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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수상작] 왜 우리는 '운게'를 즐길 수 있는가? '운빨겜'의 쾌락에 대하여

32

GG Vol. 

26. 10. 10.

일본어권 게임 문화에는 '운게(運ゲー, un-gee)'라고 불리는 말이 있다. 이는 플레이어의 행위로는 어찌할 수 없고, 운(un)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어 버리는 게임을 가리킨다. 주로 그런 특징 때문에 해당 작품이 좋지 않은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 쓰이는 멸칭이다[1]. 한국어로는 '운빨겜'이라는 말이 이에 가깝다.


비디오 게임의 플레이어가 얻는 쾌락이 학습을 통한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함으로써 자신의 게임 조작 능력이 향상되고, 지금까지 달성하지 못했던 곤란을 돌파한 순간 큰 쾌락을 얻는다. 이는 게임을 즐기는 방식 가운데 가장 정통적인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조작 능력을 '플레이어 스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많은 비디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스킬 이외의 요소가 곤란을 타파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컨대 운 덕분에 어쩌다 강한 보스를 쓰러뜨리거나 난관을 돌파하는 일은 흔히 있다. 운게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비디오 게임에는 운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엘든 링(ELDEN RING)〉(2022, FromSoftware Inc., Bandai Namco Entertainment)은 고난도 게임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스 대부분을 쓰러뜨리려면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이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보스로 말레니아라는 캐릭터가 있다. 말레니아에게는 '물새난격(水鳥乱撃)'이라는, 회피하기 몹시 어려운 공격이 있다. 이 공격이 여러 번 발동되면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금방 죽고 만다. 그러나 우연히 그 발동 횟수가 적다면 말레니아의 체력을 크게 깎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운만으로 말레니아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말레니아의 체력을 절반도 깎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체력을 4분의 1까지 줄였어”라는 경험은 많은 플레이어가 해 보지 않았을까. 거기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크게 관여하고 있다.


비디오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플레이어 스킬로는 다 제어할 수 없는 요소가 있으며, 본고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운 요소'라고 부른다.


본고의 목적은, 본래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을 통해 얻어지는 게임 클리어의 성취감을, 운 요소를 지닌 게임에서도 플레이어가 크게 잃지 않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왜인가를 설명하는 데 있다.


본고의 논의는 플레이어 스킬, 운 요소, 노력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주로 사용하여 6단계의 스텝으로 진행한다. 논의의 후반부에서는 일본의 철학자 구키 슈조(九鬼周造)의 '목적 없는 목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운 요소가 플레이어에게 멋진 순간을 제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인다. 이 논의에서는 멸칭으로서의 좁은 의미의 운게에 머무르지 않고, 널리 운 요소를 지닌 게임 일반을 시야에 넣는다. 마지막에는 멸칭일 터인 운게라는 말의 이미지를 뒤집어 보고자 한다.



STEP 1 운 요소와 플레이어 스킬의 연결


먼저 운 요소의 강약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운 요소란 0이냐 1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운 요소는 있느냐 없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러데이션을 지닌 것이다. 운 요소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강한 게임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게임도 있다. 운 요소에는 강약이 있다.


그리고 운 요소의 강약은 작품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각각의 도전(attempt)마다 그 강약이 달라진다. 여기서 말하는 한 번의 도전이란 게이머들이 '트라이(try)'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어떤 강한 보스에게 맞서 싸우다가 죽기까지의 일련의 흐름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이 도전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루프를 생각할 때, 아직 그 곤란(예컨대 어떤 보스와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처음에는 그 도전의 운 요소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든 말레니아의 예로 말하면, 물새난격을 발동하는 조건은 사전에 제시되지 않으며, 프로그램 내부의 무작위성에 따라 발동된다. 운 요소에 의해 적의 강함은 변동하며, 플레이어가 그것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투 횟수를 거듭하면 그 전투에서의 운 요소의 강약을 가늠하는 일이 점점 가능해진다. 이는 일종의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과 병행하여 일어난다. 적의 움직임을 여러 번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플레이어 스킬과는 무관한 행운의(혹은 불운의) 상황이라는 것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즉 여기서 운 요소의 인식이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과 연동한다.



STEP 2 트라이를 거듭하여 노력하는 것


운 요소의 인식이 플레이어 스킬과 연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플레이어가 느끼는 성취감의 쾌락을 줄이지 않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레이어 스킬이 향상됨으로써 “이번 도전은 어쩌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비교적 좋은 결과를 남길 수 있었다”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플레이어의 성취감을 감소시킬 가능성마저 있다. 왜냐하면 설령 강적을 쓰러뜨렸다 해도, 그것이 어쩌다 생긴 행운 덕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받아들이는 성취감은 줄어든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단순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여기서 또 하나의 다른 요소를 다루고자 한다. 그것이 시도 횟수라는 파라미터, 곧 '노력'이다.


도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번이고 이루어진다. 이 '몇 번이고'라는 특징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많은 도전이 필요해지는 이유가 플레이어 스킬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불운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인지, 이 둘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반복한다는 시도 횟수의 축적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요컨대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한다는 '노력'의 가치다. “보통 사람이라면 50번을 시도해도 클리어하지 못하면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100번이나 도전할 수 있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인식함으로써, 그 노력의 가치는 '노력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플레이어 스킬에 가까운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 '노력'은 '왜 우리는 운게를 즐길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품이 된다. 운 요소, 플레이어 스킬,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운게를 즐기는 구조를 생각한다.



STEP 3 플레이어 스킬과 노력의 차이


노력이라는 부품을 통해, 플레이어가 운 요소라는 부조리를 극복하고 성취감을 얻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 간다.


노력에 가치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운 요소는 플레이어 스킬하고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운 요소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 노력의 양은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라며 막대한 노력조차 그 가치를 잃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노력은 어떤 한 지점에서 플레이어 스킬과 결정적으로 다르며, 그 차이가 운 요소를 극복한다. 그것은 노력의 출발점에 있는 플레이어의 '의지'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는 노력은 플레이어의 의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플레이어 스킬이라는 것은 노력과 달리 기본적으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몸에 밴 행동의 자연적 경향성으로서 발현된다. 물론 봐주기를 할 때처럼 플레이어 스킬을 억제하는 일은 의지로 가능하지만, 이번처럼 곤란한 도전에 임하는 장면에서는 그런 경우를 검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고 싶다”라는 마조히즘적 쾌락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레이어 스킬은 그 상한을 넘어 의지에 따라 임의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훈련 등을 거쳐 어느새 그 상한을 넘어서는 것이며, 그 훈련이란 이미 노력의 영역에 있다.



STEP 4 목적 없는 목적


틱톡이나 유튜브의 숏폼 영상에서 인기 있는 장르로 트릭샷(Trick shot)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멀리서 공을 던져 작은 구멍에 넣는 식의 도전을 본 적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영상은 수천 번의 시도 끝에 거의 우연이라 해도 좋을 기적의 순간을 목격하는 쾌락을 제공한다. 이런 부류의 영상에는 분명 기적의 맛있는 부분만 집어 먹는 듯한 구석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저속함이 있다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영상이 주는 쾌락에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해도 '노력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있다. 거의 불모라고도 할 수 있는 도전을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그 '의지'를 기리는 부분이 이런 영상에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노력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 해도, 운 요소는 그 노력마저 불모의 것으로 만들어 가치를 상실시킨다. 운이 좋았다면 노력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르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일본의 철학자 구키 슈조가 쓴 『우연성의 문제(偶然性の問題)』[2]라는 책에 있는 '목적 없는 목적'이라는 아이디어를 빌리고자 한다.


구키는 '목적 없는 목적'을 설명할 때 1934년의 신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934년 9월 오사카의 항구에 입항해 있던 순양함 이스즈(五十鈴)의 함장은 야마다(山田) 대좌라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 함장의 초대를 받아, 당시의 영화 스타였던 배우(여성) 야마다 이스즈(山田五十鈴)가 그곳을 방문했다. 여기서 성+함명의 조합이 그 배우의 이름인 야마다 이스즈와 일치한다는 우연이 일어난 것이다[3]. 이 우연으로 인해 당시 신문에 야마다 이스즈가 방문한 행사가 뉴스 기사로 실렸다.


이 사례는 몹시 시시한 말장난이 주제가 된 사건이다. 함명과 함장의 성의 조합이 배우의 이름과 일치하도록 누군가가 꾸민 것은 당연히 아니다. 여기서는 누구의 목적도 의지도 아닌 우연이 마치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처럼 강조되고 있다. 구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목적 없는 목적'의 강조의 결과, 우연은 우연이 아닌 듯한 상(相)을 띠며 자기부정의 지향적 구조를 취하게 된다. (구키 슈조, 『우연성의 문제(偶然性の問題)』, 이와나미쇼텐, 1935, 96쪽, 번역은 필자)


여기서 구키가 말하는 '자기부정'이란 우연이 마치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흡사 신의 뜻이었던 것 같다든가 기적 같다는 것이다.



STEP 5 우연에서 기적으로의 반전(말레니아전을 예로)


이 '목적 없는 목적'을 보조선 삼아 생각하면, 왜 운 요소가 있는 게임에서 우리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단숨에 반전된다. 우리는 운 요소가 있기에 오히려 우리의 플레이를 하나의 위대한 운명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앞서 언급한 말레니아전을 예로 설명해 보자.


말레니아가 어떤 공격을 펼쳐 오는가에는 여러 조건이 있지만, 아마도 일부에 무작위성이 짜 넣어져 있을 것이다. 그 무작위성은 프로그램상으로는 어떤 난수 함수가 출력한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말레니아라는 캐릭터는 그러한 인과 계열을 따라 움직인다. 한편 〈엘든 링〉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는 전혀 다른 인과 계열에 따라 행동한다. 그날의 몸 상태나 말레니아와 대결하기까지의 행동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힌 독립된 인과의 흐름이다. 그리고 말레니아전이라는 곤란에 맞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 도전한다. 플레이어의 인과 계열과 말레니아의 인과 계열은 전혀 별개의 것이면서도, 최종적으로는 플레이어의 승리라는 결말에서 교차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 결말은 단지 필연적인 하나의 결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도, 심지어 제작자조차) 전혀 제어할 수 없는 운 요소라는 무작위함이 있기 때문이다.



STEP 6 부조리를 의지가 삼킬 때


만약 이것이 무작위 요소가 매우 옅은 게임이었다면 어떨까. 〈인투 더 브리치(Into the Breach)〉(2018, Subset Games)처럼 적의 행동이 사전에 공개되고 매 턴의 귀결을 결정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게임의 인과 계열과 플레이어의 인과 계열의 얽힘으로부터 정해진 결과(클리어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출력된다[4]. 그러나 운 요소에 의해 그러한 필연성은 교란된다.


이 사태는 일반적으로 “클리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운 요소 같은 무작위함 덕분에 운 좋게 이길 수 있게 됨으로써, 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운 요소는 게임을 쉽게 만듦으로써 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는 장치라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그러나 운 요소의 작용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이 본고가 가장 주장하고 싶은 지점이다.


운 요소라는 '목적 없는' 존재가 가져오는 결과의 요동에 플레이어는 휘둘리면서도, 플레이어의 의지에서 시작된 대량의 도전의 인과 계열과 게임의 인과 계열이 어딘가에서 최종적으로 만난다. 그 만남이 고투 끝의 승리라는 결말이 되었을 때, 우연은 단순한 우연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그것은 '목적 없는 목적'으로서의 빛을 얻는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언제 플레이를 그만두어도 좋았고, 아니 오히려 운 요소라는 부조리가 플레이어의 노력을 망쳐 버리는 상황에서는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유의미한 일을 하는 편이 나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기에 노력마저 부조리한 것이 되고, 그럼에도 그 부조리를 플레이어의 의지가 삼켜 냈기에, 오히려 그 승리라는 결말은 뜻깊은 것이 되는 것이다.



마치며: 운게와 비디오 게임


처음의 의문인 '왜 우리는 운게를 즐길 수 있는가?'로 되돌아가 보자. 이 의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운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쾌락을 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플레이어 스킬의 향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가 운 요소라는 부조리를 부조리하게 극복하기에, 그 승리는 특별한 것이 된다”라고.


비디오 게임은 이 기적처럼 보이는 만남을 스포츠나 보드게임 같은 다른 유형의 게임보다 훨씬 많이 발생시키는 구조다. 왜냐하면 게임 전체에서 일부를 잘라 내어 그것에 몇 번이고 도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축구의 추가 시간(인저리 타임)만을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하게 하는 것과 같다. 비디오 게임은 우연이라는 기적의 발생을, 전 세계의 플레이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까운 것으로 일어나게 하는 데 매우 알맞은 시스템인 것이다.


[1] 게(ゲー, gee)란 일본어권에서 흔히 쓰이는 '게임'이라는 말의 축약 표현이다. 이 '게'를 사용한 다른 말로는 무리게(無理ゲー, muri-gee) 등이 있다. 참고로 무리게란 본래 클리어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게임이나 버그 때문에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사회 계층의 고착화 등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함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쓰인다.
[2] 『우연성의 문제』에는 한국어판 『우연이란 무엇인가』(김성룡 옮김, 이회문화사, 2000)가 있다. 한국어판은 원제를 직역하지 않고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었다.
[3] 특히 일본어에서는 성+함명+함장이라는 조합으로 함장을 부르는 데에 큰 위화감이 없다. 그래서 이런 조합으로 부르는 일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는 이 말장난에 다소 위화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4] 〈인투 더 브리치〉에서도 운명적인 순간은 찾아온다. 그러나 그 근거는 “플레이어가 기적적으로 훌륭한 수를 떠올렸다”처럼 플레이어 쪽에 강하게 의존한다. 이 점이 운 요소가 강한 게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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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게임비평가)

도쿄 거주. 평일에는 엔지니어로 일하며, 2013년부터 블로그 「비디오게임과 일링크스의 물가(ビデオゲームとイリンクスのほとり)」에서 비디오게임 비평을 꾸준히 써 왔다. 2022년에는 일본의 서브컬처 비평 사이트 「주말비평(週末批評)」에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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