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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경험의 외재화 역사와 기억의 재전유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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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1. 게임 세이브와 스크린샷의 역사

     

디지털 게임은 처음 등장 당시 며칠을 두고 길게 플레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아케이드 게임은 짧은 시간 동안 동전 투입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기에 게임 플레이 역시 짧고 직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미덕이었다.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 게임은 아케이드와는 다른 조건 위에 있었다. 아케이드 기판은 개별 게임에 특화된 전용 하드웨어를 쓸 수 있어서 그래픽과 사운드가 훌륭했던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은 범용성을 추구해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표현력에서 오랫동안 아케이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스펙터클로 경쟁할 수 없다면 시간과 복잡성으로 경쟁하면 된다는 것이 가정용 게임의 또 다른 전략이었다.


때문에 이들 플랫폼을 활용한 게임들은 롤플레잉이나 어드벤처처럼 훨씬 복잡하고 긴 플레이 시간을 요구하는 장르로 발전했고, 게임을 여러 날에 나누어 플레이할 필요성이 생겨나면서 세이브 기능 역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플레이 과정을 처음으로 기억하여 다음 플레이 때 이를 다시 꺼내어 플레이하는 기능이 처음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    Apple Disk II와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이처럼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장시간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 등장하면서 게임의 진행 상태를 보존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었지만, 그 양상은 PC와 콘솔에서 서로 다르게 진행되었다. PC는 범용적인 저장장치인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콘솔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게임을 저장할 수 있었다. 1977년 MIT의 PDP-10에서 개발되기 시작해 1980년 개인용 컴퓨터용 상용판이 등장한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조크(Zork)》는 플로피 디스크에 게임의 진행 상태를 저장할 수 있었던 초기의 대표적인 게임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최초’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조크》보다 앞서 등장한 《콜로살 케이브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 역시 최초 버전은 아니지만, 돈 우즈(Don Woods)가 확장해 1977년에 공개한 350점판에서 이미 게임의 진행 상태를 보존하고 이후 재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1]

다만 당시의 세이브는 오늘날처럼 게임 상태를 구성하는 여러 변수를 직렬화하여 별도의 세이브 파일에 기록하는 방식과는 달랐다. PDP-10에서 실행 중이던 프로그램의 코어 메모리 이미지를 보존했다가 이후 다시 불러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후 이러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이 PDP-10 같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TRS-80이나 Apple II 같은 개인용 컴퓨터로 이식되면서 《조크》와 같은 게임에서도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한 세이브가 가능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TRS-80이나 Apple II에서 사용하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한 장의 용량이 포맷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대략 100KB 안팎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반면 콘솔 게임의 경우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1980년대 초중반 비디오 게임 콘솔은 대부분 카트리지 형태로 게임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물리 매체 안에 세이브 파일을 가변적으로 저장할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카트리지는 기본적으로 읽기 전용 ROM이었고, 콘솔 본체에도 플로피 드라이브와 같은 범용 저장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개발사들은 다양한 방법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중 하나가 패스워드 방식이었다. 게임을 중단할 때 현재의 스테이지나 캐릭터의 능력치, 획득한 아이템과 무기, 쓰러뜨린 보스와 같은 게임 상태를 몇 개의 숫자와 문자 조합으로 변환하여 화면에 보여주고, 플레이어는 이를 종이에 직접 적어두었다. 다음에 게임을 시작하면서 이 패스워드를 다시 입력하면 게임은 문자열을 역으로 해석하여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복원하고, 플레이어를 이전과 비슷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게 했다.


예를 들어 특정 아이템의 보유 여부를 0과 1로 구분하고, 현재 스테이지나 능력치를 일정한 숫자값으로 바꾼 뒤 이 값들을 하나의 문자열로 인코딩하는 식이었다. 물론 패스워드의 길이는 플레이어가 직접 기록하고 다시 입력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 정보를 담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게임은 진행을 재개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고 압축해야 했으며, 저장하지 않은 정보는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 초기값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패스워드는 오늘날과 같은 세이브 파일이라기보다 게임 상태를 재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압축된 설계도에 가까웠다. 게임 내부에 데이터를 저장한 것이 아니라, 게임의 상태를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기호로 변환해 게임 바깥으로 꺼내놓은 셈이다. 저장이라는 기능을 기계가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의 손과 종이에 위탁했던 것이다.

     


*  <메트로이드>의 패스워드 장면

     

패스워드 방식이 콘솔 게임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닌텐도의 북미 NES 게임들에서 이 방식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이다[2]. 특히 <젤다의 전설>이나 <메트로이드> 같이 닌텐도 프랜차이즈의 핵심을 차지하는 게임들의 세이브 방식이 일본과 북미의 출시 환경에 따라 갈리는 부분은 흥미롭다. 1986년 2월 닌텐도는 일본에서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Famicom Disk System)을 출시했다.


이는 기존 패미컴에 연결해 재기록 가능한 ‘디스크 카드’를 읽고 쓸 수 있게 해주는 주변기기였다. 이 디스크 시스템의 런칭 타이틀이 <젤다의 전설>이었다. 일본판 <젤다의 전설>은 카트리지가 아니라 디스크 카드에 직접 진행 상황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뒤이어 <메트로이드>와 <키드 이카루스>도 같은 방식으로 디스크 시스템에 발매되었다. 재기록 가능한 디스크라는 저장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게임은 자연스럽게 플레이 진행 상태를 같은 매체에 기록할 수 있었다.

    

* 패미콤 디스크시스템과 <젤다의 전설> 디스크시스템 판

문제는 이 세 타이틀이 북미로 수출될 때였다. 북미 NES에는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이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닌텐도는 각 게임에 대해 다른 해법을 택해야 했다. 1987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 북미판은 카트리지로 발매되었는데, 일반적인 ROM 카트리지 자체에는 플레이어의 세이브 데이터를 기록할 수 없었다. 이에 닌텐도는 카트리지 내부에 SRAM과 배터리를 탑재하여 콘솔의 전원이 꺼진 뒤에도 SRAM의 데이터를 유지하는 배터리 백업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패스워드를 기록하지 않고도 카트리지 내부에 직접 게임 진행 상태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북미 NES 시장에서 이러한 배터리 백업 세이브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초기 사례가 <젤다의 전설>이었다. 이 작은 배터리 하나로 카트리지 게임에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플레이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1987년 여름 북미에서 출시된 <메트로이드>와 <키드 이카루스>는 배터리 백업 없이 카트리지로 발매되었고, 대신 패스워드 시스템으로 진행 상황을 복원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게임들이 일본에서는 재기록 가능한 디스크에 세이브되고, 북미에서는 배터리 백업 카트리지와 패스워드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같은 회사의 같은 시기 게임들에서도 세이브에 관한 세 가지 해법, 즉 디스크와 배터리 백업, 패스워드가 동시에 경합했던 셈이다. 그 선택은 순수한 기술적 우열만이 아니라 카트리지의 제조단가와 지역별 하드웨어 환경 같은 경제적·산업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러한 세이브의 외재화에 대한 기술사적 흐름은 ‘패스워드 → 디스크 → 배터리’라는 단선적인 진보가 아니라, 같은 시기에 여러 해법이 경합하고 플랫폼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이 선택되다가 특정 방식이 점차 표준으로 정착하는 과정이었다.


* 플레이스테이션의 메모리 카드

     

1990년대에 들어 비디오 게임 콘솔이 CD-ROM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3D 그래픽과 풀모션 비디오, 확장된 사운드트랙 등 게임의 표현력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CD-ROM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대신 다시 쓸 수 없는 읽기 전용 매체였기 때문에 CD-ROM을 도입한 콘솔들은 별도의 세이브 저장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를 위해 본체에 별도의 메모리카드 슬롯을 두었고, 플레이어는 게임 소프트웨어와 분리된 메모리카드에 자신의 세이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메모리카드의 전체 용량은 128KB였으며, 사용 가능한 저장공간은 15개의 블록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떤 게임은 세이브에 한 블록이면 충분했지만, 여러 블록을 사용하는 게임도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메모리카드의 제한된 공간을 직접 관리해야 했다.


이러한 메모리카드 방식은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도 이어졌지만 용량은 128KB에서 8MB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일반적인 게임 세이브는 여전히 메모리카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별매의 40GB HDD가 일부 기종과 게임에서 지원되기도 했지만, 이는 모든 PS2 게임의 보편적인 세이브 매체가 아니었다[3]. 반면 같은 6세대 콘솔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초기 Xbox는 8GB가량의 하드디스크를 본체에 기본으로 내장했고, 게임 세이브 역시 기본적으로 이 내부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다. 플레이어가 세이브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메모리카드를 반드시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후 콘솔에서도 대용량 내부 저장장치가 일반화되고 네트워크 접속이 상시화되면서 세이브 파일은 로컬 HDD나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되는 것을 넘어 원격 클라우드 서버에도 보관되기 시작했다. PC 쪽에서는 밸브(Valve)가 2008년 11월 스팀 클라우드(Steam Cloud)를 처음 선보였다. 다만 초기 스팀 클라우드는 세이브 파일 자체보다는 키보드와 마우스 설정 같은 환경설정 동기화에 가까웠고, 이후 지원 범위가 세이브 데이터까지 확장되어 갔다.


콘솔 쪽에서는 소니가 조금 더 이른 시점에 움직였다. 2011년 3월 PS3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의 온라인 세이브 스토리지는 가입자에게 최대 150MB, 파일 1000개까지 세이브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백업할 수 있게 해주었다[4]. 클라우드 세이브에 이르면 마침내 세이브가 저장되어 있는 물리적 장소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패스워드는 종이 위에, 카트리지는 손 안에, 메모리카드는 지갑이나 서랍 속에, 하드디스크는 적어도 거실의 콘솔 본체 안에 있었다. 반면 클라우드 세이브는 특정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 계정에 종속된다.


게임을 하던 콘솔이 고장 나거나 없어져도, 심지어 플랫폼을 넘나들어도 기억은 유지된다. 저장이 마침내 하드웨어라는 물질적 기반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오직 사용자 계정에 결속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클라우드에 세이브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면 한 기기에서 플레이한 게임을 다른 기기에서 이어서 플레이할 수 있고, 일부 게임과 서비스에서는 서로 다른 플랫폼 사이에서도 동일한 진행 상태를 공유하는 크로스 세이브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이브 기술의 역사는 단순히 저장매체의 용량이 커지고 저장 방식이 편리해진 과정으로만 볼 수 없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매 순간 수많은 선택과 행동을 수행하는 일이지만, 세이브 파일은 그 모든 경험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위치, 획득한 아이템, 해결한 퀘스트, 캐릭터의 능력치, 게임 세계의 변화와 같은 특정한 상태만을 추출하여 저장매체에 기록한다. 다시 말해 세이브 파일은 플레이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이후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게임 시스템이 선택한 일부 정보를 외부의 물리적 기억장치에 기록한 것이다.


초기 패스워드가 이러한 상태를 몇 줄의 기호로 극단적으로 압축해 플레이어의 종이에 맡겼다면, 배터리 백업과 메모리카드,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는 점점 더 많은 게임 상태를 기계가 대신 기억하게 만든 과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세이브 기술의 역사는 게임 플레이에 대한 기억이 플레이어의 머리와 종이에서 점차 기계의 저장장치로 이전되고 외재화되어 온 역사이기도 하다.


한편 오늘날의 게임에서 너무나 쉽게 지원되고 있는 스크린샷 저장이나 동영상 녹화 등은 대용량 하드디스크가 등장했다고 해서 곧바로 지원되었던 것은 아니다. 7세대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도 시스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에야 일부 대응 게임에 한정해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었다[5]


사실 1980년대부터 게임의 플레이 화면은 게임 자체의 저장 기능과는 별개로 이미지의 형태로 기록되어 왔다. 당시 패미컴이나 세가 마스터 시스템 같은 가정용 콘솔에는 스크린샷을 저장할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게임 잡지 편집부에서는 CRT 화면을 필름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화면의 주사선이나 깜박임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환경에서 카메라를 고정하고 느린 셔터 속도로 촬영해야 했으며, 이후에는 게임기의 영상 출력을 VHS 등의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한 뒤 필요한 프레임을 골라 비디오 프린터로 출력해 정지화면을 추출하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용 비디오 캡처 카드가 보급되면서 잡지 편집부가 콘솔의 영상 신호를 직접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 잡지의 공략 기사에 대량의 스크린샷을 사용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즉 게임 화면의 시각적 기록은 일찍부터 존재했지만, 오랫동안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주체는 게임회사나 게임 잡지처럼 전문적인 촬영·캡처 장비를 가진 이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변화했다. PS3는 일부 대응 게임에서 시스템을 통한 스크린샷 저장을 지원했고, 닌텐도 Wii에서도 몇몇 게임이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SD 카드에 저장할 수 있었지만, 7세대 콘솔 전체에서 범용적인 기능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PS4와 Xbox One을 비롯한 8세대 이후였다. 스크린샷과 플레이 영상의 캡처가 운영체제 차원의 표준 기능으로 편입되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처럼 컨트롤러에 캡처 전용 버튼까지 마련되면서 플레이어는 별도의 전문 장비 없이 자신이 경험한 특정 순간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6].


여기에서 게임이 보존하는 ‘기억’의 성격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세이브가 기본적으로 ‘어디까지 진행했는가’라는 게임 상태를 보존하는 장치였다면, 스크린샷과 플레이 영상은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는가’라는 플레이 경험 자체의 흔적을 보존한다. 더 나아가 캡처된 이미지와 영상이 SNS와 플랫폼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면서 게임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되는 사회적 기억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게임 플레이 화면이나 영상을 쉽게 촬영해 외부에 공유하거나, 자신의 플레이 자체를 실시간으로 방송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더 이상 플레이를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보고, 행동하고, 성취하고, 실패했던 경험의 흔적까지 디지털 데이터로 외재화되어 축적되고 있다.

     


2. 게임 기억의 재전유 양상

     

게임 플레이 상황의 세이브 기능은 고안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점점 더 비가시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종이에 손으로 옮겨 적던 패스워드가 카트리지 속 배터리가 되고, 손에 쥐던 메모리카드가 본체 내부의 하드디스크가 되고, 마침내 만질 수조차 없는 클라우드 서버의 데이터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게임 저장 기술이 이렇게 배경으로 물러나 인프라가 되어 갈수록, 오히려 그 인프라를 다시 전경으로 끌어내 서사와 감정의 재료로 삼는 게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세이브 파일은 오랫동안 게임 플레이를 중단했다가 다시 이어가기 위한 기능적 장치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세이브와 로드, 리셋이 플레이어의 일상적인 행위로 자리 잡으면서 일부 게임들은 이러한 기능 자체를 게임의 서사와 세계관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토비 폭스(Toby Fox)의 <언더테일(Undertale)>이다.


<언더테일>에서 세이브와 로드 과정은 더 이상 게임 바깥에 존재하는 단순한 시스템 명령이 아니다. 게임 세계의 시간과 인과관계를 뒤흔드는 실제 능력으로 취급되며, 플레이어가 세이브 파일을 조작하는 행위 자체가 서사의 일부가 된다. 게임 속에서 세이브 능력은 가장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에게 주어지는 힘으로 설명되며, 주인공이 지하세계에 들어오면서 이전까지 그 힘을 사용하던 플라위는 세이브와 로드에 대한 주도권을 잃는다. 플레이어가 화면 바깥에서 수행해왔던 세이브 행위가 게임 세계 안의 능력으로 번역되는 셈이다.


<언더테일>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세이브 기능을 세계관의 설정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로드나 리셋을 하면 이전의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된다. 플레이어만 이전의 시간선을 기억할 뿐 게임 속 인물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언더테일>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흔들린다. 플라위는 이전 시간선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며 플레이어의 반복적인 세이브 과정을 인식한다.


다른 인물들 역시 완전한 기억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이전 시간선의 사건에 대해 기시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리셋은 더 이상 깨끗한 초기화가 아니다. 플레이어가 이전의 세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흔적이 현재의 게임 세계로 스며든다. 세이브 파일이 과거를 지워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 <언더테일>에서 세이브 리셋 후 뭔가 기억하고 있는 플라위를 다시 만난 장면

     

이러한 구조는 특히 플레이어의 윤리적 선택과 결합하면서 강한 효과를 만든다. 일반적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호기심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시험해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는 일을 아무런 부담 없이 반복할 수 있다. NPC를 죽여본 뒤 로드하거나, 다른 대사를 선택한 뒤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게임 바깥에서 허용된 실험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언더테일>은 이러한 플레이어의 특권을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그 행위에 책임을 부여한다. 플레이어가 누군가를 죽이고 다시 시간을 되돌렸다고 해서 그 행위가 완전히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플라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게임 역시 플레이어가 이전에 어떤 경로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남긴다. 특히 몰살 루트를 끝까지 진행한 뒤에는 이후의 세계에도 그 선택의 흔적이 남아, 단순한 초기화만으로 모든 결과를 깨끗하게 지울 수 없도록 만든다. <언더테일>은 세이브 파일을 플레이어에게 무한한 시행착오의 자유를 제공하는 장치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을 기억하고 되돌려주는 윤리적 기억 장치로 바꾸어 놓는다.


이 지점에서 <언더테일>은 앞서 살펴본 세이브의 외재화 역사와 정반대의 방향을 보여준다. 세이브 기술의 발전은 오랫동안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할 것을 기계가 대신 기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패스워드를 종이에 적던 시절에는 플레이어가 게임 상태의 일부를 직접 보존해야 했지만, 배터리 백업과 메모리카드,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를 거치며 점차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의 상태를 자동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더테일>은 그렇게 외재화된 기억을 다시 게임의 의미 체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세이브 파일은 더 이상 투명한 저장 데이터가 아니라, 누가 과거를 기억하는가, 지워진 시간은 정말 사라지는가, 플레이어는 되돌린 선택에 책임이 없는가를 묻는 서사적 장치가 된다. 다시 말해 <언더테일>은 게임의 바깥에 있던 세이브 시스템을 게임 안의 시간과 기억의 문제로 재전유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언더테일>이 세이브 파일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을 게임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니어: 오토마타(NieR: Automata)>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지금까지 축적해온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지를 묻는다. 2017년에 출시된 <니어: 오토마타>에서 세이브 데이터는 처음부터 단순한 시스템 데이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게임 속 안드로이드에게 육체는 교체 가능한 기계적 장치이며, 한 개체의 연속성을 유지시키는 것은 오히려 서버에 백업되는 기억 데이터이다. 게임 초반 2B와 9S가 임무 도중 파괴된 뒤 새로운 기체로 되살아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백업 이후의 기억은 복구되지 않는다. 게임 속 인물들에게 기억의 저장과 복원은 곧 죽음과 부활, 그리고 동일한 존재로서의 연속성을 결정하는 문제인 셈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수행하는 세이브라는 행위와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백업이 서로 겹쳐진다.


이러한 구조는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니어: 오토마타>는 한 차례 엔딩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2B와 9S의 서로 다른 시점을 거쳐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야 전체 서사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9S가 수행하는 해킹은 기계생명체와 다른 안드로이드가 가진 데이터의 내부로 침입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등장인물의 기억과 감춰진 정보에 접근한다. 이 세계에서 기억은 한 개인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복사되고, 백업되고, 침입당하고, 손상되며, 삭제될 수 있는 데이터로 존재한다. 따라서 <니어: 오토마타>의 세계관 자체가 이미 인간의 기억을 디지털 데이터로 외재화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이브 데이터와 기억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E엔딩이다. 여러 엔딩을 거쳐 마지막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게임의 제작진 크레딧과 싸우는 일종의 슈팅 게임을 수행하게 된다. 혼자서는 사실상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도가 높아지지만 반복해서 실패하다 보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남긴 메시지와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나타난다. 도움을 받아들이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기체가 자신의 주변에 나타나 공격을 대신 막아주며, 이들의 희생을 통해 플레이어는 마침내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도움의 정체가 단순히 게임이 제공하는 NPC나 연출상의 장치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은 엔딩 이후 플레이어에게 자신 역시 다른 누군가를 돕겠느냐고 묻고, 이를 위해 지금까지 플레이한 세이브 데이터를 삭제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 <니어: 오토마타>의 엔딩 E의 세이브 데이터 삭제 장면

이 선택은 일반적인 게임에서 세이브 데이터가 갖는 의미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세이브 파일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축적물이다. 수십 시간 동안 획득한 아이템과 레벨, 완료한 퀘스트와 엔딩에 대한 정보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세이브 데이터를 삭제한다는 것은 따라서 단순히 몇 메가바이트의 파일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이 게임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가 된다. 더욱이 플레이어가 도움을 받을 미래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자신 역시 앞서 이름 모를 다른 플레이어들의 희생으로 마지막 순간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세이브 데이터를 지우는 행위는 그 도움을 다시 이름 모를 미래의 플레이어에게 넘겨주는 일종의 증거가 된다.


이 지점에서 <니어: 오토마타>의 세이브 데이터는 <언더테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전유된다. <언더테일>이 플레이어가 지우고 되돌렸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게임이 기억함으로써 세이브와 리셋에 윤리적 책임을 부여했다면, <니어: 오토마타>는 반대로 기억을 보존하지 않고 스스로 삭제하는 행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게임에서 세이브는 실패와 상실로부터 플레이어의 시간과 노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더 많은 것을 저장하고 더 안전하게 백업하는 것이 세이브 기술이 발전해온 기본적인 방향이었다. 그러나 <니어: 오토마타>는 바로 그 축적된 기억을 버리는 것을 하나의 선택으로 제시한다. 기억은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것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건네줄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에서 게임의 서사와 플레이어의 실제 데이터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속 2B와 9S의 기억 데이터가 그들의 존재를 지속시키는 조건이었다면, 게임 바깥에서 플레이어의 세이브 파일 역시 플레이어가 <니어: 오토마타>라는 세계에서 살아온 이력을 지속시키는 데이터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게임은 허구 속 등장인물에게 기억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화면 밖의 플레이어에게 실제 자신의 세이브 데이터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순간 세이브 파일의 삭제는 더 이상 이야기 속 사건을 바라보는 재현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플레이어 자신이 축적한 게임의 기억을 실제로 상실하는 수행적 행위가 된다.


<니어: 오토마타>가 플레이어에게 외부에 저장된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삭제하도록 요구했다면, <아우터 와일즈(Outer Wilds)>는 더욱 근본적인 방식으로 세이브와 기억의 관계를 뒤집는다. 2019년 모비우스 디지털(Mobius Digital)이 출시한 <아우터 와일즈>에서 플레이어는 작은 태양계를 탐험하는 우주 탐험가가 된다. 그러나 탐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태양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서 세계 전체가 파괴되고, 플레이어는 다시 처음 깨어났던 캠프파이어 앞에서 눈을 뜬다.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플레이어가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어떤 위험을 돌파했는지와 관계없이 세계는 동일한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세이브가 플레이어가 달성한 상태를 보존해주는 장치라면, <아우터 와일즈>의 시간 루프는 그 상태를 지속적으로 제거하는 장치처럼 작동한다.

 물론 게임은 플레이어가 발견한 정보를 우주선의 로그에 기록해주고 탐험한 단서들을 연결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 기록은 일반적인 RPG의 레벨이나 장비처럼 캐릭터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상승시키지는 않는다. <아우터 와일즈>에서 플레이어는 새로운 무기를 얻거나 능력치를 올리거나 새로운 이동 기술을 해금하지 않는다. 처음 우주선을 얻은 순간부터 게임을 끝내는 데 필요한 물리적 능력은 사실상 모두 주어져 있다. 변화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다. 어느 행성의 어느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특정한 지역은 언제 들어갈 수 있는지, 태양계가 왜 반복해서 소멸하는지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의 성장 시스템이다. 게임을 수십 시간 플레이한 사람과 처음 시작한 사람의 캐릭터 능력에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두 플레이어가 가진 세계에 대한 지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때문에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극단적인 경우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도 해결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게임 시스템이 새로운 능력을 해금해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게임의 실질적인 진행 상황은 세이브 파일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존재하게 된다. 세이브 데이터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이미 획득한 지식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시작하더라도 어떤 행성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장치를 작동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이전 플레이에서 얻었던 진척을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저장장치’는 결국 플레이어 자신의 기억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아우터 와일즈>는 세이브 시스템의 역사에서 기묘한 역전을 만들어낸다. 초기 콘솔의 패스워드 시스템에서는 저장장치의 부족 때문에 게임의 진행 상태를 플레이어가 종이에 기록하고 보존해야 했다. 게임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어떤 아이템을 얻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이제 플레이어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게임이 그것을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터 와일즈>는 수십 년간 외부 저장장치로 이전되어왔던 게임의 기억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다시 플레이어에게 돌려준다. 여기에서 플레이어가 축적하는 것은 캐릭터의 능력이나 아이템이 아니라 이해이며, 플레이를 진행시키는 힘은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지식이다.


* “이 게임 안 해본 뇌 삽니다.”는 유행어를 유행시킨 <아우터 와일즈>의 한 장면

물론 이것이 게임 세이브 기술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우터 와일즈> 역시 실제로는 세이브 파일을 사용하고, 발견한 정보와 설정 상태 등을 저장한다. 중요한 것은 세이브 파일과 플레이어의 기억 사이의 역할 분담이 뒤집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세이브 파일이 과거의 성취를 보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세이브 파일이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만, 게임을 실제로 앞으로 진행시키는 것은 플레이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세이브 파일은 더 이상 진행 자체가 아니라 기억을 돕는 보조적인 기록에 가까워진다. 게임이 플레이어의 기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기억을 지원하는 외부 기억장치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셈이다.


게임 세이브의 역사는 결국 게임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해온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장할 수 있는 기억의 양이 많아진다고 해서 경험 그 자체까지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이브 파일은 플레이어의 위치와 아이템, 선택과 성취를 기록할 수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무엇을 고민하고 실패했는지, 특정한 순간에 무엇을 느꼈는지까지 모두 담지는 못한다. 게임이 인간의 기억을 더욱 정교하게 외부로 저장할수록, 역설적으로 무엇이 저장될 수 없으며 무엇이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게임들이 세이브 파일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한 현상은 흥미롭다. 세이브는 한때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편의 기능이었지만, 이제는 게임의 시간과 정체성, 책임과 희생을 표현하는 수사적 장치가 되었다.


수십 년 전 플레이어가 공책 한쪽에 패스워드를 적어두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게임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반드시 서버나 저장장치에 기록된 데이터만은 아니다. 어떤 장면을 처음 발견했던 순간, 반복적인 실패 끝에 깨달았던 규칙, 게임을 끝낸 뒤에도 계속 떠오르는 인물과 사건처럼 플레이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경험이 있다. 게임 세이브 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끊임없이 외부로 옮겨왔지만, 최근의 게임들은 그렇게 외재화된 기억을 다시 표현의 재료로 끌어들이면서 역설적으로 게임을 기억하는 최종적인 장소가 어디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1]  돈 우즈가 윌 크라우더(Will Crowther)의 원본을 확장한 《Colossal Cave Adventure》 350점판은 1977년 PDP-10에서 공개되었으며, 당시 버전에는 게임을 중단한 뒤 이후 재개할 수 있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DEC 시스템에서 이러한 저장은 오늘날처럼 게임 상태의 변수들을 별도의 세이브 파일로 직렬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행 중인 프로그램의 core memory image를 보존했다가 복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FORTRAN IV 소스를 현대 시스템으로 포팅한 마이크 마르코프스키 역시 원래 환경에서 SUSPEND 명령을 사용하면 게임이 메모리 이미지 상태로 남았으며, 장시간 보존하려면 이를 파일로 덤프했다고 설명한다. Eric S. Raymond, “A Brief History of Colossal Cave Adventure,” The Colossal Cave Adventure page; Mike Markowski, “Colossal Cave Adventure,” University of Delaware.
[2] Mark Christian, “Saved, But Not Forgotten: The evolution of saving in video games, from the password to the cloud, and nearly every obscure memory card format in-between”, Tedium, 2019. 02. https://tedium.co/2019/02/21/video-game-save-state-history/ 
[3] "Sony ships PS2 hard drive, Final Fantasy XI" - GameSpot, https://www.gamespot.com/articles/sony-ships-ps2-hard-drive-final-fantasy-xi/1100-6092076/  
[4] Susan Panico, “Online Storage for Game Saves Coming to PlayStation Plus,” PlayStation.Blog, 2011. 03. 09.
https://blog.playstation.com/2011/03/09/online-storage-for-game-saves-coming-to-playstation-plus/  
[5]  Chris Faylor, “New PS3 and PSP Firmware Brings PS3 Screenshot Capture, PSP Online Store Later This Month,” Shacknews, 2008. 10. https://www.shacknews.com/article/55281/new-ps3-and-psp-firmware 
[6] My Nintendo News, “Nintendo Switch Joy-Con Has A Capture Button,” January 13, 2017.https://mynintendonews.com/2017/01/13/nintendo-switch-joy-con-has-a-capture-button/


Tags:

게임 세이브, 세이브 데이터, 언더테일, 니어 오토마타, 아우터 와일즈, 게임 기술사, 패스워드 시스템, Game Save Systems, Undertale, NieR Automata, Outer Wilds, Video Gam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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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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