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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비에서 마법 주문까지, 타자 게임이라는 장르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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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우연의 일치일까?

1874년, 타자기가 세상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총을 만들던 미국 회사 레밍턴이 전쟁 이후 선택한 새로운 사업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키를 누르면 타격음과 함께 종이에 문자가 찍혔다. 총을 만들던 기술은 문자를 발사하는 기계로 이어졌다.


1981년, 타자기는 실제로 총이 되었다. 애플 Ⅱ 용 <MasterType>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키보드로 단어를 입력해 적을 쏜다. 화면 위의 알파벳을 빠르게 치면 레이저가 발사되고, 적은 전자음과 함께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교육용 게임’이라 불렀다.



학교가 허락한 유일한 게임 ‘타자 연습’


2000년대 초반, 학교 컴퓨터실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선생님 몰래 게임하다 들키지 말 것. 그러나 <한컴타자연습>만은 예외였다. 타자 실력을 기르는 교육용 프로그램이라는 명분 덕분에, 학생들은 화면을 당당히 띄워둘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자 연습에서 ‘놀이’ 모드로 들어가 ‘산성비’를 켜면, 왠지 모르게 선생님 눈치를 슬금슬금 보게끔 상황은 달라졌다. 단문/장문 연습, 애국가 쓰기, 고전문학 필사 등 여러 모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산성비는 가장 ‘게임’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산성비의 메커니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글 단어를 바닥에 닿기 전에 정확히 입력해 지우는 방식이었다. 어떤 단어가 내려올지 알 수 없는 랜덤성이 있었고, 레벨이 올라가면 속도가 빨라졌으며, 글자가 일시적으로 가려지는 블라인드 효과까지 발생해 상당한 긴장감을 줬다. 이전 세대라면 <한메타자교사>의 ‘베네치아’를 떠올릴 것이다. 설정은 달라도, 낙하하는 텍스트를 입력으로 제거한다는 구조는 같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식 슈팅 게임의 문법과도 흡사하다. 다가오는 외계인이 한글 단어로 바뀌었고, 공간을 이동하며 조준하던 방식이 타겟을 지정해 없애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교육을 받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텍스트로 구현된 슈팅 디펜스 게임을 하며 컴퓨터 사용 능력을 무기화하는 법을 배운 셈이다.


타자 게임이라는 장르는 컴퓨터 리터러시 함양의 목적에서 시작됐고, 처음부터 학습과 놀이의 경계 위에 놓여있었다. 그 애매한 위치로 인해 학교 안에서 금지되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의 게임이 될 수 있었다.


* <한컴타자연습>은 한글과컴퓨터에서 제작한 문서 작성 도구 <한글>의 번들 프로그램이었다. 함께 딸려오는 부록 같은 존재였지만 본 프로그램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사용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모두 포괄하듯, 아이부터 성인까지 남녀 분포가 고르게 준비되어있었다.


왜 지금 다시 타자인가?


타자 게임은 오랫동안 통과 의례에 가까웠다. 컴퓨터를 배우는 과정에서 한 번쯤 거치는 경험이었고, 숙련되면 더 이상 할 이유가 사라지는 장르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타자 게임은 하나의 장르로서 입지가 변화하고 있다. PC게임 플랫폼 ‘스팀’을 중심으로, 타자 입력 행위 자체를 핵심 메커닉으로 내세운 게임들이 하나둘씩 등장한 것이다. ‘타자(typing)’라는 장르 키워드 검색이 가능해졌고, 타자 게임들에 주목하는 큐레이팅 이벤트도 등장한다.


이제는 타자 게임을 단순한 학습 도구로 접근하기보다, 하나의 독립적인 플레이 형식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자라는 행위가 다시 호출되고 있는 지금, 그 배경과 조건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 1874년 미국의 총기 제작 회사 ‘레밍턴’에서 상업용 타자기가 판매된다. 레밍턴에 타자기 특허를 판매한 미국의 발명가 크리스토퍼 숄스는 수 차례 개편을 통해 자판을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QWERTY 배열을 설계했다. 특허 사업을 주도한 곳이 레밍턴의 재봉틀 사업부였기 때문에 타자기의 외형도 재봉틀의 일부를 닮았다.


물리적 감각이 사라져서일까?


근 십여 년 사이, 기계와의 촉각적 경험은 터치스크린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버튼의 또각거림은 촌스러운 것으로 밀려났고, 버튼을 없애는 것이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무언가 물리적으로 눌리는 감각이 줄고 평면과의 미약한 접촉이 기본값이 된 시대에, 손가락 밑의 타건감이나 키가 눌리는 소리는 낯선 것이 되었다.


동시에 키보드가 주는 기계적인 감각에 대한 관심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단순히 입력 장치를 넘어 키보드의 사용이 하나의 취향이 되어서 그 감각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 유행이라기보다 사라진 감각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회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타건감이 주는 쾌감이 있을까?


키보드의 촉각적이고 청각적인 경험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스마트폰의 진동 피드백이 흉내 낼 수 없는 분절된 타건감이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키보드는 입력의 즉각성을 가진 장치다. 각각의 키가 독립된 물리적 스위치로 존재하고, 누르는 순간 분절된 신호를 발생시킨다. 100개에 가까운 키 하나하나가 저마다 독립된 타격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타자 치는 행위는, 내가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시켜주는 피드백이 되기도 한다. 손가락이 키를 누르는 순간 저항감과 함께 클릭이 느껴지고 소리가 난다. 입력했다는 사실이 청각과 촉각 두 감각 채널을 통해 즉각적으로 확인된다. 분절되고 즉각적인 피드백의 반복이 일종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그 리듬 안에서 몰입이 발생한다. 드럼을 치거나 피아노 건반을 다루듯 입력이 리듬과 감각을 동반한다. 타자 게임은 바로 이 지점을 전면에 드러내 타건 자체를 플레이로 전환시켰다.



이미 익숙한 게임 조작 방법이기 때문일까?


타자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작법을 익힐 필요가 없다. 복잡한 버튼 배치를 외우거나 컨트롤러 감각을 몸에 익히지 않아도 된다. 키보드 앞에 앉아 글자를 쳐본 경험만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타자 게임의 굉장히 큰 유인책이다. 산성비가 학교 컴퓨터실에서 모두의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타자 게임의 진입 장벽은 낮거나 미미하다. 동시에 타자 게임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꾸준히 손가락을 훈련했느냐가 그대로 화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장시간 축적된 숙련이 결과로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과거에 키보드는 글자를 치는 노동의 도구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키보드의 타건 행위 자체는 놀이의 하나다. 물리적 감각으로 회귀, 즉각적인 피드백이 주는 쾌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낮은 진입 장벽의 세 가지 조건이 맞물리면서, 타자 게임이라는 형태는 조용히 귀환하고 있다.


* <Typing of the Dead>는 세가가 1999년 출시한 건슈팅 타자 게임이다. 1인칭 시점에서 타자를 빠르게 쳐서 다가오는 좀비를 처치해야한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키보드를 무기로 장착고 있다는 사실을 컷신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전투에서 명상까지, 오늘날의 타자 게임의 지형도


오늘날의 타자 게임들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같은 행위에서 출발하지만 목적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어떤 게임에서 키보드 타자 치기는 총이 되고, 어떤 게임에서는 군대를 움직이는 명령이 되고, 어떤 게임에서는 스토리를 여는 열쇠가 된다. 특히 소규모 게임 개발사들의 시도가 다양해지면서 타자 게임이라는 장르의 외연은 예상보다 훨씬 넓게 펼쳐지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직접적인 접근법은 전투 액션이다.


1999년 세가가 출시한 <Typing of the Dead>는 타자 게임이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같은 회사에 출시되어 인기를 끈 건슈팅 게임 이전작을 기반으로 해서, 총 대신 키보드를 쥐어준 것이 특징이다. 좀비 위에 단어나 문장이 뜨면 플레이어는 그것을 빠르게 타이핑해 처치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화면에 등장하는 문장은 점점 길어지고 기이해지는 것이 레벨의 변화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다. 캐릭터들이 키보드를 메고, 등에는 드림캐스트와 거대한 건전지를 지고 다니는 황당한 설정으로도 유명한 이 게임은, 타자 게임 장르의 가장 유명한 대중화 사례로서 포문을 열었다.


타자 입력을 통한 전투 액션의 전통은 2025년 출시된 <Blood Typers>과 같은 게임으로 이어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단어나 문장을 정확하게 입력하면 공격이 발동한다. 단순 슈팅을 넘고 좀 더 확장하여,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와 같은 서바이벌 호러 장르가 타자 게임으로 구현되었다. 1인 또는 최대 4인까지 협동 플레이가 가능하고,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맵 구조 덕분에 매 회차가 달라지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90년대 말 세가의 게임이 등장한 지 사반세기가 넘었다는 사실을, 이 게임의 존재가 조용히 환기시킨다.


* 2025년 출시된 <Blood Typers>는, 서바이벌 호러와 타자 치는 행동을 결합시켰다. 최근의 전투형 타자 게임 중에서는 가장 밀도 있게 제작된 편이다.

산성비를 막는 일이 어려워졌다.


<Glyphica: Typing Survival>는 소위 ‘산성비 계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계보 위에 전략의 층위를 얹어 과거 <한컴타자연습>의 산성비 메커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텍스트 적’을 타이핑해 처치하되, 어떤 단어를 먼저 처치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로그라이크 장르를 접목해 라운드 사이에 무기와 스킬을 선택하며 빌드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손가락의 숙련만이 아니라 전술 판단력과 운까지 게임의 변수가 되는 것이다. 구조를 뜯어보면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의 모습과 굉장히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어떤 무기로, 어떤 연계 스킬을 발동시켜 막아야 하는지까지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 2024년 <Glyphica: Typing Survival>는 익숙한 ‘산성비’ 메커닉의 현대적 재해석을 거쳤다. 단어를 치는 속도보다 ‘텍스트 적’이 더 빠르게 다가오기 때문에 무기와 스킬을 가동시켜야한다.

마법사가 세계를 펼쳐내는 주문을 키보드로 외친다.


전투형 게임들이 타자를 무기로 삼는다면, 서사형 게임들은 타이핑을 이야기를 여는 열쇠로 쓴다. 그 흐름의 시작점 중 하나로 2016년의 <Epistory - Typing Chronicles>는 폭 넓은 플레이어 층에 어필된 게임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타자를 통해 모험한다. 종이를 접어 만든 종이접기 세계를 여우의 등 위에 올라가 세계를 하나씩 펼쳐가는데, 타자 치기는 세계를 펼쳐내는 행위와도 같이 표현된다. 단어를 입력할수록 닫혀 있던 공간이 열리며 탐험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문자를 쓰는 행위를 서사의 동력으로서 잘 표현한 사례다.


이후 등장한 <Touch Type Tale - Strategic Typing>은 실시간 전략을 더했다. 플레이어는 마법사 견습생이 되어 건물을 짓고, 광산에서 금을 캐고, 군대를 진격시키는 모든 행위를 타자 입력으로 실행한다. 흡사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다. 마법 주문(spell)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스펠링을 읊어야만 마법은 발동할 수 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주문은 실패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지팡이 대신 키보드를 쥔 마법사가 되며, 오타를 낸다는 것은 주문을 잘못 외운 것과 같은 의미다.


* <Touch Type Tale>에서 플레이어는 단어를 타이핑하는 행위로 모든 명령을 내린다. 마법사라는 설정에 맞게, 텍스트 주문을 외쳐 상태를 변화시킨다.

긴장하거나, 명상하거나 양극단이 모두 있다.


타자 게임이 도달한 가장 극적인 두 끝단에는 긴장과 명상이 자리잡고 있다. 한쪽 끝에 있는 <Final Sentence>는 온라인 배틀로얄 형식으로, 타인의 입력 속도가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극도의 경쟁적 긴장감을 제공한다. 반면, 다른 끝에 위치한 <CozyTyper>는 차분한 음악 속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타자 소리를 즐기는 명상에 잠기게 한다.


독수리 타법이나 오타가 곧 죽음이 되는 세상이 있다가도, 시간 제한도 점수도 적도 없이 영화, 소설, 명언 등에서 가져온 문장들을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타이핑하는 세상이 같은 장르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의 행위가 다양한 방식과 게임으로 결합될 수 있다는 사실은 타자 게임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 <Final Sentence>의 한 장면. 플레이어는 총에 맞기 싫으면 정확도 높은 타자를 구사해야한다.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한다면 모두 타자 게임일까?


장르의 헷갈림이 생길 수 있으므로, 떠오르는 질문 하나를 명확히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장르를 정의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만,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판별 기준은 타자 연습의 형태가 남아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게임 장르가 있다. 1980년대 고전 게임 <Zork>는 그 원형으로 불리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키보드로 모든 것을 입력한다. 이미지 하나 없이 화면에는 오직 문자 언어만 가득하고, 제시되는 상황을 읽고 "북쪽으로 이동", "램프를 켠다", "검을 집어라"처럼 명령어를 직접 타이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를 타자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텍스트 어드벤처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읽고 어떤 명령어를 떠올려서 입력하느냐다. 키보드로 단어를 입력하는 행위는 플레이어의 판단과 선택을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철권> 같은 대전 격투 게임은 어떨까? 키보드로 플레이할 경우, 기술을 발동시키기 위해 커맨드 키 입력을 거친다. 하지만 이때의 키 입력은 언어가 아니다. 언어 체계로서는 의미가 없는 기호의 배열, 즉 단축키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에서 키보드는 여러 버튼이 달린 '버튼 판'일 뿐이며, 굳이 키보드가 아니더라도 콘솔 게임 패드나 몇 개의 버튼으로 최적화된 히트 박스로 대체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이 커맨드 입력 게임과 타자 게임을 가르는 근거가 된다.


타자 게임은 플레이어가 입력해야 할 단어나 문장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작성하도록 요청한다. 플레이어가 해야 할 일은 텍스트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치느냐다. 타자 게임을 논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입력한다거나 키보드를 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화면에 뜨는 것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써야한다’는 상황이 제시되어야만 비로소 타자 게임이라 부를 수 있다.


* <Zork>는 198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다. 탐험 진행 상황은 텍스트로 제시되고, 내장된 명령어를 입력하여 행동한다.


기계의 리듬 위에서, 놀이가 시작된다


독일의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그의 저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타자기가 인간의 신체와 언어를 분리시킨 장치였다고 말한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절, 신체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타자기 앞에서 언어는 데이터가 될 뿐 자판의 배열과 기계의 리듬에 맞춰 재편된다. 컴퓨터에 이르러 언어는 완전히 데이터가 되었고, 입력은 감각보다 기능에 가까운 행위로 변했다.


1874년 타자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타격이 백여 년 뒤에 좀비를 쓰러뜨리거나 마법 주문을 발동시키는 데 쓰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자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화면의 타이밍에 손가락을 동기화하고, 쏟아지는 단어에 신체의 반응을 일치시켜간다. 그 과정에서 한때 분리되었던 언어와 신체가 다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그 재접속이 강요된 노동이 아니라 놀이의 형태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계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논리를 역이용해 게임 속 세계를 타격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19세기 타이피스트 노동자가 느꼈을 법한 기계적 피로감은, 21세기 게이머의 손끝에서 콤보와 크리티컬이 터지는 리드미컬한 쾌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타자 게임은 단순한 장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때 분리되었던 신체와 언어, 감각과 기계의 관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연결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글을 쓰기 위해 타자를 치지 않는다. 타자를 치기 위해 게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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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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