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이제 게임은 플레이하지 않는다: 관리와 지배의 시대

29

GG Vol. 

26. 4. 10.

  최근 스팀 플랫폼에는 그간 스팀에서 잘 출시되지 않았던 방치형 게임 장르들이 자주 발견된다. <몰티즈와 복실복실 온천>, <미니 코지룸>, <우주 암석 파괴자> 등 최근 인기를 모은 방치형 게임은 일반적으로 해당 장르와 거리가 멀었던 PC 플랫폼의 틈새를 파고들어 나름의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PC 화면의 아주 작은 일부만 차지하거나 쉽게 화면 전환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러한 게임들은 업무를 자주 방해하지는 않으면서 업무 중에도 띄워놓을 수 있는 장점을 바탕으로 PC 플랫폼에 정착했다. 물론 전투 위주의 모바일 방치형 게임과는 달리 생활형 소재나 아기자기한 게임 디자인으로 천편일률적이었던 방치형 게임에 다양성을 덧대었다는 점이 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러’, ‘오토 배틀러’, ‘자동화’, ‘클리커’ 등의 키워드로 분류되는 이런 방치형 게임들은 과거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만 유통되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방치형 게임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반복 전투의 실행을 자동화에 위임함으로써 얻게 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의 자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동안에도 미리 설정된 자동화 공식에 따라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면서 플레이어는 일상 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적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   <몰티즈와 복슬복슬 온천>의 한 장면. PC를 통해 원고를 쓰면서도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

    

  2010년대 이후 고안된 이 장르는 역설적으로 게임이 가진 몇몇 제약들을 붕괴시키면서 생존해왔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게임에서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게임 플레이를 자동화시켰다. 본래 게임 플레이는 게임 디자인이 고안된 이후 항상 개발자가 게임 결과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플레이어에게 할당시킨 영역이었다. 바꿔 말하면 게임 플레이어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는 자신들에게 강제적으로 할당된 영역인데, 방치형 게임은 이러한 제약을 붕괴시킴으로써 플레이어가 이를 컴퓨터에 위임할 권한이 생긴 셈이다. 이렇게 되면 플레이어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플레이하는 주체가 아니라 게임의 결과만 관리하는 ‘관리적 주체’로 변모하게 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플레이로 인한 ‘결과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미디어였다. 과거의 플레이어들은 결과의 불확실함을 자신의 승리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해왔다. 그러나 방치형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 결과의 불확실함을 참아내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이 고되거나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존 게임들에서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플레이 과정이 MMO 같이 다소 밀도가 떨어지거나 반복될 때 느끼게 된 게임 플레이의 노동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애초에 게임 디자인 과정에서는 밀도있는 게임 플레이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지만, 게임의 완성도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중시한 모바일 게임들에서는 게임 플레이 과정보다 플레이 과정을 통해 생긴 아이템 등의 결과물들이 플레이어에게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  <디아블로 2>의 카우 레벨(cow level) 장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의 밀도보다 결과값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인식되었던 게임은 <디아블로> 시리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기나 방어구 등 아이템에 붙는 접두사와 접미사에 따라 해당 아이템의 가치가 달라지면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카우 레벨(cow level)을 반복해서 돌았던 행동들은 아마 RPG 게임에서 결과중심적 플레이가 본격적으로 극대화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중심적 플레이에 대한 선호는 이후 개발자들이 본래 게임의 제약 사항으로 묶어두었던 현금 결제를 통한 제약의 우회로 이어지게 된다. 주로 MMORPG를 통해 구현된 이러한 유료화 방식은 캐릭터나 아이템의 강화뿐만 아니라 시간적 제약이나 게임 내 공간의 위상까지 무력화시키면서 플레이어를 ‘지배적 주체’로 변모시킨다. 이 지점에서 게임 플레이는 더 이상 과정 자체가 아니라 결과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었다.


  이 두 장르는 동일한 ‘과정 생략 욕망’을 공유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방치형 게임이 게임 플레이 자체를 시스템에 위임함으로써 과정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MMORPG는 결제를 통해 플레이어가 그 과정을 직접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전자는 플레이어를 ‘관리적 주체’로, 후자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지배적 주체’로 만든다는 점에서 동일한 욕망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특히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러한 MMORPG와 방치형 게임으로의 양극화 현상은 넓게 보면 사실 유사한 심리적 기제를 바탕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게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과정을 생략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동일한 조건 아래에서 경쟁을 통해 획득해야만 하는 어려운 과정을 회피하고 시스템의 외부를 현금이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우회하는 상황이 주는 쾌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게임 과정에서의 유희를 포기한 것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인 노동을 알고리즘에 위탁하면서 결제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스스로가 게임을 제어하고 있다는 권력욕을 대리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PvP가 중심이 된 모바일 MMORPG를 플레이할 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필드의 몹들을 사냥하는 PvE 컨텐츠는 자동화를 시키지만, 본인들의 길드가 장악한 사냥터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침범당하거나 PK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게임 플레이에 개입하여 이러한 과정을 플레이하는 것을 즐긴다.


* <리니지 M>의 다양한 자동사냥 옵션 설정 방식

    

  “유능한 한국 모바일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돈을 내면 게임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인상을 풍길 수 있도록 적당히 재미없어야 한다.” 게임업계에서는 한국 모바일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이와 같은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MMORPG와 방치형 게임은 매우 동일하게 게임 플레이 과정을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만들어 왔다. 이들은 게임의 외피를 덮어쓰고 있지만 그 과정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결과중심적인 레벨과 아이템, 수치적 데이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물론 결제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기존 게임의 제약을 극복하는 순간 주어지는 쾌감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게임들은 은밀하게 다른 게임들이 주지 못했던 욕망들을 충족시키면서 범박하게나마 재밌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엄밀히 말하면 결제 과정이나 자동화를 통해 강해진 내 캐릭터가 만족스럽다는 느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해당 장르들은 이러한 우회과정을 통해 PvP의 컨트롤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시간이 부족한 플레이어들을 해당 장르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TV 광고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의 ‘운영’에까지 개입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SOL과 같은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투표를 통해 운영 방침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플레이어가 단순히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존재를 넘어, 게임의 규칙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 주체’로 구성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모바일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MMORPG와 방치형 게임은 해당 장르의 불모지였던 스팀 플랫폼까지 천천히 상륙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MMORPG는 글로벌 스탠더드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이나 강화형 결제 시스템을 줄이거나 없애고, 방치형 게임은 천편일률적이었던 횡스크롤 형태의 단순 전투 시스템을 버리고 아기자기한 생활형 소재로 변모시키면서 미아 콘살보가 언급한 진정한 게이머(real gamer)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그 본진인 스팀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장르 이동이 아니라, 플랫폼 간 플레이 문화의 재구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진정한 게임 플레이’를 중시하던 PC 플랫폼조차도 이제는 과정의 밀도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플레이 양식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게임이 더 이상 ‘플레이의 미디어’가 아니라 ‘결과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게임이 더 이상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가 언급한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을 통해 플레이어를 설득하는 매체가 아니라, 결과값의 축적을 통해 만족을 제공하는 데이터 중심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이 더 이상 ‘플레이를 경험하는 매체’가 아니라, 플레이를 최소화하면서도 결과를 관리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티브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교수)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이경혁.jpg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KRAFTON_Horizontal_Logo_Black.jpg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