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2 한글 폰트 구합니다 ─ 비제도권 게임 로컬라이제이션의 짧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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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1994년 11월 하이텔 고전게임동(cgame) 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당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당 분위기로 꾸민 스크린샷 이름과 아이디는 삭제했다.
40대, 50대 즈음 게이머에게 <대항해시대> 시리즈 중에 어떤 것이 최고냐고 물어보면 손쉽게 폭발하는 논쟁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 중 자주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대항해시대 2>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라인게임즈의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면 이 게임의 국내 발매 시기는 1995년 이후라는 것이다. 1994년 12월에 12월 발매라고 광고가 나가기는 했지만 실제 발매시기는 1995년 상반기로 추정하고 있다. 해당 글의 작성일을 생각하면 아직 국내에는 <대항해시대 2>가 정식으로 소개되기 전인 셈이다. <대항해시대 2>의 일본 발매일은 1993년으로 사실 국내 게임 잡지들에서도 일본판을 기준으로 설명이나 공략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속에서 나타난 1994년 11월에 쓰여진 저 글은 어떤 의미일까.
90년대 정식 퍼블리셔를 통해서 게임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들어오면서 당시 게이머들은 이전보다 풍족하게 한국어로 된 게임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게임의 한국어화 시도도 존재했으며 당시를 살아온 게이머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에도 정식으로 출시되기 힘든 게임들의 비공식적인 이용자 한국어 패치가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의 불법적인 부분이 섞여있고 공식적으로 기록이 남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는 하이텔과 나우누리등의 게시글과 함께 게임 잡지등을 교차 참조하여 당시의 상황을 톺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참가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단계까지는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기도 하다.
기술적인 난이도를 뚫은 상업적인 한국어화
좀 더 과거로 돌아가서 국내에의 게임 한국어화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8비트 컴퓨터 시절의 한국어화의 첫 번째 장벽은 기술적인 한계였다. 흔히 세운상가 시절로 지칭되는 8비트 컴퓨터의 시기는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와 하드웨어 판매업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형태였는데, 이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업체들이라면 토피아, 아프로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제작한 게임들이 워낙 많이 알려져 게임 제작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두 업체는 게임제작사가 아닌 컴퓨터 판매업체였다.
당시 주로 MSX용으로 판매되는 게임들은 대부분 간단한 액션,퍼즐 게임이었고, 타이틀에서 원작사의 이름을 빼고 자사의 이름을 넣는다던가, 제목을 바꾼다던가 하는 경우는 굉장히 흔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여자 배구>의 경우 일본의 <アタックフォー>를 여자 배구라는 이름으로 가져오면서 당시 개발사 이름인 PAX 가 있던 자리에 토피아라는 이름을 넣고 실제 플레이팀의 국기였던 일본 국기를 바꿔서 다른 나라(한국 국기를 의도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으로 만들었다.

* 토피아의 여자배구(좌)와 원작 アタックフォー (우)의 스크린샷
이러한 간단한 한글화 외에도 대량의 텍스트가 번역된 게임들도 존재한다. 이전에 <호빗>을 출시했던 토피아는 영어 원문으로 게임을 출시했던 <호빗>과 달리 이어서 낸 어드벤처 게임인 <타임트렉>의 경우 한국어화를 거쳐 출시하였다.

* 컴퓨터학습 1986년 1월호에 실린 <타임 트렉>에 대한 소개와 일본 원작의 스크린샷
이외에도 토피아에서는 에닉스(Enix, 이후 스퀘어에닉스가 됨)에서 출시한 <쟈스(ザース)>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시했다. <쟈스>의 경우는 기술적으로 한글을 출력하기 어려운 관계로 텍스트를 축약해서 표시했다.

* <쟈스> 스크린샷 twitter:@twASTERiS님의 타래에서 가져옴.
토피아는 다른 작업인 일본 T&E SOFT의 <메피우스>(惑星メフィウス, 1983)를 한글화하여 판매했다. 컴퓨터학습 1986년 7월호는 이 게임에 대해 "이 게임은 MSX 기종으로는 최초로 소개되는 한글 어드벤처 게임이다. 뛰어난 그래픽 화면 외에도 아름다운 모양의 한글이 표시되므로 영어를 모르는 국민학생이라도 완벽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지구인의 위기일발> 1,2부 등이 당시 국내에서 게임 내 텍스트가 본격적으로 번역된 한국어판 소프트들이었다.
당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원저작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개조되서 판매되는 형식이었다. 이들 게임의 한국어화는 대부분 당시 업체에서 학생들에게 외주등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한국어화는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게임을 판매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게임을 하기 위한 한국어 패치로
90년대에는 한국어화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8비트 컴퓨터 시대에는 컴퓨터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기술적인 도전이었지만 16비트로 오면서 사용할수 있는 메모리가 증가하고 이를 통해 한글을 출력하는 것에 대한 난이도가 낮아졌다.
이와 함께 일본의 PC 게임들이 무단으로 복사되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인기를 끌었던 것은 코에이의 게임들이었는데, 이러한 게임들은 일본의 DOS-V 환경을 국내 컴퓨터에서 실행할수 있게 하는 환경인 DOSJ를 통해 실행되었다.
<삼국지3>의 경우는 한자 폰트를 한국어 발음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 게임의 특성상 대부분을 한국어로 즐길수 있었는데, 이를 위해 일본 게임에서 폰트를 추출하거나 고칠수 있는 툴을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이용해 게임 내에 한글을 나오게 하는 사람들이 PC 통신 BBS에서 많이 활동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내 한국어 패치를 한글폰트로 부르면서 한글 폰트를 요청하는 제목의 글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범아정보통신이 코에이와 정식으로 계약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이후 코에이 코리아가 되는 범아정보통신의 경우 게임을 정식으로 유통하는 입장이었고,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불법복제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한글 폰트 파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아정보통신은 PC 통신과 각 동호회에 공문들을 보내 대부분의 한글 폰트 파일을 삭제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의 한국어 패치 과정이나 참여자들을 찾아보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당시 <삼국지 3> 패치 파일이 인터넷에 남아있는 관계로 공지 파일에서 당시 작업자가 누구였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었다.

* 당시 패치 파일과 함께 배포되던 doc 파일 내용
실제로 <대항해시대 2> 게임과 함께 한국어로 바꿀 수 있는 패치 파일이 PC통신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코에이 코리아가 되는 범아정보통신이 PC통신의 각 게임 동호회를 강하게 단속하면서 <삼국지 3>등의 한국어 패치 파일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당시 <프린세스 메이커>와 <대항해시대 2>, <삼국지> 등은 JDOS를 띄워 한국어 패치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경우들이 존재했고 이러한 패치 요청들이 PC 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많이 올라오고 실제로 공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들을 정식으로 계약하고 유통하는 업체들이 나타나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런 패치파일을 요구하고나 공유를 자제하는 문화가 생겨났고, 각 동호회의 공지사항에서도 특히 코에이의 경우는 게임을 올리지 말라는 공지가 자주 올라왔다. 1993년 11월에는 개오동에서 한 회원이 이러한 한국어 패치와 함께 게임을 디스켓에 담아 팔다가 강등되는 사례도 존재했다.
동서게임채널이나 SKC등이 90년대 초에 게임 유통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고 저작권 단속들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패치들은 PC 통신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물론 불법복제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고 공개적인 장소를 피해 유통이 되었지만 굳이 패치가 아닌 한국어판 게임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 다만 이러한 금지 공지에서 게시판이나 자료실에 직접 올리지 말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실제 메일이나 뒤로 하는 공유는 진행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들이 정식 발매되는 경우가 아닌 경우가 존재했다. 국내에서 정식으로 발매할 수 없는 게임들, 특히 성인용 게임들의 경우는 여전히 공개적인 PC통신에서 그 정보나 패치들이 공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작업의 흐름은 프로그래머가 데이터를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존에 공략과 번역을 올리는 사람들이 팀을 꾸려 게임 안에 데이터를 적용하며 패치를 배포하는 형태였다. 한국에서 저작권자가 없다보니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았으며, 폰트를 교체하는 것을 넘어서 번역한 한국어 스크립트가 나오게 하기 위한 스크립트 개조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다.
일본 성인용 게임의 한국어 패치 작업은 하이텔 고전게임동호회(cgame)과 나우누리 게임매니아포럼(gmf)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동급생> 시리즈의 한글화 등으로 유명한 한누리팀의 경우 팀의 발족부터 나우누리 게임 매니아 포럼에서 진행을 했으며 작업 과정을 상세히 게시판에 올려서 그룹이 해체될 때 까지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 수집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재현한 글. 아이디만 남기고 실명은 삭제했다.
나우누리에서 활동하던 한누리팀의 경우 1995년 2월에 올린글을 시작으로 유작, 동급생, 동급생 2를 번역해서 한국어 패치를 배포했다. 팀에 프로그래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번역한 텍스트로 바이너리 파일을 만들 수 있었다.
하이텔 고전게임동호회의 난파클럽은 역으로 프로그래머가 없다는 문제 때문에 번역을 끝내고도 패치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고전게임동호회나 게임매니아포럼외에도 신천지 BBS에서도 이러한 일본 성인용 게임의 번역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활동 뒤에는 주로 JUICE KIM 이라는 인물이 만든 툴이 사용되어 대화파일이나 이미지 파일의 추출에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파일 추출 이나 변환 프로그램등을 활용해서 이러한 게임들의 번역이 시도되었고, 그 결과물들은 PC 통신에서 활동하던 게이머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한누리팀의 경우 게임매니아포럼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영어 게임의 한글화 사례 역시 존재한다. <문명2>가 특히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한국 유통사인 쌍용이 공식 한국어 번역을 포기한 상황에서 E-K (English 2 Korea )팀이 한국어 패치를 만들었다. 1998년 PC 챔프에서 번들로 제공한 <문명 2>에는 이 E-K 팀이 만든 한국어 패치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배포하며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략에 소개했다. E-K 팀은 이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한국어 패치도 제작하여 당시 멀티플레이에 참여하는 이용자의 수가 크게 증가한 경우도 존재한다.

* 피씨파워진 2000년 1월호에 실린 EK팀의 게임의 한국어 패치 강좌
국내 초기에 유통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한국어 번역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배틀넷에서 한글로는 채팅을 할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정기검진을 받아야할 나이일 것이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났던 ‘한스타’라는 유틸리티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한글로 채팅을 하는 것이 목표인 유틸리티였지만 이후에는 미션 설명 정도까지 한국어로 번역해서 표시해주었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송창규는 이후 한빛소프트에서 <가브리엘 나이트 3>나 <웜즈 월드 파티>의 한국어화 작업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한스타의 반응은 정말 뜨거워서 당시 출간되던 모든 게임잡지들이 이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 PC파워진 99년 8월호에 실린 한스타 특집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팬 번역자가 공식 유통사에 채용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났다. <네버윈터 나이츠>나 <발더스게이트 2>의 번역을 진행했던 아스가르드팀은 유통사와 협력해서 공식 한국어 패치로 발전시켰다.

* 게임피아 2002년 8월호에 실린 인터뷰
하지만 이러한 비공식 한국어 패치 작업은 양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어화는 퍼블리셔가 책임져야하지만, 유저 한국어 패치가 나오면서 굳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지 않고 게임을 출시하는 경우들도 나타났다. 불법복제와 한국어 패치가 결합되면서 게임이 더 팔리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 국내 출시를 포기하는 사례들도 존재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성인 게임들의 경우 국내에도 정식 출시가 되긴 했으나, 기존 불법복제의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동원 마도카 등이 성인 게임들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성인용 게임 시장이 양지에서 자리를 잡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동원 마도카도 시장을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사람들은 계속 한국어로 게임을 플레이하기를 원했다. 한국어 패치를 찾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니 코에이를 신경쓰던 동호회 시삽들은 공지를 통해 이러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하지 말아달라고 공지했다. 사기꾼이 나타나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도 있다. 물론 공익적으로 다같이 한국어로 게임을 하면 좋으니까 라는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을 무단으로 가져다 써서 문제가 된 사례도 존재하며, 하이텔과 나우누리의 커뮤니티는 먼저 패치를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는 사례도 존재했다.
하지만 컴퓨터 학습 1986년 1월호에 실렸던 문장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유저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진행과정과 대화를 한글로 변환시킨” 이란 문장은 게이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당시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의 디스코드 채널에서 한국어 패치를 위해 프로그램을 뜯어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