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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47개 검색됨

  • 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 Back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28 GG Vol. 26. 2. 10.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라는 변수는 항상 본래의 의도, 예측보다 거대하고 강력해서, 게임의 흐름과 문화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가버린다. 그 정도에 따라, 어떤 게임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아예 틀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어버리는 무서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이러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의 플레이 유도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바로 ‘아크 레이더스’ 다. ‘아크 레이더스’ 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 시작된 익스트랙션 슈터의 유행을 따르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히 독자적이고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향유했다. ‘아크 레이더스’ 가 수많은 SNS 피드와 릴스, 숏츠를 장악한 원동력은 온갖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긴박한 프리 포 올(Free for all)의 전장에서 맺어지는 갑작스러운 유대와 배신에 있었다.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모두가 적이 되는 전장에서 낭만의 협력을 추구하게 된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들의 의도와 그에 맞춘 설계가 뒷받침된 덕분이긴 하지만, 단순히 한두가지 변화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각 게임의 문화는 플레이어와 제작자의 WWE 게임 플레이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플레이어의 반응을 유도하는 능력이다. 이에 대해서 여러 명작을 만들어낸 개발자들이 수도 없이 강연을 진행하거나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다. ‘포탈 2’ 코멘터리 모드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플레이어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 게임을 수정해온 경험을 들을 수 있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관련 강연에서도 개발자들은 오픈월드 게임이지만 철저히 플레이어들의 흐름, 방향을 유도하고 정하는 식으로 오픈월드를 설계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잘 짜여진 게임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의 탁월한 의도와 유도방식에 플레이어가 나름의 방식으로 호응하여, 큰 틀에서는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세부적으로 제각각 플레이어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자적 플레이가 만들어질 때 나온다. 너무 기본적인 플레이 노선을 벗어나게 되거나, 너무 틀에 박힌 플레이만 가능하다면 게임 플레이는 금새 지루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이러한 플레이 유도를 철저히 잘 계산하여 디자인할 수 없다면, 좀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한계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게 기본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라이브 서비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식은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PVP 게임은 아니지만, ‘헬다이버스 2’ 가 좋은 예이다. ‘헬다이버스 2’ 는 전체 지도 하에서 개발자들이 그때그때 플레이어들의 참여도와 성공률을 파악하며 다음 진행 루트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단결하면서 게임 플레이 흐름을 정하고, 또다시 그에 따라 실제로 게임 내 플레이와 환경이 변화하는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기존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었다. 기존의 라이스 서비스 게임들은 이미 사전에 설계된 플레이 과정을 제시하고, 이를 플레이어들이 개별 진척도로 이루어내는 일종의 비동기식에 가까운 방법을 추구했다. 하지만 게임들이 점차 커뮤니티 밀착이 강해지고, ‘헬다이버스 2’ 라는 특유의 게임 테이스트와 결합하여 전체 플레이어가 하나의 캠페인에 참가하는 온라인 공동 캠페인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서 전체 플레이어가 훨씬 ‘멀티플레이어 게임’ 에 걸맞는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헬다이버스 2’ 에서 함께 플레이하는 건, 비단 나와 함께 전장에 투입된 3명의 플레이어들 뿐만 아니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해나가는 모든 이들이었던 셈이다. 이런 예시처럼, 멀티플레이라는 개념 역시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익스트랙션 슈터의 문화를 바꾼 ‘아크 레이더스’ 의 방법론은 사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65XXU3sl0 ‘아크 레이더스’ 는 분명 PVP 라는 대전제가 붙어있는 게임이지만, PVP 게임이라면 왜 이런 기능이 있는지 의문이 들만한 디테일이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이모트휠 최상단에 위치한 “쏘지마!(Don’t Shoot!)” 으로, 싸우라고 만든 게임에서 쏘지 말라는 이모트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반대에는 “같이 팀할래?” 가 있고, 다른 쪽에는 “고마워!”, “맞아.”, “아니오.’ 가 위치해 있다. 즉, 이 게임의 이모트휠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목적성 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 거리에 따라 들리도록 설정되어 있는 음성채팅이 적극 권장되는 게임이기에, 보통 가장 빠르고 편리한 대화수단인 총탄만큼이나 사람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미 이보다 이모트가 훨씬 부실했던 게임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도 총소리만으로도 한국인끼리 우호적인 싸인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흔히 말하는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 패턴) 이 이모트는 굉장한 발전이다. 거기다 부활 킷을 들면 적대 플레이어라도 살려낼 수 있고, 연주 가능한 악기가 존재하며, 여러 부착물, 지뢰 등의 작동 방식도 피아 식별 규칙이 일반적인 게임과 조금 다른 부분들도 많다. 즉,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디테일을 통해 예상 못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기본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이러한 디테일들은 결국 플레이어들이 협동을 하고자 할 때 얼마든지 그 시도와 신뢰 형성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여지가, 마침내 이루어진 협력을 각별하게 한다. 기간제 이벤트로 벌어지는 벙커 이벤트는 한두명이 아닌 세션 전체의 인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그만큼 성공하는 일보다 실패하는 일이 많고, 때로는 뒤따르는 배신으로 깊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쉽지 않은 과정이 있기에 마침내 이루어낸 협력이 더욱 각별하게 여겨지고는 한다. 반대로, 배신의 과실도 그만큼 더욱 달콤하게 다가온다. 낯선 이를 만나 무방비 상태에서 함께 파밍을 했다면 대강 그가 어떤 아이템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있을 터. 또 때로는 가학적인 행위가 재미를 주기도 하는 PVP 게임인 만큼 상대방의 절망을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배신이란 종종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즉, 이렇게 협력이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협력만큼이나 배신과 폭력도 더 달콤하게 만드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게임 시스템, 환경을 문화현상으로 비화하게 한, 게임에서 벌어진 일을 게임 밖 커뮤니티로 꺼내 공유할 수 있는 수단 자체의 발전도 특기해볼 만 하다. 엔비디아의 섀도우 플레이, OBS 같은 툴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은 이미 지나간 플레이도 저장하여 편집, 가공하기 쉽도록 되어 있고, 유튜브 등의 플랫폼 역시 이러한 쉬운 공유를 돕는다. 그렇게 소수의 플레이어가 직접 겪은 상황들이 넓게 퍼져나가 어떤 교훈이 되고, 예시가 되어주면서 새롭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 또한 “이 게임은 무작정 서로 총질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라는 사전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건,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이러한 게임 제작자의 안배가 가득 들어있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이다. 아무리 랜덤하게 조우한 상대와 즉석에서 협력을 할 수 있도록 도구와 방법을 많이 준비해놓았더라도, 협력의 확실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철저히 목적 중심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불필요한 사치가 될 뿐이다. 결국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공통된 목적의식, 또는 이러한 일시적 동맹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공통의 적, 아크가 등장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라는 명제 아래, 아크라는 공통의 무자비한 위협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계산을 굴리게 된다. 아크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정하게 적대적이고 특유의 행동 패턴이 명확하기에 분석 가능한 적이다. 불확실성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늘리지만, 아크의 행동 패턴은 명확하기에 플레이어들의 계산은 명확해진다. 일시적인 동맹으로 아크를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 여기에 단순히 수집 퀘스트를 진행중이거나, 탈출 직전의 공생 아니면 공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의 여지는 매우 뾰족해진다. 플레이어의 행동 방향이 명확해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게임의 매 순간마다 주어지는 목적성이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필요에 따라 일시적 동맹을 맺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즉, 단순히 커뮤니티 밈이자 재미를 위한 돈슛단을 넘어서서, 실제로 이러한 플레이가 상황과 플레이어에 따라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이 되는 셈이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 회색분자를 길들이기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따라오는 시스템이 바로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다. 그 자체로서 오직 긍정적인 효과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논쟁이 있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이 게임에서 가져다주는 이점은 명확하다. 서로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묶어 그들이 겪는 허탈함이나 스트레스를 감내 가능한 선으로 낮추는 것이다. * 개발진 인터뷰를 통해, 속칭 카르마 매치메이킹, 또는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실존함을 알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GamesRadar+) 하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한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어쩌면 이거야말로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으로, 협력과 폭력 사이의 회색지대를 주 무대로 삼는 이들을 향한 것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극히 매니악하고 저변이 넓지 못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억울한 죽음’ 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훨씬 강력한 장비로 무장한 플레이어만을 만나거나, 또는 ‘아크 레이더스’ 처럼 협력이 가능한 게임이라면 자신은 명확히 적대한 적이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살해당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당한다면 그 플레이어의 피로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 바로 이른바 양민학살, 불공정한 상황에서의 일방적 살육만을 즐기는 부류의 플레이어들이 그러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다. 물론 이들이야말로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게임 타입의 정체성과도 같은 플레이어들이지만, 이런 플레이어들이 더 많아지고 마주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플레이어들은 고립되고 빠르게 수가 감소하기 마련이다. 즉,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게임 서비스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류이기도 하다. ‘아크 레이더스’는 바로 이러한 플레이어들의 비중을 줄이는데 게임의 여러 요소를 할애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살육을 하려면 자신 또한 살육당할 위험에 놓여야만 한다는게 이 게임의 룰이라는걸 주지시킨다. 이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게임이론의 ‘팃 포 탯(Tit for Tat)’ 과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물론 ‘팃 포 탯’ 의 중요 전제인 협력/적대 대상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그동안 협력/적대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전제가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배제되지만,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놓는 이러한 매치메이킹에서는 매칭된 다수의 플레이어가 비슷한 성향의 그룹으로서 특정될 수 있기에 명확한 개인 대 개인의 데이터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행동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즉, 게임이론 하에서의 팃 포 탯이 각각 대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사한 상대와 매칭된다는 전제에 대한 신뢰로 상대 유저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여 행동을 결정한다는 근거의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기대치를 통해 팃 포 탯의 선제 협력, 즉각적인 응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있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에 대해 가해지는 주된 비판은 게임 플레이의 촉매제와도 같은 이러한 플레이어들을 게임에서 배제시킨다는 점이다.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또한 익스트랙션 슈터의 플레이이며 아예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폭력이나 무조건적인 협력만 남는다면 그 폭력도 협력도 이만큼 각별해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는 꽤나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게임 상에 오직 이런 플레이어들만 남게 된다면 흔히 말하는 뉴비 제초의 연쇄로 인해 더는 플레이어들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걸 의미한다. 그만큼 이들은 아예 사라져서는 안되지만 적절한 비중으로 억제되어야 하고, 때문에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매우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개발진은 밝히고 있다. 즉, 아무리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이 모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플레이를 펼칠 여지가 남아있음이 명확해야, 이를 플레이어들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더 공정해져야 하는 부분은, 협력 대신 폭력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이 무조건적인 악, 또는 처벌받아야할 대상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러한 폭력의 긴장감이 없다면 이 게임은 매우 시시한 협력 게임이 되어버릴 뿐이다. 때문에 ‘가능성’ 측면에서, 폭력과 협력 중 어느 것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긴장감은 이 게임 내내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아크 레이더스’ 의 개발자들도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전투 성향의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지는 패널티가 아님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이를 통해 일방적인 양민학살만 즐기는 플레이어들을 회색지대에서 빼내어, 보다 예측 가능한 플레이어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스템은 절대적인 판단자가 아니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요한 포인트다. 오래된 기록은 휘발되고 플레이어의 최근 행동에 기반하고 시스템의 판단 방식이 플레이어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마치 모범수인척 착하게 하루 정도를 보내다가 낮은 공격성의 플레이어들 속에 섞여 들어가 살육을 벌이는 것 까지는 막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또한 게임의 텐션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 게임이 정말 간단하게 서로 공격만 가능하게 하거나, 서로 협력만 가능하게 하는 이분법적인 게임 디자인을 따르지 않고 이러한 복잡한 유도체계를 활용한 이유도 이러한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배후의 연출자가 탁월할 때 무대는 다채로워진다 이렇게 수많은 안배에서 볼 수 있듯,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나가는 주도권은 플레이어에게 있지만 그 책임은 게임 제작자에게 있다.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말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말 같지만 실제로 수많은 게임들의 플레이 구조가 완성되는 과정은 이러했다. 그럼 핵심은 어떤 영리한 방법으로 주도권을 쥔 이들을 알게모르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몰아갈 것인가? 이며, ‘아크 레이더스’ 개발진이 내놓은 답안이 이러할 뿐이다. 익스트랙션 슈터의 주된 재미는 불확정성에서 오곤 한다. 어떤 상황을 겪을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두가 변수이고, 그러한 변수는 통제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교묘하게 플레이어마다 다른 기대치를 충족시키도록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배후의 연출자가 되기를 택했다. 그게 바로 이 게임이 그동안의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그리고 PVP 슈터와 확연하게 다른 면이다. Tags: 익스트랙션슈터, 코옵, 슈터, 1인칭, FF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15 GG Vol. 23. 12. 10. ※ 역자 설명 : 이 글에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 안 역주로 부기했다. 미주는 필자가 참고한 텍스트 출처이다.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양항아리>(阴阳锅; 폴레스타게임즈, 2022)와 <누나의 북>(阿姐鼓; 폴레스타게임즈, 2023)은 지역 특색이 담긴 민간설화를 선정해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공포 공간을 설정한다. 도시의 기이한 현상과 춘절 [역주: 중국의 설 연휴] 의 귀신을 연결한 <홍콩실록>(港詭實錄; GHOSTPIE, 2020)과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가족 멸종 사건을 조사하는 <파이어워크>(烟火; Shiying Studio, 2020)는 올해 처음 출시되는 게임이다. 세기말의 ‘초자연적 열풍’을 다룬 <삼복>(三伏; Shiying Studio, 2020) 역시 이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식 공포’는 새로운 하위 장르 또는 미학이 된 듯 하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높은 평가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이다”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하트비트플러스가 개발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2021년 첫 출시 이후 <종이혼례복2: 장령촌>(纸嫁衣2奘铃村), <종이혼례복3: 원앙의 빚>(纸嫁衣3鸳鸯债),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纸嫁衣4红丝缠), <지옥의 꿈: 사후세계 극장>(无间梦境:来生戏) 등의 속편을 6개월에 한 게임 간격으로 출시하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게임들은 ‘혼제(婚祭)’를 테마로 하는데, 각각 한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종이 신부’가 되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최종적으로 공포를 이겨내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다섯 게임들은 서로 연결되어 세기에 걸친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작인 <13호 병동>(13号病院)과 함께 독특한 ‘종이혼례복 유니버스’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성공적인 미니 추리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플한 UI와 순수한 터치 플레이가 경이로운 걸작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종이혼례복> 케이스를 통해 ‘중국식 공포’의 핵심 요소인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 다섯 편의 시리즈, '종이 혼례본 유니버스'를 구성하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공포(Unheimlichkeit) 개념은 독일어 heimlich에서 유래했다. ‘heimlich’는 친숙하고 친밀하다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 접두사를 붙인 ‘unheimlich’는 원래 뜻을 분명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heimlich’의 특수한 경우인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체가 순수하게 두려움(fear)이 아닌 오싹(creepiness)한 느낌을 갖게 한다. [1] 따라서 ‘공포’는 통상적인 경험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이상, 기존 질서 내부의 어긋남 [원문의 핵심 개념 错置을 모두 ‘어긋남’으로 번역함] 이다. 예를 들어 공포장르 속에서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좀비, 조타수도 없이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유령선 등이 그것이다.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 문틈으로 흘러넘치는 핏물, 복도 끝의 쌍둥이 역시 경험이나 질서를 뛰어넘는 어긋남으로 평범해 보이는 산꼭대기 호텔을 공포영화의 명장면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혼례복>은 ‘공포’라는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장례용 종이인형을 소재로 삼는다. 이들은 외모는 비슷하지만 팔다리가 뻣뻣하고 표정이 이상하며, 종종 과장된 얼굴 화장을 한다. 무생물이었던 종이 인형은 어두운 게임 장면에서 번쩍이며 게이머들과 친근한 ‘점프 스케어(jump scare)를 한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중국식의 특색을 살린 ‘유물(類物)’인 장례용 종이 인형을 세팅했다. 예를 들어 <종이혼례복 1>의 주인공 닝쯔푸(宁子服)가 저승 혼례식(冥婚) 현장에서 발견한 종이 요리는 정상 음식의 외관을 정교하게 모방하면서도 차갑고 무미건조해 화장 [원문에서 烧祭는 종이돈 태우기 같은 풍습보다는 화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오싹한 연상을 유발한다. * ‘유물’의 종이 묶음 제물 그러나 '공포'의 핵심은 잘못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상식과 이상, 경험과 어긋남의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중국식 공포’ 게임에는 현대적 개체의 전근대적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 미셸 푸코가 정의한 개념으로, ‘다른’을 뜻하는 ‘heteros’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의 합성어.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 ] 에서의 어긋남과 과학 패러다임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긋남이 포함되어 있다. <종이혼례복> 시리즈에서 또 다른 높은 어긋남은 앞의 두 가지의 불안정 구조를 깨뜨린다. 그것은 로맨스 신화와 이성의 어긋남이다. 결혼: 형성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无物之阵), 망령은 돌아온다 婚:无物之阵,幽灵复返 [루쉰은 자신의 '무물지진(无物之阵)' 개념이 권위주의 통치의 산물이자 민중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현대도시에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산골마을’로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곳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혼제’를 신봉하는 장령촌이나 봉건적 가부장이 점거한 말수촌(末水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거나 귀신의 기운이 넘치는 익창진(益昌鎭)이 될 수도 있다. 이곳들은 현대사회와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며 통신신호가 사라지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고집을 부리며 오래된 신앙과 의식을 이어가는 헤테로토피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들의 시각을 통해 완전히 낯설기만한 스릴러 놀이터가 아니라 익숙한 듯하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무물지진(无物之阵)’—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죽음의 상징물들(관, 향초, 종이돈 등)]—이 정돈되지 않은 현대 이전의 역사,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집단적 무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조작해 현대적 공간을 하루아침에 이화시켜 ‘귀신을 불렀다’는 것이다.동네 입구 조화, 이웃집 할아버지의 혼백이 깃든 아파트, 길가의 장사용품점……현대적 공간을 떠도는 전근대적 자투리 조각은 ‘익숙한 물건의 낯설게 하기’라는 원칙에 더 부합하고, 오싹한 느낌을 더 잘 만들어낸다. 물론 이 게임은 때때로 역으로 작동해 현대성의 공간을 하룻밤 사이에 낯설게 하여(异化) "유령을 초대”한다. 주거단지(小区) 입구의 화단, 이웃의 영혼이 깃든 주거용 건물, 거리의 장례용품 가게 ......등등은 현대성의 공간에 떠다니는 전근대의 잔재이며, 이는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의 원칙에 더 부합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 모든 이야기의 근원지는 장령촌 <종이혼례복 2: 장령촌>에서는 이러한 무물지진의 구축 과정을 의도적으로 추적한다. 어려서부터 ‘종이 신부’로 발탁된 여주인공 타오멍옌(陶梦嫣)은 ‘혼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장령촌으로 돌아와 지상의 궁궐에서 마을의 역사를 파헤친다. 이와 동시에 <종이혼례복>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당나라 현장 스님이 경을 취하여 장령촌을 지나다가 자신이 지은 구장진경(九藏真经) [아홉 편의 숨겨진 불교 경전] 가운데 육장(六藏)이 이교(异教) [주류적인 종교와는 다른 종교] 적인 컬트임을 발견하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소각해달라고 당부한다. 마을 사람들은 제멋대로 경전을 남기면서 ‘육장(六藏)’을 ‘육장(六葬)’ [여섯 번의 장례] 으로 왜곡한다. 이에 따라 마을 이장을 종교적인 리더로 삼아 정기적으로 의식을 주관하고 적령기 여성이 사신(适神)에 제사를 지내는 ‘혼제’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희생된 여성에겐 종이로 묶인 제사물품과 같이 ‘종이 신부’란 별명이 붙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 타이틀 ‘종이혼례복’의 유래다. 흥미롭게도 게임은 ‘육장보살(六葬菩萨)’ [게임 속 캐릭터] 신앙을 현장 취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억지로 갖다붙인다. 심지어 당나라 적인걸(狄仁杰)이 악신에 제사를 지낸 걸 말끔히 제거했던 기록까지 그럴듯하게 가미하고 있다. 현장법사 캐릭터는 역사적 인물(실존하는 불교의 고승)과 전설적 캐릭터(신마소설의 주인공) [신마소설은 신, 귀신, 요괴 등을 주제로 한 한자문화권 고전 소설을 가리킨다] 의 이중적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출처를 추적하는 데 있어 진짜같기도 하고 가짜같기도 한 효과를 낸다. 당나라 때부터 천여 년간 이어져 온 오랜 관습은, 애써 시간의 깊이를 늘리고 거짓의 숭고함을 만들어, 기나긴 전현대 역사 속에서 공간 내부의 질서—원래 그랬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는—를 구축했다. 번잡한 의식(무엇을 해야 하는지)과 엄혹한 금기(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가 질서의 하나된 양면을 이루고, 집단적 무의식의 ‘무물지진’을 점차 흔들기 어렵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철저한 상례로 굳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 사이에 잘못 들어가게 된 개인과 관행 하의 집단은 어긋남과 충돌을 만든다. 닝쯔푸나 양샤오핑 등 질서에 도전하는 외래자, 타오멍옌, 쭈샤오홍(祝小红) 등 반향식의 ‘종이 신부’는 역대 게임 주인공들이 관례에 편입되지 못하고 타자로 전락해 배척당하거나 교살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식 공포’ 게임의 이질적 공간은 미래로 가지 않고 필연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에얼리언의 침입이나 터미네이터 사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육장보살 역시 크툴루(Cthulhu) 같은 냉혹한 우주의 신이 아니라, 아득한 별빛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굽어본다. ‘중국식 공포’의 귀신들은 제사상 위의 감실 상자[龛笼; 동양 사원에서 신령이나 부처 등의 상을 올려놓은 작은 상자] 안에 반듯하게 앉아, 감도는 향불을 사이에 두고 발원(發願)과 고충(诉苦)을 듣고, 평범한 사람들과 약간의 지전(纸钱)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조금의 빚을 시시콜콜하게 따진다. 그렇게 무물지진 안 모든 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우화는 구체적인 서사 차원으로 정착되어 ‘혼제’ 의식의 세 요소인 귀신, 제물을 바치는 사람, 제물의 끌어당김과 격추 등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 격식에 따르면 귀신은 역사를 기원하고 집단적으로 추앙받는 이질적인 힘이며, 제사를 올리는 사람에게 공정한 거래를 약속하는 원칙이며, 제사를 올리는 자는 경전과 악당의 기능을 담당하여 제물을 박해하는 대가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제사물품인 ‘종이 신부’와 그 애인은 이질적 공간을 벗어나 현대 문명으로 돌아와 자기 구원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돌아온 귀신들은 오히려 <종이혼례복>의 이야기가 이러한 격식을 벗어나게 한다.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육장보살’은 “만물이 묻히면 모두 그의 관할이 된다”는 ‘거대한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물지진을 타파하기로 결심한 주인공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목이 비틀어 끊어짐으로서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시리즈 전체의 진정한 악역 캐릭터 네모리는 제사물품의 자리를 차지했던 ‘유령’이다. 마을 촌장으로부터 마을에 유해하다는 단언받고,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그녀는 현대 대학교육을 통해 작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육장보살 신앙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새로운 귀신으로 만들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제사물품을 찾으며 의식을 완성해나간다. * 종이혼례복 시리즈의 진정한 악역 녜모리 이는 일찍이 ‘육장보살’ 역시 정전을 장악한 현장법사에 의해 추방되고 관가에 의해 토벌된 ‘유령’이었지만, 암암리에 천 년을 떠도는 악신이 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녀와 같이, 혹은 전현대의 파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물지진’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영원히 계속해서 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귀신: 말로도 안 되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鬼:不可言说,不可摈弃 우리가 ‘중국식 공포’ 게임의 첫번째 어긋남으로 현대적 개체와 전근대적 이질적 공간의 어긋남을 지목한다면, 중국에서 공포 장르 서사는 전근대적인 문예작품 속에서 대응물을 찾기 힘들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요재지이>(聊斋志异)[청나라 시대 포송령이 지은 8권 491편의 지괴소설집으로, 신선과 요괴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음] 등의 지괴서사(志怪故事)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기괴한 이야기 소설집] 속 꽃요괴는 기본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서유기> 같은 신마소설 속 삼계 체계 [불교에서 삼계란 윤회의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으로 구분한 것을 가리킨다] 는 권력사회의 복사판으로, 사람 마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밖에 신선과 요괴 이야기 등 설화집이나 필담집 역시 보통 현대 독자들에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다시 말해 ‘중국식 공포’는 직접적으로 인용할 수 있는 ‘중국식’ 텍스트도 없고, 전현대사의 완벽한 이식도 아니다. ‘공포’는 현대화의 산물이며, 주류이데올로기—어쩌면 ‘과학’—에서 주변화되어 남은 잉여이다.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현대과학의 진로는 본질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혁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른바 ‘패러다임(paradigm)’은 과학 연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따르는 어떤 패턴으로, 이 분야의 합리적인 문제(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와 방법(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을 규정하여 법칙, 이론, 기구 등을 포함해 정립한 일관된 과학 전통을 형성한다. 과학이 물질 세계에 대한 수수께끼 풀기 게임이라면, 패러다임은 게임의 규칙과 무엇이 ‘미스터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창안한다. 이에 대해 쿤은 ‘상자’라는 비유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만들어놓은 경직된 상자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것 같습니다. 기존 과학의 목적은 새로운 유형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상자에 채워지지 않은 현상은 종종 완전히 무시되고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 하지만 이러한 신앙 패러다임으로 인한 제약은 과학 발전에 꼭 필수적입니다.” [2] 현대 과학은 수백 년의 발전을 거쳐 ‘신화’로 분류되는 다른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가 됐다. 새로운 신화의 서사 공간이 매우 넓고, 말과 전망이 유달리 아름다워 현대적인 개인이 상자의 사면 장벽을 쉽게 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밖의 사물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패러다임에 포함될 수 없는 현상은 언어구조에서 '도깨비', '풍습', '전통' 또는 그밖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과 가리키는 것 사이의 어긋남에 무관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정리 또는 판별할 수 없으므로 배제할 수 없다.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에서 장천루이의 민속학 전공이라는 배경은 고등교육과 과학은 상자 안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공포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자기 인식이다. * 민속학 연구생 장천루이(张辰瑞)의 자조 하지만 <종이혼례복> 제작진은 그런 자조에 만족하지 않고 상자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들었다. 과학적 패러다임과 전근대의 뒤얽힘은 엉뚱한 효과를 낳았다. 화재경보기로 인해 연소된 지전 더미, 복사기로 복사된 부적…… 각종 ‘물리적 귀신 퇴치’ 수단은 플레이어들로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뒤얽힘’은 음과 양을 통하게 하는 두 개의 매개인 불과 핸드폰이다. 둘은 겉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전자는 제물을 태우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에서 음으로 옮겨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투사이며, 제사물품은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하지만 다른 가치 영역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은 흔한 지전이나 종이인형은 물론, 귀신과 통화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든 핸드폰까지 불태운다. 현대 과학기술 장비가 버젓이 제사물품의 대열에 오르자 플레이어들은 “원래 현지에 사업자가 있나? 그럼 누구에게 전화요금을 내야 하지?”라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육안으로 귀신에 쉽게 속고 무심한 기계만이 위장을 간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는 주인공이 귀신을 정확하게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눈으로 상자 밖의 공간을 응시하는 것 역시 일종의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는 오싹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두 매개 모두 통일된 전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현대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을 해명하고 정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 음양을 소통하는 두 가지 매개체: 불과 휴대전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도, <종이혼례복>의 결말은 패러다임 속으로 돌아온다. 헤테로토피아의 모든 요괴들은 진기한 꽃(奇花) 명타란(冥陀兰)이 일으키는 환각이다. ‘작은 산골마을’은 필연적으로 현대 문명에 의해 재발견되고 청산되며 수용된다. 무고한 사람은 구출되고, 악한 자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주인공들은 탈출에 성공하거나, 일시적으로 (귀신을) 격퇴하지만 실제 ‘공포’—‘중국식 공포’는 결코 핏대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를 이겨본 적은 없다. 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핏대를 세우면 공격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이때 두려움은 화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중국식 공포’는 피와 살이 없는 몸이라 애석하게도 <무간몽경: 내생희>의 마지막 예고편에서 역대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무물지진’이 아닌 악역 녜모리를 물리치려 한다. 상자 안에서 주인공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지만, 이중으로 엇갈린 위치는 오직 사랑의 신화에 의해서만 메워지게 된다. 사랑: 로맨스 신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情:浪漫神话,至死不渝 “사랑이 죽었다”는 요즘, <종이혼례복>의 역대 주인공들은 희귀한 사랑 신화의 독실한 신도들로,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로맨티스트 싸움꾼’이라며 농담삼아 부른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 귀신문을 뚫고 아내를 구한 닝쯔푸, “정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량샤오핑(梁少平), ‘원앙 빚(鸳鸯债)’을 대신 갚고 악당과 함께 죽은 왕자오통(王娇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천루이와 추이완잉(崔婉莺), 그리고 전생과 현생, 재연과 인연을 이어온 쉰위앙펑(荀元丰)과 타오멍옌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각 커플의 성이나 이름은 모두 고전문학 속 고전적인 애정 텍스트인 <요재지이의 섭소천>(聊斋志异之聂小倩), 양축전설(梁祝故事) [중국 동진시대부터 1,700여 년 동안 민담으로 전해져 온 4대 애정소설 중 하나] , <교홍기>(娇红记) [명나라 맹잔순(孟称舜)이 쓴 희곡] , <서상기>(崔莺莺待月西厢记) [원나라 왕실보(王实甫)가 1295~1307년 무렵에 쓴 허구 잡문] , <요재지이: 소취>(聊斋志异之小翠) [청대 소설가 포송령이 여우 귀신의 이미지를 빌어 쓴 소설] 등에 대응한다. 혼의 이탈과 나비가 되는 것, 치료 등 줄거리 역시 위 고전작품들에 오마주를 뉘앙스가 뚜렷하다. 이 텍스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란 하나하나의 개인이 만들어낸 낭만적 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산 자는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는 살 수도 있다”(<모란정 牡丹亭>에서 인용)는 말처럼, 사랑이 깊어지면 인간과 귀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가문의 편견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현대 주체의 사유에 가까운 방식으로 봉건적인 예법과 도덕에 선전포고를 한다. 설령 선전포고가 항상 무기력하더라도, 설령 최종 결말은 두 집안의 사회 지위·경제 형편이 걸맞아[门当户对] 함께 살게 되거나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화를 입어[玉石俱焚] 함께 죽는 것으로 끝날지라도, 설령 과도하게 낭만적이어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배경에서 그들은 여전히 경전 말씀에서 벗어나 도리를 위반하는 해로운 서적으로 폄하받으며, 올바른 사람이라면 읽어선 안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 《무간몽경: 내생희》(无间梦境:来生戏)의 주인공 커플 애정 신화의 합법화는 지난 2세기에 걸친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애정 신화는 사실 하나의 배다리처럼 유럽 문화를 현대와 개인으로 건너가 개인주의 담론의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애정 신화는 낭만주의의 테마 중 하나로서 시종일관 광기나 비이성/반이성적 함의를 항상 담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파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일대일로 이뤄지는 현대의 배타적 사랑은 ‘개체’와 ‘여성’의 탄생을 전제로 성과 사랑, 육체와 정신의 통합과 순결을 원칙으로 한다. 즉, 약수가 삼천리를 뻗어 흘러도[弱水三千; 아무리 많은 상대가 있어도], 그/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녜모리가 쌍둥이 동생 녜모치(聂莫琪)를 훔쳐서 기둥을 바꾼 후, 닝쯔푸는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됐기에 수많은 난관을 거쳐 녜모치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야 했다. 량샤오핑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장령촌에서 자란 쭈샤오홍을 일깨웠다.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제사물품대 위에 놓인 ‘종이 신부’가 되는 것보다는 족쇄를 풀고 나비가 되어 추락하는 것이 낫다. 낭만 신화가 신화인 이유는 사랑이 이성적 계산의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이 계급, 이익, 나아가 생사를 초월하도록 재촉한다. 높은 사람은 ‘고귀한 배신’을 결심하고, 낮은 사람은 무릎을 치켜들어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를 단호히 던져버리고,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함성을 지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랑은 ‘공포’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상자 바깥에 있다. 사랑은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최대 동인이다. 게임은 첫 작품에서 ‘순애보에 빠진 싸움꾼’이 약혼녀를 구한다는 단일한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구한다는 두 가지 시점으로 바뀌어 고정된다. 그리고 오마주를 표하는 고전 텍스트들처럼 두 개체의 기적을 짙게 그려낸다. 과학과 자본이 만연하고 개인의 감정이 함께 시들어가는 시대에 현대 이성에 대한 최고의 어긋남으로 충족되는 사랑의 신화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긴 전복적 역량은 무물지진을 돌파하고 우리에게 절대 사로잡히지 말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싸워서 이길 수 없지만, 진정한 사랑은 결국 충분하다. 죄를 지으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남녀가 치정에 빠지게 한다. ‘중국식 공포’의 핵심적인 어긋남은 현대 개인의 두 눈으로 응시하면서도 직시할 수 없는 전근대적 잔재다. 사후 결혼, 종이인형, 오래된 신앙, 잔혹한 의식, 우매한 마을 사람들…… 죽음의 기호들이 널려 있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집단 무의식이 굳어져 무물지진을 만들고, 과학상자 밖의 침묵은 익숙했던 일상의 흉악한 틈새를 드러내며 '중국인이 중국인을 놀라게 하는' 이기(利器)로 변모한다. <종이혼례복> 플레이어들이 공포게임에서 사랑을 감상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도 일찍이 낯선 신화로 전락한 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부디 오호(五湖) [오월지방의 호수] 의 밝은 달과 인내심이 원앙의 빚을 갚게 하기를.” [4] [1] 탕메이신(唐梅欣)의 《恐惑概念的演变——从弗洛伊德、海德格尔到拉康 프로이드와 하이데거에서 라캉으로의 공포 개념의 변화》, 2021년 우한대학(武汉大学) 석사학위논문 참고. [2] 토마스 쿤 저, 진우룬(金吾伦)·후신허(胡新和) 역, <과학혁명의 구조>, 베이징대학출판사, 2003년 [3] 다이진화(戴锦华), <电影批评(第二版)>, 베이징대학출판사, 2015년 [4] <종이혼례복 3: 원앙의 빚>의 서문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徐佳(서가)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 Back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16 GG Vol. 24. 2. 10. 내 포켓몬이 부르니까 자러 가야지 2023년 7월 처음 출시된 포켓몬 컴퍼니의 새로운 모바일 게임 <포켓몬 슬립Pokémon Sleep>은 출시 2개월 만에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년을 돌파 1) 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장르를 내세우며 이 앱이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방식은 단순하다. 이용자가 자면, 게임은 이용자의 수면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포켓몬을 수집한다. 보다시피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요소라고는 포켓몬밖에 없다. 즉 <포켓몬 슬립>의 흥행은 오로지 ‘포켓몬스터’라는 유명하고 사랑받는 주머니 괴물들의 매력 하나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 세계 엄청난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 GO>의 목표 또한 오로지 현실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이었다. 포켓몬스터라는 IP는 성공적으로 게임 이용자에게 재미를 유도하고 두 게임을 ‘게임’이라고 인식시켰다. 일단 게임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두 게임은 IP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IP를 통해 흥행에 성공한 게임은 역으로 자신들의 현실과의 접합을 이용해 포켓몬스터 IP의 해상도를 높여갔다. <포켓몬 슬립>을 살펴보자. <포켓몬 슬립>이 이용자 수면 측정의 개연성으로 채택하는 것은 바로 포켓몬의 잠자는 모습 연구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이용자의 파트너 포켓몬은 잠자기 약속을 지키라며 이용자에게 알림을 띄운다. 이용자는 파트너 포켓몬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눈을 뜬 이용자를 맞이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수면 습관을 가진 새로운 포켓몬들이다. 이를 반복하며 이용자는 포켓몬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매일 밤 포켓몬과 함께 잠들고, 포켓몬과 눈 뜨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는 게임에게 지시받은 대로 매일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연구’하게 된다. 포켓몬 연구자가 된 이용자는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에 대해 현실의 생명체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포켓몬이라는 형상은 이용자 속에서 점점 구체화되며, 이용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매개로 그들과 가장 내밀한 일상을 공유하며 ‘현실을 함께 한다’는 감각을 전달받는다. 구체화된 형상과 실재하는 감각이 심상에서 결합하며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는 현실 공간에서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포켓몬 컴퍼니의 이 같은 전략은 기존 팬들의 애착을 강화하고 모바일의 접근성을 이용해 새 이용자를 유치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포켓몬스터가 단순히 거대한 IP일뿐만 아니라 꾸준히 콘텐츠의 무한확장 및 구체화를 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대내외적으로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구체화시키고 그들과 이용자의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 IP를 개발해왔다. 대표적인 사례인 <포켓몬 GO>는 그저 일부분이다. 현재 포켓몬 게임은 가장 기본이 되는 콘솔 게임이외에도 모바일 게임, 오프라인 카드게임, 아케이드 게임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어딜 가나 보이는 다양한 상품과의 콜라보 ‘굿즈’까지 포함할시 포켓몬은 체감상 비둘기보다도 자주 목격된다. 포켓몬이라는 허구의 생명체는 여러 매개를 통해 지금도 끈질기게 현실을 침범하고 있는 셈이다.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의 DLC에서는 이용자가 포켓몬을 씻기고, 먹이는 걸 넘어 포켓몬의 몸으로 행동하고 다른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포켓몬 슬립>이 게임이냐? 앞선 일련의 전략들은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AR 게임 <포켓몬 GO>의 엄청난 흥행과 현실의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포켓몬 슬립>의 약진이라는 특수한 결과를 탄생시켰다. 왜 ‘특수한’ 결과일까? 평소 우리가 보아온 다른 사례들과 비교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다. 이 대대적인 IP 경쟁력 강화 작업은 포켓몬 컴퍼니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포켓몬 슬립>은 정말 ‘게임’인가? <듀오링고Duolingo>는 ‘게임하듯 재미있게’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습 앱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게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녹색 부엉이가 호들갑을 떨어도 <듀오링고>를 재미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 <포켓몬 슬립>은 <듀오링고>처럼 수면습관 개선이라는 명백히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지만 게임으로 여겨진다. 물론 앞서 말했듯 포켓몬의 존재 덕분이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사람들을 웬 수면측정 앱으로 이끌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이 연로한 단어를 모셔온 이유는 이 단어가 근래에는 더 이상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는 지금, 게임적 메커니즘 또한 인간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매일 금융거래 앱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고 포인트를 받으며, 중고거래 앱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자신의 레벨을 올린다. 이것은 달리 말해 이런 세상에서 게임이 ‘게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게임적 요소로 치장한 가지각색의 서비스보다 그들이 조금 더 게임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게임에게 이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게임은 게임적 요소를 통해 이용자를 유혹해야만 하는 실용적인 목적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명감이나 따내야할 사업 예산이 없는 이상 게임에 실용적인 목적을 넣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게임의 본질, 즉 재미에만 충실하면 당연히 게임은 금융거래 앱이나 중고거래 앱보다 재밌고 게임 같다. 그렇지 않은 게임도 물론 일부 있다. 그에 대해선 유감이다. 이런 현실에 반해 포켓몬 컴퍼니는 실용적인 목적을 역으로 자신들의 IP 강화에 이용하였다.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에는 훨씬 최신이지만 마찬가지로 근래 관심이 부쩍 시들어버린 단어를 가져와보겠다. 바로 한때 전 세계인을 3차원 가상공간으로 불러 모았던 메타버스(Metaverse)다. 코로나19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메타버스 열풍은 빠르게 퍼진 만큼 빠르게 식었다. 대면 활동이 제한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이 가능하단 점은 한때 메타버스를 주목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게임과의 차별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현재 남아있는 <로블록스Roblox>나 <제페토ZEPETO> 등의 메타버스 공간을 게임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 세계는 현실과 닮아있을지언정 현실 공간과 별개의 규범으로 운영되며, 이용자들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들이 즐거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타버스로 통칭되는 게임의 현재 모습은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메타버스의 대다수 이용자가 어린 연령대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블록스>의 로우 폴리곤 세상은 빈말로도 현실과 닮았다고 할 수 없다. 이용자들은 현실과 다른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며 체험하고 교류하는 것을 주요 즐거움으로 삼는다. <제페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에 <제페토>는 어쨌든 얼굴인식과 AR 기술을 활용한 메타버스로 소개되지만, <제페토>의 아바타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제페토>를 깊게 즐길수록 아바타가 점점 현실의 모습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달라진 아바타로 다양한 테마의 배경을 즐기는 것이 <제페토>의 핵심이다. 이 사실은 대부분의 AR 게임이 왜 흥행에 실패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즐거움을 원하는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반면 포켓몬이 선사하는 이 모든 간접 체험에도 포켓몬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생명체다. 이용자들은 포켓몬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현실에서 보고 싶어 한다. 가상공간에서 굳이 현실의 일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현실의 일에 가상의 상상력이 끼어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AR 게임이 <포켓몬 GO>라는 사실은 AR 기술의 한계에도 포켓몬이 그들의 방대한 배경을 통해 이용자들을 감성적으로 매혹하고, 이를 믿어주고 싶은 이용자들이 넘어가준 것에 가깝다. ‘포켓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게임이 현실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현실에 첨가할 매력적인 가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다른 도구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보통은 기술력으로 돌파구를 찾고, 그래서 돈이 많이 든다. 캐릭터는 좋은데 게임성은 별로? <포켓몬 슬립>은 강력하게 형성된 IP에 힘입어 성공한 ‘게임’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용자들이 ‘포켓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모바일 게임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게임 지형에서 포켓몬 컴퍼니의 이러한 노력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포켓몬 슬립>의 사례는 매력적인 캐릭터 IP의 영향력이 단순히 뽑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수집 모바일 게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캐릭터 IP는 게임의 한 구성 요소를 넘어 독자적으로 재미와 아우라를 창출할 수 있는 요소로 등극하였다. 독자성을 가진 IP는 결코 베껴지지 않는단 점에서 그것을 보유한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남는다. 점진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이용자에게 캐릭터의 존재는 이미 현실이고, 이는 대체 불가능하다. 다만 캐릭터 IP가 게임 안에서 독자적으로 재미를 창출하는 지위에 놓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임과 동시에 아이러니한 논란을 동반한다. IP는 게임의 중대한 구성 요소로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재미를 담보하지만,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성’이라는 각자 다른 정의를 기준으로 게임을 평가할 때 ‘캐릭터’의 존재는 흔히 논외이기 때문이다. ‘게임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대개 재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캐릭터를 보며 느끼는 재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격한 ‘게임성’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에 비해 질 낮은 그래픽과 각종 버그 등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또한 매 게임 시리즈마다 있어왔다.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출시 초기에는 게임이 불가능할 정도의 다양한 버그가 문제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게임을 할 때 이 모든 요소는 종합적으로 고려되므로, 이런 식의 분리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게도 게임의 모든 요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비한 기술력이나 불합리한 시스템은 게임 진행 및 몰입을 방해해 시리즈 자체의 호감을 하락시키며, 그것은 IP도 마찬가지다. ‘게임성’이라는 합의되지 않은 정의를 합의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미 이용자들의 게임 선택 기준에는 IP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포켓몬은 왜 우리의 수면을 책임지려 하나?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아이콘은 이용자가 키, 몸무게, 습성, 성격, 먹이와 서식지를 넘어 잠자는 모습까지 연구하게 만들며 구체화된 형상으로 머릿속에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점차 거리를 좁히며 치밀하게 이용자의 현실 공간에 침투해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들고, 게임 플레이는 다시금 이용자의 애정을 강화시켰다. 게임에서 흔히 ‘현실’이라는 요소가 가상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구조를 통해 <포켓몬 슬립>이라는 독특한 ‘게임’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은 현재 게임에서 IP라는 요소가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인 재미를 달성할 수 있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동시에 이는 오랜 기간 축적된 IP가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만든다. 확실한 것은, 포켓몬은 앞으로도 이용자들의 일상을 서슴없이 침략하고 더욱 친근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 디스이즈게임, 2023.10.20., 수면 게임 ‘포켓몬 슬립’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 년 돌파, https://www.thisisgame.com/webzine/game/nboard/225/?n=17908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 Back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11 GG Vol. 23. 4. 10. 일찍이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신체와 감각기관의 연장이라고 보고, 발달하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굳이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게임 인터페이스에 활용되는 기술들이 게이머의 감각을 게임 속 캐릭터와 연결시킨다는 점은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들을 통해, 게이머의 눈은 게임 속 세상을 인지하고, 게이머의 손은 게임 캐릭터의 신체를 제어한다. 게이머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 하나가 게임 캐릭터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하기에, 감각과 게임의 연결은 모든 게임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감각과의 연결이 중요한 게임 장르를 꼽는다면 ‘대전(對戰) 격투 게임’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프레임 단위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반응해야 하는 격투 게임에서 조이스틱이나 패드는 게이머의 감각을 극한까지 받아들인다. 그리고 게이머의 반응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게임의 내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게이머의 경험까지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너무 유명한 선수를 모셔서, 굳이 소개를 부탁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웃음) DRX 무릎 선수는 오랫동안 대전 격투 게임에서 최정상급 위치를 유지해 오시면서 다양한 컨트롤러들을 만져보셨잖아요. 혹시 가장 처음 만져본 게임 컨트롤러가 무엇인지 기억나시나요? DRX 무릎: 맨 처음으로 만져봤던 건 오락실에 달려있는 기계였어요. 편집장: 혹시 어떤 게임인지도 기억하세요? DRX 무릎: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했던 게임이라서.. 아마.. 그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동네에 오락실이 있었는데요. 아버지랑 목욕탕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구경시켜줄까?’ 해서 들어갔었는데, 오락기가 일렬로 쭉 있더라고요. 다 처음 보는 거라서 너무 신기했는데, 당시에는 게임 제목을 오락실 사장님이 직접 써서 붙여놓으셨어요. 편집장: 맞아요. 매직으로 보통 써놨었죠. (웃음) DRX 무릎: 네. 매직으로. 그때 정확하게 〈스트리트파이터 2〉라고 안 되어 있었고, 그냥 ‘장풍 2’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당시에 무협 영화가 엄청 유행하던 때라 장풍은 알았죠. 그렇게 ‘장풍2 해보고 싶다’고 해서 했던 게 (컨트롤러를 만져본) 처음이었어요. 편집장: 당시에는 커맨드를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지 않나요? DRX 무릎: 네. 그냥 막 눌렀죠. 편집장: 그러면 당시에 왼쪽에 막대기가 있고, 오른쪽에 버튼이 있는 구조를 그때 처음 보신 거잖아요? DRX 무릎: 네. 그렇죠. 그 이후에 게임에 빠져서 게임기를 사주신 게 ‘제믹스’라는 게임긴데, 그거는 패드처럼 돼 있었어요. 편집장: 그러면 처음에 스틱을 잡으시고, 이거를 전후좌우로 움직이면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걸 되게 어렸을 때부터 익히신 건가요? DRX 무릎: 그렇죠. 당시에는 게임기에 상하좌우 이렇게 적혀 있었거든요. 레버 방향 같은 거를. 그거 보고 조작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전 격투 게임이 움직임이 좀 자유롭잖아요? 그래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점프하고 싶다 하면은 그냥 (레버를 위로 올리는 손동작을 하며)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점프를 하더라고요. 편집장: 어떻게 보면 거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군요.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계열은 스틱 커맨드가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장품 같은 걸 쏘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데, 따로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아니면 이렇게 움직여보다가 익히신 거예요? DRX 무릎: 처음에는 아예 모르니까 그냥 버튼만 누르고 그러다가 나중에 오락실 가서 알게 됐죠. 어떤 분이 쓰는 것 보고 물어봤어요.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하고. 편집장: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기술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다들 쓰고 있었죠. 잡지 같은 데 기술표가 정리되긴 하지만, 다들 잡지를 사서 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면 구전처럼 기술이 전해졌던 것이군요. DRX 무릎: 네. 오락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알려주기도 하고, 뒤에서 손 보고 따라하기도 하고 그랬죠. 물론 아저씨라고 했지만 그때의 제 시각이니 사실 대학생일 수도 있고요.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 스틱부터 제믹스 콘솔까지 잡아보시고, 이후에도 정말 다양한 스틱들을 잡아보셨을 텐데,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스틱이 어떤 것인가요? DRX 무릎: 지금은 이제 조이스틱을 쓰고 있거든요. 음.. 저는 사실 다른 거를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이게 너무 익숙하고 너무 자유로워서 저는 딱히 다른 걸로는 안 바꾸게 되더라고요. 편집장: 격투 게임이 또 오래된 논쟁이 ‘키보드로 우승할 수 있는가?’ 이런 얘기도 있는데, 다른 기기들은 손에 잘 맞지 않으셨나보군요. DRX 무릎: 네. 일종의 세대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오락실 세대라서 이게(조이스틱) 너무 익숙하고, 지금 사람들은 이게 너무 불편하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나라마다 다른 점도 있는데요. 해외 같은 경우는 패드를 많이 쓰더라고요. 뭐.. 그 이유는 사실 되게 단순한데, 스틱이 비싸서. 플스(플레이스테이션)를 사면 패드가 딸려오고, 그걸로 하다 보니까. 그런 이유가 크더라고요. 그리고 해외에 오락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있긴 해도 차를 타고 엄청 멀리 가야 한다거나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집장: 한편으로 오래된 격투 게이머분들은 그런 차이도 되게 민감하시잖아요. 예를 들어 무각이냐 사각이냐 같은. DRX 무릎: 네. 그것도 많이 다르죠. 되게 옛날에는 팔각도 있었고요. 사각 같은 경우는 거의 일본 오락실에서 많이 쓰는 건데요. 우리나라는 애초에 오락실에 대중적으로는 팔각이나 무각 레버가 달려 있으니까 시작을 이걸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게(무각이) 너무 익숙하고, 사각은 잡는 레버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너무 짧아서 불편하더라고요. 편집장: 잡는 방식도 서로 다르지 않나요? DRX 무릎: 네. 정말 각자가 편한 대로 잡더라고요. 누구는 이렇게 잡고, 누구는 이렇게 잡고(아래 사진 참조). 뭔가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자기 손에 맞는 대로 각자가 다른 것 같아요. * 무릎이 묘사했던 여러 조이스틱 파지법. 실제로 오락실에 가면 여러 방식의 파지법을 볼 수 있다. 편집장: 어떻게 스틱을 잡든, 사실 게임에서는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기판마다 차이점이 있나요? DRX 무릎: 음.. 공식 기판이 아닌 비인가 기판을 쓰는 스틱들이 있거든요. 일단 그런 것을 해보면 확실히 입력이 느린 느낌이 납니다. 예를 들어서 게임 시작하자마자 상대랑 같이 버튼을 눌러도 약간 미세한 차이가 있어요. 편집장: 혹시 그러면 대회 같은 곳에서도 비인가 기판이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DRX 무릎: 되게 예전에는 그것들이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 4부터는 비인가 스틱을 오래 쓸 수가 없어요. 8분인가 쓰면 갑자기 연결이 끊겨 버려서 게임이 안 되죠. 편집장: 정말 모르는 세계가 많군요. 저는 가끔 격투 게임의 세계가 무협지 같다는 생각을 해요. 파키스탄 가셨던 이야기를 보면 이것은 무협지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웃음) 은둔고수를 찾아나서는. 그런 맥락에서 스틱을 잡는 행위를 일종의 수련 단계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스틱에 익숙해지는 단계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단계라고 할까요? 스틱을 오래 잡고 있으면 점점 깨닫는 바가 있다거나 그런 점이 있을까요? DRX 무릎: 어려운 커맨드나 레버로 할 수 있는 단축 커맨드 같은 것들을 더 알게 되고 익숙해지는 지점은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러면 격투 게임을 함에 있어서 초보가 겪는 몇 가지 장벽들에 대해서 대표적인 것들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DRX 무릎: 보통은 대각선을 제일 어려워합니다. 무각 레버는 사각처럼 확실하게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대각을 입력하라고 했을 때, ‘대각이 도대체 어디예요?’ 이런 얘기도 되게 많고요. 그리고 횡신을 할 때 (레버를) 위로 당기라고 해서 힘을 주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점프를 하거든요. 횡신은 힘을 조절해서 약간 레버를 튕기듯이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많이들 어려워하시죠. 편집장: 그러면 저 같은 초보가 모여서, 횡을 배우겠다고 하면, 어떻게 가르치실 것 같으세요? 이게 말로 설명이 될까요? DRX 무릎: 그렇죠. 어렵죠. 저라면 일단 횡신 같은 경우에는 ‘레버를 위로 올린 다음에 손을 떼라’ 약간 이런 식으로 설명할 것 같긴 해요. 그래야 힘이 빠지고 튕기면서 횡이 나가거든요. 편집장: 이런 맥락에서 무림의 영역이 떠오른 것인데요. 머리나 말로 인지하는 것과 다르게 몸이 익혀야 하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게임을 해야 몸에 익을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있는데, 무릎 선수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기술을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것까지는 보통 얼마나 걸릴까요? DRX 무릎: 요즘 분들은 그래도 한 3개월 이상 하면 대부분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 달 정도면 본인도 어느 정도 기술을 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조금 미숙하다는 걸 알고 있는 정도고. 한 3개월 하시면 (상대방의) 심리를 모른다뿐이지 기술 같은 거는 다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집장: 사실 격투 게임이 피지컬로만 다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요즘도 논란이 되고, 전에 영상에서도 말씀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지점에서 상대방 스킬을 보고 판단하는 심리적인 시간과, 그 판단 이후에 반응을 하는 손과 뇌의 시간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을까요? DRX 무릎: 제가 생각할 때는, 동체 시력보다는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든요. 아무리 반응 속도가 빠른 스포츠 선수를 데려다 놓고 철권을 시켜도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반응할 수 없을 거예요. 단순히 날아오는 공 같은 것이 아니고, 머리에 ‘이 기술은 하단이다’라는 정보가 있어야 모션을 보자마자 (레버를) 딱 당기는 거거든요. 근데 이것도 제가 봤을 때는 어느 정도 발동 프레임이 정해져 있어요. 사람이 보고 반응할 수 있는. 그 이하로 가면 사실 감으로 막는거죠. 적정 프레임이면 보고 입력된 걸로 하고 막을 수 있겠지만요. 편집장: 확실히 격투 게임에서는 경험을 통해서 경험치를 축적하고, 감으로 움직인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영역도 존재하죠. 그런 지점에서 무릎 선수의 플레이가 감탄이 나오는 것은 한 두세 번 상대해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으시던데요. DRX 무릎: 왜냐하면 게임을 하다 보면 본인만의 스타일, 자주 쓰는 타이밍이라든가 공격 패턴이 있어요. 그거를 감추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아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집장: 프로 격투 게이머로서 일정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데는 사실 경험이 피지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DRX 무릎: 네. 그게 제일 중요하죠.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평소에는 잘하다가 대회만 가면 긴장해서 제 실력을 거의 내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편집장: 또 캐릭터가 또 한두 개가 아닌데 그 패턴을 다 파악하고 그게 머릿속에 들어 있으면서 재깍재깍 나와줘야 하는 거니까. 그러면 초보 게이머들은 그런 변명을 합니다. “내가 피지컬이 너무 안 돼서 못 하는 거다”라고. DRX 무릎: 거의 그렇게 많이들 생각하시죠. 사실 그 지점은 반복 연습으로 뚫어야 하는 건데... 사실 즐기면서 게임을 하시는 분들은 반응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공격 패턴 같은 걸로 상대를 이기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죠. 편집장: 확실히 그런 지점에서 경험이나 감각이 중요하겠죠. 다시 좀 스틱 얘기로 돌아가면, 무릎 선수는 지금까지 여러 컨트롤러를 쓰셨을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 스틱을 만지셨을 건데, 그중에 나한테 정말 잘 맞았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 있을까요? DRX 무릎: 제 기준에서는 잘 맞는 거는 어느 정도 레버랑 버튼의 배열이 약간 좀 공간이 있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손이랑 버튼 위치가 좀 잘 맞는 스틱들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은 되게 게임하기 편했거든요. 그리고 레버의 탄성 같은 게 너무 강하면 게임을 하다 쉽게 피로가 쌓여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적정한 탄성의 스틱이 굉장히 잘 맞았죠. 편집장: 내 손에 맞는 편안함 같은 것들이 실제 퍼포먼스에도 영향이 크게 가나요? DRX 무릎: 아무래도 연습도 해야 하고 대회를 나갔을 때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게임을 하게 되는데, 조작이 빠르고 많은 동작들을 넣어야 되다 보니까 손목이 굉장히 피로하거든요. 잘 맞는 레버로 게임을 하면 장시간 게임에도 멀쩡해요.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고, 조작이 굉장히 많이 들어나는 캐릭터를 하게 되면 하기 어려운 게 있어요. 편집장: 그러면 여러 컨트롤을 만지면서 이것은 그냥 기계가 아니라, 내 신체의 일부같이 여겨지는 그런 순간도 있으셨나요? DRX 무릎: 정말 잘 맞는 레버 같은 거를 만지게 되면, 기술이 정말 잘 나가요. 그런 것들 만나면 되게 좋았고. 지금 시대는 사실 본인한테 맞는 스틱을 구해서 쓸 수 있지만, 옛날 오락실 같은 경우는 그냥 달려있는 걸 썼었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기계가 한 네 대 있다고 쳤을 때, ‘저기서 두 번째 기계가 제일 잘 맞다’ 그런 것들이 있었죠. 편집장: 그것도 사실 오락실 주인이 정비를 하실 텐데 튜닝에 따라서 조금 또 스타일이 바뀔 수도 있는 거겠네요. DRX 무릎: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봤을 때는, 고무의 탄성을 조금만 바꿔도 입력하는 느낌이 다르고요. 안에 있는 헤드 사이즈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게 0.01 바뀌는데 느낌이 다르고 그래요. 스위치를 바꿔도 느낌이 다르고. 그래서 좋은 레버, 좋은 고무, 자기한테 맞는 헤드 사이즈 이런 것들을 찾아서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무릎 레버라는 것을 만들어서 제 손에 맞는 것을 만들었죠. 편집장: 그거는 확실히 만족감이 드세요? 정말 딱 내가 생각하는 기술이 그대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DRX 무릎: 네. 세부적인 부품도 바꿔보면서 더 좋은 쪽으로 맞춰가다보니까, 저는 그거 말고 다른 걸로 하면 이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편집장: 그러면 파키스탄 같이 해외 대회에서도 본인 스틱을 쓰세요? DRX 무릎: 네. 제 거를 가져가죠. 요즘은 대회를 다 콘솔로 하니까, 그런 것들이 장점이에요. 옛날에 오락실에서 했을 때는 확실히 좀 어렵죠. 예를 들어서 저는 이 오락실을 전혀 안 다녔는데, 대회한다고 해서 왔어요. 그런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이미 익숙하니까 (스틱의 특성을) 잘 알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여기는 입력이 너무 안 되는데?’ 약간 이런 게 있어서 그런 불편함들이 있었죠. 편집장: 격투 게임 게시판 같은 곳을 가보면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아’ 이런 말들이 있는데. DRX 무릎: 요즘에는 옛날이 아닐까 싶어요. 확실히 ‘장비빨’이라는 것은 무시 못 하겠더라고요. 편집장: 장비빨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국제 대회 끝나고 영상을 보면 그렇게 잘 맞도록 주문 제작하신 조이스틱을 바닥에 내려놓거나 하시는 경우들도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고급 물건이라고 볼 수 있는 조이스틱이 무릎선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DRX 무릎: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틱을 만지다 보니까 너무 익숙한 개념이고요. 이렇게 편하게 다룬다고 해서 험하게 다룬다기보다는, 학교 다닐 때 매는 책가방 같은 느낌이에요. 언제든지 챙길 수 있고, 언제든지 사용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라서. 저한테 스틱은 그냥 또 다른 손인 거죠. 일종의 혼연일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편집장: 대회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도 있고, 내가 생각하고 반응하는 영역도 결국은 레이턴시가 걸려 나가는 건데요. 네트워크 레이턴시 같은 것들도 많은 영향을 주잖아요. 아예 대놓고 반응 속도에 문제가 있으면 차라리 경기에 문제 있다고 하고 재경기를 하면 되는데, 이게 애매하게 걸리는 것들도 있잖아요. DRX 무릎: 5핑이 제일 빠른 건데, 갑자기 막 4핑이 뜨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반응을 해도 안 되거든요. 이미 게임에서 입력이 늦게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까, 그럴 때는 좀 그렇죠. 편집장: 그럴 때는 심판을 부르거나 하시나요? DRX 무릎: 보통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그런 식으로 넘어갈 때가 많죠. 온라인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고.. 편집장: 그래서 격투 게임에 초청전이 많은 거군요. 그러면 요새 이야기가 많은 가상 공간에서 격투 게임을 한다고 하면 그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요? DRX 무릎: 아직 기술적으로 그게 어렵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만약 가상 공간에서 게임을 한다고 하면, 오락실에서 이제 건너편 기계에 있는 사람이랑 붙는 그런 느낌일 것 같은데, 그런 점은 재미있겠죠. 왜냐하면 사실 온라인에서 하는 게임은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에 오락실을 가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건너편에 사람이 있고, 옆에 기계 보면 여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이런 느낌이라서. 제가 만약 게임을 안 하고 있어도 다른 화면을 보거나 잘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냥 혼자 집에서 하다 보니, 설령 계급을 올렸다고 해도 옆에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그냥 자기 혼자만의 만족을 하고 끝나다 보니까, 아쉬운 그런 상태죠. 편집장: 그러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는 건데요. 인터페이스를 없애고 사람이 자기 생각만으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뇌파만으로 격투 게임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DRX 무릎: 그러면 굉장히 더 피로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머리로만 게임을 하는 건데 장시간 게임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편집장: 약간 그런 점도 있잖아요. 프로 게이머를 이루는 주요 요소를 세 가지로 말하자면, 기술이나 캐릭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지식을 활용해서 다음 패턴이 뭐가 나올지 파악하는 심리, 그리고 이것들을 내 퍼포먼스로 뽑아내는 육체적인 능력. 이렇게 지식, 심리, 피지컬 중에 마지막 것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게이머는 어떻게 바뀔까요? DRX 무릎: 손맛이라고 해야 될까요. 손맛이 일단 없어질 것 같고요. 제 영상 시청자분들 중에서는 손캠을 올려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시거든요. 프로게이머 손놀림에는 리듬감도 있고 일반적인 손놀림이랑은 다르고 하니까. 그런 퍼포먼스 같은 것이 없어질 것 같네요. 편집장: 이런 질문은 다른 곳에서도 받아보셨겠지만, 오랜 기간 게임을 해오셨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내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세요? DRX 무릎: 좀 있어요. 옛날에는 쉽게 썼던 거(기술)를 지금은 좀 연습이 필요한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보기만 하면 뚝딱하고 30분 만에 하던 거를 지금은 1시간, 1시간 반 이렇게 연습을 해야 할 때가 있죠. 편집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상의 위치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건, 한편으론 피지컬적 요소가 떨어지는 만큼 아까 말씀하셨던 심리나 지식의 영역으로 커버하시는 지점도 있을까요? DRX 무릎: 네. 피지컬이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그걸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피지컬이 정말 좋은 선수라도 엄청 노련미가 있는 사람 만나서 지는 걸 보면 절대적인 것은 없구나 싶기도 하고요. 무조건 어리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못 이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옛날보다 게임은 오래 못하지만, 상대를 붙어보면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데 그건 또 한편으로, 이 기사가 올라가면 ‘그건 무릎이니까 가능한 영역이다’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오랫동안 활동해오시면서 무릎 선수가 겪은 상대들 중에서 기량이 꺾인다든가, 혹은 에이징 커브가 왔다는 점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있으면 대충 어느 정도의 나이대에서 그런 지점이 온다고 느끼시나요? DRX 무릎: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내려가고 또 뭔가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람들을 많이들 봤죠.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선수들을 봤는데, 대부분 한 30대가 되면 좀 확 내려가긴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철권이 롤처럼 메타가 확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오랫동안 플레이한 스타일을 잘 바꾸지를 못해요. 다른 게임처럼 전략 전술을 맞춰서 챔피언을 고르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까, 캐릭터가 많지만 ‘나한테 맞는 캐릭터는 이거다’고 정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패턴이나 습관 같은 것들을 바꾸기가 어려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들을 들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어떤 캐릭터나 플레이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끝나면 (그 선수가) 그냥 확 내려가는 그런 게 있어요. 편집장: 그러면 철권에서 에이징 커브라는 개념은 육체적인 반응 속도나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되는 경향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사실 무릎 선수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캐릭터를 주챔급으로 하시는데, 게임을 분석하시고, 소위 말하는 ‘뇌지컬’로서의 장점들이 지금의 폼을 유지하시는 비결이실 것 같네요. DRX 무릎: 네. 에이징 커브를 겪는 많은 선수들이 고착화된 점을 잘 못 바꾼다고 해야 될 것 같아요. 한때 잘했어도 ‘이 캐릭터 플레이가 너무 어려운데 그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 스타일에 맞는 캐릭터를 할래’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어느 날 오랜만에 성적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자주는 못 그런 것 같아요. 편집장: 그거는 확실히 달성하기는 쉽지 않겠네요.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DRX 무릎: 그렇죠. 왜냐하면 여러 캐릭터를 어느 정도로 하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거든요. 확실히 한 캐릭터만 메인으로 하는 사람들은 플레이가 약간 다른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캐릭터를 하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랑 별 차이가 없는 정도의 수준까지밖에 안 돼요. 그래서 여러 캐릭터를 하기보다 한 캐릭터의 장인 느낌으로 가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편집장: 격투 게임에 대해 사람들은 되게 쉽게 ‘피지컬 대결이다’고만 생각하지만, 무릎 선수가 그게 아니다는 걸 좀 보여주고 계시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표현한다’고 했을 때, 말을 언어를 써서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스틱으로 내 캐릭터를 통해 일종의 퍼포먼스로 내는 것 역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건데, 스틱으로 상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 드신 적이 있으세요? DRX 무릎: 뭔가 말을 안 하고, 게임만 해도 멋있게 하려는 그런 게 있으면 상대도 알아요. 저도 알고. ‘얘 지금 고난이도 콤보를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멋있게 하려고 하네’ 그러면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그런 거를 느낄 때가 있어요. 말을 안해도 붙으면 딱 알아요. 편집장: 저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언어를 넘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고, 상대의 기량뿐만 아니라 태도까지도 알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있군요. 조금은 결이 다른 질문인데요. 나중에 ‘무릎 기념관’이 생긴다고 했을 때, 전시관에는 어떤 스틱이 올라갈까요? DRX 무릎: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긴 한데요. (웃음) 그러면 아마 맨 처음에 썼던 거를 전시하지 않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맨 처음에 쓰던, ‘이걸로 시작했습니다’고 올릴 것 같네요. 편집장: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제 곧 큰 변화가 한 번 오지 않습니까? 이제 〈철권 8〉이 나올 건데, 초심자들에게 첫 캐릭터를 추천해주신다면요? DRX 무릎: 트레일러만 봤을 때는 사실 저는 폴이 정말 좋아요. 많은 사람들한테 캐릭터 추천해드릴 때 폴을 많이 추천하거든요. 철권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하고 개발사도 폴을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중간 성능 이상은 내거든요. 그런 캐릭터를 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 무릎이 추천하는 철권의 대표 캐릭터 폴. 이전 시리즈보다 나이가 들고, 해맑아졌다. 편집장: 〈철권 8〉이 되면, 초보자 도장 같은 것도 활성화해 보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DRX 무릎: 〈철권 8〉이 나오면 많은 분들이 도전하고 시작을 하실 텐데,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저도 이 기회에 많이 배우겠습니다. 컨디션 잘 챙기시고요.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Bac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20 GG Vol. 24. 10. 10.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이 턱 막히는 질문이지만 이 답답함을 후배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꺼낸 대답은 ‘게임기자는 게임쇼에 갈 수 있어’였다.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E3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 게임쇼를 취재했다. 한국의 지스타, 플레이엑스포, BIC부터 중국의 차이나조이, 일본의 도쿄게임쇼, 대만의 타이베이게임쇼와 독일의 게임스컴, 미국의 GDC를 다녀왔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필자가 다녀온 곳은 더 많다. 게임쇼는 여러 게임사가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개발 상황을 대중에 공유하는 쇼케이스이고, 사업적 기회를 찾는 기회의 장이며, 게임인들이 모이는 축제다. 게이머로서 게임쇼는 놓치기 아쉬운 현장이다. 필자가 이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쎄에선 도쿄게임쇼가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지스타는 행사 20주년을 맞이한다. *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스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사진은 2024년 지스타의 행사장 조감도 일부 사라진 E3, 점점 올라가는 비용… 높아지는 게임쇼 무용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디지털게임이 오프라인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온라인 쇼케이스 방식은 널리 퍼졌다. 신작 발표라면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제프 케일리의 초호화 발표회가 있고, 체험이라면 스팀의 얼리억세스가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게임쇼는 E3는 사라진 게임쇼가 되었다. 단일 게임사 게임쇼로는 가장 유명한 블리즈컨은 개최와 미개최를 반복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의 익숙함을 경험했지만, 디지털게임은 특별히 비대면 콘텐츠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용산상가보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지금, 오프라인 게임쇼의 의미도 새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 CD와 CD-ROM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최근 필자는 CD는 커녕 USB 저장장치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학생이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아무튼, 이미 많은 업계인들이 <헤일로> 신작을 공개하면서 팔에 <헤일로> 문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게임스컴 오프닝 라이브나 더 게임 어워드에 쇼케이스 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외신 에스콰이어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쇼케이스에 광고를 내려면 1분에 25만 달러, 약 3억 4,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기자가 그간 만난 많은 업계인들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이 저렴하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가능한 게임빌드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킬 적당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며, 코스프레 업체와 안내요원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한편, 행사 주최측에게 부스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철도로 운송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항공편으로 물자와 인력을 대야 하는 경우라면, 그 비용이 대단히 올라간다. 즉,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은 게임쇼 직접 출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게임 업계가 감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기자가 아는 모 게임사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고용하고 있던 행사 관련 전담 인력을 대부분 내보냈다.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MS의 옛 게임사업부 대표를 맡은 피터 무어는 <헤일로 2>의 출시일을 문신으로 새겨 현장에서 공개했다. 현장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신작 발표의 플랫폼이 옮겨 가면서 이런 충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듯한 인상이다. 한껏 기대를 받은 상황에서 출시된 <헤일로 2>는 대박이 났다. (출처: E3) 그럼에도 살아남은 게임쇼는 역대 최다 관중 갱신 그래서 오프라인 게임쇼에는 파리만 날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 게임쇼는 역대 최다 인원을 모객하고 있다. 지난 게임스컴과 올해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이 채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라인메쎄 사무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게임스컴의 방문객 수는 총 120개국 출신의 33만 5,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도쿄게임쇼의 방문객도 274,739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차이나조이도 338,000명의 집계를 올리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논의일 수 있겠으나,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장에 찾아서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그 해 행사를 점검하는 한편, 다음 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쇼의 조직위원회가 꼬박꼬박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특정 게임쇼가 관람객 발표를 주저한다면, 이는 내년도 행사에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E3가 사라진 가운데 주요 게임쇼들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매년 갱신하면서 한때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게임쇼에 대한 심리가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을 찾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오프라인 게임쇼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마케팅 창구이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대체 불가능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미발매 게임을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졌음에도 크래프톤이 <인조이>,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소위 ‘국뽕’ 요소를 제하더라도 두 게임에 대한 열기는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MS 게임패스 부스 못지 않게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를 끌고 와 5시간에서 6시간을 앉아 두 게임의 시연을 기다렸다. 지난해에도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을 즐기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대기시간 수백 분”은 “사전예약자 몇만 명”보다 센 파급력을 지닌 듯하다. 사전예약은 버튼 터치로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은 순전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일반 관람객을 위한 ‘매직패스’ 부류의 탑승 예약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게임스컴에서 수백 분의 대기시간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인조이>. (필자 촬영) 챔피언의 사정, 컨텐더의 사정 그러나 단일 기업이 충분한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렇고, 닌텐도의 ‘닌텐도 다이렉트’가 그러하며 블리자드의 ‘블리즈컨’이 그러하다.(혹자는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단일 게임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자사 게임쇼를 열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에는 EA가 E3를 앞두고 EA PLAY라는 이름의 자체 게임쇼를 열어 관객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임사들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과 비용, 국가 내의 입지 등의 따라서 부스 출전을 결정할 것이다. 도쿄게임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닌텐도 부스를 한국의 플레이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니는 올해도 차이나조이에서 대형 부스를 냈지만, 굳이 독일 게임스컴까지 출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에 단일 회사와 IP의 지명도가 개별 게임쇼보다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여건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출전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인조이>와 <붉은사막>을 알리기 위해 수천 km를 날아갔고, 좋은 성과를 얻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상장사인데) 다가오는 실적 발표에서 이들 기업이 출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여러 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 게임쇼 출전을 위한 비용도 올라갈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 게임사들은 자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규모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차이나조이에 참가했던 소니는 게임스컴을 결석하고, 안방의 도쿄게임쇼에 다시 참가했다. 사진은 2024년 차이나조이에서 촬영한 소니 부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PS5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공>이 출시됐기 때문. (필자 촬영) 몰맥락적 ‘쇼걸’ 대신 코스프레, 그리고 굿즈의 향연 게임업계의 올드비들은 게임쇼에서 ‘쇼걸’이 도열해 현장을 찾은 손님의 팔짱을 끼면서 부스 방문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꺼내곤 한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몇몇 곳은 ‘쇼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모객에 나서지만 이제는 대부분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가 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코스프레 모델로 보인다. 자사 IP와는 아무런 쇼걸보다는 맥락이 있는 전시로 평가되기 때문에 빠르게 쇼걸의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아닌 코스프레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행사장에는 매년 눈에 띄게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는 지스타에서도 코스프레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꾸준히 관측된다. 이런 개인 참가자 중 몇몇은 게임사에서 준비한 코스프레 모델을 뛰어넘는 수준의 분장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 세계 어느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포스트모템과 강연 중심의 GDC에서도 코스어를 여럿 목격했다. 이렇듯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는 이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다. 한국의 플레이엑스포는 코스프레 참가자를 위한 탈의실과 코스프레 가이드까지 안내하는 등 코스프레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자도 누가 ‘택일하라’고 한다면 코스프레 중심의 게임쇼보다는 시연 중심의 게임쇼를 선호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 영역에 불과할 뿐, 둘은 앞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권 게임쇼를 중심으로 코스프레 모델에게 과도한 촬영을 시도하는 몇몇 사진가들이 있어 유의가 필요할 듯하다. 여담이지만, 지난 게임스컴에서 필자는 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굿즈 배포의 관행’에 대한 사견을 들은 바 있다. 언젠가부터 게임 캐릭터나 게임사 로고 등으로 장식된 대형 비닐 백에 게임사에서 나눠주는 마우스패드, 휴대용 선풍기 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게임쇼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굿즈 살포가 근래 트렌드가 된 ESG 경영에 맞춘 행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성의에 감동하기 때문에 굿즈 배포의 문화를 단박에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행사장 한편에 무더기로 버려지는 종이부채 쓰레기를 보면, 다른 방식의 ‘작은 성의’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스타 사진 중 기사에 쓰기 적합한 사진을 골랐다. 사진기사 본문에는 "부스에 미모의 여성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오프라인 게임쇼의 미래는? 정리하자면, 게임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을 빠르게 학습했으며 지금도 비대면 행사와 마케팅이 자주 펼쳐지고 있다. 축소 국면에서 트레일러 마케팅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고 있고, 이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제프 케일리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게임쇼의 현장감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영업활동이 허락하는 한 오프라인 게임쇼는 계속될 것이다. 사라진 E3의 빈자리는 게임스컴 등 타 게임쇼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예술 행사에서도 게임은 당당히 현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소니와 닌텐도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게임쇼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은 근래 바둑을 두듯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 없는 기자의 망상이지만, ‘퍼스트 펭귄’을 주시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시도는 당장 내년도부터 다른 한국 게임사들에 확대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씩 게임 시연에 줄을 서기도 하고, 자기 카드 덱을 들고 듀얼을 펼칠 수도 있고, 꼬리 달린 털옷을 입고 나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언제나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모았는지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주최사와 게임업계에게 긍정적인 신호이고, 그들은 그 신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 Back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12 GG Vol. 23. 6. 10. *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2. 괄호에 숫자로 페이지만 표시한 것은 모두 상기 책의 인용이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응우옌은 이 책에서 이렇게 분투하는 플레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회의론자들의 반박들을 논파하면서 어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서구 철학의 방법론으로 게임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 『게임: 행위성의 예술』 표지 이미지 응우옌의 논의는 게임 담론 내부의 논쟁뿐만 아니라 철학과 미학, 예술학 등 게임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장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을 설파한다. 그것을 통해 게임을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규정하고, 예술로서 게임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깔려있는 철학자 특유의 논법은 (그가 베트남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철학/미학 담론 안에서만 대부분 작동하는데, 이는 내재적인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에서 논하겠지만 이토록 정교한 논의를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책은 차라리 게임의 존재론이거나 게임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방법을 돌아보는 윤리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게임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응우옌이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인터페이스 장치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고 즐기는 디지털 비디오 게임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등산, 술자리 게임, 나아가 사랑까지 포괄하면서 삶 그 자체까지 나아간다. 앞서 말을 꺼냈듯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의 핵심이다. (분투형 플레이는 응우옌이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버나드 슈츠의 개념을 가져와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 책의 초반부의 대부분은 슈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분투형 플레이의 회의론자들, 특히 성취형 플레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논파해 나가는 내용이다.)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무조건 이기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심지어 이겨버리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76) 게임이 쉬워져서 난이도를 보다 어렵게 조정하는 상황이나 애인과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헨리 시지웍의 ‘쾌락주의의 역설’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설명한다. 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면 오히려 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려고 하면 절대로 머리를 비울 수 없다. 오직 다른 목표에 헌신해야만 그러한 쾌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요가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육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손을 뻗어서는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영적 효과에 가닿으려는 행위성의 형식이다. 학부 시절 즐기던 술자리 게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술자리 게임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 게임은 아무런 재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술자리 게임을 통해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 웃고 친해지는 것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진짜 목적이다. 〈트위스터〉 같은 게임을 통해서도 분투형 플레이의 중요한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제한된 행위성을 통해서 결국 넘어지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일부러 넘어지면 재미가 없어진다. 진짜로 실패하여 넘어졌을 경우에만 재미가 생긴다. 진심으로 게임이 제안하는 어떤 동작을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경우에만 진짜 실패가 되어 모두가 크게 웃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 성공에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이렇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이 어긋나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취한다면,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수단을 취하기 위해서 결과를 추구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러면서도 일시적인 목표에 제대로 몰입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게임 속 목적에 완전히 몰입해야만, 목표는 추구될 수 있다. 게임의 과정을 즐기려면 일시적으로 승리에 대한 관심을 철저하게 장착해야한다. 누군가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금방 재미를 잃고 만다. 이것이 분투형 플레이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응우옌은 게임과 사랑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랑의 경우 목표에 대한 진심 어린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도구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나르시시즘이다. 심할 경우 스토커가 되어버린다. 게임에서 분투형 플레이는 게임 속 목표에 그토록 진정성 있는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일시적이고 인공적인 형식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부루마블〉을 할 때, 게임 속 씨앗은행 화폐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던 게임이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부루마블 속 화폐를 계속 소중하게 여겨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마차 상자 안에 넣지 못하고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해도 살짝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논할 때, 오늘날 온라인 게임들의 화폐가 실제 세계의 화폐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응우옌의 책에서 이러한 문제는 의도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한국 맥락에서 〈리니지〉 작업장 같은 사례를 떠올린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게임과 노동의 구분이 사라지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틀을 가지고 게임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 게임은 특정한 방식으로 형식화된 환경과 행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 속 목표들은 현실과 달리 굉장히 명료하다. 현실에서는 그토록 뚜렷할 수 없는 것들이 게임에서는 목적론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재구성된다. 수치화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하기도 한다. 삶을 그 자체로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은 삶의 목적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시 돌아와, 분투형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목표들에 일시적으로 헌신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심해야 한다.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덕스러움이 요구된다. 기존의 행위성 관련 논의들은 행위자의 통일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분투형 플레이는 행위성에 여러 가지 유의미한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100) 행위성이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긴 시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을 장착할 수 있는 인간 행위성의 유동적인 역량과 자율성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분투이다.(98) 그렇기에 게임 속 목표가 일회용이라는 점은 게임이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라는 매체가 행위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형식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이 된다.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게임의 목표와 규칙,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제약 체계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환경 등을 고안한다. 게임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을 통해 특정한 실천적 경험을 조형해 내는 것이다. 이런 형식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예술적 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임 디자이너의 매체는 행위성이다. 하나의 표어로 만들어 보자면,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이다.”(35) 예술은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응우옌은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미적 경험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과 플레이어가 취할 일시적 행위성을 형식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특정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아름다움은 행위가 형식화된 제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게 제한되는 조건이 여기에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형식이기도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에서 페이커의 플레이가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움직임의 절대적인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엄밀한 규칙의 체계 안에서 게임의 목표와 관련된 엄청난 행위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문제는 제한된 행위성의 형식 안에서 성공만이 예술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위성을 제한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나 부조화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난다. 키보드의 QWOP 버튼만을 이용해 다리의 관절을 제각각 조정하여 달리기를 해야하는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일부러 조작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형식 안에서 제대로 한번 달려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그 게임의 중요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 베네트 포디(Bennett Foddy)가 2008년에 만든 게임 〈QWOP〉. 출처: https://www.foddy.net/2010/10/qwop/ 게임은 이렇게 특정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행위의 형식으로서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타당하고, 오늘날 게임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적인 담론에서도 중요한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응우옌의 논의를 딛고서 다시, 게임이 왜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예술이라는 범주와 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면서 음악이나 회화 같은 예술의 매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모더니즘적 장르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영역을, 예술을 통해서 게임이라는 영역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예술에 편입되면서 발생했던 과거의 논쟁들을 변증법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한편으로 이 책에는 니콜라 부리요나 권미원 같이 미술계에서는 낯익은 필자들도 등장한다. 응우옌은 사회적 관계나 공동체에 관련된 예술 형식을 논하는 관점을 게임에 적용하며 니콜라 부리요의 논의를 빌려온다. “예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공간이다.”라는 니콜라 부리오의 말을 빌려와 게임도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282) 니콜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에서 관계를 다루는 예술 작업들이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이례적이고 특수한 관계적 상황을 창출한다며 옹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작은 유토피아’를 창출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양한 차원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러한 관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antagonism)를 은폐하고,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클레어 비숍의 논의는 굉장히 유효한 비판이다. 물론, 응우옌이 책에서 언급하는 게임이 모두 니콜라 부리오식 관계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관계를 통해서 적대를 감각할 수 있는 사례들에 대한 언급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렌다 로메로가 2009년에 만든 보드게임 〈기차〉에서 플레이어들은 기차를 운행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나중에 그 기차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나치의 기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가 2009년에 만든 게임 〈기차(Train)〉. 출처: http://brenda.games/train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에는 저자성의 문제도 있다. (보통 한명의) 예술가가 정해진 미적 형식을 인준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저자성은 굉장히 근대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관념이다. 응우옌의 논의에는 게임을 전형적인 예술의 개념틀에서 비추어 보기 위해 게임 디자이너를 전통적인 예술의 저자로 상정하는 문제가 전반에 깔려있다. 응우옌은 12쪽 각주 2번에서 게임 디자이너가 복수의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짚으면서도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한명인 것처럼 상정할 것이라고 쓰는데, 오히려 게임의 저자가 한명일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성의 문제는 단지 게임을 제작하는 관점에서만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저자성에 대한 논의까지 확장해 생각해야한다. 반갑게도 응우옌은 책의 후반부에 게임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미적 책임이란) 게임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사이에 복합적으로, 예술가와 관객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분배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책임이 주로 플레이어에게 있고 다른 경우에는 디자이너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책임은 복합적인 협업의 형태를 띤다. 이 경우,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한 미적 효과의 상당수를 성취하고, 그 최종 결과는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미적으로 귀속된다.”(253) 이러한 언급은 이 책에서 게임의 미적 역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디자이너가 의도하지 않은 행위성을 발생시키는 플레이어의 역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행위성의 제약을 위반하거나 허점을 찾아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주어진 역량을 의심하고, 게임 자체를 전유해 버리는 플레이어들.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을 비틀어 ‘해방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역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해방된 플레이어들은 단지 주어진 행위성을 가지고 노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아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게임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는 플레이어들을 떠올린다. 바로 이런 곳에서 미학(감각)의 정치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사유할 틈을 만들어 낸다. 응우옌의 논의를 이러한 관점과 함께 밀어붙여 볼 수도 있다. 그가 게임과 게임 플레이의 자율성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이 고안한 제한된 행위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형식화된 행위성이 그곳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형식화된 행위성들의 다발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서 다양한 행위성들의 라이브러리를 탐험하게 된다. 혹은, 서로 다른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성들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게임이 행위성을 매체로 삼는 예술이라면, 그것이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적이다.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는) 우리에게 여러 행위성을 넘나들고, 완전히 상충하는 여러 유형을 오갈 것을 요구한다.”(341) 심지어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의 상충되는 태도를 종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명료하게 조직화된 가치들 사이를 오가며 가치에 대한 어렵고 세심한 질문을 던질 것을 주문받는다. 응우옌이 보기에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명료성과 유혹의 쾌를 폐기한 뒤, 가치를 대하는 세밀함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의 구조는 우리의 자율성 전체를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다.”(125)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특정한 방식의 행위성에 순응하도록 만들지만, 우리는 그런 게임을 통해서 행위성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위성이 제한적으로 형식화되어 있기에 해방적으로 전유할 가능성도 열린다. 응우옌은 우리가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 특정한 실천적 틀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명료한 목표를 고수하지 않을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가에 푹 빠졌다가 또 빠져나오고, 깊게 몰입했다가도 다시 거리를 두는 방법을 게임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형식화된 행위성을 통해서 행위의 역량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게임이라는 가장 목적론적인 체제를 통해서 세계가 목적론적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능성을 더 넓게 열어내는 일이 『게임: 행위성의 예술』이라는 책을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1) 이러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C. 티 응우옌의 또 다른 논고 「예술은 게임이다: 왜 중요한 건 (예술과의) 고투인가」를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응우옌은 예술 감상 또한 고투의 과정이라고 쓴다. 예술 감상은 결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술 감상에 목표(goal)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술품 앞에서 가이드북이나 미술사 교과서만 읽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예술을 감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삶이 예술작품으로써 결말이 열려 있는, 끝나지 않는 대화가 되기를 바라지,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논변으로써 끝나버릴 무언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옮긴이 이동휘의 블로그: http://economic-writings.xyz/text/textblocks1/art_is_a_game.html Tags: 행위성, 응우옌, 행위성의예술, 북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 Back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30 GG Vol. 26. 6. 10. ‘이게 사는 맛이지!’, ‘살맛 난다!’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먹는 행위는 게임 안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삶의 다양한 부분을 표현하는 매체답게, 게임은 요리와 음식, 먹는 행위를 계속해서 재현해 왔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음식을 찾는 이유가 각양각색인 것도 여러 재현 방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의 ‘식(食)’이 그러하듯, 게임에서의 ‘식(食)’도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선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음식은 초창기 게임에서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게임 안에서 먹는 행위란 장르 별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먹는 것이 유독 중요한 장르가 있다면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1. 게임 속 음식의 계보 게임 속 음식의 역할을 떠올려봤을 때 크게 연상되는 건 세 가지다. 회복과 생존을 위한 소비재, 버프를 위한 보조 아이템, 거래 물품. 이 외에 음식과 연계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마 몇 가지 말하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 <버블보블>. 출처: 닌텐도 스토어 이런 음식은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에서 점수로 기능했다. <버블보블 Bubble Bobble >과 같은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버블보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애초에 굶지 않았고, 음식은 플레이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튀어나왔다. 이 안에서 음식은 플레이 성과를 시각적으로 환산하는 기호나 마찬가지였다. 현실 값어치나 포만감의 정도를 따라, 과일 한 알보다는 케이크 한 접시나 라멘 한 그릇이 더 큰 점수를 주는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 <파이널 파이트>. 출처: Game Informer ( https://gameinformer.com/2020/08/25/the-top-10-health-items-in-gaming ) 이렇게 가격과 포만감을 점수 기준으로 삼던 음식은 점차 체력을 회복시키는 장치로 나아가게 되었다. <파이널 파이트 Final Fight >에서 쓰레기통이나 상자를 부수고 등장하는 음식들이 그러하다. 위스키, 과일, 초밥, 바비큐 등 종류도 다양한 이 음식들은 캐릭터들이 다시 싸울 체력이 되어준다. 이 음식들의 회복량은 앞서 점수로 기능하던 음식들의 법칙과 동일하게 적용됐다. 만복감이 큰 음식일수록 회복 비율이 높아지고, 끼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음식은 회복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고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방식은 이러한 상징과 함께 나타나, 플레이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다만 위의 사례들을 두고 게임 안의 음식이 완벽하게 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쓰레기통과 상자 안에서 튀어나오는 음식은 조리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며, 상하지도 않은 채 온전하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음식이 몸을 회복시키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안에서는 소화되는 무언가에 대한 경계도 불안도 없다. 이 시기의 게임 음식들이 완벽한 재현 요소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음식이 평범한 먹거리로 기능하지 않는 탓이다. 이 음식들에 요구되는 것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연료 역할이다. *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와 페스티벌 푸드. 이런 음식의 기능은 온라인 게임 시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이제 음식은 점수나 회복의 역할을 넘어, 플레이어 간 유대를 다지는 장치가 된다.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는 악기를 연주하며 음식을 쉐어링하는, 낭만적 모험의 표본을 재현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밥을 먹으며 친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모닥불 앞에서 서로가 가진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새로운 친목의 형태로 작용했다.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를 게임 세계 속 주민으로 정착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온라인 게임 속 음식은 능력치를 강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마비노기>의 ‘페스티벌 푸드’가 버프로 기능하는 음식의 한 예다. 재료의 품질이 좋을수록 축제요리의 효과도 강력해지는데, 여기서 보정된 능력치를 통해 더욱 수월한 전투를 할 수 있게 된다. 축제요리를 먹는 것은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해온 게임 내 음식의 역할은 점수-회복-교감과 버프라는 계보를 형성한다. 이러한 계보는 게임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음식의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음식은 서바이벌 게임에 이르러, 한 단계 더 다른 측면으로 나아가게 된다. 2. 음식에서 식량으로: 서바이벌 게임 안의 음식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속 음식은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지표이자, 플레이를 지속해 나가기 위한 회복 아이템이었고, 공동체 경험과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보조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속성은 대부분 서바이벌 게임으로 계승되는데,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굶지마 Don't Starve >는 그야말로 매 순간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게임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는 몬스터를 비롯하여 여럿 나타나지만, 플레이어에게 가장 큰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굶주림이다. 동일 제작사 게임인 <산소미포함 Oxygen Not Included >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식량자원이 귀한 이 세계관은 칼로리마저 중요하게 따져야 한다. 열량은 수명이나 다름없고, 식량의 존재 여부는 곧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만든다. * <프로젝트 좀보이드>. 좀비가 창궐한 세상이 배경인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도 비슷한 방식으로 생존해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 피우는 법을 익히고, 씨앗을 찾아 농사를 지으며,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팀원들에게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고, 남은 음식이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식량인 통조림은 그것을 뜯을 도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는 <더 롱 다크 The Long Dark >도 동일하다. 심지어 <더 롱 다크>는 제대로 된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부분마저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플레이어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음식을 먹고,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세계에 더 오랫동안 발을 붙여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서 서바이벌 게임 속 음식은 소비재인 동시에 투자 대상으로도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생산과 저장, 분배를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의 허기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액션 게임에서 죽음은 적이 가져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서바이벌 게임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다. 그러므로 서바이벌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상대하는 것은 적만이 아니다. 시간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플레이어 자신의 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음식은 이전 장르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점수, 회복, 교감과 버프의 수단이었던 음식은 생존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으로 변화한다. 음식의 조리법과 효과는 구체화되고,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플레이어는 다가올 겨울과 재난, 이동 불가능한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허기는 반드시 찾아오고, 그에 따라 몸도 소모된다. 여기서 서바이벌 게임 내 음식의 속성이 마지막으로 드러나는데, 맛과 향은 구현되지 못해도 배고픔만큼은 집요하리만치 재현된다는 점이다. 식량이 줄어들수록 플레이어를 옥죄어오는 건 허기의 압박감이다. 허기는 곧 게임 오버와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바이벌 게임은 오관(五官)보다 섭생의 감각을 전달하는 데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먹음으로써 재현되는 것 게임 속 음식은 점수와 회복 수단에서 시작해, 공동체 경험과 생존의 조건으로까지 확장됐다. 이 계보는 인간의 삶과 몸에 대해 상상해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왜 게임은 이러한 요소들을 끊임없이 재현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왜 이것은 서바이벌 장르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재현되는가? 요리하고 먹는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해진 행위다. 늘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먹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먹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먹고 사는 문제란 원래 어렵다는 것. 그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게 서바이벌 게임이 아닐까 한다. 서바이벌 게임은 원초적인 긴장감으로 이 감각을 복원시킨다. 그러나 이 복원에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현실의 굶주림은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서바이벌 게임의 굶주림은 개인 관리에 관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죽지만, 그 죽음은 사회적 비극이 아닌 실패한 플레이일 뿐이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사회 그 자체를 다루는 듯해도, 개인의 행위를 보다 중심에 놓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게임이 무언가를 다루는 방식에는 언제나 일정 부분의 공백이 남는다. 음식에 관한 문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게임 속에서 어떠한 ‘살맛’을 느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듯, 게임에서 느낀 즐거움과 만족감은 우리에게 사는 보람을 선사한다. 맛과 향은 전달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만큼은 느끼게 해주는 셈이다. 이런 부분에서 게임이 음식을 통해 재현하는 것은 살아간다는 감각, 또 하나의 ‘살맛’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최우수상)

    “장르에 무관하게 예술 작품은 환언하기가 불가능하다. (중략) 지식은 언제나 위로 환언하기 혹은 아래로 환언하기에 해당하지만, 예술은 소크라테스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28 GG Vol. 26. 2. 10. 1.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5년 12월 공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는 한국 게임문화의 구조적 전환점을 포착했다. 전국 10~69세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게임 이용률은 50.2%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9.7%p, 그리고 2022년 74.4%에서 불과 3년 만에 24.2%p가 감소한 수치이다. 2015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이자, 과반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50.2%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치 하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지난 십수 년간 게임 산업과 담론을 지배해 온 ‘게임의 보편화’라는 신화에 가해진 균열이다. 국민 대부분이 게임을 즐긴다고 자랑해왔던 그간의 조사결과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게임 이용률이 70%대로 상승했다가, 엔데믹 전환 이후 급락세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팬데믹 특수의 종료와 엔데믹 이후의 야외 활동 증가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2019년 이미 65.7%였던 이용률을 감안하면, 현재의 50.2%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훨씬 밑도는 수치다. 즉, 구조적 하락세 위에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변수가 중첩되었다 사라진 것이며, 팬데믹 이후 드러난 것은 팬데믹 이전부터 있어 왔을, 아니면 최소한 팬데믹과 함께 진행돼 왔을 게임 이용기반의 침식이다. 연령별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10대의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60대는 23.1%에 불과하다. 이는 게임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로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목할 점은 10대 이용률 역시 절대 수치는 높지만, 2022년 대비 하락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10대 인구 자체의 급감과 맞물려, 게임산업의 미래 이용자 풀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당연한 ‘예비 게이머’로 간주해온 측면이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런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2. ‘동영상 시청’이라는 대체재의 부상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서·웹툰·웹소설(40.3%)’, ‘운동·스포츠 관람(37.5%)’이 뒤를 이었지만, 그 합조차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에 미치지 못한다. 디지털 여가를 둘러싼 주의력 경제의 헤게모니가 ‘플레이’에서 다시금 ‘시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응답자가 항목 내 ‘OTT’에 유튜브나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을 포함하거나, ‘영화·TV·애니메이션’을 보고 해당 장르를 재가공한 숏폼 콘텐츠를 함께 떠올렸다면 디지털 여가의 주의력 경제 헤게모니 이동론은 더욱 탄력을 얻는다. (실제 보고서 중반부의 FGI에서 인터뷰이들은 OTT를 비롯한 동영상 시청과 관련해 숏폼을 함께 언급한다.) 이러한 대체재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OTT·영화·TV·애니메이션은 게임과 동일한 ‘스크린 시간’을 두고 경쟁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소비구조를 갖는다. 게임은 능동적 참여와 일정 수준의 몰입을 요구하는 반면, OTT·영화·TV·애니메이션 영상은 (물론 콘텐츠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수동적 시청만으로도 즉각적 만족을 제공한다. 특히 숏폼 콘텐츠까지 확장해 생각하면, 그것들은 15초에서 1분 내외의 짧은 호흡으로도 이용자들의 도파민을 분출시키며, 별도의 진입 장벽이나 학습 곡선 없이도 누구나 바로 소비할 수 있다. FGI 결과는 이러한 맥락을 생생하게 전한다. 50대 게임 미이용자들은 OTT를 보는 것이 편하며, 게임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20~30대 미이용자 사이에서도 게임은 집중해야 하는데, OTT나 숏폼은 틀어놓기만 하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팬데믹 이후 확산된 동영상 시청 문화는 사람들에게 ‘노력 없는 혹은 힘을 들이지 않는’ 휴식의 경험을 각인시켰고, 게임의 능동성은 이제 강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뒤따르는 피로로도 인식된다. 이는 단순한 선호의 변화가 아니라, 여가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나타낸다. 과거 게임이 제공했던 도전과 성취의 쾌락은, 알고리즘이 최적화한 무한 스크롤의 수동적 쾌락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특히 비여가시간에 일과 학습에 많은 집중을 해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여가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지 ‘또 다른 도전’의 시간이 아니다. 게임 미이용 이유 1위가 ‘이용 시간 부족(44.0%)’이지만, 그들은 같은 시간에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이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 아니라, 게임에 투자할 ‘심리적 여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3.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 게임 이용률 하락의 또 다른 요인은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이다. 조사에서 게임 미이용 이유 2위는 ‘게임 흥미 감소(36.0%)’였고, ‘게임 이용동기 부족(33.1%)’도 상위권에 올랐다. FGI에서 20~30대 이용자들은 반복적인 과금 구조, 새로운 경험의 부족, 돈을 쓰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는 구조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특히 한국 게임 시장을 지배해 온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모델은 단기 수익 극대화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규 이용자의 유입을 막는 장벽으로 기능했다. 시간과 노력 대신 돈을 써야 강해지는(Pay to Win) 구조로의 이행은, 많은 게임 플레이를 취미가 아닌 투자, 심하게는 도박과 유사한 행위로 인식되게끔 만들었다. 2025년 조사에서 게임 내 신규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이용자는 37.8%에 불과했다. 이는 대다수 이용자가 무과금 혹은 최소 과금으로 게임을 즐기려 함을 뜻하며, 동시에 수익은 소수의 ‘고래 유저’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에서 신규 이용자는 과금(특히 고래) 이용자를 위한 들러리 역할로 전락하기 쉽고, 당연히 게임에 진입을 안 하거나 게임을 이탈하는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4. 플랫폼 전쟁의 새로운 국면 플랫폼별 이용률 변화는 시장 재편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모바일은 여전히 89.1%로 압도적이지만, 전년 대비 2.6%p 감소했다. PC는 58.1%로 2.9%p 줄었다. 반면, 콘솔은 28.6%로 4.5%p 증가하며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 플레이스테이션 5 프로, 닌텐도 스위치 2 등 현세대 콘솔은 완성도 높은 패키지 게임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는 모바일의 P2W 피로감에 질린 이용자들에게 유의미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조사에서 콘솔 게임 이용 이유 1~2위가 각각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59.4%)’,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18.7%)’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모바일 게임 이용 이유 1위가 마찬가지로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이긴 하나 응답률이 72.0%로 높다는 점, 그리고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이 7.8%로 3위에 그친다는 점과 대비된다. 국내 게임사들도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콘솔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 둔화가 명확해진 지금, 8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콘솔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이에 많은 게임사들이 기존 PC → 모바일게임 중심에서 콘솔로 플랫폼을 확장 중이다. 다만, 콘솔을 중심으로 하되 멀티 플랫폼 형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이는 고품질 그래픽, 사실적 묘사, 액션 손맛 등을 구현하는 데 있어 콘솔이 최적의 플랫폼이고, 바로 그러한 점이 게임 개발 및 출시과정에 반영돼 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멀티 플랫포밍 전략은 최근 글로벌 게임 비즈니스의 추세이기도 하다. 모바일 시장 자체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SensorTower)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한국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약 2억 1천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유예나, 2026). 다운로드 감소는 신규 유입 둔화를 의미하며, 이는 시장이 성숙을 넘어 포화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시장이 포화 단계에 접어들면 소수의 검증된 타이틀에 이용자가 집중되고, 신작의 성공 확률은 급격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5. 잃어버린 10대 조사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10대 게임 이용률의 질적 변화다. 10대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절대 인구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 2024년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2020년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다. 이는 현재 10대 인구가 향후 10년 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임을 가리킨다. 게임 이용률이 유지되더라도, 모집단 자체가 줄어들면 절대적인 이용자 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10대의 여가시간 자체가 감소하고 있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은 여가 시간마저 동영상 이용에 잠식당하고 있다. 학부모 세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조사에서 게임 이용에 부정적인 주변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0.1%였으며, 특히 ‘조/부모님(20.6%)’, ‘친구/연인/배우자(14.8%)’가 주를 이뤘다. 그런 중에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를 위해 부모 및 자녀가 함께 게임 사업자에게 게임 서비스 시간이나 기간 제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에 대한 인지도는 28.3%에 그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구조적 변화와 긍정적이지 못한 환경이 지속되는 속에서 10대가 게임을 계속 여가로 선택할까? 현재 20~30대가 보여주는 게임 이탈 현상을 고려하면, 전망은 어둡다. 게임 업계와 정부 입장에서 미래 이용자 풀에 대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6. 게임 문화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게임의 문화적 위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축소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이라는 오래된 경쟁자는 게임보다 더 쉽고, 더 빠르게, 더 적은 에너지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제 소위 게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여가 활동 간의 경쟁은 어떻게 작동하나,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며 그 안에서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그래서 결국 지금 우리는 게임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을 돈을 쓰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얻는 곳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덜 쉽지만 훨씬 더 의미 있는 유희를 주는 것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게임 메카니즘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와 즐거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50.2%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이 수치가 바닥이 되어 반등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깊은 추락의 중간 지점이 될지는 지금의 업계, 정부, 그리고 이용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참고자료 유예나 (2026). [2025년 하반기 국내 모바일 게임 결산] 매출 28억 달러로 상반기 대비 8.3% 상승… 넥슨 사상 첫 퍼블리셔 1위. <센서타워>. URL: https://sensortower.com/ko/blog/2H2025-mobile-games-recap-in-Korea 지표누리 – 합계출산율. URL: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61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저우즈창, 周志强

    저우즈창, 周志强 저우즈창, 周志强 Read More 버튼 더보기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2024.02.10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버튼 더보기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2023.06.10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전체 2건 로딩중 더보기

  •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Back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16 GG Vol. 24. 2. 10. 서론: ‘애착’에 살고 죽는 ‘서브컬처 게임’ 대략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는 그러한 표현 양식을 내세우는 게임들에 의한,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순위 타이틀명 MAU(명) 19 원신 43만 23 좀비고등학교 39만 34 붕괴: 스타레일 31만 39 승리의 여신: 니케 24만 40 리버스 1999 24만 [표1] 2023년 12월 월간 인기 게임 순위(IGAWorks, 2023) 순위 타이틀명 스토어별 순위 구글 애플 원스토어 16 승리의 여신: 니케 14 18 - 18 원신 16 40 - 20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20 34 - 31 블루 아카이브 94 77 2 35 붕괴: 스타레일 33 28 - 41 리버스 1999 37 45 - 48 더블유: 크로스월드 43 61 34 39 던전앤파이터 44 36 - [표2] 2023년 12월 월간 게임 매출 순위(IGAWorks, 2023)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는가의 여부는, 그 장르의 게임들이 국내외 게임 시장에서 얼마나 고도의 월별 이용자(MAU) 인구수와 매출 순위를 기록하는지를 확인하여 알아볼 수 있다. IGAWorks가 발표한 2023년 12월 게임 MAU‧매출 순위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서 ‘서브컬처 게임’ 중 상위권을 기록한 게임들은 〈원신〉(MAU 43만명, 19위/매출 종합 18위), 〈붕괴:스타레일〉(MAU 21만명, 39위/매출 종합 34위), 〈승리의 여신:니케〉(MAU 24만명, 39위/매출 종합 14위) 등 이미 다수가 존재한다(IGAWorks 2023) [표1][표2] . 한편으로는 MAU 실적 부문에서 다른 게임들에 비해 MAU에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서브컬처 게임’이 매출 기준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관측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더불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20위), 〈블루 아카이브〉(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31위)와 같이, 똑같은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을 사용하면서도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들이 그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여 이러한 게임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게이머들이 보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며 즐기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러한 유형의 게이머들(이후 ‘서브컬처 게이머’들로 표기)은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그 캐릭터에 대한 애착, 즉 ‘모에’(萌え)를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이정훈 2021). 도대체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어떤 이유로, 그들이 즐기는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해 이와 같은 애착을 어필하는 것일까? 2. 본론: 캐릭터에 대한 ‘모에’의 보편화와 개량, 노출 [그림1] 〈겨울연가〉를 모티프로 일본만화 〈은혼〉의 패러디를 시도한 일본 동인지(©白玉団子) [그림2] 〈블루 아카이브〉를 패러디한 한국 동인지 〈삼인삼색〉(©순수한불순물) ‘모에’, 다시 말하여 캐릭터를 비롯한 공상적인 피조물을 깊이 마음에 품는 행태(야스다‧손낙범 편저 2016)가 발현되는 계기는 그 행위자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만 ‘모에’를 유발할 수 있는 캐릭터의 표현 요소가 하나의 작품군, 또는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음은 아즈마(東 2001) 등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가 있다. ‘모에’라는 심리상태 자체는 그것이 굳이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 TV드라마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井手口 2009),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청하고 팬이 된 일본인 중에서, 작중 인물을 패러디하거나 세계관, 혹은 극중 클리셰를 오마쥬한 2차 창작물을 생산해 유통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림1] . 그러나 예를 들어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서브컬처 게임’을 향유하는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캐릭터를 모사하거나 다른 IP와 조합한 2차 창작 출판물, 즉 ‘동인지’를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판매전에서 제작‧매매하는 형식으로 그 ‘모에’ 촉발 요소를 유통하고 있다 [그림2] . 즉,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모에’의 요소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익숙해지고, 때로는 그 표현 양식에서 파생된 창작물을 스스로 제작‧유통함으로써, 자신들 또한 다른 향유자들이 같은 표현 양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공모자에 위치하게 된다. 아즈마는 TV애니메이션 〈디‧지‧캐럿〉(デ・ジ・キャラット, 1998) [그림3] 의 주인공 캐릭터인 데지코(でじこ)의 대표적인 조형상 특징점인 ‘고양이 귀’, ‘메이드복’, ‘더듬이처럼 뻗은 머리카락 한 가닥’, ‘큰 손발’ 등이, 사실은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 〈크림 레몬‧흑묘관〉(くりぃむレモン・黒猫館, 1989) [그림4] 이나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痕, 1996) [그림5] 에서 처음 등장하여 전파된 의상이나 신체적 특징 묘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정리하였다(東 2001). 그의 설명대로라면 캐릭터를 조합하는 과정은 소비자로 하여금 최대한 ‘모에’를 느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상업적 프로세스인 것이다. 이윽고 만화 정보 검색 사이트 〈TINAMI〉( https://www.tinami.com) 와 같은 온라인 정보교류 공간을 통해, ‘모에’를 유발하는 캐릭터의 특징들을 팬들과 크리에이터가 공유하고 유통하는 구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이 캐릭터의 특징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원작 캐릭터에 대한 패러디가 수반되기도 하며, 2차 창작을 통해 원작과 무관한 세계에 처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자신만의 특색을 굳게 지켜나가고 있는데, 이는 이토(伊藤 2005, p54)가 지적했듯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에 중점을 둔 소비가 보편화된 것에 기인한다. [그림3(왼쪽)] 〈디‧지‧캐럿〉의 주인공 캐릭터 데지코 (©Bushiroad ©令和のデ・ジ・キャラット ©BROCOLLI) [그림4(가운데)] 〈크림 레몬‧흑묘관〉의 작중 장면(©フェアリーダスト) [그림5(오른쪽)]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Leaf)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서브컬처 게임’ 크리에이터들 중에는, 상술한 과거 일본으로부터 전수된 ‘모에’ 코드를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가공하고, 나아가서 ‘모에’를 유발하는 동기의 설명 자체를 개량하려 시도하는 개인도 등장하고 있다. 이후 〈블루 아카이브〉의 총괄PD에 오른 김용하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을 입증하는 ‘거위가 가짜 알을 품게 만들기’ 실험을 2014년 당시 강연에서 소개하면서, 실존하는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한 가짜는, 심지어 자연계에서조차 진짜보다도 더욱 선호된다고 주장했다(Barrett 2010). 또한 인간이 보았을 때 가장 매력을 느끼는 타인의 얼굴에는, 성적 매력을 자극하는 요소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움의 요소가, 7:3 전후의 비율로 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선행 연구도 함께 언급하였다(김용하 2014). 그의 주장을 폭넓게 해석하자면, 앞에서 말한 ‘고양이 귀’, ‘메이드복’이나 ‘안경’과 같이 ‘모에’를 유발하는 요소를 무작정 조합하기보다, 캐릭터의 종합적 매력을 최대화하면서도 시대의 유행에 부합하는 맥락을 세우면서 그에 맞는 조합을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시청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시청한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심리적으로 더욱 가깝게 느낀다는 연구 사례까지 고려하면, 똑같이 ‘모에’ 코드를 이어받은 게임 중에서도, 일별 로그인 보상과 같이 정기적인 접속을 권장하는 게임이야말로 유저의 친근감을 노리기 용이해진다. 예를 들어 TV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같이 연출상의 이유로 매주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장면은 시청자의 머릿속에 더욱 쉽게 기억된다. 그런데 해당 장면의 배경 장소가 실존하는 어딘가를 모티프로 삼았으며, 추후 시청자가 그 실존하는 장소를 실제로 찾았을 경우, 시청자는 그 장소에 대한 친근감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그림6(왼쪽)] 〈블루 아카이브〉의 뽑기 장면에 등장하는 ‘아로나’ (©2021 NEXON Korea Corp. & NEXON GAMES Co., Ltd.) [그림7(오른쪽)]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로그인 장면에 등장하는 ‘아오바 미사키’(©窪岡俊之 THE IDOLM@STER™& ©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이러한 일종의 각인 효과는, 공간은 물론 인물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매일 게임에 로그인하여 소소한 게임머니나 강화 아이템을 비롯한 접속 보상을 챙기는 동안 [그림6] , 그 게이머는 자신이 ‘모에’를 느끼거나 느낄 만한 캐릭터가 출력되는 화면을, 로그인 화면이든 가챠(뽑기) 화면 [그림7] 이든 어디선가 일정한 상황에서 항상 접하게 된다. 3. 결론: 정리, 그리고 연구 노력의 필요성 지금까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 보자. ‘서브컬처 게임’에 대하여 게이머들이 ‘모에’를 느끼게 되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첫 번째로 현재의 ‘서브컬처 게임’들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과거의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모에’ 코드는, 이후 다른 크리에이터와 팬들에 의해 유통되고 재가공되면서 제작의 노하우를 축적했고 세력 또한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캐릭터의 신체‧복장상 특징을 우선시하던 ‘모에’ 코드에의 고찰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얼굴에서 드러나는 ‘성적 본능 자극’과 ‘귀여움’의 요소 조합, 시대 맥락에의 부합까지 따지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완성도를 높여간 ‘모에’의 노하우는 게이머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디자인 외적인 기회를 얻게 되는데, 매주‧매일마다 반복 방영되는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처럼 게이머들을 일상적인 접속으로 이끌게 해주는 일일 로그인 보상이나 가챠 연출과 같은 상투적 연출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블루 아카이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지만, 게이머가 캐릭터에 대한 ‘모에’를 느끼는 게임들 중에는 미소녀를 내세우는 것들이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로 인해 이들 게임을 ‘남성 전용 게임’이라고 오해하는 태도가 게임 업계의 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주마를 미소녀형 캐릭터로 재창조한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한국 서버 기준 남녀 성비가 2023년 7월 기준으로 정확히 50:50이었다는 기사에서처럼, 남성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적지 않은 여성 유저들이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게임와이 2023.7.4.).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모두가 ‘모에’ 그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소녀 캐릭터를 문제시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그 캐릭터의 디자인보다는, 예를 들어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성적 특성의 묘사와 같은, 다른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련의 문제를 포함하여, 게임계에서의 ‘모에’ 담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와 분석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에’를 소중히 생각하는 팬이나 크리에이터에 의한 자기진술 이외에도, 게임업계 바깥에서 문화연구라는 본업에 종사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참여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참고문헌] 게임와이(2023.7.4) 「서브컬쳐의 힘…’우마무스메’ 국내에서 1년 동안 1,000억 원 매출 올렸다」, https://www.gamey.kr/news/articleView.html?idxno=3005749 . 김용하(2014) 「모에론」, NEXON DEVELOPERS CONFERENCE 2014,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 . 야스다 요시미‧손낙범 편저(2016) 「萌え」, 『엣센스 일한사전』, 민중서림. IGAWorks(2023) 「월간 인기 앱‧게임 순위 2023년 12월」, https://mktcloud.igaworks.com/report/mkt/376 . 이정훈(2021) 「콘텐츠투어리즘과 지역활성화: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건국대학교 대학원. Barrett, D.(2010) Supernormal Stimuli ~How Primal Urges Overran Their Evolutionary Purpose~, W. W. Norton & Company. 東浩紀(2001) 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 オタクからみた日本社会』, 講談社. 井手口彰典(2009) 「萌える地域振興の行方--「萌えおこし」の可能性とその課題について」, 『地域総合研究』(37), 鹿児島国際大学附置地域総合研究所, pp.57-69. 伊藤剛(2005), 『テヅカ・イズ・デッド ひらかれたマンガ表現論へ』, NTT出版.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이정훈 ‘국민학생’ 시절부터 PC게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으나, 지금처럼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생활로 받아들인 것은 2001년부터의 일이었다. 특히 미소녀 캐릭터에 정성을 많이 두는 게임을 선호해 왔으며, 짧게나마 게임회사 및 라이트노벨 출판사에도 재직하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업계를 떠난 이후에도 메이지대학 대학원 국제일본학연구과(2016~2018, 석사)와 건국대학교 대학원 일본문화·언어학과(2019~2021, 박사), 히로시마대학 인간사회과학연구과(2022~2023, 객원연구원) 등의 학업과정에서 서브컬처 문화를 계속 다루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와 도시의 전략-시즈오카현 누마즈 시의 관광객 증감 및 상업시설의 형상 변화를 중심으로」(2020, KCI 등재), 「The Violation of the Freedom of Play by the Game Rating and Administration Committee of South Korea」(2023, A&HCI 등재) 등 총 8건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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