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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 Back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27 GG Vol. 25. 12. 10. TEXT: Karhulahti, V.-M. (2015). Do Videogames Simulate? Virtuality and Imitation in the Philosophy of Simulation. Simulation & Gaming , 46 (6), 838–856. doi: 10.1177/1046878115616219 현생과 부동산 이슈로 포기하기는 했으나 한동안 버킷 리스트에 레이싱 게임용 휠과 페달, 전용 시트가 장착된 거치대를 올려둔 적이 있다. <이니셜 D>로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 레이싱 게임이 전달하는 사실감은 드리프트 순간 아스팔트의 질감이나 타이어의 마찰력까지도 구현된 듯한 착각을 꽤 오랫동안 불러일으킨다. 비단 레이싱 게임만은 아니다. 과 같은 비행 시뮬레이터는 조종석의 복잡한 계기판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실제 기상 조건까지 반영한 비행기 운전 경험을 구현한다. 이처럼 몰입감 높은 게임 플레이 경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게임이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감상에만 머무르는 말은 아니다. 게임 연구에서 ‘게임은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제는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재현을 토대로 하는 다른 매체와 게임의 변별력이 시뮬레이션에 있다는 주장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혹은 분석철학자에게 “모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분명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단어가 해당 분야에서는 게임 연구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정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과학과 공학에서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정밀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의 복잡한 모델을 떠올려 보자. 이 시스템은 대기의 움직임, 해류의 패턴, 빙하의 융해 속도, 태양 복사 에너지 등 수많은 변수를 실제 물리 법칙에 기반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산한다. 항공사에서 조종사 훈련에 사용하는 수백억 원대의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특정 항공기 모델의 공기역학, 엔진 특성, 기상 조건, 비상 상황까지 정밀하게 재현한다.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이 모든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공통점은 ‘참조 시스템’이 반드시 그리고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후 모델은 ‘지구의 기후’를, 비행 시뮬레이터는 ‘보잉 747’이라는 실제 항공기를 참조한다. 얀 클라버스(Jan Klabbers, 2009)의 정의처럼, 시뮬레이션은 “유효한 대응 규칙을 통해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모델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미래를 예측하고, 혹은 특정 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반면 게임 연구에서는 이 용어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 오닉시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고, <포켓몬스터>의 피카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지칭한다. <다크 소울>의 망자의 저주나 <젤다의 전설> 속 마법 시스템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범주 안에 쉽게 포함되곤 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질문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피카츄의 참조 대상은 무엇이며, 마법 시스템이 모방하려는 현실의 메커니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 핀란드의 게임 연구자 벨리-마티 카훌라띠(Veli-Matti Karhulahti)가 2015년 학술지Simulation & Gaming에 기고한 「비디오게임은 시뮬레이션하는가?(Do Videogames Simulate?)」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제기한 핵심 비판이다. 카훌라띠 는 게임 연구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과학적·철학적 정의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느슨하고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의 핵심인 ‘참조 시스템’과 ‘모방’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제거해버리고, “컴퓨터로 구동되는 모든 동적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용어를 확장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 개념이 게임 연구에 수용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a)’는 더 이상 원본을 참조하지 않는 복제품, 즉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의미한다. 게임 연구자들은 이를 차용해, 게임 속 드래곤은 원본이 없으므로 현실의 드래곤을 모방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시뮬레이트된 드래곤이라고 주장했다.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06)은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서 용을 시뮬레이트할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대응물이 없더라도 그 용은 여전히 허구의 용이 아니라 시뮬레이트된 용”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용어의 불일치는 단순히 학자들 사이의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 카훌라띠 가 지적했듯이, 이는 “무관세 학제성(duty free interdisciplinarity)”의 전형이다. 한 분야의 용어를 그 분석적·역사적 맥락 없이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는 전형적인 사례로, 실제로 게임 연구가 다른 학문 분야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교육용 게임의 딜레마를 볼 수 있다. 교육학 연구자가 게임 기반 학습의 시뮬레이션 효과에 대해 논문을 쓸 때, 그들에게 시뮬레이션이란 화학 실험이나 역사적 사건과 같은 실제 학습 상황을 재현하는 특정 메커니즘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 연구자는 점수, 레벨업, 퀘스트를 비롯한 게임의 모든 동적인 요소를 시뮬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어, 두 연구자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완전히 다른 대상을 논의하게 된다. 카훌라띠 는 배리 앳킨스(Barry Atkins, 2003)를 인용해, 이러한 교육용 게임을 “시뮬레이터의 사생아”라고 부른다. 교육적 메시지와 유희적 경험 사이에서 필연적인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시뮬레이션 개발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의사들은 해부학적으로 100% 정확하고 실제 수술의 물리적 반응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과학적 시뮬레이터를 기대한다. 반면, 게임 디자이너는 조작이 재미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으며 게임 메커니즘이 흥미로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양측에서 완전히 다른 기대치를 만들어 내 프로젝트를 표류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철학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만약 게임 속 드래곤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의 참조 시스템은 무엇일까? 일부 학자들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라 답한다. 하지만 카훌라띠 는 이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비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디자이너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실제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시뮬레이션 검증의 수단인 테스트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속성인 검증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이 논쟁은 두 가지 주요 관점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플레이어 중심 관점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현실의 무언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곧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실제 건축 공학의 원리를 탐구한다면, 그에게 <마인크래프트>는 건축 시뮬레이션이 된다. 또 다른 플레이어가 를 플레이하며 도시 교통 시스템의 혼잡도를 연구한다면, 그것은 도시 생활 시뮬레이터가 된다. 이 관점의 극단적인 예는 자넷 머레이(Janet Murray, 1997)가 제시한 <테트리스> 해석이다. 머레이는 <테트리스>를 1990년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미국 직장인의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석했다. 블록으로 형상화된 끝없이 밀려오는 업무를 필사적으로 줄 맞추듯 처리하지만, 결국 과부하에 이르러 게임 오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플레이어의 주관적 해석이 게임의 본질을 결정한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도 구별해내지 못하는 무의미한 용어가 되어버린다. <테트리스>가 직장 생활의 시뮬레이션이라면, <캔디 크러쉬>는 제과 산업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은유’나 ‘알레고리’와 혼동하는 것이다. 카훌라띠 가 제안하고 옹호하는 것은 두 번째 관점, 즉 ‘시뮬레이션의 의도적 철학(intentional philosophy of simulation)’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게임은 스스로 무언가를 시뮬레이트하지 않는다.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설계한 설계자의 명확한 의도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의도’란 단순히 디자이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다. 그 의도는 반드시 ‘기능적 증거(functional evidence)’로서 게임 아티팩트 자체에 물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즉, 디자이너가 특정한 현실의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설계했으며, 물리 법칙, 경제 모델, 생태계 순환과 같은 모방을 위한 기능적 메커니즘이 게임 코드와 시스템 속에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실제 도시 계획 이론과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의 시스템 동역학을 연구하여, 교통 체증, 공해, 범죄율, 세금 징수 시스템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도시 모델을 게임에 구현하려 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의도’와 ‘참조 시스템’, 그리고 ‘기능적 증거’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심시티>는 명백한 시뮬레이션 혹은 시뮬레이터다. 반면, <테트리스>의 창시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어떤 현실 시스템도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펜토미노>라는 수학적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떨어지는 블록이라는 순수하게 재미있는 게임 메커니즘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테트리스>를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며, 범주의 오류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참조하지 않는 게임 속 요소들, 즉 드래곤, 마법, 좀비,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은 무엇일까? 단순한 허구(fiction)일까, 아니면 환상(fantasy)일까? 카훌라띠 와 현대 게임 철학의 맥락을 빌려 여기서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가상은 단순히 ‘가짜(fake)’나 ‘현실의 반대(unreal)’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개념에 따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잠재성을 지닌, 현실의 또 다른 양태”로 이해된다. 인공 생명 연구의 선구자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 1986)은 가상성을 “너무나 생생해서 생명의 모델이기를 멈추고 생명 그 자체의 예시가 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했다. 게임 속 드래곤이나 좀비는 현실 세계의 불완전한 복사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라는 고유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대상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가상화된 픽타(virtualized ficta)’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셜록 홈즈를 생각해 보자. 셜록 홈즈는 현실의 런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난 도일의 이야기 세계라는 허구적 진실 속에서는 베이커가 221B번지에 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실제적인 인물로 자리한다. 마찬가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래곤 오닉시아는 그 게임 세계 안에서 실제로 기능한다. 먼지진흙 습지에 서식하고, 화염 숨결을 사용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현실의 어떤 도마뱀도 시뮬레이션하지 않지만, 아제로스라는 세계 내에서는 완벽하게 일관적이고 실제적인 가상적 대상이다. 이러한 구분은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게임 속 드래곤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나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성공적인 가상적 창조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게임의 범주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확한 현실 참조 시스템과 모방 의도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은 처럼 정확성과 사실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반면, 현실의 일부와 가상적 요소를 결합한 부분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심시티>나 <콜 오브 듀티>처럼 현실적 기반 위에 게임적 규칙을 더한다. <다크 소울>이나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가상성 게임은 현실 참조 없이 창조된 독립적 가상 세계의 일관성과 독창성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테트리스>나 <포탈>과 같은 추상적 혹은 절차적 게임은 세계의 재현이 아닌 순수한 규칙과 메커니즘, 즉 절차 자체에 집중한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 단순히 학자들의 현학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게임 산업과 문화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실천적인 이유가 있다. 연구의 명확성 측면에서, 게임 연구가 교육학, 의학, 공학 등 다른 학문과 성공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이라는 공통의 언어와 명확한 구분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게임 개발팀 내부에서 우리는 중세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합의했다면, 이것은 단순히 중세 판타지 게임을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발 방향성을 제시하며, 역사적 고증이나 물리 엔진의 정확성에 자원을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비평의 기준도 확립된다. 비행 시뮬레이터가 실제 비행과 다르다고는 비판할 수 있지만, <엘든 링>의 마법이 현실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윤리적 논쟁도 정교화할 수 있다. <콜 오브 듀티>가 실제 전쟁을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둠>에서 악마를 사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 Back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27 GG Vol. 25. 12. 10. 대학을 다닐 때, 책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교수님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질문의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 후두부를 강력하게 두드렸던 당시 교수님의 답변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교수님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집 정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큰 가구가 새로 생긴다면 기존의 가구들을 재배치해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식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편향과 신념, 습관, 체계들이 무너지고 새로 쌓이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학문의 의미이자 재미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시 교수님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우습게도 내가 이때의 대화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순간은 자동화 게임을 할 때이다. 자동화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자기 기지를 제 손으로 부숴보지 않은 유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만약 한 번도 손보지 않고 엔딩을 향해 달려갔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전까지의 내 기지가 아무리 완벽했어도 재구성과 재배치의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기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동선과 최적의 환경, 최적의 효율을 위해 다시 기지의 모든 곳을 다듬어야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급박한 상황이라면 임시적으로나마 비효율적인 기지를 만들어놓을 수 있겠지만, 게임 플레이 시간이 쌓일수록 게이머의 다음 과제는 효율적인 기지 구성을 향해 나아간다. <끝없는 재구축의 과정> 자동화 게임? 최적화 게임!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애써 만들어놓은 기지를 부수고 새로 구축하는 과정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자동화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위의 문장을 반박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장르를 바꿔보자. 만약 RPG를 하는데 10시간 가까이 레이드한 보스몹을 결국 잡지 못하거나, 겨우 잡은 보상을 잃어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혹은 지금까지 모은 재화들을 해킹당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허탈함과 분노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자동화 게임에서는 수십 시간씩 공을 들여 만든 기지여도 효율적이지 않으면 자기 손으로 부수고 새로 짓게 된다. 심지어 부수고 새로 지을 각이 보이지 않으면 산뜻하게 지금 기지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지금까지 쏟은 시간을 버린 것과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면서 이걸 해결하고 더 좋은 기지를 만들 수 있다는 설레임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화 게임에서는 결과물이 중요하지 않다. 자동화 게임의 재미는 마치 레고처럼 창의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다만, 레고와 다른 점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목적이 주관적 심미성이나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 명확한 효율성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동화 게임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다가 노트를 펴서 수치를 계산하는 수학자가 되기도 하고, 게임 내 기술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대체 그 게임은 무슨 재미로 하는 거야?’라고 물을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의 과정과 다를 것이 없지만, 직장에서는 오롯이 추구할 수 없는 최적화 과정 자체에서 이 게임의 재미가 나온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자동화 게임의 목적은 자동화에 있지 않다. 완전히 자동화된 환경을 만들어서 바라본다면 뿌듯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그것이 뿌듯한 이유는 최적화를 향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적화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은 변수의 계산 가능성 덕분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변화무쌍하고 다층적이며 예측불가능하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수치적으로 변수가 제공되어 계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며, 잘 만든 ‘최적화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단계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과제들을 제시한다. <산소미포함(Oxygen Not Included, 이하 산미포)>을 즐긴 게이머라면 누구나 산소 부족-식량 부족-전기 부족-물 부족-자원 고갈의 어려움을 순차적으로 겪을 것이다.(물론, 중간중간 앞 단계의 과제들이 다시금 찾아온다) <팩토리오(Factorio)>와 <새티스팩토리(Satisfactory)>에서는 필요한 광물이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게이머들은 이러한 변수 앞에서 자원을 활용하고 환경을 구축하며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다시 돌아보는 막스 베버의 통찰 그런데 시야를 넓혀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모든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이라지만,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특히나 현실과의 유사성이 높은데도 게임을 하면서 현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변수의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게다가 공장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게이머의 경험에 따라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유통과정까지 효율을 추구하는 게임의 구조가 현실과 흡사함에도 관련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현실에서 효율을 추구하지 않는 자신이 왜 게임에서 효율을 좇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답글이 달리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한국인의 특성’처럼 부정할 수도 없지만 논의에 도움도 되지 않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와 욕망이 직접적인 변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RPG뿐만 아니라 <데이브 더 다이버>나 <문명>처럼 파편적으로라도 경제 시스템을 구현한 게임과 비교했을 때, 복잡다단하고 가변적인 욕망의 소유자는 물론이고, 정해진 확률에 따라 거래를 하려는 소비자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산미포>의 복제체(Duplicant)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치만을 요구할 뿐이고, 문화적, 정신적 요구치인 사기와 스트레스 역시 소비 과정 없이 최소치의 수치만 충족시키면 되며,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의 플레이어는 다른 인간 자체를 만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생산물은 교환가치를 가진 ‘재화’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재료’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시뮬레이션에서 구현되는 세상은 현실의 산업 자본주의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러한 점은 ‘소비의 욕망 구조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막스 베버의 통찰을 되돌아보게 한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생산 과정에서 찾았다. 베버에 따르면, 종교 개혁 이전에는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개인의 외부, 즉 교회와 종교 권력이 확정시켜주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의 청교도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이러한 차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종교 의례를 충실히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청교도인들에게 일상은 신이 자신에게 요구한 삶의 태도를 증명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에 청교도인들은 세속적 직업 수행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며,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노동에 임했다. 이때의 자본주의 정신은 합리적 계산과 체계적인 노동, 절제된 생활, 이윤의 재투자 등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축적된 자본은 또다른 생산을 만들면서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소비와 욕망의 매커니즘이 구현되지 않는 세상은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의 확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게임 내 재료가 쌓이면, 이는 바로 다음 생산 활동을 위해 투입된다.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더 넉넉하게 쌓으려고 하지만, 이 역시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 인한 축적이다. 그렇게 공장은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물품을 만들 수 있게끔 점점 확장된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가지는 생산 과정은 베버의 말처럼 다른 생산으로 이어지며 산업 자본주의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 물류 산업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또 하나의 변수는 물류 시스템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물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게임의 중반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태가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건, 기차가 되었건, 드론이 되었건 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려면 물류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고급 기술들은 여러 자원들을 대량으로 요구하기에 자원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생산품 역시 필요한 것으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효율에 대한 추구와 산업의 발전은 물류 시스템의 탄생을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물류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영역이고 산업 발전의 산물일 뿐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물류 시스템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먼저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크 레빈슨의 통찰은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다. 레빈슨은 <더 박스: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에서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역설한다. 컨테이너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모든 항구에서 짐을 일일이 손으로 싣고 내려야 했다. 도난이나 파손의 위험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운송비가 막대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컨테이너가 표준화되자 운송비가 줄어들면서 공장들은 항구 근처에 위치하지 않아도 되게 바뀌었으며,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만들던 공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국제적인 분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운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들은 재고를 쌓아두지 않게 되었으며, 필요한만큼 만들어 필요한 곳에 파는 Just-in-Time 생산이 가능해졌다. 레빈슨은 이로 인해 분업화와 같은 기업 구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세계화와 노동 시장, 도시의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생각해본다면, 물류 시스템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만이 아니라, 필요를 만들어내는 개념이기도 하다. <새티스팩토리>에서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 그전까지는 멀어서 염두에 두지 않던 효율성 좋은 자원을 사용하게 되고 기지가 확장된다. 자원에 여유가 생기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더 많은 기기들을 만든다. <산미포>에서 기존에는 어쩔 수 없이 복제체가 직접 움직여야 했던 지점도 자동화되며 최적화의 대상과 방식이 변한다. 분업도 더욱 활발해지면서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늘어난다.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존재가 비가시화된 세상에서 현실의 비가시화된 존재를 상상하기 그런데 이처럼 현실에서의 욕망과 탐욕 없이, 생산이 생산을 낳고 물류가 필요를 낳는 세상에서도 착취와 소외의 흔적은 발견된다. 공장의 최적화를 위해서는 변수 없이 돌아가는 부품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의 자동화 게임들은 착취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자 한다.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에, 공장 내부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며 0.01초 단위로 작업을 규제받는 현실의 노동자가 나오진 않는다. <산미포>는 등장하는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복제체로 정의한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판단력이 제거된 복제체들의 움직임은 게이머의 죄의식을 희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 위에서 최적화를 위한 플레이는 자본주의의 생산 모델 발전 경향을 답습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유가 생기면 복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게임의 초기 단계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게임 시스템이 시간과 능력, 생산량들을 표준화해놓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분업과 세분화 작업을 통해 노동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테일러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그러다 초기 생산물이 쌓이면,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는 포드주의로 발전한다. <산미포>에서 노동자의 식당이나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는 것도 부분적으로나마 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드주의와 맞닿는다. 이후 생산과 물류 시스템이 정착하고 당장 생존에 여유가 생기면 환경을 바꾸거나 주변을 꾸미기 시작한다. 낭비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할 여유가 생기면서 근로만족도와 스트레스도 챙긴다. 팀워크와 자발성을 게임에서 구현할 수는 없지만, 생산성과 복지를 결합한다는 측면에서는 도요타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제목미정 - 투포인트 시리즈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 Back 제목미정 - 투포인트 시리즈 27 GG Vol. 25. 12. 10. 머리가 전구로 변해버린 환자가 병원 복도를 서성인다. 의사는 그 환자를 ‘전구머리병’으로 진단하고, 진료실로 데려가 거대한 기계 장치로 머리를 갈아 끼운다.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전구는 사라지고 멀쩡한 머리가 나타난다. 환자는 돈을 내고, 의사는 숙련도를 쌓고, 병원의 잔고는 올라가며 명성은 올라간다.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이 글은 1990년대 <테마 파크>, <테마 병원>의 정신을 계승한 투 포인트 시리즈가 어떻게 현실의 무거운 장면들을 만화적 유희로 바꾸고, 그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복잡한 구조를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살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병명과 우스꽝스러운 환자들 투 포인트 시리즈의 개발사 '투 포인트 스튜디오'(Two Point Studios)는 과거 <테마 파크>와 <테마 병원>을 만들었던 전설적인 개발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6년 <투 포인트 호스피탈>이라는 병원 경영 시뮬레이션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게임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개발자 마크 웨블리와 개리 카는 병원 시뮬레이션 게임의 개발을 위해, 실제 병원에 방문 조사하여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게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여러 종합 병원들을 컨택했고, 그중 한 곳이 이들에게 병원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응답했다. 병원은 특별하게도, 수술실까지 참관할 수 있게 했다. 게임 개발자들은 처음으로 수술실 안쪽에 발을 들여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자들이 병원 수술실에서 들어가게 된 사건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현실을 꼭 있는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픽 아티스트 개리는 평소 작은 상처에 난 피만 봐도 기절할 뻔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의 그가 실제 수술대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장면을 보고 기절의 위기를 겪었고, 수술에 방해를 받는 의사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방출되었다. 수술실에서 쫓겨난 이 사건에서 그들은 많은 점을 깨달았고, 개발의 방향을 틀었다. "게임의 핵심은 병원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상상하는 것’을 게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 말은 초기 <테마 병원>부터 투 포인트 시리즈로 이어지는 개발진의 일관된 철학이 되었다. <투 포인트 호스피탈> 게임 속 병원은 피가 보이지 않는 밝은 병원이다. 환자들은 병의 고통에 신음하긴 하지만, 그 모습이 안타깝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병원은 환자 중심에서 ‘질병 중심의 세상’으로 개편되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정신병 '보헤미안 광시증', 환자의 머리가 냄비로 변하는 '냄비 근성', 환자가 개로 변하는 '광견병' 등 병명은 모두 가짜이며 이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모습은 코믹하다. 치료 과정 역시 수술용 칼 대신 만화 같은 기계장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치료에 실패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그 죽음은 엄숙하지 않다. 환자는 유령이 되어 병원을 떠돌고, 미화원은 진공청소기로 그 유령을 빨아들여 퇴치한다. 현실을 희화화하는 장치 덕분에, 플레이어는 현실을 가지고 노는 일에 죄책감을 덜게 된다. 만약 이 게임이 실제 환자의 고통이나 마취 동안 벌어지는 수술 장면의 적나라함을 다뤘다면, 플레이어는 감정적 소모 때문에 게임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믹함이라는 완충 장치는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윤리적 불편함을 제거했다. 플레이의 미학은 사실 재현을 포기하는 일로부터 생성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감 없이, 오로지 효율과 최적화라는 게임의 메커니즘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 비현실적 요소의 줄타기 투 포인트 시리즈는 비현실적인 소재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내재한 경영 논리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말도 안 돼"라고 웃으며 시작했던 플레이어는 어느새 "병원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이라며 현실의 부조리를 이해 혹은 체화하는 것이다.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탐사 시스템은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이다. 박물관에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학예 연구사와 같은 유물 전문가들을 오지에 파견을 보내서 유물을 직접 구해오도록 시켜야 한다. 위험한 고대 정글에서 목숨 걸고 식인 식물을 포획해오거나 극지방으로 가 냉동 인간을 통째로 회수해 전시한다. 학예사가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박물관이 운영되는 논리로 들어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해설사가 도슨트 동선을 어떻게 짜야 관람객이 지갑을 열지를 고민해야하고, 일방향적인 전시보다 관객에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를 곳곳에 배치해야 관람 만족도가 오를 수 있다는 점, 기부금 함은 어디에 둬야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는 과정은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유물은 온통 가짜지만, 유물을 전시하고 박물관이 망하지 않도록 수익을 창출하는 운영 감각은 진짜 박물관 직원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필자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즐거움이 모사 자체가 아니라 조작 가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복잡한 시스템을 모형화하고, 그 시스템을 자신의 판단대로 조정해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 역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긴장을 주면서 재미가 발생시킨다. 수술실의 피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병원의 작동 원리를 추출하여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병원, 대학, 박물관의 실사적 구현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예산 압박, 인력 관리, 회전율, 고객 만족도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뼈대를 이식했다. 게임 속 세상은 가짜 질병과 유령이 나오는 판타지지만, 그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규칙은 철저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를 따른다. 게임이 전달하는 기묘한 리얼함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의 인식 가능한 구조를 남기고, 감정적 부담을 제거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는다. 병원 구조는 실제와 비슷하게 운영되지만, 치료 과정의 고통과 윤리는 삭제된다. 대학의 행정 구조는 실제와 유사하지만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나 좌절, 불평등 같은 요소는 극도로 약화된다. 박물관의 운영 구조는 현실적이지만, 유물과 탐사는 가짜로 채워진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유예된 지점에서 플레이어는 현실을 조작해보는 쾌감을 온전히 경험한다. 감정을 제거한 구조적 리얼리티 투 포인트 시리즈가 현실을 ‘플레이 가능한 현실’로 번역하기 위해, 개발진이 선택하는 전략은 매우 일관적이다. 첫째, 현실에서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한다. 둘째, 현실의 운영 구조와 절차를 추출한다. 셋째, 그것을 수치화해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효율의 공간이 된다. 질병은 수술대가 아니라 기계와 약으로 해결 가능해지고, 환자의 고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환자 만족도는 퍼센트로 계산되고, 병원의 평판도는 그래프가 된다. 교육의 질은 학생의 성취도 점수로 바뀌고,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은 관람객의 즐거움 게이지로 환원된다. 복잡한 가치 판단과 인간적 고민은 수치와 인터랙션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수치화는 시뮬레이션 장르의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이 세계에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통제를 실현한다. 전시장에 유물을 구해 넣고, 병원을 최적화하고, 대학의 교육 구조를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 이때 오는 쾌감은 현실을 체험한다가 아니라 현실을 조작해본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시뮬레이션 게임 특유의 조작적 쾌감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적인 감각 덕분에 플레이어는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짊어지지 않는다. 직원은 급여 인상에 불만을 가지고 회사에 불행한 감정으로 다닐 수 있으며, 이는 업장의 경영에도 영향을 준다. 급여 인상 시 직원은 다시 행복해진다. 하지만 게임은 해고에 대해 어떤 도덕적 페널티도 부과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직원보다 더 능력 좋고 성격 좋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플레이어는 기존 직원을 해고 버튼 하나로 쫓아내고 새 직원 고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훈련시켜 성장시키는 비용보다, 갈아치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게임 속 직원들은 단순한 NPC가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행복도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능력은 좋은데 성격이 나빠서 동료들의 사기를 꺾는 의사’와 ‘성격은 천사 같은데 진료 속도가 느려 터진 의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모든 경영주의 현실적인 고충이다. 구조는 분명 현실을 닮았지만, 윤리적 판단과 감정적 부담은 삭제된 세계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진짜 같지만 실제와 다른 이중적 체험을 제공한다. 비현실적 요소로 감정의 부담을 덜어내고, 현실적 요소로 구조적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허구인데 이상하게 현실을 이해해버린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균형이 시리즈 특유의 기묘한 리얼리티를 형성한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비판하는가? 투 포인트 시리즈를 하다 보면 병원, 대학교, 박물관 같은 권위적인 공간이 더 이상 낯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짜 병명, 만화 같은 기계, 유령 청소기 같은 요소들은 본래 무겁고 진지한 공간을 기묘하게 가볍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연출 덕분에 플레이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나 운영 구조를 마주하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은 현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보다, 이런 구조들을 ‘편하게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 제공하는 쪽에 더 가깝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내리는 결정들은, 현실이었다면 윤리적 고민이 동반되는 것들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를 해고하거나,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운영 효율을 위해 시설을 재편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들이다. 하지만 투 포인트 시리즈는 고통과 갈등의 층위를 제거하고, 대신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유머를 심어 넣어 플레이어가 이런 결정을 죄책감 없이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면죄부에 가까운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 면죄부는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플레이어가 구조를 조작해본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의 실제 운영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장면들을 곁에 두고, 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볍게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거대한 시스템의 비판자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관자로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복잡한 구조를 한번 만져보게 하고 이런 방식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남긴다. 결국 투 포인트 시리즈가 제공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부담 없는 체험의 공간이다. 현실의 권위적 공간을 희화화함으로써, 플레이어가 그 구조를 안전한 거리에서 가볍게 탐색하고 조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죄책감 없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가벼운 방식으로 운영의 논리를 경험한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임이 아니다. 대신 현실을 해체해 장난감으로 재조립하면서, 우리가 그 장난감을 다루는 방식에서 역으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욕망을 발견토록 한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병원이나 대학, 박물관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다루고 싶어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편견 속에서 플레이하며 어떻게 대처하는가?: 필리핀 AOS 게임 <모바일 레전드>를 사례로

    <모바일 레전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국가는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만 1억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으며 월별 접속인원은 2천 5백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레전드>의 필리핀 e-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게임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의 온라인 게임 경험이 남성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 Back [논문세미나]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편견 속에서 플레이하며 어떻게 대처하는가?: 필리핀 AOS 게임 <모바일 레전드>를 사례로 27 GG Vol. 25. 12. 10. TEXT: Amestoso, P. P., Colima, B. K. V., Damasin, A. D., De Cadiz, V. Y. E., Iglesias, M. A., & Nacionales, J. P. (2023). Exploring Gender Stereotypes among Filipina Gamers of Mobile Legends: A Phenomenological Study. Journal of Education and Social Studies, 4(3), 466-478. 들어가며 게임 산업의 규모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는 여러 통계조사 결과에서 여성 게이머들의 비율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차별적 시선과 젠더 폭력의 위험 속에서 게이밍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에 대해 깊이 뿌리박혀 있는 도덕적 기준과 편견이 작동한 결과이자, 여성의 발전을 억압하는 혐오적 시선뿐 아니라 역사적인 젠더 권력의 불평등성까지 정당화하고 유지해 왔다. 특히 게임 세계에서는 여성의 게임 능력을 남성과 비교하는 커다란 장벽이 항상 존재하며, 이곳은 모든 기술산업 분야 중 가장 젠더 불균형이 심각한 곳으로도 지적된다. 게임 제작사 경영진 중 여성의 비율은 현저히 낮고 e-스포츠 선수들 중에서도 여성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게이머들의 젠더 고정관념 탐색하기(Exploring Gender Stereotypes among Filipina Gamers of Mobile Legends: A Phenomenological Study)’라는 이름의 이 연구는 게임 세계의 젠더 고정관념이 필리핀 여성 게이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모바일 레전드: 뱅뱅(Mobile Legends: Bang Bang)>은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 인종, 젠더를 막론하고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유명한 AOS 온라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영웅 10명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으며 5명이 한 팀이 되어 적군에 맞서 타워를 수성한다. 휴대폰 전용으로 서비스됨으로써 이 게임은 PC 이용자 기반 게임보다 높은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바일 레전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국가는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만 1억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으며 월별 접속인원은 2천 5백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레전드>의 필리핀 e-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게임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의 온라인 게임 경험이 남성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리핀의 디지털 산업과 e-스포츠 산업이 확장되는 시점에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을 주목하는 것은 게이머에 대한 중립적 인식을 유지하고 온라인 플레이어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있어 여전히 필요한 과제다. 젠더 고정관념과 사회적 역할 이론 젠더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각각 지녔거나, 지녀야 하거나 실제로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특성, 특징, 역할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재현이자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 여성이 전세계 게이밍 인구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남성에 비해 짧은 시간 위주의 캐주얼 게임을 주로 한다는 인식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남녀 모두에게 열려 있음에도 기존의 젠더 고정관념과 인식을 악화시키는 매개로 지적되어 왔다. 남성 게이머들이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우월하게 여겨지는 한편, 여성 게이머는 순응적이거나 남성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규정되며 일반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한편, 젠더 고정관념에 입각한 태도는 여성 게이머에게 가해지는 원치 않은 위협, 모욕적 태도, 괴롭힘이나 희롱으로도 나타난다. 이는 e-스포츠 분야의 여성들에게 차별이자 동시에 점점 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자리한다. ‘사회적 역할 이론(Social Role Theory)’에 따르면, 개인의 행위와 태도, 목표는 그들의 젠더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사회적 규범과 기대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정의하기에, 문화적 규범과 믿음에 기반해 공고해지는 젠더 고정관념은 개인의 행위와 관점, 욕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젠더의 역할을 구성하는 사회적 기준이 어떻게 개인 고유의 역량과 태도, 커리어 경로에 영향을 주는지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이는 본 연구의 핵심적인 이론적 관점이다. 특히, 사회적 역할 이론은 사회적 역할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인식과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젠더 고정관념을 분석한다는 것은 모든 젠더의 플레이어가 임파워링할 수 있는 포용성을 구축하고 다양하고 환대적인 게임 커뮤니티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연구문제와 방법 이 연구는 1) <모바일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여성 필리핀 게이머는 어떠한 젠더 고정관념을 경험하고, 2) 이들은 자신의 젠더와 관련한 고정관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가? 라는 두 가지 연구문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모바일 레전드> 플레이 경험이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필리핀 여성 게이머 16명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시행했다. 인터뷰는 주로 페이스북 메신저, 구글 미트와 같은 비대면 SNS 플랫폼에서 진행되었으며, 위의 두 가지 연구문제에서 유래한 개방형 질문으로 구성하였다. 필리핀 게이머들의 실제 경험을 탐구하기 위해 연구는 기본적으로 해석학적 현상학(hermeneutic phenomenology)에 입각한 질적 방법을 사용했다. 인터뷰에서 수집된 자료는 표로 정리되고 코딩되었으며, 특정한 패턴이나 주제를 식별하기 위해 주제 분석(thematic analysis)을 수행했다. 대주제와 하위주제간의 식별을 위한 자료로 살다냐(Saldaña, 2021)의 코딩 기법을 활용하여 분석에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엄격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했다. * 게임 일러스트, 출처 – https://www.ign.com * 게임 플레이 장면, 출처 - 구글 플레이스토어 <모바일 레전드>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 먼저 <모바일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가 대부분 경험하는 고정관념은 ‘내려치기(downgrading)’였다. 최선을 다해 게임을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는 여성 게이머가 실력과 역량 면에서 남성보다 약하고 무능하다는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다.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음에도 <모바일 레전드>가 남성, 그 중에서도 소년들만의 게임으로만 여겨지는 인식은 실제 존재하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배타적 인식과 낙인을 강화했다. 이들은 플레이 도중 남성들에게 게임을 접으라는 이야기를 듣는 등 여러 형태의 사이버 폭력을 겪었고, 그 결과 대다수가 남성이나 성 중립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프로필을 숨기거나 음성 마이크 사용을 망설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모바일 레전드>의 여성 게이머들은 실력이 약하다는 고정관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게임에서 항상 서포터를 하는 역할로만 낙인지워지기도 한다. 실력자가 아니라는 편견 때문에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실수하기를 두려워했는데, 혹여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나 ‘지원 영웅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 게이밍의 시대’라는 결과에 젠더 고정관념이 위협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며, 온라인 게임 내 여성들이 실제 게임 경험에서 이 위협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남초 게임인 <모바일 레전드>를 여성이 플레이한다는 이유 자체만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바이섹슈얼’이나 ‘레즈비언’이라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오직 (시스젠더)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여성이 하는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들은 젠더 규범의 바깥이라는 비정상적 영역에 속한 사람들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모바일 레전드> 여성 게이머들의 대응 그렇다면, 상기한 이러한 젠더 고정관념에 대해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을까? 우선 가능한 대응 메커니즘 중 하나로 ‘무시(ignoring)’가 있다. 내가 게임을 하고 싶고 그동안 이 게임을 잘 즐겨 왔기 때문에, 또 그들이 내게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내버려 두자고 마음 속에 새기며 다음 게임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즉 여성 게이머들은 주어진 젠더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다. 가끔, 자신의 실수에 유독 끔찍하게 반응하는 남성 게이머에 맞서 이들은 차분히 대응하며 다음 전략을 준비하기도 한다. 무시와 비슷한 또 다른 대처법으로는 ‘보복(retaliate)’도 있다. 자기에게 악담이 온다면 똑같은 형태로 돌려주고, 누군가가 폭력적 언행을 한다면 신고하고 그 사람을 차단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젠더 고정관념에 맞서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게임에 더더욱 헌신하고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탁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목표로 게임에 집중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자신들에 대한 괴롭힘이나 부정적 평가를 피하고, 젠더 폭력이라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모바일 레전드>에서는 분명히 프로 게이머에 준할 만한 실력을 가진 여성 게이머들도 존재했는데, 이들은 곧 프로로 평가받지 못하는 다른 여성 게이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바일 레전드> 게임 시간을 줄이고 운동이나 야외활동이나 학업에 시간을 더 들이는 사례도 있었다. 정리하며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게이머들의 젠더 고정관념 탐색하기’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비슷한 형태의 휴대폰 전용 AOS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들이 겪는 위기와 대응 방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질적 접근법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분석 내용이 표면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큰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여성 게이머들이 온라인 게임의 남성지배적 문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들이 취하는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서로 다른 방식의 전략들이 각자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으며 어떤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는 심층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이 연구의 주요 함의 중 하나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문제를 마주한 게임의 시대에도 여전히 남성 게이머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장르적 영역이 존재하며, 여전히 여러 연령과 젠더의 플레이어들이 접속하고 있는 모바일/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도 젠더 차별과 고정관념이 공고히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 소비자로서의 비중을 높여 가고 있음에도 여성 게이머들이 겪는 불변의 게임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논리는 무엇인지, 게임 산업분야는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지, 좀더 문화적이고 실질적인 연구들이 더 많이 수행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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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3 자동사냥, 오토플레이가 보편화되며 점차 직접적 인터랙션이 물러나는 현대의 모바일 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GG는 '보는 게임'을 꼽았다. 방치형 게임 뿐 아니라 직접 플레이 대신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관전하는 '스트리밍'의 방식을 포함해, 게임에서 상호작용이 뒤로 밀려나는 현상에 주목한다.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Read More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Read More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ad More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Read More 게임기의 라디오 되기, 라디오의 게임기 되기: 이노 겐지의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1997)에서 생각할 것들 비디오 게임에서 소리의 영역은 어떤 역사에 맞닿아 있을까? 영화가 문학과 회화, 연극, 음악 등의 온갖 예술사를 흡수하며 갱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도 직계와 방계를 넘나드는 여러 갈래의 영향 관계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게임의 소리는 어떤 가능성의 영역이었을까? Read More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Read More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Read More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Read More 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Read More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Read More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Read More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Read More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Read More 보는 게임의 한복판에서 보는 현재: 게임유튜버 김성회 ‘보는 게임’을 게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조작하지 않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진행되는 ‘방치형 게임’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관전만 하는 그러니까, 게임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시선과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이 변해가는 오늘날 ‘보는 게임’을 이끄는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의 진행자 김성회를 만났다.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만큼 양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Read More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Read More 스스로 움직이는 게임: 방치형 게임에서의 플레이들 “게임을 한다”라고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를까? 컴퓨터 앞에 앉아 역동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양새를 “게임을 한다”라고 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닥타닥”(키보드), “딸깍딸깍”(마우스), “삐걱”(의자). PC방이라면 “웅성웅성”까지. 사람들은 기계 앞에 올곧이 앉아서 게임에 몰두한다. 누가 봐도 게임을 하는 모습은 티가 났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방, 거실, 피시방, 플스방 같이 분리된 공간으로서 게임의 장소가 중요했고, 사람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그곳에 방문을 해야 했다. Read More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Read More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Read More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도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버튼 읽기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버튼 읽기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버튼 읽기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버튼 읽기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버튼 읽기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버튼 읽기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버튼 읽기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그러나 오늘날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보이스 채팅이 생기고, 다양한 방식의 전술적 소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런 변화는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PUBG의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과 UX 유닛 한수지 실장을 만나고 왔다. 버튼 읽기 [인터뷰] 창간 2주년,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 그렇다면 독자들과 여러 필진이 함께 만들고 있는 게임 담론은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읽고 쓰는 행위는 게임문화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이 되고 있는가? 창간 2주년을 맞아, GG의 이경혁 편집장과 평소에는 담지 못했던 웹진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왔다. GG가 만들어졌던 배경이나, GG를 만드는 당시 상상했던 독자층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위와 같은 질문을 더욱 고민하게 할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버튼 읽기 [인터뷰] 플래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 RIP Flash 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첫 게임을 ‘플래시 게임’으로 접했고, ‘마시마로’나 ‘졸라맨’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등 플래시는 2000년대 문화 전반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플래시 서비스의 종료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며, 그 문화적 산물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버튼 읽기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튼 읽기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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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9 호러는 디지털게임에서 무엇인가? 게임에서의 호러는 다른 매체의 호러와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 게임이라는 놀이매체를 가지고 공포감을 다루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고룡풍운록>을 통해 보는 무협추리게임 <고룡풍운록>은 무협과 추리를 어떻게 결합시켰을까? 이 무협 추리 게임은 어떤 역사가 누적돼 탄생한 걸까? 어떻게 해서 과거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었는가? 이 글은 <고룡풍운록>의 내용, 역사적 맥락, 혁신적인 디자인 및 윤리 개념의 4가지 관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게임의 핵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Read More Frights, Fears, and Fallout: Layers of Horror in Popular Gaming 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Read More Is this Lies of K?: “Lies of P” game discourse in the context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longing for a stand-alone game title “Lies of P” (Neowiz, 2023) takes place in Krat, a fictional city inspired by the Belle Époque period in Europe. One of the game’s NPCs (non-player characters), Eugénie, is portrayed as an outsider from a distant country east of Krat. She claims to come from the so-called ‘country of the morning,’ with a visual character design that resembles East Asian ethnic groups. Perhaps this character’s story was inspired by the Joseon Dynasty, a kingdom that existed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14th to 19th century, which was typified as the “Land of Morning Calm” in the West around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loose translation of the country’s name in Chinese characters (朝鮮). Read More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Read More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Read More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Read More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Read More ‘공포’와 ‘놀이’로서의 비장소 : <8번 출구>를 포착하기 현대의 공포는 흐른다. 곧, 어디서든 틈입한다. 일찍이 공포라는 키워드 하에 내포되어 온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상들―가령 괴물, 귀신, 살인마, 악마 등―만으로 이 정서의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공포는 좀 더 내밀한, 혹은 하이퍼객체와 같은 유동성을 발휘하기에 우리는 이 공포를 ‘앎’의 영역으로 안배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Read More 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Read More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Read More 떨리는 몸으로 플레이하기: 기대, 탐험, 그리고 인식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내 발소리와 금속 파이프에서 들려오는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깨뜨린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 너머의 어둠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엄습한다. 다음 방에 들어서자,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오고,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불빛에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 모습에 나는 속이 메슥거린다. Read More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Read More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Read More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Read More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Read More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한송희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편의상 “영화연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스스로는 영화를 매개로 세계를 탐구하는 문화연구자로 정체화하고 있다. 주로 재현, 표상, 담론의 정치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무한히 확장하고 분할되다 중첩되기도 하는 세상의 모든 경계에 애정을 쏟고 있다. 나와 나 아닌 것, 안과 밖, 이곳과 저곳, 우리와 저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하면 더 무르고 희미하게 만들어 느슨한 연결을 가능케 할까, 가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다. 한송희 한송희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편의상 “영화연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스스로는 영화를 매개로 세계를 탐구하는 문화연구자로 정체화하고 있다. 주로 재현, 표상, 담론의 정치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무한히 확장하고 분할되다 중첩되기도 하는 세상의 모든 경계에 애정을 쏟고 있다. 나와 나 아닌 것, 안과 밖, 이곳과 저곳, 우리와 저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하면 더 무르고 희미하게 만들어 느슨한 연결을 가능케 할까, 가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Jisu Kim 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Read More 버튼 읽기 [Interview] The Story of Digital Game Diversity & Accessibility and Making Books About it – Kyung-jin Lee, Diversity & Inclusion Director at Smilegate In August 2024, Smilegate – one of the best-known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 publishers, published two books aimed at game developers, focusing on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he first book,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explores the concept and current state of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 South Korean games and case studies. It also delves deep into design approaches to ensure all players can fully enjoy games without restrictions. Smilegate’s second book,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introduces the idea of "cultural diversity" and examines how it has been implemented in South Korean media and games.

  •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 Back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18 GG Vol. 24. 6. 10.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의 다양한 행위 중에서도 가장 합목적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가 곧 게임 플레이인 것이다. 열역학 법칙으로 보면, 게임은 엔트로피가 가장 높은 부문에 해당한다. 이처럼 모순적인 게임플레이의 위상은 ‘어떤 게임을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들 때 설계자는 물리학적 효율성에 온 힘을 기울이면 된다. 에너지 효율, 내구성 등이 우선이고 감성의 영역인 디자인은 그 다음에 온다. 그런데 게임의 설계자들은 이 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게이밍에서 절대적 효율성, 절대적 감성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두 행성 간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점을 포착하듯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에서는 치열한 두뇌 게임이 펼쳐지고, ‘설계적 효율성’ 과 ‘플레이의 효율성’은 복잡계의 영역으로 간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고도 노동 집약적인 산업과 밀접해 있기 때문에 특히 트리플A 게임은 이 라그랑주점을 찾는 노하우를 생산의 표준으로 만들고자 한다. 반면 플레이어들은 이 안정적인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점으로부터 벗어나 예상치 못한 궤도를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영화나 방송 산업이 장르 문법이나 컨벤션을 활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게임플레이 자체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도 설계자도 틀에 박힌 수학적 질서도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것을 한편으로는 혐오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같은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유비소프트와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이다. <어쌔씬 크리드> 시리즈로 유명한 유비소프트는 ‘유비식 오픈월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글로벌 퍼블리셔다. 유비소프트에서 제작한 대다수의 게임들은 아주 비슷한 플랫포머 구간을 가지고 있는데, 게임 속 메인 진행에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사이드 스토리를 수행하면서 플레이 시간을 늘리고 게이머로 하여금 나머지 공간을 탐색하도록 유도하는 파트다.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 실감나는 전투 등으로 치장된 메인스토리 진행을 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반드시 ‘유비식 오픈월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구간은 제작하기 쉽다. 심지어는 자사에서 같은 엔진으로 개발한 다른 게임의 프리셋과 소스, 레벨링 노하우를 가져다 쓸 수도 있다. 유비소프트에 ‘게임 제작의 테일러리즘’이라는 웃지못할 라벨이 붙여진 이유는 이처럼 플레이어들과의 치열한 라그랑주점 찾기를 2순위로 미뤄두고 도입한 개발 프로세스의 균질화가 게임의 매커닉과 플랫폼구간에서 노골적으로 현상되기 때문이다. 이러니 유비식 오픈월드에 익숙한 플레이어들은 플랫포머 구간에 들어서는 순간 한숨을 쉬며 1년차 예비군이 훈련장에 와서 으레 하듯이 뻔하고 관습적인 게임 플레이를 이어나간다. 똑같은 농담, 비슷한 목표와 성취, 하찮은 심부름, 좀 더 원활한 다음 페이즈 진행을 위한 아이템 수집 등…이 때부터 플레이를 지배하는 것은 치열함이 아니라 관성이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관성에 익숙한 존재다. 관성도 플레이의 중요한 요소다. 똑같은 던전에 들어가서 수십 번씩, 땅 짚고 헤엄치듯 한 손으로 클리어해나가는 플레이어들, 스피드런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것을 관음증처럼 지켜보는 게임 ‘시청자’들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한 네트워크 속에서 게임플레이의 암묵지는 결국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성은 악성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쌔씬 크리드> 에서도, <와치독> 에서도, <디비전> 에서도, <고스트리콘>에서도 똑같은 감각으로 비슷한 사이드퀘스트 구간을 헤매다 보면 설계자도 플레이어들도 반발하게 된다.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은 유비소프트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실패하고 있다. 유비소프트가 개발 층위에서의 테일러리즘을 도입했다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면, 엔씨소프트는 플레이 층위에서 포드주의를 도입했다가 과소소비라는 파국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비슷비슷한 사이드퀘스트와 아이템 수집 등으로 이뤄진 유비식 오픈월드는 적당히 플레이하면서 넘기면 된다. 그런데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은 여기에 비즈니스 모델까지 더했다. 플레이어들을 처음부터 ‘린저씨’로 호명하고, 그들이 게임 설치에 앞서 두둑한 현금부터 준비할 것을 가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관습적인 플레이가 뭔지를 먼저 끼워넣는 식이다. 패키지 관광객들을 싣고 하루에 수십 군데를 투어하지만, 그 장소들은 모두 협약을 맺은 곳이거나 쇼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들이다. 한국의 특성은 이렇게 성공한 한 선구적인 사례들을 후발 주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카피한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의 모든 게임들에서 ‘유비식 오픈월드’와 같은 ‘한국식 과금 구간’을 본다. 심지어는 플레이타임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현금결제 창이 뜰지도 플레이어들은 예측하게 된다. 엔씨를 포함해 그간 한국 게임사들이 ‘생산한’ 게임들은 이 문법을 따라 포드주의적 자동화까지 도입, 방치형 게임이나 자동사냥으로까지 진화했다. 이 게임들은 게임플레이의 관성과 새로움 사이의 경합, 개발자와 플레이어간의 합리적 두뇌게임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교환의 법칙으로 환원한다. 레벨업도, 좌충우돌도, 글리치도 어뷰징도 없는 세계 – 얼마나 매끄러운가? 그러나 이런 식의 포드주의는 필연적으로 ‘탈숙련화’를 야기한다. 노동의 탈숙련화가 아니라 개발의 탈숙련화, 플레이의 탈숙련화다. 개발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엔진을 실험하지 못해 뒤처지고, 플레이어들은 다른 게이밍의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해 도태된다. 포드주의가 야기한 문제, ‘탈숙련화’는 자본주의의 역설이자 자동화의 고질병이다. 포드사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셈블리 라인에 완전 자동화 결합 시스템을 도입했고, 일시적으로 매출은 엄청나게 증대됐다. 대량의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회사를 떠났고, 공장에 남은 사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동화 기기 옆에서 빗질이나 허드렛일 따위를 하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탈숙련화가 진행되자, 역설적이게도 미국 전체 노동자의 삶이 위기에 빠졌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다. 포드 공장에 도입된 모델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다른 제조업 부문에서도 우후죽순 도입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가 되거나 비숙련 단순직종으로 이동, 자동화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고 재고가 증가하는 역설이다. 숙련노동자들이 사라지자 생산 현장에서 공유되던 암묵지 노하우들도 사라졌고, 결국 미국의 완전자동화 산업은 일본의 반자동화 산업에 헤게모니를 내주게 되었다. 포드주의는 야심찬 자동화를 추구했지만 그로 인해 빈부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들의 삶이 불안정해질 뿐 아니라 공산품들의 품질도 떨어지는 결과를 야기했다. 유비나 엔씨의 제국이 조금씩 몰락하는 가운데, 게임 설계자들은 ‘탈숙련화’가 게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제는 상기해야 한다. 경제적이고 수학적인 효율성은 게이밍에서 다각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플레이어는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광기어린 사람들이고, 설계자들은 정교한 건축술을 구사하지만 동시에 베토벤의 영감으로 창조하기도 하는 입법자들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글리치를 찾거나, 최단시간 레벨업 경로, 보스 제거에 가장 효율적인 세팅을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능동적면서 복잡한 시행착오가 동반되어야 재미를 느낀다. <세키로>나 <다크 소울> 시리즈에 몰입한 사람들은 왜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손가락 관절염을 느끼며 한 보스를 붙잡고 소리를 질러댈까? 역사에 문외한인 <문명>의 플레이어는 왜 17세기에 스텔스기를 완성하는 세종대왕과 몇날 며칠 자웅을 겨루는가? 자학적인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합리성을 향한 복잡성의 과정, 게이밍의 역학적 질서도와 복잡성이 교차하는‘에르고딕(ergodic)’에 탑승한 승객이어서이다. 그들은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게임패드를 집어 던져가며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보스를 클리어한 다음, 이를 깨기 위해 동원한 다양한 전략과 방법, 세팅, 꼼수까지 자랑스럽게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 자랑할 것이다. 이렇게 공유되고 축적되는 숙련 비법은 모든 플레이어들에 의해 재즈 스탠다드 음악 연주처럼 변주될 것이고, 개발자들도 이를 참고할 것이다. ‘숙련화’ 된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에 의해 긍정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 루프가 완성된다. 게이밍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플레이어와 개발자 모두를 놀라게 하며 희열에 차게 만들고, 새로운 매커닉과 창의적인 구조가 만들어진다. 탈숙련화가 아니라 숙련화, 소외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유비식 플랫포머 승객’ 이나 ‘린저씨’들과 그들을 고객으로만 호명하는 개발사들에는 그런 피드백 루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유비소프트와 엔씨 및 이들의 ‘탈숙련화’ 모델을 참조로 하는 모든 게임개발사들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작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숙련된 플레이어들로부터 숙련된 플레이를 확보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잘 활성화된 게임은 당연히 <마인크래프트>다. 플레이어가 설계자가 되고, 설계자가 자신이 창조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노하우는 오픈소스 환경에서, 커뮤니티에서 공유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전문가집단과 협업을 하거나 공동 프로젝트까지 한다. 숙련화된 설계자와 플레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모두가 ‘합리적 트릭스터’ 다. 우리는 합리적 트릭스터들이 최근 열광하는 숙련화 게임의 두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는 <스텔라 블레이드> 같은 게임이 전통적인 게임 서사와 미장센으로 뉴트로로 돌아오는 방식,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생성AI를 활용한 게이밍의 등장이다. 이 두 시나리오 모두 테일러리즘이나 포드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산업 부문에서나 게이밍에서나 완전히 화려하게 자동화된 기술진보가 아니라 결국 합리적 효율성과 주체적 효능감 사이를 횡단하는 사람들, ‘합리적 트릭스터’들이 길을 여는 것을 본다. ‘트릭스터’의 감각을 상실한 게임의 설계자와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체스를 두지 못한다. 트릭스터는 질서를 가장한 혼돈을 창출하기 좋아하는 악당이고, 꾀를 내어 난제들을 교묘히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현자다. 게이밍은 수많은 트릭스터들이 머리를 맞대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속일까, 황금율을 어떻게 파괴할까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라그랑주점을 찾아나가는 장이다. 문학이나 시네마에서는 이런 것들이 기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시네마의 관객은 종종 맥거핀을 찾아내고 실망하거나 핍진하지 못한 연출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게이밍에서 좋은 설계자들은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기만할지를 숙고한다. 플레이어들은 설계자의 주권을 깨트리는데서 희열을 느낀다. 게이밍은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탈숙련화 게임이 아닌 숙련화 게임을 통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8비트 게임의 등장 이후 수십 년간 축적된 게이밍 경험은 유비식 오픈월드나 한국형 과금 게임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Tags: 오픈월드, 트릭스터, 포디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 Back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05 GG Vol. 22. 4. 10.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게이머는 미니맵을 통해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과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공간 감각이 동원된다. 아바타의 신체를 경유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감각을 지각된 공간감각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얻게 되는 인지된 공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맵은 그러한 두 차원의 공간감을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니맵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며 게임의 그래픽이나 서사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한 공간감을 보조해 준다. 나아가 공간을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게임 환경을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된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미니맵 또한 게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속 미니맵이 무엇을 그려내고 재현하는지 보다는 미니맵이라는 비유를 통해 조망하는 시점과 가시성이 어떤 위계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는 게임 내에 구현되는 공간을 넘어,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서열체계와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만, 이 글이 이론이나 구체적인 분석을 포함하기 보다는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미니맵”과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니맵의 작은 역사 * 〈Rally X〉(1980) 우측의 미니맵(위)과 〈Defender〉(1981)(아래) 상단의 미니맵. 미니맵의 초기 형태는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맵은,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단순한 그래픽을 사용했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 가령 〈Rally X〉(1980)이나 〈Defender〉(1981) 같은 게임들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주로 단조롭고 비슷한 지형지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미니맵은 지도의 역할보다는 근처의 적들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 기능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니맵이 조금 더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에서 부터이다. 화면 좌측 상단의 회색 사각형은 젤다의 전설이 배경이 되는 하이랄의 전체 지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초록색 점은 현재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구역이 전체 지형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미니맵과는 달리, 당시의 미니맵은 플레이어의 위치 외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1986년작 젤다의 전설에서 미니맵의 그래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동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초록색 점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젤다의 전설〉(1986). 왼쪽 상단의 회색 사각형이 미니맵의 역할을 한다. * 〈젤다의 전설〉(1986)의 전체 맵. 이것이 미니맵에서 회색 영역으로 표시된다. 〈슈퍼 메트로이드〉(1994)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이미 탐색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직 탐색하지 않은 미지의 지역을 가리거나 까맣게 남겨두어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는 1977년 작 〈엠파이어(empire)〉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지만, 이를 미니맵에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 〈슈퍼 메트로이드〉(1994). 우측 상단 미니맵에 플레이어가 지나온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전장의 안개’를 처음 도입한 〈엠파이어〉(1977). 이런 ‘전장의 안개’는 다른 게이머와 대적하는 멀티 플레이어 RTS(Real-Time Strategy) 장르 게임에서 자주 이용되는 게임 메커니즘이다. 아군 유닛을 전장의 안개가 낀 지역에 정찰 보내 시야를 확보하고 적군의 위치와 진입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이 같은 게임들에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일부 악의적인 유저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전장의 안개를 없애주는 불법 프로그램(맵핵; map hack)을 사용하기도 한다. * 아군이 정찰하지 않은 지역의 정보가 ‘전장의 안개’로 차단되는 〈스타크래프트〉(1998). 왼쪽 하단이 미니맵이다. 이런 ‘전장의 안개’가 적용된 미니맵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식민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자주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과 타 민족과의 전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치 RTS 대전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미지의 검은 땅을 정찰하고, 적군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축소하고 기호화 시켜 표현한 재현물이라면, 그러한 지도를 재현한 미니맵은 게임 공간의 재현, 그리고 지도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재현에 대한 재현이 된다. 2000년대 이후 MMO, RPG, 오픈 월드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미니맵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로, 몬스터, 적군, 친구, 퀘스트 가능 여부, 상점과 여관 등 건물들, 목적지까지의 거리, 방위 등 많은 정보들이 기호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화면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이런 미니맵이 유명 트리플-에이 게임 시리즈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한 코타쿠(Kotaku)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부상한 대악마, 비디오 게임 미니맵의 지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부터 줄줄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 〈파 크라이(Far Cry) 5〉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를 작은 나침반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쌔신 크리드의 디렉터 진 게스돈(Jean Gues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니맵에서 하나의 아이콘에서 다른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방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과 자원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니맵을 나침반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나침반은 여전히 힌트와 정보를 제공하지만, 당신 역시 세계에 참여하고 더욱 관여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미니맵이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잡한 아이콘과 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따라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처음 게임에 미니맵이 도입되었을 때, 게이머들에게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일종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하고 40-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미 베테랑 탐험가가가 된 게이머들에게 미니맵은 오히려 세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된 것이다. * 〈GTA 3〉 왼쪽 하단에 위치한 동그란 미니맵. 내려다보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 FPS 장르 게임들인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s Battlegrounds〉(2017)와 〈포트나이트(Fortnite)〉에는 미니맵이 있지만, 〈오버워치(Overwatch)〉(2016)에는 미니맵이 없다. 2016년, 〈오버워치〉의 치프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왜 〈오버워치〉에 미니맵을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앞으로도 미니맵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미니맵을 제공했을 때, FPS 장르에 익숙한 고수 유저들과 초보 유저들 간의 실력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니맵을 제공하지 않도록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를 구현하는 RTS 장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전 게임들에서는 정보 싸움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오버워치〉에서는 적의 위치나 진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구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운용하는 캐릭터 조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지대를 선점했을 때 적군에 비해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잘 나온다거나 후방 유닛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야를 확보해 진입경로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오버워치〉에서는 이러한 고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점프기나 z축 이동기가 있는 유닛들을 선택하는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오버워치〉에서도 미니맵과 유사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버워치〉의 프로 레벨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다. 공식 〈오버워치〉 리그는 게임 리그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상황을 최대한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한 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탑-다운(Top-down) 시점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옆에 띄워주는 화면은 아니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미니맵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진영과, 유닛들의 진입 경로와 대치 구도를 아이콘을 통해 설명하는 화면이라는 점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 〈오버워치〉 리그의 탑-다운 뷰. * 〈오버워치〉 리그의 중계 화면. 뿐만 아니라 과거 〈오버워치〉 리그의 공식 중계 사이트였던 트위치(Twitch)에서는 〈오버워치〉 리그 올-액세스 패스(Overwatch League All-Access Pass)를 구매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점과 각도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바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스펙타클을 제공해주었다.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메인 화면과 더불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몸에 그대로 들어가 마치 그의 몸에 빙의한 듯한 시점으로 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었고, 위에서 본 탑-다운 시점과 같이 위에서 모든 유닛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는 게임 내 중력법칙에 묶여 게임 속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했던 반면 (물론 특정 기술을 사용해 잠시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다)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과 중계진은 자유롭게 떠다니며 선수-캐릭터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점에 대한 일종의 공간적인 비유로서, 프로 선수와 시청자 간의 높고 낮은 위치 설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를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 안에서도 고지대를 선점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선수와 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에는 가시성의 격차가 존재한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지대를 선점하더라도 선수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반면 관객은 선수의 시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야와 정보의 불균형함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하고, 미셸 푸코가 근대적인 공간의 전형으로서 비평했던 파놉티콘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군대와 같은 공간들도 본질적으로는 파놉티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감시 체계는 그러한 시설 안의 재소자들(학생, 환자, 군인들)을 유순하게 길들인다고 보았다. 파놉티콘 구조는 오늘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정보의 세계에도 편재한다. 빅 테크 회사들이 이용자의 성별, 나이, 위치,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 등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맞춤 광고를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와 같은 대전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는 것은, 앞서 제프 카플란이 말했듯,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고수가 정보를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게임이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는 것에 맞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여전히 이스포츠의 관객에게는 선수가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눈이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시선의 위계가 게임 리그를 시청하는 재미의 큰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인 관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4 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 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 플레이 ’ 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 년의 ‘ 배틀그라운드 ’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 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 학교와 정부 ,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 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 2000 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 그러나 적어도 21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주 5 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노는 일 playing 이 그저 쉬는 일 resting 이 아닌 ,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 영화를 보고 , 만화를 보고 ,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 그들만의 이야기 ’ 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 평론의 부재다 . 음악 , 영화 , 미술 ,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 현재 ,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 년 8 월 ‘ 게임제너레이션 ’ 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 문화로서의 게임 ’ 이었다 .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 게임은 문화다 ’ 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우리는 문화입니다 !’ 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만들어졌다 . 지난 14 개 호 동안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네트워크 ,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 온라인 / 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 예술과 게임의 관계 ,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이머 ,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 첫째는 ‘ 페다고지 Pedagogy’ 다 .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 둘째는 담론 Discourse 의 구축이다 .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 분석하고 ,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 셋째는 실천 Implementation 이다 .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 유럽 , 일본 ,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 강화하는 작업을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어가고 있다 .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 ‘ 웹진보다 무검게 , 학술지보다 가볍게 ’ 라는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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