조인 이야기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Huizinga, 1949/2010)는 놀이가 ‘외양의 실현’으로서 상상력을 질서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게임이 놀이의 시뮬레이션적 본질을 가지고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허구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모방 행위’라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게임이 그려내는 픽션은 단지 뼈대인 룰을 이해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생생함을 더하고 그 일부로서 참여하기 위해 질서가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율(Juul, 2005)이 설명한 것처럼 픽션과 룰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묘사 대상의 성질이 개입되고 또 반대로 구조가 표현 방식을 지정하는 식으로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또한 디지털 게임은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에 의해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기계적 관점에서 단순화시킨 디지털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룰을 먼저 이해하고 진행하는 다른 놀이 형식과 달리 디지털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은 숨겨진다. 플레이어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 것만을 감각할 수 있기에 작동 방식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 기능을 알게 된다. 4) 일반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숙지할 순 있지만, 게임 시스템을 완전히 알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니엘 벨라(Daniel Vella, 2015)는 이런 성질 때문에 게임의 본질로서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시스템이 의미하는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동방식을 숨기고 플레이하면서 발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도 근본적으로 이런 ‘미스터리’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폴 마틴(Paul Martin, 2011)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풍경이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인 전체를 그리면서 ‘게임적 숭고’(Ludic sublime)를 제시한다고 하였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픈월드의 풍경에 외부는 없다. “세계는 눈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간다.”(Martin, 2011)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숭고함은 약화된다. 게임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전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점차 게임의 세계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플레이도 “좌절과 발견 사이의 팽팽한 기브앤테이크에서 생산적인 놀이를 위한 일상화된 운동”에 가까워진다(Welsh, 2020). 그럼에도 벨라(Vella, 2015)는 게임에 웬만큼 숙련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는 있으며 5) , ‘블랙박스’라는 특성상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불가능하다는 성질이 게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지와 몰입 서술한 대로 플레이어는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는 대신 이미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커니즘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는 단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고, 지표로서 룰과 상호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그래픽 엔진의 사실적 재현 수준은, 게이머들이 이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신작 오픈월드 게임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특히 ‘자유도’에 대해)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적 사실성만큼의 실제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건 현실의 물리법칙에 점근하는 수준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게임들은 재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상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약으로서 룰’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게임 이미지는 그림과 액자의 관계와 같은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 미디어의 존재를 수시로 각성시키기 때문에 시각적 리얼리즘이 그리는 환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한다. 영화와 같은 스펙타클함을 추구하는 게임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숨기고 심리스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비현실적인 규칙의 존재가 인공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유저 인터페이스(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물론이고)에 의해 플레이어는 허구 세계와 늘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은 연극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 세계의 환영은 투명하게 노출된다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연상을 통해 상상된다. 초기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투박함은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추상적인 기호로서 이해되어 그 비현실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6) 점 두 개와 선 하나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의미가 제시될 수 있다면 환영은 만들어진다. *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여타 리마스터·리메이크 작품과 다르게 〈꿈꾸는 섬〉의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그려진다. 닌텐도는 여전히 추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디오 게임의 몰입 환경에 대해 고규흔(2004)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아무런 계기판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의 라이더가 자신이 대기 안에 존재함으로써 온몸으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기체를 조종한다면, 계기판 앞에 앉은 파일럿은 자신의 대기에 존재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누고 객관화시킨다. 풍속과 고도, 현재의 운항 속도, 시야 거리 등등의 수치화된 정보를 기준으로, 행글라이더의 기수와는 달리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방식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의 관객”이 행글라이더의 기수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영과 동화되지 않는 파일럿의 태도와 같다고 한다. 자각몽으로서 게임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Don’t Look Back〉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는 다른 불행한 인물들과 달리 따로 판타지 세계가 주어진다. 오필리아는 요정에 이끌려 목신 판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이와 유사한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 〈Don’t Look Back〉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불행해 보이는 그에게도 역시 판타지 세계로서 지옥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를 조종하여 장애물을 통과하고 괴물들을 격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까지 물리친 후에 그는 아내의 영혼과 만난다. 이제 ‘규칙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동하여 다시 이승으로 올라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 결과가 〈판의 미로〉에서는 사실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보다 명확하다. 남자가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올 때, 이 과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게임적 존재’들은 그대로 소멸한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판타지 세계에선 절대적인 규칙이 제시되고, 이에 따라 고난을 극복한다. 이 짧은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상상하는 남자로서 게임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곤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두 작품이 판타지를 체현하는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임은 규칙을 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긴장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놀이이면서, 공상만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공간이다. 상상된 시스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지만 일상적 현실을 자각한 채로 정교하게 욕망을 만족시킨다.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로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재생되는 꿈도, 잠깐 빠져드는 백일몽도 아닌 자각몽으로 경험된다. 1) 다만 그 자동화의 대상이 기존 액션 RPG 장르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RPG 게임들은 게임 커뮤니티 등지로부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 Soler-Adillon(2019)이 지적한 바대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행위자의 인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Importantly, they do so while responding to this sense-making process itself. However ... it is problematic to associate self-organization to processes in which the agents generating the phenomenon are aware of it” (Soler-Adillon, 2019) 3) 다만 게임이 기존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는 대신 “더 큰 내러티브 경제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관점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2004)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1983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시뮬레이팅하는 동명의 비디오 게임이 영화에서처럼 전체적인 플롯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두고, 게임을 하며 환경적 세부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여 더 큰 단위에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주류 온라인 게임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4) 워게임 디자이너 제임스 더니건(James F. Dunnigan, 2000)은 이를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축소시키는 ‘블랙박스 신드롬’(Black box syndrome)이라 불렀다. 그는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워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5) 일례로 1994년 출시된 〈둠 2 : 헬 온 어스〉의 한 숨겨진 구역은 출시 후 24년이 지난 2018년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유튜버 Zero Master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에 게임 개발자 존 로메로(John Romero)가 직접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romero. (2018,09,01). CONGRATS, Zero Master! Finally, after 24 years! "To win the game you must get 100% on level 15 by John Romero." Great trick getting to that secret! 6) 이런 점에서 현대 인디 게임에서 흔히 표방하는 로우폴리곤이나 픽셀 그래픽이 활용된 레트로 스타일은 단지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게임적 이미지의 물성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ocking, C. (2009).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he problem of what the game is about.” In D. Davidson (Ed.), Well played 1.0: Video games, value and meaning. ETCPress. Aarseth, Espen (2014) “Ludology,”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Video Game Studies edited by Mark J.P. Wolf and Bernard Perron. 박인성 (2020). “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1(1), 83-111. Juul, Jesper (2001). “Games telling stories? -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Vol. 1 Issue 1, July 2001. Eric Zimmerman, Katie Salen (2003). “Rules of Play.” MIT Press Soler-Adillon, Joan (2019). “The Open, the Closed and the Emergent: Theorizing Emergence for Videogame Studies.” Game Studies, Volume 19, issue 2 Jenkins, Henry (2004). “Game design as narrative architecture.”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Ma.: The MIT Press. Aarseth, Espen (2004). “Genre trouble: narrativism and the art of simulatio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The MIT Press. Huizinga, J. (1949).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이종인 (역) (2010). 〈호모 루덴스〉. 일산: 연암서가 Juul, Jesper (2005). “Half-Real: Video Games between Real Rules and Fictional Worlds.” MIT Press. James F. Dunnigan, “Wargames Handbook: How to Play and Design Commercial and Professional Wargames.” 3d ed. (San Jose: Writers Club Press, 2000) Welsh, Timothy (2020). “(Re)Mastering Dark Souls.” Game Studies, Volume 20, Issue 4 Martin, Paul (2011).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Volume 11, issue 3 Vella, Daniel. (2015).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Volume 15, Issue 1 고규흔 (2004). 비디오 게임에 대한 스펙터클적 관점에서 계약의 관점으로 이동. 한국게임학회 논문지,4(3),29-4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학생)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Back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17 GG Vol. 24. 4. 10. 방치형 RPG 비판 1)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2)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타비카에루’는 방치형 게임의 ‘이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시장은 ‘AFK 아레나(剑与远征)’, ‘마법거울의 전설(魔镜物语)’, ‘아이린 시편(爱琳诗篇)’ 등 ‘맵밀기(推图)’ 3) 를 큰 축으로 하여 수집, 육성, 트래킹, 턴제 자동전투 등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결합한 중국산 방치형RPG게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의 시청각적 외관은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인 로직은 일관성이 있다. 심지어 게임의 전투나 스토리 전개는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거나 구동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다양한 유형의 수익을 취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따금 게임 속 개체를 클릭하기만 하면 게임을 최대한 즐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로 ‘스킨을 교체한다’ 4) 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주의를 끌지 못하던 미니게임에서 대중화된 게임 장르로 변모한 이 질적 변화는 게임 역사의 자연적인 진화에 그치지 않으며,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고 있다. ‘게임’이란 ‘현실’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현실의 문예적인 표상이며, 현실과 대응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새로운 예술장르의 미디어적인 특성상, 게임성을 커버할 만큼 스토리성이 강한 서사적 게임을 제외하면, 오늘날 RPG를 비롯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오츠카 에이지(大冢英志)의 ‘거대 서사’ 5) 형식을 통해 객관적 현실을 명료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宽)가 말했듯 ‘거대한 게임’ 6) 의 형태로 주관적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할 뿐이다. 이에 따라 우노 츠네히로는 21세기 들어 RPG 등 방치형 게임 장르가 전후 일본의 서브컬처 속 ‘고질라 명제(ゴジラの命題) 7) ’, 즉 허구——객관적 현실이 아님——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주관적 현실을 게임을 통해 써내려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현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 문제와 연관된다. 여기서 상상력은 게임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각 구조에서 주관적인 사회 현실을 추출하고, 이미지화하는 능력을 뜻한다. 객관적 현실을 발화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오늘날, 게임이라는 새로운 예술이 동시대에 대해 갖는 사명은 자역주의적 방식으로 객관적 현실을 직접 드러내는 게 아닐 것이다. 플레이 방식 등 신체적 감각에 호소하는 혁신적 형태로 주관적 현실을 구성하는 것에 있다. 이 글은 ‘고질라 명제’를 따라 현대 중국의 주관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로서 방치형RPG게임의 사회적 상상력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자동화, 수동성, 자아의 구조 방치형RPG에 대한 산발적 논의에서 저우쓰위(周思妤)는 이런 게임의 핵심 특징은 “게임 스스로 플레이하게 하는 것” 8) , 즉 플레이어가 최대한 플레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플레이 방식은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반역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촉각 매체 9) 이며, 그 매개적 특수성은 플레이어가 게임 장치와 빈번하고 밀접한 물리적 상호작용(즉, ‘플레이’)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통해 ‘입력 부족과 출력 과잉’ 10) 이라는 비대칭적 장력 속에서 플레이어의 신체적 경험 이상의 정신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우즈창(周志强) 역시 플레이어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게임의 시간(즉, ‘제3시간’)을 진정한 게임 내러티브의 시간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11) 한마디로 말해, 게임을 체험하는 정확한 자세는 최대한 많이 할수록 쾌감을 느끼는 것에 있다. 하지만 방치형RPG의 플레이 방식은 이와 반대인데, 최대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 원리에 호소하고, 이를 통해 역설적인 플레이 방법론을 구축한다. 이런 방법론은 어떻게 성립될까? 게임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서다. 하지만 낮은 수준의 자동화 12) 는 모든 게임의 초석이기 때문에 게임의 자동화를 되풀이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을 거듭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롤플레잉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 내 임의의 위치를 클릭하면 아바타(avatar)가 자동으로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게임 설계가 실패하게 된다. 방치형RPG의 특수성은 자동화가 게임 프로그램의 국부적 자동 연산 및 실행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전반적인 작동 논리를 가리킨다는 것에 있다. 가령 ‘AFK 아레나’는 플레이어가 클릭하는 방식으로 이를 확인하고 추출해야 하는 경우에조차 다양한 자원 혜택을 제공한다. 이는, 표면상 방치형RPG가 수동으로 조작하는 것이지만, 총체적 자동화(이하 ‘자동화’)의 게임 로직이 이러한 조작을 인체공학적으로 편안한 정도에 맞게 압축하고, 플레이어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기존의 많은 게임들에서 노동력을 들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방치형RPG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완전히 자동화된 스크립트 프로그램——모태는 반[反]플레이(counter-play)의 특징을 지닌 전자동 게임 ‘프로그레스 퀘스트(Progress Quest)’——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들의 방치형RPG 개입은 이런 게임들이 여전히 일반적 의미의 게임 '촉매'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합법성을 제공하고, 게임 배급사들이 게임 내 소비 행위(이하 ‘현질’) 13) 를 유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자동화된 게임 로직은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즉, 플레이어는 게임에 참여하지만 알고리즘이 계획한 게임 경로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뿐 게임 경험의 창조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방치형RPG 플레이의 감수성은 능동적인 탐색, 구성 또는 초극이 아니라 항상 수동적이게 된다. 한마디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먹이를 주고, 플레이어는 편안하게 입을 벌리고 게임 시스템의 아낌없는 선물을 웃으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플레이 경험은 방치형 RPG의 대립자 14) 가 어긋나게 놓인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흔히 게임은 “실패의 예술” 15) 로 여겨지는데, 이는 게이머의 진로를 가로막는 다양한 대립자들, 플레이어의 기본 임무인 눈앞의 끝없는 대립자에 반복적으로 도전해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격투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ベガ)’를 할 때에는 마지막 상대인 베가(ベガ)를 이길 때까지 상대에게 한 번씩 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방치형RPG에도 이런 대립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피스 전기M: 스피릿 각성(斗罗大陆:武魂觉醒)’에서 ‘시련의 경계’에 도전했다가 전력 부족으로 패배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게임의 차이점은 대립하는 쌍방(즉, 플레이어와 게임)이 만났을 때 서로 어긋나는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즉, 방치형RPG의 자동화 논리로 인해 막을 수 없는 플레이어는 실제 높은 차원에 배치되고 반대쪽은 낮은 위치에 배치된다. 비록 낮은 단계의 대립자는 일시적으로 플레이어의 전진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자동 전진하는 플레이어를 근본적으로 막거나 좌절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배칭형RPG와 일반 게임의 기본 차이점은 전자가 이론적으로 반대편을 이길 수 없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게이머가 근본적인 ’게임불감증(卡关; 게임을 진행할 수 없는 프로세스)’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치형RPG는 플레이어(이하 ‘방치형 플레이어’)가 게임 속 대립자를 이기기 위해 자신을 고통스럽게 개조할 필요가 없다. 시간함수가 증가해 낮은 단계의 대립자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기를 기다리거나, 현질로 이를 집어삼켜 소비주의의 쾌감과 만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즉, 플레이어가 반대편에 부딪혔을 때 '절대적 부정'을 느끼지 않고, 기껏해야 연속적인 플레이 경험이 끊기는 등 짧은 불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게임에서 현질을 하지 않는 대가일 뿐이다. 절대적 부정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인 액션 포지션이 할당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결 자체가 더는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방치형RPG는 “실패의 예술”의 반명제가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게임에서는 대결하는 쌍방의 움직임과 동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플레이어는 정해진 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플레이어는 역동적인 게임 내 역사적 여정을 구축하는 것에 참여할 수 없으며, 그러한 게임 체험은 자기자신과 게임 프로그램 간 상호작용에서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끝없이 공허한 순환 생성에 빠뜨릴 뿐이다. 따라서 방치형RPG는 기존 게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게임들에도 다양한 전투의 순간이 가득하지만, 그것의 역사적 여정은 다른 게임처럼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총력투쟁의 형태로 깊이 있게 추진되지 않는다. 비록 게임의 수치는 끊임없이 증식하고 비대해지지만(hypertrophy), 게임의 여정은 오히려 미리 설정된 알고리즘의 무성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에 가깝다. 단적으로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만, 유저들의 플레이 경험은 영원히 정체된 윤회 상태로 굳어져 ‘역사’는 끝난다. ‘역사의 종언’이 의미하는 것은 방치형RPG를 외형상 적개심으로 가득 찬 용담호혈(龍潭虎穴) 16) 을 날조할 뿐, 실제로는 한없이 순한 수치의 비경 속에 있다. 따라서 게이머들에게 철저하고 고통스러운 투쟁(清算)의 도전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은밀하게 자신의 안전구역으로 퇴행(regression)하라고 유도하고, 보상이란 형태의 게임 시스템이 주는 긍정적인 경험을 기다리고 즐기게 함을 뜻한다. 또한 방치형RPG의 긍정적 체험은 독특한데, 그것은 전통 비디오 게임에서 이중 부정의 간접 형태가 아니라(가령 코나미 게임 ‘콘트라’는 끊임없이 적을 죽이고 게임 내 모든 부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무효화한다), 오히려 게임의 알고리즘에 의해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통쾌함의 형태로 아낌없이 주어진다. 예컨대 ‘AFK 아레나’의 플레이어는 ‘키보드에서 손을 빼’ 17) 직접적으로 120분의 AFK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방치형 플레이어는 진정한 게임의 주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부정적 능력만이 진정으로 게이머의 주체적 위치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주는 긍정적 경험만을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은 추상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개성이 없는 게임의 종속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와 게임의 대립 구도에서 플레이어의 주체성을 논하는 게 아니다. 게임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플레이어와 자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게임들에서 플레이어는 몹을 향한 공격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힘겨루기를 구성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쾌락 구조에서 자신을 능동적인(향락적인) 행동 주체로 만든다. 이 행동의 주체는 사고와 신체의 측면에서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만 게임에서 승리(예를 들어, 게임 중의 상대를 이기는 것)할 수 있고, 게임의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방치형RPG는 앞서 언급한 이중 부정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 시스템의 포획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을 게임 쾌락을 즐기는 능동적 행동 주체로 만들 수 없고, 자아에 대한 최후의 절제를 포기하고 게임 시스템에 자신을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적극적 자유를 얻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방치형 플레이어는 게임의 호의를 행복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주체적인 자기결정 구조를 상실한다. 그/그녀(플레이어)는 게임과 쾌감에 의해 완전히 지배될 뿐,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방치형RPG의 무대에서 서서히 펼쳐지고 있음을 사실을 불현듯 발견하게 된다. 2. 부성의 절대권력 방치형RPG는 게임의 역설을 재구성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게임 장르처럼) 부정적 매체 18) (혹은 죽음의 매체)가 아니라, 긍정적 매체(혹은 삶의 매체)이다. 게이머들은 주로 게임 속에서 AFK 19) 형식으로 자동으로 생성되는 대량의 자원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앉아서 즐긴다. 게이머들에게 항상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이 게임은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다른 이념적 전략을 사용하는데, 경계에 있는 상처를 달래는 진혼곡을 부드럽게 읊조리며 ‘알고리즘 모성’이라고 할 수 있는 치유적 환각을 만들어낸다. 알고리즘 모성의 무조건적인 보살핌 아래 플레이어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 보상 등 위로의 형태로 긍정적 경험을 즐길 수 있으며, ‘수동적 자동 만족’에 기반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 모성은 플레이어의 본능적인 욕망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행복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이 의심스러운 유토피아에서 플레이어의 욕망과 쾌감 사이의 장력은 긍정적인 경험의 자동 증식으로 인해 크게 붕괴되었지만 쾌감의 대량 증식은 여전히 알고리즘의 모성과 그들이 구축한 세계의 선의에 사로잡혀 매혹된다. 여기서 알고리즘적 모성은 플레이어에게 본능적 욕구를 억제할 필요가 없는 행복한 유토피아를 열어준다. 이 의심스러운 유토피아에서 플레이어의 욕망과 쾌감 사이의 장력은 긍정적인 경험의 자동 증식에 의해 크게 붕괴된다. 하지만 쾌감의 대량 증식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알고리즘의 모성과 그것이 구축한 세계의 선의에 사로잡혀 매혹되게 한다. 이처럼 방치형RPG를 이해하는 열쇠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의 모성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모성은 게임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며, 이를 논의하기 전에 방치형RPG 속 절대권력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다는 근거, 즉 게임의 주권적 힘(sovereign power)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내 절대권력은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 대한 절대적 관할권을 의미하며, 그 물질적 기반은 절차상의 출처(procedural authorship) 20) 이다. 그것의 관찰 가능한 형태(동시에 극치의 형태)는 곧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 대한 생사여탈 권한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부정적 매체이기 때문에, 게임의 절대권력은 게이머들에게 주로 ‘죽음’의 관상을 보여주며, ‘죽음’(즉, 철저한 부정)의 의제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핵심 관심사는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 피해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죽음’은 새로운 예술로서 게임을 이해하는 학문적 출발점이 됐고,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와 요시다 히로시(吉田寬) 등 일본 학자들은 ‘죽음’을 주제로 ‘게임 리얼리즘(ゲームのリアリズム)’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21) 물론 게임 내 모든 죽음을 절대권력의 소행으로 명확히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스템 운영(system operation)과 단위 운영(system operation)에 대한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의 주장 22) 은 절대권력은 완전하고 선형적이며 정상적인 시스템 운영에서 나타나며 단위 운영의 절대권력은 분리되고(discrete) 불연속적이며 역동적인 단위 및 그 관계에 의해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를 플레이할 때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마리오가 땅의 갈라진 틈으로 떨어져 “사망/낙하”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시스템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며, 이러한 죽음의 방식에서 게임 시스템/규칙에 해당하는 절대권력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마리오 형제가 굼바(クリボー)와 같은 적을 건드려서 죽으면 플레이어는 단일 작전으로 인식한다. 절대권력의 관할권은 유닛 뒤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타자를 이길 수 없다는 우발적 경험이 항상 플레이어의 필연적인 절대권력 인식보다 우선한다. 물론 때때로 시스템 작동과 장치 작동이 임계점까지 당겨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RPG 게임은 스토리상의 필요에 의해 갑자기 게임 플레이어가 상대 캐릭터에게 패배하도록 강제하지만, 게임 스토리는 종료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캐릭터와 절대권력의 일시적 중첩 상태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종종 게임이 예외상태(또는 플레이어가 ‘무적’ 상태에 진입했음을 뜻함)에 있음을 나타낸다. 절대권력은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마리오가 땅의 갈라진 틈에 빠지는 경우처럼) 항상 수동적이고 게임 배경에 숨겨져 있다. 플레이어와 능동적으로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막 통과하려고 할 때, 즉 게임 보스 23) 의 형태를 취하고 플레이어의 경로를 차단할 때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절대권력은 언제나 ‘제3자의 심급’ 24) 이란 위치에 놓이게 되며, ‘통제와 자유’ 25) 라는 게임의 절차적 변증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끝판왕을 물리치는 것뿐이다. 푸코와 아감본의 표현 26) 을 빌리자면, 절대권력은 형식적으로 고대 가부장적 권력(patria potestas)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플레이는 모두 플레이어가 아바타 보스를 찾아 죽일 수 있는 최고의 권한만 갖는 ‘부친 살해’(弑父)의 구조 27) 로 이뤄져 있다. 현실의 외부(동시에 게임의 내부)에 취약하지만 완전히 환상적인 현실을 구축해야만 ‘부친 살해’ 게임을 통해 끝없는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미지’의 결말에 갇히게 된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이 상황이 흔들렸다. 최근 성공한 인기 게임 장르의 중요한 특징은 게임 속 절대권력이 끊임없이 전면에 등장해 플레이어의 ‘아버지 살해’ 수단과 감각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슈팅(逃殺, 도살) 28) 게임은 ‘축권(縮圈)’ 메커니즘을 절대권력의 화신으로 삼아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 사이에 배제적으로 삽입된 도살 관계를 구축한다. 절대권력은 “칼을 든” 죽음 정치의 살벌한 모습으로 게임 전면에 내세워 게이머들을 수색하고, 프로그램화된 레토릭(procedural rhetoric) 29) 의 형태로 게이머들에게 부정적인 칙령을 내린다. 게이머들은 그 권위를 존중하되 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절대권력은 강력하게 감지되고-떠다니며-편재되는 방식으로 게이머들에게 능동적으로 배출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추상의 형상이다. 즉, 죽이거나 도전받지 않으며, 오직 당신의 복종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모습의 절대권력은 동시대 게임 역사의 상상력이자 사회적 상상력의 전환을 지향한다. 그러니까 관문 마지막마다 숨어 있어 죽여야 하는 특정 보스(그들은 게임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메타 스토리와 스토리의 임계점에 있다)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죽일 수 없는 추상적 존재로 반복된다. 이 때문에 게이머가 보스의 위치를 파악해 죽임으로써 게임 시스템/사회 현실을 초극하는 상징적 질서는 무력화된다. 따라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서사층 내에서 자동 증식하는 게이머들 사이의 ‘작은 이야기(小さな物語)’의 싸움에 갇히고, 게임의 메타서사층에 존재하는 게이머와 게임 시스템 간 ‘거대한 이야기’는 돌파하지 못해 비정치적이고 퇴화하는 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비관적인 사회적 상상력이다. (상호텍스트화된) 게임의 세계를 뒤흔드는 통섭적인 기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추상화되고 만연해진 부권적 절대권력의 칙령에 게이머들이 끊임없이 에피소드 간 ‘생사’의 윤회에 뛰어오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경쟁(즉, 상호경쟁)으로는 총체적 게임/현실 딜레마를 벗어날 해결책과 초월적 쾌감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역사’는 영원히 공전하는 챗바퀴처럼 “지금-여기”에서 종결될 뿐이다. 3. ‘모성적 디스토피아’ 방치형RPG 역시 이 비관적인 사회적 상상력에 휩싸여 탄생한 게임 장르다. 절대권력은 늘 전면에 나서지만 상징 질서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사람을 살게 하는 부성적 절대권력이 아니라, 권력기술로 하여금 직접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모성적인 빛을 발하는 권력기술로, 그것의 상징물은 죽음의 ‘검’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모태’다. 이는 곧 앞서 언급한 절대권력에 관한 논의를 갱신해야, 비로소 방치형RPG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와 그 은유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이해할 수 있음을 뜻한다. 푸코와 아감벤은 모두 절대권력의 전형적인 특권 중 하나가 생살여탈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푸코의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들과 아감벤의 수용소에 갇힌 호모사케르는 형벌을 단지 형벌받는 환경——죽음의 위협 속에 던져진다는 뜻——에서 절대권력이 그들에게 휘두르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두려워 하고 있을 뿐이다. 방치형RPG는 완전히 반대다. 그것은 게이머를 긍정적 경험이 생산되고 흐르는 모태(즉, ‘긍정사회’) 30) 에 두고, 그들이 갈망하는 다양한 성장 자원을 자동으로 제공한다. 그들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위협도 가하지 않고, 다만 그/그녀를 정성껏 보살피고 만족시켜 줄 뿐이다. 태아들은 부정적인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태내에서 오는 긍정적 경험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일 수 있다. 한마디로 방치형RPG는 우노 츠네히로의 이른바 타카하시 루미코(高桥留美子) 31) 식 부권 억압(부정성 체험)이 없는 ‘낙원’, 즉 “물질만 있을 뿐 스토리텔링 32) 은 없”는 욕망의 공간을 만든다. 이 낙원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체험은 모두 제거되고, 게이머는 게임에서 실질적인 실패를 겪지 않는다. 기껏해야 욕구 충족의 지연을 직면할 뿐이다. 가령 ‘마법거울의 전설’의 게이머들은 중심 스토리의 자동 전투에 패배한 후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아닌 휴식 중이던 자의식이 ‘실패'라는 우발적 사건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는 걸 경험한다. [자의식이] 활성화되면 그들은 두뇌를 조금 사용해 다음을 선택해야 한다. 1) 기존 캐릭터와 소품의 구성 체계를 최적화해 시행착오를 겪고 확실한 자동 전투에 재투자한다; 2) 전쟁 전력을 즉시 높이고 자동 전투를 충족하기 위해 현질을 한다. 3) 현질 충동이 없다면 잠시 서브 스토리로 주의를 돌리고, 시간이 흘러 전투력이 자동으로 증가하면 메인 퀘스트에 계속 도전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게이머는 게임 프로그램의 대립자를 위해 배척되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를 경험한 취약한 순간에 모성의 절대권력에 안겨 그것과 조화 및 동일화되면서 재기한 후의 필연적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헤겔식]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면, 방치형RPG에서는 긍정적 경험치가 끊임없이 자동 증가하기 때문에 게임 시스템에 대한 순종은 합리적 플레이 태도가 된다. [이 상황에서] 노예인 게이머는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므로, 자비로운 주인 편에 서서 더 유순해지고 일방적 상황에 순종적으로 빠져든다. 이 일방향적이고 사유하지 않는(thoughtless) 게이머들은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게임의 '좋은' 사실만 무분별하게 경험한다. 따라서 방치형RPG의 부정성과 비판성, 초월성, 그리고 절대권력은 결코 확립된 적이 없기 때문에, 매직사이클(magic cycle) 33) 이 부여한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게임의 쾌락과 현실에 대한 욕구가 자동 충족되는 방식으로 즐긴다. 분명히도 방치형RPG는 절대권력에 대한 게이머의 경계가 완전히 해제되어 게이머에게 반역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이는 게임이 직면하게 되는 안티게임의 메커니즘을 근절할 뿐만 아니라, 게이머의 안티게임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소모했기 때문이다. 게이머의 모든 욕구를 부드럽게 충족시켜주는 방치형RPG는 게이머와 게임 간의 적대 관계를 시간함수에 따른 희소성과 만족감이라는 비적대적 공식으로 전환해버린다. 그렇기에 게이머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언제 실현될지, 어떻게 하면 그 실현을 가속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된다. 이는 게이머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형성하고도 다른 게임처럼 안티게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방치형 RPG의 장점이다. 누가 자신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장난기 많은(게임) 어머니를 원망하고 반항하겠는가? 그러나 방치형RPG라고 해서 앞서 말한 잔혹한 슈팅게임의 안티테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동일한 사회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상반된 게임 해결법일 뿐이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네이쥐안’ 사회——장기간의 고성장 이후 GDP 성장률이 실질적인 둔화기로 접어든 사회경제적 상황——의 가부장적 절대권력(즉, 슈팅게임)에 맞서 강경한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더라도, 그리고 네이쥐안이 마땅히 벗어나고 비판해야 할 잘못된 사회 상태라고 믿더라도, '게이머'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결단력' 34) 을 갖고 잔인한 '사회/게임'(즉 신자유주의적 사회 경쟁)에 적극 참여하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탈출을 택하거나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를 말할 수 있는 사회적/심리적 공간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방치형RPG 속 절대권력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모성의 우산을 씌워주며, 긍정적인 게임 체험 쪽으로 끊임없이 속삭인다. “얘야, 넌 정말 대단해! 멋져! 내가 해결해줄게...” 다시 말해, 이런 유형의 게임은 게이머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방어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게이머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35) 게임/사회에서 스스로를 완전하게 폐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노 츠네히로의 말처럼 이것은 모성의 유토피아보다는 모성의 디스토피아(母性のディストピア)일 수 있다. 후자는 우노 츠네히로가 아즈마 히로키의 미연시 게임 장르에 대한 비평에서 도입한 개념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서 발전한 독특한 서브컬쳐의 상상력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국가를 국가의 ‘아버지’로 의인화하며, 국민의 성숙은 그들이 국가 안에서 가부장제적 아버지 36) 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드래곤 퀘스트(ドラゴンクエスト)’와 ‘젤다의 전설(ゼルダの伝說)’ 등 일본의 국민게임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이 공주를 구하는 서사는 얼핏 보면 사랑 이야기지만, 게이머가 공주를 구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성숙(즉, 주인공에서 아버지가 되는 것)을 이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패전국 일본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은 승전국 미국에 의해 실추된 일본 아버지가 아니라, 태내부터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섬의 어머니일 수 있다는 역설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드러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표면적인 게임 내용만 보면 위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공주를 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층적인 문예 심리를 살펴보면 게이머가 공주의 인정을 받아야만 자신의 성숙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구출된 공주는 대문자 어머니가 되고, 게임을 클리어한 게이머는 아버지가 되지만, 대문자 어머니에 의지해 성숙해지는 왜소한 아버지다. 모성적 디스토피아는 대문자 어머니가 왜소한 아버지를 키운다는 전후 일본의 상상력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노 츠네히로는 모성적 디스토피아가 전후 일본에 한정된 특수한 상상력에서 인터넷 환경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상상력으로 진화했다며 그것의 설명 37) 을 확장해왔다. 인터넷 사회는 자녀(즉, 인터넷 사용자)를 정보 고치(즉, 태아)에 던져 넣고 모든 소음을 제거한 후,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모든 정보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계속 제공하는 사회이다. 그것은 모성적 유토피아에 대한 자기 망상을 부풀린다. 이 같은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모성의 디스토피아'는 발전된 개념이다. 우노 츠네히로의 연구 시야에는 중국 사회나 방치형RPG가 있지 않지만, 모성의 디스토피아의 통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왜 이런 게임을 유토피아가 아닌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첫째로는 우노 츠네히로의 이른바 ‘모성적 폭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치형RPG에서 모성적 폭력은 배제된 폭력이다. 그것은 게이머를 태아 속에 완전히 가두고, 온정적으로 그를 위해 태아 내의 모든 실질적 대립을 배제한다. 동시에 그것은 게이머의 성장을 촉진하는 부정성과 이질성도 배제한다. 이로 인해 그들을 편안한 자기 망상 속에 끊임없이 팽창시키도록 이끈다. 둘째, 일체화의 폭력, 즉 상술한 배제성으로 인해 게이머는 대립자(가령 방치형RPG의 다양한 몹)에게서 어떤 공고화된 타자성(Andersheit)이나 낯섦(Fremdheit)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의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통합(Gleichschaltung)되는 과정 자체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성적 폭력은 결국 긍정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런 폭력은 게이머를 자신의 반대편으로 배척하지 않고 흡수한다. 과보호하는 방식으로 약화시키고 마비시켜 결국 게이머를 포획한다. 현실과 정반대인 알고리즘의 모성애에 취한 플레이어는 더욱 유순해지고 ‘투지’를 잃게 된다. 한마디로 모성폭력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형태로 자아의 궁극적 성숙을 회피하고 어머니의 자궁에 사는 형태로 순수한 자기 망상의 삶을 살게 한다. 여기서 방치형RPG는 현실의 고민과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소마(soma)를 만든다. 그러나 이 약물은 단순한 쾌감 논리가 아닌 복잡한 보상 메커니즘에 호소하며, 직접적인 욕구 충족 회로가 아닌 현실의 영역에서 게이머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이는 방치형RPG가 일종의 왜곡된 게임 쾌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게이머들이 실재계의 상처받은 경험(예를 들어 현실이 허락했음에도 실현되지 않는 개인의 성공)에 다시 끌려들어가는 단순한 쾌감구조가 아니라, 게임은 세계를 상징하는 심벌로 자신을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치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 뱃속에서 반은 깨어 있고 반은 꿈을 꾸고 있는 플레이어는 여전히 현실의 맥락에 던져진 육체를 갖고 있지만, 현실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게이머는 게임이라는 21세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계를 통한 철저한 사회적 성숙을 새삼 갈망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방치형RPG는 게임 내에서 현실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재구성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갓스 커넥션은 레벨링, 랭킹, 전투 목록, 길드 전쟁과 같은 사회적 경쟁의 원리를 모방한 게임 내 메커니즘을 설정한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방치형RPG가 현실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게임 안에서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갓니스 커넥트(Goddess Connect)’는 게임 내에서 등급, 순위, 차트, 길드전 등 사회적 경쟁원리를 모방한 메커니즘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알고리즘의 모성에 대항할 만큼 충분히 높은 가부장제적 권력을 실제 게임에서 소환하는 게 아니다. ‘오래된 게임 세계’의 상징적 질서에 대한 기념비 역할을 하며, 게이머에게 그들의 실재계 외상을 보다 명확하게 표시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효율적으로 자신을 자위할 수 있도록 한다. 우노 츠네히로의 논지로 돌아가 보자. 이러한 메커니즘은 알고리즘적 모성(즉, 대문자 어머니)을 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플레이어를 방치형RPG로 끌어들이는 인프라가 되며, 나아가 ‘깨어 있는’ 플레이어가 현실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필요가 없도록 하는 모성적 디스토피아의 논리에서 왜소한 아버지를 소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방치형RPG의 꿈 만들기 기능을 강화하고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4. 게임 자본가의 환상 알고리즘의 모성적 위안 아래에서 플레이어는 방치형RPG를 플레이할 때 항상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게임에서처럼 과로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의 계획(프로젝트)과 전반적인 컨트롤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한 영역에 있는 한, “근육과 뼈를 다치지 않고”(즉, 가급적 플레이하지 않으며) 가끔씩 명령을 내려 게임의 자동 수익과 최고의 경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치형RPG는 완벽한 자아에 대한 신화를 허구화하고, 그러한 자아에 대한 플레이어의 상상과 경험을 충족시키는 꿈나라와 같은 현실 미러링 게임이다. 유희 자본주의(ludocapitalism)의 비판적 틀을 통해 이러한 게임들을 살펴보면, 방치형 플레이어는 여전히도 운영 수준에서 플레이버(playbour)——이러한 유형의 게임은 결국 플레이어를 조작하도록 유도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손쉬운 조작과 자동 증식 혜택은 기존 게임과는 다른 ‘게임 관리자’라는 아이덴티티 이미지를 심어줬다. 루도자본주의의 비판적 틀 안에서 이러한 게임을 계속 살펴보면, 방치형 플레이어는 여전히 운영 수준에서 플레이버로 이해할 수 있지만 - 결국 이러한 게임은 플레이어를 운영하도록 초대한다 - 과도한 노력과 수익의 자동 생성은 이전 게임과는 다른 정체성, 즉 다른 유형의 게임에 비해 '게임 매니저'라는 상상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운영의 과도한 용이성과 수익의 자동 증식은 이전 게임과는 다른 정체성, 즉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비교하여 '블루칼라'가 아닌 '블루칼라' 플레이어인 '게임 매니저'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게임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달리, 이들은 단순히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화이트칼라' 또는 '골드칼라' 플레이어로 인식하게 됐다.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게임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달리, 단순히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화이트칼라' 또는 '골드칼라' 플레이어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게임 관리자는 기업가적 주체의 자기 망상이지만, 지난 10년간 국내 주류 게임에 존재했던 자기 망상(예: 멀티플레이 온라인 전략게임의 ‘경제인’과 슈팅게임의 ‘성인’)과는 다르다. 게이머는 한편으로 ‘기업’, 즉 게이머 사이에 존재하는 잔인한 외부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일체의 외부적인 기업 위험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받는다. 대신 게이머는 조직의 내부 업무로 편안하게 돌아가 보람 있는 게임 자산 관리(예: 카드 뽑기, 카드 조합, 캐릭터 업그레이드 등)를 즐기고 조직의 모든 것이 “자신”의 뜻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는 높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38) 다른 한편 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 관리자의 이미지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자동화된 게임 로직 덕분에 방치형RPG는 플레이어의 끝없는 자기 착취 39) 를 자동화된 ‘알고리즘 노동’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한다. 플레이어는 성가신 게임 조작, 전투 전략, 팀워크 및 기타 사소한 퀴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직의 미래를 계획하고 이끌며, 자동으로 배가되는 자원을 받고, ‘게임 자본가’에 속하는 행복한 즐거움을 누릴 준비를 하면 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콘텐츠 외적인 부분까지 보면 게임 관리자는 게임 인터페이스 내의 가상의 정체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게임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관리한다. 방치형RPG의 자동화된 플레이는 플레이어를 게임 시간에 따른 현실의 혼잡함에서 사실상 해방시켜 게임 작업과 현실 업무를 함께 실현하고, 게임 시간을 현실 시스템에 완전하고 매끄럽게 통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히어로즈(Idle Heroes)’의 많은 게이머들은 직장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게임을 켜고 게임 콘텐츠를 빠르게 관리한 후, 자동으로 게임이 계속되게 한다. 방치형RPG의 인기는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의 비합리성의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합리성에 대한 은유적인 자기 참조가 된다. 게임 관리자라는 상상된 정체성을 인식함으로써, 방치형RPG를 둘러싼 역설, 즉 방치형RPG의 기본 논리가 놀이의 영역에서 "최대한 많이 플레이하라"에서 "플레이하지 않으려 노력하라"로 역설적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적게 플레이하라"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상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회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21세기(즉, 중국에서 그래픽 네트워크 게임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이후) 들어 그것[게이머의 정체성]은 게임 노동자에서 게임 관리자로 변모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신을 게임 내 자산 소유자로 간주하고, 자동 증식하는 캐릭터, 장비, 소품, 화폐 등 개인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의 포트폴리오와 리스크를 신중하게 최적화하여 게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동 전투에 참여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기 착취를 위해 '미친 이성'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처럼 '제스처'와 '지시'를 통해 '알고리즘 노동자'가 자신의 명령을 자동 수행하도록 감독하고 규제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기 착취를 위해 '미친 이성'을 고수할 필요가 없으며, 대신 기업주처럼 '제스처'를 취하고 '지시'하며 '알고리즘 작업자'가 자동으로 명령을 수행하도록 감독하고 규제한다. 이러한 게임 경험은 현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새로운 부유층에게만 허락된 '성공한 사람' 40) 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방치형RPG의 매니지먼트는 위선적이다. 관리 경로는 이미 정의되어 있고, 게임 프로그램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무수히 많은 전략/전술 아이디어에 두뇌를 동원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게임 알고리즘과 연산에 많은 부담을 주고 게임 디자인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가끔씩 자동 조종으로 실행되는 사업을 점검하고 게임의 정해진 경로를 따르도록 초대될 뿐, 게임의 내부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삼국지(三国志) 시리즈’와 같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교하면 이러한 장르의 게임은 관리 측면에서 위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삼국지’에서는 플레이어가 도시의 내정을 관리해야 하며,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잘못된 관리로 인해 컴퓨터 상대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방치형RPG에선 그런 걱정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알고리즘 모성은 게임의 모든 상대를 다운그레이드하여 플레이어가 잘못된 관리의 결과를 겪을 필요가 없고, 자산 관리의 자동 증식만 즐길 수 있다. 즉, 방치형RPG의 관리자는 매니지먼트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이에 수반되는 '관리자의 상상력'은 자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려는 플레이어의 실제 욕망을 효과적으로 채워준다. 아즈마 히로키가 분석한 미연시 게임과 같은 정체성에 대한 상상은 현실의 압도적인 무력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며 41) , 이는 방치형 플레이어에게는 간절히 갈망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부족한 무언가임이 분명하다. 상술한 관리자적 상상의 위선은 또한 "사고"의 정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방치형RPG는 일반적으로 산술적인 텍스트 42) 이기 때문에, 여기서 사고하는 것은 “복잡한 사고의 탐구 활동”이 아닌 플레이어가 알고리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단순한 ‘계산’으로 축소된다. 가령 게임 내에서 가장 높은 전투력을 달성하기 위해 캐릭터를 조합하는 방법을 계산한다던지 말이다. 하지만 방치형RPG의 자동화 로직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더 이상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관리의 만족'이라는 원칙에 따라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방치형RPG의 본질적 매력은 플레이어가 과도한 게임 플레이 노동을 피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거의 제로 비용으로 높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모성의 폭력이 다시 폭력화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게임 개발자와 운영자는 수익을 내기 위해 플레이어를 게임에서 '이탈'시켜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방치형RPG가 제공하는 긍정적 경험에 계속 몰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잠시 게임을 떠나 알고리즘 모성의 다음 자동 위로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위로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위로의 간격은 절대적으로 연장된다. 이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형태의 폭력이며, 강압적으로 연속성을 중단하는 것에 의존한다. 알고리즘 모성의 편안함에 빠져 있는 방치형 플레이어에게, 방해받지 않고 즐기는 긍정적인 경험에서 갑자기 철수하는 것은 부정적이지 않은 부정성으로 간주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비부정적 부정성은 게임 전반에 대한 직접적인 부정보다 더 고통스럽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결핍감이 아니라, '얻었지만 또 잃었다'는 상실감을 지향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트라우마 위에 소금을 한 움큼 더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5. 결론 한마디로 방치형RPG게임은 한병철이 말한 ‘권태사회’ 43) 의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권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플레이어를 비관적인 자기착취 사회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그들은 게임에서 자신을 다른 플레이어와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순수하게 효율화된 형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인기를 구가하는 MMO슈팅게임 게이머들과 달리, 이(방치형RPG) 게이머들은 ‘공포’가 아닌 편안한 ‘퇴화’의 상태에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참여(어쩌면 자발적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하고, 게임에서의 다양한 경쟁 메커니즘과 그 이면의 사회적 상상력을 즐긴다(jouissance). 44) 다른 한편에서 이 ‘기계적 육체로서의’ 게이머는 정신적인 소모로 인한 자아 붕괴를 피하기 위해 방치형RPG 같은 자동/수동형 플레이 방식으로 알고리즘 모성에게 자신을 양보하는 걸 선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게이머는 자신을 관리자로 상상하고 새로운 자아실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자아실천이 직면한 것은 매우 판이하면서도 현실 이데올로기가 약속한 긍정적 경험을 게이머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며, 모성적 광휘를 발하는 절대권력(즉, 모성적 디스토피아)이다. 이 모성적 절대권력은 한편으론 게이머의 실재적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에게 도망칠 수 없는 모성 폭력을 가한다. 나아가 게임 자본주의와 공조해 게이머를 부정적이지 않은 부정성의 위협에 노출시킨다. 이를 통해 방치형RPG는 겉으론 무한히 부드러운 수치 선경이 되지만, 오히려 실제로는 비디오 게임 세대 45) 가 은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릉도원이 아니며며, 여전히 초극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자동으로 연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라는 게임의 시대에 우리는 진정으로 초월적인 게임 장르를 모색해야 한다. 1) 본문은 중국 국가사회과학기금의 주요 프로젝트인 '가상현실 미디어 스토리텔링 연구'와 상하이 철학사회과학기금 청년 프로젝트인 '융미디어 맥락에서 e스포츠 이미지 구축 및 가치 혁신 연구'의 결과물로, <문예연구 文艺研究>지 2023년 10호에 발표됐다. 2) 영어권에서는 클리커 게임(clicker games) 또는 성장 게임(incremental games)으로 불린다. 3) ‘推图(퉤이투)’에서 ‘图(투)’는 게임 속 ‘맵’을 의미하고, ‘퉤이’는 게임의 주요한 줄거리를 ‘클리어’하는 걸 뜻한다. 즉 ‘맵밀기’는 플레이어가 줄거리를 클리어하기 위해 두뇌를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가리킨다. 4) 여기서 '스킨 교체'는 게임의 핵심 플레이방식을 바꾸지 않고 시청각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게임을 새로운 게임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5) 오츠카 에이지, 『物語消費論:ビックリマンの神話学(이야기 소비론)』, 新曜社, 1989년, 10~24페이지. 오츠카 에이지는 서브컬처의 설정과 세계관을 거대한 이야기(大きな物語)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大きな物語'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중국어로의 번역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저우즈창(周志强)은 이 개념을 서양의 'big story' 이론을 차용하기보다는 'grand narrative'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우즈창, 『游戏现实主义:“第三时间”与多异性时刻(게임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중 이질성의 순간")』, 南京社会科学, 3호, 2023년 참조). 이 논문에서는 저우즈창의 관점을 채택했다. 6) 일본 서브컬처 연구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오츠카 에이지의 '거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비이야기(大きな非物語)'로 발전시켰고, 우노 츠네히로는 후자를 '거대 게임(大游戏)'으로 확장시켰다. '거대한 비이야기'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小さな物語) 뒤에 존재하는 스토리텔링이 없는 거대한 정보 모음(즉, '데이터베이스')을 의미한다. 아즈마 히로키, “動動化するポストモダン: オタクから見た日本社会”, Shogun, 2001, 62쪽을 참조하라. “반면 '거대 게임'은 거대한 비이야기의 정적 구조 속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상호작용하는 동적 구조를 강조한다” (우노 츠네히로, 『마터니티のディストピアⅠContact』, 하야카와쇼텐, 2019년, 112쪽). 7)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의 디스토피아: 접촉편)』,83페이지 8) 저우쓰위, 리용(李勇), 《“让游戏自己玩”:방치형 게임与超级自我(게임 스스로 플레이하게 하라: 방치형 게임과 초자아)》,《南京社会科学(난징사회과학)》, 2023년, 제3기. 9) 中島誠一『触覚メディア——TV ゲームに学べ!次世代メディア成功の鍵はここにあった(촉각 미디어--TV 게임에 배우라! 차세대 미디어 성공의 열쇠는 여기에 있었다)』(株式会社インプレス주식회사 임프레스,1999年)145페이지. 10) ‘입력 결핍’이란 게임 플레이 행위가 게임 화면 외부에서 게임 입력 장치를 조작하는 물리적 행위에 불과하고 그 상징적 의미가 빈곤한 것을 말한다. ‘과잉 산출’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자신의 신체적 행위를 통해 게임 화면 내에서 상징적 의미의 구체적 확장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게임의 입력 장치를 조작하여 삼국지 게임 속 조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조조를 통해 중국 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 그/그녀는 단순히 게임의 입력 장치를 조작하고 있을 뿐이다. 마츠모토 켄타로 『ゲームのなームのなかで、人はいかにして「曹操」になるのか: 「體験の創出装置」として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 (마츠모토 켄타로, 왕이란, 편역, 『일중문화토라 ナショナルコミュニケション: コンテンツ・メディア・歴歴歴歴部・社会』ナナニーシヤ 출판, 2021) 107페이지를 참조하라. 11) 저우즈창, 상동 12)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처린(车琳) 옮김, 贵州人民出版社(구이저우인민출판사), 2020년판, 32쪽. 13) [역주] 원문의 ‘커진(氪金)’은 직역하면 ‘크림톤'과 ‘돈'을 뜻하지만, 중국 온라인 게임에서는 현질을 가리킨다. 14) [역주] 원문의 ‘对立面’(대립면/대립자)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모순의 통일(상호의존과 상호투쟁)을 가리킨다. 15) Jesper Juul, 《失败的艺术:探索电子游戏中的挫败感(실패의 기술: 비디오 게임에서의 좌절 탐구)》,杨子杵、杨建明 옮김, 베이징이공대학출판사, 2019년판, 130페이지. 16 ) [역주] 고사성어 용담호혈은 ‘지세가 매우 험준한 곳’을 뜻한다. 17 ) [역주] 원문의 ‘쾌속괘기(快速挂机)’는 ‘AFK(away from keyboard)’를 지칭한다. 18 ) 姜宇辉(장위후이), 《数字仙境或冷酷尽头:重思电子游戏的时间性(디지털 원더랜드 또는 콜드 엔드: 비디오 게임의 시간성에 대한 재고)》,《文艺研究(문예연구)》, 2021년 제8기. 19 )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않아도 프로그램 스크립트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게임을 가리킨다. 20 ) Janet H. Murray(자넷 H. 머레이,),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햄릿: 사이버 공간에서 내러티브의 미래), New York, London, Toronto, Sydney, Singapore: The Free Press, 1997, p. 143. 21 ) 요시다 히로시, 《游戏中的死亡意味着什么?——再访“游戏现实主义”问题(게임에서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게임 리얼리즘' 문제 재조명")》,《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日本游戏批评文选(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비평선집)》,邓剑编译(덩지안 편역),上海书店出版社(상하이서점출판사), 2020년판, 237~273쪽. 22 ) Ian Bogost, Unit Operations: An Approach to Videogame Criticism,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06, pp. 3-4. 23 ) 보스는 반드시 특정 캐릭터일 필요는 없으며, 캐릭터가 아닌 상태로 설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의 게임 패스 목표를 설정하는 시뮬레이션 건설 게임도 게임 보스로 해석할 수 있다. 24 ) '타자의 계층'이라는 개념은 오사와 마사유키가 '초월적 타자'라고 부르는 것을 언급하며 제안한 개념이다. 오사와 마사유키, "오타쿠 이론: 광신주의, 타자성, 정체성", 덩 지안 편저, 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 비평 에세이 선별, 상하이 서점 출판사, 2020년판, 79-116쪽 참조. 오사와는 게임 오타쿠를 포함한 오타쿠의 주체성을 논할 때 지젝의 논지를 인용하여 "개인으로서의 신체를 자기 정체성 있는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은 타자"라는 것이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자와는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를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타자와는 달리 우연적인 '내적 타자'와 상징의 영역에 있는 거대한 타자와는 달리 필연적인 '초월적 타자'로 구분한다.". 인간의 자기 동일화 과정에서 내적 타자는 모방 가능한 이미지로 기능하고, 초월적 타자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결정하는 추상적 규범으로 등장하며(예: 푸코의 감옥 속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 대한 전경, 오사와 마사유키의 『[増補補][増补], 『허구 시대의 열매』(치쿠마쇼보, 2009, 223-224) 참조) 서로 전제하고 있다. 1-3쪽), 상호 배타적인 전제다. 초기 비디오 게임의 버그가 타자 대리현상의 증상이라는 오사와의 관찰에 착안하여, 최고 권력은 게임 보스를 대리인, 즉 게임 전체를 지배하는 '초월적 타자'(즉, 게임 전체를 지배하는 '제3자')로 등장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게임에서 최고의 권력은 보스로 대표되며, 즉 게임의 전체 영역을 통제하는 '초월적 타자'로서(즉, '제3자의 위계'로 기능하는), 플레이어는 보스를 죽임으로써만 게임의 상징적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25 ) 요시다 히로시, 「規則と自由の弁証法としてのゲーム——〈ルールの牢獄〉でいかに自由が可能か?(규칙과 자유의 변증법으로서의 게임--〈규칙의 감옥〉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 『立命館言語文化研究(리츠메이칸 언어문화연구)』, 26권 제26호, 19-27쪽. 26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 제1권 - 인식의 의지』, 셰비핑 옮김, 상하이인민출판사, 2016년판, 113쪽; 아감벤, 『호모사케르: 벌거벗은 삶』, 중앙편집번역출판사, 2016년판, 126쪽. 27 ) 게임 디자인 초기에는 유명한 게임인 제비우스나 후크처럼 '끝'이라는 개념이 없는 반복 게임이 많았다. 이러한 게임에서도 각 레벨이 끝날 무렵에는 흔히 '미니 보스'로 알려진 캐릭터가 해당 레벨의 '아버지'로 등장하곤 했다. 28 ) 서클 수축은 탈출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도망치는 플레이어가 결국 정면으로 맞붙게 될 때까지 게임의 위험 구역이 안전 구역을 계속 집어삼키는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 29 )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10, pp. 1-64. 30 ) 한병철, 《권태사회》, 吴琼(우총) 역, 中信出版社(중신출판사), 2019년, 1~14페이지. 31 ) 다카하시 루미코의 유명한 만화 <후쿠신 키드(うる星やつら)>에 등장하는 모성 공간을 가리킨다. 우노 츠네히로, "ゼロ年代の想像力 야근 시대의 상상력"(하야카와 쇼텐, 2011), 242-252쪽 참조. 32 ) 우노 츠네히로, 『若い読者のためのサブカルチャー論講義録(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아사히신문출판사, 2018년, 91쪽. 일본어 ‘物语’는 ‘故事(이야기)’라는 뜻이다. 33 ) Johan H. Huizinga,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London, Bost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80, p. 10. 34 ) '결단주의'는 우노 츠네히로가 2000년대 초반 일본 서브컬처 작품의 문학적 상상력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제안한 개념이다. 이는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관을 유지할 수 없으며, 특정 가치에 '근본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즉, 히가시 히로키가 말하는 '빅 스토리'를 공유할 충분한 압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거나 선택한다는 전제에서 포스트모던적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특정 가치에 "근본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즉, 히가시 히로키가 큰 이야기를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족하다), 여전히 자신이 믿는 가치를 선택한다(즉,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작은 이야기를 거부하여 미야다이 신지가 '섬 우주'라고 부르는 것을 같은 작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형성한다). 한 마디로 결정론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가치 상대주의가 전면에 등장한 결과로, 결정의 내용과 이유보다 결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노 츠네히로, "초과근무 시대의 상상력", 185쪽 참조. 35 ) 우노 츠네히로, 『遅いインターネット(느린 인터넷)』, 幻冬舎, 2023年, 178페이지. 36 )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 디스토피아 Ⅰ 접촉편)』, 早川書房, 2019年, 35페이지 37 )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 디스토피아 Ⅰ 접촉편)』, 早川書房, 2019年, 318페이지 38 ) 그렇다고 해서 기업/플레이어 간 경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페이트에서는 랭크전, 길드전 등 경쟁 메커니즘이 여전히 소셜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게임의 자동화된 설계로 인해 경쟁의 실패가 외부화되어 플레이어는 실패를 '나' 자체가 아닌 '나' 외부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플레이어는 실패를 '나' 자체가 아닌 '나' 외부에 존재하는 자동화된 과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게임에서의 실패로 인해 심리적으로 파산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정서적 경험도 발생하지 않는다. 요컨대, 플레이어는 게임/비즈니스 경쟁 과정에서 상당히 안전한 위치에 놓인다. 39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宋娀(송송) 역, 中信出版社(중신출판사), 2019년판, 23페이지. 40 ) 王晓明(왕샤오밍), 《半张脸的神话 반쪽 얼굴의 신화》,广西师范大学出版社2003年版,第27—33页。 41 ) 아즈마 히로키, 《萌的本事,止于无能性——以〈AIR〉为中心 모에의 역량, 무능에서 멈추다 - AIR를 중심으로》,덩지엔 편역, 《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日本游戏批评文选 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비평 문선》,214페이지. 42 ) 산술 텍스트는 문학적 텍스트와 달리 알고리즘에 의해 내러티브와 경험이 주도되는 텍스트를 말하며, 배경의 숫자 연산이 전경의 게임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러티브 기법이다. 43 ) 한병철, <권태사회>, 53~61페이지 44 ) Sean Homer, Jacques Laca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05, pp. 89. 45 ) 蓝江(란장), 《宁芙化身体与异托邦:电子游戏世代的存在哲学(몸과 헤테로토피아의 님피: 비디오 게임 세대의 실존 철학)》,《文艺研究(문예연구)》, 2021년 제8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우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onghee Han When the occasion calls for an introduction, says "I study film" for convenience's sake, but self-identifies as a cultural researcher who explores the world through the medium of film. Attends chiefly to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signification, and discourse, and pours affection into all the boundaries of the world—those that endlessly expand, divide, and sometimes overlap. The biggest recent preoccupation: how to make the boundaries between self and not-self, inside and outside, here and there, us and them softer and fainter, so that looser connections become possible.

  •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Back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30 GG Vol. 26. 6. 10. 올해 4월, 와 라는 두 게임이 게이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제목만 보아도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 게임들은 출시 전부터 리뷰어들과 게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게임을 해본 기자들은 개신교, 불교, 가톨릭 등 자신의 종교적 배경을 밝히며 이 게임의 의의와 한계를 이야기했다. 사실 종교적 소재가 게임에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종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IP이기에, 종교의 세계관과 인물, 서사는 게임으로 다루기 좋은 소재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도 기독교의 천사와 악마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차용했고, <신들의 전쟁(Fight of Gods)>처럼 본격적으로 신을 등장시킨 게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두 게임이 이슈가 된 것은 게임이 예수의 실제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이점 때문이다. 두 게임은 예수를 모티브 삼거나 하나의 IP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1] 에 나오는 그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을 게임 안에서 플레이로 재현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니, 그 전에 근본적으로 게임은 행위성(agency)을 중시하고, 성서는 전개와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 가능한가? 스스로를 종교연구자이자 게임연구자로 정체화하는 나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종교의 게임성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낙뎀을 받기 위해 높은 지형에서 점프하고 있는 예수 이 질문은 종교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중요하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온전한 신성을 가진 신으로 규정되었지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양성론(兩性論), 즉 온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라고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고증하고자 했다면, 예수는 낙뎀을 받아야 했다. 데미지를 수치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이 게임이 추구하는 자유도의 한계가 체감되었다는 점이다. 신성한 예수의 생애를 따라가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낙하 데미지는 불필요한 기능일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증명하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눌렀지만 예수는 그 흔한 펀치조차 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성서는 너무 유명한 IP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문자(성서)로도, 음성(설교/강론)으로도, 영화와 드라마로도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면 제작자는 성서를 굳이 게임으로 만들었을 때 뭔가 다른 경험을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게임성’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려면 너무 많은 학술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져야 하겠지만,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 지점에서 콘텐츠와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행위성을 기대했다. 한 점 한 획도 건드릴 수 없는 완전무오한 성서의 텍스트이지만, 게임으로 재현한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게임 모두 [2] 그러한 자유도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으로의 특수성을 발견한 부분은 자유도가 아닌 다른 영역이었다. 캐릭터의 자유도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의아하게도 는 오픈월드 필드를 구현하고 있었다. 다음 퀘스트를 하러 가는 것 외에는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이 구현되어 있지 않음에도 광활한 유대 광야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록 퀘스트 지역을 벗어나면 패널티가 주어진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게이머라면 이를 참을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나 역시 광야의 한계를 향해 달려나갔다. * 우측 상단에 보이는 믿음 수치 그렇게 계속 퀘스트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면, 성령이 만류하면서 ‘믿음’ 수치가 떨어진다. 맵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며 믿음이 다 떨어져도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자유도는 역시 없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믿음이라는 수치 자체이다. 이 게임에서 ‘믿음’은 변형(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의 기적), 치유, 퇴마, 부활, 신의 시선 [3] 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마나’와 같다. 그리고 이 마나통은 신자 수에 비례해서 올라간다. 물론, 실제로 게임 내에서 마나의 부족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기적 스킬은 퀘스트를 통해 해금되고, 퀘스트를 하면 신도 수가 자동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방황하여 길 잃은 양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클릭으로 기도를 하면 믿음 수치가 차오르기 때문에 예수가 믿음이 부족하여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믿음과 신자 수라는 이 성장 요소는 게임으로서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 생활을 깊게 해본 사람이라면, ‘신앙이 수치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경을 읽고 108배를 올려서 내가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특히, 신앙이 일종의 상징권력으로 작동하는 종교 환경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 개혁 이후 자신의 신앙을 자신이 확신하고 또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목사든 초신자든 누구나 불안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앙이 지금 온전하다고 확언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새벽 기도 참석은 10 경험치, 성서 통독은 1500 경험치를 얻고, 레벨 10을 달성하면 방언의 은사를, 20을 달성하면 방언 통역의 은사를, 100을 달성하면 신유의 은사를 획득하는 시스템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누구든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신앙의 성장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앙인이라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 아니더라도 어릴 적 한 번쯤 참석해 본 달란트 잔치는 이러한 인간적 욕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달란트 잔치가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 교회에 시스템적으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나 교회를 나오고 얼마나 열심히 참석했는가에 대해 즉각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달란트 잔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주일학교 교육에서 종교 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되어 왔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달란트를 물질적 보상과 연결짓는 것은 비유의 본래 의미를 역전시키는 셈일뿐더러,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앙을 성장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은 일반적이지만,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가시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로, Sola Gratia)’ [4] 와 충돌한다. 신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행실과 의에 따라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원칙에 부합하는 형태이다. 조지 리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측 가능성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맥도날드화의 논리가 교육, 의료, 종교, 여가 등 사회 전 영역으로 침투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5]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종교라는 추상적 활동 내에서 인간은 성장을 추구하고, 또 이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예수의 삶이 게임화되었을 때, 나에게 주는 새로운 경험은 이처럼 원래 존재하던 종교의 게임성을 확인시켜주는 점이었다. 더 좋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퀘스트를 깨고 사냥을 하듯이, 종교 안에는 원래부터 성장에 대한 게임적 욕망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는 것. 물론, 이 게임들이 이러한 점을 잘 캐치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게임의 종교성 애석하게도 이 게임들은 예수의 삶에 성장 시스템을 잘 녹여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보자. 흉악한 조작감과 AI로 만든 것 같은 퀄리티로 인해 는 평가가 좋지 않지만, 는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자유도나 성장 시스템 등 다방면으로 게임적 재미를 주지 못하고, 기적을 행할 때 반복되는 미니게임은 지루함을 넘어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지만, 스팀 후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영적인 체험이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남겨놓았다. 설령 게임성은 다소 부족할지언정, 1인칭 시점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기적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성서를 읽거나 교회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게임에서 어떠한 종교적 체험을 한 것일까? * WASD를 누르는 단순한 미니게임이 게임 내내 반복된다 분명 새로운 점은 있었다. 조기 교육으로 인해 성서의 내용이 매우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말로만 듣던 성서의 지명을 지도로 보고 발로 뛰어다니는 경험이나,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성서의 시대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경험이 존재했다. 가령,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성전 정화 사건은, 유월절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성전 뜰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들의 상을 뒤엎으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분노한 사건이다. 이를 성서로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는데, 실제로 게임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가보니 단순히 상 몇 개 엎었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이 와서 따질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거대한 성전의 내외부로 장사꾼들이 많았고 심지어 시장통답게 시끄러운 상황에서 적당한 소란으로는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게임의 퀘스트는 나에게 여러 개의 동물 우리와 새 우리를 부수게 시켰고, 무엇보다 동물 우리를 부쉈을 때 안에 있던 양과 염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퀘스트 달성에만 초점을 두고 이후 처리는 리소스를 줄이는 선택을 하는 반면, 이 게임은 확실한 시대적, 공간적 상황을 그려내려 했다. 그런데 이것이 게임이 줄 수 있는 종교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종교적 경험이라기보다 재현의 경험에 가깝다. 성서의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구현되면서 상상력의 공백이 채워지는 경험, 즉 읽고 듣던 것을 직접 보고 걷고 수행하는 경험이다. 초월이나 성스러움을 동반하는 종교적 경험과는 층위가 다르다. 아쉬운 점은 게임의 종교성이 가지는 포텐셜이 단순히 재현의 경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종교학계에서는 종교와 종교적인 것을 구분하여 사유한다. 종교(Religion)가 교리, 경전, 공동체 등 제도화된 신앙 체계를 가리킨다면,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은 특정 제도 종교에 귀속되지 않더라도 인간이 경험하는 초월, 성스러움,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지향 전반을 가리킨다. 콘서트장에서의 집단적 황홀감이나 스포츠 응원, 정치 팬덤, 명상 앱 등 특정 교단이나 신앙 고백과 무관하게 다양한 종교적인 경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이러한 ‘종교적인 것’이 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다.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에서 며칠 밤을 새 함께 레이드를 성공했을 때 함께 희열을 느낀다거나, <림월드>에서 삶과 죽음,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우연성, 집합 감정, 의미 추구 등 다양한 감각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품고 있다. 게다가 게임은 제도 종교 내에서도 다른 방식의 종교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경험을 제도나 교리가 아닌 개인의 내면적 경험으로 정의했다. 그는 진정한 종교적 경험은 성경 지식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깨달음을 동반하며, 순간적이고, 비의지적으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을 만든다면, 신학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해괴한 퇴마 시스템이 아니라, 로마 병사의 입장에서 예수에게 못을 박는다거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예수를 부인하게 만드는 선택지를 제공하여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렬한 종교적 경험과 마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배고픈 예수’를 기다리며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을 다시 살펴보자. 게임은 예수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종이나 성서의 사건들, 심지어 길에 심어져 있는 나무까지 고증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라는 CCM에도 나오는 성서의 감람나무는 번역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올리브 나무를 잘못 번역한 것인데, 게임 곳곳에서 올리브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자연환경을 구현하고자 고민한 것이다. 그러나 재현 자체가 목적이 되면 좋게 보아야 '교육용 게임'이 될 뿐이다. 아니, 교육용 게임이라는 것도 사실 핑계에 가깝다. 비기독교인 지인에게 이 게임의 타깃 대상이 누구일지 물었더니 "기독교인들이 할 게임"이라고 했고, 기독교인 지인은 "비기독교인을 위한 교육용 게임"이라고 했다. 결국 누구를 위한 재현인지 불분명한 셈이다. 재현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현에 머무는 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역사 교육 도구로 주목받은 것도 단순히 역사를 재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플레이어의 행위성과 선택이 개입하면서 텍스트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의미가 생산되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아쉬웠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게임과 종교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종교의 게임성, 게임의 종교성 모두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이다. 특히, 게임은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수행하는 자로 만든다. 그리고 종교는 언제나 수행을 요구해왔다. 기도하고, 절하고, 금식하고, 순례하는 것. 종교적 실천의 핵심은 언제나 몸으로 행하는 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과 종교는 처음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논의는 게임을 단순히 더 재밌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 속 예수에게는 허기짐 게이지도, 음식을 먹는 시스템도 없다. 그래서 사탄이 돌을 빵으로 바꾸라던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데미지를 받지 않기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도 시험이 아니다. 예수의 광야 시험이 가진 핵심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취약성이다. 그 고뇌가 시스템 안에 구현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는 결코 그것을 수행으로 경험할 수 없다. 가다머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가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현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다. 배고픈 예수, 낙하 데미지를 받는 예수, 유혹 앞에서 고뇌하는 예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게임 안에 구현될 때, 비로소 게임은 재현을 넘어 종교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1] 일각에서는 '성경'이 ‘성서’보다 더 권위 있는 표현이며 역사적으로도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성경'의 사용을 주장하지만, 이 글에서는 1968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참여한 '성서 공동번역위원회'의 전통을 따라 '성서'로 표기하고자 한다. [2] 상기한 내용은 에 관한 내용이지만, 수태고지부터 시작되는 는 더욱 자유도가 없었다. [3] 이 역시 신학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개념이지만, 넘어가자. [4] 물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나온 개신교 5대 강령 중 가장 핵심적 종교 원칙은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Sola Fide)’이다. 그럼에도 그 믿음이 주어지고 성장하게 되는 원동력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5] 조지 리처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두고 ‘합리성의 비합리성’이라고 비판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 Back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16 GG Vol. 24. 2.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f0eb392-efdb-48bc-96d5-044351c3f618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However, this article is not going to address the games themselves but rather the economic discourse of the gaming industry surrounding the production of these titles. First, the high-budget AAA games industry that sustains itself through the 'conventional (form of) capital'. Second, the contrasting mid- to low-budget games based on 'crowdfunding economics' (e.g., Kickstarter and Early Access). Looking at various gaming communities on the internet, it appears that many Korean gamers are actively comparing with other AAA games, including , while labeling them as if they were developed in a similar game production process. To be more specific, while gamers praise for its creativity and rich details, they also, in contrast, criticize and other AAA games for lacking something despite being developed in a similar environment. The criticism is about the negligence of craftsmanship of AAA game developers – such as those in – for not being able to deliver richly crafted games despite having a similar amount of resources. One could argue that such criticism is coming from gamers' expectations for good quality games and the failure of anticipation that the game they've highly expected 'could have been better'. And I'm not completely against that argument. Instead, what I would argue is the binary labeling and comparing of these two game titles that is far from reality. Aside from the fact that both and belong to the similar game genre and received wide public attention upon their release, the two games only have marginal similarities when it comes to how they were developed. Their game design elements are also vastly different, and you cannot just do a direct 1:1 comparison with each other. While is a mass-produced product built with an efficient and stable production direction backed by large investment capitals, is closer to a craft product targeting a much niche target audience grounded from crowd-sourced funding. Of course, I'm not here to discuss the superiority or inferiority between manufactured mass-products and crafted products. What is a more important factor here to discuss is the possible impact that crowdfunding economy, backed by a niche target audience, has on the games that we get to play. can be regarded as a typical AAA game with a strong tendency to create a massive product with concentrated large-scale capital investment. In a number of interviews, Todd Howard, the director of Bethesda Game Studio, highlighted as their well-established studio’s first new IP in 25 years. The studio's mass-scale promotions worldwide, including game trailers and demo showcases in various game shows, clearly demonstrated the massive scale of Microsoft’s capital resources. It also showed what product value has to Bethesda Game Studio, Zenimax Media, and Microsoft, which clearly would have excited the investors on Wall Street. At the same time, the developer was extremely cautious about disclosing its information throughout the production process. We can speculate this from Todd Howard's interview at the Develop: Brighton conference 2020, in which he mentioned that the team "(would) like to do it as much as possible when we can really be able to show it – to show what the final product looks like and feels like, closer to the release" instead of stringing the gamers' "fatigue of wanting something." To put this another way, this demonstrates 's closed production environment with lesser public feedback. And this is not just 's story: as we may all know, the majority of AAA games do not disclose their development process to the public, and the process of receiving feedback is limited to internal QA or public trials and demos, keeping its exclusiveness and prestigiousness from its fans. This further engages the gamers closer to the game’s release date, amplifying their curiosity and expectations of the game – to the point they will gladly open up their wallet and purchase the game. On the other hand, such AAA game’s one-sided strategy also imposes its own risk; to gamers’ misled expectations to disappointment. Gamers’ critical comments towards followed by the game’s release indicate that Bethesda’s internal predictions (perhaps their developers, or executives and shareholders) did not align with their target audiences’ expectations. The game just did not meet people’s expectations towards a well-made game combining space exploration filled with rich and detailed in-game interactive elements – on how they expect Bethesda Game Studio's own unique and long-established RPG design style. Instead, Bethesda appears to have taken more of a simplistic approach with fewer rich and detailed in-game elements as a payback for going big. Perhaps creating a fully immersive virtual space world was impossible in their AAA game production system. We can see this from one of the game’s primary and yet controversial features of space exploration, where the developers have made a vast scale of fully functioning virtual space but with procedural generation of planetary terrain and simplification of spaceship take-off and landing processes, which resulted in limiting the player’s ability to actually explore and do things in the in-game world. Unfortunately, what could have been a valid strategy from the company’s standpoint was not the game design direction that Bethesda’s long-time fans have hoped for. This gap between expectations versus the delivered product, amplified by the company’s recent business strategy, backfired into gamer’s satire and ridiculed remarks towards the game and its developers. is not Bethesda Game Studio's first and only failure. The company has once received strong criticism when they initially released (Bethesda Game Studios, 2018) without being able to deliver its promised immersive open-world game experience. It had underperforming online gaming systems that failed to synergize with the existing Bethesda Game Studio’s unique RPG style, which was clearly a mismanagement of its business strategy. Sure, has better quality than as the studio was able to spend more time in production, which allowed developers to put a significant amount of effort into launching the game. But nevertheless, the case of exposes how a one-sided and efficiency-hungry AAA game production pipeline can further solidify the gap between gamers’ (and the market’s) expectations. It also shows the fundamental downside of this rigid pipeline game production model. Perhaps now is the time, upon learning from , when Bethesda Game Studio should consider a fundamental shift in its pipeline. < Baldur’s Gate 3 > , on the other hand, is a game that was developed simultaneously as the developers share the development process. The game was available for early access for three years until the game’s official release and frequently disclosed its production process to Baldur’s Gate series fans. Such strategy resembles the lively production cycle of crowdfunding economics, despite the game was not directly funded by crowdfunding channels (e.g., Kickstarter). (Because Larian Studio has never adopted the crowdfunding method to finance their games since their successful (Larian Studios, 2014).) Already in the beta testing phase, gamers were able to deliver their feedback for the game to the developers via the game’s official community on the internet. The developers also disclosed their progress upon such feedback and change through community updates, which wouldn’t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trust of the developers in their games’ community. Larian Studio has also implemented the abundant openness and freedom of TRPG as much as possible into the game during its three years of early access. I don’t need to delve into further details of ’s high degree of freedom, as it has been widely acclaimed in numerous game reviews and demo play videos on the internet. What is important to mention here, though, is the fact that was produced in a way to accommodate as many demands coming from its fans. I consider this consensus-building with the fans to be what eventually leads the game to an overwhelmingly positive response upon its release. This is obviously not an easy direction for the company, which makes the development story of so much more interesting. While the game design that guarantees maximum openness and freedom to gamers does sound appealing to players, it also adds complexity to the game for those who create it. Also accommodating every demand could just end up making the game that is too complex for people to even play. Being a top-down RPG (with the possibility for gamers to adjust the camera angle), unlike other mainstream CRPGs like , is not also the most favorable choice from the perspective of large capital investors. also needed to provide a vast-scale world setting, story, and significantly more cut scenes than any other of Larian Studio's previous works. So we can imagine increased the level of complexity in its production that its prequels. As such, Bethesda Game Studio and Larian Studio developed their games with clearly different directives. In addition to that, they have different pathways in history of their businesses. Bethesda Game Studio, as shown in their solid pipeline process, is a company rooted in the conventional forms of game production studio systems in the 1990s. The company gradually scaled up with mergers and acquisitions backed by large-scale capital investments – like those in large-scale software sectors. During this time, in the early to mid-1990s, when Bethesda started as an RPG production studio, the online game community was immature. It didn’t have its own logic of ‘economy’ per se, with only a handful of alternative publishing channels available at the time. Such as shareware or small game retail stores. Due to the technical limitations of the internet environment at the time, the shareware phenomenon did not grow significantly, rather only regarded as a sort of pre-showcase method to share parts of the game to lure gamers to purchase the ‘full version’. At that time, only small-scale game developers, such as hobbyists, were able to receive direct feedback from their potential gamers for games in development. Such direct feedback mostly relied on an immediate network and thus clearly was not possible for mass-scale game production. Furthermore, the growth of Bethesda Game Studio was driven by its CEO, Robert Altman, who formerly worked at Zenimax Media and had expertise in company management and finances. Fast forward to today, we also cannot separate Bethesda Game Studio from the influence of large corporations, such as Microsoft, and investment firms on Wall Street. On the contrary, Larian Studio is a company established without a pre-existing business entity and therefore operates without existing company management or shareholder’s interest. As Jason Schreier, an American game journalist, mentioned in his article in Bloomberg, Larian Studios is a private company with its majority shareholder privately owned by Swen Vincke, Larian’s chief executive officer, alongside his wife. This allows Larian Studio to take its initiatives without trying to meet Wall Street’s expectations. However, Schreier also pointed out that such a company structure also comes with “full of risks”. As a matter of fact, Larian Studio struggled after the company failed to retrieve its share of profit from their moderate success of (Larian Studio, 2002), the first of the Divinity game series. The company had to run with only three individuals at some point while working on its sequel, (Larian Studio, 2004). Despite this risk in finances, Larian continued to operate in a private company structure maintaining its focus on a specific game genre, even after the success of (Larian Studio, 2014). For me, this resembles Nihon Falcom, one of the mid-size Japanese game studios that is consistently producing its own unique style of JRPGs. But of course, the main difference is that Nihon Falcom is now a public company, while Larian Studio leveraged its pivotal growth from crowdfunding economics. So what aspects of crowdfunding economics benefited the studio’s growth? Larian Studio’s supporters were comprised of people who gathered through word of mouth, fan-based, a niche group of enthusiasts. They were different from the AAA fan base, those that are often loyal to past franchises and rooting for their past glory’s comeback. In contrast, Larian Studio’s early Divinity series reached moderate success in the sense that it did not draw a solid fan base like in those massive-scale game corporations. Their recorded a positive response in the mid-2010s when various crowdfunding projects emerged all across the game development scene – with the rise of the Kickstarter platform. However, even the studio’s Kickstarter project did not draw much attention, even less spotlighted than the Kickstarter projects from the former-Interplay Entertainment veterans – the publisher of Baldur’s Gates franchise since the late 1990s. Nevertheless, made a success by satisfying the fans of classic RPGs, managing to establish the studio’s first fan base after sourcing its finances partially through crowdfunding. What is interesting here is that, unlike other successful Kickstarter game projects, including the projects from the industry-acclaimed AAA game industry veterans, the team of had not many track records to present at that time. But perhaps this allowed Larian developers to go more boldly – instead of following a safe track. Ironically to say, they didn’t have much – nothing much to lose, therefore were able to leverage greatly from this new trend of crowdfunding economics. Now, is a product developed after Larian Studio’s growth in scale since its boost from the crowdfunding economics. The game involved an estimated 200 people in development, without counting the workforce in their newly established overseas branches. Size-wise, the studio is nothing like their early days of . As journalist Schreier and the industry veteran Xavier Nelson Jr., pointed out, perhaps the production of was a lucky move in the first place – as Schreier said in his article on Bloomberg, “most other video-game developers are either part of publicly traded companies or too small to make games as ambitious as .” Established game companies like Bethesda Game Studio may be able to deploy larger manpower and greater capital investment, but wouldn’t have been able to mediate the risk of developing a game with complex rules, turn-based combat system, with countless branching paths that require countless resources on content that may go mostly unappreciated. It is even remarkable that Wizards of the Coast, the publisher of “Dungeons & Dragons”, allowed Larian Studio to go with three years of early access of as it might have risked the reputation of its brand with an unfinished game. It is also a drastic contrast with the early access of that was done primarily for just refining and supplementing a near-to-complete game. In comparison, 's early access was recklessly long and was disclosing its production process to the potential players. Of course, there were traces of some promised coming-soon contents being deleted upon the game’s release as if the early access schedule could not be extended indefinitely. But still, the trust and openness of Wizards of the Coast towards Larian Studio of letting them to continue with 3-years long early access is surely an interesting element to look into. The success of ’s open game production, rooted in crowdfunding economics, is perhaps the most intriguing phenomenon that we’ve come across in the world of games in the year 2023. Those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arly access of were either niche, too old-fashioned, or outside the mainstream target audiences – at least, that’s how it has been seen by cool-headed market analysts in large investment capital firms. But such a niche and active fan base is not just limited to the classic RPG genre. There are numerous devoted communities in point-and-click adventures, hyper FPS, 2D platformers, dinosaur simulators, and so on. On top of that, with the growth of 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early access, and crowdfunding since the 2000s, the world’s indie game market is more robust than ever before. This enables a scalable fandom market, which was once neglected by the logic of large capital, can now unite and establish alternative means of the games market. And this is not just an isolated case of – there are other cases like by Frontier Dev. demonstrates that fans are no longer remaining as passive consumers. It shows the impact of crowdfunding economics on the indie game scene, where niche fans' trust and devotion towards the game (i.e., towards the game that they would like to play) actually becomes powerful enough to affect the mainstream market. This contrasts with , the mass-scale production backed by large investments with a veteran production team but decided to go a safer and proven pathway towards revenue. It could be that gamers are getting fed up with the industry giant’s overemphasis on satisfying their shareholders' interest to maximize revenue and minimize risk. What backers of crowdfunding economics are doing to the game developers somewhat resembles how aristocrats during the Renaissance era used to order custom-made handicrafts from artists and craftsmen – backing the creators to make the game that fits their specific taste. While the Renaissance aristocratic patrons were a tool for monopolizing arts and crafts with their power of class and wealth, the contemporary patronage of games is more like a collective action of anonymous consumers. Here, their primary aim is to regain their access to niche crafts (of games) that were once alienated from the mainstream capital market. Of course, nothing is perfect. There’s also a downside to crowdfunding economics – that it's not always a happy ending, and the development of was perhaps a rare experiment and one-of-a-kind incident that will be remembered in the history of the game industry. It is also yet unknown whether Larian Studios will continue onward with this experiment in their future projects. Vincke has already commented in his interview with Bloomberg that he doesn't want to spend another six years working on one game and was unsure about what Larian Studios' next game is going to be. It could be that their next project may not follow the exact pathway of , and the moment may be remembered as one lucky happy moment. But nevertheless, the success of showed the world how far crowdfunding economics could go; the economics of people’s crowdfunded desire, of wanting to see the product they want to consume. For that, it was indeed the most remarkable incident in games of 2023. That’s not to say all gaming industry to follow the same path as – which is impossible – but the story certainly could inspire future innovators to com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 Back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20 GG Vol. 24. 10. 10.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1] . 국내에 경우 『조선일보』에 기고하던 영화평론가 정영일이 미국의 영화평론가 레너드 말틴이 매년 발간한 『레너드 말틴의 영화 가이드북 Leonard Maltin's Movie Guide 』의 별 4개 만점 시스템을 별 5개 만점 시스템으로 변경해 가져온 것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으며 [2] , 1995년 『씨네21』의 창간과 함께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포털사이트의 시대가 열리며 영화는 물론 음악, 문학, 만화 등 거의 모든 대중문화 영역에 별점 평가를 남기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플랫폼의 시대인 지금 음식점은 물론 배달, 과외, 중고거래, 택시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 별점 평가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악의적인 별점테러가 자영업자에게 큰 손해를 입히거나 창작자의 평판을 박살내는 등 일종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별점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출발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상을 평가하거나 평가를 찾아보기 위한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의 영역에서 특히 공고하게 자리 잡은 별점 평가는 기자와 평론가들이 남기는 잡지와 신문의 공식적인 별점부터 (지금은 서비스 종료한) 네이버 영화와 다음 영화의 네티즌 평점, 왓챠피디아나 키노라이츠와 같은 관객 개인이 직접 평점과 짧은 평을 남길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진다. 해외의 경우에도 IMDB와 레터박스 등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와 비슷한 다른 방식도 존재하는데, 단순한 호불호를 표기하는 것이다. 가령 레너드 말틴이 별점평가를 도입한 것과 비슷한 시기 대중적 영화평론가로 이름을 알리던 로저 이버트는 ‘엄지 올리기/내리기(thumbs up/thumbs down)’ 평가방식을 도입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썩음/신선함(rotten/fresh)’으로 호불호를 표기하고 참여한 이들의 평가 비중을 퍼센트화하여 공개하는 로튼토마토로 이어지며, 현재 CGV에서 사용하는 ‘골든에그’ 평가의 경우에도 이를 참조한 것이다. 별점 평가가 대상을 수치화하는 것에 비해 단순 호불호만을 표시하는 이러한 방식은 조금 더 환영받는다. 별점 평가가 별점테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넷플릭스에서 별점을 폐지하고 좋아요/싫어요 표기 체계로 변경한 바 있다. 혹은, 아예 메타크리틱에서처럼 각 사이트의 평점을 100점 만점 시스템으로 환산하여 조금 더 정교한 평점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게임 웹진의 글인데 영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다. 현재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 또한 사실 별점보단 단순 호불호 평가다. 스팀의 경우 긍정적/부정적 평가만 남길 수 있으며, 긍정적 평가가 80~100%는 매우 긍정적, 70~79%는 대체로 긍정적, 40~69%는 복합적, 20~39%는 대체로 부정적, 0~19%는 매우 부정적으로 구분되고, 리뷰가 500개 이상이면서 긍정적 평가가 95~100%일 경우 압도적으로 긍정적, 0~19%인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부정적, 리뷰가 50개 미만이면서 80~100%는 긍정적, 0~19%는 부정적으로 표기하는 등 총 9개의 평가로 구별된다. 2017년 국내 런칭한 게임 전문 커뮤니티 플랫폼 ‘미니맵’의 경우 별 5개 평가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유저가 남긴 평가를 기준으로 취향과 성향에 맞는 게임을 추천해준다는 지점에서 영화 별점 플랫폼 왓챠피디아와 유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게임 부분에서 전문가들의 평점으로 채워지는 대표적인 매체는 메타크리틱일 것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 등의 분야에서 여러 웹진이 남긴 평점을 종합해 100점 만점으로 평균을 내는 메타크리틱은 대부분의 극찬(Universal acclaim, 90~100), 전반적인 호평(Generally favorable reviews, 75~89), 복합적이거나 보통(Mixed or average reviews, 50~74), 전반적인 혹평(Generally unfavorable reviews, 20~49), 압도적 저평가(Overwhelming dislike, 0~19)의 다섯 단계로 구별된다. 여러 전문가의 평가를 종합한다는 점에서 로튼토마토가 신뢰를 얻는 것처럼, 여러 평점을 종합한 결과라는 지점에서 유저들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게임의 정식출시 전 미리 플레이해본 평론가와 기자들의 평점이 가장 먼저 공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관심도가 높다. 이처럼 평점과 별점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중 비평의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트리플A 게임의 메타크리틱 점수가 공개되는 날이면 소셜미디어와 게임 커뮤니티에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주요 게임의 대형 업데이트는 스팀 평가란의 변동을 통해 즉각적 반응으로 표기된다. 영화에서의 별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수다거리 정도일 뿐 뉴스거리까진 되지 못하지만 [3] , 메타크리틱이나 스팀 평가의 공개와 변동은 게임언론의 기사로 다뤄지기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디스이즈게임은 지난 2월 출시된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가 출시 당일 스팀에서 ‘복합적’ 평가를 기록한 것이 며칠 뒤 ‘매우 긍정적’으로 변한 것을 두고 “출시 초기의 악평을 극복한 모양새”라고 평가한다 [4] [5] . 게임메카는 지난 4월 <백영웅전>, 이번 8월 <검은 신화: 오공>이 각각 출시를 앞두고 공개된 메타크리틱 평점을 보도하며 평점과 리뷰 내용을 종합하여 게임을 평가한다 [6] . 물론 스팀의 평가는 출시 이후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가 남긴 평가이며 메타크리틱은 평론가와 기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이 남긴 평점의 종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평점 모두 게임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로서 자리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점은 정말로 비평의 기능을 수행하는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사례처럼 유저와 전문가 사이의 견해 차이가 논란으로 비화된 사례는, 어떤 면에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전문가들이 남긴 평점이 비평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메타크리틱에서 현재 132명의 전문가에게 93점(100점 만점)을 받아 ‘메타크리틱 머스트-플레이’ 마크를 받은, 163,543명의 유저에서 5.8점(10점 만점)의 평점을 받아 ‘복합적 혹은 평균’을 받은 상반된 평가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비평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나아가 이것이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평점이 비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오히려 문제적인 것으로 여겨질만한 것은 게임즈비트의 저널리스트 딘 타카하시가 <컵헤드>의 튜토리얼을 가까스로 통과하고 첫 스테이지마저 클리어하지 못하는 처참한 게임플레이 [7] 를 보여준 뒤 혹평하는 프리뷰 기사 [8] 를 작성했던 사건이다. 게임의 기본적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그의 플레이는 많은 게이머로 하여금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그의 전문성을 의심케 했다. 평점이 갖는 비평으로서의 기능 이전에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갖지 못한 이들이 평점을 남긴다는 사실은 많은 게이머의 분노를 끌어냈다. 사실 전문성이란 것은 애매한 영역이며, 명확한 기준은 없다. 더군다나 게임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 (게임제너레이션의 공모전 등이 있긴 하지만) 등단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 기준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을 요구한다. 마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영화 별점을 매길 때 “비평적으로 할복자살할 마음의 준비” [9] 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종종 게임 평론가들이 남긴 평점은 그들의 모든 비평적 견해를 대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게임 평점을 남기는 일련의 전문가들이 겪는 고충은 단지 평점 혹은 별점이라는 표면만으로 환산되기 어렵다. 그것은 비평 행위라기엔 (정성일의 말이 드러내는 것처럼) 너무 가볍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2007년 영화 <디 워>와 관련해 영화비평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대중비평(mass criticism)에 관한 발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비평에서 드러난 ‘대중’은 기존 평론가들이 제시하지 못한 참신하고 새로운 각도의 영화보기의 가능성에서부터 파워 블로거나 파워 트위터리안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 쉽게 의견이 조작될 수 있는 획일성까지, 또한 특정 영화인이나 비평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악플에서도 드러나듯이 별다른 성찰이 없는 파시즘적인 양상까지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0] 프롬소프트웨어의 <엘든 링>이 출시됐을 당시 메타크리틱 97점이라는 평론가 점수가 논란이 됐었다. 게임 자체의 높은 난이도 속에서 평론가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 온전한 평가를 내렸을지에 관한 의심과 평점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만들어낸 논란이었다. 이에 대해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이 남긴 말은 참고할만 하다. “(<엘든 링>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이고 똑같은 게임인데, 우리는 그 게임을 통해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까?” [11] 모든 문화예술 작품(혹은 상품)은 향유자의 경험을 전제로 삼는다. 다만 그 경험의 파생물로서 등장하는 비평이 비평으로서 승인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대상을 경험했다는 전제를 두어야 한다. 김실장의 말은 하나의 게임을 두고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딘 타카하시의 다소 극단적 사례처럼 플레이 실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호하거나 더 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장르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마감의 문제로 평론가에게 부여된 게임플레이 시간의 제약이 문제일 수도 있다. <엘든 링>이나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이 볼륨이 큰 게임의 경우 하나의 게임을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일 길이 게임 자체에 내재되어 있기도 하다. 게임플레이 경험은 녹화되어 리플레이될 수 있을지언정 과학적으로 재연될 수는 없다. 그 경험은 한 편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만큼 동등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 게임 비평이 지닌 곤란함은 여기서 출발한다. A라는 게임의 고인물이 B 게임의 뉴비가 되기도 하고, 모든 게임을 훑어가며 플레이하는 라이트 유저와 하나의 게임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헤비유저 사이의 차이도 존재한다. 그 안에서 비평의 토대라할 수 있는 공통의 경험을 제시하는 것은 꽤나 곤란하다. 누군가가 발견한 요소를 누군가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여러 제약이 가져오는 탐색의 불가능은 게임 전체를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가 비평가의 태도로 게임을 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같은 지평 위에 서 있는가? 웹진과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별점과 평점은, 영화에서의 별점이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지닌 것처럼, 게임 구매를 결정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을 진지한 비평과 등치시키는 것은 경험의 차이, 혹은 평점이라는 표면 뒤에 있는 리뷰와 비평의 영역을 지워버리는 것에 가깝다. 참고하되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을 것, 우리는 미슐랭 3스타 식당에 가서 음식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이동진 평론가가 별 5개를 부여한 영화를 보고 지루함에 빠져 잠들 수도 있다. 경험이 상대적인 것처럼 비평 또한 상대적이다. 별점과 평점은 그 상대성의 표현일 뿐이다. [1] 김성태 (2021.05.24). ‘별점’의 함정, 무엇이 문제인가. <지디넷 코리아>. https://zdnet.co.kr/view/?no=20210524104310 [2] 한현우 (2009.03.31). [그것은 이렇습니다] Q: 영화나 뮤지컬에 '별(★)점'을 매기는 이유는?.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30/2009033002002.html [3] 물론 올해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박평식 평론가가 별점 4.5개를 준 것으로 크게 화제가 되며 기사까지 난 적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예외적 사건이다. 대부분의 영화기자/평론가의 별점은 보도자료나 포스터 디자인 등 마케팅의 하나로써 사용된다. [4] 김승주 (2024.02.06). '복합적'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스팀 평가 역주행한 게임. <디스이즈게임>. https://thisisgame.com/webzine/nboard/11/?page=3&n=184405 [5]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합적’ 평가의 주된 이유는 출시 초기 발견된 버그 때문이었다. 버그나 최적화의 문제는 유저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기준이 된다. 다만 서로 다른 기술적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그것은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나아가 그것은 비평과 얼마나 관련 있는가? 이것은 이 글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6] 이우민 (2024.04.22). 평작과 수작 사이, 백영웅전 메타크리틱 78점. <게임메카>.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48202 , 김미희 (2024.08.19). 분위기·전투 호평, 검은 신화: 오공 메타크리틱 82점. <게임메카>.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52250 [7] Cuphead Gamescom Demo: Dean's Shameful 26 Minutes Of Gameplay https://www.youtube.com/watch?v=848Y1Uu5Htk&embeds_referring_euri=https%3A%2F%2Fnamu.wiki%2F&source_ve_path=MjM4NTE [8] Dean Takahashi. (2017.08.24.). Cuphead hands-on: My 26 minutes of shame with an old-time cartoon game. GameBeat. https://venturebeat.com/games/cuphead-hands-on-my-26-minutes-of-shame-with-an-old-time-cartoon-game/ [9] 정성일, 허문영 (2010). [씨네산책2] 정성일과 허문영이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2). <씨네21>. 776호. [10] 심영섭 (2007). ‘대중비평(Mass Criticism) 시대’의 등장, 그리고 비평가와 대중의 거리(距離). http://fca.kr/ab-1068-4 [11] 엘든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경험과 기대에 대한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LSndHMGBFMA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 Back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15 GG Vol. 23. 12. 10. Are NFTs for now or for the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ongoing discourse about integrating a blockchain into games is concentrating on optimistic views toward the future. Discussions about related topics like Play-to-Earn (P2E) and Non-Fungible Tokens (NFTs) are also revolving around on the view towards the future rather than present; on what could happen, and should happen according to the previous attempts. Here, we cannot get away from the feeling that something is not right – something is off. Of course, one could still argue that these messy attempts and discourse are stepping stones towards the next paradigm shift and that we must first prioritise broader and newer attempts rather than hindering innovation with over-verification. Coming from this context, this article aims to delve into the issue of NFTs in games, exploring both the social and technical contexts. First, we take a look at the context of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and the game industry’s vision towards its future, along with its remaining technical challenges. From there we look more in-depth at where these endeavours might leave their mark on games. Contexts of Non-Fungibility In recent days in South Korea, the term Non-Fungible Tokens (NFTs) is most commonly used in discussions regarding virtual assets, emphasising their potential value deriving from unique ownership attribution over notions about their technological aspects. Meaning, rather than delving into the technical feasibility of obtaining this non-fungibility status, the discourse surrounding NFTs tends to focus more on how much value can be derived from those assets and how to leverage it. Under current South Korean law, it is not possible to introduce NFTs into games, including its live operation services. There are many restrictions and thus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would be needed before any NFT games can be fully in operation at a viable commercial level in this country. But the potential gain could be high: If NFT games can somehow reach the mainstream market, they could quickly become the most accessible medium for trading cryptocurrencies, using already existing in-game markets – without making much of an early investment in facilitating entirely new channels. Not to mention, South Korean game players are already accustomed to taking financial burden while playing games. Active players are more likely to become devoted fans of the game, and for them, paying to access the blockchain currency may be perceived as an acceptable range of costs. Here it’s worth closely looking at the case of the game “CryptoKitties” (Dapper Labs, 2017) a prime example of games and blockchain integration. The in-game transactions of “CryptoKitties” occur through trading with the virtual currency Ethereum, providing opportunities to trade more exotic digitally-generated cats at higher monetary values. So, what makes this game ‘fun’? Do players find it ‘fun’ when they successfully create exotic digital cats, or does the enjoyment come from engaging in monetary trading as the prices of digital cats might increase? While the game’s primary game design mechanic revolves around collecting and breeding cute digital cats, “CryptoKitties” trade mechanisms combined with real-world monetary values (i.e., currency that can be used even outside the game) make it hard for us to articulate what the particular design elements are that truly resonate with a feeling of ‘fun’ of players.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ituation where someone has successfully generated an exotic, high-valued cat in the game. If one considers acquiring a unique cat in the “CryptoKitties” through collecting and breeding as ‘fun’: Does that feeling stem from the self-satisfaction of acquiring a rare item (in this case, an exotic digital cat), or does that come from the optimistic expectations of being able to trade it for a higher amount of money? Perhaps it could be a bit of both. Even if the player has no intention of trading that digital cat, just having an expensive object may already give the person a prestigious and satisfying feeling. This somewhat resembles other game business models already common in some South Korean MMO games – and potentially online games from other regions. Then the question is, why NFTs? What makes incorporating NFTs into the game differerent from other conventional game design and business mechanics? In the next chapter, let’s examine the benefits of NFTs from the perspectives of game companies and gamers. Contrasting views towards Non-Fungibility At the current state, one of the primary issues is that game companies have yet to clearly define how the introduction of NFTs can make more ‘fun’ to the game, and what exact innovative changes they envision for their game’s live service. For example, the game “Nine Chronicles” (Planetarium, 2020) demonstrates the notion of decentralisation by going open-source as a blockchain game. But most blockchain game projects do not seem to provide a solid answer on why they need to choose blockchain technology in particular, and rather adopt blockchain first and then find its reasoning as they run. Furthermore,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business models among these blockchain-backed games is the pre-sales scheme, selling items early in advance, which is not entirely something new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but more of a replication of existing business models but with added blockchain hype. This inconsistency leads to worrying public views on game companies’ intentions regarding NFTs, which question the corporate vision as the attempt to introduce cryptocurrency into game services while evading state regulations.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the company seems to be attempting to profit from the player-to-player item trades through NFTs. (Translator’s note: South Korean game law prevents game companies from directly facilitating player-to-player item trades if it involves purchasing or selling virtual items with real-world money, KRW. Instead, various third-party currency exchange agencies, apart from the game service providers, can mediate the exchange of virtual items with real money, subject to a certain amount of transaction fees.) Many blockchain game proposals from some major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im to gain control over direct real-world item trade; Proposing to install virtual item trade through company-issued cryptocurrencies, which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corporation’s attempt to evade government’s regulations. While game companies’ vision toward NFTs is still fixated on product value, for players, the future it presents has somewhat conflicting implications. Some players may view NFTs as a channel for game items as monetary investments, while others see them as collectibles that could last even after the termination of the game’s service. Considering that all online game services’ assets and efforts that gamers accumulate over time could vanish once the game service ends, without any reliable method to possess such intangible values made in games, NFTs can perhaps provide players a permanent ownership of the things that they have achieved in games. Here, NFTs can be interpreted as a token through which players could feel personally connected with the games that they love. Perhaps the NFTs could be perceived as a medium through which players can express their attachment towards the game — a non-fungible token that signifies their devotion as a fan of the game. For these individuals, NFTs are no longer just about the technical wonder but rather a tool for the meaning-making journey of their gameplay. For instance, online game players are aware that the online game service will eventually end. Despite knowing this potential future, they remain devoted to their current satisfactions with the game, accumulating virtual assets that may one day no longer be available. Perhaps NFTs can resolve this uncertainty (the risk) that players must endure, by becoming a proof of record of in-game items that can last indefinitely. A token with which they can enshrine their love towards the game that can safely be stored without the risk of losing it. Contexts of decentralisation What the blockchain currently guarantees in terms of non-fungibility is the data. While attempts to enhance technologies such as proof-of-work (PoW) and hardware storage capacities are in progress, uploading the entire game system to run on the blockchain is still challenging.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cenario where the game system remains outside the blockchain, perhaps locally or internally within the game company’s server, while the game state (data) is kept on the blockchain. In this setup, even if the game company is no longer able to manage the game services — terminating its live operation — the records of the items still exist on the blockchain to prove who owns that particular item. However, without the game system to actually run or operate that specific item this is just a data record, which diminishes its non-fungibility – and thus, become basically worthless. While the game company could add more data, but this could significantly decrease the amount of data that can be stored in the blockchain, leading to higher costs. Higher production costs may result in slower updates , and keeping track of all gamers’ play data on the blockchain could burden computational power, potentially hindering seamless gameplay. Recent new methods proposed to improve blockchain usage (e.g., power consumption, transaction costs, and transaction times) contradict the goal of decentralisation for efficiency in proof delegation. Furthermore, most current blockchain transactions are mediated through trading platforms, which deviates from decentralisation in the first place. Another important note here is that if the game company intends to establish a genuinely centralised way to control its game service and trades, a blockchain is perhaps, unnecessary. As even with the conventional techniques already in use in current game technologies, the company could still choose and guarantee the value of their gamers’ data (and their item’s value) – and perhaps be able to do so more efficiently in terms of speed and cost than using a blockchain. Therefore, game corporations must truthfully reveal their intentions and reasoning for adding blockchains in games despite the corresponding complexity and cost risks. Without such justification, their proposals can only be seen, from the players’ standpoint, as a deceptive corporate manoeuvre – promising non-valuable values in an attempt to evade the law. What we find fascinating in attempts to decentralise games is not to facilitate a central server to operate and manage the game but rather to have it open by envisioning a pivotal shif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users – a relationship that has historically been one-sided and hierarchical. In decentralised games,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gamers can take on a more flat and open structure. This collective relationship could also influence how in-game interactions and business models are designed, potentially addressing or altering the stress on gameplay (as recently highlighted in South Korean gaming culture) caused by game designs that favour competition and a win-or-lose mentality. Finding somewhere in between What NFTs could bring to games? In this chapter, we explore intriguing attempts to mediate, compromise, negotiate, and introduce new models that could inspire further innovations. Technical enhancements could one day be able to solve blockchain-related issues. In particular, blockchain has been a significant concern because of its high power consumption due to proof-of-work (PoW). Therefore, newer technologies that do not rely on PoW are being introduced. While it is unlikely that existing blockchains already in operation will alter or adopt these new methods, it could potentially offer further future technical alternatives to issues related to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that may arise. In contrast, the game corporations’ attempts to leverage blockchain technology to free themselves from laws and social responsibilities cannot be achieved solely through technical solutions. First, let’s acknowledge that the idea (or attempt) of connecting in-game currency with real-world currency without violating the law is not particularly new; perhaps there’s a good reason for that. The issue is more fundamentally interconnected with the world, and thus, no particular technology—let alone blockchain—can be a magic wand. We believe that even if the use of blockchain becomes more common than ever before, for instance in the banking system, the practices are likely to be somewhere between convention and innovation – a fusion of blockchain technology with the existing banking system. As such, the compatibility between virtual assets and real currency should be mediated, perhaps within the scope that satisfies the existing laws of our society. Implications could also involve using blockchain technology to enhance communication between game companies and players. One such inspiration is the game “EVE Online” and its annual event, ‘Eve Fan Fest,’ which any EVE Online player can sign up for and participate in. Among the many side events in Eve Fan Fest, one we would like to point out is the ‘Player Presentation,’ which offers a 40-minute presentation or a roundtable discussion to pre-registered players. The game operates a single shared universe (global region server) for players worldwide, eliciting user participation both in and outside gameplay: At the event, EVE Online players from various factions gather for discussions and negotiations regarding faction relationships and agreements. Perhaps we could use the blockchain to create and enable various forums like Eve Fan Fest, where South Korean game devs and players can join and engage together. Company representatives can listen to players’ opinions and reflect those ideas into the game’s service, enabling a feedback loop with real in-game implications. Such attempts can perhaps prevent potential conflicts or issues that may stagnate if the company solely dictates decision-making by dismissing the power of collecting intelligence from players. Instead, the blockchain could contribute to recording and tracing player’s ideas and opinions efficiently, supporting the enhancement of fairness and transparency in player communication and game company service decisions. In addition, if the game service continues for a long time, it can serve as an archive of accumulated communication between game developers and players. The blockchain may help regain the trust between South Korean players and game developers, which has reached a dangerously precarious state in recent years. Perhaps loot box probability disclosure, mandated by law in Korea from March 2024, can be verifiably realised by archiving all records of randomised items created in the game on the blockchain. Players may be able to further verify whether the game’s system is operating as the game company intends. At the time of writing, it seems evident that many in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nd developers are concerned about what this new law could bring to the industry and how to even comply with this upcoming regulation. Perhaps with blockchain’s potential for transparency and decentralisation, the disclosure of loot box probabilities in South Korea is not far from reality. Of course, we cannot emphasise enough how a careful implementation of new technology, like blockchain, should be based 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nd our real problems. Lastly, we again ask: So what do game companies hope to achieve through NFTs? Is the phenomenon of NFT games a futuristic indicator towards our near future, or are they just a mere reflection of the pending issues of our current reality? Attempts are being made to identify the nature of this phenomenon and clarify our understanding of the blockchain game discourse. Finding the right pathway cannot be achieved unless one can figure out one’s location, calculated based on observing the terrain relative to the starting point where one began one’s journey. As such, we must concentrate on navigating through our future discourse while carefully traversing our current and upcoming terrain of topics and never stop asking the very fundamental starting question: “What is fun in games—and can a game still be called a game when its purpose is something other than the pursuit of fun?”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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