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681개 검색됨
- 16
GG Vol. 16 디지털 연산매체는 사랑을 다룰 수 있을까? 다룬다면 어떻게 다룰까?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방향으로의 사랑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징과 결부되며 어떤 특이점들을 드러내고 있을까?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Read More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Read More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Read More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Read More [Editor's View] 0과 1을 기반으로 한 계산을 딛고 서는 매체이지만 디지털게임 역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우리는 수시로 사랑은 계산가능한 감정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익숙한 관용구는 사랑을 다루는 연산장치인 디지털게임 앞에서 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No homosexuals in Star Wars? BioWare, ‘gamer’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privilege in a convergence culture 콘디스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살핀다. 콘디스는 ‘진정한’ 팬 또는 게이머 무리가 미디어 환경을 장악했으며,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간을 이룩하고 게임 내 특권적 지위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Read More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Read More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Read More 개척, 애정, 확장성: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 그리고 제다이 서바이버 이번에 얘기한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와 스타워즈 제다이 서바이버를 플레이해보며, 스타워즈라는 새로운 문화에 발을 내딛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Read More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Read More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Read More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 내기 - <댓 드래곤 캔서>가 ‘게임’으로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댓 드래곤 캔서>는 게임으로 제작되었지만, 당시의 조류에 있어서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왜 반드시 게임이여야 했을까? Read More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야,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연애’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Read More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Read More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Read More 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잘 짜인 레벨 디자인.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198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4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Read More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Read More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Read More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Read More
-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 Back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25 GG Vol. 25. 8. 10.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전자라면 전쟁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는 최대한 그것을 막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후자라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며 따라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게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워게임’은 현대 전쟁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워게임의 시초는 ‘크릭스슈필(Kriegsspiel)’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보드 게임이다. 1800년경 프로이센의 퇴역 장교 등을 중심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곧 프로이센군의 공식 훈련 교재가 되었다. 또 ‘크릭스슈필’은 민간의 상업용 보드게임의 조상 중 하나로도 간주된다. 전쟁을 상징과 규칙으로 환원하고 이에 근거한 판단과 결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군용의 ‘워게임’과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서 즐기는 전쟁 소재의 게임은 공통지반을 갖고 있다. 양자는 비슷한 경로를 따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 발전했다. 수많은 측면에서 다른 점을 갖고 있지만 본질이라는 측면에선 사실상 같은 것인 셈이다. ‘워게임’의 본질을 사실 우리는 그간 수많은 전략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간파해왔다. 우리가 익히 알듯, 힘이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 전쟁은 각 개인의 겪는 비극의 총합이다. 그러나 ‘워게임’은 제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전쟁을 제3자적 입장, 그러니까 전지적 시점에서 상징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극’과 같은 서사적 요소들은 게임 시스템 그 자체와 일단 분리된다. 가정용 게임에서도 우리는 늘상 이러한 일을 겪는다. 가령 리얼타임전략시뮬레이션(RTS)을 떠올려 보자. 현실에서 병사는 총알 한 개에 목숨을 잃는다. 현대전을 소재로 한 어떤 RTS 게임에서 병사 유닛은 수십 발의 총알을 맞아야 비로소 죽는다. 총알을 운 좋게 피한 것일까? 게임의 화면으로 표현되지 않는 은폐 엄폐 동작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공격을 당한 횟수에 비례해 유닛의 체력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병사는 분명 피격당했다. 치명적 부상을 입지 않은 것 뿐일까? 이 경우는 체력이 탄환이 몸에 명중할 때마다 비균등하게 감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체력은 입은 피해에 따라 균등하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해진 산식에 의거한 계산에 따라 감소한다. 이런 방식으로 총을 맞는 것이냐 피하는 것이냐의 문제, 즉 총을 맞는 순간 이 병사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은 어떻게 되느냐와 같은 개인의 실존과 관련한 문제는 게임 시스템 안에서 소거된다.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의 이런 측면은 전쟁 규모의 재현과 관련해서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때가 종종 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와 같은 전략롤플레잉(SRPG) 게임의 경우 전쟁에 준하는 세력의 대립 등을 묘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의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아군은 아무리 많아야 십수명의 캐릭터가 전부이다. 하나의 캐릭터는 하나의 사람이 아닌 한 무리의 부대를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무기의 장비, 체력 회복, 사망 등의 요소는 명백하게 개인화 되어 있다. <랑그릿사>의 경우 지휘관 외 병사 유닛을 따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해 현실감을 높였지만 그래봐야 한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유닛 수는 수십 명 정도이다. 전쟁이 아닌 패싸움 수준이다. 그렇다면 사태는 좀 더 간단한 논리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몇십 명의 병사를 휘하에 거느리고 뽐내는 황제가 꼭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를 게임적 맥락에서 전쟁의 이야기로서 수용한다. 시적 허용이 아닌 게임적 허용, 좀 더 나아간 개념으로 한다면 ‘게임화’의 단면이다. 이러한 게임들이 대개 턴 방식을 규칙으로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당연히 실제의 전쟁이 ‘너 한 번 나 한 번’식의 턴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물론 턴제의 형식은 동시턴 방식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턴 방식을 강제하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이다. 첫째는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실시간 대응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일정 기준에 따라 정지시킨 상태에서 게이머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순차적 결정을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는 ‘게임’이 ‘겨루기’라는 형식을 어느 정도는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양측에 똑같은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점을 고려한 ‘게임화’의 결과물이 턴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화’는 현실을 상징화 하는 과정에 반영되는 일종의 편집 기술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편집을 통해 전쟁의 무엇을 덜어내고 게이머에게 무엇을 경험하도록 할 것인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사의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는 전략에 충실한 쪽으로 기운다. 이 게임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감성은 없다. 게이머는 철저히 이해타산에 맞춰 결정을 내리는 냉혹한 전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대의 전쟁 지도자에게 실제 전장에서 특정 병사의 영웅적 활약상이나 동료애에 기반한 미담 같은 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에게 전쟁은 지도와 숫자로 이루어진 ‘게임’일 뿐이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가 그리는 전쟁은 그러한 세계에 존재한다. 전투 역시 상당 부분은 숫자로만 표현된다. 전장의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은 주로 1인칭 슈팅(FPS) 게임이다. 가령 유명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한 <콜 오브 듀티> 초기작의 경우 누구에겐 총알만 주고 누구에겐 총만 주는 방식으로 부족한 물자 문제를 때웠던 소비에트군의 부조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게이머는 죽은 아군의 시체에서 소총을 확보해 자신이 받은 실탄을 장착해 사용해야 된다. 만일 전선에서 후퇴해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뒤에서 독전을 하는 정치장교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런 형식의 FPS에서 게이머는 전쟁 지도부의 전략과 전체 전쟁의 양상을 잘 알 수 없지만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작전을 수행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 병사의 처지를 실감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사의 <토탈 워> 시리즈는 그 이름답게 전쟁의 모든 면을 보여주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토탈 워>에는 전쟁 지도자의 냉혹한 계산과 전장의 스펙터클이 함께 공존한다. 물론 무게추는 전략 전술을 경험하는 것에 쏠려 있다. <토탈 워>의 의의는 다른 전쟁 게임과 비교해 실제 전장에서의 상징화 수준을 현실에 가깝게 내린 것에 둘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전략 수준의 결정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전략 전술을 잘못 짠 영향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중세 병사들을 보고 있으면 현장 지휘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게이머가 전장의 비극이라는 서사적 측면을 대리 체험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결과적으로 익숙해지는 것은 전쟁의 기술적 측면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콜 오브 듀티>가 영화였다면 관객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등장 인물이 전우의 시체에서 획득하는 소총의 종류 같은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바로 자신이 획득한 장비이기에 그것이 모신나강 라이플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 소총이 모신나강이라면 적군이 쓰는 총은 무엇인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가? 발사음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게이머는 전쟁의 비극을 그린 서사 안에서도 적군과의 교전을 직접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전투의 기술적 측면을 간접 학습하게 된다. 가령 총격전을 벌이기 전에 은폐 엄폐를 하기 좋은 지형을 찾는다든가, 교전 중에 실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전쟁을 내면화 할 수 있다. 실제 FPS를 모병 홍보 또는 훈련 과정의 일부에 활용하려고 한 시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는 미 육군이 직접 개발한 홍보용 FPS 게임이다. 는 미국과 영연방 및 나토 국가 등의 훈련 소프트웨어로 등을 기반으로 했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전술 훈련을 목표로 한 실험적 시도로서 의 MOD였던 의 존재도 있다.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을 하면 살인에 둔감해진다’와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가령 ‘살인’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이다. 대다수 게임이 살인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엄하게 금지된 행위에 대한 게이머의 경각심이 희미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그렇다면 벌써 세상은 살인과 절도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시리즈의 인기를 생각해보자. 시리즈의 성공으로 세상이 ‘자동차 도둑놈’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허용하거나 나아가서는 권장하는 분야에 대한 게임의 영향이라면 어떨까? 게임은 게이머의 사회에 대한 인식 및 태도에 분명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오늘날 게임이 전쟁의 준비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우리 사회는 전쟁을 이미 ‘불가피한 게임’으로 받아들이고 전쟁의 본질을 ‘효율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며, 심지어 권장된다. 그렇기에 거기에 게임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하고 있는 거다. 실제 ‘워게임’의 일반화는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두 가지 면에서다. 첫째, ‘워게임’으로 통칭되는 시뮬레이션은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실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서로 간의 치열한 시뮬레이션 및 계산에 따른 ‘장군-멍군’식 대비 대책으로 미리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결국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게 된다면? ‘워게임’은 효율적이고 유연한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해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강대국이 개입한 전쟁의 양상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가장 본질적 이유는 게임이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임도 숫자, 전쟁도 숫자, 세상도 숫자이다. 모두가 숫자를 향할 때 효율과 최대 이익이라는 공통분모가 만들어진다. ‘게임에 사상을 담지 말라’는 구호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지만, 이렇게 게임에는 이미 지배이데올로기라는 형태로 사상(ideology)이 반영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을 공습하고 가자 지구에서 인종학살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며,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구실이 되는 정치, 그 정치를 떠받치는 대중적 동력의 실재를 확인하며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숫자로 상징화 되지만, 언제나 잔여물이 남으며 그것은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앞에서 쓴 전쟁의 또다른 의미, 즉 전쟁의 본질은 우리 삶의 비극이라는 진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일은 곧 전쟁이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가 아닌 게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제기하는 의문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게임의 가능성에 대한 건 아니라는 거다. 과 같은 게임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결국 게이머가 주되게 수용하는 것은 ‘효율적 관리 및 생존’이라는 장르적 요소다. 게임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관점의 경로의존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오히려 여기서 필요한 건 그러한 경로의존성을 벗어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즉 해석이며 비평이다. 숫자의 세계에서 숫자가 될 수 없는 것들에 주목하고 그런 것들을 짚어 내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게임과 우리의 삶 모두에 죽음이 아닌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Tags: 수치화, 워게임, 재현윤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Back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10 GG Vol. 23. 2. 10. 밸브의 게임 ‘포탈 2’ 에는 특이하게도 코멘터리 모드가 있다. 이는 일종의 영화 DVD 에 들어있는 코멘터리 특전처럼, 개발자들이 어떻게 게임을 만들고 고쳐나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이 이 게임을 만든 과정은 마치 소설을 짓는 것과 같은 작성과 무수한 퇴고의 연속이다. ‘포탈 2’ 는 퍼즐을 중심으로 한 게임이고, 이들의 고민은 그렇다. 이 퍼즐을 어떻게 풀도록 설계했는가? 그 설계가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보완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주었나? 플레이어가 이 설계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할 것인가?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유도한 플레이에서 벗어나는가? 그 벗어난 플레이가 허용 가능한가, 아니면 게임의 핵심을 해치고 있는가? 이러한 수많은 고민이 뭉쳐 어떻게 최종 버전의 게임이 완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포탈 2’ 코멘터리 모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예시가 하나 있다. 이 퍼즐의 최초 버전은 플레이어의 시작 위치와 출구가 바로 보이는 탁 트인 형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정상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출구 근처로 바로 포탈을 만들어 퍼즐을 ‘무시’ 했다. 그러자 개발자들은 시작 위치와 출구 사이에 큰 벽을 설치했다. 그러자 이제는 플레이어들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퍼즐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벽을 반쯤 투명한 유리벽으로 바꾸어 출구가 보이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비로소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제대로 풀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게임을 플레이해 나갔다. 이 과정 자체가 바로 게임의 UX 디자인에 대한 매우 적절한 설명이다. ‘포탈 2’ 의 제작사 밸브는 ‘하프 라이프’ 시절부터 이처럼 잘 유도된 플레이어 경험을 짜는 능력이 뛰어난 회사였다. 이와 함께 밸브의 게임 중 또다른 작품은 새로운 방식으로 특정 장르적 UX에 접근한다. 공포 게임이자 4인 협동 게임, ‘레프트 4 데드’다. 그때까지 공포 게임은 놀이공원의 다크라이드와 유사한 방식이 주류였다. 즉 주어진 동선, 레일이 있고, 이 동선을 따라가면서 발동하는 트리거들로 적이 등장하거나, 이벤트가 발생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레프트 4 데드’ 는 이런 다소 고전적인, 배치된 오브젝트나 동선 설계처럼 게임 내에 이미 구성되어 변하지 않는 고정 요소를 넘어서서 실시간으로 플레이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플레이 환경을 바꾸는 ‘감독 AI 시스템’ 을 도입했다.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적응형 난이도 시스템의 변형이지만, 공포 게임에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낳았다. * ‘레프트 4 데드’ 의 감독 AI는 당시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독 시스템의 요지는 이렇다. 플레이어의 스테이터스, 잔탄량, 위치 등 여러 모니터링 정보를 통해 플레이어의 현재 스트레스를 가늠한다. 그렇게 측정된 스트레스치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적을 등장시킬지, 적을 줄일지, 또는 치료제를 제공할지, 다음 아이템 드롭에서 총알을 제공할지 등을 판단한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가 겪는 현재의 경험은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적절한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타도록 조율된다.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감독 시스템 자체보다는, 이러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한 난이도 조정 툴이 필요할 만큼 공포 게임의 UX는 다른 게임에 비해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러 게임의 테마 중에서 공포 게임은 그 경험을 설계하기에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이름 자체는 공포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플레이란 플레이어가 공포를 최대한 회피하고, 또는 그 원인을 찾아내 공포를 해소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는 공포 게임이 다른 공포 콘텐츠(즉, 공포 영화 같은)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는 콘텐츠 수용자 입장에서 그저 관찰할 수 밖에 없는 일방적인 수용의 입장에 놓이게 되지만 공포 게임에서는 그 공포에 저항하고,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암네시아’ 시리즈로 대표되는, 공포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피해다녀야 하는 게임들도 그처럼 플레이어의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훨씬 능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공포 게임에서의 경험 설계는 더 나아가 어떻게 ‘공포’ 가 총합으로서 긍정적인 체험이 될 수 하는가 하는 고민도 담겨있다. 공포는 그 자체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이며 불쾌함을 유발하고, 우리가 공포 게임에서 느끼는 쾌락은 그 공포 이후에 이를 극복하고 다시 평정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좋은 공포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그 UX는 항상 시련과 극복의 연쇄가 될 수 밖에 없다. 공포 게임은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설계하는 방법, 그리고 공포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등에서 많은 고민과 발전의 과정이 있어왔다. 여기에 더불어 사람은 어떤 감각 요인, 또는 자극에 적응하고 둔감해진다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즉 공포, 또는 공포를 직접 느끼기 바로 전 단계의 긴장은 항상 적정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 적정 범위는 변동성이 있으며 심지어 순간적으로 큰 폭의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감정이 관여하는 바가 큰 경험이기에 특히나 그런 면이 부각된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한명의 창조자에게서 출발한 공포 게임이지만 긴장감의 조절에서 서로 다른 방법론을 채택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굉장히 전통적인 방법의, 맵 곳곳에 수많은 트리거를 숨겨두는 방법과 적 AI 의 강화를 필두로 이 긴장감을 조율한다.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는 원작에 없던 감독 시스템을 고정된 트리거 들을 제외하면 매 플레이마다 다른 패턴으로 적이 등장한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개발자는 한 인터뷰에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을 ‘호러 엔지니어링’ 이라고 칭했다. 이는 비단 전투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의 흐름을 조절하는 요소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각 전투의 거리를 좁히고 밀도를 높여, 정해진 레일을 뚫고 가면서 일정 구간을 통과하면 저장하고 다시 일정 구간을 뚫고 가는 일종의 갱신을 하는 느낌의 플레이 구성이다. 하지만 ‘데스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리메이크를 통해 오픈월드의 느낌을 가져왔고, 때문에 하나의 레일을 따라 트리거를 배치하는 식으로는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여러 변수에 대처할 수 없기에 감독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직접 레일 위의 난이도 조건을 조절하느냐, 또는 감독 시스템을 활용하느냐는 그 결과물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말그대로 방법론의 차이이다. 예컨대 게임의 맵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미리 정해진 맵을 제공할 것인지, 특정 패턴에 기반한 절차적 생성 기법을 활용할 것인지 하는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건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아닌 최종적으로 어떤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도하고 의도했는지다. 아무리 감독 시스템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그 최종 상태에 대한 기준이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된 행동 패턴을 유도하기 어렵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들도 살펴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대리인, 즉 게임 내 아바타와 실제 플레이어와의 거리감 조절이다. 이를 위한 도구 중 하나가 공포 게임의 UX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 구성 요소 중 하나인 UI 다. 두 게임의 공통 조상인 ‘데드 스페이스’ 를 포함해 이들 게임은 다이제틱 UI 를 사용한다. * 몰입감에 극도로 집중한 UI를 보여주는 ‘칼리스토 프로토콜’ 다이제틱 UI 와 논-다이제틱 UI 에 대한 가장 빠른 설명은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로 가능하다. 이 게임에서는 하나의 게임으로 이 두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데, 트럭에 부착된 계기반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다이제틱 UI, 그게 아니라 화면 구석에 고정된 네비게이션 창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논-다이제틱 UI를 사용하는 것이다. 즉 논-다이제틱 UI 는 플레이어와 게임 속 세계 사이에 한겹의 필터가 있는 것과 같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이 부분을 제거하고 캐릭터의 등에 달린 장비로 HP를, 총기에 달린 부품으로 잔탄량을 표시하고 인벤토리, 아이템 정보 등도 게임 내 홀로그램 같은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런 UI는 필수적인 부분 외의 정보량을 제한하며 현실감을 더 적게 저해하기에 소위 말하는 ‘몰입감’ 을 강조하게 된다. 어느 시점부터 다이제틱 UI 는 공포 게임의 기본 소양처럼 되었는데, 몰입 엔터테인먼트로서 공포 게임은 감정선을 플레이어가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원(현실-게임 속)의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다이제틱 UI 를 위시한 여러 몰입 기믹을 사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 음악 같은 음향효과가 그렇다. 이런 요소는 오히려 현실감을 위해서는 현장의 소리 외엔 없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음향효과들은 일종의 가이드로서 플레이어의 감정선과 고양감을 다가올 사건에 앞서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뒤에서 튀어나온 적에게 바로 공격당해 죽는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전조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소위 ‘억까’ 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적이 등장하기 직전, 또는 등장 후 공격받기 전 특정한 음향이나 또는 전투음악 같은게 흘러나온다면 플레이어는 위협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곧 위협이 다가온다는 걸 심리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는 철저히 비현실적이고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종의 초현실적 요소이지만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에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즉, 공포 게임은 일방적으로 플레이어를 겁주고 위협하는게 아니라 꽤나 정당하게 주고 받으며 플레이어와 놀아주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수를 써볼까?” “음… 일단 한 번 죽게 만들까요?”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진예원 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26 GG Vol. 25. 10. 10. 크래프톤, 게임문화재단과 게임비평잡지를 창간하면서 반드시 함께 하겠다고 넣은 아이템이 게임비평공모전이었다. 게임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보다, 비평임을 자처하는 글들을 뭉쳐 가면서 천천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과정이 있어야만 편집장이 가진 특정한 비평에의 고집이 좀더 다양한 지평에 선 비평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사고와 글쓰기에 뛰어들기 시작한 AI에 대한 고민 4회 공모전 응모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트렌드가 AI의 개입이었다. 절반은 의심이고 절반은 확신이다.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기초적인 글쓰기의 기술적 측면에서 큰 폭의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글을 못 썼다’라는 이유로 예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오늘날의 글쓰기, 특히 공모전과 같이 심사가 곁들여지는 형식의 글쓰기에는 AI의 강한 개입이 나타난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론적 입장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로부터인데, 첫 번째는 더 나은 정보와 전달력을 위해 향상된 효율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는 오히려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설령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의한 글쓰기를 반대하더라도 이를 공모전과 같은 심사 체계에서 완벽하게 필터링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다만 말그대로 심사가 이뤄지는 공모전이기에 이는 단순히 합격 – 불합격의 문제를 떠나 애초에 이 공모전을 시작했던 이유까지를 거슬러 되짚어야 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게임비평웹진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신진 필자 발굴과 육성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주최측의 목적일 뿐, 응모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내가 게임비평을 쓰겠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저 상금과 스펙을 위해, 누군가는 연습삼아 참가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AI가 개입할 경우 주최측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진다. 우리가 찾는 것은 게임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꾸준하게 가져갈 수 있는 필자이지만, 그 꾸준한 관심과 통찰을 AI라는 도구를 통해 충분히 가장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시상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해당 필자를 지속적으로 게임비평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짚어내기는 어려워진다. 이런 고민은 비단 게임비평 뿐 아니라 아마도 다른 모든 류의 글쓰기 공모전에서 공통적으로 떠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GG 공모전은 적어도 GG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지속될 예정인데, 앞으로 모든 심사에서 AI가 던진 이 새로운 고민인 지속가능한 게임비평 필자의 발굴이라는 고민은 더욱 심사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응모자 집단 4년째 비평공모전을 이어 오면서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헛스윙이 줄어들고 있다는 흐름이다. 1회 공모전에서는 상당수의 응모작이 GG의 정체성과 잘 맞지 않거나, 혹은 아예 게임비평과 무관한 글들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 “확률도박이나 만드는 한국게임”, “페미가 게임을 망친다” 였다. 이런 주제들은 주최자의 기운을 빼곤 한다. 애초에 GG가 뭐하는 곳인지 글 하나도 보지 않고 응모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회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주제의 응모가 거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나름 길다면 긴 역사에 탑승해 흘러온 결과일 것이다. 적어도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웹진이 어떤 글을 쓰고 있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 주는 변화로 보인다. 일반적인 리뷰가 아니라 비평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비평웹진의 독자 수는 아무래도 대중적이기는 어려우며, 이런 경우 독자층은 상당부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지를 가진 집단과 겹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GG는 과거보다는 좀더 올라간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GG의 방향에 맞춰 글을 쓰거나, 혹은 GG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아예 응모를 피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 이번 4회 공모전의 결과다. 아직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게임비평의 문제를 넘어 모든 종류의 비평 자체가 과거보다 허약한 대중성으로 인해 사그라드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신호다. 아직 사회적으로 다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흐름에 공감하고 게임비평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자 하는 일련의 그룹이 존재하고, 그 존재감이 다소 뭉툭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만져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4년의 작업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게임비평이 활성화되고, 대중문화 담론에서 갑작스럽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 비평의 필요성을 말하는 입장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는 큰 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 하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나가는 일이다. 언젠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지금 살려낸 불씨 하나로 비로소 유의미한 불을 지펴낼 수 있는 불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비평 전반이 죽어가는 시대에 비평을 생각하는 이들이 첫 손으로 꼽아야 할 일일 것이다. 과도한 무거움 언제가 될 지 모를 시기를 위해 비평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의 게임제너레이션과 게임비평공모전에 남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필요보다 과하게 무겁다는 점에 있다. 이는 좀더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냥 무겁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다 과하게’에 방점을 찍은 무거움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간혹 불필요하게 두꺼운 학술의 옷을 걸치려 하는 일련의 글쓰기 습관을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학술의 옷이라는 건 말그대로 옷처럼 대중 앞에 설 때 쉽게 발가벗기 어려운 일종의 습관이 함께 따라붙는다. 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상당부분 학술적 글쓰기가 일반적인 학계를 통해 학습되는 문제도 있고, 애초에 ‘진지하게 글쓰기’라는 방식에 묻은 스타일 자체가 그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평이 꼭 학술적이어야 할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GG와 공모전의 글들은 학술적인 글이라기보다는 학술적인 스타일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대중성과 학술성의 가운데를 자임한다고 늘 이야기하는 웹진이지만 막상 거기 실리는 글들의 논지에 대한 근거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학자의 주장을 각주로 다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특정한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일련의 메시지와 감정들을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반드시 다른 ‘학자’의 주장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저 손쉽게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일종의 잘 갖춰진 우상을 등 뒤에 두고 자신의 해석을 풀어가는 것은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글의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불씨를 살리는’ 일과 맞닿는다. 정작 게임비평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 같은 글들만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적절한 순간을 위해 대비해 온 결과가 맞을까? 이론과 근거를 쌓아나가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GG같은 웹진이 할 일이 아니라, 별도의 재정과 인력을 굴리며 그런 일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자리매겨진 ‘학계’가 해야 할 일이다. GG는 아카데미가 아니며, 아카데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아니 더 나아가 아카데미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비평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게 요약하자면 결국 모든 비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 세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낸 뒤 이를 세상 모두에게 알리며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비평은 때로는 텍스트를, 때로는 수용자를, 때로는 씬 전반을 주목하지만, 그 주목의 대상이 무엇이건간에 원론적 의미에서의 목적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속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는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몇몇 사례들을 통해 게임이 인간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변화시킨 과정을 목격했고, 반대로 인간이 게임을 새롭게 만들며 더 나은 세계, 혹은 더 어두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또한 동시에 목격했다. 게임비평의 근본적 목적이라면 이 변화가 보다 인간과 사회 전반을 위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방향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작 게임 비평 가지고 무슨 거창한 이야기냐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본래 모든 비평의 목적은 그리로 향하는 법이다. GG가 지향한다고 늘 말하는, 학술성과 대중성 사이라는 지향은 사실 이 근본적인 목적을 향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깊은 성찰을 요하면서도 그 결과가 단지 소수의 그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모두에게 향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춘 통찰이 게임, 그리고 게임을 넘은 세상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GG 창간의 목적이었고, 아마도 이런 입장에 공감하는 많은 필진들의 목적과도 유사할 것이며, 이런 작업들과 함께 나아가는 비평공모전의 지향과도 총론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년에 열릴 제 5회 공모전에서도 이런 지향이 좀더 많은 동지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 -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가 던지는 질문들
북유럽에서는 디자인 학부가, 북미에서는 영화학과가, 일본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이공계가 게임 연구를 주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들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한 게임 연구의 용어사전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 게임 연구 공동체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해온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 경계 위에 서 있는 한국 게임 연구자들 역시 공유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 Back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 -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가 던지는 질문들 27 GG Vol. 25. 12. 10. 게임 연구, 어디에 속하는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게임 연구를 한다고 자기소개를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게임 연구요? 그럼 코딩하시나요? 게임 개발 쪽인가요?" 게임을 연구한다는 말이 곧 기술 연구나 프로그래밍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게임 연구에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디어 연구, 문화 연구, 장르 연구, 철학이나 미학 연구 등 게임을 바라보는 지평은 다양하다. 그러나 '게임 연구'라는 말은 여전히 명확한 윤곽을 갖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혼란은 비단 연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 연구자들 스스로도 게임 연구가 어느 학문 분과에 속하는지 명확히 답하기 어렵다. 게임 연구는 어디에 속하는가? 미디어학과 강의실, 컴퓨터공학과 실험실, 문화연구 세미나실 가운데 어느 곳이 그 자리가 될 수 있을까? 2025년 5월 일본에서 출간된 『クリティカル・ワード ゲームスタディーズ ― 遊びから文化と社会を考える』(이하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의 네 명의 편저자 – 이노우에 아키토(井上明人), 마츠나가 신지(松永伸司), 요시다 히로시(吉田寛), 마틴 로스(Martin Roth) – 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게임 연구는 기존의 대학 분과나 학문 제도로는 수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북유럽에서는 디자인 학부가, 북미에서는 영화학과가, 일본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이공계가 게임 연구를 주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들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한 게임 연구의 용어사전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 게임 연구 공동체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해온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 경계 위에 서 있는 한국 게임 연구자들 역시 공유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일본 게임 연구가 바라보는 지평 그렇다면 일본의 게임 연구자들은 게임 연구의 이 불안정한 위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에서 서문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게임 연구의 현주소는 흥미롭다. 편저자들은 게임 연구가 "새롭고 영역횡단적인 학문"이기에 전체와 현위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인정한다. 앞서 국가별로 게임 연구가 주도되는 학문의 영역이 다르다고 언급했듯, 이러한 지역적 편차는 게임 스터디즈가 아직 확립된 학문 분과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이라는 대상 자체가 단일한 학문적 렌즈로는 포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게임 제작에 요구되는 기능이 프로그래밍부터 영상, 시나리오, 세계관 설정,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듯, 게임 연구 역시 문과도 이과도 아닌, 혹은 문과이면서 동시에 이과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책의 구성에도 반영된다. 네 명의 편저자는 각기 다른 전문 분야와 배경을 가진다. 편저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각각의 연구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 내에서 각자의 게임 연구에 임해도 좋다"며, 학문적 다원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일본 게임 연구가 주목하는 것들 이러한 학문적 다원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그 답은 책이 다루는 주제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책의 제1부 이론편은 '룰(Rule)', '미디어(Media)', '놀이(Play)', '픽션(Fiction)',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소셜(Social)', '인공물(Artifact)',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등 8개 핵심 개념을 다룬다. 주목할 점은 하나의 개념을 네 명의 편저자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해설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룰' 개념을 둘러싸고 "게임은 룰인가", "룰 개념의 다의성과 다양한 성질", "룰은 게임을 정의하는가"라는 세 가지 소제목 하에 서로 다른 시각이 제시된다. 이는 단일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다양한 견해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적 전략이다. 제2부 키워드편은 27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현재 게임 문화와 게임 연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여기에 수록된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현재 일본 게임 연구가 어떤 영역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 항목들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묶인다. 첫째, 기술적·물질적 기반 주제다. 'NFT', '에뮬레이션', '아카이브', '플랫폼' 같은 파트들은 게임을 단순히 의미의 텍스트가 아니라 특정한 기술적·경제적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미디어로 파악한다. 특히 아카이브와 에뮬레이션 파트는 게임의 보존과 접근성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게임이 점점 더 '사라지는' 미디어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다. 플랫폼 개념은 게임이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 관계와 경제 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문화적 쟁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접근성과 장애의 표상', '게임 행동 장애(Gaming Disorder)' 같은 파트들은 게임을 둘러싼 정치성을 전면화한다. 젠더 파트는 게임 문화의 남성중심성과 배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접근성 파트는 장애인 게이머들의 경험이 어떻게 주변화되어왔는지를 다룬다. 게임 행동 장애 파트는 WHO의 질병 분류를 둘러싼 논쟁을 다루면서, 게임 플레이를 병리화하는 담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플레이어의 창조적·전복적 실천에 대한 주제다. '게임 실황', 'UGC(User-Generated Contents)', '치트', '내비게이션' 같은 파트들은 게임이 개발자가 설계한 대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게임 실황은 게임 플레이를 관람 가능한 퍼포먼스로 전환하는 실천이고, UGC는 플레이어를 공동 창작자로 위치시킨다. 치트는 게임의 룰을 의도적으로 위반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이러한 항목들은 게임 연구가 '텍스트 분석'에서 '실천과 문화 연구'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넷째, 게임의 사회적 확장에 대한 주제다. '스포츠', '투어리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같은 파트들은 게임이 더 이상 오락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업무, 교육, 건강관리 등 삶의 다양한 영역이 게임의 논리로 재편되는 현상을 가리키며, 투어리즘 파트는 <포켓몬 GO> 같은 게임이 실제 공간의 이동과 경험을 재조직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스포츠 파트는 e스포츠의 부상과 함께 게임과 전통적 스포츠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다룬다. 다섯째, 메타적 성찰에 대한 주제다. '비평(Criticism)', '윤리(Ethics)', '역사 서술', '내러티브(Narrative)', '몰입' 같은 개념들은 게임을 연구하는 방법론 자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윤리 파트는 게임 내 폭력 표현, 착취적 과금 모델, 개발 노동 조건 등 게임을 둘러싼 다층적 윤리적 쟁점들을 다룬다. 역사 서술 파트는 게임이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과 그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탐구한다. 비평 파트는 게임 비평의 언어와 방법이 무엇인지,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묻는다. 제3부 북가이드편은 20개의 필독 문헌을 소개한다. 하위징아(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카이와(Caillois)의 『놀이와 인간(Man, Play and Games)』 같은 고전부터, 예스퍼 율(Jesper Juul)의 『하프 리얼(Half-Real)』,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 같은 현대 게임 연구의 주요 저작까지 망라한다. 흥미롭게도 편저자들은 일본어 문헌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밝히는데, 이는 "일본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접근이 어려운 외국어 문헌 소개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어쩌면 내용보다 형식에 있을지 모른다. 서문에서 편저자들은 독자에게 "이 책을 도중에 내던지고 즉시 자신만의 게임 스터디즈를 시작해도 좋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책에는 다양한 전문 분야와 연구 테마를 가진 많은 저자들이 다루는 현재진행형의 게임 스터디즈가 담겨 있으므로, 끝까지 읽는 것을 권장한다"고도 덧붙인다. 이는 게임 연구라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영역에서 학술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게임 연구자들의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게임 연구 커뮤니티와 연구 서적이 서서히 쌓여 왔고, 이 책은 그 축적의 위에 서서 ‘입문용 지도’를 제안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게임 연구 씬뿐만 아니라 한국의 게임 연구 현장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 게임 연구는 명확한 학문적 경계나 방법론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을 문제로 보기보다, 오히려 가능성으로 전환하려 한다. "문과도 이과도 아니다", 기존 학문 제도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은 패배주의적 자조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적 실험을 위한 생각의 전환에 가깝다. 일본의 지형, 한국의 질문 사실 한국과 일본의 게임 연구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미학, 철학, 미디어 이론, 기술사 등 인문학적이고 이론 지향적인 게임 연구 관점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 연구, 디자인학 연구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며, 지역이나 대학별로 강조하는 학문 분과도 다르다. 한국 역시 커뮤니케이션학, 미디어학, 문화연구는 물론이고 게임 정책 연구, 산업 분석, 기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이 공존한다. 두 나라 모두 게임 연구를 단일한 학문 체계 안에 정착시키기보다는, 여러 분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이라는 대상을 탐구해왔다. 그렇다면 이 책이 한국 게임 연구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교의 프레임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게임 연구는 문화적 맥락과 제도적 환경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게임 연구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는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다. 젠더 담론, 게임 병리화 담론, 아카이브와 보존 문제, 플레이어 실천의 의미 등 한국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쟁점들을 일본 게임 연구가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일은, 우리 자신의 연구 지형을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는 단순히 일본 게임 연구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한국 게임 연구자들에게도 "당신은 게임을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고 볼 수 있다. 나가며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는 완결된 지식 체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게임 연구라는 영역이 여전히 형성 중이며, 다양한 관점들 사이의 긴장과 대화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 연구는 확립된 지식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탐구의 과정이며, 따라서 단일한 방법론이나 관점으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임 연구가 제도화된 학문 권위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지적 실천이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35개의 키워드와 20개의 필독서는 하나의 '정전'(正典, canon)이라기보다, 계속 수정되고 확장될 '잠정적 지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제시하는 비전이 순탄하게 실현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임 스터디즈가 기존 학문 제도에 수용되지 않는다는 진단은, 동시에 제도적 지원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문적 다원주의는 지적 풍요로움을 약속하지만, 공통의 언어와 방법론이 부족해지는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 게임 연구에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일본 게임 연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을 탐색하며, 동시에 새로운 참여자들을 초대한다. 한국의 게임 연구자와 게임 문화 연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비교 참조점이자, 우리 자신의 게임 연구 지형을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어떤 학문적 렌즈로 바라보고 있는가? 국내 게임 문화의 고유성과 글로벌 게임 연구 담론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을 것인가?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를 비롯해 다른 나라의 게임 연구 동향을 살펴보는 일은, 이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놓게 만드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22 GG Vol. 25. 2. 10. 미디어의 시대, 멀미의 시대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 좀더 구체적으로는 감각의 확장으로 이해했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은 신체 기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감각이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며 발전해 왔다. 청각만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거리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시야를 벗어난 먼 거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인간의 감각 확장을 단지 동시대의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까지도 지금 당장 우리의 감각 앞에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감각의 확장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감각의 과잉 시대인 미디어 시대에 인간은 지나치게 쏟아지는 새로운 자극들 앞에서 간혹 일시정지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멀미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의 의학적 연구 결과들은 멀미를 여러 감각 정보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뇌에 전달할 때 생기는 문제를 뇌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신체를 일시적으로 주저앉히려는 기제로 이해한다. 눈으로 보는 상황과 전정기관이 인지하는 신체의 평형 상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뇌로 전달할 때, 뇌는 이를 신체의 이상이라고 인식하고 신체 기능을 저하시켜 일단 정지 후 휴식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멀미에 관한 기록들은 고대 그리스의 뱃멀미로부터 시작된다. 매클루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배 또한 신체의 확장이며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일종이며, 배를 탄 상태에서 전정기관이 느끼는 출렁임의 평형감각은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와 불일치하기에 멀미를 유발한다. 뱃멀미도 결국 미디어 멀미의 일종이며,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정보 앞에 인간의 신체는 위험 상황을 인식하고 셧다운을 건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시각정보에 크게 기대는 인간에게 있어 멀미는 주로 새로운 미디어가 시각에 관련된 정보로 확장할 때 발생하곤 했다. 인류에게 기계적 스펙터클을 처음 제공한 시점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마차와 기차의 네모난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고속의 이미지는 평행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차와 기차가 만드는 진동은 전정기관으로 하여금 이 시각정보가 결코 평탄한 횡스크롤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마차 멀미, 기차 멀미에 이어 초창기 영화 스크린을 보며 멀미를 경험했음을 이야기한 많은 기록들은 뱃멀미로로부터 이어지는 동일한 맥락에 서 있다. 감각정보의 불일치가 만드는 게임 속의 불화들 디지털게임은 현대의 여러 미디어 중 멀미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매체일 것이다. 인간이 영상매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 멀미는 몇몇 특수한 시점의 카메라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없어진 것과 같이 거론되지 않는데 비해 게임에서는 적지 않은 멀미 호소가 이어지곤 한다. 물론 <심시티>같은 조감 시야에서 멀미를 호소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멀미는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의 3D 기반 게임에서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는 경우에 멀미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때의 멀미들은 어느 정도 영상매체 속 화자의 위치, 다시말해 카메라의 시점에 의해 나타난다. 상당수의 영화들에서 카메라가 위치하는 곳이 3인칭 시점인 것과 달리,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많은 현대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은 카메라가 언제나 주인공을 향해 맞춰진, 그것도 주인공의 위치와 운동이 연출자로서의 게임 제작자가 아닌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의도에 의해 변화하는 주인공을 향하고 있다. 이 때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잡고 있는 손과 같은 신체를 통해 가상공간인 게임 속 세계로 자아의 위치를 이전한다. 전후좌우로 뛰고 구르는 행위는 단지 스틱을 기울이고 마우스를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마치 실제로 자신의 신체를 굴리고 기울이는 행위처럼 여겨진다. FPS게임에서 벽 뒤에 엄폐를 끼고 내다볼 때 자신도 모르게 신체를 기울이는 행위가 나오는 것이 이런 점에서다. 현재까지의 디지털게임들이 가상공간 안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은 상당부분 시청각 데이터를 통해서인데, 멀미는 이 때 정직한(?) 전정기관의 항의로부터 비롯된다. 눈과 귀는 플레이어가 2층에서 뛰어내렸다고 보고하는데, 전정기관은 가상공간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하기에 플레이어의 뇌에 “아닌데요? 자리에 앉아있는데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게임에서의 멀미는 감각정보로 치면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VR과 같은 좀더 몰입적인 환경을 시청각 정보를 통해 제공하는 상황에 더욱 강렬해진다. 나는 <유로트럭> 같은 자동차 운전 게임을 VR로 플레이해본 적이 있는데, 운전하는 자세가 게임하는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멀미를 거의 못 느끼던 와중에 게임 속에서 도시 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순간 멀미감이 확 쏟아짐을 느꼈다. HUD 속 디스플레이에서는 방지턱을 넘는 트럭의 시각 정보를 고스란히 제공했지만, 나의 전정기관은 아무런 정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VR은 HUD착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계산해 그 궤적만큼의 변화를 3D그래픽으로 표현하며 스크린의 시야를 사실상 360도에 가깝게 재현한다. 고개를 돌리면 돌린 방향만큼의 변화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장치에 대해 사람들은 “와, 진짜같다!”고 환호하지만, 이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청각 정보에 국한된 감탄에 머문다. 현재까지의 VR기술은 우리의 평형과 운동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은 영원히 인류 놀이의 적이기만 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전정기관이라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 청, 후, 미, 촉의 다섯 감각이 아니면서도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감각정보를 제공하던 감각기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운동과 평형을 측정하고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해 주는 이 기관은 그 중요성과 정보량에 비해 우리에게서 ‘감각’이라고 인식된 바가 거의 없었다.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에는 우리는 전정기관을 가지고 논 적이 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가 대표적이다. 여러 안전장치를 통해 절대 떨어져 죽거나 다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의 아찔함을 놀이로 승화한다.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아도 여전히 바이킹이 최대 고도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하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놀이공원의 여러 탈것들은 아마도 전정기관이라는 숨겨진 감각을 발굴해 내 놀이의 미디어로 만든 몇 안되는 사례일 것이다. 전정기관의 운동감각을 다른 감각과 동일한 수준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놀이매체로서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멀미라는 극복점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여지도 갖게 된다. 조금 더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면, 놀이매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서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을 가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이 놀이로서 출현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 가면 간혹 레이싱 게임 같은 경우에는 가상의 유압 서스펜션을 활용해 어느 정도 재현된 평형감각을 놀이에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의 기술은 전정기관의 감각이 놀이에 도움된다는 사실까지를 확인했을 뿐, 이를 실제로 재현하는 방식은 가상의 재현이 아니라 실재적 재현에 가깝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의 몸을 기계에 싣고 흔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전정기관의 감각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개발될 수 있다면, 아직까지 모든 다른 감각에 비해 정직한 정보를 흘리는 통에 멀미를 유발한다는 눈총을 받고, 때로는 3D 게임 멀미 극복을 위해 멀미약을 통해 평형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홀대받은 이 감각기관의 의미가 놀이매체에서 다시 재조명받을 순간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는 발상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놀이 기술들은 처음부터 진지한 실현을 생각한 발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상상이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3D게임에서는 멀미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많은 자원을 쓰고 있지만, 먼 훗날에는 지금 이 시대를 역사 속에서 읽으며 한때 방해되는 감각으로 받아들여졌던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이 이제는 놀이의 주역이 된 감각이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Un-So Diener
Freelance translator specializing in video game localization. My first game crush was Gray Scavenger of War of Genesis II. Now, I get to experience all kinds of video games across various genres and platforms for a living. Credited in Ghostwire: Tokyo and Neo Cab. Un-So Diener Un-So Diener Freelance translator specializing in video game localization. My first game crush was Gray Scavenger of War of Genesis II. Now, I get to experience all kinds of video games across various genres and platforms for a living. Credited in Ghostwire: Tokyo and Neo Cab. Read More
-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Back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06 GG Vol. 22. 6. 10.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아 래 – 1. 공모명: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2. 공모 주제: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자유주제) 3. 공모기간 및 접수마감: 2022. 07. 08.(금) 23:59까지 email 도착분에 한함 4.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형식: hwp, doc, odt 형식 중 택일하여 제출. 제목, 저자명 포함. - 분량: 한글 4,000자 ~ 8,000자 내외. 이미지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email을 통해 제출( ggcriticcomp@gmail.com ) 5. 시상내역 최우수상(1명): 상금 10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우수상(3명): 상금 5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장려상(5명): 상금 30만원(세전). GG 7호 게재 * 수상자는 응모한 메일을 통해 심사완료후 개별 통보합니다. 6. 일정 2022. 07. 08(금) 접수마감 (23:59까지 도착분 기준) 2022. 07. 29(금)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2022. 08. 10(수) GG 7호 수상작 게재 2022. 08. (미정) 시상식 7. 기타 유의사항 - 공모전 참가는 1인 1개 글에 한하며, 중복응모는 불가합니다. - 응모는 블로그 등 개인매체를 포함한 타 매체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중복게재 및 표절이 밝혀질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수상작 선정 후 개인정보 취득을 위해 당선자분들께 개별 연락이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당선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관련한 문의사항은 공모전 공식 메일계정( ggcriticcomp@gmail.com )을 통해 문의해 주십시오.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많은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북리뷰] 피, 땀, 리셋 - 리셋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디오 게임 제작은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되고, 제작되지만 실제 완성되는 것은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게임이 제작 도중 엎어지는 이유는 수 없이 많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근사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봤더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더 이상 개선을 할 수 없어 개발 중단을 선언하게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감히 멋대로 주장하건데, 개발을 시작한 비디오 게임이 단지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는 비율만 따져도 아마도 고작 10% 미만에 불과할 것이다. < Back [북리뷰] 피, 땀, 리셋 - 리셋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며 살아간다는 것 08 GG Vol. 22. 10. 10. 비디오 게임 제작은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되고, 제작되지만 실제 완성되는 것은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게임이 제작 도중 엎어지는 이유는 수 없이 많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근사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봤더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더 이상 개선을 할 수 없어 개발 중단을 선언하게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감히 멋대로 주장하건데, 개발을 시작한 비디오 게임이 단지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는 비율만 따져도 아마도 고작 10% 미만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보게 된 10%의 게임 중 단 1% 만이 이른바 성공한 게임의 반열에 들어간다 - 개인 창작이나 인디 게임을 제외하고도 그렇다는 가정이다. 「피, 땀, 리셋」 (원제: Press Reset: Ruin and Recovery in the Video Game Industry)는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뚫고 성공한 게임을 만들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황망하게 망한 게임 개발 스튜디오와 이후에 남은 개발자들의 운명 을 다룬다. 이 책에서 언급된 게임 제작 스튜디오는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한 38 스튜디오(38 Studios)의 프로젝트 코페르니쿠스(Project Copernicus)부터, 에픽 미키(Epic Mickey)나,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시리즈 처럼 상업, 비평 양쪽의 매우 준수한 성적을 낸 작품을 만든 스튜디오에 관한 사례부터, 다수의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GOTY) 수상을 이뤄내고 1,10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한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를 만들고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스튜디오, 이레셔널 게임즈(Irrational Games)의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장 처음 다뤄지는 비디오 게임 디자인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워렌 스펙터(Warren Spector)의 사례는 비디오 게임 산업의 이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는 속편 제작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성공한 작품을 완성해냈고 모 회사인 디즈니 인터렉티브 스튜디오(Disney Interactive Studios)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성과를 인정 받는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 산업의 미래를 잘못 예단한 여타 비전문적인 경영진에 의해 결국 자신의 스튜디오를 폐쇄당한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던 2013년의 전후는 모바일 게임의 중흥으로 인해 비디오 게임 콘솔(Video Game Console) 플랫폼 산업은 급격히 쇠퇴할 것이라는 여러 경제 분석가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시기였다. 워렌 스펙터의 정션 포인트 스튜디오(Junction Point Studios)는 콘솔 게임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스튜디오였고, 모바일 게임 산업으로 전환을 결정한 경영진은 “가망이 없는 콘솔 게임 시장을 노리고 게임을 만드는 스튜디오”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는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후 콘솔 게임 시장은 모바일 게임 시장과 함께 여전히 큰 폭으로 성장 중이다. 그의 사례는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비디오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대기업이 야심차게 비디오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성과가 나오기 직전에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고, 게임 제작 스튜디오로 성장한 몇몇 국내 스튜디오들은 과거 이와 비슷한 악명 높은 허들 시스템으로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이와 관련한 불편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이른바 “사업상의 결정”으로 인해 회사에서 성실히 근무하던 개발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례는 너무도 많기 때문에 일일히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이후의 에피소드들은 아무리 비디오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좀 체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디렉터 한 명이 퇴사했을 뿐임에도 그의 밑에서 같이 게임을 만들어낸 훌륭한 팀을 단번에 박살내 버려버린 이야기(이레셔널 게임즈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매번 전작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지만, 경영진이 목표로 하는 “전 보다 매우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 못해 결국 버려진 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비서럴 게임즈 -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마치 제조 공장의 조립 라인처럼 개발자들을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 옮기다 개발 역량과 좋은 조직 문화를 모두 소진하고 자연스럽게 소멸된 스튜디오(2K 마린 - 더 뷰로: 기밀 해제된 엑스컴)에 대한 이야기는 그나마 순한 맛에 해당한다. 매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커트 실링(Curt Schilling) 개인 재력과, 주 정부의 투자 약속을 바탕으로 비디오 게임 산업 불모지인 지역에 스튜디오와 대규모 개발 인력을 이전한 38 스튜디오. 그리고 38 스튜디오의 자회사 빅 휴즈 게임즈(Big Huge Games)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도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여기에 희망과 게임 개발의 꿈을 걸었던 개발자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스튜디오의 폐쇄 이후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개발자들의 운명은 매우 끔찍했다. 이주 지원 명목으로 회사가 받은 거액 대출은 개발자 개인이 값아가야 할 몫으로 남아버렸는데, 해당 지역에서는 다시 취업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 회사가 없다. 겨우겨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지역에 일자리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정리해고의 공포를 안고 일을 해야만 한다. 실제로 빅 휴즈 게임즈의 개발자들은 이후 에픽 게임즈(Epic Games)의 새로운 스튜디오에 합류했지만, 에픽은 고작 8개월만에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이 스튜디오를 폐쇄해 버린다. 한번도 극복하기 힘든 일을 일년 사이에 두번이나 겪게 된 개발자들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차마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 책은 이해할 수 없는 스튜디오 폐쇄와, 이로 인해 재기 불능의 피해를 입고 업계를 영원히 떠나버린 개발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듯, 여기에도 살아남는데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인디 게임 개발로 진로를 바꿔 인생의 벼랑 끝에서 겨우 빠져나온 이야기. 북미에 비해 노동권 및 복지에 대한 보장이 잘 되어 있는 유럽으로 이주해 안정적인 개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개발자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이 책의 서문에는 션 맥러플린(Sean McLaughlin)이라는 개발자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리고 저는 이제 책상에 이것저것 늘어놓지 않아요.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의 짐만 가져다 두죠.” 이 이야기에 어떠한 동질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미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른 게임 개발자이거나 산전수전 다 겪고 뛰쳐나온 옛 종사자일 것이다 - 나 또한 여러 업체들을 옮겨 다니면서 개인 짐을 많이 가져다 두지 않는다. 가장 최근의 퇴사에서는 오직 백팩 하나 분량의 짐만 가볍게 챙겼을 뿐이다. 크런치로 불리우는 강도 높은 근무 환경. 프로젝트에 따라 얼마든지 직장을 잃어버리기 수월한, 다른 산업과 비교되는 노동 유연성은 국내의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피, 땀, 리셋」에서 나오는 예시처럼 하루 아침에 스튜디오가 폐쇄되고 직장을 잃어버리는 사례에 개발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에 대한 응답을 받는 사례가 점차 나오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성과는 아니다. 다른 산업계에서 이어진 뿌리깊은 노동 운동은 2000년대 초 IT 노조의 출범과 이후 2013년 게임개발자연대 등의 단체에서 비디오 게임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게임 업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게임 개발자들 스스로도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8년부터 넥슨, 스마일게이트, 웹젠 등의 대형 게임 회사들에 개별 노조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느리지만, 점차 개선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오히려 북미의 비디오 게임 산업 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는 모양새이다. 미국의 경우 2022년이 되어서야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on Blizzard)의 자회사인 레이븐 소프트웨어(Raven Software)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 이는 미국 내 상장 비디오 게임 업체 중 최초의 일이다. 혹자는 이러한 일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게임이 망했으면, 당연히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쨌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피, 땀, 리셋」에서 언급된 사례들은 거의 대부분 “성공했으나 망한” 경우이고, 실패 역시 개발자가 아닌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에 기인한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개발진에게 잘못된 판단에 기반한 결정을 강요한 경영진들은 개인적인 큰 손실을 입거나, 여타 개발자처럼 빚에 허덕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결과를 두고 “게임이 망했으니 책임을 지라”라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혹은 얼마나 불평등한 이야기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피, 땀, 리셋」 같은 책이 세상에 소개되면서, 비디오 게임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알리고, 이를 통해 끔찍한 게임 개발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가 느리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다. 비디오 게임 제작은 충분히 어렵다. 그리고 그 성공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게임을 만드는 것 이외의 문제로 힘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정훈
‘국민학생’ 시절부터 PC게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으나, 지금처럼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생활로 받아들인 것은 2001년부터의 일이었다. 특히 미소녀 캐릭터에 정성을 많이 두는 게임을 선호해 왔으며, 짧게나마 게임회사 및 라이트노벨 출판사에도 재직하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업계를 떠난 이후에도 메이지대학 대학원 국제일본학연구과(2016~2018, 석사)와 건국대학교 대학원 일본문화·언어학과(2019~2021, 박사), 히로시마대학 인간사회과학연구과(2022~2023, 객원연구원) 등의 학업과정에서 서브컬처 문화를 계속 다루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와 도시의 전략-시즈오카현 누마즈 시의 관광객 증감 및 상업시설의 형상 변화를 중심으로」(2020, KCI 등재), 「The Violation of the Freedom of Play by the Game Rating and Administration Committee of South Korea」(2023, A&HCI 등재) 등 총 8건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정훈 이정훈 ‘국민학생’ 시절부터 PC게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으나, 지금처럼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생활로 받아들인 것은 2001년부터의 일이었다. 특히 미소녀 캐릭터에 정성을 많이 두는 게임을 선호해 왔으며, 짧게나마 게임회사 및 라이트노벨 출판사에도 재직하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업계를 떠난 이후에도 메이지대학 대학원 국제일본학연구과(2016~2018, 석사)와 건국대학교 대학원 일본문화·언어학과(2019~2021, 박사), 히로시마대학 인간사회과학연구과(2022~2023, 객원연구원) 등의 학업과정에서 서브컬처 문화를 계속 다루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와 도시의 전략-시즈오카현 누마즈 시의 관광객 증감 및 상업시설의 형상 변화를 중심으로」(2020, KCI 등재), 「The Violation of the Freedom of Play by the Game Rating and Administration Committee of South Korea」(2023, A&HCI 등재) 등 총 8건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Read More 버튼 읽기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ShinHye Kang
I am a blind person who is very interested in games. Currently, I am working as a Korean language teacher in a middle school and participating in the game story work of Banjiha Games. ShinHye Kang ShinHye Kang I am a blind person who is very interested in games. Currently, I am working as a Korean language teacher in a middle school and participating in the game story work of Banjiha Games. Read More 버튼 읽기 Visually Impaired and Gaming: Overcoming the wall of prejudice I sometimes have had chances to discuss about "game accessibility" ever since I started working for Banjiha Games (Korean word for "Semi-basement") as a writer, while representing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like me. Sure, I do like games. But I'm not good at it. And frankly speaking, my current work also has to do little with the game. So I must admit that I try to talk cautiously whenever such a topic arises








![[북리뷰] 피, 땀, 리셋 - 리셋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며 살아간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d45ec21ea13c4f879dd2d320cfeb0e8b~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d45ec21ea13c4f879dd2d320cfeb0e8b~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