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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화면 게임 플레이는 어떻게 게임 플레이를 재규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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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방치형 게임의 역설과 관습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이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두고 벌이는 끊임없는 경쟁의 장이다. 이런 장에서 ‘방치형 게임’류는, 플레이어의 지속적·적극적 개입 없이도 플레이가 자동으로 진행되고 자원·보상이 누적되도록 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통해 주류로 부상했다. 물론 플레이어의 개입이 적게 이뤄진다는 점은, 소셜 게임이나 캐주얼 게임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플레이가 진짜 게임 플레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치형 게임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것을 플레이하는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따지기보다,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플레이되고 있는 방치형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논의하는 일이 생산적일 듯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방치형 게임의 성공은 플레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규정을 수반한다고도 할 수 있다.

     

방치형 게임의 인기요인은 역설적으로 플레이어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게임에서 플레이가 능동적인 수행을 의미했다면, 방치형 게임에서의 플레이는 자동화를 통해 수행의 필요성을 약화 혹은 무화하고 플레이어의 역할을 시스템 관리자로 변화시킨다. 재미 역시 순간적인 조작의 쾌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 배분과 업그레이드 순서 등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하고, 그 결과가 기하급수적인 성장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는 만족감에 기인한다.

     

 그러나 방치형 게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관습화된 감이 있다. 초창기의 시도가 장르 규칙으로 굳어지면서, 메커니즘(부재 시간의 플레이 편입, 실감 가능한 성장을 가시화하는 대시보드형 인터페이스, 자동화의 단계적 해금 등), 과금·보상 구조(보상형 광고, 프리미엄 가속재 혹은 패스, 온보딩 메타 등), 이용 행태(백그라운드 혹은 세컨드 스크린 소비, 효율 중시 공략 문화 등) 차원 모두에서 자유도 강화나 새로운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부분 화면 인터페이스의 혁신: <러스티의 은퇴> 사례 등장

     

그런 중 방치형 게임의 인터페이스 자체를 혁신한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러스티의 은퇴(Rusty’s Retirement)>다. <러스티의 은퇴>는 인디 개발사 미스터 모리스 게임즈(Mister Morris Games)가 제작한 방치형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2024년 4월 스팀(Steam)을 통해 출시되었다. 미스터 모리스 게임즈는 2022년 <로봇 하이쿠(Haiku the Robot)>로 이름을 알렸는데, <러스티의 은퇴>에 그 세계관의 로봇 캐릭터들이 등장해 팬들에게 친숙함을 더한다.

     

방치형 농장 시뮬레이션이라는 비교적 친숙한 장르를 채택했음에도 <러스티의 은퇴>를 혁신 사례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니터 일부 화면만을 활용하게 함으로써 ‘게임이 위치하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가로 혹은 세로 띠 형태로 모니터 하단이나 우측 약 1/3 정도 크기만 차지하도록 설계된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시선만 살짝 옮겨 농장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간단한 조작을 통해 운영을 할 수 있게끔 한다.

     

멀티태스킹 디자인을 위해 이용자 인터페이스(UI) 요소도 효율화돼 있는데, 초기 설정을 통해 항상 게임 화면이 다른 창 위에 표시되고, 필요한 정보(로봇 범위 표시나 작물 언락 조건 등)가 마우스 오버 툴팁으로 제공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UI 확대 및 축소, 다른 모니터로 이동, 인터페이스 크기 조정 등의 편의 설정이 지원돼 플레이어 환경에 맞게 화면을 구성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플레이어가 집중할 일이 있을 때 ‘집중 모드(Focus Mode)’를 켜면 게임 속 작물 성장속도가 절반으로 느려지고 그동안에는 농장이 천천히 돌아간다. 집중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는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할 때 게임 진행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 않게 하고, 다시 여유가 생기면 모드를 해제하여 정상 속도로 돌리는 식으로 현실 작업과 게임 속도를 조율할 수 있다. 모니터 일부 화면만을 활용하는 공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 시간적 측면, 그리고 게임 바깥 플레이의 시간적 측면까지를 고려한 설계인 것이다.

     


  시간적 분리에서 공간적 분리로

     

초기 방치형 게임은 플레이어가 웹 브라우저의 다른 탭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백그라운드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는 단순한 즐거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게임 플레이의 ‘시간적 분리’와 관련된다. 장르가 발전하며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자동화가 도입되면서 게임의 핵심도 ‘효율성의 극대화’가 되었는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방치형 게임들도 플레이어에게 상당한 인지적 부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을 ‘방치’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더욱 ‘적극적으로’ 최적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방치형 게임이 기존 게임의 틀을 많이 바꿔놓았음에도 중요한 문제 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화면 점유’였다. 게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어찌 됐든 하고 있던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화면을 전환해 보고 있던 화면에 게임을 띄우거나, 게임이 띄워져 있는 다른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스티의 은퇴> 같은 게임을 통해 이제는 방치형 게임에서 ‘공간적 분리’까지 이뤄지게 되었다.

     


  엠비언트 게이밍과 주변적 노동

     

기존의 게임은 전체 화면을 장악함으로써 플레이어를 가상세계에 몰입시켜왔다. 그것이 방치형 게임이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였다. 반면, <러스티의 은퇴>는 스스로가 ‘보조적’인 공존을 추구한다. 사용되지 않는 디지털 공간을 게임화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식적 주의를 포착하면서도 지속적인 심리적 관여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구현했음을 의미한다. 게임이 항상 시야의 가장자리에 존재함으로써, 플레이어는 화면 전환 없이 농장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는 맥락 전환 비용을 제거하여 주된 작업의 흐름을 거의 방해하지 않으며, 기존 방치형 게임이 주지 못했던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의 지속적인 연결감을 제공한다.

     

화면 주변부를 활용하는 디자인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게임을 ‘활동’이 아닌 ‘환경’으로 전환하는 이른 바 ‘앰비언트 게이밍(ambient gaming)’ 경험을 창출한다. 화면 한구석에서 로봇들이 움직이고 작물이 자라는 모습은 마치 디지털 분재 같기도 하다. 시각적 자극 역시 주된 인지 부하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낮게 설계되었다. 오히려 복잡한 업무 사이에 이루어지는 짧은 개입(씨앗 심기, 로봇 배치 등)이 마이크로 브레이크(micro-break) 역할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심리적 환기를 제공한다. 시선을 잠시 돌렸을 때 자원이 쌓여있는 모습은 즉각적이면서 작은 도파민 분출을 유도한다.

     

<러스티의 은퇴>는 키오와 리처드슨(Keogh & Richardson, 2017)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백그라운드 게임(background game)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백그라운드 게임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기기나 게임 서버의 처리 능력을 배경에서 사용하며 과업을 진행하고 자원을 축적하는 게임을 말한다. 더욱이 그 백그라운드 게임이 플레이어의 일상, 그것도 일과 여가 사이에 자연스럽게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변적 노동(ambient labor)’을 수행하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퀴클리흐(Kücklich, 2005. 1)의 ‘놀이노동(playbor)’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백그라운드 게임은 플레이어가 단순 반복적인 과업을 수행하거나, 혹은 그 노동을 전혀 하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매우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노동 형태의 축약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단순 과업이 완료되기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러스티의 은퇴>는 이러한 주변적 노동을 통해 명확한 성장 시스템을 제공하며 만족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생산성을 배려하는 유희적 설계를 보여준다. 이는 일부 플레이어에게 업무 중 게임을 한다는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측면도 있다.

     


  은퇴의 미학과 효율성의 아이러니

     

위에서는 주로 <러스티의 은퇴>가 제공하는 부분 화면 플레이가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지에 초점을 맞춰 논의했지만, 게임의 테마 자체도 흥미롭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은퇴’라는 테마는 직접적인 스토리텔링보다는 게임의 상황 설정과 플레이 체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인 로봇 러스티는 제작사의 전작 <로봇 하이쿠>의 세계관에서 긴 모험을 마치고 조용한 삶을 찾은 캐릭터다. 시·공간 배경은 인류 멸망 후 로봇들만 남은 미래로, 맵 곳곳에 과거 인간 문명의 잔해 위에서 러스티와 동료 로봇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다는 설정이다. 전작에서 기계들이 지배하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그렸다면, <러스티의 은퇴>는 그 세계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구를 로봇들이 다시 녹색으로 재건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무엇보다 ‘은퇴’라는 테마는 게임 전반에 걸쳐 느긋한 톤으로 구현돼 있다. 러스티가 은퇴한 로봇답게 느릿느릿 움직이기에, 플레이어 역시 서두를 필요 없이 농장 일을 지켜보며 간간이 지시만 내리면 된다. 러스티에게는 이제 급한 일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역시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게임에서 시간 제한요소(계절 변화에 따른 작물 재배, 하루 동안 해야만 할 일 등)가 발견되지 않으며, 어떤 것이든 아무리 오래 방치해 두어도 패널티가 없다. 모든 일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즐기도록 유도하는 게임이 <러스티의 은퇴>다. 이러한 느림의 미학은 가끔 모니터 구석에 시선을 두고 몇 가지 관리만 하면서 적당히 게임을 즐기려는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식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러스티의 은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과도한 효율 추구’에 대한 메시지, 즉 지나친 생산성과 효율성에의 강조에서 잠깐 벗어나 한눈을 팔게 만드는 딴짓 거리로도 읽힌다.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살피면 아이러니가 발견된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시작하는 듯 보였던 농장이 점점 자동화되고 기계화될수록 플레이어는 더 큰 수익과 효율을 추구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농장이 자동으로 돌아가 저절로 수확이 굴러 들어오는 상황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는 은퇴 후에까지 생산성과 최적화를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임이 이를 가시적이거나 풍자적으로 그리진 않지만, 플레이어로 하여금 방치형 게임 특유의 끝없는 성장에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찰을 유도한다. 요컨대 <러스티의 은퇴>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은퇴 생활의 모상을 제공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얼마나 최적화에 집착하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중적 매력을 지니는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의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러스티의 은퇴>는 제약을 통한 혁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게임이 언제, 어떻게 플레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준다. 전통적인 게임/플레이 개념에 도전하면서도 새로운 참여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주의력 경제와 디지털 노동의 새로운 형태도 구현한다. 이러한 방치형 게임의 지속적인 변화(혹은 진화?)와 주류 게임 장르로의 편입은, 이들이 단순 틈새 장르를 넘어 새로운 게임 플레이의 장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백그라운드 게임 플레이의 조건 하에서 비물질적 노동, 모바일 미디어 실행, 그리고 게임과 놀이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양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당분간 방치형 게임 ‘현상’과 그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Brendan, K. & Richardson, I. (2017). Waiting to play: The labour of background games.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21(1). Retrieved from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1367549417705603
Kücklich, J. (2005. January).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Fibreculture, 5. Retrieved from http://journal.fibreculture.org/issue5/kucklich_prin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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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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