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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함께 크게 걸었다 : 『빅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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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크리스틴 요르겐센(Kristin Jørgensen)은 『Gameworld Interfaces』에서 비디오게임의 인터페이스를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 사이를 매개하는 모든 기능이라고 쓴다. 요르겐센의 주장에서 인터페이스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UI 이상의 범주를 갖는다.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가 게임과 마주하기 위한 모든 접면들, 정보들, 작동적 요소들을 포함한다. 나아가 그는 ‘게임 세계 그 자체가 정보적이며 상호작용적인 환경’이라고 의미를 확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비디오게임이 인터페이스와 꽤나 친연적인 이유가 된다. 비디오게임의 ‘게임 세계(Gameworld)’는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정보의 집적이다. 이 안에는 작동시킬 것, 해석해야 할 것, 구분하고 모아야 할 것, 비교해야 할 것들이 늘어서 있다. 알렉산더 갤러웨이가 인터페이스란 ‘언제나 과정(process)이거나 번역(translate)’이라고 한 맥락도 이와 연결된다. 게임 세계 내부에는 재현적인 것과 정보적인 것, 작동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게임세계의 작동방식과 그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요르겐센은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의 ‘시그니파이어(signifier)’ 개념을 비디오게임 인터페이스에 적용한다. 노먼은 시그니파이어를 두고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표시’라고 말한다. 요르겐센은 게임세계의 표상 가운데 플레이어에게 상호작용의 지침을 제공하는 요소 역시 시그니파이어의 범주에 넣는다. 이 개념을 넓게 적용하자면 퀘스트를 가진 NPC 위에 떠오른 커다란 느낌표, 올라갈 수 있는 플랫폼이 가진 확고한 가시성, ‘X를 눌러 조의를 표하시오’같은 문구를  시그니파이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시그니파이어는 게임 시스템이 허용하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가능성과 그 정보들을 플레이어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비디오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2차적 독해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의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서로 색이 다른 액체가 든 구는 과연 무엇인가? 게임의 문법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한쪽이 체력, 한쪽이 마나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경험적 결과에 불과하다. 만약 이러한 게임을 처음 접하거나 게임의 문법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두 유리 구체는 이상한 장식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적에게 피해를 입을 때마다 붉은색 액체가 줄어드는 경험을 겪고,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즉, 인터페이스는 경험이라는 정보를 앞질러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클래식 『록맨』 시리즈의 ‘록맨의 머리’라는 아이템은 즉시 록맨의 생명 하나로 치환되지 않는다. 사실상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흰색 구체’와 무기 에너지를 회복시켜주는 ‘푸른색 납작한 캡슐’도 그 효과를 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그 맥락을 잡을 수 없다.


그림 1 『팩맨』의 아케이드용 인스트럭션 카드

 

그렇다고 비디오게임의 모든 인터페이스가 수수께끼나 미로인 것은 아니다. 고전적으로 비디오게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재적 요소가 동원되곤 했다. 아케이드 머신에 부착하는 ‘인스트럭션 카드’가 대표적이다. 이 부착형 설명서에는 게임 내부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초적인 조작법, 게임의 진행 방법과 아이템의 의미 등이 적혀있다. 한편 과거에는 게임 패키지 내에 게임의 기초적인 정보를 알리는 매뉴얼이 동봉되기도 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접하기도 전에 이러한 외적 정보들을 통해 게임의 작동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료에는 앞서 말한 ‘인터페이스’를 설명하기 위한 정보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정보량과 복잡성이 증가하고 저장 용량의 충분한 확보되면서, 이런 설명들을 게임 내부에 삽입해놓은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많은 게임들이 삽입하는 튜토리얼 파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튜토리얼은 대개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조작계가 각기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화면에 표기되는 정보들이 실제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시연, 팝업 창, 하이라이트와 문자 정보를 동원해 알린다.

 

그림 2 『둠 이터널』의 튜토리얼 화면

 

이런 경향은 비디오게임 인터페이스에만 국한되는 영역은 아니다.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다수의 기능을 탑재한 가정용 전자기기에서도 이런 일은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에서 이 경향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하나다. 비디오 게임의 인터페이스가 가진 기능을 일반화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장르나 문화적 관습이 게임 시스템과 인터페이스의 형식을 어느 정도 관습화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다. 화면 상단 가로로 길게 늘어진 두 개의 바가 체력을 표시하는 대전액션게임의 컨벤션,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FPS의 경우 우측 트리거가 사격인 경우 등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동일한 시스템을 갖추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각 인터페이스가 담지하는 정보 또한 게임에 의거해 상당히 달라진다. 같은 시리즈라도 『스트리트 파이터 5』의 V 게이지와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드라이브 게이지는 같은 성질의 기능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만 더 급진적으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인터페이스는 기호적 층위에서, 특정한 행위의 가능성과 그 정보를 지시할 따름이며, 플레이어는 그 기호를 해석하기 위해 일정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의 숙달을 위해, 인터페이스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인터페이스의 층위(인스트럭션 카드, 게임 매뉴얼, 튜토리얼의 설명문 등)가 동원될 때가 있다. 이런 종류의 인터페이스를 잠시 Interface over Interface, 줄여서 ‘IOI’라고 임시적으로 정의해보도록 하자. 『빅 워크』의 설명은 이를 통해서 진행해야 한다.

 


IOI가 목적이 될 때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작은 외딴 섬에 떨어졌다. 몇 개의 기묘한 건물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각 방마다 수상한 장치들이 있다. 어떤 것은 스위치가 있고, 어떤 것은 레버가 있으며, 어떤 것은 원형의 핸들이 있다. 각 장치를 조작해보면 수치, 이미지, 소리 등이 다양하게 출력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대체 이 장치들을 가지고 뭘 하라는 건가?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보자면 이것은 명백히 IOI의 공백이 가져다주는 문제다. 이 섬에는 다수의 인터페이스’들’이 산발적으로 훝어져 있다. 이런 장치들을 마주하는 우리의 문제는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가보다 앞선 단계에 있다. 대체 이 장치들이 가지는 ‘목적’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아마도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라면, 지금 묘사하는 게임이 『미스트』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것이다.


『미스트』는 흥미로운 게임이다. 그리고 그 흥미의 연유는 잘 짜여진 퍼즐과 레벨 디자인, 환경 스토리텔링 같은 요소에만 있지 않다. 앞서 말했듯, 여기에는 IOI의 부재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미스트』에서 퍼즐은 두 층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층위로, 퍼즐이 지시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측면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플레이어는 이 퍼즐이 애당초 ‘무엇을 지시하는지’ 상상해내고, 퍼즐이 제시하는 각 인터페이스의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이 단계에 도달해야 비로소 일반적인 퍼즐 수행(퍼즐의 목적에 도달해 돌파한다)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미스트』를 이렇게 정의해본다면 어떨까? 이 게임은 IOI를 퍼즐의 내부에 집어넣은 게임이다.

 

그림 3. 『미스트』의 퍼즐 인터페이스

 

각 퍼즐 마다 각기 다른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는 점이 『미스트』의 이해에 상당히 중요하다. 이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디재시스 내외로 사뭇 다른 위계를 가진다. 즉 보편적인 게임이라면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게임의 조작법’은 이 게임의 인터페이스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마우스 포인터로 대상을 클릭해 당기고, 돌리고, 누르는 보편적인 물리행위에 국한된다. 오히려 더 커다란 존재감은 각 퍼즐의 컨트롤러와 패널에 분배되어 있다. ‘게임을 조작하는 법’이 적힌 매뉴얼을 열심히 읽어봐야 게임이 제공하는 진짜 인터페이스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IOI는 그다지 효용이 없다. 각 퍼즐은 그 이해를 위해 독립적인 IOI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IOI가 완전히 없’지만은 않다. 게임세계 내에는 다수의 지시 없는 정보의 파편들이 맥락 없이 널려있다. 플레이어는 이 파편들을 모아 기존의 퍼즐과의 관계를 파악한다. 그렇게 각 퍼즐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추해낸다. 이때 핵심은 ‘지시없는’ 정보라는 점이다. 앞선 정의에 의하면, IOI의 중요한 기능은 인터페이스를 다시금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정보의 집적 자체가 곧 IOI인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은 비정형화된 정보들을 통해 ‘가상화된 IOI’를 생성해낸다. 그리고 이 가상의 매핑을 퍼즐 인터페이스 위에 얹어 최종적인 그림을 완성해내는 것이다.


『미스트』를 즐긴 플레이어라면, 이 게임의 진짜 재미가 바로 이 과정에 있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미스트』는 인터페이스에 대해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임이다. 『미스트』와 그 후예들(직접적인 후속작인 『리븐』을 포함해, 고전적 방탈출 게임인 『서브머신』 시리즈, 『미스트』의 형식을 더 거대한 오픈월드로 확장한 『위트니스』나 『탈로스 프린시펄』 등)은 이 재미의 구조를 어느 정도 공유한다.

 


IOI라는 타자


IOI의 기능을 매뉴얼을 통해 확보한다는 경향은 『킵 토킹 앤 노바디 익스플로드』(이하 『킵 토킹』)을 살펴보도록 만든다. 이 게임에는 두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 몇 종류의 인터페이스 패널이 랜덤하게 장착된 시한폭탄. 둘, 해당 인터페이스의 기능을 설명하고 해결 방법을 이해하도록 돕는 매뉴얼. 다만 문제가 있다. 게임의 디자이너는 이 게임을 싱글 플레이로 디자인하지 않았다. 『킵 토킹』은 비대칭 협력게임이다. ‘게임 화면’은 해체자 혼자만 봐야한다. 동일한 화면을 보지 못하는 전문가는 매뉴얼을 보며 해체 방법을 전달한다.


비대칭 협력 게임 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킵 토킹』은 IOI가 소통이라는 추가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달되도록 유도한다. 즉 폭탄(인터페이스)가 있고, 폭탄의 해체 매뉴얼(IOI)이 있으며, 그것은 언어를 통해 매개(IOIOI)된다. I에 IOI가 전달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I를 걸친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는 ‘언어’가 곧 IOI가 된다.


물론 『킵 토킹』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IOI의 전달을 맡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단방향적이다. 하지만 한 명이 과거 시기, 또 한 명이 미래 시기에서 활동하며 서로에게 정보를 주어야 하는 『더 패스트 위딘』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IOI가 되어줄 수 있다. 각각은 자신에게만 부여된 인터페이스를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정보를 요구한다. 누가 어떤 퍼즐을 풀고 있느냐에 따라 IOI의 역할에 토스와 리시브의 리듬이 생긴다. 이 두 게임은 불확실한 정보 통합이 ‘가상의 IOI’를 만들어내는 게임 『미스트』의 방계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다. 여기서 ‘가상의 IOI’라는 위치에는 상대방이 던지는 언어의 해독 불가능성이 얹혀진다.

 

그림 4 『킵 토킹 앤 노바디 익스플로드』의 매뉴얼

 

그런데 이 두 게임을 연결해보면 꽤나 흥미로운 작동이 있다. 『킵 토킹』은 어느 정도 실패의 게임이다. 이 게임은 티 응위옌이 말한 ‘바보 게임’과도 얼핏 겹치는 측면이 있다. 물론 목표는 폭탄의 해체이며, 폭탄을 성공적으로 해체하는 것에서 그 즐거움이 도출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엇나가며, 결국 ‘왜 그렇게밖에 전달하지 못하냐’며 (우스꽝스러운) 울분을 터트리는 지경에서 또 다른 ‘바보 같은’ 재미를 느낀다.


반면 『더 패스트 위딘』은 망가진 소통이 주는 언어의 슬랩스틱보다도, 두 사람의 부정확한 소통이 정확성을 낳을 때 주는 쾌감이 더 강하다. 언어와 소통의 IOI를 건드리는 이 멀티플레이어 게임들에는 어쩌면 이러한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비대칭적 정보라는 문제 앞에서 위계가 평준화될 때, 우리는 상당히 ‘묶여’있다는 감각을 받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크게 걸었다.


『더 패스트 위딘』이 서로에게 정보를 건네준다는 상호행위를 전제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누가 과거/미래에 있을 것인가’라는 고정된 위치를 제공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너와 나’라는 차이를 협력의 가능성으로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더 패스트 위딘』의 하나의 세션에서, 너와 나는 영영 다른 존재로 남는다. 하지만 『빅 워크』는 바로 그 역할의 고정성을 풀어놓는다. 『빅 워크』는 다시 『미스트』의 세계로 플레이어를 밀어 넣는다. 문제는 타자를 섞은 채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빅 워크』를 처음 하는 플레이어는 아마 『미스트』를 처음 하는 플레이어만큼이나 당황하게 된다. 게임은 한 체조 훈련장처럼 보이는 곳에서 맥락 없이 시작한다. 이후 조작을 묘사한 그림과 상호작용 가능한 몇 가지 기구만으로 플레이 방법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어찌되든 이 불친절한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게임의 요소들을 하나씩 익혀나가야 한다. 튜토리얼 공간을 나서면, 이제 눈앞에 (예상외로 볼만한) 자연 환경과 상당히 이질적인 단색의 인공 건물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역시나 떠오르는 질문은 같다. ‘그래서 여기서 뭘 하라고?’


『빅 워크』는 오픈월드 게임이다. 게임은 명시하지 않지만, 플레이어들은 경험적으로 게임이 지시하는 것들을 이해해나간다. 이 섬에는 총 45개의 퍼즐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고, 퍼즐을 해결하면 붉은색 오뚜기 모양의 보상물이 떨어진다. 지정된 장소에 이 보상물을 일정량 배치하면 섬 내부의 새로운 기능이 해금된다. 소위 ‘노멀 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반 엔딩은 보상물 30개를 모으면 달성이 가능하다. 물론 그 순간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정된 구조물에 필요한 숫자만큼 채워 넣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섬 북쪽 끝에 있는 미지의 구조물에 들어가 최후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은, 게임 본편에 비하자면 엄청날 정도로 친절한 편이다. 게임은 이 모든 과정과 결론을 모두 경험을 통해 인식하길 기대한다. (따라서 이 정도의 정보도 상당히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사과해야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총 45개의 퍼즐의 구성이다. 이 지점에서도 역시 『빅 워크』는 『미스트』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퍼즐은 각기 다른 목적과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게임 내에는 이에 대한 그 어떠한 설명도 없다.


단 하나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모든 퍼즐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플레이어들은 최소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해 퍼즐을 이해하고 해결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한쪽이 정답을 받고 다른 쪽이 그 정답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이를테면 최초로 마주하는 퍼즐은 이런 것이다. 한 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린 방이 있다. 밖에는 약 12개의 패널과 패널을 꽂을 수 있는 5개의 슬롯이 있다. 방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문이 닫히며 내외부가 차단된다. 오직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서만 소통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방 안쪽에 5개의 이미지가 그려진 패널이 일렬로 제시된다. 이게 전부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라면 패널을 안쪽에 제시된 순서에 따라 바깥쪽 슬롯에 나열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문제는 바깥쪽 플레이어는 정답 배열을 확인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매번 문을 여닫을 때마다 정답이 리셋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들은 이제 이 내용을 전달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구멍을 통해 말해주는 게 제일 간단한 해결법이긴 하나, 패널에 그려진 ‘그림’을 말로 전달하긴 좀 까다로울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모든 패널을 다 꺼내서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안쪽 사람이 구멍을 통해 순서대로 던져주는 것이다. 이것이 이 게임에서 그나마 간단한 축에 드는 퍼즐이다.


『더 패스트 위딘』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특정 역할을 강제하거나 고정하는 시스템은 없다. 모든 플레이어의 기능은 동일하며, 각 퍼즐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을지는 그때그때의 선택에 따라 갈린다. 원한다면 한 번 퍼즐을 시도해보고, 역할을 바꿔서 재도전해도 된다. 즉 『빅 워크』는 말한다. 어떤 인원수로, 어떻게 팀을 나눠서, 어떤 방법을 써서 클리어하든 상관없습니다. 퍼즐이 필요로 하는 답만 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단, 여러분은 그 과정에서 소통의 괴로움을 겪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퍼즐의 공간에서 나뉜 두 그룹은 소통 불능의 상태에 놓인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목소리를 ‘현실적인’ 매질의 산물로 다룬다. 그러니까 거리가 멀어지거나, 공간이 차단되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장거리 소통을 지원하는 무전기는 대부분의 퍼즐에서 먹통이 된다. 한쪽이 한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공간의 사람과 전혀 다른 정보를 얻는다. 모든 정보는 정보를 받는 순간에 무작위로 결정되므로 암기도 불가능하다. 정보의 전달은 지정된 위치에 국한되는 대화, 캐릭터의 포즈를 통한 전달, 퍼즐 자체에 설치된 대리 소통 매개물 따위로 강제된다. 심한 경우 ‘한 퍼즐의 두 공간’이 몇 km 단위로 멀어지기도 한다.


그림 5. 『빅 워크』의 퍼즐은 타자의 필요를 강조한다.

 

『미스트』의 명제가 다시금 머리를 든다. 『미스트』는 퍼즐의 층위를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퍼즐 자체의 해결, 둘째는 퍼즐의 목적에 대한 이해. 『빅 워크』는 여기에 추가적인 층위, 퍼즐의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더해 올린다. 우리의 언어로 하자면, 『빅 워크』는 I와 IOI와 IOIOI의 문제를 한 번에, 퍼즐이라는 덩어리로 던진다. 이 세 가지는 절차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앞에 떨어진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미스트』처럼 가상화된 IOI의 정보를 흩뿌려놓지도 않는다. 오직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감각으로 ‘가상의 IOI’를 형성해내야만 한다.


그럼 대체 어디서 이 가상화된 IOI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한번 이렇게 접근해보자. 『더 패스트 위딘』이 서로 다른 정보를 플레이어들에게 ‘부여’했다면, 『빅 워크』에서는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해석/서로 다른 현실을 ‘보도록’ 유도한다. 하나의 퍼즐 앞에 섰을 때, 모든 플레이어는 퍼즐에 대해 각기 다른 해결법을 유추한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플레이어들은 시도하고, 해결이 안되면 수정하고, 설령 올바르게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올바르게 역할을 수행하는지 서로 확인해야 한다. 플레이어들을 나누고 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퍼즐 공간의 역학은 이 ‘서로 다른 현실’의 간극을 더욱이 벌린다. 『킵 토킹』은 상대방의 해석/설명 능력을 비난하게 유도한다. 『더 패스트 위딘』은 상대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긍정하도록 유도한다. 『빅 워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상대방을 의심해봐야 어쩔 도리가 없도록 만든다.


『빅 워크』에는 정확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거나, 명백히 다른 정보를 가진 상대도 없다. 파편화되어 어슷하게 비추는 가상화된 정보도 없다. 그렇다. ‘정보가 없다.’ 인터페이스를 해독해낼 ‘인터페이스 오버 인터페이스’ 그 자체가 없다. 다만 퍼즐의 구성, 형태, 기능, 역학, 가능성은 플레이어의 직관을 부른다. 허나 직관만으로는 안된다. 정확한 직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답을 전달해야 할 다른 플레이어와 직접적 소통이 차단된다. 이번에는 다른 직관이 작동한다. 다른 플레이어가 주는 미세한 신호를 해독해내야 할 직관이다. 두 가지 직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즐의 끝으로 밀고나간다. 그렇다면 부재한 IOI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이 직관일까?


문제는 모두가 동일한 정도의 직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빅 워크』는 ‘여러분의 공동 참여’를 강제한다. 물론, 어떻게 나뉘어 참여할지는 열어둔 채로.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직관을 생성해내고도 고민에 빠진다. 퍼즐의 작동 방식과 목표에 대한 직관도, 상대방에게 신호를 줄 방법을 찾는 직관도, 상대방으로부터 온 신호를 해석해야 하는 직관도 제각각이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이 『빅 워크』는 각기 다른 현실을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내 직관이 찾아낸 퍼즐의 해결법은 동조해줄 동료가 없다면 실행할 수 없다. 내 직관이 만들어낸 힌트도 반대편의 실행자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직관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설령 퍼즐의 구조와 해결법을 모두 알아챘다고 하더라도, 무전기조차 통하지 않는 상대편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다면 무용지물의 위치에 오른다.


사실 대답은 앞서 넌지시 흘려놨다. 다시 강조하자면, 『빅 워크』는 상대방을 의심해봐야 어쩔 도리가 없도록 만드는 게임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퍼즐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자의 직관을 믿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이 이상한 신호를 상대방이라면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빅 워크』의 퍼즐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빅 워크』는 이상한 게임이다. 퍼즐의 구조도, 해결 방법도, 해결하기 위한 소통도 모두 상대방의 이해와 신호로부터 도출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가 어느 방에 들어갈 것인가’부터 이미 그가 올바르게 신호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해야 한다.


마지막 대답을 하자면 이렇다. 『빅 워크』는 무엇을 IOI로 삼는가. 그것은 함께 게임을 하는 타자에 대한 신뢰로 귀결된다.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명시적 정보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 퍼즐을 풀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타자의 직관, 언어, 소통 가능성을 믿고 내지르는 것뿐이다. 『빅 워크』가 신뢰를 찬미하는 게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표현이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 『빅 워크』는 신뢰를 인터페이스로 전환하는 게임이다. 다시 갤러웨이를 끌어오자면, 인터페이스는 언제나 과정(process)이자 번역(translate)이다. 이 언어쌍은 놀라울 만치 잘 맞는다. 신뢰는 언제나 과정이자 번역이기 때문이다.

 

그림 6.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구!

 

따라서 『빅 워크』에서 타자는 함께 하는(co-op) 플레이어이자, 게임적 오브젝트이기도 하다. 그가 나의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는 복잡한 구성물의 빈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조각으로 현전한다. 『빅 워크』의 엔딩들은 언어적 매개를 거치지 않으면서도 꽤나 감동적인 게임과의 이별을 보여준다. (여기서 ‘게임과의’라는 수식은 당연하게도 중의적으로 쓰였다.) 『빅 워크』와의 이별은 여전히 게임 오브젝트들과의 이별이다. 하지만 여기엔 신뢰할 수 있었던 타자라는 인터페이스가 함께 묻어 있다. 아주 우습게도, 이내 엔딩 이후에 다시 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엔딩의 풍경에선 어딘지 멀리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그 타자와는 다시 만날 수 있더라도, 『빅 워크』라는 게임세계의, 그리고 신뢰의 인터페이스와는 작별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림 7. 다시 보고 싶을 거예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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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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