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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서의 '쿠소게'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일본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08 



초능력개발게임 〈마인드시커〉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필자도 이 게임을 옛날에 실제로 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게임이 요구하는 과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럼, 우선 투시를 해 봅시다"라든지, "예지를 해 봅시다"라는 식의 과제가 차례차례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희미한 초능력조차도 간직하지 않고 있던(?) 필자에게는 초기 과제부터 이미 달성하기 곤란했다. 결과적으로 초능력 따위는 얻지 못했다.


〈마인드시커〉는 제대로 클리어할 수 없고, 제대로 즐기기도 어렵고, (아마도) 초능력을 개발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제작자와 플레이어의 게임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 직접적인 꿈의 존재 방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에 관해 이 작품만큼 쉽게 알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 이 글에서는 이 '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꿈의 장치로서의 컴퓨터 게임


〈마인드시커〉가 개발됐을 당시, 컴퓨터 게임이라는 문화가 한 때 맡고 있던 재미의 일부는 이런 것이었다. 즉, 사람들의 무한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속 캐릭터와 대전할 수 있다라거나 등장인물과 대화할 수 있다, 혹은 모니터를 향해 총을 쏘면 반응한다, 목소리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하다와 같은 방식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이러한 것들은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급속도로 일상에 나타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존재 방식이었다. '컴퓨터가 진화하면 게임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라는 무책임한 꿈을 많은 아이들이 믿었고, 게임 제작자는 그 꿈을 점점 현실에 구현해 나갔다. 이것이 1980년대의 패미컴이 히트하면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꿈을 어떤 의미론 무책임하게 맡아버릴 수 있던 시대의 풍경이었다. 


물론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꿈'을 무책임하게 짊어진다는 구도 그 자체는 컴퓨터 또는 게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토 토시키(佐藤俊樹)는 정보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보사회론 담론이 여러 번 동일한 꿈을 반복해 왔다는 것을 1996년에 지적한다(『노이만의 꿈, 근대의 욕망』 1996, 고단샤선서 메치에). 197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198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정보기술이 사회를 바꾼다'는 '신화'가 이야기되어 왔다고 한다. 사토는 도서관 안에 쌓여 있는 정보사회론을 논의하는 구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한다. 


'컴퓨터가 어떻게 사회를 바꿔가는가'라는 담론이 성인이 사회에서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면, 1980년대의 컴퓨터 게임은 아이가 놀이에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고 해도 좋다. 1980년대 세계는 그 꿈의 소박함이라는 점에서 2022년 현재와 동떨어진 면이 있다. 물론 2022년 현재에서도 사람들은 AI에 과잉된 꿈을 걸고 좀 더 본격적인 VR 게임의 실현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꾸었던 꿈과는 아무래도 그 성격이 다르다. 



누가 1980년대의 '쿠소게'의 담당자였는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면, 터무니없는 꿈의 담당자가 도대체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전설적인 '쿠소게'를 만드는 것은 갓 올라온 신입이나 타업계의 아마추어에 한정되지 않았다. '쿠소게'의 담당자는 종종 게임업계의 중심 인물이었다. 〈마인드시커〉의 개발 프로듀서는 그 〈팩맨〉의 친부모라고 할 수 있을 이와타니 토오루(岩谷徹)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발의 중심에 있던 스즈키 코지(鈴木浩司)는 그 후 1997년에 RPG의 존재 방식에 큰 파장을 던진 의 개발에 관여하여, 요즘 말하는 인디게임 문화의 선구자가 되는 작품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업계의 핵심 인물이 '쿠소게'에 관여하는 구도는 드물지 않다.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이어지는 원인의 일부가 된 '전설의 쿠소게'로서 이야기되는 』(Atrari 2600, 1982)의 개발 담당자 하워드 스콧 워쇼(Howard Scott Warshaw)도 당시 아타리 사의 스타 개발자였다. Atari 2600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야스 리벤지(Yar’s Revenge)〉라는 타이틀의 개발자이다.  하워드 스콧 워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힘껏 도맡아 를 만들었다. 


참고로 일본의 1980년대의 대표적인 '쿠소게'인 〈타케시의 도전장〉은 요즘 말하는 오픈월드의 실현을 꿈꾸다 화려하게 실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게임업계 내부가 아니라 탤런트인 비트 타케시가 한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에서 사람들이 꾸고 있던 '꿈'을 떠맡고, 그리고 실패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미숙하고 조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총아들이 어이없는 실패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게임업계 전체가 젊은 시대 특유의 특권을 부여받은 상황이라는 배경으로부터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이없는 꿈을 가지고, 그것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들의 시도와 결과는 불행한 프로젝트로 귀결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2022년에서 보면 업계의 톱스타가 끔찍하게 어이없는 기획에 어이없는 예산을 들이며 어이없는 열정을 쏟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물론 당치 않는 기획으로 흥행을 노리거나, 혹은 실패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획에 톱 크리에이터가 처음부터 달라붙어서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는 게임개발 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인지가 과거보다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의 대규모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반복하지만 1980년대 '쿠소게'가 가진 '어리석음'은 개발자들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숙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꿈을 쏟아붓은 프로젝트에 전력으로 임했던 흔적이 1980년대의 '쿠소게'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장치로서의 '쿠소게'


이토록 소박한 욕망의 발로를 통해, 대작을 만들려는 의지가 이제는 오히려 눈부시기까지 하다. '초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게임' 등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것에도 정도가 있고, 1980년대에 대규모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 것과 같은 야망도 너무나 무리였다. 


이후 컴퓨터 게임이라는 세계 속에 떠도는 '꿈'을 맡는 하나의 절정으로 태어난 작품은 1999년 〈쉔무〉』(DC, 1999)였을 것이다. 〈쉔무〉는 또 하나의 현실 세계를 게임 속에 구현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 중 하나를 우직하게 실현하고자 했던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이 남긴 것은 적자뿐 아니라, 실패라고도 성공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강렬한 인상이었다. 지금의 오픈월드라고 불리는 작품의 상당수는 직간접적으로든 〈쉔무〉의 시행착오의 결과를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컴퓨터에 사람들이 꾸는 '꿈'은 대부분 무책임한 것이다. 그건 종종 어리석거나 사기꾼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음은 종종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완성된 결과물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웃을 때는 어떤 인식의 틀을 외부에서 메타시점으로 세우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꿈은 그 내부에 깔려 있을 때에 귀중하고, 그 외부에 나오면 때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의미에서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숙명이라고 해도 좋다. 게임업계가 성숙해질수록, 웃어넘겨질수록, 어리석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최고의 톱 크리에이터의 일로서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보다 작은 게임 개발사가 과감한 '쿠소게'도, 단순히 개발력 부족에 의한 '쿠소게'도 그 양쪽 모두를 담당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광대하게 펼쳐진 인디게임 시장이 그 주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웃을 만큼 어리석은 것을 만드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과 웃을 만큼 어리석은 작품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표리일체 현상이다. 


〈마인드시커〉를 켜고 오랜만에 놀다 보니 거기에 묻어 있는 우스운 듯한 바보스러움을 만나게 된다. 확실히 게임 자체는 바보같다. 그러나 이 게임은 동시에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그 바보스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를 배후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아이 같은 설렘이 이 작품의 뒷면에 가로놓여 있다.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의 본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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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게임 연구자.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국제 대학 GLOCOM 조교, 칸사이 대학 특임준교수등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게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게임의 아카이브나, 게임을 응용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관련되는 프로젝트 등에도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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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게임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든 일본어든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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