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 2026과 한 템포 늦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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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그리고 그 한복판인 광복절 연휴에 인디게임 행사 BIC(Busan Indie Connect)가 개최되었다. 한명의 게이머이자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찾은 올해의 BIC는 작년보다 여러모로 즐기기 편해진 행사였다.
BIC는 참 매력적인 행사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게임을 미리 해볼 수 있고, 평소라면 존재조차 몰랐을 게임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게임을 만든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올해 역시 이런 부분에서 BIC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남아있다.

수 년째 마주하는 부산 이즈 굿- 이쯤되면 살짝 세뇌되는 것 같다.
게임에서 UI/UX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마르고 닳도록 하곤 한다. 같은 기능이라도 어떻게 보여주고 이용하게 하느냐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의 BIC는 그런 점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몇 가지 만족스러웠던 변화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전반적인 조명이 어두워졌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행사장은 아무래도 집에서 게임을 할 때 보다 게임에 집중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여기에 과거 지나치게 밝은 조명으로 인해 때때로 모니터 화면을 보는 것이 불편했을 정도였는데, 이번에 어두운 조명으로 변경한 점이 이러한 불편사항을 확연히 줄여주었다. 게임에 집중하기 쉬워진 만큼, 보다 다양한 게임을 해 볼 수 있었다.

역시 게임쇼는 살짝 어두워야 제맛이다
다음으로 컨퍼런스를 행사장 내부로 옮긴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는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보니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행사장 한 면에서 진행되어 거리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덕분에, 관심 있는 세션이 있으면 가서 듣고, 끝나면 곧바로 게임을 하러 돌아갈 수 있었다. 관람객에게도 편리한 변화이겠지만, 컨퍼런스의 주 대상인 개발자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변화였으리라. 아무리 같은 건물 내부라도 부스를 운영하느라 지친 심신을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후일 컨퍼런스의 규모가 커진다면 유지하기 어려운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이렇게 작고 알찬 구성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행사장과 컨퍼런스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은 꽤나 큰 장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각 부스에 개발 진행도를 표시해준 것 역시 꽤 유용했다. Released, Coming Soon, Beta, Demo의 네 분류로 구분된 패널은 게임을 확인하는데 소소한 도움이 되어주었다. 미출시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게임이 마음에 들더라도 출시까지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 일을 빈번히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만큼,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은 꽤 반가운 일이다. “이거 언제 출시돼요?” “이미 출시됐어요.”라는 불필요한 문답이 필요 없어질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 이미 출시된 게임을 거르거나 일부로 골라 플레이 하는 것도 가능하다.

UI 개선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다만 Beta와 Demo의 구분은 다소 모호했는데, 아무래도 팀마다 두 단어를 사용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게임쪽에서 다소 흔한 일인데, Released 역시 얼리액세스 단계인지, 완전 출시인지 헷갈리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Demo 단계를 베타보다 위에 두어, BIC 외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Demo가 있는 게임과 아닌 게임으로 구분을 하는 것이 더 명확했을지도 모르겠다.
한여름, 그리고 부산.
행사장 안에서의 경험이 좋아진 것과 별개로, 행사장 밖의 조건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먼저, 너무 덥다. 실내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지만, 밖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온이 조금 낮아졌다 싶으면 습하고, 때로는 비까지 쏟아진다. 어쩌면 바다 가기 딱 좋은 날씨라 할 수 있겠지만, 이 날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행사 이후의 모임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뜨겁다가 비왔다가. 여름은 쉽지 않다.
인디게임행사의 매력중 하나는 본 전시 외적인 부분에도 있다. 특히 필자는 과거 대만의 인디게임 행사 G-Eight에 대한 가장 큰 아쉬움으로 애프터 커뮤니티 행사의 부재를 꼽은 적 있다. 전시가 끝난 뒤, 공식적인 술자리들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이 삼삼오오모여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BitSummit은 금, 토, 일 밤에 가모강변에서 모두들 모여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BIC 역시 이러한 모임이 자발적으로 갖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여름의 해운대는 오래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마냥 편한 장소가 아니다. 해안가의 한 지점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이 지점이 어디인지 찾는 것은 생각보다 헷갈리는 일이다.
7월에 열렸던 BitSummit에서도 더위는 큰 문제였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시원하고 모두 모여 떠들기 좋은 강변으로 모였던 셈이다. 그마저도 BitSummit은 올해부터 다시 5월로 옮겨졌고, 늘 7월의 교토만 겪다 5월을 겪어보니 다시는 7월로 안 갔으면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날씨는 행사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BIC도 수년간의 노력 끝에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지만, 8월의 더위가 그 자리를 더 오래, 더 크게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정말 많은 개발자들이 모였던 올해의 BitSummit. 날씨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숙소와 교통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의 해운대에 광복절 연휴까지 겹치니, 저렴한 숙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행사 참가팀은 BIC의 숙소 지원 덕분에 이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하지만 행사를 보러 오는 관람객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해운대가 아니라 부산 외곽으로 숙소를 구해 이를 어떻게든 해결한다 해도, 이번에는 교통편을 구해야 한다. 평소에도 금방 매진되고는 하는 서울-부산간 KTX는 여름 성수기에 당연히 더 구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관람객은 교통과 숙박이라는 두 장애물을 넘어야만 한다. BIC를 주된 목적으로 방문하려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는 “간 김에 부산 관광도 하면 되지”를 개인적인 정답으로 삼아 제법 즐길 수 있었지만, 관광은 방문객이 선택할 일이지 행사 방문의 부담을 납득하기 위해 모두가 정답으로 삼을만한 방법은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참관객 규모가 발표된 수치보다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마다 집계 방식이 다를 수 있고, 현장이 얼마나 붐비는가만으로 실제 방문객 수를 가늠할 수도 없다. 여름 연휴라는 조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방문의 장애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개최 시기의 성패까지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BIC 자체를 목적으로 찾아오려는 사람들에게 이동과 숙박의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분명사람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토요일엔 제법 복작복작 했으니까.
BIC와 인디
이런 어려움에도 BIC가 반가운 이유는, 평소라면 만나지 못했을 게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BIC는 해외 인디 팀들을 초청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곤 하는데, 이는 BIC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해준다.
이번 행사에서는 여러 해외 게임 팀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특히 프랑스 개발자들이 인상깊었는데, 이들의 게임에서 경험해 볼 수 있었던 다양성의 일상성과 이에 대한 시선, 그리고 작품에 차용된 요소들은 내가 익숙하게 접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단순히 낯선 소재가 등장해서 신기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무엇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무엇에 관심을 두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게임을 통해 접하는 경험이었다.
아마 이는 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아니리라. 어떤 장소를 방문하는 것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시선으로 만든 작품을 만나는 것은 다르니까. 어쩌면,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기 삶의 일부를 온전히 작품에 투영했고, 나는 그것을 플레이하면서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퀴어문화에 관한 일상을 서사로 담아내는가 하면, 일본 만화를 읽던 취미를 게임에 담을 수도 있는 법이다.
일본의 게임 《Rain98》도 그랬다. 수려한 그래픽과 아름다운 캐릭터도 분명 장점이지만, 내게 더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우중충하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1998년이라는 배경을 빌리고 있지만,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 분위기와 이야기가 어우러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허무주의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경험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중국 개발자가 만든 《기획 시뮬레이터》는 앞의 예시들과는 정반대로, 너무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어 즐거운 게임이었다. 거의 PTSD가 오는 듯한 감각을 제공해주었는데, 어찌나 주인공의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내 가족의 이야기와 그렇게도 똑같던지, 처음 만나는 개발자에게 매우 강한 내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개발자 자신의 경험을 게임에 녹여내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누군가에게는 PTSD가 올 지 모르는 대사들.
어쩌면 인디게임을 만든다는 이유로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애쓰는 것은, 되려 그 다양성을 해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생각한 바를 그려내는 것이 오히려 가장 독창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게임을 덜 독창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해외의 게임이 새롭게 여겨지는 것은, 그들의 일상적인 경험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차이를 익숙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작자가 무엇을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지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어떤 것을 접하는지,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드러내는 데 얼마나 익숙한지, 어떤 다름을 낯설게 느끼는지가 작품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게임들만 모은 자리와 세계 각지의 게임을 모은 자리에서 경험하는 다양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BIC가 해외 게임팀을 유치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좀처럼 해외 행사에 갈 수 없는 개발자와 게이머도 이곳에서는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게임을 만나고, 그 게임을 만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해외 게임을 많이 들여온다는 것은 단순히 전시작의 숫자를 늘리는 일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삶과 생각을 접할 기회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배우는 관계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과 감각도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나는 세계일 수 있다. 그들의 게임을 통해 다른 삶을 경험하듯,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선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되고, 전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게임이 오히려 뜻밖의 공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BIC가 제공하는 경험은 제법 특별하다.
이런 만남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그러려면 그 바탕이 되는 게임들 역시 계속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게임으로 완성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완성했다고 해서 저절로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 역시 아직 재미있는지조차 모르는 게임을 실행하고, 규칙을 익히고, 그 안에 머무르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 게임을 좋아할 사람에게도 서로를 발견할 기회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첫 만남은 있는 법이다.
BIC는 그런 만남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참가자의 숙박 부담을 덜고, 게임을 관람객 앞에 놓고,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 행사가 개발자의 성공이나 생계를 보장해줄 수는 없지만, 자신의 게임을 좋아할 사람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구체적인 도움이다. 관람객에게도 평소라면 존재조차 몰랐을 게임을 직접 해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기회가 된다.
꿈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그 꿈이 밥을 먹여주는 미래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살아가는 일이다. 내가 BIC를 응원하는 것도 그런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든 서로 다른 게임들이 계속 나왔으면 한다. 그러면 조금 더 할 게임이 많아지고, 익숙하지 않은 재미도 만나고, 게임을 통해 알게 되는 세계도 넓어질 테니까.
마치며.
2026년 8월의 BIC는 꽤 멋지고 즐거운 게임행사였다. 컨퍼런스를 듣거나 게임에 집중하기 전보다 편해졌고, 해외 팀들의 작품을 통해 다른 삶을 만나는 경험도 좋았다.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자리를 찾아오기 쉬웠으면 하고, 어렵게 만난 사람들이 행사가 끝난 뒤에도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좋은 행사였다는 평가와 아쉬운 점이 남았다는 말이 모순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얻은 것이 많았기에, 앞으로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BIC와, BIC를 통해 한국에서 만나게 될 세계의 많은 인디게임 팀들을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