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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고기 백파운드: 교육용 게임과 〈오레곤 트레일〉의 유산

    현 시점에 〈오레곤 트레일(The Oregon Trail)〉에 대한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다. MECC(Minnesota Educational Computing Consortium)가 만든 이 고전 게임에 대한 글은 수없이 많은데, 예컨대 캐릭터가 게임 내 여정 속에서 가장 많이 겪게 되는 이질(dysentery)은 유명한 관용구가 되어 온갖 상황에서 사용되어왔다. 이 글은 〈오레곤 트레일〉이 남긴 유산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게임문화와 주류 대중문화를 이어주고 있는 게임의 영향력에 대한 증언이다. < Back 곰고기 백파운드: 교육용 게임과 〈오레곤 트레일〉의 유산 06 GG Vol. 22. 6. 10. - 이 글의 영문 원문 버전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6fd063b-718c-4223-bda3-a5dc4679cc28 현 시점에 〈오레곤 트레일(The Oregon Trail)〉에 대한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다. MECC(Minnesota Educational Computing Consortium)가 만든 이 고전 게임에 대한 글은 수없이 많은데, 예컨대 캐릭터가 게임 내 여정 속에서 가장 많이 겪게 되는 이질(dysentery)은 유명한 관용구가 되어 온갖 상황에서 사용되어왔다. 이 글은 〈오레곤 트레일〉이 남긴 유산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게임문화와 주류 대중문화를 이어주고 있는 게임의 영향력에 대한 증언이다. 이 게임은 1980년대 미국의 청소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반영한 ‘오레곤 트레일 세대’라는 명칭은 교실에서 비디오게임을 경험하며 성장한 첫번째 세대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이 글은 〈오레곤 트레일〉 및 오레곤 트레일 세대라는 개념을 되돌아보고 이 게임이 수십년째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진짜 오레곤 트레일과 게임 〈오레곤 트레일〉의 간단한 역사 게임의 제목과 테마를 따온 실제 오레곤 트레일은 이민자들이 미 서부의 오레곤과 캘리포니아, 콜로라도로 이주할 때 사용된 도로로서, 1840년대부터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는 1869년까지 사용되었다 1) . 데이비드 더리(David Dary)는 최고 전성기 때 최소 25만명의 사람들 - 주로 가족들 - 이 새로운 안식처에 도달하기 위해 척박한 대지를 4개월이 넘는 시간에 걸쳐 이동하면서 이 도로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2) . 국립 오레곤 트레일 역사 연구센터(the National Historic Oregon Trail Interpretive Center)〉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 여정에서 적어도 2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 3) . 이주민들의 이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학교에서 중요하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오레곤 트레일〉이라는 게임이 기념하는 미국사의 한 부분이다. 〈오레곤 트레일〉은 여러 버전으로 나왔다. 돈 라위치(Don Rawitch), 빌 하이네먼(Bill Heinemann), 폴 딜렌버거(Paul Dillenberger)가 개발한 최초 버전은 돈 라위치가 자신의 수업에서 서부 이민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보드게임에 기반한 것이었다 4) . 이후 미네소타에 위치한 교육용 게임 개발사 MECC에서 원본 개발자들이 원본을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으로 변환시켰고, 이 버전이 1975년 미네소타의 여러 학교들에 배포되었다. 이 게임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곳은 미네소타였으며, 이후 MECC가 애플II 기종을 미 전역 학교에 보급하고자 했던 애플 컴퓨터 5) 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이 게임이 미 전역의 학교로 확산된다. 애플 II가 미국의 교육망 내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이 새로운 지배적 컴퓨터 시스템에 맞춰 1985년에 〈오레곤 트레일〉이 다시 제작되는데, 바로 이 버전이 여러 포맷으로 미국 전역의 학교들에 재배포되는 바로 그 버전이 된다. 이후 이 게임은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포함해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오레곤 트레일〉의 플레이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이주민 가족이 되어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타운에서 출발하여 미 대륙을 횡단하는 긴 길을 따라 오레곤 시티까지 이동하게 된다. 먼저 은행가, 목수, 농부 등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마차를 끌 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복장(복장을 잘못 입으면 도적떼를 만나 털릴 수 있다), 사냥을 하기 위한 총알, 식량배급량, 피할 수 없는 데미지를 입은 마차의 부속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예산의 양이 정해진다. 은행가의 경우 예산은 가장 많지만 (게임 완료시) 받을 수 있는 점수가 낮고, 농부는 예산이 제일 적지만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직업을 선택하고 나면 5명으로 구성된 파티의 이름을 짓게 된다. 이는 사실 잔인한 면이 있는데, 왜냐하면 어떤 파티를 구성하더라도 그들은 서부로의 (대체로 필멸하게 되는) 여정 속에서 온갖 유형의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레곤 트레일〉의 마법은 게임 초기 화면의 밝은 색채와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성에 기반한 무해한 교육용 게임이라는 인상에서 비롯되는데, 그 마법이 주는 환영은 상점주인 매트(Matt the Shopkeeper)가 플레이어의 돈을 받고 플레이어의 가족을 무덤으로 데려가게 될 황소를 넘기는 시점부터 빠르게 사라진다. * 〈오레곤 트레일(1991)〉의 플레이 화면 플레이어는 날씨와 식사 배급량, 구성원들의 건강 상태, 그리고 다음 거점까지의 거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인디펜던스 시티를 출발한다.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와 식사 소모량의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데, 여정 내내 구성원들의 시체가 쌓이는 광야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겪게 된다. 구성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게임의 코어 메카닉이라 할 수 있지만, 식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중간 거점들에 닿을 때마다 쉬는 것 외에는 구성원들을 괴롭히는 온갖 고통스러운 사건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게임의 대사 중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은 이질로 사망했습니다(“You have died of dysentery”)”인데, 이 문구는 플레이어 파티의 구성원들이 소멸하는 상황을 지칭하는 유명한 밈이 되었다. 우리의 문화적 기억상 이 문구가 의미하는 바란, 이 게임이 교육용 게임인 동시에 희한한 호소력을 지닌 고난의 시뮬레이터라는 것이다. 최근 이 게임을 다시 플레이해보았는데, 나는 도적들에게 두 번 당했고, 콜레라와 홍역을 앓았으며, 뱀에게 물렸고, 모든 아이들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이는 내 파티 구성원들을 덮친 불행의 일부였을 뿐이다. 구성원들이 모두 사망하면 다시 플레이하라는 조롱조의 간략한 문구가 새겨진 묘비를 만나게 되는데, 이 문구를 본 플레이어들은 가망이 없음에도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배급 받은 식량이 동나면 총알을 모아서 사냥에 나서야 한다. 내가 플레이한 버전에서는 다람쥐, 사슴, 버팔로, 곰을 사냥할 수 있었는데, 사냥은 화면 안을 돌아다니는 동물을 총알로 맞추는 것을 돌과 관목이 방해하는 미니 게임의 형태로 제시된다. 작은 동물들이 제공하는 고기는 아주 적지만 버팔로나 곰은 많은 양의 고기를 제공하는데, 그 중에 마차로 가져갈 수 있는 양은 한번에 최대 100 파운드로 제한된다. 가족들을 먹이고 싶은데 직업이 은행가라면, 사냥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어쨌든 사망하게 된다. 게임화 된 이주민들의 투쟁이 게임에 있어 역사와 가장 강력한 연관을 지닌 부분인 가운데, 플레이어는 또한 여정 중간 중간에 예술적으로 재현된 랜드마크들을 마주치게 되면서 미국의 지리도 접하게 된다.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이주민들 그리고 원주민들과도 거래하고 대화도 나누게 되는데, 여기서 제시된 역사는 - 놀랍지 않게도 - 미국 이주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북미 중심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서린 슬레이터(Katherine Slater)는 “〈오레곤 트레일〉의 여러 버전이 노골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로의 확장에 따른 대량 학살이라는 결과와의 연계를 거부함으로써 백인 이주의 에토스를 특권화하는 인종주의적 내러티브를 영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 . 하지만 애초에 〈오레곤 트레일〉이 이주의 과정에서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를 디테일하게 제대로 전달했다면, 이 게임은 학교에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주민이 식민지에 정착하는 내용 중심의 커리큘럼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레곤 트레일〉이 그처럼 광범위하게 배포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일부 추측인 부분도 없지 않지만, 분명한 점은 〈오레곤 트레일〉이 특별히 역사적으로 정확하거나 미묘한 균형을 맞춘 역사적 기록인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용 게임의 대명사로서 이 게임이 지속적으로 플레이어들의 각광을 받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한 세대와의 동의어가 되기도 했다. 오레곤 트레일 세대 ‘오레곤 트레일 세대’는 명확한 규정이 어려운 용어다. 이 용어는 1977년에서 198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또한 ‘제니얼(Xennials)세대’로 불리거나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 낀 ‘초소형 세대(micro-generation)’라 불리기도 한다 7) . 이 ‘초소형 세대’라는 명칭은 그들이 컴퓨터가 주류에 진입하던 시기 - 특히 가정 또는 학교의 컴퓨터 랩실에 컴퓨터가 놓이기 시작하던 - 에 성장했기 때문인데, 〈오레곤 트레일〉이 번들로 설치됐던 것이 바로 그 컴퓨터들이었다. 따라서 어떤 집단을 이르는 하나의 명칭으로서 '오레곤 트레일 세대'라는 용어에는 문제가 없지 않은데, 왜냐하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해당 세대의 연령대, 기술의 출현 및 그에 대한 접근성 등과 관련해서 하나의 기술이 가정과 학교에 자리잡게 되는 과정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X세대 중에는 기술에 능숙한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아예 그 새로운 기술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에 진입하기 전까지 그러한 기술에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는 장비를 갖추지 못했던 가정과 학교도 많았다. 이처럼 시대를 변수로 해서 오레곤 트레일 세대를 규정하는 것은 모호하지만, 그 명칭이 전례없이 교실에서 교육용 게임을 접하면서 자란 학생들을 지칭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 세대를 제니얼 세대이되 그 세대적 경계가 해당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교실이나 일상 속에서 교육용 게임에 정기적으로 노출되었던 학생들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경험을 한 독립적인 X세대 학습자들도 오레곤 트레일 세대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레곤 트레일 세대’란 세상과 관계를 맺는 전반적인 과정의 일환으로서 교육용 게임과 친숙하게 자란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오레곤 트레일〉은 수많은 학습자들에게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그러한 영향력을 지닌 유일한 교육용 게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오레곤 트레일〉을 비롯해서 〈칼멘 샌디에고(The Carmen Sandiego, Broderbund, 1985)〉 시리즈 - 나나 내 친구들의 경우 〈크로스 컨트리 캐나다(Cross Country Canada, Ingenuity Works, 1986)〉 - 같은 게임들이 교육용 게임에 대해 그처럼 강렬하고 긍정적인 감정과 기억을 남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렸을 적 남는 시간마다 〈오레곤 트레일〉 계열의 게임인 〈크로스 컨트리 캐나다〉를 플레이하기 위해 교실 뒷편의 컴퓨터로 달려가곤 했다. 어린 학생들이었던 우리는 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캐나다의 고속도로를 횡단할 수 있게 해주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리를 배우게 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이는 단지 우리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또 그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학수고대하던 일상의 일부였다. * 〈크로스 컨트리 캐나다〉 플레이 중 캐나다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모습(1986) 다시 〈오레곤 트레일〉로 돌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우리와 같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자. 〈오레곤 트레일〉이 역사를 잘 재현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이 게임은 지극히 오래된 방식으로 원주민을 재현하는 등 미 서부 이주에 대한 익숙한 비유와 상징들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게임이 대상에 접근하는 수준은 - ‘교육용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단 여타의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 결코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게임이 지닌 문화적 유산 - 온갖 고난과 장애물, 디지털 이질을 쉴 새 없이 겪게 만든다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 을 꼽자면, 대중문화에 있어 그 존재감 그리고 플레이해 본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지니고 있는 호감의 기억을 들 수 있다. 부분적으로 이와 같은 호감의 기억은 모든 학생들에게 먼지 날리는 분필이나 프로젝터용 투명 시트가 효과적인 수업 방식이 아니었던 가운데 역사 배우기를 포기했던 학생들에게 〈오레곤 트레일〉 류의 교육용 게임들이 그 학습 주제를 커리큘럼에 적합한 수준에서 감각적인 연결을 가능케 해준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수업 방식은 가르치는 주제와 무관하게 늘 동일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학생들에게 있어 그러한 전통적인 수업 방식이 직접 가족의 이름을 짓고 서부로 멀고 먼 여행을 보내는 것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오레곤 트레일〉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에 그 경험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학습 루틴에 화려한 색감과 드라마, 그리고 선택를 추가한 새로운 학습 방식 - 되풀이되는 루틴상에 변화를 준 것 -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레곤 트레일〉 이후 교육용 게임들이 그만큼의 높은 문화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실 내 테크놀로지 사용이 상당히 증가하면서 교실의 PC가 한 때 그랬던 것만큼 새롭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겠다. 더구나 〈오레곤 트레일〉이 부상하던 시기는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교육용 게임이 주류 게임들과 비교할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 경험에 있어서도 보다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청소년들이 집에서 플레이하는 게임들이 미학적으로나 게임성에 있어 학교의 교육용 게임을 아득하게 넘어서게 되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도 교실에 1990년대 초의 게임들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교육용 게임들이 나름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 게임들은 그러한 흔적을 남긴 최초의 경우도 아니었을뿐더러 애플II의 등장과 함께 미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학교의 기술적 진화가 진행됐던 시점에 플레이됐던 것도 아니었다. 즉 〈오레곤 트레일〉은 딱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적절한 게임이었을뿐 아니라 그 플레이어들에게도 깊이 와 닿은 게임이었던 것이다. 여타의 게임들과 비교해서 미학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뛰어났던 〈오레곤 트레일〉은 이후에 등장하는 교육용 게임들에 있어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역사를 완벽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습용 도구로서 학생들을 게임으로 이끌면서 해당 주제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관여하도록 만들었으며, 문화적으로 그 경험에 대해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기억을 갖도록 만들었다. 곰고기를 백파운드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했던 게임상의 제한처럼, 〈오레곤 트레일〉이 제공했던 수많은 것 중 학습자이자 플레이어로서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것은 이질과 관련된 밈이라는 아주 작은 부분에 한정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용 게임으로서 〈오레곤 트레일〉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레곤 트레일〉과 같은 교육용 게임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구축된 또는 타매체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당 주제를 탐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습 여정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오레곤 트레일〉 뿐 아니라 교사, 책. 공부 습관 등 학습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은 우리 각자 앞에 놓여있는 위험한 여정에서 좀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David Dary. The Oregon Trail: An American Saga. New York: Alfred A. Knopf, 2004. 2) Ibid. 3)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Bureau of Land Management Educational Resource. (https://www.blm.gov/learn/interpretive-centers/national-historic-oregon-trail-interpretive-center/history-and-educational-resources) 4) Greta Kaul. “Almost 50 years ago, Oregon Trail revolutionized educational software. Can the game’s creators do it again?” MinnPost, April 14th, 2017. 5) Audrey Watters. “How Steve Jobs brought the Apple II to the classroom.” Hack Education, February 25th, 2015. 6) Katherine Slater. “Who gets to die of dysentery?: Ideology, geography, and The Oregon Trail.” Children’s Literature Association Quarterly 42, no. 4 (Winter 2017): p381. 7) Anna Garvey. “The Oregon Trail Generation: Life Before and After Mainstream Tech.” Social Media Week, August 21st, 201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장지영

    한국어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주로 근대 비평과 문화사를 공부했으며 식민지 시기 및 해방기의 학술과 관련한 지성사 연구를 이어왔다. ‘게임보이’로서 지냈으나 게임을 잘/많이 하지/알지 못했음을 뒤늦게 안 게이머이다. 장지영 장지영 한국어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주로 근대 비평과 문화사를 공부했으며 식민지 시기 및 해방기의 학술과 관련한 지성사 연구를 이어왔다. ‘게임보이’로서 지냈으나 게임을 잘/많이 하지/알지 못했음을 뒤늦게 안 게이머이다. Read More 버튼 더보기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2022.04.10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전체 1건 로딩중 더보기

  • [Editor's View] 네트워크 시대에 새롭게 자리잡은 협동의 의미에 대하여

    온라인 네트워크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이제는 함께 하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싱글플레이보다도 보편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옵CO-OP이라는 말은 어쩌면 당대의 모든 온라인게임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실제 이 말이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색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모두,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nsu Jang A hybrid build who leveled up the no-synergy skill trees of "civil engineering" and "Korean language & literature," then went and picked "video production" as a second-job advancement... (not a wasted build, at any rate). After ten years as a broadcasting PD—OGN, the game channel, included—now a post-resignation freelance PD, juggling a circus act somewhere between life's "gacha" and "deck-building."

  • No Game for Young Men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riter) (Writer)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 Back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10 GG Vol. 23. 2. 10. 엉덩이 모핑이 주가 되는 게임은 아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그래서 출시 이후 게임에 대한 리뷰에 접근하는 유튜브 채널들 등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알 수 있다. 출시된 게임은 제작사인 시프트업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던것처럼 수려하지만 섹슈얼리티를 한껏 강조한 여성형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 캐릭터를 수집하여 플레이어인 지휘관이 일종의 미소녀 하렘을 만드는 형태를 보여준다. 거기에 가슴과 엉덩이 모핑이 강조된 게임이라니, 이러한 요소들을 좋아하는 유저들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정도의 의미에 그치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흥미로운 요소들은 사실 부각해 광고한 것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바로 세계관의 설정과 스토리텔링이다. 우선 〈니케〉는 아주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계관의 설정과 그 안에서 주가 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인 ‘니케’의 설정,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스토리 모두 잘 짜인 상태이다. 특히 튜토리얼 성격의 첫번째 챕터 이후에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홍보에 그치는 기타 게임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세계관 전체를 잘 조망하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지휘관’에 나를 이입시키는 장치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왜, 엉덩이 모핑을 전면에 내세워서 게임을 홍보하는 전략을 취한 걸까? 게다가 인게임 상황에서는 더더욱 의아함이 커진다. 광고 등에서 한껏 강조했던 게임 상황에서의 캐릭터들의 뒷모습에서 보여주는 모핑은 눈길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무리 에임(aim)을 자동으로 설정해 놓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중간중간 상황에 개입해 줘야 하고 미션의 진행사항을 확인해 봐야하는 경우 캐릭터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다. 결국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의 캐릭터 디자인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캐릭터 정보창에 가서 따로 확인을 해야 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초반 광고로 부각되었던 엉덩이의 모핑과 같은 요소는 게임에 대한 특정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만 작용하고, 게임을 수행하게 하는 요소로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1) 그렇지만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스토리텔링인데, 한국에서 생각보다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SF적인 장르 세계관을 충실하게 구현해서 스토리 자체의 몰입감을 유의미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몰입도를 판단하는데 스토리텔링만 개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니케〉의 경우 게임을 진행하게 하는 요소에 스토리텔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 자체가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SF 세계관의 게임 중에서도 꽤 완성도 높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의 장점 〈니케〉는 SF에서 자주 사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상황에서의 디스토피아(Distopia)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왜 아포칼립스 상황이 닥쳤는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의 양상과 구체성이 달라지게 되는데, 〈니케〉의 경우 아포칼립스를 추동한 요소가 기계 생명체인 ‘랩쳐’의 공격을 받고 지상에서 지하로 피신해 방주라는 거대 시설에서 생존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디스토피아 물이 그렇듯, 인류는 기계 생명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라는 사이보그를 발명했고, 그들을 통해 랩쳐들의 침공을 저지하고 랩쳐들에게 빼앗긴 지상의 탈환을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19867063836200&id=100232432466330&_rdr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은 ‘니케’를 사이보그로 설정하고, 그들이 기존에는 보통의 인간이었으나 개조되면서 뇌를 NIMPH(Neuro-Implanted Machine for Protecting Human)라는 나노머신에 의해 컨트롤 당하는 개체들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으로 인해서 캐릭터들이 가지게 되는 다양한 요소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들을 소거당하고 인간에 의해서 조종되는 인형과 같은 존재들이 되었지만 유기체 뇌를 여전히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계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토리의 설정이 가능하다. 이는 캐릭터들을 수집해야 하는 게임에서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인간을 변형시켜 사이보그로 만들었다는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은 비인간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니케〉는 캐릭터를 단순히 수집하고 단순히 전투의 지휘관으로 통제권을 가진 사용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이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내가 수집한 캐릭터들은 단순히 게임에서 활용하는 도구에서 그치지 않고, 수집된 스토리를 기반으로 관계가 발전되는 형태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생긴다. 2) 또한 이 지점에서 SF 스토리텔링의 성공적인 형태들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흔히 비인간 캐릭터들을 설정하면 인간보다 월등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는 것에 그치는데 비해 〈니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비인간 캐릭터들은 뛰어난 능력과 함께,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같은 것들이 함께 부가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발생하는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비인간 캐릭터들의 가능성들을 오히려 제한하는데, 〈니케〉에서는 사이보그(Cyborg)라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명확하게 활용하여 이러한 지점들을 극복하고 스토리의 풍부함을 확보하고 있다. 3) 그러기 때문에 게임 스토리 내에서 ‘니케’들은 자신이 인간으로부터 개조된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도구라는 사실에 자조하거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굳이 인간을 닮거나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에서 인간과 니케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사회적인 부조리나 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가치의 충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의 충돌에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부딪히는 주인공(유저)의 시각은 SF 스토리텔링이 보여주는 지금의 현상 너머의 진보적인 가능성을 그리는 특징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게다가 거대 사기업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기술력으로 회사를 구성하고, 수집해야 하는 ‘니케’들 역시 그 회사의 특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정들은 수집의 또 다른 구체성과 흥미를 유발한다. 일리시온(ELYSION)과 미실리스(MISSILIS), 테트라(TETRA)라는 거대 기업들이 소위 플레이어의 수집대상인 엘리트 니케들을 제작하는 회사들인데, 각각의 회사들 마다의 특징이 명확하게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서 등장하는 ‘니케’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프랭크 하버트(Frank Herbert)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듄(DUNE)〉에서의 세력들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설정과 세계관 구조의 치밀함은 단순한 수집을 넘어, 캐릭터들을 확보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이야기가 풍부해진다는 장점을 가져온다. 섹슈얼리티한 캐릭터 디자인과 모핑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와 같이 〈니케〉는 SF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선보였던 게임뿐 아니라 웬만한 미디어 콘텐츠를 통틀어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SF 스토리텔링의 경우 장르가 가지고 있는 관습(convention)이나 코드(code) 들의 외향적인 요소들만 차용하여 서사 내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2010년대 이후 소설 등에서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게임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에서는 유독 그러한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이러한 아쉬움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SF 스토리텔링을 적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캐릭터들을 모아서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양하게 마주하는 문제와 해결 방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부터, 해결을 위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인식의 전환 양상 역시 SF에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F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사고실험을 구현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나 〈호라이즌〉 시리즈와 같은 작품과의 결은 다르지만, 오히려 그들 작품에서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적이고 무겁게 다루려 했던 지점들을 재치있게 풀어냄으로써 모바일 게임이라는 형식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의미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들에 반복되고 있는 섹슈얼리티한 디자인의 강조나 모핑 요소와 같은 것들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아쉬움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등의 문제로 단순히 게임을 판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했을 때도 이러한 요소는 장르의 특성에서 효용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가상적 실재감을 확대시키는 현전감(Sense of Presence)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을 때, 게임 플레이 시에 느껴지는 구체적인 정보가 시각작용, 그리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는 조작감과 인터페이스의 요소들이 중요하다. 4) 하지만 〈니케〉에서는 게임 플레이시에 아주 복잡하고 거대하게 발생하는 적(랩쳐)을 처리하는 FPS라는 게임의 특징 상 짧은 시간내 복잡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상대에 내가 지정한 에임이 정확하게 가 있는가를 확인하고 혹여 빗나가 소모되는 탄이 없는지를 확인 해야지 캐릭터들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 모핑 등의 요소들을 넣음으로써 오히려 게임 중 인지되는 정보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히는 듯한 경향도 있어 일종의 사이버 멀미(cybersickness) 5) 를 유발하기도 한다. 아무리 방치형 게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해도 비효율적인 정보들이 게임내 난립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니케〉가 스스로 그려 놓은 세계관 내에서도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들이 충돌하는 경우를 만들어낸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인 지휘관은 아무런 편견 없이 사이보그인 ‘니케’들을 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 세계의 균열을 만들고, 다른 부조리들을 없애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데 익숙한 비인간 ‘니케’들을 오히려 능동적으로 타자화와 대상화하지 않고 동일한 객체로 인식하고 대하는 모습이 세계관 전체에서 드러난다. 수많은 세계관 내 부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역시 그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들은 편견과 대상화에 맞서는 능동적인 주체를 수행함에도 유독 성적으로 대상화된 부분들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상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스토리를 쌓아 올라가면서 다양한 전사를 가진 캐릭터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과 한계를 공유하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더 크게 와닿는 부분들이다. 나는 이들을 편견 없이 동일한 개체들도 대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부분은 인간들이 도구적으로 성적 대상화한 지점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각종 편견을 걷어내는 플레이어의 스토리 전개가 쌓아질수록, 반대로 내적으로 쌓이는 묘한 도덕적 부채감 역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캐릭터 디자인을 단순히 유저들의 성향과 호응의 문제로 보기에는 진지하게 쌓아 놓은 세계관 위에서 잃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지점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전 테스트에서 유저들의 반응을 조사했을 때 78%가 ‘캐릭터의 외형 및 설정이 매력적’이었다고 답한 것이 레퍼런스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특정 요소를 부각한 외형적인 것들로 판단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하게 된다. 오히려 78%가 답변했을 때 외형과 더불어 함께 배치된 단어인 ‘설정’과 37%를 각각 치지했던 ‘스토리와 세계관의 몰입감’과 ‘독특하다’라고 답변했던 지점들을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6) 왜냐하면 〈니케〉는 한국에서 SF 스토리텔링이 미디어 콘텐츠에 구현되었을 때,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과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예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의 치밀한 구성과 완성도를 가진 게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검과 마법의 세계에 비해 SF적인 미래와 경이감(Sense of wonder)을 형성하는 세계관의 구성이 여전히 미흡한 현 상황에서 〈니케〉는 이정표로 삼을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후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구성할 때 SF적인 요소들이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에 이러한 요소들이 좀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 해당 부분은 개발사에서도 실제 게임을 출시하면서 언급한 부분이다. “독특한 캐릭터 표현으로 주목받았으나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즐길 거리가 많아 감상할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의 홍보는 정말 의도적으로 특정 유저층에게 어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게임시장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SF 세계관을 비롯해 FPS와 수집형을 동시에 배치한 게임의 성격을 우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출처: http://m.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34 ) 2) 물론 이러한 스토리의 발전에 따라서 관계성이 변화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이나 외향, 반응 등을 이끌어 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그동안 충실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고, <니케>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열심히 게임 안에서 구현하고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가 시작된 <우마무스메>, <무기마도>, <블루 아카이브>, <에버소울>과 같은 게임에도 이러한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 캐릭터 스토리에 공을 들이는 수집형 게임들은 꾸준히 관심을 받고 성공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탄탄하게 구성된 SF 세계관 내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캐릭터 스토리들을 만들어 냈다는데서 이후의 다른 SF 세계관을 구성하는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3) 사이보그(Cyborg)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를 일컫는다. 미디어에서 사이보그에 대한 대중성을 확보해준 대표 콘텐츠인 <로보캅>(1987)의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사이보그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SF 서사 내에서는 다른 비인간 캐릭터들인 로봇(robot)이나 안드로이드(Android)들이 그 시작부터 인간중심주의 적인 위계를 가지고 인간에 대한 저항과 동경을 가지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에 비해, 인간의 의미에 대한 확장인 포스트휴먼(posthuman) 담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개체로 볼 수 있다. 4) 이승제, 조현주, 「FPS 게임에 나타난 현전감의 구성 용인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16(4),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10, pp.426-427 참조. 5) Rebenitsch, L., and Owen, C. “Review on cybersickness in applications and visual displays.”, Virtual Reality, 20(2), 2016, pp.101-125. 6) http://www.game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85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평론가) 이지용 SF로 박사학위를 받고 SF평론을 비롯한 문화예술평론과 해당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빌미로 게임기를 구입하고, 만화를 사 모으며 온갖 OTT를 구독중이다.

  •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 Back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02 GG Vol. 21. 8. 10. * 이 글은 2019년 8월 한국언론정보학회에 게재된 “조이스틱-아케이드 게임 문화의 생산자”를 보완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레트로 게임으로서의 전자오락기 레트로 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오래된 고전 게임을 말한다. 최근 레트로 게임 열풍이 불면서 과거 전자오락의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자오락은 최초의 디지털 대중문화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학계에서는) 잊힌 미디어에 가깝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전자오락이 대중들의 문화이고, 특히 그 대중들이 아동이나 청소년 중심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청년문화이자, 대중들의 하위문화로 여겨진 전자오락 문화는 언제나 일탈과 저항의 관점에서 얼마나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영향을 청소년에게 미치는가에 주된 관심이 있어왔지만, 전자오락은 ‘1990년대부터 디지털 게임에 흡수되고 대체되면서 소멸했다’는 관점에 따라 이런 관심마저 사라진다. 그런데 전자오락을 흡수하고 대체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디지털 게임이란 무엇일까? 곤살로 프라스카(2008) 1) 는 “모든 형식의 컴퓨터 기반의 오락 소프트웨어, 즉 텍스트 게임이나 이미지 기반의 게임 모두를 포괄한다. 퍼스널 컴퓨터나 콘솔과 같은 전자적(electronic)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임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육체적 게임이나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들도 포괄한다.”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전자’ 오락은 말 그대로 디지털 게임이라는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실 아케이드 게임장(전자오락실)들은 현재도 성업 중에 있다.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들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조건들이 다를 뿐이다. 음습한 소규모의 오락실들은 대형화되었으며, 오락실을 구성하는 게임들이 모방적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가상현실게임, 리듬액션게임, 체험형 게임들이 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은 아마도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우리는 전자오락에 대한 추억을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전자오락실 세대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추억 속 ‘전자오락실’에서 구동되고 있는 오락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전자오락실은 〈스페이스인베이더〉나 〈갤러그〉와 같은 슈팅게임으로 구성되어있고, 누군가에게는 인형이나 상품을 뽑는 크레인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나 〈철권〉시리즈와 같은 대전격투게임일수도 있고 〈DDR〉이나 〈PUMP IT UP〉과 같은 리듬액션게임일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락실 한편에 놓인 코인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기억일 수도 있다. 이렇든 전자오락실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른 물리적 공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레트로 게임으로 소개되는 전자오락은 구동되고 있는 특정 오락이라기보다는 전자오락기 캐비닛 그 자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레트로 게임으로 인지되고 있는 전자오락이란 특정한 장르의 게임이나 시기의 게임이 아니라 조이스틱이라는 특별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게임 체험의 형식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제2롯데월드 내에 위치한 아케이드 게임장 ‘퓨처핸즈업’의 내부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게임인터페이스에 대한 오해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오프 하울랜드(1998) 2) 는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1) 디스플레이 되는 어떤 이미지, 그리고 그것들 위에서 실행되는 효과들 등 플레이어가 볼 수 있는 ‘그래픽’ 2) 게임을 하는 동안 재생되는 음악이나 음향효과 등을 포함하는 ‘사운드’, 3)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접촉하는 것들과 같은 게임 컨트롤 시스템을 포함한 ‘인터페이스’, 4) 게임에 얼마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지와 같은 ‘게임플레이’, 5) 게임의 배경스토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정보들을 포함한 ‘스토리’로 구분한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게임을 논할 때 쉽게 망각되곤 한다. 게임이라는 것이 게이머와 상호작용을 할 때 언제나 신체(대체로 손)와의 매개 속에서 이뤄지는데도 말이다. 그 어떤 게임도 신체와 연결된 조작 장치들에 의해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게임은 비활성화된 코드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조작 장치를 통해 이뤄지는 화면 속의 움직임은 신체의 경험과 조화를 이루며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게임과 게이머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다시 말해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경험들을 게이머가 체험하게 해주는 하드웨어면서 동시에 게이머에겐 ‘확장된 신체’이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도 게임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계속해서 변해왔다. 그런데 인터페이스에 대한 그릇된 상상이 존재한다. 단적으로 제임스 뉴먼(2008, 260쪽)은 “변화, 진보 그리고 기술적 발전에만 집중한다면, 고전 게임을 고려함으로써 드러나는 게임의 지속성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다. 대체로 바뀌지 않고 남아있게 될 요소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 조종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즉, 게임 인터페이스는 1980년대의 낡은 콘솔에 부착된 것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조금 더 편한 그립감을 제공하거나 배열이 조금 변했을 뿐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고,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진보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전자오락기의 조이스틱을 예로 들어 인터페이스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과 설계가 요구하는 것처럼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기술이 발전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수입된 기술의 사회적 재구성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무엇을 위해 발전해왔는가는 현재 어떤 게임을 즐기기 위해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알기 쉽다. 현재 마우스와 키보드나 패드가 지배적인 게임의 인터페이스로 사용되지만, 아직도 대전격투게임이나 슈팅게임 등을 위해서는 조이스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조이스틱은 상하좌우를 입력하도록 만들어 놓은 십자키를 주로 사용하는 패드와 같은 입력장치들과 다르게 360° 방향입력을 위해, 특히 위나 아래의 방향키 중 하나와 좌, 우의 방향키 중 하나를 동시에 입력시키는 이른바 대각선 입력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자오락의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레버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사각의 가이드가 부착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른 형태의 조이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통칭 무각 레버라고 부르는 원형 가이드가 부착된 조이스틱은 한국에서만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조이스틱이라는 기술이 일본에서 수입되어 한국에서 사용될 때 한국의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 다시 새롭게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들어 게임이 각광받는 산업의 하나가 되었지만, 전자오락은 정부가 진흥하거나 대기업의 주도로 들어온 산업이 아니었다. 3) 따라서 전자오락을 제조, 수입, 유통하는 것은 전자산업의 주변부에 있던 청계천 전자상가의 영세업체들이었다. 그들은 전자오락기를 일본에서 수입해 올 때 관세를 줄이기 위해 완제품이 아닌 부속으로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수입을 했고, 그 부속들은 청계천 일대에서 재조립되어 유통되었다. 이때 국산화가 가능한 제품들은 국내에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게임기 관련 부품시장의 생산자들에게 각 부속의 형태가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각선입력을 위한 설계는 그렇게 무시되었고, 상하좌우 구동 값이 좋은 제품들을 생산해서 재조립하여 유통하였다. 일본의 조이스틱은 커맨드 입력 후 중립으로 되돌려주는 장치 역시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을 고무로 대체하였다. 균일한 탄성을 지닌 스프링의 생산에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도 했고 생산 단가도 높았기 때문이다. 재구성된 조이스틱에 적응된 게이머들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이렇게 한국이라는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지만, 전자오락실이라는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다. 사실 조이스틱은 소모품이기에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교체해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는 폐업한 서울 대림동의 그린오락실 점주에 따르면 오락실 초기에는 이런 것을 숙지하고 있는 업장 점주가 드물었다고 한다. 게임장 초기에는 전문점이라는 개념이 없었어. 입력 값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가는지 관심도 없었어. 기억해봐요. 옛날 업주들 방에 앉아서 돈만 바꿔줬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게임 제공을 하는 업주나 부품업체나 그런데서 소모품은 수명이 있거든. 근데 그걸 안지켜줬다는 거야. 소모품인데 내구성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제품들이 수명을 넘겨 쓰다보니깐 어떤 증상들이 나오느냐 하면 유격이 심해진 거야. 그런데 그런 걸로 게임을 배운거야 한국사람들은. 그러니깐 커맨드 영역이 클 수밖에 없지. 손이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거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부실한 관리로 유격이 심한 조이스틱을 이용하는 한국의 전자오락실 이용자들은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에 적응하게 되었다.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입력을 하는 다른 나라의 게이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게이머들은 손목은 물론이고 팔 전체를 움직이며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기계적 대상물인 조이스틱은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는 게이머들에 의해 변형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이 자신을 이용하는 게이머를 변화시키고 자신에게 적응하게 만들었다. 변화된 인터페이스와 그 인터페이스에 적응한 게이머들은 같은 게임도 다르게 즐겼다. 정확한 대각선 입력을 통한 기술을 사용하기보단 원형의 가이드를 이용해 스틱을 회전시키는 기술을 사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고, 동체시력을 활용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플레이보다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을 빠르게 조작하여 심리전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나 철권 같은 대전격투게임에서 다른 나라 이용자들과는 다른 게임플레이 형식이 나타난 것은 조이스틱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조이스틱의 진화 한국에서 조이스틱은 얼마나 더 미세하고 정확하게 입력 값을 게임 상에 재현해낼 것인지가 아니라 자신이 적응시킨 게이머와의 관계 안에서 진화해 나갔다. 한국에서는 조금 레버가 살짝 멍청하게 만들어져야 해. 왜 그러냐면 민감하면 못한다고. 조금조금 움직였을 때 동작을 하면 커맨드 실수를 해. 오차범위를 줘서 어느 정도는 움직여도 동작을 안 하게 만들어 줘야해. 그걸 안 해주면 그 레버 못 쓴다해. 전자장치는 거짓말을 안하자나요. 근데 레버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해. 오차 범위 값을 얼마를 줘야한다는 걸 생각을 안 하니깐 자꾸 민감하게만 만들어.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한국의 맥락에 의해서 형성된 원형의 가이드와 유지 보수가 되지 않아 헐렁한 조이스틱에 익숙해진 한국의 게이머들과 연결된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정확하게 하거나 더 민감하게 입력 값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기 보다는 일정한 수준의 오차 값을 지니면서도, 더 적은 유지보수를 요구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과격하게 손을 움직이며 크게 커맨드를 입력하는 한국게이머들에게 미세하고 정확한 입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이스틱은 자신들의 실수를 고스란히 재현하기 때문에 못 쓰는 조이스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입력보다는 어느 정도의 ‘멍청함을 얼마나 꾸준하게 유지하는가’의 방식으로 변화해 갔다. 구리 접점을 통해서 입력 값을 전달하던 것은 구리 접점이 휘거나 눌어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리와 구리 사이에 고무를 덧대는 형태로 변했다가 최근 스위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고, 조이스틱을 중립으로 복귀시켜주는 탄성고무는 내구성이 조금 더 뛰어난 실리콘으로 바뀌었다. (그림 2. 그림3 그림 4 참조.) * 초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중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최신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그렇다고 해서 조이스틱이 초기의 조이스틱에 비해서 최신의 조이스틱으로 선형적으로 진보되고 개선되면서 완성되었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없다. 게임을 하는 물리적 장소가 전자오락실에서 게이머의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되는 등과 같이 게임과 게이머를 둘러싼 요소들의 변화에 따라 인터페이스는 언제든지 변화할 가능성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구리 접점을 이용하는 초기의 조이스틱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위치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음으로 가득 찬 전자오락실이 아닌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초기 조이스틱의 수요는 꾸준하게 존재하고 있다. 만약 게이머들이 더욱 마니아화 되고 ‘확장된 신체’로써의 인터페이스를 꾸준히 관리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확산된다면, 유지보수를 자주 해주더라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 구리접점 조이스틱이 주된 형식이 되어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1) 곤살로 프라스카(2008).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 김겸섭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 Howland, G. (1998) Game Desine: the Essence of Computer Games. 제임스 뉴먼(2008), 〈비디오게임〉, 14쪽에서 재인용. 3) 조동원 (2019), “디지털문화 초기사 연구: 동아시아 지역횡단의 전자오락기·개인용 컴퓨터 복제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98, 153-17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술문화연구자)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 Back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22 GG Vol. 25. 2. 10. https://www.youtube.com/watch?v=4YMD6xELI_k * 구글맵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Google Maps: Pokémon Challenge” 만우절 이벤트 영상 나는 나름 <포켓몬 고 Pokémon GO >의 고인물이다. 2016년 속초 대란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2017년 1월 국내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플레이하고 있다. 초창기의 <포켓몬 고>는 황량했지만 충만했다. 체육관에서 열리는 레이드도, GO 배틀리그라는 PVP 시스템도 없었다. 심지어 6개월 늦은 국내 출시 직후에야 2세대 포켓몬이 추가되었고, 2018년까지는 필드리서치(퀘스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구글맵이 지도 곳곳에서 포켓몬을 발견할 수 있게끔 했던 만우절 장난 [1] 이, 닌텐도와 나이언틱의 공식적인 협력으로 이어지며 현실화되었다는 설레임은 순식간에 천만 단위의 유저가 스마트폰을 들고 산책하게끔 만들었다. 포켓몬을 직접 포획하고 도감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포덕’들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우리는 텅 빈 지도 위를 걸어다니는 아바타와 자신을 동기화했고 CP가 더 높은 포켓몬, 아직 잡지 못한 포켓몬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걸음 수를 채웠다. <포켓몬 고>, 최근에 갑작스레 흥행하기 시작한 <피크민 블룸 Pikmin Bloom > 등 나이언틱의 게임들은 유저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집 주변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 간판들 사이에 숨어 있던 교회와 생각 없이 지나치던 벽화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출퇴근길과 등하교길은 게임 속 스팟(포켓스탑, 빅플라워 등)을 포함하게끔 변경된다. 레이드 시간에 맞춰 산책을 떠나거나,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포켓몬이나 꽃의 정수를 얻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엘피 본의 지적처럼 온라인 지도 속에 담긴 ‘스마트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는 데이팅 앱에서 가까운 거리의 상대를 찾아 나서듯 <포켓몬 고>에서 피카츄를 찾아 나선다(Bown, 2022/2023, 56). * 왼쪽부터 <인그레스>, <포켓몬 고>, <피크민 블룸>, <몬스터 헌터 나우>의 플레이화면 나이언틱의 AR 게임들은 나이언틱은 구글맵(국내에서는 오픈스트리트맵 [2] )을 기반으로 현실의 지도 위에 게임의 가상을 겹쳐 놓는다. 첫 작품인 <인그레스>는 인라이튼드와 레지스탕스 두 진영의 ‘땅따먹기’를 지도 위에서 펼쳐낸다. <포켓몬 고>는 본가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야생의 포켓몬을 연구하는 윌로우 박사의 부탁을 받아 모험을 시작한다. <피크민 블룸>은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생명체 피크민을 게임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설정을 갖는다.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한 <해리포터: 마법사 연합 Harry Potter: Wizards Unite >은 마법사 세계의 존재들이 머글 세계에 유출되는 이상현상을 조사하고 해결한다는 설정이다. 가장 최근작인 <몬스터 헌터 나우 Moster Hunter Now > 또한 ‘몬스터 헌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버렸다는 설정을 갖는다. 각각의 설정들은 현실의 제도를 게임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세계만들기(worldbuilding)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걸어 다니는 길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한다. 워킹 시뮬레이터(walking simulator)가 아닌 걷기-기계(walking-machine)랄까. 이 게임들에서 강조되는 것은 수집이다. <포켓몬 고>에서는 전투보다는 포획과 도감채우기가 강조된다. 전투는 ‘고인물’을 위한 엔드 콘텐츠에 가까우며, 지방별 도감뿐 아니라 정화/그림자/별3/색이 다른/이벤트/메가진화 등 다양한 도감 카테고리를 제공하며 ‘도감작’의 재미를 게임의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무수한 ‘데코 피크민’을 선보인 <피크민 블룸>이나, 같은 수집물을 반복해서 모을수록 도감이 강화되었던 <마법사 연합>도 마찬가지다. 나이언틱의 산책 게임들이 유저들을 걷게 하는 방식은 걸음 수나 걸은 거리에 따른 보상체계, 저곳에 물리적으로 도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집품의 제공이다. 강가나 바다에서는 물 타입 포켓몬이 더 자주 등장하고, 대학 캠퍼스에 가야 대학 데코 피크민을 얻을 수 있다. 이 게임들의 세계는 현실의 지도 위에 가상의 세계를 결합함으로써 우리를 걷게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AR 게임의 화면에서 현실 세계와 게임의 가상 세계라는 위계는 다소간 무력화된다(박동수, 2022). 친구들에게 <포켓몬 고>를 추천할 때 종종 “좋은 산책 메이트”라고 소개하곤 했다. AR 게임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움직이게끔 한다는 점에서 “방구석 게이머들을 집 밖으로 나가게 한” 게임이다. <포켓몬 고>가 걸은 거리를 기반으로 알 부화나 파트너 포켓몬과의 친밀도를 올릴 수 있게 했다면, <피크민 블룸>은 걸음 수를 통해 피크민 모종을 기르거나 임무를 클리어하는 등의 방식을 취한다. 피크민은 유저가 산책한 길 위에 꽃을 심고, 그 결과는 지도 위에 그려진 꽃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친구와 함께 걸음 수나 심은 꽃의 수 등을 종합하는 ‘함께 걷기’ 임무나 특정한 기간 진행되는 ‘함께 걷기’ 등의 기능은 유저들이 더 멀리, 더 오래 산책하게끔 한다. 다른 AR 게임보다도 산책이 강조된 <피크민 블룸>이 러닝이 트렌드가 되고 건강 관리를 위해 산책이라도 하는 것이 필수적이게 된 지금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유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의 구성과 유저의 조직화가 필수적인 <인그레스>나 자연스럽게 지역 레이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끔 유도한 <포켓몬 고>처럼 새로운 방식의 지역 커뮤니티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스틸컷. 용산 미군기지 출입구에서 <포켓몬 고>의 AR 기능으로 꺼낸 ‘뮤츠’를 캡쳐한 화면. 다른 한편으로 AR 게임은 구글 스트리트뷰나 구글어스로 방구석 세계일주를 하거나 배달의 민족에서 우리집으로 다가오는 라이더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는 반대에 놓인다. 이전의 지도/GPS 기반 서비스들이 세계를 집안의 화면 안으로 옮겨두었다면, AR 게임은 우리의 걸음을 따라 세계를 재설정하는 일이다. 타라 피클(Fickle, 2019, 156)은 GPS 기반의 <포켓몬 고>가 여러 내비게이션 앱이 수년 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유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형시켰으며, 사용자가 "스마트폰의 형태로 지도가 지향하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경험을 제공하며, AR과 GPS 기술을 탑재한 게임이 이국적이고 낯선 동시에 안전하고 친숙한 세계를 구현한다고 지적한다. 포켓몬이나 피크민 같은 가상의 생명체를 구현함과 동시에 우리를 세계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포켓몬 고>의 구성이 ‘나’를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며 포켓몬이라는 포획 대상, 체육관이라는 점령 대상 등으로 구성되기에 제국주의적 혐의를 갖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Ibid, 160-161). 이는 태생부터 점령 게임이었던 <인그레스>나 몬스터를 ‘토벌’하는 <몬스터 헌터 나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도’의 문제는 AR 게임을 여러 정치적 문제와 직면하게끔 한다. 실제로 <포켓몬 고> 출시 직후 미군은 기지 내 병력에게 안보구역 내에서 플레이하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국내에서는 청와대 등의 보안 시설이 게임을 통해 노출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영화/미술 작가 정여름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은 용산 미군기지 내 포켓스탑을 통해 기지 내부의 이미지를 염탐함으로써 AR 게임이 정치적, 군사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하지만 AR 게임이 유저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구성을 취한다 하더라도, <포켓몬 고>나 <피크민 블룸>은 우리를 (벤야민이 말한) 산보객(Flâneur)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상과 결합된 게임은 우리를 걷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주변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 평평한 지도 위에 머물게끔 한다. 일련의 게임 속 지도는 등록된 길 외에는 무엇도 보여주지 않는다. 공공시설, 역사적 장소, 공공성을 띠는 조형물 등으로 구성된 특정한 ‘스팟’들은 해당 공간의 사진과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그 공간들을 직접 보는 대신 게임으로 매개된 사진을 통해서 본다. 게임을 통해 스팟의 존재는 알게 되지만, 동시에 게임은 그 공간들을 비장소적 기호로 치환하여 스쳐지나가게끔 한다. <포켓몬 고>가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올바른 곳에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예컨대 조직적인 봉기를 막기 위해) 잘못된 곳에 모이는 걸 막을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본의 지적(Bown, 2022/2023, 79)은 나이언틱이 몇몇 기업과의 콜라보를 통해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등을 스팟으로 지정한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다. 산책 게임은 우리를 산책하게 하고 건강이라는 동시대적 이슈와 결부시키지만, 동시에 일련의 지도 서비스가 유도하는 행위성을 곧장 유저에게 부여한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포켓몬 고>는 유료로 ‘리모트 레이드 패스’를 출시한다. 산책이 위험한 행위가 되었기에, 본래 해당 체육관에 가야만 가능했던 레이드 콘텐츠를 원격으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이다. <포켓몬 고>를 일상적 루틴으로 받아들인 유저들은 기꺼이 리모트 레이드 패스를 구매했고, 나이언틱은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포켓몬 고>에 의해 이미 훈육된 유저들은 게임의 본질적 행위성이 수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과금하는 이들이 되었다. 유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스팟이 무엇이냐보단 레이드에 등장한 포켓몬이 무엇이냐였기 때문이다. * <피크민 블룸>에서의 ‘탄핵시위걷기’ 화면(좌)와 남태령 태그를 단 피크민(우) 이렇게만 본다면 나이언틱의 게임들은 건강을 경유하여 유저들의 무임자유노동(free labor)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빼가고 과금을 유도하는 다분히 기술-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속 존재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포켓몬 고> 등은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림자 전설 포켓몬을 포획할 수 있는 그림자 레이드나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엘리트 레이드처럼 오프라인 참여를 강제하는 <포켓몬 고>의 몇몇 콘텐츠가 진행되는 동안 게임플레이를 위해 거리로 나갔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 지역별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인 학생부터 중년 남녀까지의 사람들부터 부모와 함께 스마트폰을 들고 레이드에 참여하는 아이들까지, 레이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질적인 집합은 잠시간 길거리를 다른 풍경으로 바꿔 놓는다. 최근의 목격한 <피크민 블룸>에서의 사례는 산책이 일종의 연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12월의 어느 날 누군가는 산책을 통해 모은 ‘하얀 국화’의 꽃잎을 사용해 국회 빅플라워에 하얀 국화를 피웠다. 행진이 포함된 집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피크민을 할 수 있다”라는 조언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누군가는 “광화문탄핵시위걷기”라는 이름의 ‘함께 걷기’ 초대 링크를 게시해 행진의 기록으로 남겼다. ‘남태령 대첩’이 있던 날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는 방법으로 “피크민 하러 왔다고 말하자”라는 트윗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홍콩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 유저가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이라 적힌 섬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의 누군가는 <피크민 블룸>의 지도 위에 꽃으로 ‘탄핵’이라는 글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2월 23일 남태령에서 얻은 지하철역 피크민이 ‘남태령’ 태그를 달고 나와 당시를 상기하게 해주었다. <피크민 블룸>의 갑작스러운 흥행의 이유는 아무도 파악하지 못한다. 친구 추가 QR코드 기능의 추가라던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릭터가 귀여움을 얻으며 유행하기 시작했다던가, 산책과 건강이라는 트렌드에 맞춘 유행이라는 설명은 어딘가 부족하다. <포켓몬 고>가 강력한 IP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했다면, ‘피크민’ 시리즈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다.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일련의 산책 게임은 우리를 언제나 게임하게끔 만들었다. PC나 콘솔이 아닌 무료 모바일 게임이라는 지점도 흥행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산책 게임은 우리의 생활 세계 위에 덧씌워진 또 하나의 세계를 가능케 해주며, 지겨운 출퇴근길과 등하교길을 짧은 모험의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피크민 블룸>이 처음 출시된 2021년 게임을 설치했다가 텅 빈 지도만을 보고 며칠 뒤 삭제했었다. 지금의 <피크민 블룸>은 발길이 닿는 거의 모든 곳을 꽃으로 뒤덮었다.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1] 해당 이벤트는 구글과 닌텐도의 협력을 통해 진행되었다. 나이언틱은 당시 구글 산하의 기업으로 스트리트뷰나 구글어스 등 구글맵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나이언틱의 CEO 존 행키와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포켓몬 컴퍼니의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해당 콜라보의 성공 이후, 나이언틱이 2014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인그레스 Ingress>를 기반 삼은 <포켓몬 고>의 개발을 결정한다. [2] 구글맵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국내에서 지도 반출이 허용되지 않아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서비스되는 구글맵의 국내 지도는 SK텔레콤이 제공하는 지도이며, 따라서 위키피디아 형태의 지도 서비스 오픈스트리트맵이 대안으로 채택되었다. 때문에 <포켓몬 고>의 국내 출시가 해외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었으며, <포켓몬 고> 출시 이전까지 <인그레스>는 국내에서 지도 없이 텅 빈 화면 위에 ‘포탈’만 등장한 형태로 서비스되었다. 참고문헌 박동수 (2022). 게임을 산책하기. <게임제너레이션>. 7호.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bcefdd0f-d4d8-41fb-b5b5-a3ad5ecffdee#viewer-qbq94102365 . Bown, A. (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s.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서울: 시대의창. Fickle, T. (2019). The Race Card: From Gaming Technologies to Model Minorities. NY: New York University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조얼

    지상파 PD로 시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주로 콘솔게임을 즐기며, 멀티플레이를 싫어하는 내향인. 조얼 조얼 지상파 PD로 시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주로 콘솔게임을 즐기며, 멀티플레이를 싫어하는 내향인. Read More 버튼 더보기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2025.04.10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전체 1건 로딩중 더보기

  • 게임제너레이션::필자::Feng Zhu

    Dr Feng Zhu is Lecturer in Games and Virtual Environments in the Department of Digital Humanities, King’s College London. He is interested in computer gameplay as a site from which to explore the intersection of power, subjectivity, and play. His research focuses on computer games and how we habituate ourselves through gameplay. In particular, it concerns forms of gameplay as longitudinal self-fashioning that may inculcate ambivalent forms of reflexivity and attention, some of which may be read in terms of an aesthetics of existence. Feng Zhu Feng Zhu Dr Feng Zhu is Lecturer in Games and Virtual Environments in the Department of Digital Humanities, King’s College London. He is interested in computer gameplay as a site from which to explore the intersection of power, subjectivity, and play. His research focuses on computer games and how we habituate ourselves through gameplay. In particular, it concerns forms of gameplay as longitudinal self-fashioning that may inculcate ambivalent forms of reflexivity and attention, some of which may be read in terms of an aesthetics of existence. Read More 버튼 더보기 Computer games and art: the practice of deepening our gameplay experiences 2023.06.10 The question ‘are computer games art?’ is not a productive one if there is the expectation that there can be a reasonable answer to it without some questioning of the question itself. I will explain why this is so and make the case that we would be better served by thinking about the ‘aesthetic experiences’ that playing computer games may foster as opposed to their categorization as art or as non-art. 전체 1건 로딩중 더보기

  • 인터뷰

    GG 인터뷰 Interviews 이번호는 인터뷰가 없습니다

  • 어느새 넘쳐나는 연말 게임쇼 총정리

    어워드가 필요로 하는 여론이 이 세 원천에서 발원하기에, 보통 시상식 심사는 창작자 중심 구성에서 출발해 비평자가 추가되고, 여기에 수용자를 대변하는 용도로 대중 투표가 추가되어 구성이 된다. 문화산업계에서 가장 젊은 업계인 게임의 시상식 또한 창작자들의 심사 투표로 이루어지는 경우, 비평자들이 갑론을박을 하며 심사 투표하는 경우, 대중의 투표가 추가되는 경우로 분류할 수가 있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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