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세미나] 데이터가 만든 신화: ‘동남아 성장 신화’를 주도하는 게임 시장 분석 보고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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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논문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The Data-Driven Myth and the Deceptive Futurity of “the World’s Fastest Growing Games Region”: Selling the Southeast Asian Games Market via Game Analytics (2022)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15554120221077731#fig1-15554120221077731
게임 업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 동남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이라는 말이 업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수년 전 중국이 신흥 게임 시장으로 주목을 받았을 때, 많은 게임 퍼블리셔들은 중국 시장을 선망했고 실제로 큰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제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성장지로 동남아시아가 호명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 라오스, 동티모르. 이 11개의 국가에는 게임 업계에 ‘제 2의 노다지’를 약속하는 미래의 잠재 고객들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망에는 비판도 따른다. 게임 시장 전망을 내놓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사실은 시장 담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웡(K.T. Wong) 교수는 2022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뉴주(Newzoo)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이 만들어낸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의 서사가 이 지역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구성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이 글에서는 웡 교수의 논문 내용을 요약 전달하고, 우리가 믿어온 동남아시아 시장의 성장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뉴주(Newzoo)’ 로고
업계 담론을 움직이는 거대한 영향력, 뉴주(Newzoo)
뉴주는 세계에서 널리 인용되는 글로벌 데이터 기업 중 하나다. 게임과 디지털 기기 사용 관련한 다양한 분석을 내놓으며,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정기 현황을 결산하는 보고서를 발간한다. 뉴주의 보고서는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무수한 기사로 인용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보고서에 참고되며, 무엇보다 게임 업계인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어 주요 의사 결정과 투자의 흐름에 관여하고 있다.
뉴주가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유통하는 방식에는 크게 무료와 유료로 나뉜다. 유료의 경우, ‘2025년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 전망’과 같은 심층 보고서를 판매하는 형태로, 단독 상품 하나에 약 5,000달러에 판매된다.
하지만 실제로 더 큰 파급력을 지닌 것은 무료 버전의 보고서다. 무료로 제공되는 보고서는 유료의 일부분을 제공하는 라이트 버전이다. 누구든 다운로드할 수 있기에 출시 직후 언론에 빠르게 인용된다. 더 깊은 분석이 담겨 있는 버전보다, 라이트 버전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셈이다. 뉴주가 무료 보고서에서 “동남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하면, 이는 곧 업계와 대중이 공유하는 ‘사실’처럼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세상을 뉴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웡 교수의 비판 지점은 단순히 이 분석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있지 않다. 뉴주가 담론에 권위 있는 기업으로서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뉴주의 2015년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보고서
자본주의적 시간성으로 본 동남아시아
뉴주는 네덜란드 기업이다. 이들이 쓴 동남아 시장 보고서 서론 부분을 보면, 대상 독자가 누구인지 힌트가 있다. 지난 번 중국 시장 보고서가 반응이 좋았다며, 다음 먹거리가 뭔지 기다렸을 독자를 위해 새로운 것을 준비했다는 투다. 이들의 독자는 주로 북미와 유럽의 서구권이고, 일본과 한국의 동북아시아권까지도 포함된다.
뉴주의 보고서가 그려내는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는 단순한 숫자와 그래프 같지만, 그 밑에는 특정한 시간관이 숨어 있다. 동남아시아는 아직 덜 발전했지만 곧 따라올 시장으로 묘사된다. 아직 개발 ‘중’인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서, 곧 선진국이 위치한 현재에 도달할 것이라는 직선적 시간관이다.
웡 교수는 이러한 시간관을 ‘자본주의적 시간성’으로 판단한다. 우리 모두 현재에 살고 있음에도, 보고서 속 동남아시아는 다른 시간대로서 구분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이 아직 뒤처져있는 과거로 비춰지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적 맥락, 인종 및 언어와 같은 복잡성은 사라지고, 11개 국가는 외부인이 이해하기 쉬운 ‘단일 시장’으로 뭉뚱그려진다.
이런 시선은 낯설지 않다. 16세기부터 서구가 동남아시아를 바라보던 틀과 닮아 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열강에게 동남아시아는 자본을 창출하는 식민지였다.
기나긴 역사 끝에 탈식민 과정을 거쳐 자생력을 회복했음에도, 오늘날 이 지역은 다시금 외국 자본의 기회의 땅으로 호명된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정책적 기조와 디지털 불법 복제 방지 운동, 중산층 소비력 증가가 보이면서 이곳은 게임 신흥 시장으로서 외국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에도 반복적으로 드리우는 것이다.
‘신화’라는 이름의 성장 서사
웡 교수는 이 지점에서 ‘신화(myth)’가 발생한다고 본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말한 신화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신화란 어떤 의미를 사회 속에서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는 체계다.
우리가 접하는 광고, 기사 같은 것들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재구성되어 본래의 역사적 맥락을 잃고 새로운 개념으로서 자연스러운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체계가 바로 신화다. 여기서 허구냐 사실이냐의 문제는 핵심이 아니다.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 <신화론>에서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는 흑인 병사의 이미지를 신화의 예로 든다. 이 이미지는 “프랑스 제국은 인종에 상관없이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나, 그 이면에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 역사, 군국주의, 국가주의의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있다.
뉴주의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보고서는 데이터 분석을 전달하고 동시에, 성장 신화를 생산한다.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이라는 문장도 신화와 같다. 동남아시아는 끝없는 성장의 보고라는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둔갑한다. 내재하는 식민지 역사, 문화적 다양성, 불평등, 계급 같은 복잡성은 지워지고 ‘성장’만이 유일한 진실처럼 제시된다.
동남아 시장 신화를 구성하는 장치
웡 교수는 뉴주 보고서가 만들어내는 동남아시아 시장 신화를 구성하는 몇 가지 장치를 짚어낸다. 분석 대상이 된 뉴주의 보고서는 2015년, 2017년에 발행된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관련 문서 3종이다.
1)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소비자
뉴주가 동남아시아 성장 신화에 핵심적으로 등장시키는 데이터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사람들(players-yet-to-be)의 수치이다. 이 수치는 인구 수에서 게임 이용자 수를 뺀 값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인구 수가 100명이고 게임 이용자 수가 30명이면, 나머지 70명은 아직 게임을 하지 않지만 앞으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사람들로서 희망적인 수치인 것이다.
사실 이 데이터는 실재하는 데이터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보고서 속에서만큼은 이미 숫자로 살아 움직인다. 웡 교수는 이를 “보고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의 소비자”라고 부른다. 뉴주가 파는 것은 결국 미래의 수익이 될 수도 있는 전망 그 자체다.
2) 임의적 단일화와 선택적 분할
뉴주가 제시하는 전세계 게임 시장 분석 도표에서 국가별 이용자 데이터는 미국, 중국, 인도처럼 국가 단위별로 나뉘어져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11개 국가가 속했음에도 ‘동남아시아’로 묶여 1개로 산정된다.
필요에 따라 묶어지고, 또 나누어진다. 동남아시아 11개국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는 묶어져 ’Big 6’라는 이름으로 강조된다. Big 6는 동남아시아 내 핵심 시장이다. 반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동티모르, 브루나이의 나머지 국가는 기타(Other)로 묶인다. 이 국가들은 도표에서 잿빛의 어두운 색깔로 칠해지며, Big 6의 밝은 색과는 비교되며 사실상 존재가 지워진다.
뉴주의 임의적 지역 통합 및 분할이 문제적인 이유에 대해 웡 교수는 말레이시아의 중국인 게임 이용자 사례를 든다. 역사적으로 한족의 유입이 있었던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30%가 중국계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경제 활동에 능한 사업가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했고, 식민지 지배층과 말레이인 사이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사회적 불평등을 발생시켜왔다. 현대에 이르러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는 말레이인보다 상대적으로 게임을 많이 즐긴다. 말레이시아 게임 시장에서도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부 게임 퍼블리셔는 말레이시아에 중국어로 게임을 서비스하기도 한다.
그러나 뉴주의 그 어떤 보고서도 이러한 복잡성은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말레이시아가 “모바일 게임(매출 기준) 상위 10위에 중국 게임 타이틀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점을 강조는 하지만 그 이면의 배경은 방 안의 코끼리처럼 무시되고 있다.

보고서에 등장한 ‘Big 6’ 도표
3) 끝없는 성장을 보장하는 수치
뉴주의 동남아시아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장치는 연평균 성장률(CAGR)이다. CAGR은 특정 기간 동안 매년 일정한 비율로 성장했다고 가정하는 계산식이다. 5년 동안 시장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면, CAGR은 매년 몇 퍼센트씩 성장해야 2배가 되는가를 수치로 보여준다.
실제 세계는 경기 변동, 규제, 사회적 사건 등으로 요동치지만 CAGR은 불확실성을 모두 지워버리고 깔끔한 직선적 상승 곡선만 남긴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동남아시아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시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GDP는 자본주의 발전 정도를 숫자로 서열화하는 지표다. 개발도상국의 GDP가 빠르게 오르는 이유는 따라잡아야 할 간극이 크기 때문인데,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동남아시아 시장이 두 배 성장했다”는 헤드라인을 뽑는다. ‘GDP 상승 = 발전 = 미래 = 희망’이라는 등식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수치들이 현재의 성장만 강조하며 과거와 미래를 지운다는 점이다. 수치를 언급할 때 과거 식민 경험이나 사회적 불평등, 미래의 성장 둔화 가능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그래프만이 남아서 마치 미래가 이미 보장된 듯한 착각을 준다. CAGR과 GDP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담론적 장치이다.
우리가 읽어야 할 데이터 너머의 맥락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웡 교수의 비판은 뉴주의 보고서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보고서가 전달하는 것은 데이터 분석이자, 데이터 기반 신화이다. 이 신화는 동남아시아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복잡한 맥락들을 새롭고 깔끔한 의미로 구성하고,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화한다.
동남아시아는 실제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끝없는 성장의 신화만 좇는다면, 투자와 전략은 번번이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 업계가 진정으로 자본주의적 성공을 원한다면 숫자의 화려한 곡선 너머에 가려진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을 함께 읽어야 한다. 데이터는 객관적 진실처럼 보이지만, 그 해석과 표현 방식은 특정한 이해관계와 시선을 반영한다. 숫자가 어디서 왔고 어떤 관점을 담고 있는지 묻는 일은 절대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