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들은 왜 ‘한글패치’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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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왜냐하면 한글화 작업이 안 된 게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좀 한국인으로서 뭔가 게임 문화를 즐기기가 좀 어려운 편이 아닌가 싶고요.
(연구 인터뷰 중)
필자는 플레이어 중심의 게임 현지화를 연구한 바 있다(박수진, 2023). 이른바 ‘한글패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였다. 해당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코멘트, 심지어 인터뷰 참여자에게 꾸준하게 보고 들었던 이야기의 대명제는 “게임은 항상 균등하게, 지역에 관계없이 생산/소비되진 않는다”였다. 우리는 일방향적 콘텐츠 전사, 서구 중심 문화적 동질화 등 미디어 제국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아닌, 능동적 미디어 수용자에 의한 재해석과 전유의 시대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니, 적어도 미디어는 각 지역의 수용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은 여전히 그러한 의미에서 충분히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수용되는 문화가 아니다. 게임은 지금도 언어, 유통, 시장성, 규제 등의 조건에 따라 불균등하게 이동하고, 어떤 지역에는 쉽게 도달하지만 어떤 지역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 즉 게임은 모든 지역에 고르게 분배되고 각기 다른 문화적 양상 속에서 평등하게 향유되는 문화라기보다, 여전히 특정한 조건 아래 선택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인 셈이다.
이처럼 게임에는 여전히 많은 도전이 남아있다. 그 중심에는 게임 현지화가 존재한다. 특히 이는 게임 텍스트에 비례하여 요구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기도 하며, 이에 대다수의 개발사는 게임 현지화 프로세스에서 통용되는 언어인 영어나, 혹은 시장성이 큰 언어 위주 게임 개발 및 번역을 선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언어권의 문화적 풍미가 은연중에 전제가 되는 게임이 개발되기도 한다. 우리 손에 오기까지 과정도 험난하다. 언어적으로도 물리적인 의미에서도 게임을 접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1]. 혹은 유통 대상의 국가 법률 및 규제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Fontolan et al., 2022). 이처럼 현지화는 접근성의 문제로 이해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플레이어들이 한글패치(이하 현지화 모딩)를 하는 목적은 자명하다. 자신들의(혹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접근성을 해소하기 위한 팬덤 실천이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팬덤 실천은 대체로 ‘좋아서 한다’는 자발성을 통해서 행해진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모딩은 게임을 개조하는 약관 위반 행위이다. 법적 리스크를 갖고 있는 회색 영역의 실천이다. 나아가 현지화 모딩은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텍스트 번역이 중심이다. 어째서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위험에도 한글패치를 계속하는 것일까? 단순히 ‘팬심’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일까? 또 이러한 행위에 어떤 함의가 있을까?
매개와 저항의 현지화 모딩
그래서 외산 게임들이 공식(현지화)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있어요. (중략) 패키지 게임 시장에 한글 물꼬가 많이 트였으니 그쪽으로 접근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니까 스팀은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해요. (웃음) (중략) 스트리밍 시장 쪽에서도 이런 한글 번역 때문에 수혜보는 쪽도 많고 (후략)
(연구 인터뷰 중)
반 농담 같은 이 발언은 현지화 모딩이 플레이어를 대변하여 오늘날 한글화가 이전보다 익숙한 풍경이 된 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공식적인 시장 밖에서 게임 텍스트를 번역하고 배포하며 플레이의 경로를 개척해 온 플레이어들의 비가시적 노동이 게임을 매개하고 있다(편의상 ‘모더’로 칭하겠다). 즉, 시장성이 낮다고 여겨지거나 텍스트 분량이 많아 공식적인 현지화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게임들은 이러한 현지화 모딩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의 플레이어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지화 모딩은 단순히 산업의 부족분을 임시로 메우는 행위가 아니라, 접근성과 향유의 권리를 스스로 재분배하는 문화적 실천인 셈이다.
모더들의 이러한 실천 동기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게임 문화 매개 욕망이다. 이들의 현지화 모딩 실천은 게임과 플레이어, 나아가 일반 대중을 연결하는 게임 문화 매개의 실천이다. 이들에게 현지화 모딩은 게임의 생산과 소비 사이 혹은 그 주변에서 게임 문화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게임의 산업적 생태계에도 개입하는 행위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모더들은 스스로를 게임의 문화적, 산업적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외국어라는 장애물이 번역을 통해 제거되면서 한국 플레이어들은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들처럼 보다 평등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고, 다른 플레이어 역시 친숙한 한국어를 통해 타국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문화 매개적 영향력은 스팀의 고객 확보나 게임 스트리머,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제공에도 이어지고, 이 점에서 모더들은 게임 문화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 모더들이 현지화 모딩에 임하는 동기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게임 문화의 매개와 확장,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게 질 높은 게임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두 번째는 현실에 저항하는 현지화이다. 2015~2018년 사이에 이루어진 <다키스트 던전>의 한글화 사례는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준다. 관련 공지와 기사, 커뮤니티 기록을 종합하면, 당시 개발사인 ‘레드 훅 스튜디오’는 2015년 12월 한국어 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 한글화는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2016년 2월 한글패치 팀인 ‘팀 왈도’와 ‘팀 SM’에서 먼저 공동으로 제작한 한글패치를 배포했다. 2017년 7월 ‘레드 훅’은 여전히 한국어 지원을 준비 중이라 밝혔지만, 공식 한글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8년 6월 신규 DLC인 ‘Color of Madness’와 함께 뒤늦게 공식 한국어가 적용되었지만, 이번에는 번역 품질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레드 훅’은 공개 직후 공식 한글화 품질이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인정하며 사과했고, 자신들이 전문 번역에 비용을 지불했지만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기존 번역 업체의 수정 작업과 별도로, 한글패치를 베이스로 다시금 공식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2018년 7월에 공개 베타를 거친 뒤 해당 한글패치를 베이스로 한 공식 번역이 적용되어 사건은 일단락하게 되었다[2~5].
이러한 사례에서 공식 현지화가 남긴 공백을 먼저 메운 것은 모더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사 역시 끝내 그들의 번역 역량과 커뮤니티의 피드백에 다시 기대어 문제를 수습했다는 점은 모더들의 영향력을 다시금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키스트 던전>의 사례는 단순한 공식 한글화 실패가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시장과 개발사의 지연, 그리고 불완전한 현지화 현실에 맞서 자신들의 플레이 조건을 다시 구성해 간 저항적 현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지화 모딩 - 전문 게임 현지화’ 간에 서로 기대면서도 어긋나는 기형적인 공생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현지화 모딩이 활발해지면서 게임 현지화 시장의 파이는 커졌지만, 그만큼 전문 게임 현지화의 질이 안정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고, 수요와 공급이 함께 늘어나는 과정에서 오히려 좋지 않은 현지화 사례 또한 더 많이 나타나기도 했다(박수진, 2023). 이러한 배경에서 현지화 모딩은 공식 현지화가 남겨 둔 공백과 불균형에 직접 개입하는 실천이 된다. 이들에게 현지화 모딩은 단순히 번역되지 않은 게임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게임이 번역될 가치가 있는지, 누가 어떤 언어로 게임을 향유할 수 있는지를 시장이 결정해 온 방식에 개입하는 행위인 셈이다. 플래너건(Flanagan, 2009)이 말하듯이, 비판적인 놀이가 지배적인 가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고, 당연시되던 사회문화적 조건을 낯설게 만드는 실천이라면, 현지화 모딩 또한 플레이어 자신들의 놀이 공간인 게임과 그 주변부에서 언어적 장벽과 시장에 개입하면서 다른 플레이어의 접근성과 향유 기반을 다시 구성하는 저항적 놀이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현지화 모딩이자 게이밍 실천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모더가 이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동기는 놀이이자 ‘게이밍’에 있다. 이들은 ‘모더’이기 전에 ‘플레이어’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화감이 들 것이다. 현지화 모딩이 ‘게이밍’일 수 있는가? 여기서 살펴본 현지화 모딩의 ‘게이밍’은 게임과 게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메타게임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 뒤 참여하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모딩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더 또한 존재했다. 기존의 메타게임 개념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한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면, 강신규・원용진・채다희(2019)가 제시한 ‘메타게임 플레이’는 이러한 범위를 넓혀, 비-게임 플레이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게임 향유의 방식을 포착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지화 모딩은 게임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게임의 안팎을 넘나들며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메타게임 플레이의 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연구 중 몇몇 모더는 현지화 모딩에 참여하는 이유로 커뮤니티 형성을 언급했는데, 이는 모딩이 단지 개별적인 작업이 아니라 함께 게임을 둘러싸고 관계를 맺고 경험을 공유하는 실천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게임에서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것처럼, 현지화 모딩 역시 커뮤니티를 통한 플레이와 같은 지점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회적 동기는 타인과 함께 게임을 공유하고자 하는 매개적 동기이다. 현지화 모딩 커뮤니티와 모드 이용 커뮤니티는 게임 플레이 커뮤니티와 같은 맥락에서 기능하며, 모딩은 모두와 함께할 수 있고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관계성’ 속에서 작동한다.
또한 모더들은 모딩하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게임 텍스트와의 간접적인 접촉을 통해 직접적인 게임 플레이와 유사한 경험을 얻는다. 이미 플레이했던 게임에 대한 현지화 모딩은 플레이 경험과 메타게임 플레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면, 플레이하지 않은 게임에 대한 모딩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게임 경험이 된다. 게임 텍스트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모더들은 게임의 세계관, 캐릭터 관계, 시스템, 내러티브를 습득하고, 이미 게임을 경험한 다른 모더의 지식과 해석을 공유받는다. 나아가 현지화 모딩은 게임으로부터 가져온 경험과 지식이 다시 게임으로 환원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다른 게임에서 접한 번역 표현이나 문화적 요소, 게임 플레이 경험은 새로운 현지화에 반영되고, 그렇게 재구성된 게임은 다시 다른 플레이어에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한다.
즉, 현지화 모딩에서 중요한 지점은 번역과 모드 개발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게임 즐기기’라는 점이다. 표면적인 동기로는 자기만족이나 게임 현지화로의 이바지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지만, 그 기저에는 한글패치를 만들면서 경험하는 게임에서 비롯되는 재미와 만족감이 있다. 번역 행위 자체를 게임을 즐기는 행위와 동일시하기도 하며, 모드를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밍하는 노동은 마치 게임 내부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이는 O’Hagan(2012)이 말하는 게임 팬 번역으로부터의 게임적 즐거움이나 노동, 착취, 게임적 즐거움의 교차와 맞닿아 있다(O’Hagan, 2012; Risku et al., 2019). 즉, 번역을 하면서 캐릭터의 말투를 상상하고, 이미 해본 게임을 텍스트를 통해 다시 경험하며, 놓쳤던 설정과 요소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은 일종의 또 다른 플레이로 작동한다. 여기에 더해 패치 파일 개발, 해킹, 수정, 협업과 같은 기술 개발 과정 역시 팀 단위의 성취감과 게임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처럼 한글패치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을 모더로 정체화하는 동시에 플레이어로도 인식하고, 현지화 모딩을 게임 즐기기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지역을 넘어서기 위한 현지화 모딩
이처럼 현지화 모딩은 지금까지 언급한 매개적, 저항적, 게임적 동기뿐만 아니라 아직 파악되지 않는 여러 동기와 역동으로부터 실천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플레이어이자 모더에 의해 실천되는 현지화 모딩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적인 게임의 경계를 허무는 점이다. 외국어라는 장애물이 번역을 통해 비로소 제거되면서, 플레이어는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와 보다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현지화 모딩과 이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다. 이런 점은 현지화 모딩의 매개적 의의로 볼 수 있다.
특히 게임의 언어적 진입장벽은 게임 그 자체가 결코 무색무취의 보편적 미디어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게임 텍스트가 겉으로는 특정한 지역성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다른 언어로 구성된 게임을 즐기는 순간 플레이 경험은 분명한 차이를 낳는다. 이 점이야말로 현지화 모딩이 지속되는 핵심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여러 ESD 플랫폼이나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여 다른 언어로 구성된 게임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로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자신에게 제약을 걸고 게임을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지화 모딩은 게임을 자신들의 지역으로 옮기는 작업인 동시에, 게임을 경험적으로 바꾸는 밑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번역만으로 게임이 온전히 자신의 지역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 현지화가 갖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게임이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미디어라는 점이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특정 언어는 언제나 특정한 기술 환경과 함께 상정된다. 이 때문에 언어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은 곧 폰트(font), 글자 크기, UI, 문자열 처리, 인코딩과 같은 기술 문제와 맞닿게 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여러 언어 문자를 처리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특히 라틴 문자 기반 언어와 차이가 있는 아시아권 언어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유니코드의 등장으로 문자 처리의 형식적 한계는 상당 부분 극복되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 엔진에서의 문자 처리, 게임 UI 디자인에서의 문자열 처리처럼 실제 플레이 환경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남아 있다(박태정, 2013).
그래서 모더들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국내 현지화 사례나 다른 국가의 모더들이 실시한 현지화 모딩 사례를 함께 참고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넘었는지 논의하기도 한다. 게임이 여러 지역에서 소비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언어가 실제로 게임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술적 조건까지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극복되지 않은 기술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일은 현지화 모딩의 중요한 기술 논의이다. 모딩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폰트 확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소프트웨어의 폰트는 단순히 글꼴이 아니라, 데이터 단위로 보았을 때 특정한 데이터 값과 출력 구조를 갖는 요소이기도 하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개발 당시 목표로 삼은 언어에 맞추어 구현 가능한 데이터 값을 설정해 두는데, 현지화 모딩은 애초에 상정되지 않았던 언어를 그 안에 출력하도록 만든다. 이때 ‘폰트 확장’은 특정 언어의 문자가 게임 안에 적용될 수 있도록, 게임이 수용할 수 있는 데이터 값과 출력 범위를 넓히는 작업을 뜻한다. 폰트 자체도 일종의 그래픽이기 때문에, 여기서 곧장 기술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에 참여했던 모더들의 설명에 따르면 영문이나 일본어(히라가나, 가타카나)와 달리, 한자나 한글은 보다 큰 단위의 데이터 값 구현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게임 안에 적용하려면 기존 폰트에 적용되던 데이터 값을 확장하거나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박수진, 2023). 현지화 모딩의 기술적 논의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글자가 정상적으로 출력되는지 여부가 게임이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가르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드는 다시 다른 플레이어에게 배포되었고, 결과적으로 게임이 갖고 있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은 현지화 모딩이 단순히 번역 텍스트를 게임에 삽입하는 단계에 머무는 행위가 아닌, 게임이 다른 지역에서 실제로 플레이 가능하도록 기술적으로 재구성하여 지역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임을 잘 보여준다.
현지화 모딩은 게임을 언어적・기술적으로, 나아가 지역적으로 재생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만들어진 게임을 그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과 기술 수정, 문화적 조정을 거쳐 색다른 형태의 게임으로 다시 여러 플레이어가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반복될수록 모딩과 결합된 게임은 플레이어가 속한 게임 문화 안으로 편입되고, 그 과정에서 원래와는 다른 문화적 양상을 만들어 낸다. 이때 모더는 단지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게임을 손보는 사람이 아니다. 게임을 자신이 속한 문화권으로 끌어와 다른 플레이어와 매개하는 행위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지화 모딩은 단순히 즐거움 추구나 헌신적인 팬덤 실천을 넘어, 게임의 지역적인 경계를 허물고 게임이 다른 문화 속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문화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현지화 모딩 연구를 진행한 지도 벌써 4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한글패치 씬에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AI 번역의 등장과 발전은 한글패치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번역 초안을 AI로 빠르게 내보낼 수 있게 되었고, 영어가 능숙한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패치 팀들도 이제는 번역가가 아닌, ‘한국어 교정 및 검수’에 초점을 맞추어 참여자를 모집하기도 한다[6]. 이러한 이유로 이제는 적은 인원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게 되었고, 오히려 모드를 만들 줄 아는 기술자(?)만으로도 온전히 번역되어 있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현지화 모드를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이르러 현지화 모딩과 모더가 갖는 함의는 오히려 각별하다. 이를 만들기 위해 참여한 모더들의 시도, 노력이 주목받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문화적 양상은 게임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들은 게임 안의 고유명사와 말투, 내러티브의 결, 문화적 암시와 정서적 톤을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플레이어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조정한다. 어떤 것은 원본의 뉘앙스를 남기고, 어떤 것은 자신들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새롭게 풀어내며 다시 의미를 부여한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 어떤 표현을 살리고 어떤 거리감을 조정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모더의 몫이다. 즉, 현지화 모딩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게임을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다시 읽히고 플레이될 수 있도록 만드는 문화 번역의 실천이기도 하다.
동시에 현지화 모딩은 단순히 게임을 개조하는 행위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게임을 다른 언어로 플레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게임에 활용된 기술적 조건을 함께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더들은 이를 우회하고 수정하고 확장하는 일을 통해 게임 기술에 내재한 지역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실천을 이어 간다. 즉, 현지화 모딩은 텍스트의 번역과 기술의 재구성을 함께 수행하면서 게임이 다른 지역에서도 실제로 작동하고 향유될 수 있는 조건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인 셈이다.
결국 오늘날 현지화 모딩의 함의는 완성된 모드 파일 하나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모더인 플레이어들이 게임 문화의 불균등한 분배에 직접 개입하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게임을 자신들의 언어와 기술적 환경, 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