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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수상작] 악마를 속이는 군주: <소버린 타워>와 완벽주의의 실패

32

GG Vol. 

26. 10. 10.

※ 본 글은 <소버린 타워(Sovereign Tower)>의 진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는 순간, 세계는 잠시 침묵에 빠진다. 그리고 곧 방금 본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간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잃어버렸던 물건이 돌아오고, 죽었던 동료는 다시 살아나며,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다시 선택의 기회를 준다. 타임 루프 장르의 한 장면 같은 이 감각은 사실 내가 게임을 하며 수없이 반복해 온 습관이다. 나는 게임이 선사하는 실패를 좀처럼 수용하지 못해 왔다. 나에게 실패는 유쾌한 우연이나 마땅한 결과가 아닌 바로잡아야 할 오류이자 메꿔야 할 손해에 불과했다. <발더스 게이트 3>에서 주사위 굴림에 실패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마다, <림월드>에서 예상하지 못한 침략에 정착지가 망가질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최근 세이브 파일을 불러왔다. 설령 그것이 플레이 흐름을 뒤틀어 놓는다고 해도 말이다.


현대 플레이어들에게 이러한 행위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게임 초기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는 ‘리세마라(リセマラ)’부터, 조금의 손해도 허용하지 않는 ‘세이브 스컴(save scumming)’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종종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제하려 든다. 실패를 거부하고, 모든 수집 요소를 획득하며, 오차 없이 진 엔딩과 도전 과제 100%를 달성하려는 완벽주의는 오늘날 게임을 ‘잘’ 하고 싶은 플레이어들 사이 흔한 플레이 양식이 되었다. 그러나 실패와 그 책임을 수용자에게 전가한다는 사실은 게임만의 고유한 미학적 특징이다. 게임학자 예스퍼 율이 지적했듯, 게임은 안전한 가상 공간 속에서 플레이어가 실패의 고통을 겪고 이를 극복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회복 탄력성을 창출하는 미학적 도구다[1]. 그러나 세이브-로드라는 외적 장치는 실패의 불가역성을 무력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게임은 선택의 연속이자 그 집합체이다. <발더스 게이트 3>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이 대서사를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게임뿐 아니라, 리듬 게임과 액션 게임,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테트리스>나 <팩맨>까지도 우리에게 선택을 계속해서 요구한다.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 상대를 공격할 것인지 회피할 것인지, 누군가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와 달리, 대부분의 게임이 플레이어의 능동적인 선택과 그에 따른 불가역적인 결과를 매개로 서사를 구축한다. 그러나 세이브-로드라는 게임 세계 밖의 편법은 이 선택의 엄중함을 무력화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세이브-로드는 선택에 따른 책임과 실패의 수용이라는 게임 매체 특유의 무게감을 없애고 정답을 맞히기 위한 플레이만 남기게 된다.


전통적으로 세이브-로드는 플레이어만이 독점할 수 있는 전지적 특권이자 편법이었다. 이전 회차의 실패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게임 화면 밖의 플레이어뿐이며, 게임 속 세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정해진 대사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게임 <소버린 타워>는 화면 밖 편법에 머물던 플레이어의 통제 욕구를 게임 내 시스템으로 끌어들였다. <소버린 타워>는 무명의 나그네가 황제를 잃고 폐허가 된 백색 탑의 군주가 되어 브레타니아 왕국과 원탁의 기사단을 이끄는 텍스트 기반 롤플레잉 경영 게임이다. 능력치 기반의 선택지로 영지를 운영하는 이 세계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고, 실패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소버린 타워>에선 가능하다. 바로 ‘악마의 힘’으로.

 


완벽주의를 속삭이는 악마



<소버린 타워>에서 군주가 짊어지는 선택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며, 그에 따른 불가역적 결과를 즉각 제시한다. 판단의 크고 작은 실수는 아끼던 기사의 허무한 사망으로 이어지고, 동맹 백작령과의 관계를 영구히 파탄 내고, 세력과 평판을 추락시키며 플레이어를 실패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실패의 순간마다 탑의 지하묘지에 깃든 악마는 플레이어 내부의 완벽주의적 욕망을 자극하며 수상하지만 달콤하게 속삭인다.

 

“저를 불러주시면 전하의 실수는 아침 햇살을 받는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세상이 멸망할 만한 대가가 따르는 것도 아니지요.”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순간, 게임 세계는 정직하게 플레이어가 지정한 과거의 주기로 되돌아가고 모든 건 없던 일이 된다. 이렇게 시간이 되돌려져도 이전 주기에서 얻은 군주의 지식과 플레이어의 기억은 온전히 보존되며, 그에 따른 새로운 선택지가 해금되기도 한다. 정해진 운명이나 타인의 속내를 미리 파악하게 된 군주는 기사들과 사절단의 운명을 재배치하는 전지전능한 통제자의 위치에 가까워진다. 다행히 악마는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악마의 힘’은 군주의 실수를 말끔히 없애주지만,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인물 사전’에 힘의 사용 횟수가 기록되고, 군주의 전지전능함에 위화감을 느끼고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몇몇 인물들의 반응만 있을 뿐이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은 실제 영지 경영에 딱히 영향을 주진 않는다.



보통의 게임에서 세이브와 로드는 플레이어의 실패를 묵인해 주는 무상의 시스템적 권한이지만, <소버린 타워>는 세이브-로드 자체를 악마라는 타자와의 거래로 구현했다. 플레이어만의 독점적 영역이었던 세이브-로드라는 게임 바깥의 편법이 게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세이브-로드는 더 이상 무해한 시스템 조작에 머물지 않고 악마와의 윤리적 계약으로 변모한다. 이때 <소버린 타워>의 ‘악마의 힘’ 시스템은 단순한 세이브-로드 기능의 서사적 포장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데이터 객체로 환원시키며 게임 내 선택과 결과, 보상에 접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더 이상 선택을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삭제하며 더 나은 선택만 골라낼 수 있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처럼 세이브-로드가 대놓고 시스템으로 등장하는 순간, 플레이어가 실패를 견디는 역치가 더욱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악마의 유혹이 되는 셈이다. 합리적 수치 계산과 손익 평가가 주를 이루는 영지 경영 시스템 속에서, 기억이라는 무기를 쥔 플레이어는 국가의 사멸 같은 거대한 비극뿐만 아니라 극히 사소한 손실조차 견디지 못하는 상태에 다다르는 현상을 보인다. 선택지에 따른 NPC의 아주 미세한 반응에도 참지 못하고 악마와의 거래로 손을 뻗게 되는 것이다. 결국 <소버린 타워>의 ‘악마의 힘’은 통치자로서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적 권한이라기보다, 경영이라는 냉정한 수치 판 위에서 단 한 톨의 손해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플레이어의 미시적 통제 욕구를 충실하게 보조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마음껏 시간을 되돌리기를 권하고 있는 걸까?

 


실패를 가르치는 게임



‘악마의 힘’처럼 세이브-로드와 같은 게임 바깥의 행위를 메타적인 시스템으로 선보이는 시도는 늘 있었다. <언더테일>의 ‘플라위’나 <동물의 숲> 시리즈의 ‘도루묵씨’처럼 플레이어의 세이브-로드 행위 자체를 꼬집으며 꾸짖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맥스’처럼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으로 세이브-로드 자체를 주요 서사로 가져온 사례도 존재한다. 특히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에선 플레이어가 시간을 지나치게 되돌릴 경우 ‘맥스’가 두통, 코피, 실신 등 신체적 대가를 치르게 되며, 나아가 현실의 질서마저 흔들리는 비극적 나비효과에 직면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결국 플레이어에게 세이브-로드라는 편법에 의존하기보다 정직한 플레이 하라는, 다시 말해 실패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소버린 타워>가 플레이어에게 개입하는 방식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게임의 입장은 진 엔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소버린 타워>에서 진 엔딩을 보려면 ‘악마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매 순간 신중한 선택을 쌓은 플레이어만이 게임의 ‘진짜’ 스토리로 여겨지는 진 엔딩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 엔딩의 스토리에서 군주는 자물쇠의 모습을 한 악마에게 ‘황금 열쇠’를 꽂아 넣어 그를 완전히 소멸시킨다. 게임이 ‘악마의 힘’을 그저 흘려보내야 할 유혹 정도가 아니라 끝내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게임이 세이브-로드를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진정한 게이머라면 실패까지 수용해야 한다고, 다른 게임들이 외쳐왔던 메시지에 <소버린 타워> 역시 함께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악마를 내세워 플레이어의 완벽주의를 대놓고 유혹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게임이 제공하는 ‘군주 모드’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새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군주 모드’를 활성화할 것인지를 묻는다. ‘군주 모드’는 수동 저장을 비활성화시키고 메뉴에서 세이브와 로드를 막아 이 게임의 챌린지 모드이자 하드 모드라 볼 수 있다. 만약 ‘군주 모드’로 플레이하다가 선택을 되돌리고 싶다면 무조건 ‘악마의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버린 타워>가 ‘악마의 힘’에서 의도한 선택의 중압감과 양심의 시험대는 ‘군주 모드’라는 통제 속에서 더욱 온전히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열려 버린 시스템의 뒷문


하지만 이 게임이 ‘군주 모드’를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를 플레이어에게 주는 순간, 게임이 제공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손쉽게 무력화된다. ‘군주 모드’가 아니라면 악마를 거치지 않고 수동 저장을 통한 자체적인 세이브-로드가 얼마든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지독한 완벽주의는 ‘악마의 힘’이 주는 윤리적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ESC를 눌러 ‘저장’과 ‘불러오기’로 향한다. 그리고 아무런 서사적 대가 없이 실패를 삭제해 나가고 완벽한 엔딩을 쟁취한다. 완벽주의를 겨냥해 설계된 ‘악마의 힘’이라는 유혹이 정작 결함 없이 깔끔한 플레이를 열망하는 플레이어의 손에서 무용지물이 되면서 게임 시스템의 뒷문이 열려 버리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버린 타워>의 설계와 실패를 거부하는 플레이어의 욕구가 부딪혀 균열이 인다.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의 뒷문을 들락거리는 동안 게임이 전하고자 했던 실패에 대한 교훈은 희석되고, 최종적으로 이 게임이 구축하고자 했던 진 엔딩의 위계마저 완벽하게 해체해 버린다. <소버린 타워>에서 ‘악마의 힘’을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을 때 다다르는 진 엔딩은 일차적으로 실패의 고통과 불가역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군주의 무거운 책임을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숭고한 보상처럼 보인다. 진 엔딩이 이러한 무게를 가지려면 그 엔딩에 도달하기까지 플레이어가 겪어낸 실패의 수용이라는 윤리적 미덕이 절대적으로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군주 모드’를 거절할 수 있고 수동 저장이 존재하는 한, 이 진 엔딩의 엄중한 위계는 시작부터 뿌리째 흔들린다. 실제 플레이에서 ‘악마의 힘’ 사용 횟수가 0인 채 진 엔딩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은 과연 진짜로 자신들의 실패를 견뎌내고 엎질러진 물을 겸허히 받아들인 성숙한 군주들인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악마의 힘’은 실패를 되돌리는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패를 되돌린 사실 자체를 기록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완벽주의자는 실패 자체만큼이나 그 흔적이 남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진 엔딩을 위한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해 더욱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변모한다. 매 분기에 공략을 살피고, 수동 저장을 거듭하며, 실패를 맞닥뜨릴 때마다 게임을 불러오게 된다. 단지 ‘악마의 힘’이라는 시스템적 정황 증거와 사용 횟수 낙인만을 치밀하게 피할 뿐이다.


결국 게임의 진 엔딩이 세운 윤리적 이정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를 받아들이고 완벽주의를 포기하도록 교정하는 데 실패한다. <소버린 타워>는 플레이어에게 완벽주의를 버리고 선택의 무게에 집중하고 실패를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담았지만, 실제 플레이어의 손끝에서 일어난 일은 완벽주의를 실행하는 도구의 변화에 불과했다. ‘악마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플레이어가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는 것만 증명할 뿐, 실패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증명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 무너진 진 엔딩은 역설적으로 악마를 속이고 실패를 교묘하게 바꿔치기한 완벽주의자들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에 불과해진다.

 


부딪힘의 미학


지하묘지의 악마는 시간을 되돌리는 힘에 죄책감과 기록이라는 낙인을 덧씌우고, 진 엔딩을 담보로 실패를 끌어안을 것을 유도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 윤리적 이정표를 순순히 따르는 대신 수동 저장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해 자신만의 구원을 완성한다. 나 역시 정직한 실패를 강제하는 ‘군주 모드’를 거절했다. 실패를 맞닥뜨릴 때마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ESC 키를 눌렀다. 마침내 ‘악마의 힘 사용 횟수 0’이라는 깨끗한 기록으로 진 엔딩에 도달했을 때 감싼 것은, 숭고한 군주의 성찰이 아니라 진 엔딩을 깼다는 성취감과 윤리적 주홍 글씨를 피했다는 안도감뿐이었다. <소버린 타워>라는 정교한 시스템 앞에서도 나의 완벽주의는 교정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시스템의 틈새인 뒷문을 서성이는 군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이브-로드 행위는 단순히 게임의 의도를 훼방 놓는 악의적인 편법인가? 그렇지 않다. 플레이어가 수동 저장을 활용해 오차를 지워나가는 과정 역시 게임이라는 매체가 플레이어에게 부여한 자율성과 통제권의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엄연한 ‘플레이’의 일부다. 진 엔딩과 같이 개발자가 설계한 정답에 도달하기 위해 게임이 제공한 모든 규칙과 시스템적 틈새를 동원하는 행위는 게이머가 세계를 정복하고 완벽을 기하는 방식 그 자체다. 본론에서 지적했듯 수동 저장은 시스템의 단절이 아닌 완벽주의적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이 만들어낸 적극적인 타협이다.


결국 <소버린 타워>가 보여주는 비평적 미학은 플레이어에게 실패를 마주하는 성숙함을 가르치는 데 성공했는가에 있지 않다. 이언 보고스트가 게임의 규칙과 절차 자체가 하나의 수사학적 발화라고 본 것처럼[2], <소버린 타워> 역시 ‘악마의 힘’과 진 엔딩 조건이라는 절차를 통해 실패 수용이라는 메시지를 설계했다. 그러나 수동 저장이라는 우회로가 열려 있는 한, 그 절차는 정작 게임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끝까지 지시하지 못한다. 절차적으로 지시되지 않은 메시지로 남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개발자의 정교한 규범적 설계와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플레이어의 집요한 통제 욕구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그 균열의 지점에서 발생한다. 게임은 실패를 수용하는 교훈을 전하는 데는 실패했을지언정, 규칙과 주도권을 둘러싸고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벌이는 이 고유한 미학적 투쟁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스펙터클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는 세계의 법칙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화면 뒤에서 손가락을 번뜩이며 과거를 되돌릴 준비를 한다. 이 통제 욕구와 편법조차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가 허용한 유희의 한 형태라면, 우리는 이미 개발자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완벽’이라는 자신만의 게임을 정교하게 플레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Jesper Juul, The Art of Failure: An Essay on the Pain of Playing Video Games, MIT Press, 2013.
[2]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MIT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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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기획자)

재미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은 사람.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며 공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방식,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순간들에 관심이 깊다. 서브컬처와 게임 문화를 연구하며 <서브컬처 연구 온리전>과 <게임 토크 클럽> 같은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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