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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프랜차이즈와 연출 변천 과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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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1986년 2월 21일,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을 통해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이 발매된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실로 오랜 시간 동안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20편이 넘는 게임을 통해 전체 프랜차이즈의 역사와 연출 방식을 다듬어 왔다. 최근 작품을 살펴보자면 <야생의 숨결(Breath of the Wild)>을 통해 전 시리즈를 총괄하는 오픈월드 형태의 연출 방식을 제시했으며, <왕국의 눈물(Tears of the Kingdom)>을 통해 조나우 족의 등장을 통해 고대 하이랄 왕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탐구해 나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지혜의 투영(Echoes of Wisdom)>에서는 거의 전 시리즈 동안 젤다 시리즈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활약한 링크 대신 젤다를 주인공으로 활용하면서 처음으로 사노 토모미라는 여성 디렉터를 중심으로 시리즈의 개혁을 가져왔다.

     

젤다의 전설 프랜차이즈 40주년

이 글에서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40주년을 기념하여 그 프랜차이즈와 연출의 변천 과정을 논해보려고 한다. 닌텐도 본사는 올해 젤다의 전설 시리즈 40주년을 기념하여 <시간의 오카리나> 리메이크를 올해 11월 출시할 예정이다. <시간의 오카리나>의 경우 <야생의 숨결>과 더불어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자, 전체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세계관이 서로 다른 3개의 타임라인으로 분화하는 기점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전체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이 타임라인의 분화 과정은 그래도 비교적 젤다 시리즈 팬들에게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이러한 분화과정이 첫 작품이었던 <젤다의 전설>에서부터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젤다 시리즈는 초기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링크의 영웅담에 조금씩 상징성과 개연성을 부연해가면서 전체 프랜차이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전략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맡은 초대 <젤다의 전설>

이 작품을 처음 연출했던 미야모토 시게루는 첫 작품에서 그가 어린 시절 동굴 속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경험했던 모험담에 기반한 가벼운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구상했지만, 본작과 후속작이 인기를 얻으면서 젤다 시리즈는 마리오 시리즈와 더불어 닌텐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프랜차이즈로 거듭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콘텐츠 연출을 담당하는 디렉터 역할은 닌텐도의 전설 미야모토 시게루에서 출발하여 데즈카 다카시, 아오누마 에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등 다양한 인물들이 맡아왔다. 실제로 지금 언급한 4명의 디렉터 외에도 가장 최근작인 <지혜의 투영> 디렉터를 맡은 사노 토모미 같이 1-2편만 연출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디렉터 계보는 더 복잡해진다. 우선 그간 출시된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타이틀은 총 20개로 발매일 순서대로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프로듀서와 디렉터

순번

타이틀

발매일

플랫폼

프로듀서

디렉터

1

젤다의 전설

1986.02.21

FDS

미야모토 시게루

미야모토 시게루,

테즈카 다카시

2

링크의 모험

1987.01.14

FDS

미야모토 시게루

스기야마 타다시

3

신들의 트라이포스

1991.11.21

SFC

미야모토 시게루

테즈카 다카시

4

꿈꾸는 섬

1993.06.06

GB

미야모토 시게루

테즈카 다카시

5

시간의 오카리나

1998.11.21

N64

미야모토 시게루

아오누마 에이지,

코이즈미 요시아키,

오사와 토오루,

야마다 요이치

6

무쥬라의 가면

2000.04.27

N64

미야모토 시게루

아오누마 에이지,

코이즈미 요시아키,

7

신비한 나무열매: 대지의 장/시공의 장

2001.02.27

GBC

후나미즈 노리타카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8

바람의 지휘봉

2002.12.13

GC

미야모토 시게루, 데츠카 다카시

아오누마 에이지

9

4개의 검

2003.03.14

GBA

후나미즈 노리타카, 스도 요시히로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10

4개의 검+

2004.03.18

GC

미야모토 시게루, 아오누마 에이지

스즈키 토시아키

11

이상한 모자

2004.11.04.

GBA

이나후네 케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12

황혼의 공주

2006.12.02.

GC, Wii

아오누마 에이지

아오누마 에이지

13

몽환의 모래시계

2007.06.23.

DS

아오누마 에이지

이와모토 다이키

14

대지의 기적

2009.12.23

DS

아오누마 에이지

이와모토 다이키

15

스카이워드 소드

2011.11.23

Wii

아오누마 에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16

신들의 트라이포스 2

2013.12.26

3DS

아오누마 에이지

시카타 히로마사

17

트라이포스 삼총사

2015.10.22

3DS

아오누마 에이지

시카타 히로마사

18

야생의 숨결

2017.03.03

Wii U, NS

아오누마 에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19

왕국의 눈물

2023.05.12

NS

아오누마 에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

20

지혜의 투영

2024.09.26

NS

아오누마 에이지

사노 토모미, 테라다 사토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일본 내 다른 게임 회사와 협업을 통해 게임을 만들거나 외전, 이식작, 리메이크 등을 제작할 때에도 외부 회사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캡콤(CAPCOM)과 협업한 <신비한 나무열매>, <4개의 검>, <이상한 모자> 같은 작품의 프로듀서를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2>나 <몬스터 헌터> 등을 디자인하고 프로듀싱한 후나미즈 노리타카나 <록맨> 시리즈의 전설적 개발자 이나후네 케이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작품의 디렉터였던 후지바야시 히데마로는 캡콤에 재직하면서 이를 연출하였지만, 차후 이 작품들의 성공을 눈여겨 본 닌텐도 경영진들에 스카웃 되어 <스카이워드 소드>,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 등 젤다 시리즈 후반부를 장식하는 메인 작품을 모조리 연출하기에 이른다.


전체 시리즈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계보는 크게 미야모토 시게루, 데즈카 다카시, 아오누마 에이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의 4세대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닌텐도는 40년에 걸친 젤다 프랜차이즈를 관리하면서 지속적으로 프로듀서와 디렉터 군을 키워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코이즈미 요시아키처럼 <시간의 오카리나>와 <무쥬라의 가면>에 디렉터로 합류해서 던전 설계와 3D 모델링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지만, 마리오 시리즈로 무대를 옮겨 다른 프랜차이즈를 키워 닌텐도의 간판 스타가 된 케이스도 존재하고, 이와모토 다이키처럼 <몽환의 모래시계>나 <대지의 기적>과 같은 닌텐도 DS와 같은 휴대용 기기에 걸맞은 스타일러스 펜 조작 방식을 설계하면서, 차후 <스카이워드 소드>에서 하늘 필드 설계를 맡은 경우도 존재한다.

    

데즈카 다카시가 디렉터를 맡았던 <신들의 트라이포스>

이 중심 계보에 속하는 4명은 각각 시리즈에서 기여한 바가 다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어린 시절 모험의 세계를 처음으로 실체화하여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 모험을 처음으로 구현하였다면, 미야모토 시게루의 오랜 파트너로서 슈퍼 마리오 시리즈에서도 큰 공헌을 한 동료 데즈카 다카시는 3번째 작품인 <신들의 트라이포스> 디렉터를 맡아 패미콤 이후 새 콘솔인 슈퍼패미콤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젤다 내부 세계의 월드를 창조하고 확장시켰으며, 이를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문법에 맞도록 체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젤다 시리즈의 메커닉과 퍼즐 기믹 등은 미야모토 시게루와 데즈카 다카시의 협업으로 디자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미야모토 시게루의 경우 처음부터 <젤다의 전설>을 하나의 프랜차이즈로 크게 키우려는 생각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이랄 히스토리아> 일본어 판에 나타난 시리즈 세계관과 시간 축

<시간의 오카리나>에서부터 디렉터가 된 아오누마 에이지의 경우 디렉터의 입장에서 개별 작품의 연출에도 큰 기여를 하였지만, 젤다 시리즈가 연속성을 갖춘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게끔 그 역사를 가다듬고 정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시간의 오카리나> 이전의 젤다 시리즈의 작품들은 수많은 링크와 젤다가 등장하여 가논을 무찌르는 반복적인 패턴의 영웅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젤다 시리즈 2번째 작품인 <링크의 모험>에서부터 하이랄 왕국의 공주는 늘 젤다라는 이름을 부여한다는 설정을 넣었으며, 링크의 손에 용기의 트라이포스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한 임파는 초대 젤다가 잠들어 있는 하이랄 성의 방으로 데리고 간다. 이 ‘초대 젤다’라는 언급은 링크가 젤다를 구하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할 것임을 함축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프롭이 『민담 형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물이 바뀌어도 기능은 반복된다. 시대도 다르고, 링크도 다르고, 젤다도 다르며, 하이랄의 모습 또한 달라지지만 링크-젤다-가논의 관계와 그 안에서 수행되는 영웅적 기능은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반복 구조는 젤다 시리즈가 장기간 프랜차이즈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점차 하나의 역사적 질서 속에 배치되기 시작한다. 특히 2011년 《스카이워드 소드》와 같은 시기에 출간된 『하이랄 히스토리아(ハイラル・ヒストリア ゼルダの伝説 大全)』는 그동안 개별 작품 안에서 단편적으로 제시되어 온 시대적 설정과 사건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역사로 정리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1]. 


아오누마 에이지가 중심이 되어 정리한 이 세계관의 분화와 시간축은 애초부터 완결된 연표를 전제로 구축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개별 작품들의 관계를 사후적으로 연결하고 재배치하려는 프랜차이즈 차원의 역사화 작업에 가깝다. 『하이랄 히스토리아』는 이러한 사건들을 새롭게 창조했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설정들을 하나의 시간축 안에 배치하고 작품과 작품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젤다 세계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따라서 아오누마의 역할은 젤다의 역사를 처음부터 설계했다기보다, 축적되어 온 프랜차이즈의 여러 전설과 사건들을 하나의 역사적 구조로 조직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세계관 분화와 시간 축

젤다 시리즈 25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이 책에서 아오누마는 <스카이워드 소드>에서 시작하여 <시간의 오카리나>를 기점으로 하여 3개의 분기로 나뉘는 젤다 시리즈의 평행 세계를 재설정하였다. 아래의 사진의 오른쪽 페이지에서 보듯이 <스카이워드 소드>를 기점으로 <이상한 모자>, <4개의 검>, <시간의 오카리나>가 평행 세계 분할이 이루어지기 전의 스토리에 해당된다. 시간의 용사가 패배한 스토리로 이어지는 첫 번째 분기, 그리고 시간의 용사가 승리했지만 하이랄이 멸망하고 몇 백년 뒤의 모험을 그린 두 번째 분기, 마지막으로 시간의 용사가 등장하지 않는 세 번째 분기로 나뉘게 된다. <시간의 오카리나>의 엔딩 장면에서는 젤다가 자신을 구해준 링크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는데 이것이 단초가 되어 시간의 용사가 없는 시간 축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오누마가 만든 이 세계관의 분화와 시간 축은 애초부터 엄밀한 구상 아래 축조된 것은 아니다. 이는 개별 작품 창작 후 그 개별 작품 사이의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최대한 직조하려는 프랜차이즈의 재구성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젤다 세계관 내의 여러 힘을 상징하는 트라이포스나 여러 젤다가 출연하는 반복적 구조 등은 초기 젤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설정이다. 아오누마는 이러한 작품들 사이에 하이랄 건국, 통일전쟁, 봉인전쟁 등 이 작품들 사이의 간극을 메울 역사적 사건들을 배치하고 젤다 세계관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위의 연표에는 <스카이워드 소드> 이후에 출시된 게임들인 <신들의 트라이포스 2>나 <트라이포스 삼총사>, 그리고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 <지혜의 투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들의 트라이포스 2>나 <트라이포스 삼총사>는 시간의 용사가 패배한 첫 번째 분기에서 <꿈꾸는 섬> 이후에 위치하는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야생의 숨결>이나 <왕국의 눈물>이다. 두 작품은 기존 세 분기 가운데 어느 한 시간축에 명확히 귀속되지 않은 채, 훨씬 먼 시대의 하이랄을 새로운 역사 층위로 제시한다[2]. 여기서부터 후지바야시 히데마로의 활약이 시작된다. 후지바야시 히데마로는 닌텐도가 캡콤과 협업하여 휴대용 게임기 젤다 시리즈를 개발할 때 <신비한 나무열매>, <4개의 검>, <이상한 모자>의 디렉터를 맡았었다. 이를 눈여겨 본 닌텐도 경영진들이 스카웃하여 입사하게 된 케이스로, 이후 아오누마 에이지가 프로듀서를 맡은 <스카이워드 소드>에서 디렉터를 맡으며 닌텐도 입사 이후 처음 젤다 시리즈 디렉터를 맡는다. 후지바야시의 경우 아오누마와 함께 이 역사화 작업을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이 모든 시리즈들의 역사를 한꺼번에 통합하여 그 뒷이야기를 보여준 <야생의 숨결>을 연출하기에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야생의 숨결>은 젤다 시리즈가 그간 쌓아온 다양한 종족들 중 조라, 고론, 리토, 겔드를 뽑아 각각 4개의 신수를 할당하고 여기에 그 종족의 영걸 이야기를 덧붙여 데즈카 다카시가 <신들의 트라이포스>에서 완성한 젤다 시리즈 월드를 다시 한 번 구현해낸다. 재미있는 것은 <야생의 숨결>에서 진엔딩을 보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 중 중요한 조건이 링크의 기억을 회복시키는 일이라는 점이다. 게임 내에서는 총 13개의 기억[3]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러한 기억은 2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는 지금까지 젤다 시리즈를 오랫동안 플레이 해 온 올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그 역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리즈의 긴 역사를 전혀 모르는 새 유저들 역시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하는 데에 무리가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생의 숨결>에서 기억의 한 장면

이 13개의 기억은 주로 링크와 젤다, 그리고 4영걸이 100년 전 재앙 가논의 부활에 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하이랄 왕국은 네 신수와 가디언을 부활시켜 가논에 맞서려 했으나, 재앙 가논은 오히려 이 병기들을 장악하여 왕국을 파멸시킨다. 네 영걸은 각각 자신이 맡은 신수 안에서 가논이 보낸 몬스터들에게 패배하고, 링크 역시 젤다를 지키는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는다. 이때 젤다는 쓰러져가는 링크를 보호하려는 순간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봉인의 힘을 각성시키며, 이후 링크를 회생의 사당으로 옮겨 치료하도록 한다. 젤다 자신은 하이랄 성에 남아 재앙 가논의 힘을 억제한 채 100년의 시간을 버틴다.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실제 <야생의 숨결>의 이야기는 이렇게 회생의 사당에 안치되었던 링크가 100년 만에 눈을 뜨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링크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이며,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 젤다와 영걸들이 누구인지, 하이랄 왕국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시 배워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시작의 대지에서 수수께끼의 노인을 만나 게임의 기본적인 문법을 익히며, 이후 그가 멸망한 하이랄 왕국의 마지막 왕 로암임을 알게 된다. 로암은 링크에게 100년 전 대재앙의 전말과 젤다가 지금도 하이랄 성에서 재앙 가논을 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시작의 대지를 벗어날 수 있는 패러세일을 건네준다. 이후 카카리코 마을의 임파와 네 지역의 영걸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링크와 플레이어는 100년 전 하이랄의 패배와 자신이 수행해야 할 현재의 임무를 점차 상기해 나간다.


<야생의 숨결>에서 후지바야시 히데마로가 연출한 이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은 신규 플레이어에게는 설정 설명을 강제로 듣는 대신 공간을 탐색한 결과로 하이랄의 역사를 학습하는 과정에 해당된다. 반면 이미 젤다 프랜차이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올드 플레이어에게는 링크보다 먼저 기억하고 있는 세계를 다시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야생의 숨결>에서 기억상실은 신규 플레이어와 올드 플레이어를 동시에 수용하기 위한 서사적 초기화 장치에 해당되는 셈이다. 따라서 기억의 회복은 단순한 배경서사의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젤다의 복잡한 역사와 신규 플레이어의 무지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과거를 연표가 아니라 장소에 남은 기억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야생의 숨결>의 핵심적인 역사 조직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가 40년 동안 동일한 이야기를 단순히 반복해 온 프랜차이즈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링크가 위기에 빠진 하이랄을 구하고 젤다와 함께 가논의 위협에 맞선다는 영웅담의 기본 구조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 반복을 조직하고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방식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초기 작품에서 이 반복은 각각의 게임을 성립시키는 느슨한 신화적 틀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링크와 젤다가 등장하더라도, 플레이어는 이들의 관계와 역할을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프롭의 표현을 빌리자면 등장인물의 개별적 동일성보다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의 동일성이 프랜차이즈의 연속성을 유지해준 셈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초대 <젤다의 전설>에서 구현한 것은 무엇보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 스스로 길을 찾고, 새로운 도구를 획득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험의 감각이었다. 데즈카 다카시는 <신들의 트라이포스>를 중심으로 이러한 모험의 감각을 마을, 성, 던전, 종족, 빛과 어둠의 세계가 서로 관계를 맺는 보다 구체적인 월드의 구조로 확장했다. 이후 아오누마 에이지의 세대에 이르면 개별적으로 축적되어 온 여러 모험과 세계는 더 이상 느슨한 전설로만 남지 않고 서로 다른 시대와 사건으로 배치된다. <시간의 오카리나> 이후 분화된 시간축과 『하이랄 히스토리아』의 연표는 이러한 작품들을 하나의 프랜차이즈 역사 안에서 관계 맺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역사화 작업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20편에 이르는 게임들이 각기 다른 시대와 하이랄, 링크와 젤다를 만들어내면서, 기존의 연표와 설정을 모두 숙지하지 않은 플레이어에게는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오히려 진입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의 오카리나> 이후 만들어진 세 시간축은 기존 작품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새로운 작품을 그 어느 한 분기에 정확히 위치시키려 할수록 더 많은 설정상의 제약을 발생시켰다. 실제로 <야생의 숨결>과 <왕국의 눈물>은 기존 세 시간축 가운데 어느 하나에 명시적으로 귀속되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먼 시대의 하이랄을 새롭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전 연표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야생의 숨결>의 기억의 한 장면

이 점에서 후지바야시 히데마로가 <야생의 숨결>에서 선택한 ‘기억’이라는 방식은 중요하다. 아오누마 시대의 연표가 서로 다른 작품을 시간적 인과관계 속에 배치하였다면, <야생의 숨결>은 그 역사를 현재의 공간에 남은 유적, 지명, 폐허와 인물의 기억으로 전환한다. 플레이어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연대순으로 전달받는 대신, 현재의 하이랄을 돌아다니며 과거의 흔적을 발견한다. 링크 개인의 기억상실은 이 구조를 게임 안에서 정당화하는 동시에, 프랜차이즈의 오랜 역사에 익숙한 플레이어와 처음 젤다를 접한 플레이어 모두를 동일한 출발점 위에 세우는 장치가 된다. 신규 플레이어는 링크와 함께 하이랄의 역사를 처음 학습하고, 기존 플레이어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젤다의 세계를 기억을 잃은 링크보다 먼저 알아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젤다 시리즈의 40년은 모험에서 월드로, 월드에서 역사로, 역사에서 기억으로 중심을 이동해온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앞선 요소를 폐기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야생의 숨결>에도 초대작의 탐험과 발견이 존재하고, <신들의 트라이포스>에서 체계화된 종족과 지역의 구분이 살아 있으며, 아오누마 시대에 구축된 긴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의 디렉터가 이전 세대가 만들어낸 요소를 제거하기보다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해 왔다는 점이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동일한 영웅 신화를 반복하면서도 그 반복을 경험하게 하는 형식을 끊임없이 바꿈으로써 장기간의 프랜차이즈로 존속해 왔다.


또한 <왕국의 눈물>은 이러한 기억의 구조를 다시 한 번 변형한다. <야생의 숨결>이 100년 전의 실패를 링크 개인의 기억으로 복원하는 작품이었다면, <왕국의 눈물>은 훨씬 먼 하이랄 건국기의 사건을 현재의 세계와 병치한다. 즉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했던 후지바야시의 방식은 다시 고대사의 재구성으로 확장된다. 반면 <지혜의 투영>은 오랫동안 구출의 대상이었던 젤다를 직접 플레이하는 주체로 전환한다. 프롭적인 기능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40년간 반복되어 온 링크와 젤다의 역할 관계 자체를 변형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젤다의 변화는 단순히 오픈월드화라는 게임 형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프랜차이즈가 축적해온 신화와 역사, 인물의 역할을 어떻게 다시 배열할 것인가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어디까지나 젤다 프랜차이즈의 거시적인 변화이다. 동일한 프랜차이즈 안에서도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하드웨어와 디렉터, 그리고 당시의 게임 디자인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연출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 글은 이번 호로 끝나지 않고 다음 호까지 이어진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거시적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 한 단계 내려가, 각 작품의 연출 방식을 비교하려고 한다. 게임 메커닉과 퍼즐, 필드와 던전의 관계, 카메라와 시점, 시간과 공간의 조직 방식, 그리고 각 시대의 하드웨어가 만들어낸 인터페이스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주요 작품을 비교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젤다의 전설이라는 프랜차이즈가 동일한 영웅담을 반복하면서도 왜 매번 새로운 게임으로 경험될 수 있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青沼英二 責任編集, 任天堂株式会社 監修, 『ハイラル・ヒストリア ゼルダの伝説 大全』, 小学館, 2011.
[2] 닌텐도에서 직접 운영 중인 젤다 포털에 따르면 가장 최근 작품인 <지혜의 투영>은 시간의 용사 패배 세계관 중 <트라이포스 삼총사> 이후, <젤다의 전설> 첫 작품 이전 시대에 해당된다. https://www.nintendo.com/jp/character/zelda/en/history/index.html
[3] 게임 내에서는 특정한 장소와 연관된 12개의 기억을 회복한 뒤, 카카리코 마을의 임파를 찾아가면 마지막 장소를 알려주고 13번째의 기억을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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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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