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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의 탄생과 몰락

08

GG Vol. 

22. 10. 10.

아케이드에서 가동 중인 대전 격투 게임을 가정으로 온라인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했던 최초의 시기는 94년 말 미국에 출시된 메가드라이브 용 X-Band로, 당시로서는 강력한 2,400bps 전송속도의 모뎀을 통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게임들을 미지의 상대와 가정에서 대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콘솔 능력의 한계로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그대로 옮길 수 없던 시기였으니, 진정한 의미의 (열화 없는) 아케이드 게임을 온전히 집에서 즐기는 환경은 사실상 14.4kbps의 모뎀을 새턴에 연결하여 즐길 수 있었던 96년에 발매된 버추어 파이터 리믹스가 최초라 할 수 있다. 



X-band는 미국의 경우 전용회선의 서비스를 일부 지역에 별도로 운영했으나, 대부분 플레이어는 모뎀 플레이의 문제점인 대전 도중 전화비용이 계속 청구되는 점과 집에 전화가 오면 통신이 끊기는 등의 문제, 디스커넥트로 인해 패배가 기록되면 억울하다고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등, 운영 미숙과 아케이드에 비해 낮은 요금 경쟁성으로 전 세계에서 최대 15,000명의 플레이어만을 확보한 채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생애 처음으로 온라인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유니크한 경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상대는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행동을 하든 괜찮다’라는 점이었다. 아케이드에서 이렇게 플레이하면 바로 옆에 앉은 대전 상대에게 사람과 사람이 게임을 즐기며 지켜야 하는 예의가 무엇이 있는지를 몸으로 익혀야 할 위험이 있던 반면, 온라인 대전은 상대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예의를 알려줄 수 없다. 흔히 이러한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플레이어를 한국은 당시 무협물의 인기에 힘입어 ‘사파’라고 불렸는데, 이들이 내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선 과거 분류되었던 정파와 사파에 대해 구분하자면, 정파는 쉽게 말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을 내용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나의 승리인 것을 인정하도록 깔끔하게 경기를 지배하는 플레이어를 말하며, 사파는 이기기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서슴지 않는 플레이어다. 이러한 행동은 처음에는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강한 캐릭터를 선택하거나, 정상적으로 나올 수 없는 버그 테크닉을 사용하는 플레이 등이 해당했다.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5에서는 숨겨진 커맨드로 보스 캐릭터인 오메가 루갈을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선택창에 이 강력한 캐릭터가 출현하는 순간부터 오락실 분위기는 늘 심상치 않았다.

한편으로는 게임의 밸런스를 커뮤니티에서 임의로 룰을 이용해 조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유명한 예라면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의 ‘어퍼 금지 룰’이다. 기본적으로 앉아서 강펀치로 구사되는 어퍼컷이 공중에 있는 상대를 너무 빠르고 쉽게 떨어뜨렸기 때문에, 게임 초보자와 숙련자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자 PC통신을 주축으로 서로 오프라인에서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게임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어퍼컷을 쓰지 않기로 합의한 내용을 말한다.


당연히 모두가 이 룰을 알 수는 없었으며, 따라야 할 강제성도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일부 플레이어들은 오프라인 모임의 확대를 위해서는 이 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정파로 자신들을 규정한 그들은 이러한 룰을 지키지 않는 상대에게 난입 후 이길 수 있는 실력과 인지도가 있었기에 룰을 어느 정도 정착시킬 수 있었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방법을 병행하여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했다. 지금이야 온라인 업데이트를 통해 간단히 버그를 수정하고 밸런스를 개선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이러한 문화는 사라졌으니, 대전 격투 게임 붐에서 태어난 90년대의 이질적인 아케이드 문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피를 부르는 싸움의 적절한 예시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아케이드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게임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간섭하는 경우가 마냥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하자니 서로 얼굴 보며 게임을 하는 이상 불필요한 적을 만들 뿐이다. 이들에게 오프라인에서 진정한 자유란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화 속에 온라인 대전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차선책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상대를 아무리 약올려도 뭐라 할 수 없는 비정한 곳이 온라인 세계다. 더해 특유의 위화감까지 더해지며,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던 이들은 점차 온라인 세계의 특징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대전 격투 게임의 온라인 붐이 일어난 것은 2003년 출시된 Xbox Live가 시작으로, 이는 해외에서 서비스하는 드림캐스트와 플레이스테이션 2의 온라인 플레이를 한국에서 즐기려면 VPN을 통한 우회 접속을 비롯해 굉장히 복잡한 과정과 높은 비용이 필요했고, 플레이스테이션 2의 온라인 서비스가 이후 한국에서 정식으로 시작되었지만 대전 격투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한 Capcom vs. SNK 2, 스트리트 파이터 15주년 기념판 등은 아케이드에서도 일부 점포만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해외 소식을 통해 듣기만 하던 온라인 플레이의 첫 실전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듣기만 하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반응 속도가 아케이드와 비교해 느리다는 것이었다. 후에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며 등장하는 게임들은 어느 정도 네트워크 매치를 개발 단계부터 고려해 약간 먼저 버튼을 누르거나 커맨드를 대충 입력해도 기술이 구사되도록 보정 시스템이 있지만, 처음 등장한 Xbox live 대응 타이틀은 아케이드와 동일한 조작감이었고, 당시 아케이드의 격투 게임은 실력의 상향 평준화로 인해 컨트롤의 난이도를 가장 극단적으로 어렵게 올리던 시기였으니 온라인과의 궁합이 좋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나에게 닿기 5프레임 직전부터 커맨드를 입력해야 구사되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블로킹 같은 테크닉은 감각이 아예 다를 정도였으며, 고수가 많았던 아케이드 유저들은 아케이드와 감각이 다른 점이 오히려 양쪽의 플레이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만큼, 다시 아케이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게임의 밸런스가 가정용에서 달라진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 당시의 온라인 대전 감각은 다른 게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며, 이는 온라인 세계가 고유의 생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케이드에서 익힌 능력은 쉽게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하는 플레이어들에게 또 하나의 유흥거리가 되었는데, 이 온라인 특유의 느린 반응 속도를 철저하게 승리를 위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아케이드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게임을 즐기는 성향이라면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다. 혼다의 슈퍼 박치기, 브랑카의 롤링 어택 등 오프라인에서 막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기술도 온라인에서는 막혀도 반응이 어려운 것을 알자. 온라인 세계의 상위 랭크는 ‘얼마나 네트워크에 최적화된 플레이를 하는가’라는 능력이 더해진 비정한 전쟁터가 되었으며, 아케이드를 주축으로 한 오프라인 유저들은 그 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사파로 규정하며 ‘랙만 아니면 내가 이긴다’라는 주옥같은 명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2009년에 출시한 스트리트 파이터 4, 블레이블루: 캘러미티 트리거 같은 게임들은 처음 게임 설계부터 네트워크 대전 상황도 고려했기에 한국에서 일본 등의 근거리 국가들과 아케이드와 플레이 감각이 비슷한(납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유저와 대전을 피하지 않는 사파들의 게임량을 따라갈 수는 없기에, 항상 게임의 최상위 랭킹은 온라인에 최적화된 플레이어들의 기록으로 쌓였다. 그렇게 2004년부터 약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대전 격투 게임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별개의 게임이라는 인식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점차 형성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롤백(Rollback)”이라 불리는 넷코드 기술이 있었다.


* 인풋 딜레이 방식과 롤백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 영상. 기존의 인풋 딜레이 방식은 서버에 입력 신호가 닿으면 화면에 적용되는 방식이며, 롤백은 일단 입력하면 상대의 행동을 예측해 다음 프레임을 미리 시뮬레이션 하는 형태이다. (영상의 1분 3초 ~ 1분 5초가 롤백 방식의 화면) 양쪽의 입력이 다를 경우 직전 상황으로 돌아오게 되는 새로운 문제도 있지만, 예측의 적중률이 높을수록 로컬과 같은 감각으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니 최근 모든 격투 게임 플레이어 신이 롤백 방식을 선호하고, 예측을 적중시키는 노하우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어차피 광케이블이 빛을 이용한 속도인 이상, 지구 전체가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고 매질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다고 해도 지구 반대편과는 8프레임의 입력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서로의 신호를 교환한 뒤 진행하는 인풋 딜레이 방식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는 예전부터 남미가 전통적인 강국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각종 해외대회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만, 먼 미래에도 인풋 딜레이 방식으로는 물리적인 위치로 인해 정상적인 대전이 온라인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롤백 넷코드는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고, 장르의 특성상 순간적으로 게임을 뒤흔들 변수가 적기 때문에, 유독 이 예측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결국 이 기술은 상대의 행동을 빠르게 예측하는 것과 위화감 없이 화면을 보정하는 것이 중요한 아이디어 싸움이며, 개발사들은 배경 데이터와 사운드는 놔두고 캐릭터의 핵심적인 요소만 패킷이 이동하게 하는 등, 화면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데이터양을 줄이는 방법을 병행하며 이 요소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공식 토너먼트까지 각 지역이 온라인으로 개최될 정도로 쾌적한 네트워크 대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롤백 넷코드가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 예측이 벗어날 경우 딜레이보다 더 처참한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프라인과 같은 감각의 입력이 가능한 것과 개발사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인해, 현재는 딜레이 넷코드를 밀어내고 대전 격투 게임의 요소 중 기본 사양이 될 정도로 지지받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게임의 밸런스까지 수시로 업데이트되자 사파 게이머들 역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 롤백 넷코드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 중 하나

FPS 장르에서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배틀필드도 일부러 딜레이가 높은 서버에 들어가 나를 맞출 수 없는 스나이퍼를 향해 원거리부터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정면에서 접근하는 등, 타 장르 역시 온라인 입력 지연을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 방법들이 있다. 그런데도 주제를 굳이 대전 격투 게임으로 한정 지어 이야기한 이유는, 비록 오프라인을 대표하던 아케이드는 존재감이 얕아졌지만, 장르의 특성상 온라인 환경은 대안일 뿐 여전히 콘솔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대회를 개최하거나 모임을 통해 실력 향상을 꾀하는 행동이 같이 진행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더해 온라인에서 재미를 느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여 점차 오프라인 행사의 규모가 다시 커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며,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기술이 네트워크 대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특수한 상황도 흥미롭다.


개발사들은 팬데믹을 겪으면서 온라인에서 최대한 오프라인 기분을 낼 수 있도록 점차 게임 환경을 구성하고 있고, 대전 격투 게임은 떠오르는 e스포츠 종목이기도 하기에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자들과 만나지 않도록 블랙리스트 설정 등의 관리 옵션도 점차 추가하고 있어, 이제 온라인에서도 자신이 보여준 플레이 행동은 반드시 책임이 동반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온라인도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지금은, 스포츠 정신과 게임의 지속적인 관리가 더해지면서 충분히 게임 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해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기에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 사파라 불리게 되던 요소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사파라 불리던 플레이어들 역시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온라인 랭크를 달성하였기에 존재감을 형성한 만큼, 이기는 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그만큼 게임에 애정이 있는 것도 확실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승리를 향한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새로운 시대에서 더욱 꽃피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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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코리아 대표)

1999년 월간 게임라인을 시작으로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기간을 게임 개발사에서 보낸 뒤, 게임 제작자보다 글로서 게임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2018년부터 IGN Korea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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