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장에서 비디오 게임 콘솔과 범용 PC의 40년 경쟁이 낳은 변화들
24
GG Vol.
25. 6. 10.
우리는 그저 게임으로 부르는 걸 영어권에선 ‘비디오 게임 (video game)’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게임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보드게임이나 스포츠 등 전반에서 작동하는 일련의 규칙 체계를 이르는 개념이라는 사실도 있지만 현대에 우리가 흔히 게임으로 칭하는 디지털 매체상의 놀이는 원래 TV에 연결해서 플레이하는 물건이으로 보편화되었었기 때문이다. 즉, 범용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PC 게이밍’이 성립되기 전 게임은 그 자신만을 구동하는 독자적인 콘솔의 영역에서 오롯이 유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용 기기가 아니라 범용 기기에서 실행되는 PC 게임의 세계는 콘솔의 옆에서 어떻게 자라났고 이 둘의 접촉은 어떤 변화를 낳았을까?
비디오 게임 콘솔과 범용 PC의 혈투 역사

* 코모도어 64와 패미컴
1972년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로 발매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를 시작으로 1974년 그 유명한 ‘아타리’의 <퐁> 출시까지 콘솔 시장의 태동이 있었다. 그러나 아타리가 주도하던 시장은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리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던 터에 ‘아타리 쇼크’라는 대대적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1].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 콘솔의 대적자로 범용 PC가 슬슬 부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80년대에마저도 아직 PC는 비디오 게임에 제대로 상대가 되지는 못하는데, 이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가격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1985년 북미에 출시된 ‘닌텐도’의 ‘패미컴 (NES)’은 출시가가 179달러였지만[2] 같은 해 출시된 ‘코모도어’의 ‘아미가 1000’은 1,295달러[3]였고 가격을 대폭 낮춘 ‘아미가 500’조차 699달러에 육박했다[4]. 패미컴과의 실질적인 경쟁은 1982년도에 출시된 ‘코모도어 64’와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코모도어 64는 아타리 쇼크 당시 콘솔 시장이 붕괴하고 바로 그 폐허 위에 남은 PC의 승자였다. 그러나 아미가 같은 경우엔 가격에 걸맞게 패미컴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코모도어 64는 높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특출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패미컴은 최대 54개의 색상 중에 한번에 25개까지 표시할 수 있었지만 코모도어 64는 16개의 색상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5]. CPU 또한 코모도어 64가 기용했던 ‘MOS Technology 6510’는 최대 1.022 MHz까지 출력 가능했지만[6] 패미컴의 ‘Ricoh 2A03’은 1.79 MHz까지 성능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7]. 코모도어 64가 앞서는 부문은 패미컴의 2KB 램보다 뛰어난 64KB 램, 그리고 CPU에 음향 처리 장치가 내장되어 있었던 패미컴과 달리 별개의 음향 칩을 외장으로 달고 나왔다는 점뿐이었다[8].
차례로 ‘아타리 8비트 컴퓨터’ (1979, 8비트, 550달러)[9], ‘IBM PC’ (1981, 16비트, 1,565달러)[10], 그리고 코모도어 64는 초기 고유한 PC 게임 시장을 구축하긴 했어도 그중 가장 많이 팔린 코모도어 64의 1천2백만 대 판매수[11]는 패미컴의 6천만 대 판매 부수를 따라잡기엔 턱없었다[12]. 즉, 80년대 중반까지 비디오 게임 콘솔이 8비트 성능에 머물러 있던 데에 반해 PC는 16비트라는 우월한 성능을 자랑했음에도 정작 1987년의 16비트 세대 게임 시장을 시작하는 주축이 되지조차 못했다.
‘비트 전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16비트 세대의 콘솔 시장은 ‘PC 엔진 (TurboGrafx-16)’이 8비트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16비트만큼의 성능을 내는 것으로 홍보한 데서 시작한다[13]. 다시 말해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기기는 콘솔과 PC를 통틀어 이미 1981년도에 8비트와 16비트가 혼재했지만 ‘게임 콘솔’로서 16비트의 경쟁이 시작된 건 1987년도이다. 이는 PC가 아직 콘솔의 아성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PC 엔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실 정말 게임 콘솔 기기 자체가 16비트인지 8비트인지도 중요하지 않을 만큼 성능이 반드시 콘솔 시장 경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도 않는다는 바를 시사한다.
콘솔 시장에서 중요한 건 가격, 그리고 해당 기기에서 구동할 수 있는 게임 소프트웨어들의 목록 등이었고 성능은 그저 홍보 전략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때까지는 거의 아타리, 닌텐도가 콘솔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콘솔 전쟁’이라 할 만한 시장 경쟁이 시작된다. 이때의 경쟁은 PC 엔진을 만든 ‘NEC’, ‘메가 드라이브’를 만든 ‘세가’, 그리고 ‘슈퍼 패미컴’을 만든 닌텐도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각 ‘게임보이’, ‘게임 기어’, ‘PC 엔진 GT’를 출시해 휴대용 게임기 시장이 처음으로 열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이 삼자대전의 구도는 어째선지 2025년 현재까지도 그 참가자들은 바뀌어도 대전자의 수가 꾸준하게 유지된다. 닌텐도는 그대로 있고 NEC와 세가의 자리에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대신 입장하면 지금의 콘솔 전쟁 그림이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2D 게임 위주였던 콘솔 업계가 3D로 방향을 옮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1994년도 32비트 전쟁의 시기에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들고 입장하며 NEC를 밀어낸다. 닌텐도는 ‘닌텐도 64’를 발매했고 이름처럼 64비트 CPU를 탑재해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우월한 성능을 자랑했으며 가격도 더 저렴했지만 시장 경쟁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에게 패배한다.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복잡한 게임 개발 환경과 외부 개발사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던 턱이다[14]. 플레이스테이션은 4,000여 개의 게임을 지원했으나[15] 닌텐도 64는 총 388개의 게임밖에 출시하지 않았다[16]. 이 모든 싸움에서 제일 뒤로 밀려난 ‘세가 새턴’조차 1,000개가 넘는 게임이 출시됐다 (그럼에도 세가는 셋 중 가격이 가장 비쌌다)[17]. 이와 같은 ‘독점작’의 문제는 2017년에도 ‘닌텐도 스위치’ 독점작이었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그리고 2024년에도 ‘플레이스테이션 5’ 독점작이었던 <아스트로봇>이 올해의 게임상을 타는 등,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있다.
그런데 플레이 가능한 게임의 개수로만 따지면 코모도어 64가 패미컴보다 훨씬 많았다. 코모도어 64의 게임들을 기록하는 데이터베이스 ‘LEMON 64’는 현재까지 8360여개의 작품들을 소장하는 걸로 기록하고 있지만[18] 패미컴은 1,300여 개의 게임밖에 출시하지 않았다[19]. 여기서는 가격도 시장 구성 요소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기기 작동의 편의성이 중요한 차별점을 만들었다. PC에서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선 코모도어 64의 ‘베이직 (BASIC)’, 그리고 그 이후 PC 게임을 선두했던 ‘DOS’ 등 각 운영 체제를 위한 명령어를 구사할 수 있었어야 했으나 콘솔은 그저 카트리지나 CD를 꽂고 전원을 켜기만 하면 그 외에 별다른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 접근성의 측면에서 큰 경쟁성을 가져갔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UI 개발을 통해 PC의 접근성 문제가 일반 소비자층에게 해결되기 시작한 ‘윈도우즈’ 운영 체제의 출시가 PC 게임에게 결정적인 경쟁력을 가져다준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코모도어 64까지는 가정용 PC의 세대가 운영 체제인 베이직보다 기기명 자체인 코모도어로 더 흔히 불렸다면 DOS와 윈도우즈부터는 본격적으로 기기보다 운영 체제로 PC의 세대를 지칭하는 현상으로 옮겨간다. 이는 PC가 점차 모듈화되어가며 하나의 회사에서 본체부터 마우스까지 하나하나 완성된 형태로 찍어내는 이전의 방식으로부터 ‘인텔’, ‘HP’, ‘델’ 등이 IBM과 호환되는 PC 체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며 하나의 제조사가 지배권을 갖기보다는 여러 제조사들이 공유하는 운영 체제가 소비자들에게는 더 공통적으로 분포되었기 때문이다[20]. 특히 VGA, 사운드 블라스터, PCI 등, 품질과 성능을 보장하는 ‘표준’들이 차례로 소개되며 현대적 PC의 발판이 점차 잡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지배적 운영 체제가 명령어 기반의 DOS로부터 사용자 친화적 UI 기반의 윈도우즈로 옮겨가며 게임 시장에서의 PC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 PC에서 개발된 장르의 영역은 콘솔에 비해 ‘액션’보다는 ‘어드벤처’에 치중되었다. 콘솔이 기용하는 조이스틱과 PC가 사용하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차이가 장르 발전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 준 것이다. <1942> (1984)와 <더블 드래곤> (1987)으로 각각 대표되는 종스크롤과 횡스크롤 액션 장르는 아예 오락실 게임으로 먼저 출시된 후 콘솔로 이식되었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985)의 플랫포머 장르조차 근본적으로 <동키콩> (1981)에서 시작된 오락실 양식의 변주였다.
<스타 폭스> (1993)의 레일 슈터 장르도 당연히 오락실 게임 <스페이스 해리어> (1985)에서 이어졌다. 스포츠 게임은 우선 <퐁>부터 본래 오락실 게임이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즉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콘솔’은 ‘아케이드 콘솔’에서 옮겨 온 ‘홈 콘솔’을 줄여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콘솔계에서 <드래곤 퀘스트> (1986)와 <파이널 판타지> (1987)로 등장한 RPG 게임들은 PC에서 시작된 <울티마> (1981)와 <위저드리> (1981)의 게임성을 전수한 것이다. 다시 말해 콘솔은 오락실에서 계승되는 조이스틱을 통한 ‘액션’ 위주의 게임성을 담당했고, PC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한 탐험, ‘어드벤처’의 게임성을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키보드로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1976년 최초의 텍스트 기반 게임 <어드벤처>가 탄생했고[21], 여기에 그래픽이 입혀져 1980년 <킹스 퀘스트> 시리즈가 시작된다[22]. 그리고 스틱과 버튼 조작에 비해 커서 이동 및 클릭이 용이하다는 점을 이용해 <원숭이 섬의 비밀> (1990)과 <미스트> (1993)로 대표되는 포인트 앤 클릭 장르의 세계도 개시된다. 마찬가지의 이점이 발전시킨 또 하나의 장르가 전략 및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1980년 ‘애플 II’용으로 출시된 <컴퓨터 비스마르크>의 장르는 1983년 <리치 포 더 스타즈>와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확산하고 발전한다. 여기서 1989년 <심시티>와 1991년 <문명>의 성공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장르 지형이 펼쳐진다. 이렇게 기기 특성에 따라 콘솔과 구별되는 장르 발달 기조를 보이다 본격적으로 액션의 혁신마저 PC에서 이뤄진 계기가 바로 DOS 시대다. <울티마 언더월드> (1992)와 <시스템 쇼크> (1994)로 이머시브 심이, <어둠 속에 나 홀로> (1992)로 서바이벌 호러가, 그리고 <울펜슈타인 3D> (1992)와 <둠> (1993)으로 FPS가 시작된 것이다.

* 펜티엄 2 PC와 DirectX 개발 도구 배포 CD
그리고 1995년 ‘윈도우즈 95’의 출시로 PC의 보급 지형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997년 플레이스테이션은 북미에서 6백만 대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지만[23] 이미 3천7백만 가구가 PC를 보유하고 있었다[24]. 그러나 아직도 플레이스테이션에 맞먹는 PC를 장만하려면 비교도 안 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 가장 보편적이었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의 ‘R3000’ CPU와 맞먹는 성능을 지닌 인텔 486 CPU는 출시 당시 도매가로만 1,056달러에 육박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1994년 486의 도매가는 272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플레이스테이션 콘솔 전체가 299달러였던 것과 달리[25] 486 CPU가 내장된 PC 완제품을 사기 위해선 1,00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486 출시 당시의 PC 완제품 가격을 상상해 보라)[26].
그러므로 PC의 보급률이 급등한 이후로도 아직은 성능 대비 가격의 문제로 게임 시장에선 콘솔이 여전히 강세였다. 1997년, 233MHz의 출력을 낼 수 있는 ‘Cyrix 6x86’ CPU를 탑재한 ‘저가형’ 컴퓨터는 699달러에 팔렸다[27]. 아무리 클럭 수가 성능의 직선적 지표는 아닐지라도 1988년 개발된 CPU를 탑재하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전반적인 성능이 좋았으리라는 점에 의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기기 사양에 알맞게 완벽하게 최적화된 전용 게임 소프트웨어만을 구동하는 콘솔 게임에 비해 플레이 경험 자체의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디아블로> (1997)나 <스타크래프트> (1998)와 같은 2D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PC 게임의 부흥을 가져오기 시작하는 동안 콘솔에서는 벌써 <파이널 판타지 7>, <골든아이 007>, <크래쉬 밴디쿳> 등의 3D 게임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일례로 <파이널 판타지 7> 같은 경우엔 1998년 PC로 이식이 이루어졌는데 해당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최소 사양은 ‘펜티엄 133’에 3D 가속 기능이 있는 외장 그래픽 카드를 포함한 기기였고 1998년에 저 사양을 간신히 만족시키는 PC가 (모니터 없이) 999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제대로 ‘3D 게이밍 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은 제품은 1699달러에 팔리고 있었으며 고사양 제품은 3599달러까지 육박했다[28].)
같은 해 출시되어 이후의 게임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하프라이프>도 비슷한 최소 사양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 7>은 1997년 출시 직후 한 달 만에 2백6십만 부를 팔았고[29] <하프라이프>는 그 획기적인 게임성에도 한 달 동안 2십1만 부밖에 팔지 못했다[30]. (1998년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는 1년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1백5십만 부를 팔았다[31].)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 95를 출시하고 얼마 안 있어 ‘DirectX’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배포한 이후 PC 게임 개발에 붙은 불은 점점 더 커져만 갈 뿐이었다.
2000년대로 들어오며 콘솔 경쟁에서도 세가가 빠지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를 들고 오며 현대의 구도가 완성된다. 이번 싸움에서는 닌텐도의 ‘게임큐브’와 엑스박스 모두를 제치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그 다음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360’을 제치고 닌텐도의 ‘위’가 올라선다. 직후 ‘플레이스테이션 4’는 다시 완벽한 승리를 되찾았고 닌텐도 스위치 또한 그 다음 선두로 복귀한다. 즉, 2000년대에 벌어진 모든 콘솔 전쟁에서 성능은 또 다시 역시나 결정적 인자로 작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성능이 가장 뛰어났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제품군이 단 한 번도 승자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콘솔의 영역에서만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PC의 영역에서도 동시적으로 덤빈다는 것이었다.
콘솔과 PC 사이 성능 및 가격 대비의 격차는 1985년도에 비해서 아주 근소하게 줄었을 뿐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남아 있지만 PC의 접근성은 어느 순간 선택이 아니라 생활에 필수 차원까지 넘어가 버렸다. 가정마다 게임을 위해 기기를 마련하지는 않아도 인터넷이나 문서 작성 등을 위해 PC를 구입하는 것은 기본적 생활 수단의 차원이 되었고 이를 위해 국가에서는 지원까지 하기 시작했다[32]. 따라서 차세대 게임과 별개로 저사양의 고전 게임이나 인디 게임, 혹은 웹 기반 (플래시) 게임 등은 디지털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의 최종적 보편화를 가져왔다. 목돈을 깨 콘솔을 사지 않아도 하다못해 도서관 PC를 이용해서라도 게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술 경제 상승 지향에 따른 문화적 족쇄

* Voodoo 그래픽 카드
코모도어 64부터 DOS까지 가정용 PC에서 게임은 항상 해당 기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였지 하드웨어가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 상향되는 방식으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가정용 PC는 기본적으로 너른 활용을 지향했으므로 움직이는 궤적 자체가 달랐다고 할 수 있지만 콘솔 시장도 당대의 지배적인 콘솔의 성능 한계에 따라 소프트웨어의 역량이 제한받았다. 가정 보급용 하드웨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그에 맞춰 ‘돌릴 수 있는’ 하드웨어가 개발되는 건 비교적 최근에서야 일어나기 시작한 현상인 것이다. PC의 최상위 그래픽카드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게임이 오히려 콘솔 버전으로는 그래픽 사양을 낮춰서 발매한다든지, 콘솔로 발매된 게임이 PC로 이식되며 텍스처 해상도의 한계를 해제한 상태로 발매한다든지 하는 일은 오늘날 비일비재하다.
그 전에는 비호환-완성형 이었던 범용 PC가 모듈형-조립식 으로 옮겨감에 따라 구매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사양 조건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게임도 정해진 특정 기기에 따른 고정 옵션으로 이식되는 형식이었던 과거와 달리 사용자 개개인 PC의 조건에 맞게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범용 그래픽 설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DOS 게임이었던 <울티마 언더월드>에서 벌써 현대 그래픽 설정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디테일 설정’이 메뉴에 존재한다. 그리고 <크라이시스> (2007)는 이미 동시기 콘솔 사양에서 지원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그래픽을 자랑해 게임을 기준으로 한 PC 벤치마킹 흐름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에는 그래픽 설정 따위가 없는 상태로 게임이 출고되었고 해당 기본 상태가 곧 최고 설정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자 사양이 전부 다른 PC 상에서 게임을 실행하니 사용자의 플레이 환경에 맞출 수 있는 설정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역으로 또 사용자들은 자신의 PC 환경을 게임의 최고 사양에 맞추고자 움직이게 된 것이다. 단순히 실행이 된다를 넘어서 그래픽 최고 옵션으로 최소 60fps는 보장이 되어야 게임이 제대로 ‘돌아간다’라고 할 수 있고 플레이 경험을 충만하게 만끽한다 할 수 있게 되었다. 1996년 최초로 소비자가 구매 가능한 그래픽 카드 “Voodoo”가 출시된 이후 29년 동안 지금까지 가장 최첨단의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더 나은 부품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커지기만 했고, 게임도 이에 맞춰 차세대 기술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양의 한계를 실험하는 피드백 고리가 형성되고 말았다[33].
특히 소위 ‘AAA 게임’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개발 게임들은 게임성의 혁신을 도모하기보단 오로지 게임 구동 기기에 얼마나 부하를 줄 수 있는지만을 대결하는 듯한지가 오래다. 마치 비트 전쟁이 카드 전쟁으로 대체된 것처럼. 무엇보다 게임의 본질에 정말로 성능이 중요하지 않은 점마저 동일하게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결국 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은 어디까지나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경쟁에 관한 것일 뿐이다.
단순 그래픽 카드에서만 성능 박탈감의 문제가 생겨난 것도 아니다. 2003년 ‘스팀’이 개척한 온라인 게임 판매 서비스를 기점으로 게임 개발자들은 이전까지 CD나 카트리지로 배포하며 용량의 한계와 싸워야 했던 오랜 어려움의 역사와 드디어 이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유통은 물리적 데이터 저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해도 플레이어들의 하드 드라이브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아가 저장소의 문제는 용량뿐 아니라 파일 읽기 속도가 게임 로딩 성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3 시절부터 CD 읽기 속도의 한계로 대용량에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의 로딩 속도가 PC에 비해 현저하게 차이 나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4로 와서는 콘솔도 하드 드라이브를 장착했고 스팀이 개척해 놓은 교역로를 따라 소프트웨어의 디지털 유통 추세를 따랐다. 그러나 이제는 HDD가 SDD에 비해 읽기 속도가 현저히 뒤처지기 시작했고 또 다시 플레이스테이션 4는 PC에 비해 로딩 속도의 문제에 부딪혀야 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5에 와서는 소니도 콘솔에 SSD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콘솔 개발 기업들이 이 모든 변화를 따라가는 동안 PC를 보유한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로 따라잡아야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게임의 물리적 복사본의 소유권을 넘기는 기존의 유통 방식에서 디지털 판매로 넘어가며 플레이어들이 더 이상 금액을 지불해도 게임을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영구 대여’하는 것일 뿐이라는 문제도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당신 계정 속 디지털 라이브러리에 ‘저장’된 게임은 개발사나 유통사 등이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임의로 ‘서비스 중지’시켜 버릴 수 있다.
그래픽의 발전뿐 아니라 용량, 연산 속도까지 기술과 맞물린 게임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소비자’로 만들고 자본에 종속시켰다. 다시 말해 음악, 문학, 미술, 영화, 연극 등 해당 문화를 향유하는 데에 매체의 기술 변화가 치명적인 속도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이 예술 형식들을 위한 정보 보존-전달 기술 성장의 특이점을 지나온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가장 최첨단의 기술과 너무 밀접하게 뒤얽힌 나머지 현재 독자가 작품과 접촉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물리적 · 경제적 제약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뒤처지지 않고 쉼 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은 우리 세대의 구텐베르크 성서이다. 문제는 우리 세대가 후기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것이고 지금의 채륜들은 양피지에서 파피루스로, 파피루스에서 종이로 바뀐 천 년의 흐름을 10년 안에 집약시키고 있고 또 구텐베르크들은 상승 지향에 미쳐 금속 활자의 크기를 어디까지 줄여 같은 종이 안에 얼마나 많은 글씨를 욱여넣을 수 있는지, 종이를 3D 활자 기록 장치로 만들 순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독자들은 점점 더 크기가 작아지고 기록 방식이 복잡해지는 글씨에 맞춰 글 하나를 읽기 위해 광학 장치를 계속 바꿔 가며 장만해야 한다. 그러나 글자 수가 많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확장된 접근성에 따른 인디 게임의 폭발

* ZX 스펙트럼에서 구동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범용 PC의 게임계 장악이 반드시 시장 중심 개발-소비 피드백 고리라는 문화적 폐해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IBM-코모도어 시대부터 이미 PC의 보급은 게임 개발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한껏 넓혀 주었고, 따라서 인디 게임의 효시도 이때 이미 쏘아 올려졌었다. 1982년 미국에서 버니 드 코븐과 재런 러니어는 “최초의 예술 게임”으로 일컬어지는 <에일리언 가든>을 아타리 8비트 컴퓨터용으로 만들었다[34]. 영국에서 1983년부터 제프 민터는 코모도어 64용으로 <돌연변이 낙타의 공격>[35], <호버 보버> 등을 독립 개발했고[36], 매튜 스미스는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며 ‘ZX 스펙트럼’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스틱스>, <매닉 마이너>, <젯 셋 윌리> 등을 만들었다[37]. 1984년 멜 크라우처는 실험적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ZX 스펙트럼용으로 내놓는다[38]. 나아가 1982년 앤드류 플루겔만이 IBM PC로 ‘PC-Talk’을 개발해[39] 셰어웨어의 단초를 닦은 것으로 프로그램 독립 유통의 세계가 열렸다[40].
그리고 1996년 매크로미디어사에서 ‘플래시’ 웹 애니메이션 플러그인을 내놓은 건 또 한 번 인디 PC 게임 세계의 전례 없던 폭발을 일으킨다[41].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단순해진 게임 제작과 게임을 따로 설치할 필요 없이 그저 웹 접속만으로 플레이 경험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플래시 기반 게임의 이점은 단연 인디 세계 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의 전례 없는 전파를 일으킨다. 개인들에게 게임 개발의 용이함을 넓혀 준 개발 도구들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1992년 개인들에게 게임 개발의 용이함을 넓혀 준 ‘RPG 메이커’가 처음 발매되었고[42] 1999년엔 ‘게임메이커’가 공개되었다[43]. 그리고 3D 구현이 가능은 하지만 그럼에도 2D 게임 개발이 주역이었던 이전의 인디 게임 도구들에서 2005년에 공개된 ‘유니티’, 2014년에 출시된 ‘고도’[44], 2015년에 무료 공개가 된 ‘언리얼’의 순서로 넘어가며[45] 3D 인디 게임들이 점차 폭발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다.
콘솔이 지배하던 게임계의 영역에서도 카트리지를 해킹하는 ‘롬핵’, 독자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홈브루’ 등의 방식으로 초기 인디 게임의 형태가 출현하기는 했지만, 하드웨어락 시스템이나 카트리지 기판 조작의 물리적 난이도 등으로 PC를 통한 개인 개발의 잠재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가 카트리지에서 CD로, 그리고 디지털 배포 형식으로 옮겨가며 가격이 내려가는 듯했다가 AAA 게임들의 경우 상기했던 기술 상승 지향의 문제로 개발 비용이 계속해서 치솟아 다시 높아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인디 게임들을 들여다보자면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한 가격에 가장 획기적이고 충만한 게임 경험을 선사해 주는 창작자들의 세계가 분명 쌓아 올려져 있다. 우리에겐 아직도 탈중앙, 탈자본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1] Dmitri Williams, “Structure and competition in the U.S. home video game industry” International Journal on Media Management (London: Routledge, 2009), pp. 42-43.
[2] https://www.thegamer.com/how-much-did-every-nintendo-console-cost-at-launch/
[3] https://www.pcworld.com/article/507533/inside_amiga_1000.html
[4] https://www.computinghistory.org.uk/det/7800/commodore-amiga-a500/
[5] https://arstechnica.com/gaming/2021/12/time-to-feel-old-inside-the-nes-on-its-30th-birthday/
[6] Rolf Brückmann, et al., 64 intern (Düsseldorf: Data Becker, 1983), p. 585.
[7] Nathan Altice, I AM ERROR, (Cambridge: MIT Press), p. 49.
[8] Tekla S. Perry, et al., “Design case history: the Commodore 64” IEEE Spectrum (New York: IEEE, ), Vol. 22, No. 3, pp. 48-50.
[9] David H. Ahl, “Random Ramblings”. Creative Computing (Chicago: Ziff-Davis, 1979). Vol. 5, No. 8, p. 26.
[10] https://www.ibm.com/history/personal-computer
[11]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72695-most-computer-sales
[12] https://www.nintendo.co.jp/ir/en/finance/hard_soft/index.html
[13] Carl Therrien, et al., “Enter the bit wars: A study of video game marketing and platform crafting in the wake of the TurboGrafx-16 launch” New Media & Society (Thousand Oaks: Sage Publishing, 2015) Volume 18, Issue 10, p. 4.
[14] Newsweek, “It's Hip To Be Square”, Newsweek (Washington, D.C.: The Washington Post Company, 2000), 2000. 09. 03.
[15] https://www.thegamer.com/how-many-games-were-made-for-the-original-playstation-ps1/
[16] https://www.thegamer.com/nintendo-64-how-many-games/
[17] https://segaretro.org/Saturn_games
[18] https://www.lemon64.com/games/
[19] https://www.thegamer.com/how-many-games-made-for-nes-famicom/
[20] Tom R. Holfhill, “The MS-DOS Invasion: IBM Compatibles Are Conning Home” Compute! (New York: ABC Publishing, 1986), pp. 32-38.
[21] Nick Montfort, Twisty Little Passages (Cambridge: MIT Press, 2003), p. 86.
[22] <어드벤처>가 1980년 아타리 콘솔용으로 재탄생했을 때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 되었고 이는 1986년 <젤다의 전설>의 전신이 된다.
[23] Forbes, “The Game: Sony PlayStation versus Nintendo 64” Forbes (Jersey City, Forbes Media, 1997), 1997. 09. 19.
[24] Eric C. Newburger, Computer Use in the United States: October 1997 (Washington, DC: U. S. Census Bureau, 1999), p. 1.
[25] Imagine Publishing, The PlayStation Book (Bournemouth: Imagine Publishing, 2015) p. 28.
[26] Lawrence J. Magid, “Another Good Year for PC Bargains” Los Angeles Times (El Segundo: Los Angeles Times Communications, 1993), 1993. 12. 23.
[27] TigerDirect, Price Blitz (El Segundo: TigerDirect, 1997), Vol 8, Issues 3, p. 15.
[28] Imagine Media, PC accelerator (New York: Imagine Media, 1998), Vol 1, No 2, pp. 143-145.
[29] https://www.ign.com/articles/1997/03/06/final-fantasy-vii-sales-figures
[30] Imagine Media, PC GAMER (New York: Imagine Media, 1999) Vol 6, No 4, p. 50.
[31] https://www.ign.com/articles/1999/01/21/starcraft-named-1-seller-in-1998
[32] https://news.seoul.go.kr/gov/lovepc-request-info
[33] Imagine Publishing, Next Generation (Brisbane: Imagine Publishing, 1997), p. 68.
[34] Jesper Juul, HANDMADE PIXELS (Cambridge: The MIT Press, 2019), p. 62.
[35] Scott Kincaid, “Attack of the Mutant Camels”. Ahoy! (New York: Ion International, 1984). No. 5, p. 59.
[36] Jesper Juul, op. cit., p. 43.
[37] Chris Bourne, “matthew uncaged” Sinclair User (London: EMAP, 1984), Issue 33, pp. 89-90.
[38] Jesper Juul, op. cit., pp. 57-58.
[39] Dennis Erokan, et al., “ANDREW FLUEGELMAN: PC-Talk and Beyond” MicroTimes (Oakland: BAM Publications, 1985), Volume 2, Number 5, pp. 19-22.
[40] Damon Camille, “Shareware: An Alternative to the High Cost of Software” Medical Reference Services Quarterly (Philadelphia: The Howath Press, 1987), Volume 6, Issue 3, pp. 76-77.
[41] https://www.wired.com/story/history-of-macromedia-flash/
[42] Keith Stuart, “I made the worst role-playing game of all time – and loved every minute of it” The Guardian (London: Guardian Media Group, 2025), 2025. 02. 13.
[43] https://gamemaker.io/en/blog/gamemaker-25
[44] https://analyticsindiamag.com/ai-trends/battle-of-game-engines-godot-vs-unity/
[45] https://www.ign.com/articles/2015/03/02/unreal-engine-4-is-free-for-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